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추모글]별찌는 짧은 순간이여도 밝게 빛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21일 00시00분    조회:237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지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여기며 우리 주변을 빛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강철수(康哲洙)씨의 아름다운 생을 기리는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5월 18일,길림성 연길시장의관 추모광장에서는 불우이웃을 돕는 것을 자신의 천직으로 간직하고 삶을 빛내다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난 후사모 회원 고 강철수씨의 추도식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1978년생인 강철수씨는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 태생으로서 지난 5월 10일, 한국의 한 작업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의외의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진 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당일 39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 강철수씨(오른쪽)가 생전에 후사모 리경호 초대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는 모습

이날 추도식에는 고 강철수씨의 가족, 지인 그리고 후사모(연변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회원들과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일부 인사들도 참석해 비통을 함께 하였다.

연변후사모 고문(초대회장) 리경호가 사회한 추도식에서 후사모 회장 김태국은 추도사를 통해 《고 강철수씨한테도 생전에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었는데 바로 집 한채를 장만하고 사랑하는 녀자를 만나 장가 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였다》며 《그러나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돈은 모아지다가도 누군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전부 기부로 이어져 남는 것이 없었다”고 감동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강철수씨는 생활조건이 훌륭한 집안에서 태여나지 못했다.

세상물정를 알기 시작하면서 주위를 비교하고 자신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두부방을 차리고 후사모 애심봉사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는 집도 그에게는 사치였고 남들은 모두 건강한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그에게는  자기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장애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것이다.

정부의 혜택으로 시골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들 가족의 현실이였고 그런 일상은 언제면 끝날지 모르는 밑도 끝도 없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였다.

경제난으로 어렵게 초중을 겨우 졸업하고 그는 1995년 영광스럽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대련 81379부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부대생활은 그에게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당과 정부,그리고 사회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굳센 의지와 열정을 다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였다.

부대에서 그는 우수전사로 퇀급 상장도 수차 받았고 참군 2년 만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99년 강철수씨는 3년간의 군부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여 그는 이제 더 이상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양로원에서 남편을 잃고 뇌출혈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빈손으로 연길로 왔다.

고 강철수씨(뒤줄 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후 남긴 사진

세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날마다 그는 몸의 기운이 다 빠지도록 악착스레 일했고 그의 노력은 주위에서 찬사와 함께 따스한 도움의 손길로 찾아왔다.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 목욕을 전담해주던 조양천아줌마, 늘 과일을 가져다주던 시장아줌마, 엄마가 좋아하는 순대를 대접하라고 가져온 마음씨 고운 순대아줌마, 늘 곱돌장을 끓여주던 70세 고령의 할머니와 김밥을 두둑하게 담아주시던 김밥아줌마,체력로동을 하는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고기국을 자주 가져다주던 오주시장의 소고기국집 아줌마, 항상 뜨근한 아침상을 차려주던 주인집 아줌마, 그외에도 주변의 마음씨 고운 분들의 따스한 손길로 인해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항상 가난과 역경으로 남보다 못하고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는 꼭 하나만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그는 마음의 부자였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해 당과 정부,그리고 고마운 이웃들의 은혜와 은정에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가짐과 굳센 의지의 표현이였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마음 한가운데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애심의 마음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2002년부터 강철수와 동생 강철봉씨 형제는 연길서시장에서 삼륜차부로 힘들게 일하면서 매일 1원씩 매달 30원의 돈을 무명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들의 선행은 무려 10여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송금통지서를 단서로 고마운 주인공 강철수, 강철봉씨를 찾는 데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그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였고 연변에서는 매일 1원씩 성금을 모아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를 후원하는 열풍이 일었다. 그 후 그의 기부는 쉼없이 이어졌다. 불우한 학생들을 지원하라고 후사모에 2만원(인민페),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에 만원, 백혈병을 앓는 김은정학생에게 5천원, 골수암으로 앓는 공원소학교 김가영학생에게도 만원, 사랑의 집에도 수천원 어치의 육류를 보냈고 화룡고아원에 한화 30만원,부모 없는 어린 손자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에게 5천원…수없이 보낸 기부는 이들에게 생의 용기와 힘이 되였다.

