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추모글]별찌는 짧은 순간이여도 밝게 빛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21일 00시00분    조회:234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지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여기며 우리 주변을 빛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강철수(康哲洙)씨의 아름다운 생을 기리는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5월 18일,길림성 연길시장의관 추모광장에서는 불우이웃을 돕는 것을 자신의 천직으로 간직하고 삶을 빛내다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난 후사모 회원 고 강철수씨의 추도식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1978년생인 강철수씨는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 태생으로서 지난 5월 10일, 한국의 한 작업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의외의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진 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당일 39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 강철수씨(오른쪽)가 생전에 후사모 리경호 초대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는 모습

이날 추도식에는 고 강철수씨의 가족, 지인 그리고 후사모(연변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회원들과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일부 인사들도 참석해 비통을 함께 하였다.

연변후사모 고문(초대회장) 리경호가 사회한 추도식에서 후사모 회장 김태국은 추도사를 통해 《고 강철수씨한테도 생전에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었는데 바로 집 한채를 장만하고 사랑하는 녀자를 만나 장가 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였다》며 《그러나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돈은 모아지다가도 누군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전부 기부로 이어져 남는 것이 없었다”고 감동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강철수씨는 생활조건이 훌륭한 집안에서 태여나지 못했다.

세상물정를 알기 시작하면서 주위를 비교하고 자신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두부방을 차리고 후사모 애심봉사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는 집도 그에게는 사치였고 남들은 모두 건강한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그에게는  자기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장애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것이다.

정부의 혜택으로 시골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들 가족의 현실이였고 그런 일상은 언제면 끝날지 모르는 밑도 끝도 없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였다.

경제난으로 어렵게 초중을 겨우 졸업하고 그는 1995년 영광스럽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대련 81379부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부대생활은 그에게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당과 정부,그리고 사회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굳센 의지와 열정을 다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였다.

부대에서 그는 우수전사로 퇀급 상장도 수차 받았고 참군 2년 만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99년 강철수씨는 3년간의 군부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여 그는 이제 더 이상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양로원에서 남편을 잃고 뇌출혈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빈손으로 연길로 왔다.

고 강철수씨(뒤줄 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후 남긴 사진

세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날마다 그는 몸의 기운이 다 빠지도록 악착스레 일했고 그의 노력은 주위에서 찬사와 함께 따스한 도움의 손길로 찾아왔다.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 목욕을 전담해주던 조양천아줌마, 늘 과일을 가져다주던 시장아줌마, 엄마가 좋아하는 순대를 대접하라고 가져온 마음씨 고운 순대아줌마, 늘 곱돌장을 끓여주던 70세 고령의 할머니와 김밥을 두둑하게 담아주시던 김밥아줌마,체력로동을 하는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고기국을 자주 가져다주던 오주시장의 소고기국집 아줌마, 항상 뜨근한 아침상을 차려주던 주인집 아줌마, 그외에도 주변의 마음씨 고운 분들의 따스한 손길로 인해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항상 가난과 역경으로 남보다 못하고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는 꼭 하나만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그는 마음의 부자였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해 당과 정부,그리고 고마운 이웃들의 은혜와 은정에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가짐과 굳센 의지의 표현이였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마음 한가운데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애심의 마음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2002년부터 강철수와 동생 강철봉씨 형제는 연길서시장에서 삼륜차부로 힘들게 일하면서 매일 1원씩 매달 30원의 돈을 무명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들의 선행은 무려 10여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송금통지서를 단서로 고마운 주인공 강철수, 강철봉씨를 찾는 데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그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였고 연변에서는 매일 1원씩 성금을 모아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를 후원하는 열풍이 일었다. 그 후 그의 기부는 쉼없이 이어졌다. 불우한 학생들을 지원하라고 후사모에 2만원(인민페),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에 만원, 백혈병을 앓는 김은정학생에게 5천원, 골수암으로 앓는 공원소학교 김가영학생에게도 만원, 사랑의 집에도 수천원 어치의 육류를 보냈고 화룡고아원에 한화 30만원,부모 없는 어린 손자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에게 5천원…수없이 보낸 기부는 이들에게 생의 용기와 힘이 되였다.

