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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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바람의 귀속 댓글:  조회:3205  추천:33  2008-01-29
                                          바람의 귀속   시골 풍경               시골에는 봄뜻이 여전하다. 산에는 진달래꽃, 시내가 버들 숲에 황금꾀꼬리… 깊은 숲에 철늦은 뻐꾸기소리…엄혹한 현실은 그 어떤 아름다운 동화로도 대체할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산향은 어디라없이 찌들려있다. 거창하고 비상한 사변들이 거쳐간 골마을들은 소외된 넋들뿐이다.한때 세외도원이라던 마래곡(马来谷)에도 이른바 개방의 수레바퀴가 굴러들어와 옛질서와 인습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렸다.     …마을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덕이밭에서 콩씨를 박아나 가던 정혜는 호미와 콩씨주머니를 팽개치고 밭머리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흥건한 땀을 씻고나니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흐릿한 눈길속에 손채양하고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정혜는 슬며시 머리를 돌려 밭이랑을 헤다가 팔베개하고 누웠다.     넓고 푸른 하늘에서 흰구름산이 꽃궁궐을 짓다가 무너져 내리고 다시 들말같은 모양으로 변하여 토끼모양의 작은 구름덩이를 홀짝 삼켜버리고는 유유히 령을 넘어간다. 정혜의 머리속에는 문득 인간의 생활도 저 구름처럼 허황하고 변화다단하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아이, 이대로 영영 잠들어버렸으면…) 아닌게 아니라 눈까풀이 사르르 감겨진다. 온갖 환영들이 떠오른다.        …급급히 잡아탄 택시에서 돌아보니 퍼그나 가까이 쫓아오고있는 오토바이우에 험상궂은 얼굴,《어마나, 저 새끼들이… 아저씨, 빨리!…》 애원에 찬 재촉… 골목에 꺾어들자 굴러떨 어지듯이 차에서 내려 무작정 뛰여든 파마점, 황겁한 주인아줌마의 얼굴. 《아줌마 빨리 절 좀 숨겨줘요.》 《아니?! 웬 일이니? 응, 오냐, 어서 저 옷장안에 들어가라.》 옷장문에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거의 같이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 어떤 녀자가 금방 들어왔지?》 목살갗을 떨게 하는 경칠의 목소리였다. 《녀자라니, 보면 모르겠소?》 《제길, 막다른 골목에서 숨어들 곳이 이집밖에 없어. 괜히 경치지 말구 내놓으시오.》 막되여먹은 삽살개다. 《야, 딸보, 저 옷장을 열어봐!》 경칠이 명령에 딸보가 다가오는 거친 숨소리. 《자물쇠 여시오.》 《이 사람들이, 국민당세상인가. 백주에 남의 영업집에 뛰여들어 무슨 행패요?》 뒤미처 파마점아줌마가 전화거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시오. 신흥파출소 형사과입니까? 예 나 유림이 엄만데 그 앨 좀…》 《아니 죽고싶은가. 누굴 어쩔테야.》 이웃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왜 무슨 일이우? 파출소를 부르며.》 《제길 시끄럽군. 야 저기 나가 기다리자. 제깟것이 안나오구 배기는가 보자. 흥!》 한풀 기가 꺾인 목소리들이 문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바들바들 떨고있는 정혜를 안방에 밀어넣은 아줌마도 겁에 질려있다. 이튿날 새벽, 파마점아줌마가 정혜를 택시에 앉혀주고 차비까지 들이밀었다. 《집에 들아가. 다신 그런델 들어가지 말구. 에그 세상두 별랗지 원…》 시내를 벗어나서 모아산길을 올라서서야 정혜는 한숨을《호—》 내쉬였다. 정혜는 지난해 연길에 들어갔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었다. 어머니가 장기간 몸져눕는 바람에 대학꿈이 깨여져 정혜는 집에 돌아와 한해 농사를 지었다. 처녀라고 생긴 계집애들은 다 날아가버리고 할일없이 휘파람만 불며 어슬렁거리는 로총각들의 눈총에 몸살이 날지경이였다. 이 산골에 더 있어야 할 리유가 없었다. 돈벌어 더 공부하고싶었다. 정안되면 연길 어디서 벼슬한다는 낯짝 한번 못본 아버지와 해내려고도 작심했다. 엄마와는 비밀이였다. 그래서 작년 겨울이 잡아들자 연길로 나갔던것이다 . 정혜는 헛다리 짚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벼슬자리를 내놓고 하해바람에 종적을 감추었던것이다. 여기저기 식당으로 굴러다니다가 돈을 많이 준다는《밤불고기집》에 들어갔다. 알고보니 밤마다 오입쟁이들을 끌어들이는 매음굴이였다. 그날밤, 주인의《새끼》들에게 등을  밀려 뒤고방에 들어가니 점잖아보이는 한 중년사내가 술상에 앉아있었다. 사내는 100원짜리 두장을 꺼내 손에 쥐여주며 구슬렸다. 정혜가 딱 거절해버리자 억지공사는 않는다며 내보내주었다. 그런데 《새끼》들이 지키고 섰다가 기어이 《장사》를 하란다. 몸부림치는 정혜에게 주먹벼락이 내려졌다. 《쌍! 촌닭이 젠체하는구나. 이런델 들어오긴 왜 들어왔니? 썩 들어가지 못하겠니?》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깡패행세요. 남이 싫다는데.》 중년사내가 마침 나섰기에 망정이지 정혜는 곤죽이 될번 하였다. 《여보시오. 혀 깨물소리 말라구요. 기껏 위해주니까 흥, 별꼴 다 보겠네. 제밀.》 개잡은 포수처럼 덤벼치는 딸보를 거들떠보지 않고 사내가 주인을 소리쳐 부른다. 《여, 석수 이리와!》 《예. 한국장님, 무슨…》 《시끄러워. 괜히 왔어. 해두… 좀 문명하게 하라구. 공연히 소문 더럽게 놓지말구. 정말 도깨비굴이라더니.》 《저 계집애 써비스 소홀했던가요?》 《그게 아니야. 농촌에서 왔다구 저 아가씨한테 망탕 굴지 말라구, 언제 또 올테니 명심해.》 《예. 예. 너들 왜 서뿔리 굴었어?》 석수가 《새끼》들에게 눈을 흘겼다. 이튿날 정혜는《새끼》들이 낮잠에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줄행랑을 놓았다. 그 파마점아줌마가 하도 고마워 양어머니로 삼았다. 그때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악몽이 갈마들군 했다. 《싫어요. 