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본생활수기9]일본은 내 인생교과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4월10일 00시00분    조회:163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일본에 온 지가 어느덧 18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번이나 변할 정도의 기나긴 세월이 눈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일본은 나에게 희망도, 행복도, 저주도, 슬픔도 배워준 희로애락의 인생교과서이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웅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일본류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대기업에서 비서직을 담당하면서 나름 월급도 잘 받았다. 그러던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것은 그 때 사귀던 남자친구 때문이였다.

뇌출혈로 앓고 계시는 어머니 때문에 일본어 전공을 했지만 일본류학 같은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일본에 보내달라는 남자친구의 부탁을 받고 아버지는 없는 돈을 모아서 일본수속을 해주셨고 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2000년 10월 3일,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고 싶은 전업공부도 좀더 하고 돈도 더 많이 벌어서 엄마의 병치료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는 황홀한 꿈을 꾸면서 나는 일본땅을 밟았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 암담한 나날들이였다. 학교, 알바, 집 사이에서 매일매일 삼각이동을 하는 무미건조하고 여유 없는 류학생활은 내 숨통을 끊어버릴 것 같았다. 때론 내가 대학을 나오고도 왜 불고기집에서 기름연기를 뒤집어쓰면서 알바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될  때도 있었다.

돈을 빨리 모아서 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름찬 집세, 기본생활비,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었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매일 10시간 넘게 뛰여다니는 알바로 다리는 끊어지는 것 같았고 온몸에 몰려드는 피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

무엇보다도 앞길이 막막하였다. 새겨왔던 목표와는 갈수록 멀어지고 꾸어왔던 소중한 꿈마저 하루하루 색바래져가는 것에 나는 더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였지만 어쩌면 일본생활이 정말 싫었고 손에 쥔 돈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쪼들리는 생활에 멘탈도 완전히 망가져 친구 하고도 니 탓 내 탓 티각태각 싸우기까지 하다가 결국은 일본까지 따라왔던 남자친구와도  헤여지고 말았다 .

나는 점차 너무나 부족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무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신성하게 주장해오던 내 사랑이며 정이며 모든 것이 현실에 부딪치는 곤난 앞에서는 그렇게 가볍고 무력한 것이였다. 물불을 가리지 않던 젊음의 충동, 쭉 잘난 척해왔던 그 옛날의 오기와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 번뇌에 사로잡혀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며 지새운 밤도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무슨 일이나 잠간 시간을 가지고 분석해보며 무슨 일이든 한번쯤 다시 생각을 되풀이해보는 조금은 성숙된 습관이 생겼다.

대학교 때 일본어를 전공한 나는 일본어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따냈다. 나는 성적표를 들고 매일이다 싶이 학원장을 찾아가서 회사에 취직시켜달라고 졸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여 기회가 생겼다.

언어학원을 졸업한 나는 학교의 추천으로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자그마한 회사의 무역담당으로 취직을 하게 되였다.

일본 속담에 ‘돌우에도 3년’이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배우려면 경험과 교훈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니 일본에서의 회사생활을 3년은 꼭 견지해보라고 하시던 학원장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회사생활을 쭉 16년이나 견지해왔다.

회사의 유일한 외국인이였던 나는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는 일본인 친구가 생겼고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나를 위로하여 회사의 모든 일본인 직원들이 묵도를 해주면서 슬픔의 눈물을 함께 흘렸었다. 집에 맛나는 음식을 차려놓고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면서 같이 울어주시던 이즈미상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말수가 적고 일에서는 엄격하시지만 때론 《중국인민》이라는 잡지, 일본 조선족에 관한 뉴스가 실린 신문기사가 있으면 빨간 필로 줄까지 그어주시면서 책상 우에 챙겨주시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회장할아버지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받은 크고 작은 감동이 너무 많았다. 언젠가는 누군가 나한테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고 싶고 내가 가진 걸 베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살면서 돈이 필요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으며 돈보다 중요한 것도 너무 많다는것을 배웠다. 사람은 최악의 환경에 부딪쳤을 때에야 진실을 보게 되고 더욱 더 분발하게 되는 법이며 그렇게 분발하는 시각이 제일 눈부시고 멋지다고 느껴진다.

출근을 하게 되니 학생시절과는 달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고 그렇게 되니 돈도 차곡차곡 모여지고 여유도 많이 생겼다. 하여 2002년부터 나는 일본에 있는 조선족사회와 접촉을 하게 되였고 ‘천지협회’와 ‘쉼터’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 , 외로움을 덜게 되였다.

커뮤니티 사이트 ‘쉼터’라는 공간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지금은 보배 같은 아들 둘(장남 9살, 차남 5살)을 가진 엄마가 되였다.

