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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열린 ‘삶을 풀어가는 이야기 문화:재담·만담’ 공연에서 장광팔(왼쪽), 리경화 만담가가 옌볜 만담 ‘길쭉이 짤쭉이’를 재연하고 있다. 만담보존회 제공·김호웅 기자 diverkim@
▲ 만담가 최현 씨. 만담보존회 제공·김호웅 기자 diverkim@
韓·中 만담가 3人 인터뷰
TV·개그 인기 얻으며 위기심화
옌볜선 우리말 만담 脈 이어져
신불출·장소팔 이후 침체 한국
상설무대 마련 · 후학 양성 필요
“‘아재개그’가 나온 건 ‘만담(漫談)’에 대한 향수입니다. 만담이 살아야 전통연희도 살아납니다.”
지난 12일과 13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보우당과 종로구 인사아트홀 2관에서는 ‘삶을 풀어가는 이야기 문화: 재담·만담’ 공연이 열렸다.
공연에는 ‘만담’ 하면 빠질 수 없는 장광팔 만담보존회 회장과 그 파트너 최현(가수·만담가) 씨를 비롯한 전통연희자들 사이에 중국 지린(吉林)성 비물질문화유산(무형문화재) 재담·만담 예능보유자인 리경화 씨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리 씨는 중국 옌지(延吉)시 조선족예술단 서기와 구연가협회 주석을 맡은 ‘고위간부’ 예술인이다.
지난 15일 문화일보 인터뷰실에 모인 세 만담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입담으로 들썩거리다가도 침체한 만담의 현실을 말할 때는 아주 진지해진다. 리 씨의 첫 한국공연은 지난해 만담보존회와 구연가협회가 자매결연을 하며 성사됐다. 지린성예술학원 옌볜(延邊)분원에서 공부한 리 씨는 1950년대부터 옌볜에 만담을 전파한 최수봉의 제자다. 최수봉은 일제강점기부터 만담의 맥을 이어온 신불출(월북·1905∼?)과 장 회장의 부친 장소팔(1922∼2002)로부터 만담을 배웠다. 중국에도 ‘상성(相聲)’이라는 만담이 있지만, 옌볜 만담의 뿌리는 한국이다. 이번 공연에서 장 회장과 리 씨는 옌볜만담인 ‘길쭉이-짤쭉이’를 재연했다. 리 씨는 “처음 만났지만 어려움 없이 흥이 났다”고 했고, 장 회장은 “옌볜과 다른 말의 차이가 만담의 재미를 더해줬다”고 말했다.
지린성에서는 재담·만담을 구연예술로도 부르고 재담은 2명 이상, 만담은 혼자 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한국에서 재담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고, 만담은 일본의 만자이(漫才)를 흉내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맞지 않다. 장 회장은 “만담은 우리말의 유희로, 곁말(동음이어)을 사용해 웃기는 것이 중요하다. 고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 만담은 서울 토박이말의 보고(寶庫)”라고 강조했다. 형식도 다를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 만담이 국악과 접목돼 있다는 건 큰 차이다.
신불출·장소팔 시대의 만담은 공연은 물론 레코드, 라디오와 맞물려 고유한 장르로 큰 인기를 누렸다. 장 회장은 “아버님(장소팔) 이후 스타가 나오지 않고, TV와 개그의 출현 이후 이야기 놀음인 만담이 쇠락했다”고 말한다. 리 씨는 “중국의 ‘상성’과 조선족의 재담·만담도 위기다. 실시간으로 한국 TV를 보는 옌볜에서도 개그와 ‘소녀시대’만 인기가 있다. 재담·만담의 5대 전승자로서 후진양성이 가장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은 국가 혹은 성(省) 차원에서 ‘상성’은 물론 재담·만담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이번에 만담의 뿌리인 한국에 와서 만담이 무형문화재로 정해지지 않은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놀라워했다. 리 씨는 “옌볜에서는 사범학교에서 만담을 가르치고, 올해부터 소수민족 대학 교재에도 들어간다”고 말했다.
만담의 전승이 중요한 것은 만담이 독립적인 공연물이기도 하지만 대개 전통연희의 형식을 완성하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예전 이은관 선생님 등 국악인들은 중간중간 만담을 섞었다. 줄타기 등 연희를 이어가는 데 만담은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였다”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 국악이든 연희든 너무 전문적으로 분화하며 ‘예쁘게만’ 만들어지고, 만담의 골계(滑稽)와 해학(諧謔)이 사라지니 대중도 흥미를 잃었다. 적어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정도에서는 ‘만담’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장 회장은 아쉬워한다.
이번 공연은 ‘서울 이야기 문화’를 보존·계승하고 콘텐츠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 전통공연진흥재단이 지원해 이뤄질 수 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무형문화재 지정 등의 지원책이 없으면 ‘만담’의 맥을 잇기는 힘겨워 보인다.
장 회장과 공연을 해온 최현 씨는 “요즘 공연을 하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만담이 끊어지면 안 된다’고 격려해주는 관객들이 많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상설극장까지는 아니겠지만 일단 상설무대가 마련되면 전통공연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곁말을 사용하는 ‘아재개그’는 만담이 그 원형이다. 아재개그의 인기는 복고적 사회현상으로 볼 수 있어 만담의 부활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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