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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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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상 언어의 착상 댓글:  조회:156  추천:0  2024-11-21
                                              리호원 시집《그리워서 잊고 싶어》를 읽고/시의 산책(10)                                                                                  방순애      심상은 마음 속의 생각이거나 객관적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성을 인식하는 정신작용으로서의 생각이다. 시적 심상은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으로 나타내는 시인 내면의 생각이 시어에 의해 용해된 것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의 시들은 발전하고 있다. 의미(관념)에서 해방된 언어는 자유스러운 쓰임이거나 언어의 기호성과 가상공간의 무한한 확산에 의해서 시적인 언어 공간으로 구현되고 있다. 시인의 감정을 그려내면서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 버리고 작품의 내면에 숨어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으로 되고 다선구조로 되고 있다.     리호원 시인의 어떤 시들은 시라는 창의적 텍스트로 이미지들의 확장을 한다. 다양한 시로를 통해 시의 령역을 부단히 넓혀가면서 시인만의 색깔을 갖게 했다.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로히 넘나들며 사실 뒤면에 숨겨진 뜻을 전하고자 하는 시어를 창작했다는 점에서 더 이목을 끌었다. 몇수의 시에서 시인이 초월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쓴 언어들은 시의 파장작용이 크다.    시는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과 생명선은 천차만별(千差万别)이다. 의식의 순차적, 시간적 흐름에서 단절된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다양성을 보여주고 무한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고의 다양화를 통해 다변하는 가상현실적 세계를 만들다보면 단순한 시적 기법에서 벗어나게 된다. 때문에 보는 방향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시의 리해가 달라질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읽고 사색하게 하고 상상의 길을 개척해 줄 수 있는 그런 시는 참으로 좋은 시라 할 수 있다. 이미지에 담겨져 있는 언어를 통해 우리는 이미지 속에는 말하지 않는 세상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는 독자를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고 감동하게 한다.    리호원 시「지하철」보기로 하자   지하철은 먹새가 어지간히 좋다 새벽부터 먹고 토하며 토하고 먹는다 골고루 영양을 섭취한 탓인지 지칠 줄 모른다 오색령롱한 먹이들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다 배고프면 항상 지하철 입구에서 눈요기라고 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칠 때면 항상 름름한 가장이였는데 배고프면 그냥 그와 같은 조금은 슬픈 인간이였다 고심 끝에 새여나온 젊은 먹이 하나 골라쥐였다 그러자 먹이는 고개를 흔든다 행여나 다시 뽀얀 먹이를 잡았다 그러자 뽀얀 먹이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나는 그냥 그대로 굶기로 작심했다        -「지하철」전문       시의 상관물은 지하철이다. 1련은 지하철을 이인화하여 먹고 토하고 또 먹고 또 토한다 한다. 수많은 인간의 류동을 먹이로 말한다. 시인은 기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표면에 드러난 유의 속에 숨겨진 본의는 무엇일까? 독자들의 마음을 끌고 들어간다. “골고루 영양을 섭취한 탓인지 지칠 줄 모른다/ 오색령롱한 먹이들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다” 남녀로소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분비는 지하철의 모습을 영양, 오색령롱한 먹이로 표현하였다. 낯설기 하기이다. 사건의 언어, 언어로 다루는 고고함이 대단하다. 왜 이렇게 표현을 하였을까?     “배고프면 항상 지하철 입구에서 눈요기라고 했다” 지하철 이미지로 부터 당겨오는 거리, 확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신 암시적으로 끌어온다. 상징은 숨겨져 있는 다양체의 미다. 그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시인만의 능력이다.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 지하철 같은 인간의 능력을 사모하였다. 