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광길에서 필자부부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일년내 주문하였던 각종 잡지들을 류별로 정리하다가 <건강잡지> 10월호를 그만 빼놓고 읽지 않은것을 발견했다. 하여 모든 일을 접어놓고 늦게나마 잡지를 펼쳐들게 되였다.
권두언에 림중수적(林中水滴)이 쓴 문장 《마무리를 잘하라》가 눈길을 끌어 읽었다. 1964년 일본땅에서 처음이요, 아시아주에서도 처음 열렸던 동경올림픽운동회가 끝나자 1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머물렀던 운동장이나 관람석에 실 한오리, 종이쪼각 하나도 없이 깨끗하여 세계를 놀래웠고 당시 방송하였던 텔레비죤록화테프를 다시 보고서야 확실한 사실임을 수긍하게 되였다는 내용이였다.
이 글을 보고 우리 가족 네 식구가 2017년 7월에 일본 사위의 초청으로 유람을 갔을 때의 일들이 떠올라 필을 들었다.
원래 환경의식, 환경보호, 생태환경 등과 같은 환경주의 어구는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류환경회의가 계기로 되였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세계 100여개 나라의 국가 수반들이 참석한 “지구환경정상회담”에서 재차 인류에게 자연에서 생기는 각종재변은 인류자체가 빚어낸 후과라고 경종을 울리면서 환경문제가 인류생존과 직결되면서 중시를 받게 되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보다 더욱 일찍부터 환경의식과 관념이 일반적인 생활중에 습관화 되였다는것을 볼수 있었다. 왜냐면 우리 가족일행은 려행단체로 유람을 떠난것이 아니라 친척방문차 유람이였으므로 대도시나 관광명소만 본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유롭게 어촌마을이나 농촌마을까지 돌아보았으므로 이러한 점을 알수 있었으며 약 한달동안 일본에 체류한 기간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철저한 환경의식이였기떄문이다.
우리들이 살아가고있는 곳에서는《소변금지》라고 쓴 패쪽이 있는 곳에서도 스스럼없이 생리문제를 해결하고 《흡연금지》라는 패쪽이 걸려있어도 대수롭잖게 담배를 피워물고《쓰레기 엄금》이라고 쓴 경고문 아래에도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는 현상들을 얼마든지 볼수 있다.
혼경보호의식이 낮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아무곳에나 비닐주머니를 버리는 통에 어떤 나무가지에는 알록달록한 “비닐꽃”이 피여 살풍경을 이루고 아무곳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는 악습이 보편화 되였으므로 그 만큼한 대책으로 크고 작은 골목이나 거리에서 비자루를 든 환경위생일군들을 볼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거리에서는 비자루를 든 청결공을 볼수도 없고 큰 도시 거리에는 쓰레기통조차 볼수 없었다.
일본은 농촌이든 도시든 물론하고 거리모습들이 깨끗했다
일본의 수도 도쿄는 세계 제2대 도시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이곳에는 2012년 2월 29일에 준공된 스카이탑(높이 634메터), 동경만무지개다리, 우에노 동물원, 시나가와 수족관 등 많은 관광명소들이 있어 수천수만명의 유람객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담배를 꼬나문 사람을 볼수조차 없으니 담배꽁초는 더욱 볼수 없고 그와 함께 청소부도 있을리 만무하다.
일본인들의 정신고향으로 불리우는 천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는 교토의 산기슭에는 3대 사찰로 유명한 청수사, 금각사, 은각사와 같은 명소들에는 일본인들과 외국인들의 인파가 밀물처럼 쏠리는 곳이지만 산간의 오솔길도 깨끗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큰 도시도 아니고 관광명소도 아닌 어촌마을이나 향촌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가 위주로 투숙한 곳은 일본중부 동해안쪽의 아이치현 니시오시 이시끼쬬라는 촌마을이였다. 이 마을에는 수백세대가 살고 있었으나 쓰레기장은 약 16평방되는 쇠그물로 된 창고와 같은 곳 한곳뿐이였다. 매일 아침이면 자가용차, 혹은 자전거에 엄격히 분류한 쓰레기주머니를 싣고 와 문을 열고 들어가 그저 던지는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는것이였다.
이런 모습도 쓰레기분류는 고사하고 쓰레기통이 있음에도 그 옆에 훌훌 던지고 가는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풍경이였다.
일본의 거리에는 쓰레기통이 없을뿐만아니라 청결공들도 보이지 않는다
2017년 7월 17일은 일본의 《바다의 날》이여서 사람들이 많은 곳인 해변가에서 민속놀이를 하였고 7월 22일 중복날 저녁에는 일본 중부 동해안의 작은 도시 기라해변가에서 굉장한 꽃불놀이가 펼쳐져 주변의 향촌마을의 수천수만의 구경군들이 초저녁부터 등대주변에 모여들어 꽃불구경을 했다. 그런데 구경이 끝나고 사람들이 떠나자 역시 1964년 도쿄올림픽운동장과 관람석과 마찬가지로 속담처럼 “개 핥은 죽사발”처럼 말끔한것이였다.
일본에 체류하는 기간에 신간선도 타보고 전철도 타보고 자가용으로 여러 곳을 다닐때 차창밖을 내다 보노라면 어느 산이나 나무들이 산을 덮고 골짜기가 메여지도록 소나무들이 숨이 찰 정도로 꽉꽉 들어 차고 있었으나 간벌은 고사하고 톱 하나 도끼자루 하나도 대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풍경이 또한 필자의 감탄을 자아냈다. 일본에서는 수림을 개발한다는 법도 없으니 그럴수 밖에......
7월말 우리 가족은 귀국하려고 또다시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갔다. 간사이공항은 인공섬으로 된 공항으로 세계에서도 손꼽는 아름다운 국제공항이였다. 7월초 이 공항에 착륙하였을때에는 몰랐으나 귀국시 공항 대기실에 들어섰을때에는 이곳이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중국관광객들로 북적이였다. 알고 보니 7월달 방학기간 려행단으로 온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태반이였다.
필자의 당시 생각이라면 더욱 많은 중국사람들이 일본에 와 일본사람들의 환경의식과 중국사람들의 환경의식을 비교하고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T.폴러의 명언 《비교되지 않고 좋고 나쁜것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광하/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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