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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효문화가 무너지나 댓글:  조회:1564  추천:1  2015-06-04
수필 효문화가 무너지나     제목을 걸어 놓고보니 무엇부터 먼저 써야하느냐는 생각이 앞선다. 효도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보살피고 잘 섬긴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효도언행이 우리로부터 점저 멀어져만 가는 것이 안타갑게 느끼게된다.좀 잘 살게 되었다고 조상을 잊어 버렸는지 아니면 금전 만능이라 돈 행세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여서인지 여하튼 갈피를 못 잡겠다.  세월이 노령시대에 접하게되자 여기저기에서 양노원이요, 요양원이요,호리원이 요,복지원이요 하며 ‘우후죽순’이다.정말 늙이들을 보살피기 위하여서인지 아니면 돈의 유혹에 끌려서인지 예전에는 보기드문 이름이며 건물들이 요즘에는 심심치 않게 눈에 띄운다. 그런가하면 나라에서는 정부적차원에서와 사회력량으로 양로기구와 설비를 늘이도록 여러모로 대폭 호소하고 지지를하고있 다.하지만 최근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가족의 형태가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화 됨으로써 자식들이 경제적 능력을 상실고 날로 쇠약해져가는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우리들의 주변에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볼 수있다.   오늘 우리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많은 실례 중 두개만 들어 사회를 비추어 볼가한다.    70이 가까운 두 늙은부부가 손자,손녀를 맡아 보살피면서 아들 며느리와 한 집에 살아온지가 거의20년이다.청도에 진출하여 모든 것이 순리롭지만 못하던 그 시절,그들은 김치장사로부터 시작하여 보따리장사,자그만한 식당이며 닥치는데로 일하여 수년간 아글타글 돈을 모아 아들 며느리의 장사밑천을 대여 주어 아들이 하루빨리 잘 살날이 올 것을 빌었다. 그러나 장사에 서툰 아들 며느리는 첫 시작인 복장장사에서 밑천마저 날려 보내고 큼직한 빗더만 남았다.    실망에 빠진 아들이 가긍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욱 악착스레 장사를하여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하늘이 도왔는지, 아들은 운이 트기 시작했다.자그마한 회사가 몇년사이에 제법 틀이 잡힌 회사로 부상했고 눈덩이 굴리듯 돈이 불어 아파트도 여러채 사놓고 샘평이 하루를 몰라보게 좋아져 갔다.그러던 것이 이 집엔 암운이 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어느날이었다.하치않은 말 몇마디가 고부 사이에 오갔다.그러자 며느리는 마시고있던 물을 시어머니 얼굴에 뿌리면서: “늙은××× 죽지도 않고…” 어머니는 오열이 터졌다. 몇 몇일을 두고 울고 또 울었다. 이 젊은이에게는 이젠 늙어 쓸모가 없게된 부모가 싫었던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손녀를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하던 할머니가 동북 고향땅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기에는 일가 친척이 없다.원인은 수년간 서릿발치는 며느리와의 냉전에 못견디 어서다.일년, 365일을 시어머니와 말 한 마디 건니지 않는 며느리었다.그러니 밥상엔 근본 한자리에 앉지를 않는다.시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은 입에도 안데고, 먹다 남은 음식물은 몽땅 쓰레기통으로 들어 간다. 더럽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손녀의 생일과 자신들의 생일은 잊지 않고 챙긴다. 시어머니는 빼놓고 세식구만 나가서 외식이다.퇴근때면 손녀의 군입질 감으로 온갖 먹거리를 사들고 들어 온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는 맛 좀 보시라는 인사말 한 마디 없다. 이렇게 6-7년을 살다가 오뉴월에도 성에 낀다는 이 집에서 더는 함께 한 집안에 살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가 선택한 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길 하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가슴 부풀게 찾아왔던 청도땅을 70고령에 보따리 하나 달랑 메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고 말았다. 만약 법과 세상사람들의 눈이 무섭지 않다면 ‘고려장’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다음엔 위의 두 이야기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우리아파트 일층에 자식들이 모셔가려하나 정든 이 집을 떠나기 아쉬워 떠나지 않는 한족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신다.평시에는 혼자이지만 주일마다 아들딸 며느리 손군들까지5-6명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운다.어머니의 숙식이 걱정되어 그들은 하루에 꼭 한번씩 들려 이것저것을 살피고 하루 먹을 밥을 지어 놓고 간다.그러면서도 나를 만나면 어머니를 부탁 한다며 인사까지 남기고 간다. 딸은 짬만나면 찾아와서 빨래도하고 어머니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준다.