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황혼 제4권
김장혁
68. "저승사자"와 "카시모도"
종호는 고요한 려인숙에 돌아와 침대에 맥없이 털썩 들어누웠다. 그는 두 손을 뒤더수기에 베고 누워 천정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림의 수술비용이 막막했다.
(내 집을 판대도 수술비용은 판판 모자라지 않는가? 설상가상으로 나영과 철석이 둘 다 감방에 들어가 인차 나올 거 같지 못하잖은가. 철석을 믿고 성림을 구한다는 건 한지에 방아를 거는 격이야. 나영이 심계국에 가져다 바치라는 탐오금도 가져가지 않고 기생놀이에 다 탕진한 거 봐라. 아가씨들 앞에서 통이 큰 거처럼 옷을 수태 사주고 몇백원씩 팁을 주고. 진짜 망종이야. 그런 놈 믿고 어떻게 성림을 구해? 나영도 그렇지. 그런 주색에 빠진 놈한테 성림을 맡기려고 부탁해? 한국에 나와 성림을 봐달라고 하다니? 참, 될 수 있으면 나영을 하루라도 더 빨리 감옥에서 나오게 해야 하는데.)
그는 빨리 자기 집을 팔아야 되겠다는 긴박감을 느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종호는 세입녀한테 전화를 쳤다.
“여보세요. 집 주인인데요. 집값을 다 준비했는가요?”
세입녀가 죽는 소릴 쳤다.
“미안해요. 이재 집판매계약을 맺은지 사흘 밖에 안되는데요. 왜 그리 재촉하는가요? 세집살이 하는 제가 어떻게 그리 빨리 집값을 준비하는가요? 좀 기다리십시오. 가옥소유증이랑 기타 요건을 잘 준비해두고 내심하게 기다려 주세요. 한국에 나간 여동생과 오빠가 돈을 보내 올 건데요. 근심말고 전화를 기다리세요.”
종호는 별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종호는 피뜩 철창 속의 불쌍한 나영의 보름달얼굴이 떠올랐다.
(철석이란 놈새끼 나영이 탐오한 5만원을 심계국에 바치지 않았잖은가. 아무리 다른 놈들을 적발해도 나영은 감형받기 힘들 거야. 이 일을 어쩌는가? 나영이 인차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 말엔 불쌍한 성림은 어쩌는가?)
그는 포도알처럼 초롱초롱한 눈이 말똥말똥해 엄마를 기다릴 성림을 생각하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림을 구하자면 먼저 나영을 구해야 한다. 춘영이 한국에서 나영이 대신 성림을 보살피지만 이모와 엄마와는 판판 달라. 성림인 모성애 없인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종호는 진짜 목숨 걸고 에메랄드를 구하느라고 애쓰던 등곱쟁이 바보 카시모처럼 놀기 시작했다. 그는 진짜 나영의 말처럼 카시모도 같은 바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카시모도 같은 바보들의 마음만은 더 뜨겁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돼. 어차피 성림의 수술비용이 모자라는 판에 먼저 나영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 황차 성림이 수술하는 걸 나영이도 동의하겠는지 모를 판이 아닌가. 옳지. 성림을 구하자면 나영부터 구해야 해. 성림한테 어머니의 모성애를 안겨주자. )
종호는 나영 모자를 다 구하려는 일념으로 저금카드를 가지고택시를 잡아타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는 주저없이 전날에 세입녀한테서 받은 집판매예약금 5만원을 몽땅 찾아냈다.
그는 또 택시를 잡아타고 곧추 검찰원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당직실에 가서 녀당직한테 기자증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문사 기자 리종호입니다. 최혜영 고문을 부탁드립니다.”
녀당직은 어덴가 전화를 쳤다.
“최국장님입니까? 여기 리종호 기자가 찾아왔는데요. 네, 네? 신문사 리사장님이시라구요? 네, 알았습니다. 그럼 최고문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녀당직은 전화를 놓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안내했다.
“리사장님, 올라오시랍니다. 제가 2층 최고문 사무실에 모셔다 드리죠.”
여당직은 당직실 문을 열고 나왔다.
“바쁘겠는데 필요없습니다. 제절로 찾아 올라가겠습니다.”
그래도 여당직은 그를 2층 엘레베이터 쪽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때 엘레베이터가 활짝 열렸다.
“리사장, 참 반갑소.”
아니, 글쎄 저승사자"로 불리우는 최혜영 국장이 엘레베이터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저승사자는 별명과는 달리 활짝 웃으며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기처럼 반갑게 마중했다.
“아니, 이제 만난지 며칠이라구 이러오? 최국장 바쁘겠는데. 마중까지 나오다니?”
최혜영 국장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웃었다.
"천만의 말씀, 국내외에 유명한 기자 왔는데 마중도 안하면 뭐요?"
그녀는 종호를 안내해 엘레베이터를 타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종호는 저승사자의 파 뿌리처럼 허연 머리를 보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빙장에서 은제비처럼 날렵하게 스케트를 타던 은영이 이젠 저렇게 늙었어? 뭐? 이전에 성호네 고향 서산에 가서 절벽에서 스키를 타고 날아내리던 은영이 맞는가? 참, 세월은 무정한 깍재야. 그 깍재로 썩썩 긁으면 그렇게 이쁘던 처녀도 파파 로파로 만들어보내는구나.)
