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우리 동네 골목 풍경선(량철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19일 09시33분    조회:176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생 70 고래희’ 라고 하던데 내 나이가 벌써 73살 된다.

“아이들은 날(日)이 빠르고 해(年)가 늦고 로인들은 날이 늦고 해가 빠르다”는 말과 같이 실로 감짝 사이에 한해가 지나니 말이다.

젊어서는 희망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더니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어린 시절 우리 사는 동네는 층집이라곤 거의 없다. 모두가 20여평방짜리 단층집에서 살았다.

게다가 줄집이고 집 면적이나 집안의 구조도 대체상 같았다. 심지어 앞마당 구조까지 거의 비슷했다.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에서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있는 필자 량철수(오른쪽 두번째)

 

 

그 때 집들은 집과 집 사이의 간벽이 얇은데다가 밀봉까지 잘되지 않아 조용할 때면 옆집의 말소리도 다 들렸다. 집집마다 부엌쪽 앞마당에 자기 집 너비 만한 자그마한 헛간이 있었다.

집과 집 사이를 막지 않고 자그마한 공간을 두고 집집이 이어졌는데 그 공간이 마당이자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이기도 했다.

줄집의 중간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여러 집들의 문 앞을 지나야 했는데 집안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누가 지나가는 지를 알 정도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철이다. 중간 집에서 사는 남정이 술에 취해 앞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속옷 바람으로 구들에서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젊은 각시가 되려 얼굴이 뜨거워나 어쩔줄 모르는 상황이니.

10여호 가구가 좁은 공간에서 밀집거주하며 이웃사촌처럼 지내면서 큰 말썽 없이 화목하게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사회가 바로 오늘 말하는 ‘조화로운 사회’가 아닌가 싶다.

당시 쌀과 식유는 물론 석탄까지 배급(통장)제로 하다 나니 날씨가 덥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석탄을 절약하느라 집에 불을 지피지 않고 밖에서 풀무로 밥을 지어 먹었다. 흙으로 만든 풀무나 나무로 만든 풀무가 집집마다 없어서는 안되는 생필품으로 되였다. 지금은 민속전시관에 가야만 그런 풀무를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석탄콕스도 어지간히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달에 한집에서 석탄을 400키로그람씩 공급해주었는데 겨울에 쓰기 위해서 여름에는 석탄을 절약해 썼다.

그 당시 매건(煤建)에서 계서(鸡西)탄, 화룡탄, 량수탄을 공급했는데 사람들은 계서탄이 비록 값은 비싸다고 하지만 화력이 세고 콕스가 많이 난다고 했다. 석탄재도 막 버리지 않고 꼭 재무지를 다시 뚜지며 작은 콕스알갱이까지 모조리 주어왔다.

밥 할 때가 되면 집집마다 앞마당에서 아낙네들이 잽싼 솜씨로 풀무로 밥을 지었다. 그 때의 밥 짓는 정경이야말로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선이라 하겠다.

연기가 사처에서 스멀스멀 피여오르고 절주 있는 풀무소리에 따라 탁탁 튀는 불꽃, 깔깔거리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 구수한 밥향기…

어느 하루 저녁, 네번째 집에서 사는 영봉이 엄마가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하도 이상하여 그 집에 들어가보니 석달 난 어린애가 낮부터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였는데 열이 더 오른다는 것이였다. 남편은 출장 가고 젊은 각시가 어쩔바를 몰라했다.

영봉이 엄마는 다짜고짜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뒤늦게야 이를 알고 동네 아낙네들이 제 집 일처럼 병원으로 달려가 어린애 상황을 알아봤다.

의사에 따르면 아기가 급성 페염에 걸렸다 한다. 제때에 구급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번했다며 동네분들은 혀를 찼다.

우리 옆집에는 ‘동네아주머니’라 부르는 분이 살았는데 그 분은 우리 어머니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분은 해주 김씨란다. 마음씨가 곱고 인품이 후한 ‘동네아주머니’는 나를 몹시 귀여워했는데 색다른 음식만 있으면 나부터 챙겨주셨다.