어느 하루는 그냥 그 집 문을 지나 오려는데 기어이 집안에 들어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기에 들어 갔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끝에 할머니가 하는 말이 “당신네 조선족들은 정말 훌륭한 민족이다.특히 늙은이를 존경하는 효성은 온 세상이 따라 배워야할 바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효는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는 덕목이다.우리민족이 대대손손으로 간직해 온 정신문화요 보물이다. 까마귀도 늙은 부모를 먹여 살린다는 란 말이있다. 하물며 인간으로서 이 일은 너무나도 우리들의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예로부터 어른앞에서 술을 마셔도 몸을 돌리고 술잔을 기우렸고 어른앞에서는 담배도 못 피웠다는 우리 민족이 다시 ‘고려장’이라는 소리가 날지경에 이르렀으니 ‘효’란 문화가 벼랑끝에 서있게 되었다는 위기감이든다. 효는 종교와 종파 시간과 공간을 뛰여 넘는 문화이자 가치이다.5천년 우리민족의 자랑으로 여겨왔던 전통이었다,동시에 어느때나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원천이자 가족과 민족을 살리는 원동력이었다. 효는 백행의 지본이어늘 효행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다고 뻔히 지켜 보기만 할 수도 없고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세울 수도 없는 일이니 우리 모두가 걱정이라도 한번해보면 어떨까 한다.아직까지 삶의 기반이 제대로 짜이지 못하고 민족문화터전이 허술한 이 곳에서 우리 모두가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효의 길은 평화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7    청도에 우리 글 잡지있다 댓글:  조회:2048  추천:3  2012-12-22
'꽃노을'잡지 송년회 개최 8년간 20기 2000여부 발간 장학규     별로 생소한 얘기가 아닌 거 같다. 청도에 확실히 우리글로 된 잡지가 수십은 몰라도 수개는 된다. 대강 꼽아도 '청도가이드', '청도라이프' 뭐뭐해서 아마 한 7~8개는 되는 거 같다. 그런데 청도에 우리글로 된 잡지가 있다? 바로 오늘 청도시 이창구에서 '꽃노을'잡지의 송년회가 있었다. 청도시조선족노인협회에서 간행하는 '꽃노을'잡지는 2005년 4월에 창간한 내부간행물로서 전통적인 조선족 거주지인 동북3성을 떠나 멀리 연해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종합문예지이다. 상업잡지와 광고잡지가 난무하는 청도에서 순수 문예지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경비가 없어 어떤 해는 단 한권도 발간하지 못하고 편집, 타자, 교정, 설계, 발행까자 단 한사람이 8년간 이어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재룡, 청도조선족노인협회 회장 겸 산동반도조선족노인친목회 회장, 그리고 전국조선족노인총회 부회장이 그 장본인이다. 요녕성 출신인 김회장은 금년에 저그만치 72세, 젊었을 때부터 문학의 꿈을 가지고 분투해왔다. 수필에 남다른 조예를 가지고 있는 김회장은 청도에 진출해서도 문학의 꿈을 접지 않았다. 1500여명 회원을 가진 노인협회를 인솔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민족집거지에서 문화의 꽃을 꽃피울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였다. 현지 실정상 여러모로 여건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내부간행물 발간을 서두르게 되었고 8년이 지난 현재 "꽃노을'은 단순한 노인들의 생활양상을 전달하는 찌라시 형태의 인쇄물로부터 점차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내부간행물로 발전하였다. 현재 '꽃노을'잡지는 노인들의 활동양상을 전달하는 데에 앞서 청도 현지 문인들의 문학작품과 보통 독자들의 생활감수를 싣는 한결 성숙된 잡지로 현지 조선족들의 한결같은 인정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총 20기, 2000여부가 발간된 '꽃노을'은 이미 노인협회 내부간행물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전반 조선족사회를 아우르는 종합잡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 청도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공식잡지의 맹아로 자신의 위치를 서서히 찾아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송년회 모습                             김재룡 회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도문인회 이홍철 회장이 축하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최균필 시인이 정열에 넘치는 시낭송을 표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홍영빈 시인님이 빠질 수 없습니다.     이게 꽃노을 잡지입니다. 아직은 여리지만 나중에 청도에서 세상을 놀래울 멋진 잡지로 거듭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청도문인들도 이 잡지에 동참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순수 노인들 상대의 잡지로부터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간행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초보적으로 약속했습니다.      