연변후사모 리경호 회장에 따르면 강철수는 생전에 몸이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시 후사모 위챗을 통해서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들으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열심히 창업해서 번 돈이나 외국에 나가 힘들게 번 돈이라도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맨먼저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생전에 어려움에 처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했는지 일절 성함을 밝히지 않은 원인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정확한 수자를 알 수가 없다.

2016년 강철수씨는 창업으로 연길지질6소 부근에 두부방을 차렸다. 그는 매일 이른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열심히 두부를 만들어서 무상으로 사회봉사를 하였다.

고 강철수씨가 생전에 두부방에서 고아원에 지원할 두부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룡정시 도촌자애원, 동불사진새별관, 연길희망복지원…이외에도 많은 고아원들은 그의 기부대상이였다.

추호도 리기적이지 않고 오로지 수많은 불우이웃들을 위해 성심성의로 애심을 베풀며 뛰였다.

강철수씨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돌아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비통한 눈물을 쏟았다.

연변희망복지원 유영애 부원장은 지난 5월 10일, 강철수씨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며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철수씨가 두부방 경영을 접고 2017년 12월, 로무로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류영애 부원장을 만나 《한국에서 이번에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집도 마련하고 좋은 녀자를 만나 장가도 들겠다며 기뻐하던 일이 어제 갔은데...》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철수씨는 생전에 다른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종종 희망복지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과일과 맛 있는 음식을 사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부방을 차린 후에는 늘 바쁜 시간에도 금방 앗은 따스한 두부를 복지원에 가져왔다.

고 강철수씨 추도식에 참가해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

복지원의 애들은 강철수씨를 ‘두부삼촌’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속심을 나누군 하였다.  애들이 축구구경을 하고 싶어하자 연변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기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는 축구구경도 함께 다니며 매우 친근하게 보냈다.

늘 아이들에게 자신도 어릴 적에 복지원에서 자랐다며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여 꼭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류영애 부원장이 대독한 희망복지원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와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전하는 마디마디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리미화학생은 편지에서 《우리가 그냥 철수삼촌을 허물없이 ‘두부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게 돼서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두부삼촌’은 힘들게 두부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자주 두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늘은 참 무정하네요. 왜 착한 삼촌이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게 하는지요. 비록 삼촌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삼촌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우리는 삼촌의 말씀을 꼭 명심하고 삼촌의 뒤를 따라 앞으로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리복자씨는 눈물범벅이 되여 준비한 원고를 읽다가 도중에 비통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또 한번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2015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서 리복자씨의 딸 김은정이가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천문수자와도 같은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후였다.

며칠 후 프로책임자로부터 당시 한국에서 일하던 강철수란 분이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인민페 5천원을 송금해왔다며 돈을 리복자씨한테 전달해왔다. 낯모를 분이 보내온 돈을 받고 그녀는 당시 매우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 후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모습

힘들게 피땀으로 번 돈을 이렇게 선뜻 낯모를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내밀 수 있다는 그 마음과 용기에 너무 존경스러웠고 미안했다.

그 후에야 강철수씨가 어린 시절부터 불구자 부모의 사랑 없이 어린 동생을 거느리고 매우 어렵게 생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여 매우 감동되였다고 한다.

리복자씨는 《그렇게 힘들고 곤혹스러운 생활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수많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살아온 강철수씨가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흐느끼였다.

고 강철수씨 동생 강철봉씨는 《형님은 어릴 적부터 저의 손을 잡고 다니며 부모의 자리를 대체한 거룩한 존재였다》며 몇년전 부대에서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돈지갑을 잃은 이름 모를 한 시골 모자에게 기차표를 사주고 로비를 해결하라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전부 털어준 사연을 전했다.

