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09] 닭알에 깃든 구구 사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2일 00시00분    조회:13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시달려 굶주리다 시장경제 시대를 만나 여유족족 행복을 누린다. 이 모든 것이 개혁개방의 덕이라 하겠다.

8월의 삼복 무더위를 이기며 어느 일요일 나는 안해와 함께 모아산 등산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시원히 국수나 먹읍시다.”

자기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즐기는 걸 아는지라 안해는 랭면옥으로 걸었다. 11시도 안되였는데 하남 민족식당 랭면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였다.

잠간 자리를 기다리는 기간 나의 목젖은 벌써 방아를 찧었다. 드디여 자리가 생겨나 우리에게도 국수 두그릇이 올랐다. 저가락을 집어든 안해는 닭알을 집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였다. 자기 몫의 닭알을 잡숴달라는 것이다. 미안해하는 그 눈길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담낭이 나쁘기에 닭알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처음이 아닌 동작이기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끄덕였다.

옛날에는 메밀국수가 많았는데 메밀은 껍질부터 송곳 같은 뾰족날이 많이 서서 그 가루가 아무리 미세한 분말이라 해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역시 가시가 많이 돋은 과립체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배속에 들어가면 점막을 ‘찌르는’ 자극이 있기에 옛날 선조들로부터 메밀국수를 먹을 때에 꼭 먼저 닭알을 먹어 위점막을 포장해주라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국수에 닭알은 궁합 음식이기에 랭면을 먹으며 닭알을 먹지 않는 것도 틀린 습관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식객들이 삶은 닭알을 먹기 싫어 남겨버린다. 랭면옥에 물어보니 반수 이상의 손님들이 닭알을 버린다는 것이다. 여름철 더운 날이면 랭면 2000여그릇씩 판다니 천여개의 닭알이 구정물에 들어가는 셈이다. 너무나도 아깝고 끔찍한 랑비다.

닭알에는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린, 철, 칼륨, 비타민 등이 함유되여있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린다. 필수 콜레스테롤, 아미노산과 메사이오닌, 시오틴 같은 합황 아미노산이 많아 100그람당 139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있기에 인체 면역력 제고와 체질 증강에 보귀한 음식물이다. 또한 손재간 없는 사람도 쉽게 맛나는 료리를 만들 수 있는 흔하고 친근한 식품이다. 이토록 질 좋은 식품이건만 ‘루명’도 많이 쓰며 외면당하는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안해가 싫어하는 닭알을 먹을 때마다 닭알이 귀하여 가슴 앓던 때의 일이 떠오르군 한다.

1974년 1월, 우리의 첫 애기 림산 때의 일이다. 그 때 안해는 동불사의 본가집에서 호주노릇하며 출근하고 나는 돈화시에서 사업하는 외기러기였다.

조선족은 해산하면 미역국이 우선이지만 한족들은 닭알이 우선이고 닭알을 많이 먹은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여 나도 그 때가 되면 안해에게 닭알을 마음껏 먹여보리라 은근히 작심했다. 그런데 정작 닥치고 보니 안해의 림산기가 바로 음력설 좌우인 엄동설한이여서 닭알이 그렇게 귀할 줄이야.

그 때 돈화시에는 량식창고에 자그마한 양계장이 있었다. 그래서 량식국에서 일하는 한족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며칠 후 량식창고 주임의 도장이 찍힌 ‘두근’이라고 쓴 쪽지를 가져다주는 것이였다. 비록 너무 적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보배 같았다.

가격은 한근에 겨우 70전, 나는 새알보다 좀더 커보이는 하얗고 맑은 닭알 22개를 사들고 왔다. 여러개는 껍질에 피자욱도 있었다. 숙소에 들고 와 안전한 그릇에 담으면서 보니 한놈은 살짝 금이 갔었다. 나는 종이에 풀을 발라 터진 닭알을 땜질하여 맨 우에 올려놓았다.

상업국 식료품공사에도 찾아가 사정해보았는데 닭알은 ‘특수공급’으로만 비준한다며 퇴를 맞았다.

며칠 후 연길 출장길에 적지만‘최다'의 닭알 22개를 대감 모시듯 조심스레 들고 와 장모님에게 바쳤다. 그 날이 해산날 10일 전이였다.