연변후사모 리경호 회장에 따르면 강철수는 생전에 몸이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시 후사모 위챗을 통해서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들으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열심히 창업해서 번 돈이나 외국에 나가 힘들게 번 돈이라도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맨먼저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생전에 어려움에 처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했는지 일절 성함을 밝히지 않은 원인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정확한 수자를 알 수가 없다.

2016년 강철수씨는 창업으로 연길지질6소 부근에 두부방을 차렸다. 그는 매일 이른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열심히 두부를 만들어서 무상으로 사회봉사를 하였다.

고 강철수씨가 생전에 두부방에서 고아원에 지원할 두부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룡정시 도촌자애원, 동불사진새별관, 연길희망복지원…이외에도 많은 고아원들은 그의 기부대상이였다.

추호도 리기적이지 않고 오로지 수많은 불우이웃들을 위해 성심성의로 애심을 베풀며 뛰였다.

강철수씨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돌아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비통한 눈물을 쏟았다.

연변희망복지원 유영애 부원장은 지난 5월 10일, 강철수씨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며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철수씨가 두부방 경영을 접고 2017년 12월, 로무로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류영애 부원장을 만나 《한국에서 이번에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집도 마련하고 좋은 녀자를 만나 장가도 들겠다며 기뻐하던 일이 어제 갔은데...》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철수씨는 생전에 다른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종종 희망복지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과일과 맛 있는 음식을 사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부방을 차린 후에는 늘 바쁜 시간에도 금방 앗은 따스한 두부를 복지원에 가져왔다.

고 강철수씨 추도식에 참가해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

복지원의 애들은 강철수씨를 ‘두부삼촌’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속심을 나누군 하였다.  애들이 축구구경을 하고 싶어하자 연변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기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는 축구구경도 함께 다니며 매우 친근하게 보냈다.

늘 아이들에게 자신도 어릴 적에 복지원에서 자랐다며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여 꼭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류영애 부원장이 대독한 희망복지원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와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전하는 마디마디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리미화학생은 편지에서 《우리가 그냥 철수삼촌을 허물없이 ‘두부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게 돼서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두부삼촌’은 힘들게 두부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자주 두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늘은 참 무정하네요. 왜 착한 삼촌이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게 하는지요. 비록 삼촌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삼촌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우리는 삼촌의 말씀을 꼭 명심하고 삼촌의 뒤를 따라 앞으로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리복자씨는 눈물범벅이 되여 준비한 원고를 읽다가 도중에 비통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또 한번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2015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서 리복자씨의 딸 김은정이가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천문수자와도 같은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후였다.

며칠 후 프로책임자로부터 당시 한국에서 일하던 강철수란 분이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인민페 5천원을 송금해왔다며 돈을 리복자씨한테 전달해왔다. 낯모를 분이 보내온 돈을 받고 그녀는 당시 매우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 후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모습

힘들게 피땀으로 번 돈을 이렇게 선뜻 낯모를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내밀 수 있다는 그 마음과 용기에 너무 존경스러웠고 미안했다.

그 후에야 강철수씨가 어린 시절부터 불구자 부모의 사랑 없이 어린 동생을 거느리고 매우 어렵게 생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여 매우 감동되였다고 한다.

리복자씨는 《그렇게 힘들고 곤혹스러운 생활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수많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살아온 강철수씨가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흐느끼였다.

고 강철수씨 동생 강철봉씨는 《형님은 어릴 적부터 저의 손을 잡고 다니며 부모의 자리를 대체한 거룩한 존재였다》며 몇년전 부대에서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돈지갑을 잃은 이름 모를 한 시골 모자에게 기차표를 사주고 로비를 해결하라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전부 털어준 사연을 전했다.

