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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90]고향의 밥 짓는 연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2일 00시00분    조회: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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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8)

▩황혼호(대경)

촬영작품 〈밥 짓는 연기〉와 필자 황혼호

얼마전 나는 촬영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한장의 〈밥 짓는 연기〉라는 사진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사진을 보노라니 어릴 적 내가 태여나고 자란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나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황혼이 저녁노을을 쓰고 시골에 내려앉고 새들이 석양을 물고 둥지를 찾아올 때면 높고 낮은 집집의 굴뚝들에서는 저녁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오른다. 밥 짓는 연기의 부름에 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설 때면 어머니가 부뚜막에서 땔나무를 아궁이에 넣으면서 저녁상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어머니는 가마에서 풋옥수수 반이삭을 꺼내주면서 “얘야, 배고프겠구나. 먼저 이걸 먹어라.” 하신다. 시골 아이들에게 풋옥수수는 가장 맛있는 간식이였다.

시골에서 밥 짓는 연기는 한 가정의 존재와 따뜻함과 화목을 대표하는 그 자체였다. 하루 세끼 제시간에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솟아나면 그 집은 화목하고 풍족한 가정이였다.

밥 짓는 연기는 또한 어머니의 부름소리였다. 어릴 때 나는 마을에서 8리 떨어진 풍기촌이라는 조선족 마을에 통학하면서 소학교를 다녔다. 하학길에 멀리서도 우리 초가집 굴뚝에서 피여오르는 연기를 보면 방불히 부엌에서 바삐 돌아치는 어머니를 보는듯했으며 뜨끈뜨끈한 밥상을 보는듯했다. 그 저녁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집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여오르려면 우선 땔나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생산대 대장으로 바쁘신 아버지는 거의 밖에서 보내다 보니 해마다 땔나무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하여 땔나무 하기는 사계절 끝이 없는 어머니의 힘든 일이였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밥 짓는 연기가 있는 집이라야 집이라 할 수 있었기에 각별히 땔 근심을 몹시 했다. 밭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꼭꼭 밭머리에서 땔나무를 장만해서 머리에 이고 돌아오셨다.

어릴 적 나는 어머니를 따라 뒤산에 가서 마른 나무가지를 주었다. 욕심에 많이 주어 단번에 메고 오지 못하면 어머니가 머리에 이여 집에 가져가고 나는 지키고 있다가 어머니와 함께 메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헌데 후에는 산을 개간하고 과일나무를 심자 옥수수대거나 벼짚 등이 주요한 땔감으로 되였다. 가을이면 옥수수대를 집으로 실어가 땔나무로 쌓아두었다. 이듬해 봄 땅이 녹으면 밭에는 옥수수그루가 드러나는데 어머니가 괭이로 뿌리를 뽑으면 나는 하나하나 주어서 한데 모았다. 이 일은 아주 힘든 일이였는데 왜소한 체구의 어머니가 어떻게 했는지 참 대단하셨다.

나는 열살 때부터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 어머니를 도왔다. 때문에 일찍 부엌에서 연기에 그을리고 불에 지지우는 맛도 보았다. 어머니가 연기에 숨이 막혀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릴 때면 나는 자진해나서서 불을 때군 했다. 어머니는 온통 나무재로 검댕이투성이 된 내 얼굴을 가슴아파하며 옷소매로 닦아주셨다.

밥 짓는 연기는 또 애들한테는 어머니가 지어놓은 맛나는 밥상이였다. 무리를 이룬 짜개바지들은 마을 밖 들판에서 뛰놀고 개울물에서 장난 치고 뒤산에서 산과실을 뜯어먹느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마저 잊는다. 이 때 누군가 소리친다. “우리 집 굴뚝에서 연기 난다.” 애들의 눈길은 똑같이 마을로 향해 분분히 자기 집 굴뚝을 찾는다. 애들은 아쉬운 대로 장난을 그만두고 서로 쫓아가며 집으로 달린다. 그 따뜻한 노을빛 저녁연기 속에는 엄마의 신신당부가 있었고 아빠의 종소리처럼 우렁찬 부름이 있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나는 감자 구워먹기를 좋아했다. 굴뚝에 연기가 멎고 부뚜막 아궁이의 불꽃이 꺼진 후면 가라앉은 불무더기가 발갛게 열을 내고 있다. 이 때 그 불을 헤치고 골라둔 잔잔한 감자를 넣고 뜨거운 재를 덮어놓는다.