그런데 사위가 왔는데 반찬거리가 없다며 장모는 그 자리에서 닭알 두알을 깨여 나에게 닭알국을 끓여주는 것이였다. 산모를 먹이려고 쉽지 않게 얻어 조심스레 들고 온 것을 나더러 먹으라 하니 너무도 난처하였다. 먹기도 어렵고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만삭이 된 안해도 옆에 앉아 웃으며 권장하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가슴에 아련하게 찔려온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때 여덟살이던 막둥이 처남이 너무 보채여 장모님은 역시 그 닭알 두알을 장려했다는 것이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우리의 첫 애가 태여나는 날 장모는 닭알을 산모에게 먹이며 힘을 주었다. 얻기 힘든 닭알 덕분인지 닭알 18개를 대접받은 산모는 무난히 고비를 넘기였고 젖도 많이 돌아져 아이도 건강했다.

그토록 희귀하던 닭알 얻기를 평생 잊을 수 없다.

1년 후 딸애의 돌을 쇠고 우리는 드디여 돈화시에 단란한 새 가정을 꾸리게 되였다. 장모는 병아리 몇마리 사주었다. 그 후로부터 우리 집에도 암탉이 있어 닭알을 생산할 수 있게 되였다. 아이들의 입살이에는 충족하였다. 혹시 불시에 술손님이 찾아와도 너무 막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직 개체경제가 허용되지 않아 농촌에서는 해마다 닭알 판매 임무를 떨구고 공소사에서 수매하였다. 돈이 나올 데 없는 농민들은 닭을 은행(鸡屁股银行)이라 불렀다. 그제날에 학용품을 사려면 닭알을 들고 공소사에 갔고 할아버지들이 정통편을 사도 닭알로 바꾸었다.

소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족 가는 날에는 꼭 차례지던 삶은 닭알, 그렇게도 맛있을 수가 있을가!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60년대, 우리 집에서는 닭 몇마리 길렀다. 엄마는 작은 그릇에 닭알을 깨여서는 소금물을 넣고 잘 저은 후 밥가마에 쪄내여 아버지의 도시락 반찬으로 하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찐 닭알을 떠내 도시락에 담아보내고는 아직 닭알이 좀씩 붙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장려하군 하였다. 나는 그 ‘밥도적’을 그릇에 숟가락 자리가 나도록 긁어먹었는데 그 별미의 짭짜름한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몆해 전 나 절로 그 때의 엄마를 본따 닭알반찬을 만들어보았는데 소금냄새 뿐 아무 맛도 없었다. 닭알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내 입이 변했는지…

내가 알건 대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실 때에 “닭알은 녀자들이 먹는 것이 아니야.” 하며 닭알반찬에 저가락도 안 대더니 어머니 역시 그 습관이였고 녀동생에게도 차례지지 않다 보니 지금도 나의 녀동생은 닭알은 “비린내 나서 싫다”며 먹을 줄 모른다. 나도 닭알은 아버지들만 많이 잡숫고 남자애들이나 조금씩 맛보는 줄로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닭알은 여전히 우리들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객이다 보니 여러가지 품질의 닭알이 대량 생산되는 한편 인조닭알도 나오고 지어 가짜닭알도 나오는 현실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닭알맛도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알은 여전히 고급 식품으로 대우받아야 함이 틀림없을듯하다.

닭알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장래에도 사과와 함께 제사상 잔치상에 빠질 수 없는 흔하면서도 귀한 식품이다. 다만 남성들에게 영양보충으로만 쓰이던 닭알이 아니고 애들을 어르기만 하던 반찬이 아니다.

없어서 못 먹던 그 세월이 오늘은 싫어서 먹지 않는 시대로 되였건만 오늘도 나는 해산할 안해에게 닭알을 푸짐히 대접 못한 죄책감에 모대긴다. 닭알만 보면 떠오르는 아픈 추억이다.