복도를 따라 좀 가자 “고문판공실”이란 간판이 보였다.
“어서 들어오오.”
최혜영은 손수 커피를 타서 종호 앞의 차탁 앞에 놓았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여기까지 왔소?”
그녀는 종호가 십중팔구는 안해 류려평의 일 때문에 왔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종호는 왕청 같은 말부터 꺼내지 않겠는가.
“최국장, 내 요즘 알아보니 나영의 남편이 확실히 나영이 탐오한 5만원을 심계국에 바치지 않았더구만. 그런 나그네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아온 나영이 불쌍하오.”
최혜영 국장은 자기 안해 말을 안하고 나영이 말부터 하는 종호를 속으로 진짜 바보처럼 보여서 슬그머니 웃었다.
종호의 그 다음 말은 최국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내 나영이 탐오한 돈 5만원을 심계국에 가져갈가 하는데. 어떻소? 그럼 나영이 감형받을 수 있소?”
최혜영 국장은 의아한 눈길로 바보 같은 종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물론 탐오한 돈을 바치면 나영은 관대처분을 좀 받을 수 있소.”
뒤이어 그는 종호한테 나직이 물었다.
“허물없는 동기친구기에 묻는 건데. 어째 나영한테 그렇게 딱 꽂혀 가지구 안간힘을 다 쓰오? 나영이 그렇게 구할 가치 있는 여자라고 보오?”
종호는 어글어글한 최혜영을 마주 보며 진정을 고했다.
“나영이 일곱살 밖에 안되는 아들애 불쌍해 그러오. 그 앤 지금 급히 심장수술을 해야 하는 판이오. 그런데 옆에 에미 없이 어떻게 사오? 나영의 어린 아들애는 엄마 모성애가 필요하오? 모성애 없는 애는 날개부러진 새에 불과하오. 기형적으로 자랄 수 있소. 그래서 나영을 극구 구하려고 그러오.”
최혜영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종호 년편네 류려평이 야단치던 말을 들었는지라 한술 더 떴다.
“리사장의 사생활이지만 한마디 묻기오. 혹시 나영이 감옥에서 나오면 그 여자하구 재혼하자고 그러오? 동기니까 말하는데. 나영인 단정하지 못한 녀자요. 문화국 최정호 국장과도 살아서 임신해 낙태까지 했다오. 그런 녀자와 절대 재혼하지 마오. 리사장의 명예도 때묻을가 봐 근심돼 하는 말이오.”
종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건 아니오. 어떻게 딸 같은 나영하구 재혼하자오? 황차 나영도 동의하지 않을게구.”
그는 인차 뒷말을 이었다.
“난 다만 아들애를 참된 조선족애로 키우고 싶다는 엄마, 나영의 마음을 높이 샀을뿐이오. 나영의 아들애를 구하자면 에미부터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성림한텐 엄마 살뜰한 모성애가 필요하오. 나는 성림한테 엄마의 따뜻한 모성애를 안겨주려는 것뿐이오.”
최혜영 국장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었다.
최혜영 국장은 로처녀여서 애도 낳아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같은 녀성으로서 엄마의 모성애에 대한 리해는 종호보다 못지 않았다.
“류려평은 전번에 기내에서 리사장과 나영을 중혼죄로 고발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리사장은 류려평을 주의해야 하오.”
종호는 개의치도 않는 말투로 말했다.
“나와 나영의 관계는 동정에 토대한 순박한 관계일뿐이오. 우린 어려울 때 서로 도와준 것 밖에 없소.”
최혜영은 말이 나온바 하고는 미리 알아두려고 물었다.
“그런데 류려평은 리사장이 나영을 자기 세집에 데려다 함께 살았다고 야단치지 않고 뭐요?”
리종호도 류려평이 자기를 중혼죄로 고발하겠다고 한 이상 나영 사건 담당인 최혜영 국장도 제대로 알아두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딸애와 함께 사는 셋집에 나영을 들어와 함께 지낸 적은 있소. 나영이 한국 냉면집 허보수한테 쫓기워나서 엄동설한에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역에서 헤매니깐. 나영이 불쌍해 내 셋집에 데려다가 자게 했소. 나영이 대신 그때 내 지하철에 가서 쪽잠을 잤소. 후엔 딸애 동의를 얻어 나영이 우리 부녀와 함께 한 집에서 살았소. 그러나 나는 나영을 딸처럼 생각했을뿐 그런 관계는 한번도 없었소.”
종호는 나영의 신상을 좀 알아보고 싶었다.
“나영이 말을 들어보면 문화국 최정호 국장이 더 큰 문제더구만. 나영이 뭘 적발합데?”
최혜영 국장은 정색하면서 말했다.
“리사장이 나영을 사상동원했기에 나영은 우리 수사에 협조해 수많은 문제를 적발했소. 문화국과 전람관 청사를 지을 때 최정호 국장 외에도 류려평부행장과 류덕재 행장의 미묘한 거래도 적발했소. 나영은 이제 형기가 훨씬 줄어들 수 있소.”
