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청춘노트-유혁]나에게 문학이란 그 의미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2월16일 08시22분    조회:108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저세상으로 떠난 지 어언간 4년이 된다.

생의 마지막 반년을 아주 못된 구강암으로 앓으시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미이라처럼 말라가던 아버지.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시면서 오직 고통으로 절여진 퀭한 두 눈으로만 겨우나 의사표달을 하시던 아버지. 나는 세상에 이런 절망의 눈빛도 있구나, 태여나서 처음으로 소름 끼치게 느꼈고 분명 나의 아버지의 눈빛이지만 낯설었고 무서웠다.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렵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힘겹게 끄덕끄덕 대답을 하시던 나약한 아버지. 그렇게 반년을 앓으시다가 어느 날 조용히 숨을 거두셨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 날 나는 아버지의 유언 대로 유골을 풍경이 수려한 바다가에 뿌렸다.

그 후 아버지에 대한 고운 추억 미운 추억들을 정리해 조만간 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을 남기려 했으나, 몇번인가 서두를 뗐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면서도 4년 동안 도무지 글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글을 조금이나마 썼다는 아들이지만 어쩐지 나를 제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한편의 추모글조차 써내려 갈 수 없었던 바보 같은 나 자신. 그런 스스로의 한계가 아버지께도 한없이 미안했고 리기적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또한 처음으로 글이란 것도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실망스럽게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글쓰는 사람인가고 의심했고 그 의심이 날카로운 칼이 되여 내 자존심을 사정없이 찢어놓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완성의 추모글을 마지막으로 그 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2

어릴 때부터 문학을 각별히 좋아해서 책도 많이 읽었고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시도 쓰고 수필도 써서 여러 문학지에 발표도 했고, 각종 문학상도 수상하고 책도 출판했고 연변작가협회에 이름도 등록되여있지만 솔직히 ‘문학’이란 단어는 나의 부끄러운 수준으로 다가설 수 없는 애증의 존재로 남아있다. 잡고 싶으나 잡혀지지 않는, 그러나 어느새 잡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애증의 존재.

문학이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인생이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삶이라는 기나긴 길을 걸으면서 부단히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고독한 시간 동안 문학이란 이 아름다운 존재가 항상 나를 동반해주었다. 문학이 나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부끄러움이란 무엇인지, 한계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주었다. 문학이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잡초가 무성한 허허벌판이였을지도 모른다. 문학이 한알 꽃씨를 가져와 꽃을 피워주웠기에 자그나마 나만의 인생의 꽃밭을 아기자기 가꿀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문학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 그 의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 삶이 평범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적어도 이 생에 그 누가 함부로 가져갈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이 생이 끝나는 그 순간 이 세상을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것 같은 무의미한 마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무 것도 없는 나에게 문학이 필요했다. 문학을 통해 큰 욕심없이 평범하지만 소소한 의미있는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으면 희열에 벅차 시를 썼고, 비가 내려 괜히 우울해져도 시를 썼고, 첫사랑 고백하는 날에도 심장이 쿵쿵 뛰는 긴장함과 얼굴 뜨겁게 달아오르는 수줍음을 글로 적었고, 무릎 수술로 몇 달 간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힘든 시간도 글을 쓰면서 이겨내곤 했고…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께서는 “한 사람의 상상력은 수천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는 추억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문학의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가 아닐가? 공감이다. 나는 내가 욕심없이 적은 글들이 문학이라는 거창한 높이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한 인간의 평범한 감동으로 나비효과마냥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였으면 좋겠다.

나에게 문학은 그 어떤 성공과 상관없이 삶의 의미 그 자체였다.

3

이런 내가 5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원고청탁으로 노트북을 열고 원고폴터를 열어봤더니 나의 마지막 원고폴터가 2014년도, 클릭하여 보니 그것도 텅 비여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년 동안 나에게는 아무런 글이 없었다. 갑자기 감전된 듯 발끝부터 머리까지 소름이 끼쳤다.

나는 무엇하고 있었는가?

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조차 제대로 못 쓴다는 그 미안함에 민감하게 상처를 받고 의도적으로 글쓰는 그 자체를 멀리하면서 5년을 지냈다. 그동안 새로운 도시로 옮겨와 새 환경을 익혀가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익숙한 직장을 떠나 창업을 하면서 울고 웃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솔직히 글로 기록된 나의 삶이 없었다는 유감으로 마음이 차거워졌다.