추도식에서 연길희망복지원 류영애 부원장이 비통을 머금고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현재 화룡시 숭선진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소시적 친구 최승일씨에 따르면 강철수씨는 어린 시절 매우 힘들게 자랐지만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씨 착한 애였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돌아간 후 동생 강철봉씨가 고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보니 한국에서 돈을 모아 집 사고 장가를 가겠다던 형님의 남은 재산이란 몇권의 책과 생전에 남긴 3천여페지에 달하는 필기, 평소 착용했던 몇벌의 낡은 옷가지외 후사모에 애심봉사를 위해 송금하려고 준비해두었던 10여만원 한화가 전부였다고 한다.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은 《향후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전체 애심봉사원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도와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을 기여하는 단체가 되련다》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는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

별찌와도 같은 짧은 생애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애심을 베푸는 것을 락으로 간주했던 고 강철수씨의 아름다운 삶, 비록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우리 곁은 떠났지만 애심을 천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그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 영원히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 특파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들의 특유문화 (花見) 해마다 2월에 들어서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벚꽃이 피여나는 개화시기에 대해 예상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꽃망울이 지기도 전부터 텔레비죤 뉴스, 특히 천기예보프로에서는 사쿠라전선(前線),사쿠라만개(満開)시기에 대한 예측, 사쿠라명소 등등 화제로 날마다 북적거린다. 봄을 맞는 풍습...
  • 2018-03-29
  • (사진 클릭하여 영상보기)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림호준이 아빠께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집자의 말] ‘가족사랑 영상편지(3)’을 펴내면서 네티즌들의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기 주인공은 길림성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학생 림호준이다. 호준이의 편지내용을 통해...
  • 2018-03-29
  •   “경제리익을 우선시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분은 보기 드뭅니다.” “자신의 리익을 챙기기 급급한 요즘에 이런 분이 몇분이나 될가요” 요즘같이 인정보다 자신의 리익을 먼저 챙기기 급급해하는 세상에 이러한 미담은 메마른 인정이란 사막에 목을 추기는 오아시스가 되군 한다. 대중교통이 ...
  • 2018-03-28
  •       (흑룡강신문=하얼빈)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이 류수같다고들 말한다. 누가 말했는지 딱히는 알수 없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도 30대는 30키로로 달리고 40대는 40키로로, 50대는 50키로로 달리고 60대는 60키로로 달린다고 했다. 정말 그런것 같이 느껴진다. 1978년에 교편을 잡아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 2018-03-27
  •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김신숙 회장의 협회 사랑 이야기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신숙(81세)은 연설을 할라 치면 발언고도 없이 청산류수로 쏟아내는가 하면 그 목청 또한 힘있고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훤칠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날파람 있고 사유와 반응도 무척 민첩하다. 2...
  • 2018-03-27
  •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 개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공동 주최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부녀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가 3월 25일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개최되였다. 여러 원인으로 뒤늦게 펼쳐진 녀성절 축하 및 장학금 발급...
  • 2018-03-26
  • 동방가무단의 안정, 미국에서 새로운 무용인생에 도전   쇼우스토펄(Showstopper)은 미국 아마추어무용가(본업으로 하지 않고 무용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경연대회로서 해마다 전미 40개 지역의 무용애호가들이 불꽃튀는 경연을 펼치며 프로급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쟁쟁한 경연가운데서 미국...
  • 2018-03-2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 ◈김춘식(한국) 지금은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찐을 사지 못할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찐을 ...
  • 2018-03-21
