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으로 투병해온 고인은 전날 오후 7시30분께 별세했다. 향년 84.
에스엔에스에는 이날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김준태 시인은 “님의 일생은 한국현대사였습니다. 님의 화두는 분단문학이 아니라 ‘통일문학'이었습니다. 님이시여! 하늘에 가셔서 더욱 이 땅 삼천리를 굽어 보시고 사랑해 주시길 축원합니다”라고 추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생이 그린 한국전쟁 직후 소시민들의 군상은 그 어떤 사회과학의 시민사회론들보다 우리 현대사를 증거했고 또 형상화했습니다. 소시민에서 교양 시민으로의 성숙은 우리 사회와 문화의 여전한 과제일 것입니다”라고 추모의 글을 올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호철 선생의 문학과 삶에는 언제나 분단과 실향의 아픔이 절절했습니다.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할 때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늘 뿌리 잃은 삶의 쓸쓸함과 허허로움이 느껴져서, 제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곤 했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신경림 시인(가운데)이 1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소설가 이호철씨의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소설가협회 등 5개 단체는 고인의 장례를 ‘대한민국문학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20일 오후 7시 열리며, 유안진 시인 등이 추모사를 낭독할 예정이다. 발인은 이튿날인 21일 오전 5시 이뤄진다. 고인은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의 문학 세계는 6·25 전쟁과 그로 인한 이산 체험을 중심으로 짜였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원산고 3학년 때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포로가 되고 우연찮게 풀려난 뒤 1950년 12월 단신으로 월남했다. 부산에서 부두노동과 미군 기관 경비원 같은 일을 하며 소설 습작을 한 그는 1955~56년 단편 ‘탈향’과 ‘나상’(裸像)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후기 소설집(<이산타령 친족타령>, 2001)에서도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며, 소설집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2011)에서는 중국 동북3성과 러시아 등 해외 동포들을 향해 관심을 넓히기도 했다. 이호철 문학의 또 다른 축은 <소시민>과 <서울은 만원이다> 같은 장편으로 대표되는 세태와 풍속의 꼼꼼한 재현이다.
1970~8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도 헌신적으로 가담했다. 71년 재야단체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문단을 대표해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74년에는 날조된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80년에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두 달 동안 정보당국의 남산 지하실에 갇혀 있다가 군사재판을 거쳐 6개월 뒤에 풀려나기도 했다. 85~87년에는 현재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맡았으며 87년 6월항쟁 기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 민주화 시위 현장을 지켰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민자씨와 딸 윤정씨가 있다. (02)2227-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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