그러던 2011년 3월 11일, 우리는 일본 동북대지진을 겪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잔인하게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 날 동경은 모든 교통이 다 마비되여 뻐스나 전차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이동하는, 태여나서 처음 겪는 무서운 광경이였다.

다행히 회사와 집이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어서 나는 애를 마중하여 인차 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헌데 남편은 집에 있는 3살짜리 아들과 내가 걱정되여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27키로나 되는 거리를 8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위급하고 무섭고 불안할 때일수록 가족이 제일 큰 힘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내 가족이라는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였다.

김경화씨의 행복한 가정

그 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핵복사문제 때문에 주위에는 짐을 챙겨서 일본을 잠시 떠나는 친구, 아예 모든 걸 접고 영영 일본을 떠나 귀국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불안하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때 이즈미상으로부터 메일이 날아왔다,

“애들은 괜찮느냐? 부모님들 많이 걱정하시겠는데 잠간이라도 중국에 들어갔다가 안정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꼭 가족건강 잘 챙기고 몸 조심하거라…”

그 한통의 메일은 나에게 더없이 큰 힘을 주었고 사태의 위험성을 침착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주었다. 덕분에 떠도는 무서운 소문과 류언비어들도 잘 이겨내면서 꿋꿋이 일본에서의 내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큰 포부가 있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멋진 인생도 좋지만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 그 시간들을 나만의 설계도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아닐가고 나름 생각해본다.

돈에 큰 욕심도 없고 사업에서 성공한 것도 없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지만 오늘도 일본에서 내 가족에 , 직장에 , 육아에 열심하고 일본 생활을 맘껏 즐기면서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재일조선족 김경화