싫어…》 낮꿈속에서도 팔을 허우적거리는 정혜를 한식경이나 지켜보고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열기띤 눈이 반쯤 열려있는 정혜의 무둑한 가슴을 쓸고있었다. 이윽고 청년은 얼굴을 슬며시 돌리고 호미와 콩자루를 집어들었다. 좀만 더 서있는다면 무슨 일을 저지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계적으로 호미날을 박으며 콩씨를 두는 그의 헝클어진 마음밭에 추억의 이랑들이 번져갔다. 정혜는 워낙 그의 약혼녀와 다름없었다. 두집 부모들 사이에도 무언의 약속이 맺어져있었다. 정혜에게 있어서는 그가 미더운 오빠처럼 든든한 마음의 기둥이였고 그에게 있어서는 정혜가 옹근 삶의 꿈이였다. 소꿉동무이자 대학까지 함께 가서 행복을 꽃피우려던 사치스러운 랑만이 지금은 정혜의 배신으로 깨여졌지만 그녀 없이는 못살것같은 이 세상이였다. 정혜가 이렇다 할 리유도 없이 뿌리깊은 시골의 사랑을 찢어버리고 유혹의 세계에로 날아가버리자 그는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무지막지한 청년이였다면 정혜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것이다. 고중생이고 인정사정 아는 그인지라 시대의 조류에 몸맡기는 정혜를 잡아둘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방금전에 눈뿌리가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잠든 천사에게 본능의 발설을 기도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를 이겨내고야 말았다. 점유로 곧 끝나버리는 사랑을 그는 원치 않았다. 시골의 사랑을 도회지사람들은 우습게 알고있지만 그에게도 인격이 있었고 사내의 기풍이 헌헌했다. (하긴 정혜는 농촌아낙네가 되기엔 너무 아까운 녀자야…) 그는 늘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원래 정혜때문에 대학도 포기했던것이다. 하건만 야속한 정혜는 날아가버렸다. 정혜가 없는 마을은 하나의 페허였다. 하여 대동골방목장에 들어가《도》를 닦고 부엉이 우는 한밤에 피리불며 토한 한숨인들 얼마였던가. 허약한 아버지만 아니래도 그는 산해관을 넘어 세상을 두루 편답했을것이다. 정혜가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서 몸은 왔지만 마음은 시내에 두고왔다는것을 슬프게 읽어냈다. 억지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사랑이였다. …악몽에서 깨여난 정혜의 초점 잃은 눈에 콩을 박고있는 진국이의 커다란 허우대가 안겨왔다. 가까이 다가간 정혜는 난삽한 마음을 보듬으며 말을 걸었다. 《어쩜 또… 밭갈이 해준것만두 고마운데… 아이 내가 웬 낮잠을 깜박…》 《그래 퍽 고달팠던 모양이더라. 내가 끝내줄게 내려가봐. 늬 엄마에게 약을 달여드릴 때가 됐지 않니?》 《아니 내 할께, 미안해서…》 그러고 섰는 정혜를 진국이는 차디차게 일별했다. 시내에 들어가기전까지만 해도 고중다닐 때처럼 터놓고 반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와서 공연히 거리를 두고 말하는게 아니꼬왔다. 정혜가 사춘기때 진국에게 소녀의 야릇한 순정을 얹어본것도 사실이였고 고중을 다닐 때 얼굴이 하얀 남자애들의 지꿎은 추구를 물리치고 억세고 듬직한 진국이만을 마음에 둔것도 사실이였다. 그런데 정혜의 첫사랑의 고운 꿈은 호미날에 찍힌 풀처럼 시들해졌다. 진국이를 떠나있는 동안 늘 죄지은듯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우악진 그 주먹으로 피터지게 박고 강다짐을 할 진국이가 아니였기에 더구나 그랬다. 수걱수걱 호미질만 하는 진국 이의 떡판같은 등허리를 굽어보며 정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진국아, 진국아! 우린 왜 이 시골에 태줄을 묻었니?  네가 대학에만 갔더래도… 아니야. 그땐 또 내가 울거야. 아무래 도 우린 연분이 없는거야, 용서해.) 진국이가 기어이 호미를 넘겨주지 않는바람에 정혜는 먼저 산길을 내리였다.   사랑의 뿌리는 쓰다   《얘, 너 방목장에서 오는 길이냐? 아까 볼라니까 정혜가 혼자 그 넓은 밭에서 콩을 박더구나, 그 불쌍한것이…》 《예, 근심마세요. 싹 끝내주고 오는 길입니다.》 《음, 거 잘했구나. 인심이 천심이네라. 그래 걔가 영 안간다더냐? 늬들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해서 쓰겠니? 말이라두 떼놓아야 할텐데.》 《참 당신두, 정혜가 진국이때메 돌아온줄 아나베. 무슨 딴 사정이 있을거래유. 지금 농촌처녀애들이 풀밭에 머리 틀어박자구한답데.》 《이건 되는 호박에 송곳질 아녀? 저리 비키라구. 사내들 일에 공연히.》 《엄마말이 맞습니다.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몰라요. 이 산골구석에선 홀애비 늙어죽은 귀신밖에 더 될게 있나유. 아버지, 저두 조만간에 세상구경 떠날가 합니다. 에익, 워낙 다시 시험쳐야 했던건데… 때되면 소를 몇마리 팔아주시오.》 《그래 애초에 대학못간건 네탓이구, 널 이 산골에 잡아두려구 한건 내 오산이였다. 이제 네가 나가서 무슨 일을 할수 있겠니?》 《다른 애들은 다 청도요, 위해요 하면서 뛰는데 내라구 누구보담 짝질줄 압니까? 아버지가 고집쓰기에 주저앉았을뿐인데요.》 《그래 알았다. 너가 이 골짜기에서 늙는걸 보지 않겠다. 후유…》 덕준이는 퇴마루에 걸터앉아 애꿎은 담배를 태우며 밭고랑처럼 홈이 패인 정혜네 지붕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추억이 얼기설기 엉켜돌았다. 진국이와 정혜의 가연은 끊어졌지만 원래 사랑의 쓴 뿌리는 덕준이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었다. 시골의 숙명적인 사랑이라 할지, 덕준이도 한창때 정혜의 에미—혜월이를 뜨겁게 사랑했었다. 허나 그 사랑의 뿌리는 가지도 뻗지 못하고 삭아버렸다. 덕준이 가슴에 안길듯싶던 혜월이가 그때 집체호로 내려왔던 멀쑥하게 생긴 한정군의 여윈 가슴에 안겨든것이다. 참하고 곱게 생긴 혜월이여서 정군이도 첫눈에 반해버렸던것이다. 한창 비판투쟁받던 국장아버지때문에 늘 기가 죽어다니던 정군에게 있어서 혜월이의 품은 사랑의 오아시스였다. 다른 애들이 륙속 시내로 올라갈 때 정군이는 완전히 실망해버리고 이 산골에서 혜월이와 아들딸 줄느런히 낳고 한평생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들이 한창 초련의 단꿈에 빠져있을 때 덕준이는 뒤집의 순녀에게 장가들어버렸다. 진국이가 나던해 정군이도 새살림을 차렸다. 이듬해 딸을 낳자 두사람의 사랑의 결실이라고 이름을 정혜라고 지었다. 