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 재래식 녹말국수기계 직접 체험.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지난 5월 9일, “백천문학”사(사장 김춘택)는 장백산아래 첫 동네인 내두산촌에 “내두산작가촌 및 내두산작가공원”을 설립했다.
그렇다면 내두산이란 어떤 고장이고 조선민족의 역사흐름에서 어떻게 오늘까지 지탱해 왔는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 당서기 겸 주임인 전호산은 “1926년에 조선 함경북도 갑산지역의 몇몇 수렵군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두산동쪽기슭에 건너와 수렵을 하게되면서 내두산이 점차적으로 우리민족의 정착지로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서 내두산은 장백산기슭에 자리잡은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별명이 붙어지게 되었던 것이다.내두산은 두만강 발원지의 웃쪽에 위치해 있어 당시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지 않고도 육지로 올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취재를 접수하고 있는 전호산 당서기.
내두산에 관해서 김춘택사장은 “장백산을 남편이라 하면 내두산은 아내라 할 수 있다. 내두산은 여인의 유방을 방불케 하는 산으로, 장백산 정상과 30킬로미터 상거하고 있는 산으로, 장백산에 올라 동북향으로 내려다보면 유일하게 유방의 윤곽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내두산에 올라 장백산을 바라보면 폭포수가 훤히 보인다.”라고 자연지리적인 해석은 물론 문화적인 해석으로 일축했다.
이로서 내두산에 오게되면 진정 장백산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장백산의 젖 줄기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호산 당서기에 따르면 그젯날 안도현 이도백하진에는 촌이 12개 있었는데 지금은 8개촌으로 축소되었고 내두산촌은 유일한 조선족촌이다.그젯날120호가 이 촌에 살고있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불과 40여호에 근근히 220여명밖에 남지않았고 그중 한족 6호가 이 고장에서 정착하고 있단다.
이도백하진이라 하면 장백산으로 가는 주요통로이기도 하다.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이들.
이 촌은 산간지대에 위치해 있어 그젯날 우리민족이 이 땅에 건너와 수렵을 하면서 수전농사를 지어왔지만 현재는 노동력이 없어 수전을 포기하고 한전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있다.한전농사는 주로 옥수수,콩,감자를 위주로 하고있다.
특히 이 지역은 대량의 메돼지,노루,꿩,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지역이다.그러나 1995년부터 정부는 메돼지 등 야생동물사냥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수렵은 전면 금지된 상황이다.
전당서기에 따르면 그젯날 감자농사를 할 때 메돼지들이 자주 출몰했는데 메돼지가 일단 땅속에서 주둥이로 감자한알이라도 뚜져 나오게 되면 그 감자맛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혹되어 아주 묘하게 메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감자밭을 덮치는데 하루밤 사이에 메돼지들이 감자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아 도저히 감자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단다.특히 야생동물포획금지로 이젠 더는 감자농사를 할 수 없어 지금은 대면적에 호박농사를 하고있단다.
가수들 촌민들에게 노래열창.
현재 이 촌의 대부분 노동력은 한국 등 기타 지역에 가서 돈벌이를 하다보니 촌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살고 있으며 농사를 지어봤자 수입은 제로이고 노인들은 최저생활보장금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데 노인들의 매월 최저생활보장금은 250원에서 300원,양로보험금은 50원에서 60원,그리고 집집마다 토지양도비로 일인당 평균 연 400원에서 500원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전당서기는 설명했다.
이밖에 내두산에는 산약재 즉 천마 등 약재들이 많아 이런 약재채집으로 수입을 얻고 있다.또 강에는 산천어,민물장어 등이 서식하고 있어 진정 산야채,민물고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고장이 바로 이 고장이다.
현재 이 촌에는 어린이들이 3명밖에 없는데 그젯날에는 마을버스가 통했지만 시장경제로 지금은 이 마을버스마저 없어져 어린이들을 촌에서 마련한 소형버스(봉고차)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도백하진 학교로 통학시킨다.어린이 학교통학은 전당서기가 전담하고 있어 촌지도부의 역할이 돋보였다.
내두산은 그젯날 즉 1936년부터1937년 사이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6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면 항일근거지를 개척한 지역이기도 하다.이로보아 내두산은 우리민족의 항일의 근거지임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한창 도로건설중.
또 내두산은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유일하게 전통장례문화를 지금까지 지켜가고있는 고장으로서 아직도 촌에는 상여회를 운영하면서 상여로 장례를 치르고있다.그래서 김춘택사장은 이제 이 촌에서 장례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치러 상여문화를 제반 조선족사회에 알리려고 기획하고있다.
이와관련 전당서기는 “우리촌이 이렇게 유구한 민족역사가 슴배인 고장이고 또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선천적인 자연의 정기를 받아 이미 몇년전부터 민속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민속촌에 걸맞게 집개조공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도로건설,가로등설치,배수구신설 등 기초공사를 본격적으로 하고있다”며 “이제 우리촌에 내두산작가촌 및 내두산작가공원을 본격적으로 건설해 진정 민속문화가 꽃피는 촌으로 건설하겠다”고 장래의 야심찬 포부를 내 비쳤다.
김춘택사장은 “내두산작가공원은 우선 10년을 기준으로 50편의 중국조선족문학의 정품문학작품 및 5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50점의 문학비를 세울 타산이다”라고 말했다.
몇년전 한국의 저명한 배우인 최불암이 리포터로한 한국 KBS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제작팀이 내두산촌의 그 유명한 농마국수와 감자찰떡을 비롯한 토속음식들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한 적이 있다.
취재를 마치면서,내두산촌은 이제 먹거리,즐길거리,민속문화체험,조선족문학체험 및 휴양 등이 일체화로 된 민속촌으로 거듭나리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