원고기획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자료사진 서로 수십년을 그리워하던 남녀가 끝내 다시 만나 결혼식을 올려 화제다. 현지시간으로 12일, 영국 BBC 방송이 65년만에 부부의 연을 맺게된 이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영국 더비셔주에 살던 86세 데이비 목스씨와 82세 헬렌 안드레씨는 1951년에 결혼을 약속했던 ...
  • 2016-11-14
  • [백성이야기39] —흑룡강성 시골출신 현진성, 김길순 부부의 도시진출이야기 안해(김길순)가 불어주는 멋진 쌕스폰연주에 남편(현진성)이 멋진 노래가락 뽑는다/김성걸기자 현진성(58세), 김길순(57세) 부부의 요즘 일상은 “이번에는 어느 곳에 유람을 떠나볼가” 하는 행복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 2016-11-12
  • ‘carrot(당근)’이 ‘karat(금의 순도 단위)’을 돌려주러 나타났다. 밭일 도중 잃어버렸던 결혼반지가 3년 만에 당근에 끼인 채로 주인 앞에 나타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독일 빌트지 등 외신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바트 뮌스터라이펠에 사는 82세 노인...
  • 2016-11-09
  •   11월 4일 오전,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서 진행된 “효심소녀”-최영진학생을 위한 의연금모으기행사 현장. -록원구조선족소학교 사생, 학부모들 2만6천여원 의연 -조선족 네티즌 근 5천원 의연 장춘시의 “식물인”조선족남편을 5년째 극진히 돌보는 한족안해 장방의 사연이 《...
  • 2016-11-07
  • “이 시대의 여론감독의 역할, 기자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것, 그것이 우리 기자들의 의무이며 일하는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1일, 연변라지오TV방송국 뉴스쎈터 사무실에서 만...
  • 2016-11-04
  • 척추를 다쳐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던 25세 신부는 결혼식장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난 8월 미국 ABC 뉴스는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끝없는 노력을 통해 결혼식장에서 두 발로 선 신부의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 조지아주 마리에타에 사는 재키 곤처(Jaquie Goncher)는 지난 2008년 17살 때 친구 집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 2016-11-02
  • 헤이스 "10년 고민…미국에는 죄책감"…"한점도 팔지 말아달라"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외국인으로부터 기증받은 미술품으로는 최대 규모인 미국 텍사스 주(州) 헤이스 부부의 컬렉션은 왜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을까.  미국 일간 뉴욕타...
  • 2016-10-29
  • 지난 10월 12일, 연변대학 로간부처, 연변대학 로과학기술사업자협회, 연변로교수협회 책임자들과 김수철교수의 학우대표들이 김수철교수(92세)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제4기 연변농학원 졸업생일동은 “福如東海 壽比南山”“21세기‘리시진’김수철교수에게 드립니다”는 글문을 새긴...
  • 2016-10-28
  • [연해지역 조선족 인물탐방] 광주2 - 만년이 즐거운 “광주시 조선족로인협회” 개혁개방 이후 동북삼성의 조선족 창업자들이 연해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이들을 동반한 조선족 로인군체도 연해지역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광동성의 경우 6-700여명 조선족 로인들이 거주하면서 심수, 동관, 혜주, 광주 등...
  • 2016-10-21
  • '미각'양꼬치 서용규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나춘봉 서울특파원 = '미각'양꼬치 서용규 사장 한국에서 ‘친구간에 동업과 금전거래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금기사항을 깨고 친구들끼리 서로 도우며 아름다운 성공신화를 써가는 이들이 있다. 흑룡강성 경안현 서광촌에서 함께 자란 &lsq...
  • 2016-10-19
  • 하루밤 부부라도 만리장성 쌓는다 -“식물인”조선족남편에게 정성을 다하는 한족안해 장방의 이야기 오전 11시반이다. 장춘시 조양교부근의 모 보험회사 문어구, 많이 허술해보이지만 그나마 깔끔한 옷차림을 한 40대 초반의 한 녀인이 문을 나서더니 자전거에 씨잉 올라탄다. 씨엉씨엉 페달을 밟아 부리나케 록...
  • 2016-10-18
  •   14일,연변성보장학재단은 연변대학에서 2016년도 연변성보장학금발급식을 가지고 연변대학의 20명 연구생에게 인당 4000원씩,19명의 본과생에게 인당 3000원씩,도합 39명의 연구생,본과생에게 13만 7000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날 장학금을 받아안은 연변대학 약학원 조방일학생은“성보장학금은 우리에게 ...
  • 2016-10-18
  • 칭다오민족사회 백혈병 어린이 구조에 발벗고 나서 한때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승리양(오른쪽)   (흑룡강신문=칭다오) 장학규 특약기자=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은 어느새 말라버리고 냉랭한 금전관계로 변질되고 있는 가운데 칭다오 민족사회 전체가 떨쳐나서서 백혈병에 걸린 조선족...
  • 2016-10-17
  • 조선족 가정에서 출생, 한국에 와서 완전한 이방인 돼 조선족 형제의 꿈을 찾아가는 여행에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래와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찾은 수많은 조선족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길 원하며, 그들을 향한 관심이 표현되기를 또한 소원합니다. 다음은 노숙인 사역을 하며...
  • 2016-10-14
  • [이데일리 e뉴스 김민정 기자] 3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치솟는 집값과 물가 등의 이유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일컫는 신조어다. 요즘은 그 이상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청년층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인구 1000명당 혼인 ...
  • 2016-10-13
  •   본사소식 10월 13일,  83세의 원 목단강군구정위 김강희장군이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에 사랑의 성금 5천원을 또 기부했다.    김강희장군은 리직후 심양시내 여러 중소학교와 대학들에 다니며 혁명전통보고를 해주는것이 중요한 일과로 되여왔다 그런데 얼마전 오랜 지병이 도...
  • 2016-10-13
  • 연길시 수상시장 부근에 있는 카페 “인가비(寅咖啡)”는 얼핏 보면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지만 북적북적한 거리 한켠에서 아담한 디자인을 갖추고 하루종일 그윽한 커피향을 퍼뜨린다. 녀자친...
  • 2016-10-12
  • 자기소개를 하고있는 선남선녀들 10월 5일 길림시에서 해내외 조선족 싱글남녀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상해, 북경, 대련, 장춘, 서울 등 해내외 각지의 조선족 청년남녀 30여명이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행사장을 찾은 최용걸(32세)씨, 세살우 다섯살아래 현숙한 조선족신부감을 찾는것이...
  • 2016-10-08
  • 수십년만에 닦쳐온 이번 홍수는 우리 연변지구에 크나큰 재앙을 가져왔슴니다. 이제 곧 한달만 지나면 수확을 앞눈 양수진 논벌은 하루밤사이에 진흙탕물에 매몰되고 병풍처럼 둘러싸여있던 옥수수밭은 맥없이 쓰러져있습니다. 풍비박산된 집앞에서 령혼없이 서있는 농민들보니 넘넘 가슴아파서 목이 멥니다. 인정이 점점 ...
  • 2016-09-30
  • 심양농업대학교 수리학원 토목공정전업 3학년 김성룡씨의 이야기  아버지를 업고 대학교에 다니는 한 조선족학생이 있다. 그가 바로 심양농업대학교 수리학원 토목공정전업 3학년생 김성룡씨다. 고향이 무순시 청원현 남산성진인 김성룡씨는 소학시절에 부모가 리혼해 줄곧 아버지와 의지해 생활해왔다. 그가 6학년에...
  • 2016-09-29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