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곧잘 듣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려행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소리높이 대답한다.
몇달전에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5박6일의 일정으로 두바이려행을 다녀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뜻 깊은 려행이였다.
두바이려행을 계획해서부터 나는 주위의 친척, 지인들한테서 두바이를 둘러싼 정보를 귀동냥으로 열심히 얻어들었다. 중동에 위치한 두바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인공도시로 불리운다. 아랍어로 ‘메뚜기’라는 뜻을 갖고 있는 두바이는 60년 만에 중계 무역지로 발전하여 ‘중동의 뉴욕’이라 불리우고 있다.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 웅장함을 뽐내는 새하얀 아부다비그랜드모스크, 아쿠아벤처 워터파크, 분수쇼, 아쿠아리움 등 놀 거리와 볼 거리들이 유람객들의 발목을 잡으며 새로운 전설을 엮어가고 있었다.
저자 김경희(좌)
우리는 큰 기대 만큼 부푼 가슴을 안고 북경공항에서 출발하여 기나긴 8시간의 비행 끝에 밤 11시 좌우에 두바이 공항에 착륙했다. 이제 몇시간후면 두바이관광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밤잠을 설치는 것 쯤은 례사로운 일이였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저마끔 이쁘게 치장하고 두바이 거리에 나섰다. 신선한 공기와 맑고 푸른 하늘,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스러운 빌딩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이 도시가 황량한 사막 우에 세워진 기적 같은 존재라면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가?
가이드가 길가에 늘어선 푸른 가로수들을 가리키면서 일년에 이런 나무 한그루에 드는 비용이 2,500딸라 정도라는 소개에 우리 일동은 입을 딱 벌렸다. 이처럼 두바이의 모든 록화는 돈으로 이루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우리는 달리는 리무진에 앉아 창밖의 일망무제한 사막을 바라보았다. 사막 가운데로 넓다란 고속도로가 뻗어있었고 길 량쪽에 가담가담 례배당도 보였다. 거기에서 이따금 울려나오는 례배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와 다른 신앙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두바이를 ‘황금의 나라’라고 하기에 땅에 황금이 널려있는 줄로 착각했는데 세계적으로 황금무역의 40%가 두바이를 거쳐 이뤄지기에 이런 미명을 얻게 되였다고 한다.
려행의 마지막 코스는 역시 녀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세점 쇼핑이였다. 세계 최고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인 만큼 스케일이 남달랐다. 품위 있는 명품시계, 명품장식품, 명품가방, 명품패션 등이 얼핏 들어도 뒤로 벌렁 자빠질 것 같은 고가의 상품들이 눈뿌리를 빼고 있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즐거웠다. 동행한 친구들이 서로 취향이 달랐는지라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각자 쇼핑하기로 하고 3시간후에 중국국수집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여졌다.
우리 팀은 쇼핑보다는 거리를 오고 가는 현지인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바이의 남성들은 ‘칸두라(Kandoura)’ 또는 ‘디시다샤(Dishdasha)’라고 하는 발목까지 덮는 품이 너르고 하얀 면으로 된 옷을 입고 머리에는 두건 ‘구트라(ghutra)’를 쓴 후 검은색 끈으로 고정했다. 녀성들은 서양식 복장이나 소매와 기장이 긴 ‘잘라베야(jalabeya)’라는 원피스를 입고 그 우에 긴 검은색 겉옷 ‘아바야(abaya)’를 걸쳐 앞모습을 가리며 검은색 스카프 ‘샤일라(shayla)’를 머리에 둘렀다. 텔레비죤에서만 보아왔던 패션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바로 그 때, 흰옷을 입고 머리에 줄무늬가 간 두건을 두르고 왼쪽 호주머니에 만년필을 꽂은 부자인 듯한 남성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 뒤로 세명의 부인과 함께 숱한 애들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 한가족 같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였던지라 이구동성으로 “와, 부인이 세명이구나.”라고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중동지역의 나라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니 실로 경이로웠다.
우리는 두바이 당지인들을 구경하느라 배고픔도 잊었다.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나서야 우리 팀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엘레베터를 타고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엘레베터는 보이지 않았다. 영어를 모르는 데다 길까지 잃어버렸으니 바다에서 길 잃은 배처럼 막연했다.
그 때 마침 복무원으로 짐작되는 남성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어 우르르 달려가 손시늉, 발시늉 다해가며 엘레베터 있는 곳을 물었다. 어떤 친구는 입으로 “땐티, 땐티”를 웨치는 동시에 두 손을 올리고 내리고 하며 나름 엘레베터 모양을 보여주려고 모지름을 써봤지만 상대는 멍한 표정으로 서있기만 했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는 답답해서 “치킨, 치킨” 하면서 두 팔을 벌려 닭이 나는 시늉도 해보았다. 우리가 찾는 음식점 옆에 바로 치킨집이 있었던지라 친구가 급한 김에 닭시늉을 했던 것이다. 옆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우리는 너무 우스워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이를 어쩌나?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머리만 설레설레 젓는 남자를 보던 한 친구가 갑자기 “엘레베터―”라고 콩글리시(한국식 영어)로 또박또박 높이 웨쳤다. 그제서야 그 남성도 알겠다는듯 환하게 웃으며 우리들을 엘레베터까지 안내해주었다. 발음이야 어떻든 알아들었으면 그만이였다. 다른 팀과 합류한 뒤 방금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줬더니 모두들 배를 끌어안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하나둘 모여서 려행의 묘미와 즐거움이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시야도 넓히고 우정도 쌓을 수 있는 려행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닌가 싶다.
<로년세계>/사진 글 김경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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