6    범람 댓글:  조회:1868  추천:1  2012-10-12
 “범    람”                             등  에   요지음 두 귀를 쫑끗하고 들어 보면 이런 말이 자주 귀에 들려 온다. 언제 부터 어디에서 만들어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뭉쳐야 산다”그것도 그냥”뭉치”는 게 아니라 “똘똘 뭉치자”라는 것이다. 한개 가정으로 부터 단체,그리고 나라에 이르기 까지 “뭉쳐”야 생존 한다는 시체 말로 생각되는데 예전에 “단결은 곧 힘이다(团结就是力量)”말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된다.그기에 “뭉쳐야 산다”고 한결 힘을 주어 말한 것이 한층 더 새롭다고나 할까? 그런데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에 북 바쳐 오르는 감격에 금방 새힘이 솟는 것만 같았는데 몇년을 두고 들으면서 주변을 살펴 보니 여의치 않은 감, 가슴 한 구석을 허빈다. 수많은 기나 긴 세월 간 우리는 조롱 속에 같인 새 처럼 행동 언론 자유를 속박 받아 살아 왔기에 말 그대로 개혁개방의 봄 물결 따라 오늘날 마음대로 날 수 있을 만큼 자유를 얻어 이런 저런 들을 생각 나는대로 만들 수 있게 되였다. 물론 정부에서는 등기를 하여 주지 않고 제한을 주고 있지만 지난 시기에 비하면 “만세’다. 뒤 늦게라도 피여나 세상 구경을 할수있게 된‘백화’라고 할수 있겠다.   그런데 들려 오는 소식에 의하면 북경이고 심양이고 청도이고 상해이고 개방도시에서 더욱 활약 적인데 설립된 단체 이름만 하여도 수 십 개다.   어느 곳이나 아마 제일 먼저 설립된것이 일 것이고 그다음은 ,, , , , ,또 … 외에도 이름도 현란한 이 저 이 한 고장에서만 하여도 여러개다.이협회 저협회 이름을 외우자 하여도 한나절이 걸려야 할 정도다.과연 총명한 우리민족 머리의 “걸작”임에 틀림 없다.개혁개방의 덕을 본셈이다. 눈부신”성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자신들의 재질을 한 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온것이다. 세상에 태여 나서 수십 년간 재주 한번 못 부려 보다가 좋은  세월 덕분에 ‘회장’이란”벼슬’을 하여 볼 기회도 생겼고 무대가 무었인줄도 모르고 살던 사람이 예술단 ‘단장’이다.큰 소리만 쳐도 되는 세월이 아니고, 허풍만 잘 쳐도 되는 일은 더구나 아닐 것이고,돈으로 모든것을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하긴 돈만 있어면 귀신도 멧돌 돌리게 할 수 있다 하니...   이렇게 백화제방(百花齐放)의 좋은 세월이 오니 우리 민족의 빛은 온 누리에 비치고 모두가 어화둥둥 신이나서 들 뜨고 있다. 현명한 인사들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굴레 벗은 망아지 처럼 제 마음대로 뛰고있 는 자유분방한‘단체’들을 묶어 세우려고 안까님 쓰고있다.그래서 “모두가 똘똘 뭉치자고 “행사장에서 떡매를 치겨 들고 찰떡 치는 형상도 그려 보였고 또 서로들 어울려 살자고 큰솥 비빔밥 비비는 흉내도 내여 본다.그러구려 몇해란 세월은 또 흘러 가버렸지만 어느 곳이나 이렇다 할 “민족단합회”나 “민족련합회”란 이름이 나타 나지 않고있다.찰떡을 치지 말고 시멘트 콩크리를 하는 흉내를 해 보였으면 어떻게 되였겠는지 모르겠다.그러구 보니 여기서도 운동대회요 저기서도 운동대회요 한해에 한차례씩 치르다 보니 해마다 수십만원이란 거액이 들어 가나 문화 시설이란 오늘 까지 공백이다.뽈이나 차고 잘만 뛴다고 선진적인 민족이다 라는 칭호를 받은 민족은 이 세상에도 없었을 것이다.   수 만을(혹은 수십 만을) 헤아리는 우리 민족이 살고 있다는 곳에 민족문화관이나 예술관이라고는 없으니 이런 것을 세워(민족문 도서를 파는 서점이나 도서관도 좋다) 고갈이 던 동포들에게 감로수를 가져다 주는 일도 바람직한 장거가 아닐까 한다.    넘쳐 범람하고 있는 “협회”’바람’을 적당히 제제함이 우리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축이 있는 건전헌한 민족 사회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고 필자는 오늘 주제 넓게 지끄려 본다. 만약 이글이 어느 누구의 신경을 건더렸다면, (잠간,이 글에 맞추어 좌석을 찾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저 생각 나는 대로 갈겨 본 횡설수설이니 말이다. 더구나 를 쓴 중국의 막언(莫言)이라는 작가가 오늘 노벨 문학상을 수여 받았다는데 요만한 글이야 아무것도 아니렸다.   비빔밥을 비비던지 찰떡을 치던지  뭉친다와 통합이란 모두가 한 줄에 선 친구이니 빈 구호만 외치지 않는 진짜로 의 길로 인솔해 나아 가는 실천가 다운 사람이 민족의 영웅이 아닐까고 혼자 생각해 본다.      
