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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6월24일 14시52분    조회: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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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
- 글 / 정미화 -

 

 

  "엄마,우리 온천 가요."

  "온천?어느 온천?"

  "군마쪽으로 가려는데...어디로 가겠어요?"

  "글쎄, 구사쯔는 가보았는데, 참 좋았어..."

  "이가호와 구사쯔, 어느쪽으로 갈가?"

  일년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딸이 간만에 온천여행을 가자고 제안해왔다. 그래서 주말에 이가호온천으로 가기로했다. 딸이 직접 운전까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어찌나 기쁜지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있다.

  떠나기 전날 저녁 , 나는 커피잔을 들고 책상앞에 마주했다.

  오늘따라 달력옆에 놓여진 사진 한장이 자꾸만 눈에 안겨왔다.

흑룡강신문

  일본에 올때 수첩에 꼭 끼워서 지니고 온 사진 한장, 엄마아빠손에 꼭 지워진 한 녀자애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사진, 한참 들여다보던 나는 어느덧 15년전의 그날로 거슬려 돌아가본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10살밖에 안되는 딸애는 엄마가 일본에 간다는것이 얼마나 헤여져있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채 이방에서 저방으로, 아빠한테 달려갔다 엄마한테 달려와 안기기도 하며 무작정 좋아하였다. 그것을 보며 나는 속으로 눈물을 떨구었다. 엄마아빠하고 같이 있으면 이렇게 좋아할 딸애를 떼여놓고 떠나야 하다니, 꼭 딸애앞에서 죄인이 되는 느낌이였다.

  하지만 떠나기로 맘먹었다. 떠나는 날 연길비행장에서 딸애는 덩덩한 김에 엄마와 빠이빠이하고는 외할머니 한테로 달려가 외할머니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눈물이 글썽해진 가족과 친구들을 뒤에 남기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먼 길에 나서게 되였다. 미래에 대한 동경과 부푼 꿈때문에 려행백 하나 끌고 가족, 친구들 그리고 소학교 2학년밖에 안되는 딸애를 고향에 남겨두고 문화 정치 경제 모든게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동경땅을 밟았다.

  려행이라면 좋았겠건만... 처음에는 모든것이 신기하고 설레기만 하던 일본에 도착한지 일주일정도 지날때무렵쯤부터는 모든것이 너무나 적응되지 않았다. 꿈에서도 몸서리치며 울어본적이 한두번 아니였다. 왜 울면서도 버티려 애썼던지? 그러나 버틸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간호학원 졸업하고 운좋게 녀자들 철밥통이라 불리는 연변병원에 배치되여 꽃다운 청춘을 만끽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뿌리치고 좋은 작장에서 탈출하여 그 시대 젊은이들의 로망인 일본에 막상 발들여놓고 보니 사람이 그리운건 둘째치고 초밥과 생회를 제외하곤 사탕가루가 많이 들어간 일본료리는 너무나도 습관되지 않았고 하루에 20번도 더 되는 스미마센(미안합니다)아링아또우(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는것조차 거치장스럽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지곤 했다.

  간신히東京女子医科大学院看護学専攻科에서 1년간이란 행복하면서도 신비스럽고 지루한 학업생활을 마치게 되였다.

  일년이 지나 귀국하여 국내의 본직장에서 다시 일하게 되였었는데... 복귀하여 한달 지나도 전혀 안착할수 없었다. 어쩐지 일본이라는 남의 나라가 내 꿈을 이룰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난 결국 내 꿈을 따라 리유없는 집착에 못이겨 또다시 고향을 떠나리라는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두번째로 떠날땐 웬만한 쉬운 결정이 아니였다. 철밥통 직장을 사직해야 했고 또다시 귀여운 딸애와도 오래동안 헤여져야만 했다. 이번에 딸애는 엄마와 떨어져사는 아픈 경험을 해봤던지라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독하게 마음 먹어야 했다. 앞으로 딸한테 더 잘해주기 위해선 고생을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울고있는 딸을 떼여버리고 끝내 재출국의 길에 올랐다.