“나영이 형기 줄어들면 얼마나 좋겠소? 성림이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는데.”
종호는 내심으로 기뻐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최혜영 국장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귀띔해주었다.
“나영이란 그 넝쿨을 따라 류려평이랑 류덕재랑 최정호랑 들춰 나가면 커다란 뭔가 찾아낼 수 있을게오.”
최혜영 국장은 근심스러운 일도 있어 종호를 보고 물었다.
“류려평과는 어쩔 셈이오?”
종호는 더 고려없이 단마디로 결단내 대답했다.
“리혼할 예산이오. 이번에 고향에 돌아온 것도 실은 리혼수속을 하려고 들어왔소.”
최국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런데 류려평이 전번에 기내에서 리혼해 주지 않겠다고 야단치던데. 그걸 보오. 류려평이 극구 리혼하지 않겠다고 나누우면 어쩌오?”
종호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류려평은 리혼하겠다고 서면리혼청구서에 싸인까지 했댔소. 악처 같은게 리혼하지 않겠다고 떼를 써도 리혼수속은 가능하오.”
최헤영 국장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법리적으로도 리혼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오. 민정국에서도 그렇지. 서로 감정도 없이 갈라 산지도 십여년이나 되는데 리혼시켜주지 않는다는 도리야 없지. 류려평을 구류소에서 구인해 데리고 민정국에 가서 얼마든지 리혼수속을 할 수 있소. 민정국에서 정 안되면 법원에 소송해 해결할 판이지. 류려평이 감옥에 있는 특수정황하에 근거해 리혼소송을 결석판결할 수도 있소.”
“고맙소. 리혼법리를 알려줘서.”
종호는 최혜영 국장이 동기를 생각하는 마음이찡할 정도로 가슴에 맞쳐왔다.
최혜영 국장은 또 한마디 물었다.
“리혼하면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예산이오?”
“난 내 원고료로 산 신문사 그 집만 가지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했소.”
“잘했소.”
최혜영 국장은 밝음 웃음을 지으며 동기를 바라보았다.
“류려평한테는 부정축재가 얼마인지도 모르오. 지금 류덕재 행장과 함께 해먹은게 하나, 하나 드러나는데. 류려평의 부정축재에 손을 댈 필요없소. 자칫 류려평의 부정축재 덤터기를 쓸 수도 있잖고 뭐요? 류려평을 판결하기 전에 리혼하고 재산분할도 깨끗하게 정리하면 좋을 거 같소.”
“최국장이 귀띔해줘 정말 고맙소.”
저승사자는 직업병이 또 발작하는가 보다. 기실 종호를 생각해 말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종호한테서도 단서의 실마리를 하나라도 더 쥐려고 들었다.
“이후에 류려평의 죄행이 생각나면 수시로 내한테 알려주오.”
“그러지. 난 류려평이 뭘 얼마나 해 먹었는지 진짜 잘 모르오. 그러나 의심스러운게 있으면 인차 알려줄게.”
최국장은 로련하게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녀는 뒤이어 또 한가지 물었다.
“리사장은 무슨 돈이 있어 여탐오분자 나영이 대신 탐오금을 갚는다고 그러오?”
“난 나영이 아들애 성림의 수술비용을 대자고 집을 팔았소.”
종호는 이렇게 말하자고 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믿는 동기라도 뭐나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좋을 거 같았던 것이다.
종호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성림이 모자를 구해야겠소.”
그는 말을 마치자 우쭐 일어났다.
“그럼 심계국에 나영이 탐오금을 바치러 가겠소.”
최혜영은 일어나 말렸다.
“그 탐오금은 검찰원에 바쳐도 되오. 내 심계국 조국장한테 나영의 탐오금을 검찰원에 바쳤다고 알리면 되오. 나영이 사건은 이젠 검찰원에서 책임졌소. 물론 심계국에서 나영이 탐오사건을 발견하고 제보했지만 이젠 그 사건은 검찰원에서 법원에 기소할 절차를 밟고 있소. ”
“그럼 잘 됐소. 어데다 내는지 알려주오.”
최혜영 국장은 어덴가 전화를 치는 것이었다.
한 여검사가 사무실에 들어섰다. 여검사는 종호를 안내해 갔다.
종호는 일을 마치자 최혜영 국장과 악수하고 갈라졌다.
“나영의 사건을 아마 최국장이 책임진 것 같은데 법률상 공평하게 처리하리라 믿고 가겠소.”
최혜영 국장은 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법률 앞에선 사람마다 공평한 법이오.”
종호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사무실에서 나와 성큼성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떠났다.
최혜영 국장은 복도에서 멀어져가는 종호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안해 류려평의 안부는 한마디도 묻지 않고 왕청 같은 동네집 모자간을 구하려고 집까지 팔아 들이대며 왼심을 쓰는 종호가 바보처럼 보이었다.
그녀는 진짜 등곱쟁이 카시모도가 련상돼 콧마루가 시큼할 정도로 저으기 가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