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본생활수기9]일본은 내 인생교과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4월10일 00시00분    조회:166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일본에 온 지가 어느덧 18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번이나 변할 정도의 기나긴 세월이 눈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일본은 나에게 희망도, 행복도, 저주도, 슬픔도 배워준 희로애락의 인생교과서이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웅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일본류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대기업에서 비서직을 담당하면서 나름 월급도 잘 받았다. 그러던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것은 그 때 사귀던 남자친구 때문이였다.

뇌출혈로 앓고 계시는 어머니 때문에 일본어 전공을 했지만 일본류학 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일본에 보내달라는 남자친구의 부탁을 받고 아버지는 없는 돈을 모아서 일본수속을 해주셨고 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2000년 10월 3일,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고 싶은 전업공부도 좀더 하고 돈도 더 많이 벌어서 엄마의 병치료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황홀한 꿈을 꾸면서 나는 일본땅을 밟았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 암담한 나날들이였다. 학교, 알바, 집 사이에서 매일매일 삼각이동을 하는 무미건조하고 여유 없는 류학생활은 내 숨통을 끊어버릴 것 같았다. 때론 내가 대학을 나오고도 왜 불고기집에서 기름연기를 뒤집어쓰면서 알바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될  때도 있었다.

돈을 빨리 모아서 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름찬 집세, 기본생활비,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었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매일 10시간 넘게 뛰여다니는 알바로 다리는 끊어지는 것 같았고 온몸에 몰려드는 피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

무엇보다도 앞길이 막막하였다. 새겨왔던 목표와는 갈수록 멀어지고 꾸어왔던 소중한 꿈마저 하루하루 색바래져가는 것에 나는 더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였지만 어쩌면 일본생활이 정말 싫었고 손에 쥔 돈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쪼들리는 생활에 멘탈도 완전히 망가져 친구 하고도 니 탓 내 탓 티각태각 싸우기까지 하다가 결국은 일본까지 따라왔던 남자친구와도  헤여지고 말았다 .

나는 점차 너무나 부족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무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신성하게 주장해오던 내 사랑이며 정이며 모든 것이 현실에 부딪치는 곤난 앞에서는 그렇게 가볍고 무력한 것이였다. 물불을 가리지 않던 젊음의 충동, 쭉 잘난 척해왔던 그 옛날의 오기와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 번뇌에 사로잡혀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며 지새운 밤도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무슨 일이나 잠간 시간을 가지고 분석해보며 무슨 일이든 한번쯤 다시 생각을 되풀이해보는 조금은 성숙된 습관이 생겼다.

대학교 때 일본어를 전공한 나는 일본어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냈다. 나는 성적표를 들고 매일이다 싶이 학원장을 찾아가서 회사에 취직시켜달라고 졸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여 기회가 생겼다.

언어학원을 졸업한 나는 학교의 추천으로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자그마한 회사의 무역담당으로 취직을 하게 되였다.

일본 속담에 ‘돌우에도 3년’이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배우려면 경험과 교훈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니 일본에서의 회사생활을 3년은 꼭 견지해보라고 하시던 학원장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생활을 쭉 16년이나 견지해왔다.

회사의 유일한 외국인이였던 나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는 일본인 친구가 생겼고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나를 위로하여 회사의 모든 일본인 직원들이 묵도를 해주면서 슬픔의 눈물을 함께 흘렸었다. 집에 맛나는 음식을 차려놓고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면서 같이 울어주시던 이즈미상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말수가 적고 일에서는 엄격하시지만 때론 《중국인민》이라는 잡지, 일본 조선족에 관한 뉴스가 실린 신문기사가 있으면 빨간 필로 줄까지 그어주시면서 책상 우에 챙겨주시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회장할아버지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받은 크고 작은 감동이 너무 많았다. 언젠가는 누군가 나한테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고 싶고 내가 가진 걸 베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살면서 돈이 필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으며 돈보다 중요한 것도 너무 많다는것을 배웠다. 사람은 최악의 환경에 부딪쳤을 때에야 진실을 보게 되고 더욱 더 분발하게 되는 법이며 그렇게 분발하는 시각이 제일 눈부시고 멋지다고 느껴진다.

출근을 하게 되니 학생시절과는 달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고 그렇게 되니 돈도 차곡차곡 모여지고 여유도 많이 생겼다. 하여 2002년부터 나는 일본에 있는 조선족사회와 접촉을 하게 되였고 ‘천지협회’와 ‘쉼터’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 , 외로움을 덜게 되였다.

커뮤니티 사이트 ‘쉼터’라는 공간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지금은 보배 같은 아들 둘(장남 9살, 차남 5살)을 가진 엄마가 되였다.