그들은 덕준이가 시샘할만큼 아기자기하게 살았다. 그러나 덕준이는 정군이가 평생 이 마래곡의 귀신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언녕 보아냈다. 다만 혜월이만 그점을 보아내지 못하였다. 아니나다를가 정혜가 돐을 잡던 그해 정군의 아버지가 해방받고 다시 국장이 되였다. 정군이도 대학추천 명단에 들었다. 그런데 결혼한것이 걸렸다. 정군의 장래를 위해 혜월은 협의리혼에 동의하였다. 정군이는 마래곡을 떠났다. 대학을 마치고 곧 혜월이를 데려간다고 눈물로 맹세하던 정군이는 시내에서 직장다니는 예쁜 처녀와 결혼하였다. 혜월이가 정혜를 업고가서 죽는다산다해도 워낙 독종이였던 한정군은 돌아서지 않았다. 혜월이의 고달픈 인생행로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두집 부모사이에 가슴 저린 사연이 있었건만 애들만은 잘도 어울려 자랐다. 혜월이 처녀때를 련상시키는 정혜를 볼 때마다 덕준이는 아버지같은 마음으로 귀여워했다. 이루지 못한 자기의 첫사랑의 슬픈 여운을 아들에게 얹어보려는 욕심도 굳어졌다. 자책감에서였던지 아니면 그동안 덕준이의 말없는 도움에 대한 감사의 정때문인지 혜월이도 그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그러나 세월은 또 한번 덕준이를 우롱했다. 가난때문에 혜월이를 잃었었지만 가난때문에 또 정혜까지 잃게 하고싶진 않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살림을 윤택하게 꾸렸다. 첫호로 덩실한 벽돌기와집도 지어놓았고 신용사에 저금액도 부쩍 늘이였다. 그러나 진국의 보금자리에 정혜는 깃들려하지 않았다. 덕준이가 쓰디쓴 사랑의 뿌리를 어루더듬고있을 때 진국이도 밤이 깊도록 달빛 부서지는 두만강가에서 간장을 후벼대는 피리를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고 또 불었다. 개혁바람은 이 산골사람들을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하였다. 그대신 처녀들을 싹 쓸어가버렸다. 피리소리는 열려진 정혜네 창문으로 지꿎게 새여들었다. 혜월이는 그 피리소리에 귀를 강구며 남모를 한숨을 지었다. 《엄마, 정말 아버지사진 한장도 없나요? 꼭 찾아내겠어요.》 《그따위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몇번이나 타일렀니? 사진같은 소릴 다 하구있구나. 태워버린지 석삼년이다.》 《엄마, 리해해요. 허지만 잎은 뿌리에 떨어진다지 않아요? 암튼 친아버지가 아닙니까?》 《에구, 언제 껍쩍 죽을란지… 네나 마땅한 배필을 뭇는걸 보구 죽어야 하는데…》 《엄만 왜 자꾸 그런 불길한 말만 하나요. 이제 제가 아들맞잡이로 엄말 복누리게 할테야.》 《이것아, 옛말같은 소리면 듣기나 좋지, 진국이같은 애나 사위 삼으면 팔자가 펴일지. 에그, 그 물건짝은 어디 가서 급살이나 맞지…》 혜월이의 마음에 배반의 쓰라림은 잔인한 복수의 칼날이 되여 늘 곤두서있었다. 특히 경제난으로 고중을 중도이페한 딸을 볼 때마다 눈에 불이 일었다. 정군이의 우롱을 겪은후 청상 과부로 늙어가는 혜월이는 성미가 까다로워졌고 그만큼 정혜에 대한 감시의 가시도 성해졌다. 헛웃음 한번 흘려도 큰일 날 일이다. 그러나 진국에게만은 각별했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나귀가 나귀를 긁어준다는 속담이다. 《엄마, 나 암만해도 다시 시내에 들어가 출로를 찾아야 겠어요.》 《시내에서 네 출로를 열어놓구 있다더냐? 애두 너 정말 진국이와 그만두었니? 이 세상에 믿음직한건 그래도 박우물을 마시고 사는 골사람들이니라.》 딴청을 부리는 엄마에게 정혜는 신경이 탈렸다. 《엄마, 엄마속을 제가 모르는줄 아나요. 덕준아저씨에게 진 감정빚을 저더러 갚으라나요? 엄마두 그에게 시집갔더면 진국이가 아들이 됐을런지 아나요.》 《이년아,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니같은 촌계집애들이 시내에 들어간들 뾰족한 수가 있을듯싶으냐? 명앨 봐라, 기껏해 몸팔고 살지.》 《엄만 절 믿어요. 이제 보란듯 잘되지 않나봐요. 그때 엄말 시내로 모셔갈게 응.》 《야야, 바람 잦은데 흔들리지 않을 가지가 있더냐? 유리 그릇과 녀자는 나돌면 깨지는 법이여.》 《그럼 난 어째요? 흑—》 《에그 나두 모르겠다. 다 잘난 네 애비탓이지 뭐냐?》 혜월이는 구들장이 꺼지도록 한숨을 톺으며 돌아누웠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딸을 산골에 잡아두자니 자기처럼 될것이고 다른 집 계집애들처럼 굴레벗은 말을 만들자니 겁두 났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진국이가 미덥지만 딸년의 마음이 변해있다. 덕준이네가 살림이 오목하니 정혜가 들어가면 근심걱정없이 살것은 뻔한데 시대는 또 다르게 유혹한다. 이래저래 정군이가 이갈리게 미웠다. 딸년의 말이 옳기도 하다. 설음많은 과부살림 20여년, 덕준에게서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던가. 감정빚도 없는게 아니다. 때론 가만가만 가슴을 끓여도 보았다. 허나 이제는 고마움뿐이다. 정혜는 때이르게 마르기 시작한 엄마의 앙상한 등에 얼굴을 대고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다. 《엄마, 정혜가 심청이 되여줄게요…》   인격은 어둠속에 있었다   모든것이 흘러간다. 쏟아져내리는 별무리도, 흐릿한 달빛도 강가에 거꾸로 뛰여든 백바위도 물결따라 흘러만 간다. 산중턱 어느 곳에서 백년고독을 울고있는 부엉이울음소리도 바람따라 흘러간다. 진국이는 또 담배를 붙여물었다. 담배에 암을 초래하는 물질이 백가지가 있다해도 피워야만 하는 진국이다. 입안이 소태같이 쓰겁다. 굴뚝처럼 내뿜는 담배연기속에 다하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이 재가 되여 날린다. 자갈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진국이는 담배불을 껐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첫사랑에 달아오른 입술을 정혜의 말랑말랑한 입에 어줍게 대일 때처럼 격정과 도취속에 뛰던 그 심정은 아니였다.     《에익 망할것!》 진국이는 제손을 비틀었다. 《어머, 벌써 나왔네요. 왜 오늘은 피리를 불지 않나요?》 《내 피리소리 들어줄 사람은 이미 죽었다구.》 진국이의 부르튼 대답에 정혜는 가슴이 꿈틀거렸다. 침묵, 가만히 삼키는 한숨소리, 기슭을 치며 지졸지졸 굴러가는 물소리뿐, 진국이의 가슴이 거세게 부푼다. 어떤 내심의 발작에 미칠것 같았다. 《왜 왔어? 널 저 두만강에 처넣으면 어쩔테냐?》 