나는 지금도 외출하면 아침식사 때 꼭 튀긴 닭알 한알씩 먹으며 그 옛날을 되새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연길시로간부국 업무과에는 로간부들의 지기이자 사랑스러운 “딸”로 불리우는 리휘영과장(54살)이 있다. 1998년에 리퇴직간부관리봉사사업에 종사한 이래 “책임”, “애심”, “진심”을 로간부사업의 척도로 삼고 로간부사업에 최선을 다해온 그는 로간부들의 수호천사로 되기...
  • 2013-07-11
  •     당겨라, 당겨라, 더 힘껏 당겨라   《우리 담임선생님은 활달하고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요》, 《리기적이지 않고 먹을것이 있으면 똑같이 나눠줘요》, 《글도 신나게 가르치고 제문도 재미있게 해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자습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줘요》, 《쌀밥과 마라탕(麻辣烫)작식법도...
  • 2013-07-10
  • 지난 몇년간 전세기 2000여회 취항, 베트남, 캄보쟈, 태국 등 나라의 항공사와 총대리계약을 체결, 중국려행업계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 전세기를 띄워 하늘을 주름잡는 멋진 사나이 리화경씨를 만난것은 바로 청도-인천 제주항공취항 1돐 기념행사에서였다. 저가항공사로 알려진 제주항공을 몇차례 리용하면서 깊은...
  • 2013-07-10
  • “사회구역봉사중심 건강실(健康小屋)이 있은 뒤로는 집근처에서 바로 무료건강검진을 할수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습니다.” “붐비는 병원에 갈 필요 없이 건강실에서 필요한 검사를 하고 의료자문도 할수 있어 무척 좋습니다.” 6월 27일 오전, 연길시 건공사회구역봉사중심 건강실에서 만난 ...
  • 2013-07-09
  • 로지에서 재배되는 블루베리는 꽃망울이 금방 떨어졌지만 시설재배로 블루베리열매판매까지 마친 정문충(59세)씨는 과학영농으로 수확의 단맛을 남먼저 맛보고있다. 일찍 1989년 이도백하림업국에서는 길림성농업과학원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블루베리의 원산지인 미국으로부터 블루베리를 도입하여 지난 2011년까지 줄곧...
  • 2013-07-09
  • 역경을 헤치고 창업한 김수매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문을 열면 보이는건 첩첩산이요, 들리는건 새소리뿐인 변경오지에서 태여나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성공의 대문을 열어젖힌 한 여성기업가가 있다. 그가 바로 료녕성 영구시 개발구 연은복장회사의 상무부경리 김수매(44세)이다.   1988년에 흑룡강성 동녕현...
  • 2013-07-09
  • 7월 5일 오전, 무순시경제문화교류협회가 주최하고 무순시조선족로년협회와 리석채조선족촌민위원회가 주관한 《2013무순시조선족로년인게이트볼친선경기》가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의 후원으로 무순시 심무신성 리석채조선족촌에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에는 무순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상무부회장 추영화, 무순시조선...
  • 2013-07-08
  •  의덕과 의술로 유명했던 이성원의사   이정열사의 아들, 독립유공자 후손 연금 향수   가목사시 우수노동모범, 화천현 인대대표 역임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기자= 흑룡강성 가목사지구에서 유명 소아과 의사로 명성을 떨쳤던 이성원 노인이 지난 6월 30일, 친지와 향우들 그리고 진료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축복...
  • 2013-07-08
  • 백혈병에 걸렸으나 거액의 치료비로 눈물짓는 박명혁학생의 가족 고중입시준비를 하던 16살 소년이 난데없는 백혈병진단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있다. 바로 연길시제4중학교 9학년 2반 박명혁학생의 딱한 사연이다. 지난5월16일, 고중입시를 한달남짓 앞두고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던 박명혁학생은 감기...
  • 2013-07-06
  • 20년 이상 독보조활동을 견지해온 10명 로인들을 특별표창하였다. 7월 1일, 목단강시조선족가두판사처에서는 《어미니 독보조》 설립 60주년을 경축하였다. 이날 모임에는 시민종국 김훈국부국장을 비롯한 시조선민족 예술관, 도서관, 은행, 병원, 주둔군 레이다부대, 형제단위 등 20여개 단위의 래빈대표들과 아름다운 조...
