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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들의 자애로운 ‘할머니’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5월22일 15시12분    조회: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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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 배영애의 차세대 교육사랑

2015년 북경에서 열린《중국홰불》잡지사 창간 20주년 대회에서 발언한 배영애, 회의 기간 그는 중국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고수련의 접견을 받았다.

“아무리 죄를 졌다 해도 우리들의 차세대가 아닙니까?”

이는 길림성미성년범관리교육소(이하‘교육소'로 략칭) 8명 소년범의 자애로운‘할머니'인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 배영애(裴永爱)의 페부지언이다.

지난 15년 사이에 배영애는 7명의 소년범과 1:1로 짝을 맺고 그들에게 진정어린 사랑을 베풀어왔다. 올해에도 그는 또 한명을 맡았다. 가족의 방치 지어는 버림을 받은 철창 속 소년범들에 대한 배영애의 사랑은 자기의 친‘손군'을 대하듯 그토록 지극했다.

시작이 절반, 꺼질줄 모르는 열정

처음 남관분회에서 솔선적으로‘소년범 돕기'활동을 검토할 때 배영애는 사상파동이 컸다. 장춘시제1식료품공장에서 재직 시 우수당원, 기준병, 3.8붉은기수 칭호를 수여받았던 그였지만 “좋은 애들도 못다 돕겠는데 하필 철창 속의 범죄자들을 도와야겠는가”하는 의논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정작 교육소에 가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였다. 2004년 교육소에 갇힌 500여명 소년범중 조선족이 105명이였고 부모가 없는 아이가 39명이나 되였다.

배영애는 첫 짝으로 소년범 왕일(가명)을 맡았다. 왕일은 한족 아이였는데 잘 생기고 키도 컸다. 알아보니 어려서 부모가 리혼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도적질을 하다가 어느 날 경찰에 잡혀 교육소에 들어갔다.

“왕일이 부모의 버림을 받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세상뜨지 않았더라면 기로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입니다!”왕일의 처경을 너무나도 안타깝게 여긴 배영애는 늘 이렇게 말하며 속마음을 태웠다.

알고 보니 교육소 소년범들은 거의 다 부모로 인해 가정이 파멸된 후 사랑이 결여한 채 절주 없이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에 착오를 범한 애들이였다.

“날 때부터 나쁜 아이였겠습니까?”이렇게 반문하는 배영애, 그들이 철창 속에 갇힌 사유의 자총지종을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소년범들의 자애로운‘할머니'로 되여 그들에게 가족 같은 사랑을 베풀기로 작심했다.

소년범의‘할머니'로 된 첫해부터 배영애는 해마다 여러번 교육소에 가‘손군'들을 만났다. 번마다 려행을 떠나는 것처럼 큰 보따리를 메고 갔다. 보따리 안에는 생활용품, 학습용품이 들어있었는가 하면 뢰봉서적도 들어있었고 고기졸임, 김치, 고추장, 만두 등 맛나는 음식들도 들어있었다. 그래서 애들은 무척 배영애를 좋아했다.

왕일은 키도 몸매도 배영애의 아들과 비슷했다. 집에서 멋진 신발이나 멋진 양털내의를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 배영애는 왕일이 마음에 걸렸다. 왕일에게 똑 같은 걸 사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아들의 옷을 갖고가 왕일에게 입히군 했다.

왕일은 배영애만 보면 그냥 얌전하게 히죽이 웃어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감스러운 일이 생겼다. 왕일이가 출옥한다는 날에 며칠전부터 정성껏 준비해둔 선물을 갖고 남관분회의 주임 장순자와 함께 교육소에 가보니 아쉽게도 왕일은 이미 떠나고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부랴부랴 장춘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여기저기 아무리 찾아봐도 왕일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또 뻐스터미널에도 가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그들의 온몸은 땀벌창이 되였다. 너무나도 애석해 배영애는 마구 통곡치고 싶었다. 그날 배영애도 울고 장순자도 울었다.