《미안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로 넘겨버릴 일이 아닌줄 알아. 각오하고 왔어. 거기 싫어서가 아니야. 난 이 산골이 싫어. 이 어둠과 적막과 부엉이 울음소리도 싫어졌어. 우리 처녀애들이 다 갖게된 시대병일지 몰라. 내가 나쁜 녀자인줄 알구있어.》 《다 말했니?》 《…》 달이 구름속에 숨어버렸다. 이 한적한 강가에서 이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겁나서 지레 숨어버리는건가. 어둠속에서 눈길과 눈길이 묻고 회피하고 애원하고 거부하고있었다. 그속에 얼마나 많은 낱말과 헝클어진 문법이 포함되여있는가는 그들만이 알노릇이다. 《오늘 많은것 각오하고 나왔어. 두들겨 맞을것두, 욕을 먹을것두, 그리구…그렇게라두 빚을 갚구싶어. 때려요. 분을 풀어요. 그리구 날 해방해줘. 그래야 내 마음도 평형을 찾을것 같아.》 정혜가 이렇게까지 나올줄 몰랐다. 진국이는 억이막혔다. 《뭐? 해방?! 하하하. 내 언제 너를 속박했니?》 《…》 《에익, 모두 콱 잘살아봐라. 망할것. 시내놈에겐 돈푼이나 받고 떡호박을 주물리우듯해도 좋아하면서 왜 한우물 마시고 자란 고향사내들에겐 그리두 린색한거니? 원통하다, 원통해!…》 《사랑이 어디 동정의 닭알에서 깨여나오는 병아리니? 처녀들을 나무랄것두 없어. 우리 다투어봤대야 해결될것은 없잖아?… 이제 돈을 벌면 신세두 꼭 갚을게, 엄마두 말했어.》 《갚는다구? 사랑을 값매길수 있어? 냉큼 사라져, 보기두 싫다.》 진국이의 눈에서 불이 뚝뚝 흘렀다. 주먹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응, 죽여봐, 난 각오했으니까. 날 차지해봐. 이렇게라두 너의 용서를 받구 가볍게 떠나구싶어. 어서요. 그러면 원한도 풀릴게 아니야?》 바투 디미는 가시나의 높은 가슴이 가슴에 닿자 진국이는 아찔해났다. 정혜가 이렇게 모질게 비틀어져있을줄은 생각지 못했다. 《뭐라구? 날 어떻게 보는거야? 네가 언제 이렇게 야하게 변했니?》 《흐흑… 그럼 난 어쩌라구? 내가 처녀로서 이런 말까지 할 때 내 마음이 어떤지 몰라?》 정혜는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진국이의 푸들치는 팔이 정혜의 나긋한 허리를 뒤로 꺾었다. 이제 각을 뜯든 육장을 만들든 마음대로 하라는듯 탄성을 잃은 정혜의 몸이 풀밭에 축 늘어졌다. 가슴에 커다란 무덤이 불쑥 솟는다. 《가져요. 이 한번으로 모든것 깨끗이 청산해!》 그녀는 지금 자기가 무척 황당한 짓을 기다린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일만 잔나비가 그네를 뛰였다. 때아닌 서북풍이 불어치며 꽃잎과 먼지가 흩날린다. 이제 뜻하지 않게 처녀의 첫꽃이 이지러지고 망가져버릴것이다. 진국이의 각일각 거칠어지는 숨결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언젠가는 그렇게 고이 지켜온 처녀를 이 남자에게 활짝 열어주고 사랑의 단꿀 마음껏 쏟아주며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리라 수줍게 꿈꾸었던 정혜이기도 했다. 정혜의 꼭 감겨진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의미를 진국이는 피부로 느껴 알고있다. 그 눈물은 사랑에 겨워 흘러나오는 감정의 장식품도, 사랑의 씨앗을 움틔우려는 마음의 단비도 아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심기불편에서 오는 열물이였다. 불타는 정염에서가 아니라 지어먹은 마음을 취하는 자세다. 이러한 녀자의 몸에서 구경 얼마만한 환락과 신비를 맛볼수 있을것인가? 이밤, 손만 뻗치면 모든것을 내맡긴 녀자의 육체에서 주린 숫총각의 화산같은 욕정을 분출시킬수 있다. 무서운 불길이 발바닥에서부터 머리우까지 치솟는것도 사실이다. 젖빛안개속에 우렷이 솟는 한왕산처럼 신비하고 숭엄해보이던 그 젖무덤도, 비밀스러운 처녀림도 지척에 있다. 신체의 어느 부위가 뜨거워난다. 정혜의 입술우에 빨간 피방울이 떨어졌다.《아아! 아니다. 이것은 그렇게 바라던 사랑의 절경이 아니다. 이는 강간과 다를바없는 너절한 짓이다. 생명으로 사랑했던 정혜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독—그것이다.》 진국이의 입술에서 더 큰 피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한식경 미동도 않고있던 진국이는 조금은 세괃게, 그러면서도 부드러움 넘치게 정혜를 안아일으겼다. 《정혜야, 고맙다. 집에 돌아가. 얼른. 내 야성이 다시 광란하기전에. 다신 내앞에 나타나지마. 그땐 죽여치울거야…》 말은 흐느낌속에 삼켜졌다. 정혜는 무서운 그 순간이 이렇게 슴슴한 결과를 가져온데 대해 놀랐다.(아, 진국아, 진국아. 너는 진짜 바보스런 사내구나, 잊지 않을게…) 정혜는 천천히 자리를 떴다. 길옆에 사시나무의 여린잎이 바르르 떨고있다. 저 멀리 높이 솟은 한왕산이 달빛속에 묵묵히 천년한을 새기고있다. 미련때문에 뒤돌아선 리별의 이 순간, 진국이의 눈물고인 커다란 눈에 안겨드는것은 곡선미가 뚜렷한 정혜의 뒤모습뿐이다. 유치원때의 죽마고우, 10리 고개길을 넘어다니던 향소학교, 중학교 때의 다정하기도 했던 그림자, 고중시절, 성숙이 가져다준 점직한 그속에서 동경의 무지개를 서로의 가슴에 박던 그때에도 한번 흐트러질세라 아끼던 녀자, 참으로 정혜는 진국이의 마음의 뒤뜨락에 오랜 세월을 두고 뿌리내린 생명의 꽃나무였다. 그 꽃나무에 사랑의 단열매가 주렁질줄 알았던 그날이 이렇게 뼈아픈 추억으로만 굳어지게 되다니 통분하였다. 《매정한 정혜야, 무엇때문이냐? 무엇때문이냐? 하늘아, 산아, 두만강아 말해주렴.》   뒤골목 설음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북대촌골목길에 비틀거리는 두그림자, 서로 끌고 부축하며 힘겹게 움직이고있다. 《얘, 너 이렇게 흙이 되게 마실건 뭐니?》 《차라리 취해서 죽었으면 좋겠다. 오늘 류치장에서 풀려나 왔으니 맘껏 축하해야지. 개새끼같은것들.》 애릿한 녀자들의 목소리건만 술내가 확확 풍겼다. 《얘, 저기 어떤게 아까부터 따라온다. 무서워. 빨리 걸어라.》 《흥 무섭긴, 기껏해서 암내 맡은 덜렁수캐겠지. 난 겁나지 않아. 삽살개구 미친개구 황둥개구 재래종이구 다 홀려봤어. 별게 아니야. 훌 주고나면 한푼값도 안가는게야. 흘레하는 수캐들은 짖기는 해도 물어죽이진 않아.》 《야 듣기싫다. 낯도 뜨겁지 않니?》 두그림자는 마침내 어떤 낮다란 사랑채로 들어갔다. 불이 켜졌다. 《아이 더워.》 랭수를 벌컥벌컥 들이킨 명애는 알몸인채로 이불우에 네 활개를 뻗고 누웠다. 《아이그 망칙해.》 《야야, 이게 진짜 인간의 모습인걸. 엄마가 준 자연미구. 사내새끼들이 게침을 흘리게하는 내 밑천이구…》 꺼이꺼이 울던 명애는 잠들어버렸다. 