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달래는 삶의 현장
학교에서 편부모학생에 대한 조사중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였다. 300명을 웃도는 학생중 20명 푼한 학생이 부모와 함께 있고 나머지는 할머니, 고모, 이모가 아니면 아예 남에게 위탁하였거나 기숙생활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였다. 그러니 전체 학생수의 90%를 웃도는 학생이 부모와 갈라져 살고있는 상황이다. 실로 놀라운 수치였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조선민족사회의 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금 외로움에 지친 삶을 산다고 해도 과분하지 않을만큼 고독과 방황 그리고 리별로 인한 어떤 갈증에 시달리고있다.
A는 원래 행복한 네식구 가정이였다. 아들딸 오누이를 둔 그들은 마을에서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우로는 딸이고 아래로 아들을 두었으니 시체말로 하면 아주 백점이라나, 교원으로 사업하는 남편에 유치원교양원으로 일하는 안해, 나머지는 별로 없는 수입이였지만 가난에 쪼들릴 정도는 아니였다. 하지만 애들이 커가면서 점차 늘어나는 비용과 더불어 이웃들과 친구들의 한국나들이는 A안해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족했다. 그래서 택한 한국행- 떠난지 8년이 되도록 돌아올념이 없단다. 현재 그들은 네식구가 네곳에서 살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고있다. 딸은 청도의 어느 한국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아들은 천진의 한 회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며 남편은 그냥 교원직으로 맡은바 자신의 사업을 열심히 하고있다. 물론 그새 아빠트를 사고 가정기물이 구전하게 마련되였으며 돈걱정이 별로 없는 초요생활을 하고있지만 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자취생활을 하고있는 남편은 남모르는 외로움의 고초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임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한때 우리 학교부근의 세집거리에서 류행되던 “사랑의 거리”가 떠오른다. 내가 녕안으로 금방 조동되였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 정확히 지난 세기 90년대 후반이다. 내가 맡은 학급의 학부모들이 개를 잡아안쳐놓고 우리 부부를 청해서 부부 동반으로 갔는데 우리까지 합쳐 모두 4쌍이였다. 학부모들이 부른 장소다 보니 의례 학생을 매개로 서로 소개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들 쌍쌍의 행복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부모를 가진 애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후에 학부모와의 거래가 좀씩 늘어가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우리 부부와 만났던 3쌍이 모두 “조강지처”가 아닌 림시부부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녕안에 정착한지 4-5년이 되여서는 그 화기애애하던 “사랑의 거리”가 “눈물의 거리”로 바뀌기도 하였다. 물론 현재는 그 “사랑의 거리”가 거의 “빈거리”가 되여 얼마간의 젊음이 남아있던 아낙들의 모습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그런 비정으로 만들어졌던 그 “사랑의 거리”가 그리울 지경이다.
얻는것이 있으면 잃은것도 있다고들 말하는데 그 잃는것이 너무도 소중한것이 아닐가?! 자식은 부모의 사랑에 굶주리고 부부는 피 말리는 그리움에 모대겨야 하니 이 아니 세상을 원망할 일이랴!
그나마 앞에서 말한 A가정은 가이 말해 오돌차게 살아가는 가문이라고 보아야겠다. 밥먹듯 하는 외로움을 굳건히 참아가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삶의 악장을 엮어가는것만은 사실이니깐!
A가정을 상대로 B가정을 비기면 그건 너무도 비참하다는 결론이다. 그들도 A가정과 꼭 같은 단란한 네식구였는데 세곳에 갈라져 살고있다. 그들 부부는 10년전 한국행을 함께 떠났는데 그들 부부는 언녕 리혼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 살던 집마저 팔아버려서 고향에 돌아오면 있을 집마저 없다. 아예 산산히 부서져버린 가정이라는 말이 더 지당하다. 실말이지만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렇게 집마저 다 버린 가정이 어찌 한두가정이랴!
애매한 자식들이 불쌍하다 어려서는 부모사랑을 잃어버린 아픔을 겪었는데 커서는 또 엄마 아빠의 리혼이 가져다주는 상처까지 입어야 하니 자식들의 밝은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빈가슴을 달래려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들에게 돈으로 미봉하고있는데 실은 착실하던 자식을 간접적으로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소행이라해도 분에 넘치는 말이 아니다. 이는 학교사업을 하고있는 필자가 목격하고있는 현실인만큼 절대 허구가 아님을 단언한다. 하늘에서 떨어지가라도 하는듯 한 부모님들이 통 크게 부쳐오는 떼돈이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소비하던 학생들도 그것이 관례로 되면 더는 소중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돈맛을 들이면서 자신이 가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잃어가고있다. 원래 착실하던 학생도 그 착실함이 어느 한 구간의 기억으로 남을만큼 몰라보게 변하는 불쌍한 애들을 한두번만 본것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누려가고있는 부와 대응하여 정신공허는 점점 더 커가고있는 우리 민족의 삶의 공간은 더 넓어진듯 하면서도 그것만은 아니라는 씁쓸한 심정이다. 도시에 거주하는 신형의 우리 민족 농민들은 기실 뿌리내릴 곳을 찾지도 못한채 부평초같이 들뜬 생활을 하고있다. 아빠트에 자가용을 굴리고있는 일부 벼락부자들도 합당한 품목을 잡지 못한채 놀아야만 하는 아름다운 비애를 겪고있다. 매일이다싶이 직업적으로 노는 마작 아니면 훙스 그것도 아니면 낚시질, 돈을 팡팡 써가면서 양어장의 고기낚기로 손맛이나 달래고있다.
한국로무에서 피와 땀 그리고 뼈를 깍는 리별의 아픔을 반죽하면서 벌어온 돈들이지만 재부로서의 자랑만은 아니다. 실로 가슴에 손을 얹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흥청망청 세월에 끌려간다면 어디가 끝일가? 번 돈, 쓰는 돈, 쓸 돈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쓰는가를 새겨볼 일이다. 어렵사리 이루어낸 재부인만큼 빛을 뿌리는 돈이 되고 삶을 가꾸는 좋은 재부로 될수는 없을가? 그래서 삶에 의의가 부여된다면 우리 민족의 이미지도 더 밝지 않을가?
외로움을 달래는 우리 민족의 삶의 현장이 “사랑의 거리”로부터 “눈물의 거리”가 되고 흥청망청 “신사동거리”로 전락되였던 어제가 옛말로 되여 가뭇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백의겨레의 아름답고 독특한 “희망의 거리”가 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