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76] 왁찐 사러 천리길 달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21일 00시00분    조회:129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

◈김춘식(한국)

지금은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찐을 사지 못할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찐을 사려고 동분서주했던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때는 1987년 여름이였다. 그 때 나는 흑룡강성 연수현 중화진에 살았는데 겨우 다섯살 난 아들애가 하도 강아지를 기르자고 졸라 친구 집에서 갓 젖을 뗀 강아지를 안아왔다. 물론 흔히들 말하는 똥개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하루 저녁, 마당에서 놀던 애가 쿨쩍이며 들어왔다. 웬 일이냐고 물었더니 똥을 누다 그만 강아지에게 엉덩이를 물렸다고 했다. 그래서 급급히 바지를 벗기고 보니 과연 이발자국이 두개 있었다. 보나마나 장난이 심한 아들놈이 똥을 누면서도 강아지를 괴롭힌 것이 분명했다.

우리 부부는 애 상처를 비누물로 씻어주기는 했지만 섬찍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 진에서도 개한테 물려 광견병에 전염된 사례가 있어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진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애 상처를 보던 의사가 지금 진에서는 왁찐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이튿날로 현위생방역소나 현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였다. 상처를 소독하고 소염제 주사를 한대 놔주는 것이 전부였다.

애가 걱정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이른아침에 뻐스를 타고 현성으로 나갔다. 그런데 현인민병원에도, 현위생방역소에도 왁찐이 없다고 했다. 우리를 맞은 현위생방역소 의사는 전 현을 다 뒤져도 왁찐을 찾지 못할 것이니 할빈시에 가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소 몇개를 적어주었다.

그 길로 나는 애를 업고 할빈으로 향하는 뻐스에 올랐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통해 3시간이면 족하지만 그 때는 뻐스, 기차를 갈아타야 하기에 다섯시간도 더 걸려야 했다.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할빈에 도착한 나는 시간이 급한지라 택시를 잡아타고 적어준 주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약이 없다고 했다.

네번째로 찾아간 곳은 어느 의학연구소였다. 그런데 그 의학연구소에도 왁찐은 없다고 했다.

나를 맞아준 의사는 광견병 왁찐을 생산하는 공장이 전국적으로 길림성의 장춘시와 안휘성의 합비시 두곳 밖에 없으니 애를 데리고 직접 장춘의 모 연구소를 찾아가라고 했다. 산해관 이북 즉 관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에게 물리면 모두 장춘에 가니 그곳에 가면 꼭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하도 초조해하니 의사는 개에게 물려 48시간 내에 주사를 맞으면 되니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장춘 모 연구소의 상세한 주소를 적어줬다. 생면부지인 나에게 그처럼 관심을 베풀어주는 의사가 너무 고마워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였다.

장춘역에 도착하니 새벽 세시였다. 마침 광장에 택시들이 있어 모 의학연구소를 아냐고 물었더니 광견병 주사를 맞으러 왔냐고, 방금전에도 손님을 실어다 주었으니 걱정 말고 어서 타라고 했다. 지금 쯤이면 주사를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빨리 가야 한다고 했다.

기차역에서 택시로 십여분 거리 밖에 안되는 가까운 곳이였지만 정작 도착하고 보니 이미 수백명이 두줄로 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제일 앞에 선 사람들은 이미 어제밤 열두시부터 대기중이라고 했다.

오전 8시가 돼서야 환자들을 맞기 시작하는데 앞에 선 사람들이 하도 많아 좀처럼 우리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 날 나는 애를 데리고 꼬박 열두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0여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였다. 8월의 땡볕도 무서웠지만 애를 건사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장난이 심한 아들애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내가 잠간만 눈길을 팔아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면 뒤사람에게 자리를 부탁하고는 여기저기로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 아들놈이 하도 싫어 한바탕 욕을 퍼부었더니 어린 놈이 울먹거렸다. 순간 아픈 놈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품에 안아줬더니 아들놈은 서러웠던지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런 아들놈이 불쌍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점심때가 되자 애는 또 잠이 와서 칭얼거렸다.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고맙게도 자기네가 자리를 지켜주겠으니 애를 가로수 밑에 데리고 가서 좀 재우라고 했다. 나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장사군에게서 양산을 사들고는 그늘을 찾아 앉았다. 내 옷을 펴고 자리에 눕히자 아들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고마운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끝내 12시간을 견지해 오후 세시 반이 돼 주사를 맞힐 수 있었다. 10여원 밖에 안되는 싼 약이였지만 1인당 한통으로 제한돼있었다.

