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역사의 바다 ‘명량’ 고래의 바다 ‘해적’ 인간의 바다 ‘해무’-어느 바다로 갈까 |
바다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혹은 인간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 '명량' '해적' '해무' |
【인터뷰365 김다인】올해 상반기 영화계 양상은 다른 때와 달리 독특하다. 흡사 약속이나 한 듯, 한국영화들이 ‘무리’를 지어 개봉하고 있다.
먼저 일컬어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줄줄이 테이프를 끊었다. ‘역린’ 현빈, ‘인간중독’ 송승헌, ‘우는 남자’ 장동건, ‘신의 한수’ 정우성이 연달아 극장가에 등장해서 오랜만에 관객들에게 눈호사를 만끽하게 했다.
눈호사에 지칠 즈음, 이번에는 역량있는 감독들이 신작을 들고 줄줄이 등장했다.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명량‘ 김한민, ’해적‘ 이석훈, ’해무’ 심성보 감독들이다. 이름만 봐서 얼핏 알 수 없다면 이들의 전작을 연결지으면 된다. ‘범죄와의 전쟁’(윤종빈), ‘최종병기 활’(김한민), ‘댄싱퀸’(이석훈), ‘살인의 추억’(심성보, 각본) 등이다.
이 영화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일을 잡았고 그 덕에 언론사 영화기자들은 7월 내내 시사회와 출연배우 인터뷰에 좇아 다녀야 했다.
가장 먼저 개봉한 영화는 ‘군도’였다. 하정우 강동원에 초점이 맞춰진 이 영화는 ‘얼리 버드’의 어드밴티지로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넘기고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시사회 후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믿고 보는 하정우와 오랜만에 보는 강동원의 칼솜씨에 마음이 간 모양이다.
먼저 저만치 앞서간 ‘군도’가 유일한 ‘육지영화‘였다면 나머지 세 작품은 공교롭게도 모두 ’바다영화‘이다. 정공법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명량‘, 개그감이 넘실대는 퓨전사극 ’해적‘ 그리고 고기잡이 배안에서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그린 ’해무‘이다. 과연 어느 바다로 떠날까, 관객들의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뚝심있게 밀고 나간 이순신 장군과 명량대첩 '명량'. |
30일 개봉 첫날 68만 관객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영화 ‘명량’는 오랜만에 보는 뚝심있는 정극이다. 장기로 말하면 포 차 다 떼고 장군 이순신과 해전 명량대첩에만 목표를 두고 줄기차게 밀고 나간 영화이다. 함께 등장하는 왜군 장수들에게는 화려한 의상만 입히고 ‘알아서 하라’ 하고 오로지 이순신과 해전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관록있는 배우들, 이순신 역의 최민식을 비롯해 왜군 장수 김명곤 류승룡 조진웅까지 어떠한 사족도 달지 않고 전장의 장수로만 끌고 나간다. 그나마 이순신은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간이 속내를 드러내지만 그것도 꼭 필요한 부분만큼이다.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 입장에서는 '좀더 연기를 하고 싶어' 속이 답답하고 아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 뚝심의 결과 영화는 이순신이 겪고 이겨냈던 해전의 현장을 눈 부릅뜨고 보게 한다.
김한민 감독이 온힘을 다해 진두지휘했을 해전 장면은 CG와 실사가 잘 어우러졌고 웅장하게 깔리는 오케스트라 음악도 좋다. 아이러니하게도 CG 때문에 출연자 개개인의 아날로그적 전투가 훨씬 잘 살아났다. 다른 영화 같으면 감상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 이정현과 진구의 애처로운 장면이 ‘명량’에서는 너무나 영화적이어서 군더더기로 보인다. 해전을 끝낸 민초들이 “이 사실을 후손들이 알까” 운운한 것도 너무 나간 느낌이다.
영화 시작 5분 내에 부수거나 웃기거나 하지 않으면 지루해하는 젊은 관객들, 요즘 영화는 전부 젊은 세대들용이라고 화난 중장년 관객들 모두 한번쯤 믿고 봐도 좋을 영화가 ‘명량’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퓨전사극 '해적'. |
드라마로 비유하자, 얼마전 끝난 KBS 드라마 ‘정도전’이 영화 ‘명량’이라면 좀더 전에 끝난 드라마 ‘기황후’가 ‘해적’이다.