자기 주변에 늘 분비는 지하철 같은 인관관계를 부러워 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아이와 눈을 마주칠 때면 항상 름름한 가장이였는데” 아버지로서는 당당하고 멋진 아빠라는 의미다. 지하철과 아무런 상관없는 나 자신이 시 속으로 끌어들여 온다. 이렇게 첫 련에서 해체되여 나오며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글쓰기를 하였다.    “고심 끝에 새여나온 젊은 먹이 하나 골라쥐였다/ 그러자 먹이는 고개를 흔든다/ 행여나 다시 뽀얀 먹이를 잡았다/ 그러자 뽀얀 먹이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나는 그냥 그대로 굶기로 작심했다” 시의 상관물 지하철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시인 자신을 말한다. 언어는 제자리에서 머물러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의 한계에 따라 무한히 커간다. 먹이감을 고르는 것이다. 헌데 다 아니다.    “나는 그냥 그대로 굶기로 작심했다” 시인은 굶는다는 의미지는 시인의 내면세계의 반영이다. 인간의 언어와 심상의 언어 중간에서 오가는 사건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중점은 “나는 그냥 그대로 굶기로 작심했다” 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이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내 나름대로의 인간으로서 자리를 잡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의미라 하겠다. 전체 시에서 먹이라는 점은 계속 련결시켰다. 하지만 먹이에 걸려있는 지하철과 나는 다른 심상의 공간이다. 이런 탈령토화가 이어지기에 문명대비가 생성하고 시적거리가 먼 것 사이에 대비와 련장 작용이 폭이 넓어진다.      시「바다」에서 보면 “사막을 바람의 고향이라 할가/ 바다를 바람의 고간이라 할가/ 바람에는 년륜이 없다”에서 시인은 사막, 바람, 고향, 고간, 년륜 등 이미지들을 동원하여 시인이 이 사회를 들여다 보는 시각과 형상을 말하려 한다.    ‘사막’이라는 과대한 사물과 사막보다 아주 미소한 ‘고향’, 넓고 넓은 ‘바다’와 바다보다 아주 작은 ‘고간’이라는 상관물을 끌어다 ‘바람’과 결합시켜 표현하였다. 시인이 바라고자 하는 심상 언어를 등과성으로 등급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변형시키고 이동시키는 사물 공간을 리용하여 기존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시「무제 14」에서 ”결백의 갈망이 울던 새벽/ 순진은 성숙한 쇠퇴에 떨고/ 유치한 가슴에 꽃이 필 때/ 바보는 차가운 이슬이 되여/ 남도의 새벽을 날고 날았다/ 이제는 매몰찬 절벽이 되여/ 한가닥 슬픔의 기억이 되여/ 부엉이도 울지 않는 시공에/ 왜 아직은 가슴들을 여미는가!” ‘결백’, ‘갈망’, ‘순진’ ‘성숙’, ‘쇠퇴’, ‘유치한’, ‘바보’는 모두 추상어다,    하지만 시인은 ‘갈망과 새벽’, ‘순진과 쇠퇴’, ‘유치와 가슴’, ‘바보와 이슬’과 같은 추상어와 상관물을 조합시켜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울고’, ‘떨고’, ‘필 때’, ‘여민다’ 등 동사와 결합함으로써 움지기게 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였다. 하여 시가 하나의 동영상을 보는 것 같은 감을 준다.      시「잡초」”사월의 절창에 가슴을 트는/ 개나리 무릎을 에돌아/ 마지막 향기를 아작거리며/ 잡초는 야윈 속옷을 벗는다” 이 시에서 ‘가슴을 트는’, ‘개나리 무릎’, ‘마지막 향기’, ‘야윈 속옷’과 같은 언어조합이 참 신선하다. 시에 이런 명사와 동사, 명사와 명사, 형용사와 명사를 결합시킴으로써 완전히 다른 의미를 표현하였다. 시는 언어예술 창작이다. 그러자면 심상 언어가 착상을 해야만 한다. 상상 언어가 꽃피여 갈 때 시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어둠을 갉다 남은 슬픔 지천을 웃던 웃음 한점 동녘을 부르다 지친 별 삶을 태우는 어부의 눈      -시「등대」전문       이 시는 일구의 자수가 구언(九言)이다. 리호원 시인만의 구언률시(九言律诗)이다. 이 률시는 한개의 구절이 하나의 련이다. 하나의 련에서 앞의 이미지가 출구(出句)라 하고 뒤의 이미지는 가락구(落句)라 할 수 있겠다. 시상 전개의 측면에서도 기승전결(起承轉結)에 부합하도록 시인은 정밀하게 이미지를 창작했다.    ‘어둠을 갉다’, ’지천을 웃던’, ’동녘을 부르다’, ‘삶을 태우는’은 매구(每句)의 출구이고 ‘남은 슬픔’, ‘웃음 한점’, ‘지친 별’, ‘어부의 눈’은  매구(每句)의 락구이다.  이 시는 종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횡적으로 이어지며 각각이 다 다른 령토들로 되여있다. 하나의 령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령토를 개척하여 만들었다. 횡단적 문학은 기존의 삶과 부재하는 삶의 사이에 끼여 있다. 곧 상상 언어를 가져다 새롭게 시를 창작하여 다른 종류의 삶을 생성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런 문학은 평범성과 평균성을 벗어나는 효과적인 성취를 가져온다고 하겠다.      