조글로로고
복숭아씨와 색바랜 사진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19일 08시33분    조회:106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2)

◇황혜영 (길림)

50년 전 추억의 색바랜 사진(왼쪽이 어린 시절 필자)

어제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익지 못한 시퍼런 복숭아 열매가 나무 밑에 쭉 깔렸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의 맛보다 그 씨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는 나다. 복숭아씨가 중약재로 쓰인다는 것을 열두살 때 벌써 알았다. 그리고 복숭아씨를 떠올리면 동네 사진관으로 달려가던 두 소녀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1966년 봄철에 우리 엄마와 옆집 어금의 엄마가 며칠 사이 두고 두 집의 막둥이를 낳게 되였다. 우리 엄마가 우로 딸 삼형제를 쭉 낳고 남동생 하나 밖에 없는데 또 딸을 낳았다고 우리 아버진 산원에도 안 가고 술만 마시면서 한숨만 푹푹 쉬고 옆집 어금이네는 어금의 아래로 련속 아들 셋인데 또 아들이라고 그 집 아버지도 어두운 얼굴빛이였다.

어금이와 나는 열두살 동갑 나이였다. 문화혁명 바람에 학교도 갈 수 없는 우리 둘은 나는 녀동생, 어금이는 남동생을 업고서야 밖에 나와 놀 수 있었다. 동란시기라 공급하는 쌀도 모자랐고 고기 같은 부식품도 판판 부족이였다. 3전에 하나씩 하는 얼음과자도 어른들은 잘 사주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다 우리 엄마가 애기 잘 본다고 한개 사주면 내 한입, 너 한입 하면서 나누어먹던 딱친구였다.

아이를 업고 동네를 돌다 나면 우리 동네 사진관을 지나게 되는데 사진관 창문에 이쁜 처녀, 멋진 총각들의 확대한 사진을 진렬해놓은 것을 부러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되였다. 꿈 많은 소녀들이였으니 희망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리 같이 사진 한번만이라도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일촌짜리 두장에 31전 하는 돈을 얻을 수 없었다.

“우리 돈을 벌자.” 어금의 말에 내가 “어떻게? 어디 가서 벌거야?” 하니 “공소부에서 복숭아씨를 약재로 받는데 한근에 40전이래.” “그런데 어떻게 모으나? 얼마나 많은 복숭아라야 그 씨, 그것도 속에 있는 손톱 만한 종자 한근 모으자면 하늘에 별 따기지.” “길 다니면서 주으면 되지!” 담찬 어금의 말에 귀가 솔깃하지만 길에서 남이 먹다 뱉아던진 더러운 복숭아씨를 줏는다면 선비인 아버지께 욕을 먹는 건 열에 둘째 치고 집안 망신이라고 집에서 쫓겨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녀자들이 머리채를 길게 땋고 다니는 것은 자산계급풍이라고 홍위병들이 을러메는 바람에 태여날 때부터 머리를 한번도 깎지 않고 오금 아래까지 할머니가 정성들여 키워준 머리채를 뭉청 베여버리고 집에 들어갔다가 “가시나가 꼬리 빠진 수탉 해가지고 이게 무어야?” 하시면서 비자루를 들고 쫓는 바람에 밤중에 엄마가 찾아헤맬 때까지 어두운 창고 안에 숨어있던 것이 바로 며칠전 일이였는데 말이다. 그 날 할머니는 오래오래 성을 내고 량심 없는 년이라고 날 욕했다고 엄마가 알려주셨다. 큰손녀만 너무 귀여워하신 할머니였다. 내 동생들은 단발머리에 서캐 껴도 대수로와하지 않고 내 머리만 매일 빗겨주고 씻어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해난다.

