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5)
▩최영숙(연길)
필자 최영숙, 어린 시절 동생들과 함께(뒤).
1966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휴식날이지만 나는 토끼 당번이였기에 아침에 흰 대복(그 당시 나에게는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전날 입고 자던 웃옷 그대로, 전날 오후 들에 나가 캐놓았던 토끼풀을 어깨에 둘러메고 학교로 떠났다.
내가 다니는 연길현 동성공사 룡산소학교에서는 학교 뒤산 바위의 자연동굴을 리용해 토끼굴을 아담하게 지어놓고 많은 토끼를 사양하고 있었다. 또 학교 뒤마당에 채소밭도 가꿔놓고 여러가지 야채들을 심고 학생들을 관찰하게 했다. 우리 학생들은 조를 짜 륜번으로 당번을 서면서 토끼에게 먹이를 주었고 채소밭에 물을 주었다.
학교까지 거리는 5리 잘되였다. 푸른 산 기슭의 오불꼬불 흙길을 따라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웃학년 언니 오빠들이 벌써 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이 깡충깡충 뛰여다니는 토끼들을 겨우 굴에 몰아넣고 깔깔 웃고 떠들면서 한창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는데 멀리서 나를 부르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부리나케 뛰여가니 선생님이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영숙아, 본래 며칠전에 온다던 연길현교육국 참관단이 요즘 련속 내린 비 때문에 못 왔었는데 오늘 오후 한시에 도착한다고 방금 공사에서 전화 왔다. 채소밭 해설을 원래 춘화가 맡았는데 지금 그 마을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네가 이걸 외우고 설명하면 안될가?”
선생님이 내미는 종이장을 받아보니 내용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오전에만 토끼 당번을 서고 집에 돌아가기에 점심밥을 싸가지고 오지 않은 나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큰고모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고모가 앞마당에서 금방 뽑은 새파란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일요일인데 불쑥 찾아온 나를 보고 고모는 의아해하셨다.
“아재, 내 오늘 오전만 토끼 당번인데 불시에 일이 있어 오후에 또 학교에 가야 하꾸마.”
“무슨 일?”
“참관단이 온다꾸마. 선생님이 나 보고 해설해라 하꾸마.”
… …
“아이구, 쬐꼬만 애가 똑똑한 매구나. 해설을 한다능게. 그런데 쯧쯧쯧…”
혀를 차는 목소리의 임자는 고모가 아니였다. 고개를 돌려 고모네 집안을 들여다보니 너부죽한 얼굴에 하아얀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보기 좋게 틀어올린 풍채 좋은 (꼭마치 옛말 속의 신선 같은) 할머니가 한눈에 안겨왔다. 온 집안이 다 환해 보였다.
고모는 연길시내에서 놀러 오신 시댁 오촌숙모이신데 너한테는 사돈할머니라고 하면서 인사 올리라 했다. 나는 꾸벅 경례를 했다.
점심상에 마주앉았는데 사돈할머니가 자꾸 나에게 이것저것 캐여묻기에 나는 싫은 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주머이(숙모), 얘가 생진 전에 우리 오라버이 리혼해 젖두 채 못 먹구 자란 그 조카애꾸마. 그래두 새로 들어온 형님이 무던해서 구박 안 받구 공부도 잘하구 잘 자라꾸마.”
“내 그렇겠다 짐작했소. 잘 푸들진 못해도 무척 똑똑하구만. 그런데 참관단 앞에 나선다는 애가 저런 옷을 입구 어쩌우?…”
나는 저도 모르게 내 옷차림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우에는 너무 씻어 색이 날 대로 난 곤색 내의, 아래는 무릎이 다슬어 구멍이 날가말가한 검은색 바지… 내 눈길은 어느새 고모네 바닥에 벗어놓은 흙이 가득 묻은 신 있는 곳까지 갔다.
“우리 본가집에 애들 다섯이구 식구 아홉이꾸마. 생활이 썩 시원채이꾸마.”
“에그, 불쌍한 것… 오늘은 별 수 없구나. 그런 대로 가야겠구나.”
사돈할머니는 나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계속 말씀하셨다.
“얘야, 높은 소리로 똑똑하게 설명하거라. 그리구 앞으로 그냥 공부 잘하구… 내 다음번에 올 때 고운 꽃부리 천 한감 사다 줄게. 적삼이나 곱게 해입거라.”
내 두눈은 저도 모르게 휘둥그래졌다. 농촌에서 아홉 식구에 로동력이라곤 아버지와 어머니 겨우 두사람, 어쩌다 공책과 연필 사려고 해도 눈치 봐가며 이번엔 할아버지 그 다음번엔 엄마와 겨우 말해 사던 나였다. 매일 공소합작사에 들려 진렬장에 놓인 빨간 줄이 간 이쁜 양말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보기만 하고 감히 사달라는 말도 못하고 랭가슴 앓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 예쁜 적삼 지을 꽃천을 사다 주겠다는 사돈할머니 말씀은 그야말로 천방야담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하마트면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를 번했다. 나는 얼른 두손으로 입을 싸쥐고 일어났다.
