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돐을 맞으면서 본사 편집부에서는‘나와 연변’타이틀의 기획보도를 륙속 펴내게 된다. 외부 시각에서 바라본 백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연변의 이모저모를 조명해보고 아름다운 연변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한다.
/길림신문사 편집부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70돐 기념 기획보도]
“연변에 와서 생활한지 어언 20년이 되였습니다. 열여섯살때에 연변에 왔으니 고향인 호북에서보다 더 긴 세월을 연변에서 살아 왔지요. 그러니 연변은 이젠 저의 두번째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연길시 메리다(美利达)자전거 전매점의 점장인 리군(李军)이 감개무량해서 하는 말이다.
경기에서 항상 앞장에서 내달리는 리군
2012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연변 베테른자전거경기에서 리군은 거의 해마다 41키로메터 공로자전거경기에서 ‘떼놓은 당상’으로 우승을 하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우수한 선수로 많은 연변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리군이 연변을 가장 처음 접촉하게 된것은 2002년 겨울이였다. 당시 호북성 조양시에서 살고있던 리군은 연변에 돈벌이를 나온 아버지를 찾아 멀리 호북성에서 기차를 타고 도문으로 왔다. 16살 어린 청소년이였던 그에게 도문기차역을 내리면서 본 북국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설경은 잊지 못할 첫 연변인상이였다.
“아버지가 늘 연변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해서 구경 어떤 곳이길래 그러시는가 늘 궁금했다 ”고 리군은 말했다. 도문에서 리군은 중조 국경도시의 신비한 매력에도 빠져 들었고 맛있는 각종 조선족음식에도 유혹되였다.
“멀건 국물뿐이였던 소탕에 각가지 양념들을 곁들이니 그렇게 맞있는 음식이 될줄은 몰랐습니다”도문 기차역전 부근의 한 조선족음식점에서 소고기 국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호북사람들은 고기를 먹을때 찌거나 삶는 등 방식으로만 먹고 고기를 삶아 국물을 내여 먹는 일이 전혀 없는데 연변에 와서야 소고기 국밥이 이토록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것을 처음 알게 되였다고 했다.
아버지를 찾아 연변에 올때는 다만 잠시 놀다가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만을 했다. 어릴때부터 참군하고 싶었던 욕망이 있어서 고향에 돌아가 군대모집시험을 치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번 걸음이 그가 연변에서 자전거로 삶의 인연을 맺게 된 시작이 될줄이야.
당시 도문시의 대지(大地)자전거 판매점이 개업하면서 자전거특기표현을 하였는데 자전거에 관심이 많았던 리군은 그곳에 구경갔다가 자전거에 빠져들게 되였다. 자신도 고난도 특기를 펼쳐보이면서 눈도장이 찍혔고 또 자전거판매점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데 초빙되면서 결국에는 자전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였다. 당시는 참군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림시공으로 일할 생각이였지만 후에는 점점 자전거와의 인연이 깊어지면서 군에 입대하려던 꿈도 포기한채 연변에 눌러앉게 되였던 것이다.
2005년도에 도문시의 대지자전거판매점에서 연길에 진출해 전동자전거를 팔면서 리군도 연길에 자리를 옮겼다.
“제가 연길에서 살아온 시간은 2000년대 초부터였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아마 연변이 가장 빨리 발전한 천지개벽의 변화를 보여준 시기였을것”이라고 리군은 그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길시는 도처에 부엌이 딸린 단층 세집들이 많았고 그도 처음 연길에 왔을때는 그런 초라한 세집생활로부터 시작했기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의 낡고 헐망했던 단층집들이 거의 모두 사라지고 곳곳에 아빠트 단지들이 줄줄이 들어섰고 날이 갈수록 살기좋은 모습으로 변모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운동용 자전거시대가 열린 것은 2008년쯤 부터였다. 그전에는 변속자전거는 있었지만 운동용으로 탈수있는 고품질의 자전거는 없었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날따라 향상되고 자전거운동을 통한 사람들의 수요도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자이언트, 메리다 등 고품질의 자전거시장도 새로운 신흥산업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특히 2008년도에 북경에서 펼쳐진 올림픽경기로 전민건신운동이 크게 보급되면서 자전거를 리용한 건신운동붐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되였다. 그때 리군은 대만의 유명 자전거브랜드인 메리다자전거점의 점장으로 초빙되였고 연변에서의 더욱 보람찬 자전거인생을 시작하게 되였던 것이다.
연변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진국들의 자전거운동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자전거운동의 보급에서도 전국적으로 앞자리에 서있다고 리군은 말했다.
자전거는 걷기나 달리기보다는 운동에서 더 적극적이고 전신운동량이 많기에 성취감이 있고 운동건신효과가 우수하다는 것이 리군의 해석이다.
연변은 자전거운동의 천혜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리군은 말했다. 자전거운동에 적합한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고 모아산자전거공원 코스를 비롯해 여러 현시들은 물론, 향진, 촌마을들까지도 자전거로 달릴수있는 훌륭한 도로교통조건이 마련되여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은 역정때문에 잠시 멈춰있는 상태이지만 해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베테른 자전거경기가 연변에서 개최되고 있고 국내 자전거마니아들이 환중국 자전거코스에서 변경지역인 연변을 꼭 필수로 거쳐야 하는 자전거코스로 정할만큼 연변의 자전거운동은 매우 뜨겁고 량호한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리군은 자전거운동에 필요한 연변의 훌륭한 천시지리인화적인 기후와 자연생태환경, 문화 그리고 조선족민속풍토인정까지 가미되여 더욱 큰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자전거운동이 연길의 빛나는 명함장이 당당히 될수 있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이면 리군은 연변의 자전거매니아들을 이끌고 야간자전거 운동을 조직한다. 그때면 연길—모아산-룡정과 연길-조양천구간의 도로에서는 청춘의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자전거물결이 넘쳐 흐르면서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선을 이루고 있다.
현재 리군은 연길에서 안해와 딸을 거느린 오붓하고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고 70고령의 아버지도 가까이 돌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10여년전에 이미 호구까지 호북에서 연길에 떼왔으니 연변사람이 다 된 셈이다. 이달 말, 래달초쯤이면 둘째아이가 태여나는 경사까지 맞이하게 된다고 했다.
다년간 조선족집거구인 연변에서 살아온 리군의 조선족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열정적이고 순박하며 선량하다’는 것이였다. 물론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겠지만 적어도 연변사람들은 그 ‘좋은 사람’ 비례가 월등이 많다는 것이다. 리군은 특히 연변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며 배타적이지 않고 신임도가 높은것 같다고 말했다.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였던 리군은 비록 연변에서 자전거인생으로 군인이 되려던 꿈을 접었지만 추호의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이전에 늘 그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군 했던 것처럼 ‘연변은 살기좋은 곳’이라는 믿음이 현실생활속에서 증명되였기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의 안거락업(安居乐业)의 꿈과 희망이 이곳 연변에서 삶의 동력과 행복으로 승화되였기 때문이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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