명애에게 요를 가리워 주던 정혜는 명애의 라신에 눈이 굳어져버렸다. 두번째로 류치장 맛을 보름이나 보고 3천원을 벌금해서야 놓여나온 명애의 멍든 얼굴은 초췌하였다. 그러나 몸뚱아리는 같은 녀자로서도 탐낼만큼 성감적이다. 말간 우유빛을 발산하고 있는 고운 살결, 부풀어야 할곳은 보기 좋게 부풀고 패여들곳은 적당히 패여있다. 때이르게 시들해지고 뜸자리같은것들이 아프게 눈을 찌르는 젖무덤, 언젠가는 귀여운 아가에게 미소와 함께 물려주어야 할 꽃망울같은 젖꼭지 하나가 망가져있었다. 어떤 악착한 놈팽이가 백원 한장에 담배불로 지져놓는 지랄병을 하다가 광기가 치밀었던지 개처럼 젖꼭지를 물어뗐던것이다. 그래도 그 돈을 받아챙겼다는 명애가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다. 명애의 가슴우에서 롱탕치며 킬킬대는 징글맞은 낯짝들이 환영처럼 스쳐지났다. 류치장에 갇힌 명애를 모르는체하고 으르딱딱거리더라는 경복의 중년사내며 무슨 과장이요 처장이요 하는 얼간이 쾌락주의자들, 낮이면 언제 그랬냐듯이 점잖을 빼며 다니고 텔레비죤화면에 나앉아 빈소리 탕탕 쳐대는 위군자나으리들… 정혜는 제풀에 왈칵 메스꺼움이 치밀었다. 명애는 그것을 일종의 보복이라고 말한다. 돈도 빨아내고 권세자들과 침대우의 평등을 누린단다. 그저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이다. 국고에서 후무려낸 돈이든 사기쳐서 번돈이든 관계할게 없다. 수컷과 암컷만인 뒤골목의 흘레에서 유일하게 진실로 남는건 돈이다. 피에 얼룩지고 땀에 더러워진 그 돈을 위해 제육신을 만신창이 되게 학대하는 가증하고 불쌍한 자기들이란다. 이제 돈을 벌면 집사놓고 정든 남편도 얻어 깨끗이 살겠단다. 녀자의 수치와 원한과 증오도 있지만 방법이 없다. 누가 가슴아프게 생각해주는가. 동물속에서는 동물로 뒹구는게 마음편하단다. 이 시내판엔 촌녀자애들을 그저 비게덩이로 안다. 아무 재간이 없으면 이 노릇을 하는게 그래도 수지가 맞는다. 어떤 땐 못된 버러지같은 새끼들이 녀자가 곯아떨어진 틈을 타서 제가 쥐여주었던 돈마저 톡톡 털어가지고 꺼져버린다. 가슴이 터질노릇이다. 아무튼 한번 내준뒤에는 별로 값가지도 않는 케케묵은 정조관념을 가지고는 이 살판치는 세상에 살기 바쁘다. 누구들의 입버릇마따나 관건은 관념을 갱신하고 사상을 크게 해방하는것이다. 꽁꽁 지켜온것들을 어느 땅벌레에게 바쳐봤대야 장래성 없는 새끼나 생기고 풀밭의 귀신이나 되고… 이것이 명애가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정혜에게 불어넣은 살아가는 술법이였다. 정혜는 정혜대로 《대세계나이트클럽》에 춤아가씨로 다니면서 알게 되고 제법 친해진 점잖은 중년사내에게 열중하고있었다. 그 사내로 말하면 우연적이였겠지만 정혜에게는 숙명같기도 한 만남이였다.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왔고 올 때마다 꼭꼭 정혜를 점찍는 그 남자는 한창 중년사내의 풍채를 내고있었다. 멋대가리없이 우쭐대는 코흘리개들보다 거동이 우아했고 팁도 잘 주고 얘기도 폭폭 엎어지도록 운치있고 유모아적이다. 요즈음 정혜는 사내의 속을 뽑아내고있는중이다. 정말 확신이 서면 일생을 기탁할 작정이다. 이 남자 저 남자의 어지러운 품에서 유격전을 하기보다 그쪽이 퍽 안전도가 높다고 단정했던것이다. 이제 그 남자가 요구해나서면 모든것을 내여줄 마음준비도 되여있다. 어느날, 사내는 정혜를 싣고 시골《오락성》으로 갔다. 취할만큼 맥주도 마셨는지라 그녀는 어떻게 알몸이 되여 침대에 누웠는지 몰랐다. 자기의 라신도 숨기고싶지 않았다. 조금 팽팽해진 긴장도 사내의 능란한 애무에 녹초가 되여졌다. 마침내 그녀의 신음소리에 박자나 맞추듯 든든한 쇠침대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늘 도고해 다니던 돈많은 중년사내와 평등이 이루어지고있다. 탁상등이 켜졌다. 《이거 정말 기적인걸. 너 정말 동정녀였구나!》 사내는 다시 정혜를 삼켜버릴듯 끌어안는다. 명애를 경멸했던 그 자신이 오히려 열에 달뜨는것이 이상하다. 한없이 부드러운 진공과 압박속에 무겁게 가라앉는듯도 하고 몽롱한 구름에 실려가듯 동동 뜨는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치사하고 힘들어보이던 일이 이리도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놀라울뿐이다.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진행되고있는 일을 두고 왜 죽는다 산다했던지 모르겠다. 그토록 복잡한 형식과 구실을 만들어 가지고 괜히 성스러운체하는 사람들이 우습지 않은가. 부부간에 하는 그짓도 이와 다를바가 없으련만 사람들은 왜 매음이요 음란이요 하면서 타매하는걸가. 그들은 밀월을 보내는 진짜부부처럼 날이 새가는줄 몰랐다. 사내는 제정신이 아니게 탐닉해왔다. 《제가 그렇게 좋나요? 삼켜버릴가봐 무서워. 나 이속에 쏙 들어가버렸으면.》 정혜는 정말 그러고싶었다.  아버지사랑이 어떤것인지 모르고 자란 정혜는 다른 애들이 아버지품에서 응석부리는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녀자애들은 처음 아는 남자가 제 아버지이다. 정혜는 사내에게서 부애도 느꼈다. 제친구들이 중학을 마치고 유혹의 호화세계에 뛰여들어 녀자의 그 우세를 디밀고 인생의 도박을 놀 때 정혜는 어머니의 단속속에 들장미처럼 커왔다. 이 남자에게서 그녀는 아버지 사랑을, 남자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싶었다. 뜨내기 사내애들에게서 도저히 느껴보지 못한 그런 왕성한 정력과 관용과 포옹력이 이 사내에게서 넘치고있었다. 사내도 정혜를 죽을판살판 모르고 안고 돌았다. 동정녀의 그 여린 촉감도 좋았지만 막되게 놀지 않아서 안심이 갔다. 《얘, 너 정말 제법이다. 훈련이나 받은것처럼말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빠져죽을라나봐, 허허…》 《그런말 싫어! 으응— 첫남자니까 정성을 쏟는거 아녀요.》 만약 침대가 알고있는 그 모든것을 말한다면 그들도 얼굴이 뜨겁게 붉어지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절 버리면 안되요. 응? 아버지같고 큰오빠같고 남편같은 그런 사랑을 독차지하고싶어요.》 《그래 오냐. 너만 사랑해주지. 너도 내게만 충성하구.》 《저도 거기가 하늘만큼 좋아요. 나의 사장니임, 늘 기쁘게 해드릴께 응, 우리 결혼하자요.》 《정말이니? 내가 곧 늙어지면 어쩔래? 너 돈 탐내고 그러지?》 《아뇨. 내 영원한 보금자리는 여기에…》 정혜는 사내의 푸들진 가슴에 파고들며 캐득거렸다. 《너 고중 중퇴했다며? 좀더 무언가 배운후 청도에 가서 결혼하자. 어때?》 《아이 좋아. 내 꿈이 끝내 실현되였네요, 사랑해. 