이웃들과 나누던 따뜻한 정, 사람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생활, 한마음 한뜻으로 동네를 살찌우던 그 시절…

오늘따라 인간미가 넘치던 그 때 그시절의 우리 동네가 생각난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세 언니들은 나보다 12살, 10살, 5살 많아서 나는 누구보다도 언니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랐다. 아쉬운 것은 나이 차이가 커서 한집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이 짧은 편이였고 큰 언니가 학교문을 나서면서부터는 네 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앉기도 쉽지 않았다. 큰 언니는 으로 농촌에 내려가 6년동안이나 힘든 집체호 생활...
  • 2019-07-24
  • 캐나다 조선족 협회에서는 얼마전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G로즈 로더팍에서 여름 야유회를 개최하고 조선족 동포사회의 단합과 정보교류및 친목을 도모했다. 이번 행사는 김춘식 회장, 최남 수석 부회장, 최동춘 비서장을 비롯한 협회 운영진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여러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하에 비록 짧은 만...
  • 2019-07-19
  • 첫째날의 기록 ...흥분과 감격속에서 맞이한 고향 프랑카드를 들고 공항에 마중나온 친척 친우들 나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선샤인(햇빛) 스테이트(주)라 불리우는 플로리다주 수부 탈라하시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탈라하시는 시정부와 대학교중심의 중소형 행정도시에 속하며 바다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4...
  • 2019-07-19
  • 손익규,윤송죽 부부가 막내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장면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철 기자=손익규, 윤송죽 부부는 지난 1961년부터 옌타이시에 거주하면서 옌타이조선족사회의 산 증인으로 불리며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옌타이시 중조어업협정 옌타이판공실 통역, 옌타이시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 옌타이...
  • 2019-07-18
  •     - 글 / 고향련 -   2000년 4월 25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중국땅을 떠나서 일본 류학길에 올랐다.   당시 한창 류행됐던 일본류학의 붐에 떠밀려서이기도 하고 4년간 공부했던 회계전업이 나하고 맞지 않은듯 하여 다른 공부가 하고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보다 중요한건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
  • 2019-07-17
  • 90년대 초만 해도 연변에는 가정용전화기가 없는 집이 태반이였다. 그때 나에게는 간절한 바램이 하나 있었다. 집에 전화기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정든 모교이자 사업터인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에서 조선어문 교원으로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결혼한지 2년반밖에 안 되는 남편은 한국 류학길에 올랐다. 중한수교 이듬...
  • 2019-07-16
  •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시골마을을 다시 찾은 박춘금,그녀의 고향건설 다시 시작된다 연길에서 찾아온 배구애호가들이 배구를 즐기고 있다. 지난세기 80년대부터 고향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고향 떠나 룡정으로, 연길로 가기 시작하더니 점차 더 멀리 청도로, 북경으로, 상해로, 광주로 떠났고...
  • 2019-07-11
  • [일본글짓기응모]    나의 행복 - 글 / 정미화 -       "엄마,우리 온천 가요."   "온천?어느 온천?"   "군마쪽으로 가려는데...어디로 가겠어요?"   "글쎄, 구사쯔는 가보았는데, 참 좋았어..."   "이가호와 구사쯔, 어느쪽으로 갈가?"   일년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딸이 ...
  • 2019-06-24
  • 얼마전 한 로인과 그의 가족들이 통화현조선족학교를 찾아 목숨을 구해준 두 학생에게 감사기를 전했다. 5월 29일 점심, 통화현조선족학교 9학년 학생 권예령, 안미현 두 학생은 통화현 산수화성 아빠트 서쪽 교통강부근에서 60세좌우되는 녀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발견하였다. 불시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어떤 사...
  • 2019-06-24