추도식에서 연길희망복지원 류영애 부원장이 비통을 머금고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현재 화룡시 숭선진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소시적 친구 최승일씨에 따르면 강철수씨는 어린 시절 매우 힘들게 자랐지만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씨 착한 애였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돌아간 후 동생 강철봉씨가 고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보니 한국에서 돈을 모아 집 사고 장가를 가겠다던 형님의 남은 재산이란 몇권의 책과 생전에 남긴 3천여페지에 달하는 필기, 평소 착용했던 몇벌의 낡은 옷가지외 후사모에 애심봉사를 위해 송금하려고 준비해두었던 10여만원 한화가 전부였다고 한다.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은 《향후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전체 애심봉사원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도와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을 기여하는 단체가 되련다》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는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

별찌와도 같은 짧은 생애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애심을 베푸는 것을 락으로 간주했던 고 강철수씨의 아름다운 삶, 비록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우리 곁은 떠났지만 애심을 천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그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 영원히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 특파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8) ▩서현(연길)   살면서 처음으로 거한 밥상을 받았던 기억은 중학교 시절, 시내에서 좀 떨어진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한반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갔던 날이다.   겨울방학이라 두눈이 멀뚱멀뚱해서 거의 집에만 박혀 쏠락거리다가 점점 식상한 나머지 새로...
  • 2018-09-0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7) ▩김숙자(길림) “그 때 한숙사에서 뒹굴던 채화, 정복, 미화, 춘희, 보옥… 항상 보고 싶다.”는 필자 김숙자(앞줄 왼쪽 두번째).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 그런지 느닷없이 지나간 옛일들이 나를 찾아오군 한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의 물길은...
  • 2018-09-06
  •     빈곤 장애인 대학입학생에 온정의 손길 이어져     9월 1일, 두 손에 보행보조기를 짚고 하해대학 2018년급 신입생 등록처에 나타난 돈화시 빈곤가정 대학입학생 왕붕박(19살, 2급 지체장애인)의 얼굴에는 행복의 미소가 떠날줄 모른다. “학교에서 저에게 2000원의 조학금과 가치가 300원에...
  • 2018-09-0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6) ▩김명희(왕청) 알뜰살뜰 살림군 김명희 필자 해마다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일어서는 새 아빠트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힘들게 살아왔던 지나간 세월이 영화필림처럼 떠오르며 코마루가 찡해난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1995년 겨울, 친척 친우들의 축복 속에서 간단...
  • 2018-08-27
  • 21일,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주최하고 정사교육그룹(精思教育集团)에서 후원한 ‘계향장학금’ 설립식 및 제1회 장학금시상식이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에서 진행되였다. 행사에는 백성남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교장을 비롯한 학교 지도부 성원들과 윤용철 정사교육그룹 회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 그리고 ...
  • 2018-08-23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5) ▩최영숙(연길) 필자 최영숙, 어린 시절 동생들과 함께(뒤). 1966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휴식날이지만 나는 토끼 당번이였기에 아침에 흰 대복(그 당시 나에게는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전날 입고 자던 웃옷 그대로, 전날 오후 들에 나가 캐놓...
  • 2018-08-2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5 자전거부대를 바라보고있는 아키코씨(왼쪽) 오오무라 아키코녀사의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도 령하 24도이다. 아침 9시, 사흘만에 서시장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긴 털실목도리를 얼굴로부터 목에 두른채 큰길에 나서니 벌써 자전거로 출근하는 남녀들이 줄을 짓고 있었다. &lsq...
  • 2018-08-13
  • 나는 1960년에 연변대학 수학계를 졸업하고 연길시 3중에서 33년을 교원으로 있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보람찬 교원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로후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본적이 없었다. 제각기 잘 자라 준 자식들은 각기 자기들의 능력대로 일본과 상해에서 분투하며 살기 시작하였고 정년퇴직을 한 남편과 나는...