다음 시「할빈의 병」을 보자   할빈은 겨울이면 입원해야 했다 세 계절 도시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이제야 흰 붕대를 청청 감도록 허락했고 꽁꽁 얼어붙은 신음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해 사장은 아픈 도시를 걱정해서인지 강 건너 북쪽 상처 난 곳에 얼음찜질을 허용했다 그러자 한랭치료는 년말부터 이듬해까지 걸렸고 구난 요청에 속은 사람들이 돈을 들고 병문안을 온다 할빈의 병은 고질이 되여선지 50여년째 재발하고 있다      -「할빈의 병」전문      시인은 할빈의 빙등절을 “할빈의 병” 이라고 변형을 하였다. 누구라도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변형이다. 할빈의 빙등절은 매년 1월부터 2월까지 수많은 얼음 조형물을 전시한다. 50여년간 빙등쪼각 령역에서 나타난 빙룡등, 빙등탑, 빙공작 등은 네온등불과 어울려 전세계 유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빙정동화세계 같은 독특한 예술특색은 등관 색채예술과 배합되여 더 광채를 돋구고 있다. 시인은 이 특유한 예술의 전당을 “할빈의 병”이라 하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초점을 이동시켜 독자를 마음을 끈다. 아니 전혀 다른 이미지로 대치하고 있다.    “할빈은 겨울이면 입원해야 했다/ 세 계절 도시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이제야 흰 붕대를 청청 감도록 허락했고/ 꽁꽁 얼어붙은 신음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온도가 0도이하로 내려가면 고체상태의 물은 빙으로 변한다. 흑룡강은 우리나라 북방지대로서 겨울은 령하 20여도 되는 곳이다. 흑룡강의 겨울은 빙설의 제국이고 설의 고향이다. 흑룡강 눈보라 휘몰아치는 모습을 “할빈의 병”으로 가상현실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의식의 다양화한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기존 의식을 도주하여 시인의 의식의 집합을 통해 발전하게 된다.    “강 건너 북쪽 상처 난 곳에 얼음찜질을 허용했다/ 그러자 한랭치료는 년말부터 이듬해까지 걸렸고” 2련에서 얼음 찜질은 빙등 얼음 조형물의 창작이다. 얼음찜질이란 상상력의 촉각을 리용하였다. 사람의 피부가 아니고 도시의 피부이다. 감각적 미의식이 묻혀있는 의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독자들이 시를 읽는 재미이다.  년말부터 이듬해까지란 시간이동을 련결되면서 독자들을 초대한다. “구난 요청에 속은 사람들이 돈을 들고 병문안을 온다” 국내외 유람객들이 다녀가는 빙등절의 모습이다. 각각의 공간에서 동시에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한 공간에 던져 재구성하고 있는 무의식 언어는 내가 아니고 타자의 립장에서 표현되고 있다. 하여 차이와 차이 자체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제목 낯설기, 행과 행의 낯설기, 련과 련의 낯설기 하기를 통하여 읽는 이에게 다가오는 맛이 남다르다. 심상 언어의 착상을 통해 얻어지는 기발한 이미지, 현실과 비현실의 통합, 그리고 내면적 긴장과 갈등에서 이질적 특징을 찾는다. “할빈의 병”이 이루는 내적인 반전은 무의 비약과 그 힘으로 다시금 새로운 생명과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언어를 의미와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오래동안 등식으로 되여있는 관념적인 것을 해체하고자 한다. “할빈의 병”은 언어의 개념 대신 병에 관심을 두고 썼다. 언어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고 시간적으로 다른 이미로 계속 미끄러진다. 창의적인 위로와 성찰과 전망을 잃지 않고 태여나는 것이 중요하다. 허상으로 표현된 이미지라도 다시금 새롭게 꿈꾸는 시인이기에 보다 진전된 의미를 루적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가 한다.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시라고 다른 사람도 몰라 보는 것이 아니다. 시문학이란 참 속 깊은 것이다. 무한하게 넗혀져 있는 이미지들의 세계를 한꺼번에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다 독자들의 나름이다. 리호원 시인의 시들은 언어가 어느곳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확대, 생성되였다. 새로운 이미지들은 새로운 령역을 만들어 시의 언어를 상승적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시에서 사물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탈령토화하며 작은 상관물에 대하여서도 그저 지나치지 않았다. 독자는 이렇게 쌓아올린 시인의 창조적인 공간에 들어앉아 시적교감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필자는 리호원 시인이 여러개의 창을 열어놓고 세상을 내다보며 새로운 비전을 시도하는 모습에 감탄을 한다. 앞으로 시인은 변화무쌍한 현실 공간을 넘나들며 좋은 시들을 창작하리라 기대한다.                                                                                 20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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