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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시민도 공모자①] 혐오 조장 및 무관심 실태
지난달 국민적 공분을 낳았던 ‘서울 강서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사건’은 살인 피의자가 ‘조선족’이라는 주장을 몇몇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하면서 급격히 확산했다.
그가 조선족이기에 아르바이트생을 참혹한 수법으로 살해했고, 말투가 어눌하고 게임 아이디가 한자인 것이 주장 근거였다. 이러한 소문은 ‘조선족 혐오’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 “조선족을 우리 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해당 사실을 부인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혐오민국’으로 불리는 지금, 시민들이 혐오를 학습해 공모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혐오에 반기를 들면 매장당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며, 그 배경에는 ‘온라인’을 매개로 반성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분석이다.
만연한 혐오 표현. 세계일보 자료사진
◆혐오 조장자와 방관자가 된 시민들
지난해 9월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회원인 김모(40)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였던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을 ‘전라도 출신’이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씨는 특정후보를 낙선하게 할 목적으로 전파성이 큰 인터넷 사이트에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게시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상당수 시민들이 혐오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글을 올리거나 혐오 게시글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 성별이나 지역, 나이대 등을 기준으로 뭉친 온라인 커뮤니티는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일종의 놀이이며 가치로 삼는 경향이 뚜렷하다. 남성 중심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가 ‘여혐(여성 혐오)’을, 반대로 여성 중심 커뮤니티인 ‘워마드’가 ‘남혐(남성 혐오)’을 일삼는 게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후 혐오와 차별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혐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즉 스스로 혐오인지 모르고 각종 글을 올리고 있고, 더 많은 네티즌은 혐오 표현임에도 크게 주목하지 않고 지지하거나 공감 글을 올리면서 혐오를 확산하고 있다는 거다.
서울 강서 PC방 살인 사건 피의자. 연합뉴스
◆‘묻지마 살인’ 등 혐오가 불러온 범죄
‘묻지마 살인’은 대표적인 혐오 범죄이고, 또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의 희생자를 낸 유영철 사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발생한 강호순 사건 등도 범인들은 범행 동기로 여성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인 편견을 댔다.
특히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은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며 여성 혐오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해당 사건의 파장이 컸지만 여성 대상 범죄까지 줄이지는 못햇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 대상 강력범죄는 오히려 늘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강력범죄(살인·성폭력)는 총 3만270건으로, 2016년 2만7431건보다 10%가량 증가했다.
여성차별 반대 집회. 김경호 기자
◆혐오 난장판된 ‘집회’에 가세하는 시민들
혐오 단체간의 대립도 골치거리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즉 공공의 장소에서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를 허용하거나 이를 아무 생각 없이 동참하는 것도 문제라는 거다.
지난달 6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주변에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진행된 ‘5차 불법촬영과 편파판결 규탄 시위’ 도중 무대를 향해 20대 남성이 여성 참가자들을 향해 비비(BB)탄 총을 난사한 사건이 있었다. 몇몇 남성들은 시위 참가 경찰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총을 쏜 남성이 경찰에 곧바로 연행돼 큰 피해는 없었으나 온라인상의 ‘남혐’ ‘여혐’ 대결이 오프라인에서 구현됐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기도 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을 보인 두 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혜화역 1번 출구에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가, 2번 출구에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가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두 단체의 충돌을 우려해 집회 장소 간 거리를 100m가량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맞불집회. 연합뉴스
◆혐오를 규제하는 법체계 미흡... ‘차별금지법’ 마련해야
시민 스스로 혐오를 배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사회적 제도 마련도 간과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극으로 치달은 혐오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전문가들은 혐오 사건을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깔린 차별 구조와 인식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2006년부터 꾸준히 법 제정이 추진돼왔지만 동성애 반대 단체, 기독교 단체, 재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매번 무산된 바 있다.
최영애 국민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혐오와 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권위원장 직속 특별팀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혐오와 차별 문제를 위원회가 제1과제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며 내부 논의와 토의를 거쳐 이르면 다음 달 안에 구체적인 계획과 조직을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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