“괜찮아. 우리 애기 볼 때 놀지 않고 같이 다니면서 모으자. 그걸 강변에 가 씻은 후 돌로 깨서 알만 가져다가 우리 집 창고 우에다 바싹 말리면 되지 않아?” 그 날부터 우리 둘만의 비밀계획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끼니때가 되여 어른들이 밥을 할 때면 우리는 애기를 업고 거리를 동쪽부터 서쪽까지 땅만 보면서 걸었다. 남이 먹고 뱉아버린 복숭아씨를, 그것도 찐득찐득하고 흙이 게발린 것을 무슨 금덩이나 되는 것처럼 환성을 올리면서 주어서는 들고 다니는 낡은 알루미늄 밥곽에 넣어모았다.

길 가면서 복숭아를 먹는 어른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들도 복숭아씨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온 저녁 주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주은 것은 어금이네 창고 구석에 모았다가 낮에 가만히 강역에 가서 씻고 깨고 해서 모았는데 온 여름, 가을 내내 주었던 것 같다.

바싹 말린 복숭아씨를 조그마한 헝겊주머니에 넣어 팔러 가던 날 그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번 돈, 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였다. 그 돈으로 우리 둘은 흰 대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일촌짜리 사진 한장을 찍었다. 그 후 50년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 때의 상장이랑 결혼증이랑 다 분실되였지만 이 쬐꼬만 사진만은 색이 누렇게 바래면서도 나의 곁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나는 이번 복숭아씨 줏기에서 어금이의 한다면 꼭 하고야 마는 끈질긴 정신, 어떠한 곤난도 이겨내는 강의한 의지를 배워둔 것 같다. 아버지가 양로단 길닦이 로동자이고 어머니는 직장이 없어 남의 애를 보고 거기다 오롱조롱 여섯형제나 되는 곤난한 가정이지만 어금이는 항상 활짝 핀 성격이고 언제나 나를 친동생처럼 보살폈다. 꼭 너네 아버지, 엄마처럼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오돌차게 말하곤 했다. 소설책이 재미 있어 나는 작가가 되지 선생은 안한다고 했었다.

문화혁명 후기에 시양로단에서 회계로, 단위의 공회위원으로 잘 나가던 그가 담차게도 시교육국 인사처를 찾아가서 자기의 리상은 선생님인데 전근시켜줄 수 없겠냐고 했단다. 마침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흥성해지고 또 심산벽곡 소학교에 선생이 모자라 쩔쩔 매던 때라 인사처장이 그를 보고 시내의 안온한 생활을 버리고 시골 애들 왕질 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이에 그는 “고중졸업생이고 열아홉살에 입당한 공산당원이니 믿어주세요.”라고 했다. 일주일 후에 발령이 나서 다른 사람들의 리해할 수 없다는 표정 속에서 그는 결연히 시골학교로 갔다. 그 후 연변대학에 추천받아 진수도 하고 본과함수도 하면서 소학교에서 중학교로 발탁되여 우수교원으로 정년퇴직하였으니 소녀 때 리상을 실현한 셈이다.

나도 어금이의 끈질긴 정신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변강산골에 하향한 5년 동안 오로지 대학교에 가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문사통신원, 대대 리론보도원, 공청단 선전위원 등 일에 발벗고 나섰고 수리공정 건설장에 가서도 낮에는 흙덩이를 메여나르고 밤에는 책을 보곤 하였다. 그 덕에 대학교 입시 제도가 회복되자 합격되여 스물네살 나이에 대학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끈질긴 정신으로 입당도 하고 자식도 잘 키워낸 것 같다. 평생 교단을 지키다 퇴직하고 륙십이 넘은 지금도 작가가 되려던 소녀 때 꿈을 버리지 못하고 글농사를 하려는 것도 어금의 끈질긴 정신을 본받아서가 아닐가 싶다.