4    청도땅에 활짝 핀 할미꽃 댓글:  조회:2298  추천:0  2012-05-28
칭다오땅에 활짝 핀 할미꽃   재칭다오 조선족노인들의 생활상과 건강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칭다오조선족노인협회 제10기 운동대회가 5월 20일 칭다오조선족 민족교육의 요람지인 정양학교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칭다오진출 조선족노인들은 칭다오조선족사회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여왔다. 일찍 1991년 이창구조선족노인협회를 중심으로 박갑철 1임회장, 황문수 2임회장으로 이어오다가 2004년 4월 18일에 각자 활약하던 12개 노인단체를 통합하여 김재룡 회장을 위수로 하는 칭다오 민간단체로서 가장 방대한 대오를 설립하였다. 현재까지 노인협회는 40여개 분회 16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오전 9시, 국기와 노인협회 회기를 선두로 성대한 입장식이 진행되었다. 지아오저우, 지아오난, 라이시 등지에서 전용버스를 임대하여 아침 일찍 행사장에 도착한 노인들은 화려한 민족복장을 떨쳐입고 저마다 웃는 얼굴로 노인협회 설립 8주년 기념행사를 마음껏 즐겼다. 입장식에 이어 진행된 문예공연은 청양지회, 이창지회, 서부지회, 북부지회순으로 화려한 춤잔치가 벌어졌다. 노인들은 평소에 열심히 익혀둔 춤동작을 농악무, 사교무 등 곡에 맞추어 능란하게 표현해나갔다. 이들의 공연은 수시로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갈채를 받았다. 6, 70세가 넘는 노인들의 모습은 칭다오땅에서 활짝 핀 할미꽃을 연상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900여명의 노인들은 하루종일 춤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까지 8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재룡 회장은 협회가 지난 8년간 거둔 성적을 긍정하고 노인협회가 똘똘 뭉친 단체, 조화로운 단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특히 칭다오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노인들의 밝은 정신면모와 건강한 모습을 과시하기 위하여 본 운동대회를 개최하였다고 밝혔다. 칭다오조선족노인협회는 칭다오조선족사회단체중에서 설립시간이 가장 오래되고 회원수가 가장 많으며 민속축제 행사 등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기둥역할을 해오고 있다. 본 행사에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칭다오고향협회,청도여성협회,한국인병원, 황민국 사장, 전동근 사장 등이 협찬과 후원을 진행하였다. 박영만 기자 piao321@hanmail.net
3    청도"아리랑예술단"과 "민속예술단"합류 댓글:  조회:2557  추천:0  2012-03-13
청도과 합류   청도 아리랑예술단과  민속예술단이  합류를하였다.   창단  7년의  력사와  경력을  갖고있는  아리랑예술단은  청도조선족 사회에서  처음으로  창단된 우리민족 예술 단체였다.창단 7년사이 우리민족의 전통예술문화를 발굴,발전,이어가는면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며 100여차에 달하는 공연을 통해 민족예술의 이미지를 청도지역에서 널리 알리였으며 부동한 무대에서 10여차례의 금은상을 수여 받아 20만 겨레의 사랑을 받아왔다. 민속예술단은  설립 력사가 비록 짧았지만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안무 경력을 갖고 있는  단장 신춘애씨의 높은 예술기교와 안무 쏨씨로 정채로운 예술작품을 관중들에게 선사하였고 높은 평을 받아 왔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아리랑 예술단 단원들의 연령이 높아가고 유동이 심하여지고 민속예술단 역시 자격을 소지한 단원들의 부족으로 모두가 진통을 겪어왔다. 이는 요구가 높아만 가는 관중들의 요구를 만족 줄수없게 되였다. 그래서 민족예술을 사랑하고 더 높은 차원의 예술단을 건설할 포부를 가진 신춘애 단장은 이두 예술단체가 합병할 구상을 제기하자 아리랑 예술단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 일전 이 두 예술단체는 구체적인 상의와 토론을 거쳐 정식적으로 합류 할데 대한 의견 일치를 가져왔다. 이 두예술단체의 합류는 연해지구 우리민족 예술단체의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보여주리라 전망된다. 신춘애 단장은 앞으로 적당한 시기에 새로운 참신한 프로를 관중들엣게 선사하겠다고 말하였다. (로선      2010 –3—12     )  
2    "그 버릇 개 주랴" 댓글:  조회:2073  추천:0  2012-03-07
“그 버릇  ”    어디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내가 창작한 글이 아니구요…. 어느 누가 원숭이 한마리를 길렀답니다 .워낙 령리한 원숭이라 주인이 시키는데로 심부름도 잘하고 말도 잘듵고 또 재법 사람의 흉내를 잘 내는지라  주인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도 귀여워 하였답니다. 걸을때도 제법 주인의 거동을 따라 두손을 허리뒤에 얹고 팔자걸음도 제법 신통하였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가니 원숭이는 자기가 사람인지 원숭인지 착각할 정도 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 가던 사람이 땅콩한알을 원숭에게 던져주니 원숭이는 날념 네발로 뛰여와서 냉큼 땅콩알을 주어 먹더랍니다. 