고모가 걸레로 내 흙 묻은 신발을 싹 닦아주었다. 학교로 가는 나의 마음은 날듯이 기뻤다. 가족외에도 나를 관심하고 도와주려는 신선 같은 할머니가 생겼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사무실 문을 열자 담임선생님은 나를 찬찬히 보시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바짝 쳐들고 “선생님, 내 다 외웠습니다. 설명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선생님은 서랍에서 붉은 넥타이를 꺼내 가무잡잡한 나의 목에 매여주시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선생님의 정서와는 아무 상관 없이 신이 날 대로 나 아무 두려움 없이 외운 대로 야무지게 설명했다. 우리들이 채소밭의 벌레를 잡아 돌에 대고 갈아죽였다는 대목을 이야기하자 참관단 일행들 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 날 이후 나는 며칠에 한번씩 고모네 집에 들렸다.
“아재, 목이 말라서…”
“아재, 앵두 먹고 싶어서…”
“아재, 백살구 먹고 싶어서…”
고모와 감히 묻지도 못하고 그저 번마다 그럴듯한 리유를 찾아가지고 고모 집에 들려서는 집안을 휙 둘러보고 밖에 나와 터전까지 살펴보면서 사돈할머니 오셨나 내 눈으로 확인했다.
매일 밤 밖에 나와 하늘의 무수한 별들 가운데서 제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어른들은 아이와 한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니 꼭 사다 줄 것이다.’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또 사돈할머니께서 어떤 꽃천을 사오실가? 상상도 많이 했었다. 하얀 판에 알락달락 점이 박힌 천일가? 노란 판에 연두색 나무잎이 박힌 천일가? 아니면 연분홍 판에 빨간 매화꽃이 박힌 천일가? 아니, 아니다. 같은 값이면 저 하늘처럼 파아란 바탕에 밤하늘처럼 노란 별이 가득한 천이면 좋을 건데…
또 사돈할머니가 진짜로 꽃천을 사오시면 어떤 모양의 적삼을 해입을가 하고 눈앞에 많이 그려보았다. 종래로 다른 애들의 옷에 신경을 쓰지 않던 예전과 달리 나는 낮에는 학교에 가서 녀자애들이 입은 옷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 하나하나 다시 떠올리며 속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는 꿈을 꾸었는데 예쁜 옷 여러벌 가지고 있는 명자가 나한테 딱 맞는 옷을 하나 가지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너무 기뻐 “정말이야, 정말이야?” 하며 소리를 쳤는데 할머니가 흔들며 부르는 바람에 그만 놀라 깨였다. 나는 너무 서운해서 “야, 아매(할머니)두, 좀 있다 깨울 거지.” 라며 할머니를 원망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즐겁게 웃는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딱친구 미란이가 물었다. “야, 너 요즘 시개없이(분수없이) 왜 자꾸 실실거리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게 있어. 너 며칠 후면 알게 될 거야.”
그런데 몇달이 지나도 사돈할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조금 원망스러웠다. “왜 아직도 사오지 않을가? 혹시 잊지는 않았을가?” 그러면서도 또 은근히 기다렸다.
신선 같아 보이던 사돈할머니의 인자한 모습이 머리 속에서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고 묵직한 말소리가 귀가에서 여전히 맴돌아쳤다.
그런데 옹근 2년을 기다려도 사돈할머니가 오시지 않으니 나는 “그 할머니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네.”라고 원망하게 되였고 마음속으로 서서히 꽃천 기다림을 포기하게 되였다. 기다리는 사이 나이도 먹고 키도 크고 생각도 어느 정도 깊어졌으니깐.
언젠가 할아버지 생일날 우리 집에 놀러 오신 고모한테 물었다.
“아재, 연길 사시는 그 뚱뚱한 사돈할머니 무사함두?"
“아니, 네가 왜 그 분 안부를 묻냐?”
“그 할머니 예전에 나를 꽃천 사준다고 했었는데… 내 몇년 그냥 기다렸는데…”
고모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니까 나두 생각난다. 이 우둔한 것아, 네가 그 말 믿고 여태껏 기다렸었냐? 아들 며느리 눈치 보며 사는 숙모가 어떻게 사돈애한테 꽃천 사다 주냐? 그리구 몇년전 우리 집에 왔다가 집에 가신 후 얼마 안돼 고혈압으로 쓰러져 몇달 앓다가 돌아가셨다.”
“아, 그랬었구나. 사돈할머니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었구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냥 잊혀지지 않는 이 꽃천 이야기… 나이 륙십이 넘은 지금도 가끔 떠올리는데 ‘내가 너무 천진했었지.’ 하며 픽 웃다가도 ‘그래도 그 신선 같은 사돈할머니의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내가 동년에 가슴에 파아란 희망을 안고 기다리며 얼마나 행복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그 할머니가 머리 속에 또렷이 떠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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