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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인 너머 인간 신동엽 새롭게 보기 시도할 때”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3일 09시26분    조회: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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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 50주기 장남 신좌섭-연구자 김응교 인터뷰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26일 신동엽 시인의 집이 있던 서울 성북구 동선동 5가 45번지에서 아들 신좌섭(왼쪽) 교수가 신동엽 평전을 낸 김응교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 기자
탄압과 암흑의 시대였다. 1975년 4월 30일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일체의 반정부 활동이 금지됐다. 1975년 6월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신동엽 전집’은 한달 뒤 긴급조치 9호 위반의 죄목으로 판매 금지됐다. 

금지된 것만큼 절실한 것은 없는 법. 사람들은 ‘금서(禁書)’가 된 신동엽 전집을 제본해 몰래 읽었다. 연세대 신학대에 재학 중이던 80학번 김응교(58) 숙명여대 교수도 도화지에 복사된 제본판으로 신동엽(1930~1969)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다. 바깥은 어두워지는데 불을 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할 정도로 김 교수는 정신 없이 시에 빨려 들었다. 밝은 낮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읽어 낸 시가 신 시인의 대서사시 ‘금강’(1967)이었다.

신 시인의 장남인 신좌섭(60) 서울대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각종 금서를 취급하던 서울 신림동의 광장서적에서 경제학 책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서점 주인이 그에게 살며시 다가와 “이거 한번 읽어 보라”며 내민 책이 ‘신동엽 전집’이었다. “내가 신동엽 아들이오”라고 말하는 대신 조용히 책을 샀다. 넓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늘 때문이었을까. 신 교수는 의사라는 안정된 미래를 스스로 박차고 10년 간 노동운동에 투신해 고초를 겪었다.

1964년 명성여고 교사 시절 신동엽 시인. 신동엽문학관 제공
신동엽 시인은 김수영 시인과 더불어 식민, 전쟁, 독재의 상처로 얼룩진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 시인으로 평가 받았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노래한 시 ‘껍데기는 가라’(1964)가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 역사 의식을 기반으로 부정과 불의에 맞서 화합을 주창한 시인의 대명사가 됐다. 신 시인의 50주기(7일)를 앞두고 신 시인의 집이 있었던 서울 성북구 동선동 5가 45번지에서 김 교수와 신 교수를 만났다. 둘은 “지금까지의 신동엽이 ‘민족 시인’ ‘저항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점이 이번 50주기”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평생에 걸쳐 신동엽을 탐구해 왔다. 최근 50주기를 맞아 신 시인의 아내인 인병선 여사를 비롯한 유족의 고증을 받아 ‘신동엽 평전’(소명출판)을 다시 냈다. 책에는 신 시인의 육필 원고와 사진이 다양하게 실려있다. 김 교수는 “1969년 타계 이후 신 시인에 대한 수많은 글이 쏟아졌지만, 생애나 인간적인 면면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책은 정작 없었다”며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는지 등을 화두 삼아 ‘인간’ 신동엽을 들여다봄으로써 민족시 너머 다양한 요소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평전을 새로 쓴 이유를 밝혔다. 

[저작권 한국일보]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선동 신동엽 시인의 집이 있던 동네에서 만난 신좌섭 교수는 “뒷짐지며 걷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던 어린 시절이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홍인기 기자
소학교 성적표와 습작 노트, 각종 편지 등 책에 등장하는 방대한 자료는 인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이 보존해온 것이다. 자료 덕분에 신 교수는 39세에 요절한 선친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주제를 던져주며 시를 써보게 하거나 신문의 촌평을 따라 써보게 하셨어요. 제가 다리를 다친 날에는 밤새 들여다 볼 정도로 다정한 분이셨죠. 술을 좋아하셨는데, 술자리가 파하면 늘 주머니에 안주 거리를 담아다 주셨어요(웃음).”

저항을 노래하는 신 시인의 시는 냉정하기만 한 게 아니다. 한 편엔 다정함과 서정성이 깃들어 있다. 시극, 방송 대본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신동엽기념사업회는 신 시인 50주기인 올해의 목표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신동엽의 대중화’로 잡았다. 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김 교수는 “지난해 ‘고등래퍼2’라는 음악 경연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껍데기는 가라’가 힙합 음악으로 승화되는 것을 보면서, 시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전시와 유튜브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신동엽 시 새롭게 보기’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 역시 “50주기라고는 해도 그 중 20년 간은 판금 조치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단절돼 있었다”며 “아버지의 시에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던져줄 수 있는 메시지가 많은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97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된 '신동엽전집'(맨 왼쪽)은 긴급조치 9호 위반 사유로 금서가 됐지만, 제본을 해서 몰래 돌려 읽을 정도로 그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다. 신 시인의 50주기를 맞은 올해 다양한 측면에서 시인을 회상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생생한 유고자료를 바탕으로 엮인 '좋은 언어로'(소명출판), 시극과 방송대본 등 시 외의 다양한 글을 엮은 '신동엽 산문전집'(창비).
실제 신동엽 시인을 재조명 하려는 움직임이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2일 창비 출판사는 1982년 제정 이후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신작 시, 소설을 엮은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과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을 냈다. 5일엔 신동엽학회에서 주관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13일엔 신 시인의 생가가 있는 충남 부여의 신동엽문학관 주최 ‘제17회 신동엽 시인 전국 고교 백일장’이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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