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의 “약수동사화”가 민족출판사에 의해 조선족구술시리즈 도서로 출간되였다.
“약수동사화”는 화룡현 투도진 약수동(1947년 7월전까지는 연길현 수신향 약수동이라 불렀음)의 혁명투쟁사를 쓰고있다. “약수동사화”는 당의 령도하에 1930년대 중국공산당 약수동지부의 설립, 평강구당위원회 설립, 동북에서 제일 처음인 약수동쏘베트정권의 설립, 나아가 연화중심현당위원회의 설립, 무기탈취투쟁과 유격대의 설립 등 당시의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적고있으며 당의 령도하에 기세 드높이 진행된 추수투쟁, 춘황투쟁, 토지혁명과 유격대투쟁사를 쓰고있다.
활화산마냥 일어나는 혁명의 불길에 질겁한 투도구일본령사분관의 왜놈들과 경찰서의 왜놈들은 지주, 주구들을 앞세우고 약수동에 대해 1932년 10월 22일, 28일, 11월 4일 련이어 3차의 토벌을 감행하여 15명의 혁명자를 살해하고 39채의 가옥을 불살랐다. 상, 중, 하촌의 300세대였던 약소동은 132세대밖에 남지 않았다. “약수동사화”는 투도구 일본령사분관의 만행을 낯낯히 폭로하면서 렬사들의 불요불굴의 투쟁정신을 구가하고있다.
“약수동사화”는 또 항일투쟁과 혁명투쟁에서 희생된 68명의 혁명렬사의 명단, 광복을 맞은 약수동마을에서 해방전쟁을 위해 용약참전한 40명의 명단을 적어 보귀한 력사자료로 남겼다.
아울러 18명의 주요 렬사들의 혁명투쟁사를 비교적 상세하게 쓰고있다.
김동섭은 약수동에 집단부락이 세워진 4년후1941년에 한 혁명가정에서 태여났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그의 아버지는 당의 호소를 받들고 참군하여 조국해방전쟁에 달려나갔다. 세상에 대해 어섯눈을 뜨기 시작한 다섯살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마을의 항일투쟁사를 들었었고 중학교와 사범학교를 다닐 때도 방학이면 마을의 로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투쟁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는 이렇게 40여년간 수집한 자료들을 짬짬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 크나큰 기여를 한 약수동의 빛나는 력사와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70명의 렬사들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02년 룡정시교육국에서 정년퇴직하는 해에 약수동소책자를 내부자료로 출판하였고 그때로부터 10년이란 기간에 빠진 자료들을 보충하고 틀린 곳을 수정하여 마침내 “약수동사화”를 펴냈다.
종합신문 김철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