구운 감자는 따가울 때 먹어야 제맛인데 불면서 이 손바닥에서 저 손바닥으로 넘기느라면 껍질에 붙은 마른 흙이 떨어지면서 깨끗하게 된다. 다음 두손으로 익은 감자를 잡고 살짝 누르면 “사각” 하고 두동강이 나면서 새노란 속살이 드러난다. 삽시에 고소한 맛이 코를 파고든다. 구수하면서도 흙냄새가 섞인 이 독특한 맛은 천하별미로 골수에까지 스며든다. 한덩이를 입안에 살짝 넣으면 감자의 껍질과 속살이 혀끝에 잠간 머물면서 구수한 맛이 온 입안에 쏴악 퍼진다. 이 때면 모든 미각이 총동원되여 감자 토벌에 참가한다. 이 토벌 속에서 생활 속의 모든 고통, 번뇌와 피로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잊을 수 없는 것은 1964년도 내가 화남현조선족중학교를 다닐 때이다. 나는 한어성적이 낮아 취침 후에도 숙사의 돼지죽을 끓이는 칸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 그 곳에는 계속 불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배가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때는 우리 나라가 3년 자연재해로 굶주리던 때라 죽으로 때를 에운 저녁음식은 언녕 소화된 뒤였다. 돼지죽 가마를 들여다보았더니 썩은 호박이요, 배추겉잎, 벌레 먹은 무우들이 불렁불렁 끓고 있는 속에 자그마한 감자 몇알이 보였다. 나는 좀 커보이는 감자 한알을 국자로 꺼내 훌훌 불면서 껍질을 발랐다. 정말 먹음직했다. 게걸스레 감자 몇알을 먹고 나니 배가 뜨끈뜨끈해나며 배고픔이 멀리 달아났다.

나에게 고향의 밥 짓는 연기는 달콤한 추억 뿐만 아니라 뼈에 사무치는 아픔으로도 남아있다.

기숙사에 있던 하루 아침, 기상시간이 되여 깨여나 옷을 입으려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곤드라졌다. 가스중독이였다. 소식을 듣고 선생님이 달려왔다. 선생님은 나를 이불에 둘둘 감아 밖의 눈무지 우에 눕혀놓고는 저가락으로 입을 벌리고 맵고 차거운 김치물을 퍼넣었다. 하여 나는 다행히 사선에서 살아나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당시 부엌이 우리 숙사에 같이 있었는데 불이 잘 들지 않는 데다 구들을 제대로 매질을 하지 않아 아침밥을 짓는 새에 구들에서 새여나오는 연기에 중독된 것이였다. 그 때 숙소의 선생님과 동창들은 귀한 소고기 장졸임이며 과자, 우유가루 등을 나에게 몸보신하라며 들고 왔었다. 그 감사의 마음은 한두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해에 나는 그 중독 미열로 두통이 너무 심해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어 일년간 휴학을 했다. 그러나 마음씨 고운 사생들의 은공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삶의 려정에서 잠간 총총한 발걸음을 멈추면 기억 속에 서서히 밥 짓는 연기가 떠오르고 코끝에서 시골집 밥상에서 풍기는 향기가 감도는듯하다. 고향의 밥 짓는 연기는 마치 경쾌한 음악과 우아한 춤마냥 항상 내 생명 속 가장 생동하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밥 짓는 연기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생명은 더는 나약하지 않고 인생도 더는 힘들지 않다.길림신문/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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