1    로옹을 보내면서 댓글:  조회:2793  추천:1  2012-02-08
로옹을  보내면서 새벽에  잠에서  깨여나  기지게를  켜고있는데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무슨  전화가  이리  일찍이…”나는  좀귀찮았다. “여보세요…”  “로선생이  로선생이  사망했어” 내가  대방이  누구인가  알아  차릴새  없이  대방의  급한  목소리가들려왔다. “뭐,누구,누구,로선생이?” “응, 로선생이  금방  숨을  걷우었어” 나는  놀랐다.사람의  생명은  이렇게  갑자기  끄지는가보다  .촛불처럼… “참, 불행한  인생이였어” 옆에있던  마누라가  눈꿉을  찍어며  중얼거렸다. 로선생의  일생은  힘겨운  일생이였고  ‘잠잠’한  일생이였다.힘겨운  일생이였다면  이나라에  대학생이  그렇게도  귀하던  그시절에 그는  동북공대생이였다.누구보다  총명한  머리를    가진  그는  언제나  성적이  반급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학교지도교사의  총애를  받아  창창한  앞길이  그의  앞에  펼쳐져있었다.그런데  때  아닌 된 서리가그에게  덮칠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라는  ‘감투’가  그에게씌여졌다. 하치않은 말 몇마디가 그로 하여금 평생허리를 못피게하는 재앙이 될줄은  몰랐다.그때부터그는머리를 숙이고 살아야했고 나라의 유망한 과학기술일꾼이 되여 야 할 그가 호미자루를 잡고 밭고랑을 타야만했으며 이땅에 오가는의 된메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차례졌다. 대학졸업학년때 생긴 일이라 졸업장도 못탓다. 너무도 아쉽고 가슴아픈일이라 그는 수차례의 학교측을 찾아갔더니 그래도 인정머리가 좀 남았는지라 졸업장을  해결받았다. 그런데 ‘재수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등깬다’더니 천금같이 귀한졸업장을 기차에서 어느놈이 가방체로 훔쳐가버렸다.통곡할 일이였다.하늘이 무너지는것만   같았다. 그로부터그는 자신을 운명에 맡겨버렸다.입을 다물어 버렸다.찬란한 햇살이 대지를 어루 만져주어 도  황홀한 저녁노을이 인생을 장식하여 주어도 그에게는 아무른 상관이없었다. 이땅에 먹장구름이 온누리를 뒤덮고 흑백이 바뀌고 인성을잃은 사람들이 늑대처럼 꿱꿱고함 지르며 주먹질,발질,욕지거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자신을 괴롭혀도 그는 침묵으로 대하였다. 고통과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더디어 검은 구름이 걷혔다. 사람들은 잃었던 리성을 주섬주섬 되 찾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리를 누르고 반주검으로 만들엇던 ‘모자’도 벗겨주었다. 꼭27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다.하나 마음속 깊이 남은 상처는 아물줄몰랐다 .마음착한 그는 이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인생을 대하였고 세상을 대하였다. 이렇게 잠잠히 무겁게 조용히 살아오던 그가 오늘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심장마비로 숨을 걷우었다. 하긴버—얼써 마비된 심장이였고 마비된 인생이 아니였던가! 사회를 위하여,인류를 위하여,자신을 위하여,가족을 위하여 무엇이고 하여도 크게 하였을 그가 오늘아침 말없이 한많은 이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빌뿐이다. 고인은 고이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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