  • 57년전에 꼬마친구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해방군 아저씨(뒤줄 좌가 김일룡, 앞줄 우가 박정숙, 중간이 최송림) 57년 후 만난 해방군 아저씨와 꼬마친구(좌로부터 배영애, 김일룡, 최송림, 박정숙) 지금으로부터 57년전인 1962년, 길림성 무송현에서 장춘에 와 병 치료를 받고 있던 해방군 전사가 있었다. 그는 조...
  • 2019-06-12
  •     요즘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곧잘 듣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려행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소리높이 대답한다.        몇달전에도 나는 친구들과 함께 5박6일의 일정으로 두바이려행을 다녀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을...
  • 2019-06-03
  • 저자는 10년의 수련 끝에 정상을 앞둔 36살 신경외과 의사다. 사회에서 인정 받고, 일류대학교수 자리를 제안 받았다. 저자가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그는 페암말기 선고를 받는다. 그는 대학 시절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고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더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의사가 되어서 문학...
  • 2019-05-31
  • '어린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거에요' 6.1절을 맞으며 연길 청아성형외과(원장 안향화)에서는 21일, 20여명의 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성금 1만원을 연변TV "사랑으로가는 길(219회)"프로를 통해 빈곤가정의 어린이에게 전했다.   안향화 원장은 "우리 청아성형외과는 외모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 2019-05-24
  • 오늘은 나도 자랑많은 추억렬차의 기관사가 되련다.추억의 렬차를 몰고 서서히 현재를 떠나 고동을 울리며 칙칙폭폭 과거로 추억려행을 떠나련다.추억의 벌판을 지나고 추억의 고개를 넘고 추억의 굽이를 돌아 녀인들의 애환이 서린 아득히 먼 70년대 생산대의 벼모 꽂는 현장으로 가련다. 안도현 석문공사 무학대대에서 태...
  • 2019-05-23
  • 장춘시조선족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남관분회 배영애의 차세대 교육사랑 2015년 북경에서 열린《중국홰불》잡지사 창간 20주년 대회에서 발언한 배영애, 회의 기간 그는 중국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고수련의 접견을 받았다. “아무리 죄를 졌다 해도 우리들의 차세대가 아닙니까?” 이는 길림성미성년범관리교...
  • 2019-05-22
  • 김선생가사도우미쎈터 대표 김경자의 퇴직 후의 보람찬 인생이야기 김경자 프로필: 1959년 반석현 출생 반석사범학교 영어전업 전공 반석3중 영어교원, 담임교원 력임 길림조선족중학교 영어교원 2014년 길림조선족중학교에서 퇴직 ...
  • 2019-05-08
  • 최근 인터넷에서 한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바로 두 다리가 없는 예쁜 소녀이다. 그녀는 물구나무서기, 팔굽혀펴기부터 스케이트보드, 농구, 배드민턴, 수영까지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 소녀의 이름은 웨이메이뉘(渭梅女)이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그녀의 미소에는 자신감...
  • 2019-05-03
  •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내가 18살 되던 해에 음력설을 닷새 앞두고 아버지의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한가지 감성적인 처사로 하여 받은 아버님의 첫 꾸지람이다. 하지만 그 꾸지람은 해마다 설날이 돌아올 때면 나의 머리 속에 기분좋게 떠오른다. 한것은 그 꾸지람 뒤에 아버지의 너그러운 처사가 이어져 나를 ...
  • 2019-04-22
  • 고요하던 집안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은 받는 사람이 없자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다. 복녀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느라고 처음 울린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무섭게 허둥거리며 전화기가 놓여있는 탁상쪽으로 뛰여갔다. 말이 뛰여갔지 걷는 것과 진배없었다. 복녀는 한달째 아침에 ...
  • 2019-04-19
  • 청명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산소에 다녀왔다. 이번 청명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잠깐 절만 올리고 급하게 산소를 떠났다. 제사는 불과 10분만에 마치고 나머지는 산 사람들의 술자리다. 저승의 사람들을 위한 제사인지 이승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포의 자리인지 올해따라 돌아보게 된다. 마침 호텔에서 학교 선배님 부부를 만...
  • 2019-04-09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