그러던 2011년 3월 11일, 우리는 일본 동북대지진을 겪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잔인하게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 날 동경은 모든 교통이 다 마비되여 뻐스나 전차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이동하는, 태여나서 처음 겪는 무서운 광경이였다.

다행히 회사와 집이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어서 나는 애를 마중하여 인차 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헌데 남편은 집에 있는 3살짜리 아들과 내가 걱정되여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27키로나 되는 거리를 8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위급하고 무섭고 불안할 때일수록 가족이 제일 큰 힘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내 가족이라는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였다.

김경화씨의 행복한 가정

그 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핵복사문제 때문에 주위에는 짐을 챙겨서 일본을 잠시 떠나는 친구, 아예 모든 걸 접고 영영 일본을 떠나 귀국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불안하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이즈미상으로부터 메일이 날아왔다,

“애들은 괜찮느냐? 부모님들 많이 걱정하시겠는데 잠간이라도 중국에 들어갔다가 안정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꼭 가족건강 잘 챙기고 몸 조심하거라…”

그 한통의 메일은 나에게 더없이 큰 힘을 주었고 사태의 위험성을 침착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주었다. 덕분에 떠도는 무서운 소문과 류언비어들도 잘 이겨내면서 꿋꿋이 일본에서의 내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큰 포부가 있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멋진 인생도 좋지만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 그 시간들을 나만의 설계도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아닐가고 나름 생각해본다.

돈에 큰 욕심도 없고 사업에서 성공한 것도 없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지만 오늘도 일본에서 내 가족에 , 직장에 , 육아에 열심하고 일본 생활을 맘껏 즐기면서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재일조선족 김경화