  희생하는것이 넘 많아서였던지 동경에 다시 온 첫 한달간은 련속 내가 탄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지고 절벽에 부딪치는 악몽을 꾸곤 하였다. 신경을 너무 곤두세웠던 탓인지 왼쪽 눈까플이 자꾸 뛰여 아주 불편하였다. 그래서 후회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그냥 앞으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대학원 다닐려고 식당아르바아트 하면서 돈을 모으려 애썼다. 그러나 식당일하는 경험이 없었던지라 일솜씨가 서툴러서 돈도 제대로 모을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간호사 자격증이 없기에(간호사는 국제자격증이 없음) 시간당 천엔밖에 안되는 식당일 계속 할수밖에 없었다. 소질이 없는 일을 하다보니 돈도 모을수가 없었고 피곤하여 영어공부도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피곤할때면 전차에서 곤히 잠들어버려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종착역까지 가기가 일쑤였다.

  딸애도 점점 커서 초중, 고중 올라가다보니 써클비에 복습반비에 비용이 엄청 많아지면서 경제적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치하게 공부할때가 아니였다. 그래서 대학원준비 하다가 그만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하여간 국내에서 못해본 정신적, 육체적고생… 도저히 한입으로 더 말할수 없었다. 그런 고생은 체험해본 사람들만이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할수 있는 일을 하자(やりたいことをやるのではなくできることをやれ)

  차라리 간호사 자격증 따서 국내에서의 위치만큼은 되돌려놓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간호사자격증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서류준비가 여간 복잡하질 않았다. 시험공부보다 서류심사의 곤난이 더 막심했었다.

  일하면서 중국으로 몇번이나 오고가며 열심히 서류를 준비한 끝에 일본간호사시험자격이 무사히 통과되였다. 노력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너무도 기뻐서 한편 출근하면서 시간만 있으면 시험복습에 마력을 가했다.

  휴일이면 동경이케부쿠로(池袋)와 요코하마(横浜)를 오가면서 시험준비복습반의 비싼 학비와 차비를 자기절로 해결하며 일본의 어린 간호학원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전차에 앉아서도 처음부터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책에서 눈이 떠나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밥먹고나면 또 책만 들여다보았다. 그리하여 시험 끝나고나서 복습자료를 정리하였는데 내가 훑어본 복습자료만 쌓아보니 내 키를 넘어갈 정도였다.

  짧은 시간내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집중공격으로 공부한 끝에 끝내는 일본에서의 간호사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였다.

  파란만장을 겪어서 얻은 자격증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것이였다.

  “해야할 일이라면 차라리 즐기며 하자“

  다시 간호현장에서 일하게 된것이 즐겁기만 하였다. 일본 직원들이 말하는 스트레스고 피곤이고 나에겐 없었다.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일하면 피곤이 없을수 없었겠건만 아마 즐거움이 그 피곤을 다 말아버려서 로출되지 않았을것이다.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이거였구나. 중국과 일본을 거쳐가며 내 손의 간호를 받아가며 병이 호전되여 나아가는 수천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볼때마다 성취감에 젖어든다.

  나는 일본에서 인생에서 제일 보귀한 청춘의 반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고향의 친구들은 모두 오붓이 가족끼리 모여앉아 명절을 보내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때 휴일이 따로 없이 달리고 달렸다.

  내가 한창 내 설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할때 딸은 우리 어머니 슬하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난 딸을 일본의 약과대학원에 보냈다.

  일년전 딸은 약학석사과정을 마치고 순조롭게 일본제약회사 연구직으로 취직하게 되였다. 아침마다 서복차림에 공무가방을 손에 들고 문 나서는 딸을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게다가 또 이렇게 즐거운 려행까지 같이 가자고 하니...

  난 행복하다. 눈물겹도록 행복하다. 행복이란 원래 이렇게 쉬운거였구나.

  행복감에 도취되여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는사이 어느새 손에 든 커피가 다 식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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