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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경숙/뉴시스
‘어머니를 잃은 지 열사흘 째.’(수필 ‘사모곡’)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소설 ‘엄마를 부탁해’)
‘불현듯 다가서는 어머니를 그토록 간절히 불러본 적이 있던가.’(‘사모곡’)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당신이 아내를 이리 간절히 찾아보긴 처음이었다. 당신이 이집을 떠났을 때도 아내는 이리 나를 찾았을까?’(‘엄마를 부탁해’)
2016년 9월 소설가 신경숙(55)씨가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표절 시비로 소송에 휘말렸다. 수필가 오길순(69)씨가 자신의 수필 ‘사모곡’을 표절했다며 신씨와 출판사 ‘창비’에 2억원을 배상하라고 소(訴)를 제기한 것이다.
2001년 출간된 ‘사모곡’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잃어버린 뒤 다시 찾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젊은 시절과 자식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2008년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어머니가 실종되고, 이후 가족들이 어머니를 찾아나서며 과거 기억들을 더듬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오씨 측은 “모티브(착안)와 줄거리, 표현 등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신씨 측은 “엄마를 부탁해는 신씨가 직접 구상한 내용이며 다른 특정한 작품을 보고 표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재판에서 쟁점은 문장·단어와 같이 세부적인 표현에서 같은지를 따지는 ‘부분적·문언적 유사성’과 글의 구조, 체계가 복제됐는지를 따지는 ‘포괄적·비문언적 유사성’이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토대로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는 ‘실질적 유사성’이 판단됐다.
◇“수필은 ‘어머니’, 소설은 ‘엄마’…실종 알리는 형식도 달라”
약 2년 가량 이어진 재판 결과는 신씨의 ‘승(勝)’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최희준)는 지난 11일 “표절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오씨가 신씨 등을 상대로 낸 출판금지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문장이나 단어 등 형식적인 표현면에서 두 작품이 비슷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씨 수필에서는 실종된 사람을 ‘어머니’로, 신씨 소설에서는 ‘엄마’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또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른 점도 지적했다. ‘사모곡’에서는 아버지가 “느이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고 직접 가족들에게 어머니 실종을 알렸으나 ‘엄마를 부탁해’에선 ‘너는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얘길 처음 듣자마자… 성질을 부렸다’와 같이 화자가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 형식으로 어머니의 실종을 서술했다.
재판부는 “그 밖에 다른 표현들도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고, 단지 어머니 실종과 관련해 서술하려다보니 부득이하게 같은 단어를 쓰게 된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결국 모두 어머니 실종사건과 어머니를 찾고자 하는 자녀의 간절한 마음을 통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문장 대 문장 수준에서 신씨가 베껴 썼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신경숙 소설이 훨씬 복잡…등장인물 많고 개성도 있어”
재판부는 문장이나 단어 수준을 떠나 글의 흐름이나 구조 등 체계 면에서도 두 작품이 다르다고 했다. 신씨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이 더 다양하고, 이야기 구조도 복잡해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모곡’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 택시 기사, 주방 아주머니 등 10명 가량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엄마를 부탁해’는 이보다 많은 약 20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며, 이중에는 어머니가 과거 연정을 품었던 남성까지 등장한다. 재판부는 “신씨 소설의 등장인물이 훨씬 많고 관계도 복합적”이라며 “또 오씨 수필은 어머니를 찾기까지의 과정만 다뤘지만, 신씨 소설은 여기에 더해 ‘엄마’ 인생 전반에 관련된 인물들이 폭 넓게 소개되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수필 속 ‘어머니’는 수필의 한계상 성격이 단순하고 평면적이지만 소설 속 ‘엄마’는 단순히 한 마디로는 수렴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측면을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의 실종’이라는 모티브에 대해 재판부는 “부모를 실수로 잃어버리게 된다는 소재는 다수의 문학 작품과 영화 등에 종종 등장한다”며 “비슷한 착안을 했다는 것만으로 섣불리 유사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두 작품의 결말이 다른 점도 지적됐다. 사모곡’에서는 가족들이 백방으로 찾아다닌 끝에 ‘어머니’를 찾게 되지만,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엄마’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막을 내린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실수로 잃어버린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신씨 소설이 오씨 수필과 구별되는 개성있는 내용도 담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항상 앞서 걸어가는 남편’이라든지, ‘엄마’가 나타났다고 제보되는 장소는 모두 ‘큰 아들’과 관련됐다는 설정처럼 신씨 소설이 나름의 개성을 갖고 소설적 재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두 작품 사이의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상 신씨가 유씨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게 재판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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