원고기획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 도꾜에서 녀성전문병원 을 오픈한 리향란씨 리향란 주치의 지난 4월 3일, 비지니스거리로 번화한 일본 도꾜도의 킨시쵸(東京都錦糸町)역전 앞 상업빌딩안에 녀성전문병원 이 오픈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조선족 리향란씨가 주치의를 맡고 있으며 일본에서 유명한 병원인 쥰텐도대학(順天堂大学)병원과 제휴진료를 진...
  • 2019-04-09
  •        핑크색 꽃망울이 아름다움을 터뜨리는 벚꽃축제의 계절, 일본의 조선족들한테도 오하나미는 하나의 놓칠 수 없는 이벤트로 되여있다.   4월7일, 청명절과 오하나미의 계절을 맞으면서 간사이조선족여성회및 경영자협회에서는 오사카 근교의信貴山のどか村공원에서 회원및 가족 50여명이 함께...
  • 2019-04-08
  • (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 30일, 주말 날씨가 꽃샘추위로 제법 쌀쌀한 가운데 동경의 벚꽃 명소는 개화기를 맞이한 벚꽃들이 만개하여 상춘객과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다.   이맘때가 되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각 지역별로 개화(开花)와 만개(满开) 시기를 예상하며 련일 매체에서도 특집을 만들어 대...
  • 2019-04-04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보람이 있다”           (흑룡강신문=하얼빈)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면서 평생 아낌없이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온 길림성 연길시 공원가두 원월사회구역의 90세 고령의 김순자 로인은 몸이 불편하여 바깥출입이 힘든 지금도 누군가를...
  • 2019-03-28
  • 1급지체장애인 서순애 행복 찾아 수십성상—로동자와 제비 그리고 ‘붉은태양광장’ 서순애, 파가이주구에서 로동자들을 위해 격정을 불태우던 그때를 그리며. 로동자들을 형제처럼 생각하고 화룡시에서는 6,7년전에 순애네가 살던 춘화촌을 포함한 동부 교외 부지를 개발해‘붉은태양광장&...
  • 2019-03-27
  • 1급지체장애인 서순애 행복 찾아 수십성상—“무엇이든 내 두손으로” 손수 만든‘도르래판'으로  움직이는 서순애(56세),안방에서 차를 내오는 중이다. 마을의 ‘꾀꼴새’ 길림성 화룡시 룡성향 춘화촌(지금의 흥륭촌)에서 태여난 서순애(56세)는 척수성마비 1급지체장...
  • 2019-03-26
  •  -1급지체장애인 서순애 행복 찾아 수십성상--효심, 애심의 천사   효비를 세우다   서순애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상으로 조합해낸 부모의 합영 사진. 순애는 아버지가 돌아가는 그날까지 순애를 등에 업고 삶의 리치를 하나씩 깨우쳐 주신 정경을 못잊어하며 “바다보다 깊은 아버지 그 사...
  • 2019-03-26
  • 배급 타는 로동자 되고 싶어 무작정 지신록장으로 떠난 그 날 얼마전에 오랜 친구인 영호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영호와는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사이도 아닌데 생전에 자주 만나보지 못하고 또 가깝게 우정을 나누지 못한 일이 저으기 마음에 걸린다. 문득 지난날 영호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이 머리 속에 새삼스...
  • 2019-03-25
  • [수기4] 보따리장사하면서 만난 그 때 그 사람들 1988년도 겨울,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 옷 장사를 해 어려운 집살림에 보탬하려고 무작정 연길로 떠났다. 연길 옷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샤쯔와 속내의를 도매가격으로 구매한 후 지방에 가 팔았는데 생각밖으로 불티 나게 팔렸다. 계산해보니 본전과 교통비용 등을 제하고도...
  • 2019-03-22
  • 매일과 같이 한국 경기도 수원시 영화동 장안공원의 한 휴식공간, 마치 전문 제공이나 받은듯 영화동에 거주하는 부분 조선족로인들이 오후 2시―5시 사이에 이곳에 모여서는 이야기꽃을 피워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10명 좌우로 모이는데 많이 찾아들 때면 20여명 모인다. 거개가 74세에서 88세로할머니들이며 연변을 비롯...
  • 2019-03-20
  • 대형계렬기획보도- 백성이야기(93) — 어머니의 생전 소원을 풀어드리려는 윤영학로인의 집착 윤영학의 어머니 요즘《길림신문》일본특파원 리홍매의 일본 관련 기사를 애독해오던 장춘의 윤영학(85세)은 문득《길림신문》을 통해 그의 어머니(전생금, 1893년 생)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던 ‘일본딸’을 찾아...
  • 2019-03-04
  • 내가 힘들고 고통속에서 헤매고있을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비슷한 처지나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게 솔직한 '인지상정'일것이다. 이른바 '동병상련', 저러고도 사는데 혹은 나와 비슷하다는 련민으로 뜻밖에도 내삶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는다. '사회적 존재'로 태여나고...
  • 2019-02-25
  • -리화-   성인자녀와 백발부모의 사이에 끼여있는 50, 60대. 백세시대 절반을 접고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의 세대좌표 역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중간 그 자리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온전히 나 자신 뿐만이 아닌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어느 자식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여야 하는지. ...
  • 2019-02-19
  • 2월 4일 그믐날 저녁, 연길시 진학가두 남양위 21조에서 살고 있는 리홍하네 집은 그날따라 북적거렸다. 6명 독거로인이 한자리에 모여 그믐날을 함께 쇠기로 한 것이다. 객실에 들어서니 남양사회구역 왕점화 서기가 로인들에게 설 선물로 빅 스카프(大围巾)를 드렸다. 선물을 받은 로인들은 어린애마냥 기뻐하며 나풀춤을...
  • 2019-02-14
  • - 글 / 현성해 -     예술학교시절 강신자교수님과 함께   1. 꿈많은 어린시절   아버지께서는 넓은 바다의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나에게 성해(星海)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 간절한 기대만큼이나 나는 어릴적부터 다재다능한 소녀로 성장해왔다. 타고난 고운 목소리로 동네에서는...
  • 2019-02-13
  • 구역 로인협회 회원들이 장수로인들에게 축수하고 있다. 2월 1일 오전, 연길시 신흥가 민창사회구역에서는 사회구역주민들의 양로자질을 높이고 로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하여 관할구역 7명 장수로인들에게 설맞이 장수연을 마련해주었다. 사회구역 일군들이 장수로인들에게 붉은 꽃을 달아드리고 ...
  • 2019-02-03
  • 꽃꽂이와 설계에 대해 설명하는 박금자녀성. 요즘 꽃가게를 통한 꽃문화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매양 그런 꽃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나의 머리속엔 조선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가 떠오른다. “꽃 사세요, 꽃사세요.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갈 고운…앓는 엄마...
  • 2019-02-03
  • 84세 할머니 노래 800여수 부를 수 있고 속담 550개 기억 290매의 그림을 그려서 13권의 화책 만들어 100세시대 70세~80세는 중년이요. 80세부터 100세가 로년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봐도 수명은 전보다 더 길어지고 녀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 반면 그것도 시름시름 앓으면서 오래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 하나 달...
  • 2019-02-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5) ▩김숙자(길림) 동아리와 함께 등산하면서(중간줄 왼쪽 두번째가 필자)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을 연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쭉 살아오면서 많은 연분을 맺어왔는데 그 가운데서 글로 맺은 것이 바로 내가 애독하는 조선문으로 된 《길림신문》과의 연분이...
  • 2019-01-25
‹처음  이전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