애에게 광견병 왁찐 주사를 맞히기 위해 옹근 사흘 동안 천여리 길을 달렸던 그 때 그 일이 지금도 내 눈앞에 선이 떠오른다. 아들 위해 마음 졸이는 나를 위안하고 도움의 손길을 주던 의사, 간호사들이 지금도 고맙다.

아들에게 왁찐 주사를 맞히느라 하도 혼났기에 나는 집으로 오는 길로 강아지를 남에게 줘버렸다. 아들애도 그 후로는 감히 강아지를 기르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20년이 지나 또다시 강아지를 기르게 될 줄이야.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애가 친구네 집에서 애완견을 얻어온 것이였다. 퍽 내키는 것은 아니였지만 이미 성인이 된 아들애를 이래라 저래라 꾸짖는 것도 아니다 싶어 묵인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달 기르다 보니 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였다.

왁찐 때문에 고생한 나지만 이제 와서는 애완견을 기르면서도 별다른 걱정이 없다. 애완견에게 이미 예방주사를 놓은 것도 있고 또 요즘 세월에는 왁찐을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의학이 발달하니 생활이 편리해진 것도 사실이다. 왁찐 사러 천리 길을 오가는 일은 더 이상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세 언니들은 나보다 12살, 10살, 5살 많아서 나는 누구보다도 언니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랐다. 아쉬운 것은 나이 차이가 커서 한집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이 짧은 편이였고 큰 언니가 학교문을 나서면서부터는 네 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앉기도 쉽지 않았다. 큰 언니는 으로 농촌에 내려가 6년동안이나 힘든 집체호 생활...
  • 2019-07-24
  • 캐나다 조선족 협회에서는 얼마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G로즈 로더팍에서 여름 야유회를 개최하고 조선족 동포사회의 단합과 정보교류및 친목을 도모했다. 이번 행사는 김춘식 회장, 최남 수석 부회장, 최동춘 비서장을 비롯한 협회 운영진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여러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하에 비록 짧은 만...
  • 2019-07-19
  • 첫째날의 기록 ...흥분과 감격속에서 맞이한 고향 프랑카드를 들고 공항에 마중나온 친척 친우들 나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선샤인(햇빛) 스테이트(주)라 불리우는 플로리다주 수부 탈라하시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탈라하시는 시정부와 대학교중심의 중소형 행정도시에 속하며 바다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4...
  • 2019-07-19
  • 손익규,윤송죽 부부가 막내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장면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철 기자=손익규, 윤송죽 부부는 지난 1961년부터 옌타이시에 거주하면서 옌타이조선족사회의 산 증인으로 불리며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옌타이시 중조어업협정 옌타이판공실 통역, 옌타이시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 옌타이...
  • 2019-07-18
  •     - 글 / 고향련 -   2000년 4월 25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중국땅을 떠나서 일본 류학길에 올랐다.   당시 한창 류행됐던 일본류학의 붐에 떠밀려서이기도 하고 4년간 공부했던 회계전업이 나하고 맞지 않은듯 하여 다른 공부가 하고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보다 중요한건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
  • 2019-07-17
  • 90년대 초만 해도 연변에는 가정용전화기가 없는 집이 태반이였다. 그때 나에게는 간절한 바램이 하나 있었다. 집에 전화기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정든 모교이자 사업터인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에서 조선어문 교원으로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결혼한지 2년반밖에 안 되는 남편은 한국 류학길에 올랐다. 중한수교 이듬...
  • 2019-07-16
  •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시골마을을 다시 찾은 박춘금,그녀의 고향건설 다시 시작된다 연길에서 찾아온 배구애호가들이 배구를 즐기고 있다. 지난세기 80년대부터 고향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고향 떠나 룡정으로, 연길로 가기 시작하더니 점차 더 멀리 청도로, 북경으로, 상해로, 광주로 떠났고...
  • 2019-07-11
  • [일본글짓기응모]    나의 행복 - 글 / 정미화 -       "엄마,우리 온천 가요."   "온천?어느 온천?"   "군마쪽으로 가려는데...어디로 가겠어요?"   "글쎄, 구사쯔는 가보았는데, 참 좋았어..."   "이가호와 구사쯔, 어느쪽으로 갈가?"   일년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딸이 ...
  • 2019-06-24
  • 얼마전 한 로인과 그의 가족들이 통화현조선족학교를 찾아 목숨을 구해준 두 학생에게 감사기를 전했다. 5월 29일 점심, 통화현조선족학교 9학년 학생 권예령, 안미현 두 학생은 통화현 산수화성 아빠트 서쪽 교통강부근에서 60세좌우되는 녀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발견하였다. 불시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어떤 사...