  • 2013-07-05
  • 30여년의 당령을 가진 연길시 북산가두 단진사회구역의 김순희(85살)로인이 재활용쓰레기를 회수하여 모은 돈으로 독보조로인들의 활동경비를 해결하여 주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고있다. 단진사회구역당총지부 조단서기의 말에 의하면 김순희로인은 당과 정부의 해당 정책을 료해하기 위해 신문학습에 각별한 중시를 돌...
  • 2013-07-04
  •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연길시 연남시장에는 이 가게 저 가게를 활보하며 다니는 한 녀자아이가 있다. 그가 바로 4급지체장애자 김금란(58살)씨가 어쩔수 없이 돌보게 된 5살짜리 녀자애 김지혜이다. “아이는 참 활발하고 령리해요. 하지만 호구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다는것이 너무나...
  • 2013-07-04
  • 흑룡강성 상지시에 살고있는 우리 집에는 금년에 45살인 불구자 아들이 있어요. 그는 원래 향정부에서 사업하였는데 1990년 12월에 남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다 차에 깔려 하지가 마비되는바람에 영원히 일어설수 없는 불구자로 되였어요. 그러다보니 늙은 우리 부부는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일체 뒤바라지를 해야 했...
  • 2013-07-04
  •   내가 70이 넘어서야 “은퇴”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직장에서 어떤 중요한 책임자로 활약하다 “은퇴”했을거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수십년간 우리 가정의 리발사노릇을 하다가 이제야 “은퇴”하게 되였다는 얘기다. 50여년전, 결혼했을 당시 남편...
  • 2013-07-04
  • 저희는 서란시 영안촌 조양툰에 사는 로부부 문인성(78),주영숙(75)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둘다 어머니가 없이 할머니슬하에서 자랐습니다. 1960년도에 서로 만나 결혼하여 남의 뒤방살이를 하다가 겨우겨우 9평방의 조그만 집을 내집이라고 마련해 입쌀 2근과 수수쌀 3근으로 살림을 시작했지만 고생을 락으로 살아왔...
  • 2013-07-03
  • “저는 그저 평범한 담임교원일뿐입니다. 담임교원이라면 다들 그렇게 합니다.” 안도현조선족학교 림명자교원은 연신 이런 말을 곱씹으면서 취재가 부끄럽다고 했다. “가냘픈 몸매지만 학생에 대한 사랑만큼은 풍성하기 그지없습니다. 탄복된다니까요.” 학교 주영산교장의 말이다. 1986년 연변사범...
  • 2013-07-03
  • 1등상을 받은 소품《고와도 내 령감, 미워도 내 령감》. 《웃으며 삽시다》를 장춘조선족로인들의 활동주제로 한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30일 장춘시조선족중학교에서 경연을 가져 로인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다. 장춘조선족로인협회 회원들이 자체로 창작공연하고 평심한 소품, 재담, 만담은 아름답고 행복하며 즐...
  • 2013-07-01
  • 려명촌 촌민위원회 사무청사 오랜만에 장춘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아릅답던 기억들이 점점 퇴색돼 가물가물하건만 변함없는것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나의 고향은 흑룡강성 라북현 동명향 려명촌이다. 현성과 8리 떨어져 있는지라 택시타고...
  • 2013-07-01
  • [타향이야기] 선이는 밀항선 밑창에서 피오줌을 누고 물벼락을 뒤집어 쓰면서 일주일이나 견뎠다. 밀항선에서 내려보니 관광지인 자그마한 섬 백령도였다. 인민페 6만원이나 주고 왔기에 급히 돈을 벌어야 했다. 처음으로 찾은 일이 모텔일이다. 백령도는 유동인구가 많아 모텔일이 더 쉽지 않았다. 한 일년가량 하루도 쉬...
  • 2013-06-29
  • 모아산삼림공원내에서 쓰레기를 줏고있는 로인뢰봉반 성원들. 당 창건 92돐을 맞으며 연길시 북산가 로인뢰봉반 13명 성원들은 26일, 모아산국가삼림공원에 가서 꿈나누기 이야기활동을 펼친후 《우리공원 우리 가꾸자!》며 공원내서 뢰봉따라배우기활동을 진행하였다. 로인들이 저마다 쓰레기줏기에 나섰지만 문명한 유람...
  • 2013-06-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