‘해적’은 고려말 조선 건국 초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지만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원나라가 이성계의 조선을 인정하지 않아 4년여 동안 국새를 내리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 한 가지가 의미있다.
이 영화의 주춧돌은 멀미 때문에 해적질이 싫어져 산적이 된 유해진이 놓는다. 그로 인해 산적들이 해적의 무대에 뛰어들게 된다. 영화의 잔재미인 유머 역시 유해진에서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폭영화의 무서운 유해진이 아닌 ‘전우치’의 재미있는 유해진이 그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비담 역으로 무게잡던 김남길이 그 옆에서 맞장구를 잘 치며 영화의 흐름을 함께 주도해 나간다.
이 영화 역시 바다 위 실사와 짐볼 위에서 찍은 배안의 클로즈업 그리고 CG가 섞여 있는데, 귀신고래 CG가 특히 좋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아기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귀신고래는 아득한 바다속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까지 준다. 다만 손예진과 귀신고래를 엮는 방울은 느닷없다.
선과 악이 뚜렷하게 나뉜 가운데 적절한 유머와 로맨스가 섞여 있어 골치 아픈 건 됐고! 재미있고 싶다! 싶은 관객들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고기잡이 배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그린 '해무'. |
줄지은 개봉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해무’의 태생을 따져 들어가면 지난 2001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시 태창호가 중국인과 조선족 밀항자 60명을 태우고 있다가 해경 단속에 걸리자 25명은 어창에, 35명은 물탱크에 숨게 했다. 어창에 숨었던 25명이 가스로 인해 질식사하자 여수 앞바다에 수장한 실화가 있다. 그리고 2007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사건 당시 자료를 조사하고 생존자들을 인터뷰해 연극 ‘해무’를 무대에 올렸다. 영화는 실화와 연극, 두 가지를 기본으로 ‘살인의 추억’을 썼던 심성보 감독이 쓰고 감독했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이 기획 제작으로 참여했다.
‘해무’의 클라이막스는 어창에 숨어있던 25명이 모두 죽자 선장의 지시에 따라 선원들이 이들을 도륙해 고깃밥으로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다. 물론 화면으로는 보여지지 않지만 선원들의 몸짓, 튀기는 피 등으로도 선연하게 현장감을 준다. 이후 선상의 난장판은 마치 슬래셔 무비를 보는 것 같다.
영화는 연기 잘하는 배우 김윤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선장 역을 맡은 김윤석의 눈빛이 가장 살의에 빛났던 장면은 해경 순시선을 타고 나타난 윤제문을 다룰 때였다. 한쪽으로는 돈을 쥐어주면서 여차하면 사단을 낼 것 같은 그의 눈빛은 측면으로 찍었어도 살벌하고 섬뜩했다.
김윤석 외에 문성근 이희준 김상호 유승묵 등 선원을 연기한 배우들은 리얼함에 있어서는 지존이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나는 뱃놈’이라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무’가 영화 데뷔작으로 해양고 출신 신참선원을 연기한 박유천은 여러 모로 딱 ‘신참’만큼만 보인다.
갇힌 공간인 배안에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달아가는데, 그 숨이 가쁘다. 마치 ‘파국’이라고 켜놓은 불에 너도나도 정신없이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숨을 좀 고르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 와중에 기관실에서 벌어지는 박유천과 한예리의 정사는 새롭지 않은 설정이고, 마지막인 듯 마지막이 아니게 이어지는 6년 후의 장면들은 영화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어찌 생각하면 ‘해무’는 심성보 감독에게는 ‘살인의 추억’의 해답지이고 봉준호 감독에게는 ‘설국열차’의 바다 버전일 수 있다. 심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었던 살인의 현장을 보여준 영화일 수 있고, 봉준호 감독에게는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 사람들을 배에 태운 것일 수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무겁고 어떤 이들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가 ‘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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