  • 3차에 거쳐 8만원 가치의 박방표 파스 후원 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박원일(좌)대표가 연변지체장애인협회에 1000통의 파스 전달 연변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6일,상해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대표 박원일)에서는 각종 통증을 해소하는 박방백소통 파스 1000통(3만원)를 연변지체...
  • 2018-03-19
  •   15일, 국제소비자권익 보호일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비자권익보호를 둘러싼 소비자 고발과 선전활동이 펼쳐진 가운데 룡정시 백금향정부에는 ‘3.15’주제와는 무관한 흥미로운 ‘고발’ 3건이 련달아 제기돼 황당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고발 1.'3.15'를 맞아 저는 저...
  • 2018-03-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 ◈ 류춘옥(일본) ‘동춘호’는 우리의 고향이였고 우리의 친인이였으며 우리의 꿈이였다   ‘동춘호’에 첫 컨테이너를 실었던 류춘옥 부부 2008년 10월 31일은 나의 40년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되여...
  • 2018-03-15
  • 22년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첫날부터 대변인으로 나서준 히사타케(久武)씨,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이였던 그가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2007년 여름이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갔다 온 후 한달만에 전화를 받고 숙야(通夜)장소에 갔다. 생전에 리론적인 변론을 즐겼던 히사타케씨는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
  • 2018-03-13
  • 일전, 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의 ‘숙청언니작업실(大姐工作室)’이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이는 왕숙청과 같은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을 육성하고 단영사회구역과 같은 시범집단을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견된다. 료해한데 따르면 왕숙청은 사회구역 사업에 종사한지 17년이 되였고 그가 몸담고 있는 단...
  • 2018-03-12
  • 연변의 배달왕에 도전한 한 조선족 젊은이의 이야기 컴퓨터앞에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168무역회사 지욱 총경리. 요즘 조선족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고 또한 그들이 창업하여 성공 일로를 걷는 기간도 무척 짧아졌고 세련되였다. 젊은이들이 막강한 경제실력이나 유력한 경제후원도...
  • 2018-03-08
  • 행복한 배상봉씨 가족 어머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하듯이, 남자들도 슬그머니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웁니다. 원래 애 키우자고 내가 이 지구별에 온 것은 아니였지만 어쩌다 보니 애까지 있게 되였고 또 천하에 가장 맛있는 김치와 도라지무침을 모른다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당분간 애를 ...
  • 2018-03-05
  • 연길시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에 사는 한 독거로인이 보름명절을 맞으며 본 편집부(길림신문)에 보내온 감사 사연을 담은 편지이다. 독거로인이 흔히 부딛치는 병원가기 관심 문제 및 생활 보살핌 문제상 로인은 신변사람들과 사회구역으로부터 진정어린 관심, 보살핌을 받은...
  • 2018-03-05
  • 3월 1일,간밤에 내린 함박눈은 연길시내 곳곳을 하얗게 뒤덮었고 환경미화원들은 이른새벽부터 교통안전을 위해 거리와 골목에서 눈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길대교 부근에서 눈을 청결하던 환경미화원들은 문뜩 찾아온 10여명 청년지원자대오의 소행에 저으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청년지원자들은 환경미화원들에게 뜨근뜨...
  • 2018-03-02
  •   일본에 온 지 어언 19년이 된다.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 자체가 바로 일본에서의 나의 성장과정이 아닐가 싶은 느낌이 든다. 물론 10명중 7명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999년 5월, 녀동생과 같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에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들...
  • 2018-03-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 ◇리룡득(안도) 32년전 하경지어르신(좌)을 모시고 찍은 사진(중간 전파 주임, 오른쪽이 필자.)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6년 8월 25일 오후였다. 내가 안도현문련 사무실에 방금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따르릉 세차게 울렸다. 얼른 송수화기를 들자 현인대 과학교육...
  • 2018-03-01
  • 정월 대보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눈 내리는 27일 아침,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을 차려놓고 마을 로인들을 기다리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로년협회 몇몇 회원들의 일손이 분주했다. 올해도 장해사회구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미리 펼쳐졌다. 반갑지만은 않은 봄눈 때문에 로인들의 출행이 불편하지는 않을...
  • 2018-02-27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