이렇게 울면서 사랑할테야. 나 아빠트 사주죠? 네?》 《음 사주구말구. 그대신 망탕 놀아댔다간 없어. 알겠니?》 《나 곧 사장님부인이 될텐데 또 누굴 넘보겠어요. 믿어요. 안심해요.》 《참 너 진짜 초향이니? 집은 어데구말이야. 자주 어데서 본 얼굴이야.》 《집은 오상이구 이름은 정말 초향이야요.》 《너 아버지가 알면 어쩌지?》 《울아버진 일찍 죽었어요. 집사면 나 엄마 모셔올테야. 응? 되지요?》 《그래 널 초향이라구 믿어두자. 근데 너네 엄마문제는 좀 두고보자.》 《당신 없을 때 외로와 죽을거야.》 《요것이 사람 싹 죽여주네!》 《사랑해. 나의 사장님. 절 이렇게 이렇게 품어줘요. 저 하늘끝까지 안고가요 응?》 《그래 눈물겨운 너의 사랑에 나두 청춘을 되찾은것 같구나. 하하하…》   그 남자였다   정혜는 유한마담이 되였다. 연집강기슭에 아빠트도 사놓았고 장식도 궁궐같이 해놓았다. 이제 엄마만 모셔오면 된다. 명애가 심술이 날만큼 정혜는 잘된셈이다. 명애가 자주 와서 밤동무해주었다. 《정혜, 얘, 기적이 나타났지뭐야. 내가 누굴 만났는지 아니?》 《또 돈많은 한국령감쟁이겠지?》 《틀렸어. 무덤에 들어갈 때도 못잊는다는 첫사랑, 너의 그 첫님을 만났단말이야. 아유 깜짝 놀랐지뭐니, 어쩜—》 《?!》 《어제 글쎄 진국일 봤지뭐야. 처음엔 몰라봤다야. 고급세비로에 넥타이까지 척 매구 촌때 쭉 벗었더라. 얼매나 의젓하다구. 홀딱 반했어. 히히… 온하루 그애와 춤을 췄지뭐니? 정말 멋졌어!》 《그가?!》 《청도 한국기업에서 잘있는 모양이더라. 이번에 회사일루 연변왔대. 그리구 누구의 부탁도 맡구왔대. 너 만나면 가슴이 쓰릴거다. 돈두 잘 번다는것 같더라.》 《난 이미 끝나버린 일에 마음 쓰고싶지 않아. 길은 이미 갈라졌어.》 《얘. 그만둬. 시골서 소몰던 그때 진국이가 아니더라구. 얘, 그앤 널 못잊어하더라. 눈물이 글썽해서 자꾸 네가 어데 있는가 캐여묻지 않겠나, 나 원 딱해서.》 《그래 말했니?》 《아니 그가 알면 기절하라구 말하겠니? 그가 그렇게 될줄 알았더면… 호—》 《잘했어. 넌 좋은 친구야. 난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 오늘 양엄마한테 가서 머리할가? 함께 안갈란?》 《음. 그래. 나도 곱게 화장하고 새신랑 나꿔봐야지. 호호…》 정혜가 화장대앞에서 바삐 돌고있는데 느닷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얘. 명애 내다보구 문열어. 공연히 나쁜놈이면 어째.》 《누구세요?》 《이집 초향이라는 아가씨댁 맞지요?》 귀익은 목소리에 명애가 혀를 홀랑 내밀었다. 《야, 진국이다. 어떻게 알구 왔을가? 참 바늘가는데 실이 간다더니.》 《괴상한데? 네가? … 문열어주지말구 사람없다구 해, 얼른.》 《집에 아무도 없어요. 무슨 용건인데 이렇게…》 《문을 열어주시오.중요한 부탁받고 왔으니까요. 안그러면 여기 그냥 두구 가렵니다. 어쩌겠습니까?》 정혜가 침실로 뛰여들며 눈짓했다. 《어머머— 귀신곡하겠네— 어찌 알구 곧장 찾아와?》 《야하, 이거 진짜 극적인데. 명애야 네가 초향이로 둔갑했니? 우리 그 한사장이 말하던?…》 《무슨 소리야? 난 난… 응 그래, 나의 친구가 초향이구 난 그저 놀러왔지뭐니.》 《그래? 뭐 강탈하러 온것두 아닌데 당황해하긴? 그래 주인아가씨는?》 《교회에 나갔어. 그래 무슨 부탁이니? 너 무슨 냄새맡구 온게 아니야?》 《무슨 싱거운 소리냐? 하느님의 착실한 신도이구먼그래. 이거 유감인걸. 한사장이 침마르게 칭찬하길래 초향아씨의 존안이나 한번 뵙구가려했는데…한끼 대접두 톡톡히 받구 말이야.》 《딱 만날래? 나 불러올가?》 명애는 갑자기 어떤 못된 장난이 생각났다. 또 한번 인생극을 보고싶었다. 《아니, 아니야. 여기 트렁크에 명패 옷이랑 돈이랑 들어있다더구나. 이번에 올려구 했는데 심수로 간다더구나. 전해줘. 그럼 난 간다.》 진국이가 텅텅거리며 층계를 내리자 명애는 한숨을 활 쉬였다. 《아이구 혼났다야. 인생은 정말 연극이구나. 아니?! 너 낯색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좀 점직해졌을뿐이야. 암튼 오늘 기분 안좋아.》 《그—래. 그럼 너혼자 가슴앓이나 해봐. 난 갈란다. 약속있으니까.》 그날밤, 정혜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 사내가 동정녀라구 뛸뜻이 기뻐할 때 정혜는 자기의 처녀를 고스란히 남겨준 진국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마음이 어쩐지 안스러워졌다… 며칠후 정혜는 명애를 불렀다. 진국이를 또 만났다는 명애의 얘기를 중동무이해버리고 양어머니네 집에 함께 갔다. 점심을 거기서 먹고 앉았을 때 명애가 불쑥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아줌만 지금도 새각시같네요. 한창때엔 정말 사람을 죽여주었겠어요.》 《뭐 볼데가 있다구. 안그러면 그 사람이…》 《양어머니 옛날 사진 좀 보여줘요. 무슨 비밀도 아닌데유.》 《옛날 일은 생각하기싫어 그래.》 정혜마저 조르는 바람에 정혜의 양어머니—경희는 마지못해 낡은 사진첩을 궤밑에서 꺼내주었다. 명애가 제꺽 받아펼쳤다. 《어마나. 정말 희한하군요. 흑백인데두. 그런데 왜 집에 그분의 사진은 한장두 없나유?》 《함께 찍은건 다 불살랐지. 보면 복통이 터져서 견디겠더냐?》 《아이 이건 결혼사진이군요. 왜 엎어끼웠나요?》 《없앨가하다가 일생기념이구해서 그냥 둔건데 애들두 별걸 다…》 《와아—대단한 미남이네요. 어—쩜, 무척 랑만적이였겠는데 왜 갈라졌나요?》 《할말은 아니다만 잘나구 믿음성이 있는 남자란 드물더라. 개방세월이 되자 어찌나 나도는지 입에 신물난다. 그런 바람둥인 처음 본다.》 《인물값 하나보지요. 아이 아까와라.》 《비단보에 개똥인걸 뭘 아까와? 글쎄 총각인줄 알구 시집갔더니 웬 녀자가 애기까지 업구와서 시악질하지 않겠니? 내 원 기막혀서…》 《그 녀자 누구게요?!》 《집체호에 있을 때 결혼한 안해였단다. 대학갈 때 리혼하구는 나와 잔치했지뭐냐 글쎄. 마래곡인지 하는 산골의 그 녀자 정말 안됐더라. 애두 귀엽던데…》 그때까지 얼굴만 하얗게 질려 머리만 떨구고 앉았던 정혜가 덴겁한 소리를 질렀다. 《마—래—곡—이라구요?!》 《아니. 너 그 사람 아니?》 경희의 당혹한 눈길에 정혜는 외면하더니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뒤미처《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정혜가 기절해버렸다. 《아니 정혜! 이 애가 어쩐일이니?》 사태를 짐작한 명애는 속이 바질바질 탔다. 《아, 아주머—니 요즈음 이 애가 그럴일 좀 생겼어요. 곧 괜찮을거예요.》 명애가 정혜의 인중를 꽉 눌렀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정혜는 깨여났다. 《명애 날 집에 데려다줘.》 그러고는 다시 까무라쳤다. 