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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특파기자가 본 연변팀과 연변축구팬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1월9일 08시01분    조회: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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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취재후기] 꼴찌에서 1등으로…연변FC의 기적

중국 동북부에는 1910년대 일본 침략기에 혹자는 독립운동을 위해, 혹자는 생계를 위해 중국 만주벌로 이주한 동포들이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 거리에는 중국 간판에 한글로 된 간판이 병기돼 있는 곳이다. 이곳 조선족들은 중국말과 한국말을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초기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정착하기 위해서는 조선족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됐다.

베이징에 있는 KBS 지국에도 조선족 직원들이 있어 함께 취재도 하고 촬영도 하면서 뉴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올 7월쯤 함께 일하는 조선족 직원이 연변에 있는 프로축구팀이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며 매일 축구 관련 얘기를 했다. 어쩌다 잘하는 거겠지 생각했는데 8월 9월이 지나도 여전히 1등, 거기다 16승 9무 2패. 단 두 번만 진 것이다. 게다가 올해 연변 FC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이 한국 국가대표 코치였던 박태하 감독이었다. 뭔가 취재할 만 한 게 있겠구나 생각하고 취재에 착수했다.



10월 11일 연변FC는 우환FC와 1대 1 무승부를 기록하며 리그 1,2위에게 주어지는 슈퍼리그 진출권까지 따냈다. 참고로 중국은 프로축구가 3부리그까지 있는데, 1부는 18개 팀의 슈퍼리그, 2부는 16개 팀의 갑급리그, 3부도 16개 팀의 을급리그라고 부르고 있다. 연변FC는 2부 갑급리그 지난해 꼴찌였다가 올해 1위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경기는 10월 24일, 연변FC의 우승이 확정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10월 21일 연변자치주의 주도이자, 연변FC의 홈경기장이 있는 연길시로 날아갔다. 첫날부터 바로 연변FC 의 훈련장이 있는 용정훈련장으로 향했다. 용정시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으로 윤동주 생가와 대성학교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용정훈련장 위로는 가곡 ‘선구자’의 일송정이 바로 보였다. 뭔가 다른 기운, 우리 민족의 정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취재하고 난 뒤 저녁에 박태하 감독과 심층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떻게 꼴찌에서 1등으로 팀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런데 박태하 감독의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와서 애들 신상명세서 가정환경을 구단에서 서류를 보게 됐는데 전부 부모들이 가정 형편 때문에 외국 가서 돈을 벌러 가고 사랑을 못 받고 가슴이 메어지더라고요. 얘들이 사랑이 필요하구나. 축구도 사람이 하는 건데 사람 대 사람으로 해야 하는 건데...”

선수 27명 가운데 16명을 차지하는 조선족 선수들의 환경을 보니 모두 힘들게 자랐고, 프로선수로서의 뒷받침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식사를 제시간에 제대로 하게 하고 숙박도 좋은 시설에 자게 했다. 구단에는 월급을 제대로 제날짜에 주도록 요구했다. 그야말로 ‘프로’답게 환경을 배려하고, 같은 한국말을 할 수 있으니까 스킨십을 하며 대화를 많이 했다고 한다.

“훈련을 치르면서 한국인의 핏줄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근성 같은 거 하고자 하는 끈기 같은 것. 선수들 연습게임 하면서도 이긴 경기도 많았고 그런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첫 경기. 한 번도 개막전을 이겨보지 못했던 연변FC 선수는 첫 경기에서 이기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 대표선수들과 경주에 머물면서 취재했었는데, 첫 경기 폴란드전을 2:0으로 이기면서 선수들 눈빛이 달라지며 이기는 법을 배웠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첫 경기를 이긴 이후 한국에서 벤치 신세였던 공격수 하태균 선수를 임대해 영입하고 브라질 용병 찰톤을 영입하면서 팀은 이제 지는 팀에서 이기는 팀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드디어 10월 24일 결전의 날. 연길축구장은 연변FC 붉은 물결로 꽉 찼다. 참고로 연길FC 유니폼은 붉은색이고, 여기도 조선족 붉은악마 응원단이 있다. 그리고 한족 응원단 또한 붉은색 유니폼이다. 연길시 인구가 50만 명인데, 3만 명이 축구장으로 모이는 것처럼 이곳의 축구 열기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전반은 0:0. 그러나 후반 들어 브라질 용병 찰톤이 1골, 한국 용병 하태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0 완승을 거뒀다. 리그 우승, 꼴찌가 1등이 되는 순간.



이때 연길축구장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연변FC를 응원하는 모두가 감격에 겨워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것 아닌가. 3만 관중이 부르는 아리랑, 그것도 중국땅에서 중국 응원가가 아니라 한국말로 하는 그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3만 관중의 아리랑 선율이 경기장을 감싸 안으면서 난 뭔가 뭉클함을 느꼈다.
나는 ‘축구가 조선족의 자존심’이라고 한 조선족 팬의 말이 괜한 공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소수민족 56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조선족, 그러나 소수민족에서 유일하게 프로축구팀을 가진 곳. 경제력이 약한 연변자치주여서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연변FC 지만 이들의 자존심과 축구의 열의가 북경팀 상해팀 등 쟁쟁한 대도시 팀들을 이겼다는 것을.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들이 계속 연변FC를 존속시킬 수 있었던 것은 축구에서 얻는 자긍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지금 젊은이들이 한국이나 중국 대도시로, 그리고 부모들은 돈을 벌러 한국으로 많이 나가는 형편이어서 조선족 자치주라고 하지만, 연변조선족자치주의 38%만이 조선족인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축구가 이들의 어려움을 잊게 하고 조선족의 자긍심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나도 조선족 직원이 ‘축구는 조선족이죠. 연변자치주에서는 한족 학교에서는 농구를 하지만, 조선족 학교는 무조건 축구입니다.’라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연변에 와서야 알았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조선족이 거주하고 그들은 이곳 연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과 연변자치주의 가교 역할을 한다. 여기 연변에 한국을 전하고 또 한국에 연변 조선족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이 여기 연변에서 100년 넘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민족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들은 중국인이다. 그리고 그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또 그들이 한국인은 아니지만, 우리와 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 또한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조선족들도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 말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북한과 인접한 조선족 자치주도 더욱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람, 북한사람, 연변자치주 조선족 사람 모두 한 민족으로서 더 자유롭게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나라의 국민인가를 떠나서 서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인정하며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교감을 나는 아리랑이 퍼지는 연변자치주 연길축구장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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