“그 애는 특별히 가련한 애였습니다. 장춘에 친척도 없었고 수중에 돈도 없었지요…” 배영애는 지금도 그 애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단다.

송이(가명)는 조선족아이였다. 키도 작고 얼굴도 검고 별로 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러번 만나 얘기를 해보니 아주 인정스러웠다. 송이는 부모가 리혼한 후 홀로 생활하다가 범죄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배영애가 교육소에 가면 송이는 번마다 얼굴에 웃음꽃을 활찍 피웠다. 배영애가“할머니 안 보고 싶었어?”하고 물으면 송이는“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소리를 높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송이가 출옥하는 날, 교육소의 대문이 열리자 송이는“할머니”하고 웨치며 자기를 마중간‘할머니'를 향해 달려나왔다. 송이는 배영애가 사준 새 옷과 새 신을 신고 나왔다. 옷이 몸에 맞고 신발이 발에 딱 맞으니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허리띠가 없어 바지가 좀 처져내려갔다. 배영애는 즉시 자기의 신발끈을 풀어 송이의 허리띠로 매여주었다.

그날 배영애는 갖고간 두부를 송이한테 먹였다.“이걸 먹으면 다시 철창 안에 안 들어간다.”롱이 섞인 배영애의 말에 송이는 그만 감격된 나머지 눈시울을 적셨다.

송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각자 한국과 로씨야에서 돌아와 아들을 마중했다. 그들 부부는 눈물을 머금고 배영애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러면서“꼭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떠날 때 송이의 부모는 배영애에게 지페 몇장을 드렸다. 그러나 배영애는 그 돈을 다시 송이의 손에 쥐여주면서 “이걸로 손전화를 사서 할머니한테 전화를 자주 하라”고 부탁했다. 그 후 송일은 정말 그렇게 했다. 대련에서 일하는 송일은 지금도 전화를 자주 걸어온다. 배영애도 전화에서 늘“너 잘만 하면 전도가 유망하다”고 말해주면서 송이에게 힘을 실어주군 한다.

왕삼도 불쌍한 한족아이였다. 아버지가 살인범으로 사형당하고 어머니가 재가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안 지나 어머니도 세상을 떴다. 교육소에 들어온 후 왕삼이를 보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삼은 늘 우울하고 말도 하기 싫어했다.

배영애를 비롯한‘후원할머니'들이 나타난 후부터 그 애는 차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후 표현이 좋았고 앞당겨 출옥하게 되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 지가 문제였다. 남관분회에서는 교육소의 령도와 토론하여 그 애를 연변에 있는 집까지 데려다 향정부와 이붓아버지에게 맡기기로 했다.

왕삼이 고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이붓아버지와 촌당지부 서기가 따뜻이 맞아주었다. 촌에서는 왕삼을 당지 양로원에 배치하여 출근하도록 했다.

“앞으로 5년, 10년 더 맡을 것입니다”

배영애는 어느 날, 소년범 강사(가명)의 생일을 쇠주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생일날에 특별히 격동되군 합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타서 아이들을 새 사람으로 되게끔 인도합니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강사는 초불을 부는 순간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는“고맙습니다. 꼭 잘해 사회의 쓸모있는 사람으로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로임 2000여원으로 정말 조련잖았겠습니다”

기자의 얘기를 들으며 배영애는 웃으며 말한다.“기실 저는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마음 뿐입니다. 그 애들이 새파란 어린 나이에 착오를 범해 철창살이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아까와서요.”

배영애는 올해 82세이다. 그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언제나 락으로 여긴다.

“저는 돈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여생을 차세대관심사업에 몰부으렵니다. 5년이고 10년이고…”

배영애의 인생관, 가치관이 묻어나는 진솔한 고백이다.

2015년 《전국차세대관심사업선진사업자》 영예증서를 수여받은 배영애

배영애가 수여받은 《전국차세대관심사업선진사업자》 영예증서와 메달

/ 길림신문 박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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