사유가 멈춰서고 모든 감각기관이 꽉 메였던것이다. 명애는 정혜가 불쌍해졌다. 불행은 비로소 따스한 인간애를 불러일으킨것이다. 집에 이르자 깨여난 정혜는 그제야 제머리칼을 잡아뜯으며 피터지게 울었다. 그 어떤 위안도 들어가지 않았다. 고통에는 위안이 있을지 모르나 부끄러움에는 위안이 없는법이다. 《정혜! 절대 나쁜 맘 먹어서는 안돼. 우리 영원한 비밀로 묻어두자. 너 양엄마와도 잘 말해둘게. 그리구 우리 아무도 모르는 남방으로 날아가버리자 응.》 《명애 넌 내 영원한 벗이다. 고마워. 지금은 혼자 있게 해줘. 제발 빈다.》 《아니야. 널 혼자 내버려둘수 없어. 나 여기서 며칠 자겠다.》 《안심해. 이미 망태기가 되였는데 죽은들 씻어버릴수 있겠 니? 난 살테다.》 《그래, 그래야지. 네가 죽을게 아니라 그 사람이 죽어야 해.》 《아냐. 다 내 잘못이다.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했더니… 아— 흐윽…》 새벽녘 명애는 잠들어버렸다. 정혜는 편지지를 꺼내였다. 눈물이 다 말라버린듯싶더니 엄마 얼굴을 떠올리자 또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엄마, 이 불효녀는 먼저 갑니다. 가지 않으면 안될 죄를 이 딸이 졌어요. 묻지 말아주세요. 저는 지옥에 떨어질거예요. 운명도 탓하지 않겠어요. 엄마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고생 많으신 엄마, 죄송합니다. 제가 그처럼 찾던것을 찾았을 때 오히려 제가 죽게 된것은 아깝지 않으나 엄마가 걱정되여요. 엄마,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영별입니다. 엄마의 복을 빌겠습니다. 엄마, 엄마…》 불효녀 정혜   정혜는 남쪽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액화가스통을 열어 놓고 조용히 가고싶었으나 명애가 자고있다. 수면제를 먹자니 명애에게 구원될것이 뻔하다. 어느 깊은 산속에가 목메고도 싶었지만 가는 동안 결심이 흔들릴가 겁났다. 이 사무치는 고통과 수치와 죄책감에서 한시 바삐 벗어나야 했다. 날이 훤히 밝고있었다. 담장 가까이에 있는 종이함공장의 보이라실에서《쏴》하고 김을 빼고있었다. 앞이 몽롱해졌다. 두 눈을 꼭 감고 정혜는 날아떨어졌다.《아—악》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새벽공기를 찢었다. 이웃들이 떨쳐나왔다. 불길한 예감속에서 깨여난 명애가 달려내려와 지각을 잃고 쓰러진 정혜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정혜야, 이 불쌍한것아, 너를 지켜내지 못했구나. 아이구 정혜야—》 누군가 구호차를 불러왔다. 급진실에서 의사가 바삐 돌아칠 때 명애는 진국이의 호텔방에 전화를 걸었다. 진국이가 천방지축 달려왔다. 《동무가 이 녀자의 남편이요?》 《예?! 아 네에 저어…》 《이게 뭐요? 멀쩡한 사람이. 제 안해가 층집에서 뛰여내리는것두 모르다니.》 《예예 잘못…그런데 어떻습니까?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돈은 있습니다.》 《천명이요. 엉뎅이가 먼저 떨어진것 같소. 콩크리트바닥이였더면… 어서 입원수속을 하시오.》 《생명위험이야 없겠지요?》 《음 미추골을 상하구 하반신 신경이 잘못된것 같소. 차츰 관찰해봐야 알지.》 정혜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병원침대에 누워있었다. 지옥이 아니였다. 《얘 움직이지마. 석고를 해놓았어.》 명애의 뒤에 진국이의 어두운 얼굴이 보였다.《진국이가?!》정혜는 이불을 끄당겨 얼굴을 가리웠다. 가슴을 찢는듯한 흐느낌소리가 새여나왔다. 수치감과 자책감에서 끝없이 밀려나오 는 환멸, 절망의 눈물이였다. 명애는 진국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둘은 연집강제방뚝에 앉았다. 가물이 들고 오염된 강물이 흐르고있다. 저 멀리 깊은 산속에서 떠날때는 그리도 깨끗했으련만 도시문명권속에 뛰여들어 잔뜩 오염되여버린다. 물은 어떤한 강에서든지 변함없지만 강, 그 자체에는 세류가 있는가하면 급류도 있고 여울도 있다. 따스할 때도 있고 차디찬 얼음으로 굳어질 때도 있다. 인간도 이런 강물과 같지 않은가. 정혜도 마래곡 청계수같이 맑은 마음의 녀자애였다. 그러나 현대생활의 탁류속에 뛰여들어 한방울의 흐린물이 되였다.(진국아, 진국아 너는 무슨 강물이냐? 세류도 급류도 흐린 물도 차거운 물도 말없이 받아들여 려과하는 큰 강물인가? 대하같은 포옹력과 관용이 네게 있느냐?) 진국이는 어깨우에 내려앉은 백양나무잎을 잡았다. 병든 나무잎이였다. 그는 나무잎을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씁쓰레한 즙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진국오빠, 정혜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대로 집에 데려가면 그애 엄마가 받아내지 못할거예요.》 《건데 대체 무슨 일이 3층에서 뛰여내릴만큼 엄중했는가 말이요.》 《정혜의 마음은 순결해요. 한가지 묻자요. 정혜를 사랑했죠?》 《사랑했지.》 《지금은 잊었나요?》 《…》 《미워할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사람은 구해놓고 봐야지 않겠나요? 그애에겐 치료비도 없어요.》 《왜 잘보낸다더니?》 《다 지나간 일이예요. 지금 그애에게 구원자는 진국오빠뿐이예요. 알겠나요?》 《엥히 나두 모르겠다.》 《사랑할수 없다면 인간애로 말이예요. 그앤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제건 또…》 진국이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애가 병원에서 나오면 잠시 세집에 있게 하자. 잠시 거기서 내가…》 《정혜는 한평생 잊지 않을거예요. 그앤 진국오빠와 함께라면 새 삶을 살거예요.》 《역시 불쌍한 우리 시골의 넋들이 아니니. 나귀가 나귀를 긁어준다는데…》   인생은 갈지자이다   《초향이 내가 왔어… 아니?! 경희! 당신이 어떻게 여길 왔어?》 《물론 뜻밖이겠죠? 명애한테서 집을 알았고 정혜한테서 열쇠를 가졌지요. 전화를 내가 쳤구요.》 《명애? 정혜란 또 누구요?》 《정혜란 이름마저 다 잊었던가요? 당신이 안고찍은 이 애가 누구지요?》 경희는 손가방속에서 사진을 꺼내여 차탁우에 탁 놓았다. 《어?! 이 사진이 어떻게 당신손에 있소? 오. 이 앤 내 늦은 사랑이구 내 보배야.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요?》 《당신은 야차야. 제 친딸두 몰라보구 흘레하는 미친 수캐야!》 《아니? 이 녀자가 왜 이래?!》 《왜 이러는가구? 