싱싱한 복숭아 한구럭을 사온 지 여러날 되는데 누구도 먹어주지 않아 흐물흐물 썩으려 하는 것을 던지려다 씨 한알 까서 그 속살을 입에 넣으니 달크무레한데 마음은 씁쓸해난다. 세월의 바람에 부대껴 멀리 갔던 복숭아씨 줏던 한쪼각 추억이 하늘하늘 눈앞에 날려온다. 색바랜 사진 한장 나풀나풀 내게로 떨어지더니 두 소녀 활짝 웃어준다. 지금은 저마다 스마트폰이 있어 시시각각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우리 소녀 때는 일촌짜리 사진 한장 찍으려 해도 얼마나 어려웠는지 지금 애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현재의 필자 황혜영씨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8) ▩서현(연길)   살면서 처음으로 거한 밥상을 받았던 기억은 중학교 시절, 시내에서 좀 떨어진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한반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던 날이다.   겨울방학이라 두눈이 멀뚱멀뚱해서 거의 집에만 박혀 쏠락거리다가 점점 식상한 나머지 새로...
  • 2018-09-0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7) ▩김숙자(길림) “그 때 한숙사에서 뒹굴던 채화, 정복, 미화, 춘희, 보옥… 항상 보고 싶다.”는 필자 김숙자(앞줄 왼쪽 두번째).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 그런지 느닷없이 지나간 옛일들이 나를 찾아오군 한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의 물길은...
  • 2018-09-06
  •     빈곤 장애인 대학입학생에 온정의 손길 이어져     9월 1일, 두 손에 보행보조기를 짚고 하해대학 2018년급 신입생 등록처에 나타난 돈화시 빈곤가정 대학입학생 왕붕박(19살, 2급 지체장애인)의 얼굴에는 행복의 미소가 떠날줄 모른다. “학교에서 저에게 2000원의 조학금과 가치가 300원에...
  • 2018-09-0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6) ▩김명희(왕청) 알뜰살뜰 살림군 김명희 필자 해마다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일어서는 새 아빠트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힘들게 살아왔던 지나간 세월이 영화필림처럼 떠오르며 코마루가 찡해난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1995년 겨울, 친척 친우들의 축복 속에서 간단...
  • 2018-08-27
  • 21일,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주최하고 정사교육그룹(精思教育集团)에서 후원한 ‘계향장학금’ 설립식 및 제1회 장학금시상식이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진행되였다. 행사에는 백성남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교장을 비롯한 학교 지도부 성원들과 윤용철 정사교육그룹 회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 그리고 ...
  • 2018-08-23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5) ▩최영숙(연길) 필자 최영숙, 어린 시절 동생들과 함께(뒤). 1966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휴식날이지만 나는 토끼 당번이였기에 아침에 흰 대복(그 당시 나에게는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전날 입고 자던 웃옷 그대로, 전날 오후 들에 나가 캐놓...
  • 2018-08-2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5 자전거부대를 바라보고있는 아키코씨(왼쪽) 오오무라 아키코녀사의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도 령하 24도이다. 아침 9시, 사흘만에 서시장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긴 털실목도리를 얼굴로부터 목에 두른채 큰길에 나서니 벌써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녀들이 줄을 짓고 있었다. &lsq...
  • 2018-08-13
  • 나는 1960년에 연변대학 수학계를 졸업하고 연길시 3중에서 33년을 교원으로 있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보람찬 교원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로후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본적이 없었다. 제각기 잘 자라 준 자식들은 각기 자기들의 능력대로 일본과 상해에서 분투하며 살기 시작하였고 정년퇴직을 한 남편과 나는...
  • 2018-08-13
  • 제34번째 로인절을 맞으며 10일, 주로령사업발전기금회와 연변애심어머니협회는 10명 빈곤녀성에게 인당 2000원씩 지급해 사회의 온정을 전했다.   구제금 지급식에서 주로령사업발전기금회 회장이며 주인대 상무위원회 전 부주임인 민광도는 “이번 활동의 주요 구제대상은 중병을 앓거나 장애로 불편을 겪는 년...
  • 2018-08-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4) ▩강성범(룡정)   필자 강성범   우리의 생활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지를 남긴 2017년 10월 16일, 그 날은 연길현2중(지금의 룡정고중) 1967년급 초중 3학년 3반 졸업 50주년 동창모임이 있던 날이다. 그 날의 눈물겹던 아름다운 기...