나 자신의 한계로 인해 의식적으로 문학을 멀리했지만 문학은 말없이 멀리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전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필을 접었지만, 5년 후인 지금은 그동안 필을 들지 않았던 텅 빈 나의 삶에 대해 미안해졌다. 나는 이 5년 동안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기록하고 증명하는 그 자격, 더 나아가 그 의미마저 솔직히 잃어버린 셈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를 향한 글이 되고 잠시는 모르고 있어도 언젠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그 도리를 나는 정녕 모르고 지내왔다.

나는 참 바보였다. 5년 동안 바보가 된 자신을 의식조차 못하고 바보처럼 살았다.

5년 전에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5년 후인 오늘에는 또 다른 의미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4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는 글이 좋다. 문학이 좋다. 좋아서 쓰고 쓰고 싶어서 쓰며 더 잘 쓰기 위해서 쓴다. 솔직히 채 하지 못한 얘기도 많고 해야 할 얘기도 많다. 나에 관한 얘기 뿐만 아니라 욕심일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남의 얘기도 쓸 것이다. 나의 글이 서로에게 추억이 되도록 초심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고 싶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미완성의 추모글, 그때는 그렇게도 쓰기 힘들었던 추모글, 어쩌면 나의 한계로 이후에도 아버지에 대한 모든 추억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추모글을 끝까지 완성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미완성 그 자체가 문학이 아닐가?

문학은 한줄기 빛, 아무리 못된 절망 속에서도 가냘픈 한줄기나마 희망을 줄 수 있는, 등대마냥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방향과 마지막 용기를 줄 수 있는 그것이 문학의 존재이고 리유인 듯싶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였”듯 결국 긴긴 세월 동안 문학은 말없이 나에게도 이런 존재로 남아있었구나!

5

출근길에 커피점에 들렸다. 주문을 끝내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점 배경음악으로 Paul Kim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갈게, 바람이 좋은 날에 해살 눈부신 어떤 날에 너에게로 처음 내게 왔던 그날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 해.”

이 글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문학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갈 것 같다. 항상 사랑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아파하면서!

그리고 나는 나를 축복한다.