  • 2019-06-24
  • 57년전에 꼬마친구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해방군 아저씨(뒤줄 좌가 김일룡, 앞줄 우가 박정숙, 중간이 최송림) 57년 후 만난 해방군 아저씨와 꼬마친구(좌로부터 배영애, 김일룡, 최송림, 박정숙) 지금으로부터 57년전인 1962년, 길림성 무송현에서 장춘에 와 병 치료를 받고 있던 해방군 전사가 있었다. 그는 조...
  • 2019-06-12
  •     요즘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곧잘 듣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려행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소리높이 대답한다.        몇달전에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5박6일의 일정으로 두바이려행을 다녀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을...
  • 2019-06-03
  • 저자는 10년의 수련 끝에 정상을 앞둔 36살 신경외과 의사다. 사회에서 인정 받고, 일류대학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다. 저자가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그는 페암말기 선고를 받는다. 그는 대학 시절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고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더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의사가 되어서 문학...
  • 2019-05-31
  • '어린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거에요' 6.1절을 맞으며 연길 청아성형외과(원장 안향화)에서는 21일, 20여명의 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성금 1만원을 연변TV "사랑으로가는 길(219회)"프로를 통해 빈곤가정의 어린이에게 전했다.   안향화 원장은 "우리 청아성형외과는 외모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 2019-05-24
  • 오늘은 나도 자랑많은 추억렬차의 기관사가 되련다.추억의 렬차를 몰고 서서히 현재를 떠나 고동을 울리며 칙칙폭폭 과거로 추억려행을 떠나련다.추억의 벌판을 지나고 추억의 고개를 넘고 추억의 굽이를 돌아 녀인들의 애환이 서린 아득히 먼 70년대 생산대의 벼모 꽂는 현장으로 가련다. 안도현 석문공사 무학대대에서 태...
  • 2019-05-23
  •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 배영애의 차세대 교육사랑 2015년 북경에서 열린《중국홰불》잡지사 창간 20주년 대회에서 발언한 배영애, 회의 기간 그는 중국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고수련의 접견을 받았다. “아무리 죄를 졌다 해도 우리들의 차세대가 아닙니까?” 이는 길림성미성년범관리교...
  • 2019-05-22
  • 김선생가사도우미쎈터 대표 김경자의 퇴직 후의 보람찬 인생이야기 김경자 프로필: 1959년 반석현 출생 반석사범학교 영어전업 전공 반석3중 영어교원, 담임교원 력임 길림조선족중학교 영어교원 2014년 길림조선족중학교에서 퇴직 ...
  • 2019-05-08
  • 최근 인터넷에서 한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두 다리가 없는 예쁜 소녀이다. 그녀는 물구나무서기, 팔굽혀펴기부터 스케이트보드, 농구, 배드민턴, 수영까지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 소녀의 이름은 웨이메이뉘(渭梅女)이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그녀의 미소에는 자신감...
  • 2019-05-03
  •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내가 18살 되던 해에 음력설을 닷새 앞두고 아버지의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한가지 감성적인 처사로 하여 받은 아버님의 첫 꾸지람이다. 하지만 그 꾸지람은 해마다 설날이 돌아올 때면 나의 머리 속에 기분좋게 떠오른다. 한것은 그 꾸지람 뒤에 아버지의 너그러운 처사가 이어져 나를 ...
  • 2019-04-22
  • 고요하던 집안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은 받는 사람이 없자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다. 복녀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느라고 처음 울린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무섭게 허둥거리며 전화기가 놓여있는 탁상쪽으로 뛰여갔다. 말이 뛰여갔지 걷는 것과 진배없었다. 복녀는 한달째 아침에 ...
  • 2019-04-19
  • 청명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에 다녀왔다. 이번 청명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잠깐 절만 올리고 급하게 산소를 떠났다. 제사는 불과 10분만에 마치고 나머지는 산 사람들의 술자리다. 저승의 사람들을 위한 제사인지 이승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포의 자리인지 올해따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호텔에서 학교 선배님 부부를 만...
  • 2019-04-09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