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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소득 3분의 1로 줄었는데
축의·부의 월 70만원까지 나가”
재취업 힘든데 부양의무 그대로
중산층 줄어들고 하층은 늘어
추락하는 중산층 <상>
택시기사 홍모씨가 지난달 15일 서울 도봉구 한 LPG충전소를 나서고 있다. 그는 7년 전 보험회사를 그만둔 뒤 월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는데도 경조사비로 많게는 한 달에 70만원을 낸다. 회사 다닐 때보다 줄여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다. 5060세대 상당수가 이런 부담을 호소한다. 김상선 기자
택시 기사 홍모(63)씨에게 친척이나 친구 경조사가 있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택시 일을 못 한다. 친한 친구 경조사일 때는 최소한 20만원이 나간다. 이중손실이다.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도봉구 LPG 주유소에 홍씨가 택시에 가스를 넣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퇴직하면서 소득이 3분의 1로 줄었는데 매달 경조사비로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70만원까지 나가요. 너무 부담돼서 힘듭니다. 한국 사회에서 경조사에 빠지면 무리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요. 못 가더라도 봉투는 보냅니다. (경조사) 끊고 산다거나 안 챙긴다는 소문이 나면 고립돼요. 그러면 외롭고 힘들지 않나요. 경조사 같은 게 힘들어서 빠지는 친구도 있어요. 카톡방에서 조용히 탈퇴하더라고요."
홍씨 가계 지출 항목에서 경조사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많다. 한 달에 평균 5~6건, 30만원가량 나간다. 홍씨는 "퇴직해서 5~6년 지나니까 중산층에서 하층이 됐다. 하층 중에서도 하하(下下)층이다. 이렇게 되니 경조사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홍씨는 2012년 말 33년 다닌 보험회사를 퇴직했다. 당시 연봉을 1억원 가까이 받았다. 보통 한 달에 10건 50만원 정도 경조사비를 지출했다. 회사를 그만두니 부장·본부장 명함이 소용없었다. 경조사 지출을 줄였는데도 30만원 이상 나간다. 홍씨는 퇴직 후 정원원예사·산림관리사 교육을 6개월 받았지만 도움이 안 됐다. 택시를 몰았다. 한 달 수입이 9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개인택시를 샀다. 수입이 좀 올랐고 국민연금이 나왔다. 아내가 보험회사에 나가서 조금 번다. 이렇게 해도 월 수입이 200만~300만원이다.
친척이나 아주 가까이 지내는 동창(50여 명)의 경조사가 있는 달은 더욱 힘들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이 문제다. 친척은 50만~100만원, 동창은 20만~50만원 나간다. 전 직장동료는 대개 5만원 받고 5만원 한다. 현직에 있을 때와 비슷한 금액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추락한 5060 중산층' 2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고용센터·새일센터·편의점 등에서 만났다. 추락한 중산층은 증가한다. 건보공단이 건보료 기준으로 10분위로 나눠 분석했더니 2001년 하층(1~3분위)이 18.3%에서 지난해 23.5% 늘고, 중산층(4~7분위)은 41.6%에서 36.7%로 줄었다. 24명은 대부분 하층이었고 이 중 11명은 경조사비 부담을 호소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택시 기사 홍씨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서울 종로에서 일산까지 1시간가량 동승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중산층에서 떨어진 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젊을 때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살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60대 들어서 소득이 끊기거나 줄어들면 중산층을 유지할 수 없죠. 퇴직 전에 부조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몇 년 전 아이 결혼식장에 온 사람이 청첩장 돌린 사람의 10%도 안 되더라고요. 상실감이 컸고 '이게 인생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한 중년층은 "부조를 안 할 수는 없고, 줄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 사회조사(2017)는 이런 애로점을 보여준다. 가구주에게 '먼저 줄일 지출 항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외식비·식료품비가 앞섰고 경조사비가 일곱 번째였다. 그만큼 줄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전직 은행원 서종남(58)씨는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용케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회사가 일감을 못 찾아 쫓겨났다. 서씨는 "경조사비가 한 달 생활비의 70~80%를 차지한다. 최소 5만원을 하는데, 한 달에 많을 때는 80만원까지 나간 적이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만혼과 기대수명 연장은 부조금 부담 시기를 늦춘다. 정모(62·서울 강동구)씨는 26세에 결혼하고 이듬해 첫 아이를 낳았고, 세 살 터울로 둘째를 낳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35)·딸(32)은 아직 미혼이다. 이들이 '결혼 적령기'로 불린다. 정씨는 “예전 같으면 친구 자녀 결혼은 벌써 끝났을 나이인데 요즘에서야 청첩장이 밀려온다. 하루에 결혼식 네 건에 40만원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60대 중후반까지 청첩장이 쇄도하는 이유는 만혼 추세 때문이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1990년의 초혼 평균 연령은 남자 27.8세, 여자 24.8세였다. 당시 초산 연령은 약 26세. 지금 5060 세대는 20대 중반에 결혼하고 후반에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자녀 세대의 삶이 달라졌다. 지난해 기준 초혼 연령은 남자 33.1세, 여자 30.4세로 28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5.3년, 5.6년 늦다. 초산 연령도 31.6세(2017년 기준)로 5.6년 늦다. 그만큼 부모 세대의 부담이 늦춰진 셈이다.
기대수명이 82세로 증가하면서 5060세대의 부모 부고도 점점 늦어진다. 예전 같으면 5060세대가 경제활동을 할 때 부고가 올 때가 많았다. 이때는 크게 부담되지 않지만 소득이 준 뒤에는 부담이 다르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한국노년학회장)는 “상부상조 의식에 기반을 둔 경조사 전통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뿌리가 깊어 5060세대로선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도 내야 하는 분위기에 내몰려 있다”며 “아주 가까운 사이만 챙기도록 관행을 바꾸고, 경조사비 줄이기 범국민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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