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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도 그저 조선족'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한 마디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12일 09시31분    조회: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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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앞선 영화 <경주>에 호감이 있는 관객이거나, 대사를 통한 스토리 위주로 끌고 가는 영화에 그다지 열광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추천한다. <경주>가 경주에서 우연히 조우하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였다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의 네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군산에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내려간 두 남녀 윤영(박해일 분)과 송현(문소리 분)이 민박집에 묵게 되고, 그 곳의 주인장(정진영 분)과 자폐를 가진 딸(박소담 분)이 이들과 교감하는 이야기. 이 과정에서 서로의 아픔 혹은 치부가 드러나고, 다들 우연하게, 낯설게, 친절하지 않게 상대를 토닥인다. 아픔, 고통이란 본디 대리할 수 없는 것이기에 타인이 건네는 당장의 위로는 언제나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 어느 날 애정이나 배려의 발로였음이 우연히 깨달아질지언정 말이다.
 
윤영이 자신의 집 조선족 도우미와 '윤동주'와의 관계적 우연성에 감격하는 장면은 그가 시인이기 때문일까?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 역시 용정 출신 조선족이었을 뿐이라는"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말은, 우리가 조선족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주민(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입장의 동일함'을 전제한 관계로서가 아닌, 거시적 '인권' 담론에 머물러 있다는 장 감독의 뼈아픈 지적이고, 이를 송현의 이중적인 행태로 드러낸다.
 
시공간이 교차하는 영화 '군산'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한 장면ⓒ 필앤플랜

 
'장소'를 가장 중요한 모티브로 생각한다는 장 감독의 '군산'은 현재, 과거, 미래가 교차하는 곳일까?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네 인물들도 군산을 기점으로 일본, 중국(만주), 한국을 시대적, 공간적으로 공유하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오늘이 될 미래를 넘나드는 듯하다. 주인장과 딸이 일본에서의 아픔을 안고 군산에 머물고,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던 윤영이 군산을 찾게 되고, 오고서야 군산을 발견하는 송현의 시공간의 교차가 '우연'을 통해 펼쳐진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엔 빛나는 미덕이 있다. 쿡 하며 터지는 의외의 유머를 배치해 자칫 지루할 수 있을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그리고 깜짝 놀랄 배우들의 카메오 출연이 있다. 이 정도 배우가 등장하면 영화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조용히 조연으로 마무리된다. 또한 부수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여성 캐릭터들은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내 소득은 뭐니뭐니해도 배우 문숙(군산 음식점 사장)의 발견이다. 문숙은 <허스토리>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낮에, 술을 오랜 친구 보듯 대할 줄 아는 이는, 인생을 좀 아는 사람이다. 이 여인은 아린 상처를 목울음으로 토해내는 송현에게 고독과 고통을 다루는 태도를 전수한다. "허리를 펴.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이렇게 말이다.
 
군산은 시부모님이 한동안 거주하셨던 도시여서, 내겐 '시댁'의 다른 이름이었다. 시부모님 생전에는 명절 때마다 교통체증으로 고생하며 오갔던 터라,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군산'은 영화가 찾아 보여준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일제가 조선의 곡물을 수탈해 빼돌린 큰 항구였고, 그런 이유로 일본식 가옥이 많았고, 미군 기지촌과 위안부 집창촌이 큰 규모로 있었던 슬픈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가 군산을 낭만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아픈 역사 또한 공존하는 장소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제 시댁이 아닌 거위를 찾아, 군산을 다시 가봐야 할까 보다.

윤일희/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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