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방화(芳华)>를 읽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왠지 김창완 밴드의 노래 <청춘>을 떠올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 내 젊은 령가(灵歌)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물론 소설을 각색한 동명영화에도 주제곡이 붙어있지만 이 노래가 더욱 작품에 사개가 맞게 느껴졌다.
올해 상반년 베스트셀러를 뽑으라면 단연 엄가령(严歌苓)의 장편소설 <방화>가 장가락으로 꼽힌다. 게다가 풍소강(冯小刚) 감독의 동명원작 영화가 개봉, 커다란 흥행을 보이면서 <방화>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쾌거를 올렸다.
소설의 제목 <방화>, 여기서 방(芳)은 냄새, 화(华)는 색채 즉 아름다운 내음으로 피여오르는 청춘의 기상을 말해주는 낱말이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내내 아름다와야 할 청춘에는 아름다움이 빠져있었다. 그 아름다움의 루락이 바로 작가 엄가령이 말하고저 하는 것이였다.
지난 70년대, 문예에 장기를 가진 꽃 같은 청춘들이 방방곡곡에서 중국인민해방군문예사업단 소속단원으로 모여와 특수한 사명을 몸에 짊어진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 류봉, 남보다 조악한 가정배경으로 자격지심에 눌렸던 그는 문공단에서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하면서 ‘모범표병’으로 표창받는다. 그는 문공단의 단원 림정정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그로서 류봉의 운명은 파멸의 늪으로 빠져든다. 림정정의 고혹적인 등줄기를 한번 만졌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그는 공개비판을 받고 고역의 벌목장으로 쫓겨나게 된다.
문공단에서 유일하게 류봉의 처우에 동정을 보내는 하소만은 우파인 아버지와 결렬하고 재가한 어머니와 새로운 가족에서 조롱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였던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그녀는 문공단을 운명의 일탈의 출구로 삼는다. 그 와중에 변강지역에서 전화(战火)가 인다. 저 유명한 윁남자위반격전이 일어 난 것이다. 참전했던 류봉은 가렬한 전투에서 그만 팔 하나를 잃는다.
간호사로 전장에 투입된 하소만은 부상병을 구하고 일조일석에 영웅으로 부상한다. 매일이고 떠받들림 속에서 붉은 꽃송이를 안은 채 하소만은 외려 미쳐난다.
어느덧 시대가 변하고 젊은이들은 그동안 지켜온 것에 대한 회의감과 새 것에 대한 수용사이에서 방황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싶고 누군가는 지키고 싶은 마음의 공황 속에서 결국 마음을 다친 정신병원 환자들을 위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문공단은 해체된다.
세월이 흘러 정상인으로 돌아온 중년의 하소만은 차가운 의수를 달고, 직장암 판결을 받은 채 생계를 위하여 극장 문지기로 있는 류봉을 만난다.
작가 엄가령은 유미한 필치로 가장 은밀한 청춘의 국부와 상처를 만지고 건드린다. 그로서 시대적 기억과 개체적 기억에 대한 증명과 진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수작으로서 이룩해내였다.
소설 속에서 시대에 의해 버려지고 운명에 의해 상처받은 이들은 저마다 청춘을 경유하여 자아구원의 가시밭길을 걷는다. 40여년이라는 왜틀비틀한 보폭을 거쳐 그를 반추하고 다시 인지하고 심미를 거쳐 상처의 치유를 얻는다.
소설의 표지에는 커다랗게 클로즈업된 토슈즈(舞鞋)와 군화가 그려져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청춘을 증명해보이려는듯 그렇게 독자들의 열독 속에서 분방함과 몽매와 혼돈과 감성이 혼재된 청춘의 춤을 추고 또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