  • 2018-08-11
  • ‘나는 된다’는 오기로 살아온 지체장애자 김란화의 헌신이야기 올 음력설을 맞이해 김란화의 가정을 위문한 파음조로 서기 일여덟살 철이 들기 시작해서부터 란화는 집 근처에 있던 공공변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했다. 지체장애자라 다른 애들보다 두살 늦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그는 소학교, 초중, 고중...
  • 2018-08-10
  • (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 8월4일 화룡고급중학교일본학우회 설립대회가 동경에서 열렸다.   저녁 6시, 일본 동경의 한여름 무더위가 울고 갈 정도로 뜨거운 분위기 속에, 동경 닛뽀리 랑그웃도 호텔에서 화룡고급중학교일본학우회 설립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현재 일본각지에서 뿌리박고 삶의 터전...
  • 2018-08-07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3) ▩리동주(연길) 퇴직 후 함께 등산하면서 즐기는 세 친구(오른쪽이 필자 리동주, 중간사람이 명준친구, 왼쪽이 종식친구.) 지금은 있을 수도 또 있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지만 달리는 화물렬차를 단지 친구라는 의리 하나 때문에 무작정 멈춰세운 ‘도깨비&rsqu...
  • 2018-08-06
  • 8월 3일, “덕이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숲”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제2기 리사회는 중국조선족생태문화원 룡가미원에서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을 가지고 나눔으로 행복한 장학문화인들의 여름잔치를 치렀다. 덕림장학문화재단(준) 제2기 리사회와 연변가정연구소에서 주최한 이번 에서는 동북3성 11개 조선족고...
  • 2018-08-05
  •     (흑룡강신문=하얼빈)길림성 왕청진 쟈피구촌에 살고있는 리희태의 안해 유형숙은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즐기는 신혼생활은 깨알이 쏟아지고 행복이 넘쳤을 것이다.   두 분도 역시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만 같았다고 한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
  • 2018-08-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2) ▩김진석(연길) 필자 김진석 나는 한생을 라지오TV방송 기자 사업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수와 같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보니 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하면서 기자생활에서 있었던 가지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 2018-07-3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4 “연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죠?” “랭면, 랭면이 제일 그리운 연변음식이예요. 그리고 조선명태가 너무 맛있었어요” 아키코씨와의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먹는 음식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갓 연변에 갔을때 어느 개인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차려...
  • 2018-07-3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3 일본에서는 일부러 목장으로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소나 말. 처음에 연길에 가서 제일 놀라웠던 일이 거리에 마차와 소수레가 자동차들 속에 끼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고 아키코씨는 말한다. 현대건물이 들어서있는 거리 풍경과 양복차림의 신사들 모습을 배경으로 한 소와 말, 당나귀...
  • 2018-07-2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0) ▩렴순옥(연길) 필자 렴순옥의 외할머니 고하순 그리고 어머니 리정숙과 아버지 렴응철 1 고향이 조선 함경남도 단천군 백자동인 나의 아버지 렴응철은 4촌형 렴흥철을 따라 룡정에 와서 대성중학교를 다녔다. 이들 4촌형제는 지하당원인 나의 작은외할아...
  • 2018-07-16
  • 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춘희사장 지난해 10월 24일 밤  11시 30분경, 재미 조선족교포 김춘희씨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도라빌에 있는 식당에 3인조 흑인 무장강도가 침입하였다. 퇴근하면서 에 들린 7명의 맛사지 녀성들의 돈을 노리고 추적해 온 무장강도들이 란발한 총에 김춘희사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
  • 2018-07-11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