유혁

본명 김혁(金赫), 1987년 출생

흑룡강대학교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하이난 싼야시에 거주

《도라지》 2019년 제2호/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기획 [한국친구 길림체험]— 쌀의 이야기 (2) 구태편(하) 전통 쇠가마에 성공한 쌀밥, 실패한 누룽지 안내원이 전람관 2층에서 리모콘을 누르자 건물의 북쪽 창문에 걷혀져있던 커튼이 한번에 량쪽으로 쫙 젖혀지더니 초대형 유리 창문 밖으로 일망무제한 황금물결이 한눈에 안겨왔다. 일행은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 2021-08-27
  •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등장한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막바지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 제239기 촬영이 한창이였다. 그 현장에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들이 주역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자선총회와 함...
  • 2021-08-11
  • --퇴직 후에도 꾸준히 사회봉사를 이어가고 있는‘뢰봉식’부부 박철원,김봉선의 이야기 박철원, 김봉선부부는 퇴직 후 ‘연길시 뢰봉학습 10대 선진'으로 표창받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락으로 삼고 퇴직 후에도 꾸준히 사회봉사를 이어가면서 여생을 불태...
  • 2021-08-06
  • 한 평범한 공산당원 최청숙선생의 고백 봉사와 헌신으로 공산당원의 본색을 지켜온 나날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최청숙선생 지난 2020년에 들어서면서 코로나 역정이 제일 엄중할 때 어김없이 월급을 받아 안게 된 퇴직교원 최청숙선생은 가슴이 뭉클해냈다. “아니, 이토록 어려운 처지에서도 당과 정부에...
  • 2021-08-04
  • 쓰레기 더미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면서 생활하던 80대 로인이 쾌적한 생활환경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됐다.   최근 왕청현 천교령 삼림공안국 청송파출소에서는 ‘애민사랑 실천 방문 활동’을 전개한 가운데 관할구역 내 아파트 단지 주민들로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악취가 나 주민들...
  • 2021-07-13
  • 4월 15일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 날만 되면 그 때 당했던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는 인생의 일대 전변을 가져왔다. 운명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나는 훈춘 태생이다. 7살 되던 해 우리 집은 도문 월청으로 이사갔다. 고중을...
  • 2021-07-01
  • 《길림신문》은 ‘사랑+릴레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부동한 주제로 계렬 공익행사 진행,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며 사랑 릴레이를 이어가려 합니다. 지난달 ‘사랑+릴레이’-‘고마움 전하기’ 주제로 진행된 행사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가운데 기타 따뜻한 사연...
  • 2021-06-22
  • 머리글: 중국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이 백여년전부터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준 호칭이며 혜택이다.중국조선족은 신민주주의 혁명시기로 부터 항일전쟁,해방전쟁시기에 이르기까지,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시기로부터 개혁개방,사회주의현대화 건설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전국의 여러 민족 인민...
  • 2021-06-10
  • ‘6.1'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길림 백산방대그룹에서는 백산시조선족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위문하고 명절의 축복과 함께 장학금과 도서 등을 전달했다. 백산방대그룹 녕봉련(왼쪽)리사장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5월 26일, 백산방대그릅 당위서기이며 리사장 녕봉련과 이 그룹의 10여명 당원, 청년지원자들은 민족단결...
  • 2021-05-31
  • 수박할머니 (西瓜奶奶),연변의 1세대 ‘왕훙’이라 칭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시다.   모멘트와 미니블로그(微博)가 성행하던 시절, 지금의 ‘왕훙’들만큼 얼굴이 많이 알려진 수박할머니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결코 SNS덕분이 아니였다. 바로 연변축구였기에 가능했다.   ...
  • 2021-05-29
  • 5월 21일, 심양시 황고구 명북사회구역 ‘당창건 100주년 경축’ 계렬활동 일환으로 명렴로조선족로인협회는 당사학습과 더불어 ‘자신의 사상인식 이야기하기’ 활동을 진행했다. 89세 리의숙 로인은 자신의 입당이야기 등을 통해 초심을 수호하는 중국공산당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리의숙 ...
  • 2021-05-25
  • 30여년의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수많은 제자들을 졸업시켰다. 제자들과 떨어진 후 련락이 있든 없든 때로는 기억의 편린들이 떠올라 그들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나의 이런 부질없는 로파심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문뜩문뜩 제자들이 나의 위챗을 노크한다.   며칠전 늦은 저녁, 딩동- 메세지가 도착했다. 상해에 ...
  • 2021-04-20
  • [수기72]교장선생님이 들려준 추억의 홍색교양이야기 기억이란 어제 있었던 일도 가물가물 잊혀질 때도 있지만 몇십년이 흘러도 색바래지 않게 생생히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한해다. 요즘 우리 당 력사를 학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떠오르는 한가지 추억, 그것은 40여...
  • 2021-04-19
  •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로획한 미군의 숟가락을 오늘까지 70년 넘게 사용해오고 있는 로전사(90세)가 있다. 포성이 천지를 진감하던 그 가렬처절한 전쟁년대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전우들이 그리워 오늘도 하루 세끼 식사를 이 숟가락으로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로전사, 그분이 바로 장춘시 정월고신기술개발구에서 만년을...
  • 2021-04-14
  • [수기] 그 시절 그 동네 그리고 정 많은 사람들 김순희 추운 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날을 맞이한 이 때 나는 가끔 창가에 기대여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손에 손군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 손군들의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장면을 내려다본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근 60년전의 천진란만했던 그...
  • 2021-04-07
  •     우리에게 설은 최대 명절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고향을 찾아가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고 함께 모여 도란도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아쉬움이 많은 명절입니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영상으로 안부를 묻고 설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코로나시대를 겪으면서 우리에...
  • 2021-02-19
  • [연변애심어머니협회]“청소년 꿈터” 설맞이행사   음력설을 앞둔 2월 8일, 연변애심어머니협회(회장 방선화) 사무실은 명절분위기로 북쩍거렸다. 아침부터 각자 집부엌에서 애심표양념에 어머니손맛을 더해 달달 지지고 볶아 만든 맛갈스런 반찬들을 량손 가득 걸머쥔 협회 회장들과 부장들이 륙속 사무실...
  • 2021-02-09
  • [수기 ]‘주소 없는 편지’ 허동철 지난 한가위 추석을 앞두고 조카 허매화(연변전업국 고급 회계사)한테서 삼촌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연집강뚝 부산돌솥밥집에서 만나뵙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는 약정한 시간에 똑 같이 도착했습니다. 점심 밥상을 마주하고 조카는 썩 오래전부터 별렀다면서 만나고저 한 ...
  • 2021-02-07
  • 글/ 일본 김미란   김미란: 遼東大学 생물학부 졸업, 도문시 제1고급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현재 일본 金澤企画国際株式会社에 재직중   애들 학교 때문에 도쿄로 이사해 오던 때가 이른 봄이었는데 벌써 늦가을에 들어서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하지만...
  • 2021-01-29
  • 12월 24일 한국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프로그램에서 우수상 수상-   1952년 12월 중국 화룡시 출생, 현재 천안시 두정동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나는  60대 후반에 들어선 할미꽃입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흥취가 있어서 소학교에 입학...
  • 2021-01-29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