  • 2018-08-13
  • 제34번째 로인절을 맞으며 10일, 주로령사업발전기금회와 연변애심어머니협회는 10명 빈곤녀성에게 인당 2000원씩 지급해 사회의 온정을 전했다.   구제금 지급식에서 주로령사업발전기금회 회장이며 주인대 상무위원회 전 부주임인 민광도는 “이번 활동의 주요 구제대상은 중병을 앓거나 장애로 불편을 겪는 년...
  • 2018-08-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4) ▩강성범(룡정)   필자 강성범   우리의 생활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지를 남긴 2017년 10월 16일, 그 날은 연길현2중(지금의 룡정고중) 1967년급 초중 3학년 3반 졸업 50주년 동창모임이 있던 날이다. 그 날의 눈물겹던 아름다운 기...
  • 2018-08-11
  • ‘나는 된다’는 오기로 살아온 지체장애자 김란화의 헌신이야기 올 음력설을 맞이해 김란화의 가정을 위문한 파음조로 서기 일여덟살 철이 들기 시작해서부터 란화는 집 근처에 있던 공공변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했다. 지체장애자라 다른 애들보다 두살 늦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그는 소학교, 초중, 고중...
  • 2018-08-10
  • (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 8월4일 화룡고급중학교일본학우회 설립대회가 동경에서 열렸다.   저녁 6시, 일본 동경의 한여름 무더위가 울고 갈 정도로 뜨거운 분위기 속에, 동경 닛뽀리 랑그웃도 호텔에서 화룡고급중학교일본학우회 설립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현재 일본각지에서 뿌리박고 삶의 터전...
  • 2018-08-07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3) ▩리동주(연길) 퇴직 후 함께 등산하면서 즐기는 세 친구(오른쪽이 필자 리동주, 중간사람이 명준친구, 왼쪽이 종식친구.) 지금은 있을 수도 또 있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지만 달리는 화물렬차를 단지 친구라는 의리 하나 때문에 무작정 멈춰세운 ‘도깨비&rsqu...
  • 2018-08-06
  • 8월 3일, “덕이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숲”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제2기 리사회는 중국조선족생태문화원 룡가미원에서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을 가지고 나눔으로 행복한 장학문화인들의 여름잔치를 치렀다. 덕림장학문화재단(준) 제2기 리사회와 연변가정연구소에서 주최한 이번 에서는 동북3성 11개 조선족고...
  • 2018-08-05
  •     (흑룡강신문=하얼빈)길림성 왕청진 쟈피구촌에 살고있는 리희태의 안해 유형숙은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즐기는 신혼생활은 깨알이 쏟아지고 행복이 넘쳤을 것이다.   두 분도 역시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만 같았다고 한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
  • 2018-08-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2) ▩김진석(연길) 필자 김진석 나는 한생을 라지오TV방송 기자 사업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수와 같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보니 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하면서 기자생활에서 있었던 가지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 2018-07-3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4 “연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죠?” “랭면, 랭면이 제일 그리운 연변음식이예요. 그리고 조선명태가 너무 맛있었어요” 아키코씨와의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먹는 음식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갓 연변에 갔을때 어느 개인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차려...
  • 2018-07-30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3 일본에서는 일부러 목장으로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소나 말. 처음에 연길에 가서 제일 놀라웠던 일이 거리에 마차와 소수레가 자동차들 속에 끼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고 아키코씨는 말한다. 현대건물이 들어서있는 거리 풍경과 양복차림의 신사들 모습을 배경으로 한 소와 말, 당나귀...
  • 2018-07-2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0) ▩렴순옥(연길) 필자 렴순옥의 외할머니 고하순 그리고 어머니 리정숙과 아버지 렴응철 1 고향이 조선 함경남도 단천군 백자동인 나의 아버지 렴응철은 4촌형 렴흥철을 따라 룡정에 와서 대성중학교를 다녔다. 이들 4촌형제는 지하당원인 나의 작은외할아...
  • 2018-07-16
  • 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춘희사장 지난해 10월 24일 밤  11시 30분경, 재미 조선족교포 김춘희씨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도라빌에 있는 식당에 3인조 흑인 무장강도가 침입하였다. 퇴근하면서 에 들린 7명의 맛사지 녀성들의 돈을 노리고 추적해 온 무장강도들이 란발한 총에 김춘희사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
  • 2018-07-11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