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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고단한 삶… 영혼의 탈출구는 어디에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1월20일 08시10분    조회: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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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작가 금희 한국서 첫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 펴내

“잘살아도 하루 세 끼, 못 살아도 하루 세 끼 밥이 아닌가? 세상 구경은 좀 했겠지들.”

조선족 작가 금희(본명 김금희?36)가 한국에서 ‘세상에 없는 나의 집’(창비)을 펴냈다. 한국문학의 외연을 넓힐 주목한 만한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어느 중국 인물은 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고 또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관성처럼 떠난다지만 하루 세 끼조차 보장되지 않는 생존의 문제에 부닥치고보면 이 언사조차 무색해진다.

‘옥화’에 나오는 탈북 불법체류자는 생존을 위해 떠나왔다. 중국 조선족 교회 부근에 앙상한 몸으로 탈진해 쓰러진 여자. 그네는 북한을 탈출했다가 인신매매로 중국 오지의 불구 남자에게 팔려가 고된 노동 끝에 갓난아이까지 버리고 도망나온 기구한 여성이다. 그네는 교회에서 한국으로 가기 위한 자금을 질기게 구걸하다 ‘하느님마저 버릴 수밖에 없는’ 뻔뻔한 여자로 낙인 찍힌다. 그네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은 ‘나’에게도 남동생과 혼인을 했다가 도망간 ‘옥화’라는 탈북 여성이 있었다. 그 기억들이 겹치는 가운데 ‘뻔뻔한’ 그 여자를 견제하면서도 차마 매몰차게 대할 수도 없는 팽팽한 심리적 갈등이 긴장감 넘치게 묘사된 작품이다.

생존할 수는 있으나 ‘생계’를 위해 발버둥치는 존재의 자화상은 ‘월광무’에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영기업에 취직해 가만히 있으면 생계는 해결되는 조건에 놓였던 ‘나’는 ‘반복되는 일상, 나아질 것 없는 인생, 기성세력의 독재, 생활의 중압감’을 못 이기고 뛰쳐나와 각종 자본주의적 사업을 벌였다. 때로 약간의 돈도 벌었지만 끊임없이 자본에 쫓기는 신세. 마지막 빚에 몰려 그가 무시했던, 시골에 정착한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중국 남쪽 끝 도시에서 동북의 시골마을까지 밤낮 쉬지 않고 사흘을 기차와 버스, 오토바이로 달려가는 과정이 이 단편의 얼개다. 국영기업에 가만히 있었으면 생계는 해결되는 것을, 그는 왜 떠났을까. 그의 아버지도 떠나는 삶을 살았던 이였다. 아버지는 죽기 전 수술대로 떠나면서 그에게 말했다.

 
조선족 작가 금희. 그는 “아직도 맨얼굴의 내 영혼과 조우하지 못한 느낌”이라면서 “중국에서 쓴 글들이 묶여 한국 독자들의 선택권 안에 들어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홀가분해진 것 같다”고 썼다.
창비 제공
“나중에 엄마가 많이 울거든 그래라. 아버지를 보내주라고. 니 아버지는, 사실 한 번도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떠났지만 한 번도 제대로 따나본 적 없다는 말은, 서러운 사랑이다. ‘노마드’의 박철이는 한국에서 노가다로 돈을 벌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그는 “한 종족이되 이제는 도무지 한 무리에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야생 이리와 셰퍼드처럼, 같은 액체지만 한 용기에 부어놓아도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박철이는 결코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한다. 그는 중국에 돌아왔지만 “그 끝이 자의든 아니든 다시 떠나는 길의 시작”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도끼’에서 고향을 떠나는 화자는 원시시대 돌도끼 형상을 주워들고 “시간의 낫질처럼 무정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라고 되뇐다. ‘시간의 낫질’처럼 한국 작가들이 잊어버렸거나 놓친 어휘들이 간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집 매력이다. 이 인물은 돌도끼에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겪었을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함께 예상외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면서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지 못한 다른 풍성한 것들로 인해, 과자 없이 즐겁던 내 어린 시절과, ‘법’ 없이 모이던 우리 동네의 시초처럼, 우리가 추측하는 험한 상황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금희는 중국 길림성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 연길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다 2006년부터 장춘에 정착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7년 ‘연변문학’에서 주관하는 윤동주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중국에서 첫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를 출간했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소설집을 냈다. 금희는 “언젠가 흔적 없이 사라질 나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실체가 아닌 것처럼, 내 위에 덧입힌 가족, 직업, 민족, 국적 같은 것들도 결국 그 자체만으로 나에 대하여 실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런 세상 속에서 나는 영혼의 자유로운 탈출을 마련해보려는 요량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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