당신 눈으로 봐요. 무슨 짓을 하고있는가.》 정혜의 유서를 읽는 정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건 연극이다. 당신이 꾸민 엉터리극이야.》 《내가 꾸민 극이 아니라 당신이 연출해낸 인생활극이야. 그앤 저 창문에서 뛰여내렸어요.》 《…?!》 《당신같은 사람은 이제 죽어야 해요. 우리 유림에겐 당신같은 아버지가 필요없어요.》 경희는 문을 《쾅》닫고 나가버렸다. 사진속에서 달콤하게 웃는 초향이, 아니 정혜의 모습을 퀭 하니 들여다보는 한정군의 머리속에 드디여 기억의 먼지속에 파묻혔던 옛날의 사연들이 언뜰언뜰 스쳐지났다. 혜월이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도, 이젠 그만 돌아서라고 애원하던 경희의 커다란 눈도… 다시 캐득거리는 초향이의 얼굴이 정혜의 죄꼬만 얼굴로 클로즈업되여 떠올랐다. 《아 —악》 한정군은 머리칼을 움켜쥐며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천장이 핑그르 돌아갔다. 피가 거꾸로 흐르더니 목줄기 어데서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그는 간신히 기여일어나 화식칸의 액화가스통의 여닫개를 한껏 풀어놓았다. 그리고는 쓰러지듯 차디찬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로부터 수개월후 시교의 발전촌 어느 허수룩한 세집에 부부같기도 하고 오랍누이같기도 한 청년남녀가 들었다. 하반신을 잘 못쓰는 젊은 녀자에게 각근하게 구는 청년을 두고 마을 아낙네들이 수군댔지만 따스한 봄이 되자 남자는 매일같이 녀자를 장애자차에 싣고 호젓한 강뚝길로 오르내렸다. 진국이와 정혜였다. 정혜는 진국이가 한시도 곁을 비울세라 지켜가면서 간호하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기구한 목숨을 이어가고있었다. 긴긴 겨울밤, 그녀가 흘린 눈물은 아마 몇동이가 잘될것이다. 《왜 날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요. 난 살고싶지 않아요.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을 산단말예요.》 《정혜, 난 아직도 왜 정혜가 죽어야 하는지 몰라. 알구싶지두 않구. 다만 정혜가 일어서야 하고 살아야 한다는것만은 명백해. 정혜가 걸을만하면 우리 함께 고향 가자. 거기서 소두 치구 피리도 불구 청신한 대기속에서 깨끗하게 살자구. 우리 둘만의 작은 세계를 꾸려가잔말이야. 좋지?》 정혜는 많고많은 말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진국에게 무엇을 말한단말인가. 《진국오빠, 난 오빠의 진정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어요. 난 나쁜 녀자야요.》 《얘, 인생은 갈지자야, 곧추 뻗은 길이 없어. 그리구 잊어버리는것과 새로 배우는게 인생이야. 어제는 어제대로 굳어져버리게 해두자구. 자, 우리 또 걸음이나 익혀볼가? 옳지. 나를 붙잡고 땅을 디뎌봐. 그래, 그렇게라두 걸어요.》 정혜의 해쓱한 얼굴에 비지땀이 흘렀다. 손수건을 꺼내 살뜰히 닦아주는 진국이의 담벽같은 가슴팍이 정혜의 시야를 가리웠다. 마치 온 세상이 진국이의 가슴으로 꽉 메워진것 같다. 정혜는 비칠거리다가 진국이의 뜨거운 가슴에 푹 안겨들었다. 《절 죽여주세요. 당신손에 죽고파.》 《또 머저리소리 한다. 자 내가 이렇게 억세게 껴안고있지 않아?》 일찍 까난 작은 나비한쌍이 머리우에서 날아예다가 사라져버린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흐느끼는 작은 가슴과 관용의 넓은 가슴이 밀착되여 세차게 고동치고있었다. 인생은 갈지자다. 어느 끝에서 시작하든 굽이가 있기마련이다. 진국이는 정혜를 부축하여 다시 걷기 시작했다. 5월의 따스한 해볕이 이 한쌍의 시골의 넋들을 보듬고있다…     도라지 1999년2월
51    못생긴 아모르 댓글:  조회:8008  추천:32  2008-01-29
못생긴 아모르                                                                                                 ㅡ사랑은 아름다운 착오인가…      운운                                                                             1        봄은 흥겨워…        정성껏 대자연의 첫잔치를 베풀더니 어느새 싫증이 났는지 꽃과 나비와 꿈을 슬며시 걷어가지고 가버린다. 뒤따라 산야에 풍기는 야릇한 애수를 덮어주려는듯 첫여름이 푸른 옷자락을 너울거리며 들어선다.        하늘도, 숲도, 공기도 파랗게 물들었다. 푸르러지는 생각, 그리고 어데론가 자꾸 자꾸 가고만싶어지는 그러한 날이다.        철민이는 실버들이 늘어진 내뚝에 점도록 앉아서 해볕에 포근히 싸인 산간마을을 망연히 바라보며 오만가지 잡념을 다듬고있다. 감개무량하기엔 너무도 가슴아픈 추억의 마을이요, 한맘 크게 먹고 선뜻 들어서자니 무섭게 태치는 량심의 채찍이 쨩 울리며 걸음을 탁 막아나선다.        그랬다. 만약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만 아니였다면 결코 살아생전에 이 마을을 찾지를 않았을것이다.        《후유ㅡ꼭 16년만이로구나…》        철민은 밀물처럼 밀려드는 회한을 겨우 한숨으로 막아놓고 탕개가 풀려버린 두다리에 힘을 고이며 시들히 일어섰다. 그가 무거운 발길로 마을에 들어서는데 때마침 마주오는 늙수그레한 촌아낙네가 있었다.        《저ㅡ여게 한성이네 집을 찾는데요.》        《예에ㅡ저기 바루 저 초가집인데요.》        《네?!…아, 감사합니다.》        녀인의 손길을 따라 눈길을 주던 철민의 얼굴은 대뜸 하얗게 질렸다. (하느님 맙소사.)        철민의 짜내는듯한 신음소리에 녀인은 이상하다는듯 곱지 않게 흘끔거린다. 제풀에 머쓱해진 철민은 얼핏 얼굴을 돌리였다. 갑자기 술취한 사람처럼 걸음이 비탈렸다.        여기저기 보란듯 일떠선 벽돌집들에 소외된듯 언덕쪽에 외롭게 쭈크리고 앉은 초가집, 너무도 눈에 익은 그제날의《실락원》이다. 온갖 불행과 고통과 저주를 고즈넉히 삼키고있는듯 고색이 창연하다. 줄줄이 홈타기진 지붕이며 찌그러진채 매달려있는 헛간문, 얼추 엮어두른 울바자…그 어데나 힘겨운 고달픔이 철철 흐르니 오늘도《실락원》인가…철민은 주인을 부를념도 못내고 우두커니 섰다. 이때 귀익은 남자애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선생님, 선생님이 어떻게…》        《오,  한성이구만, 그래 어데 갔다 오는길이지?》        철민은 언제나 수집은 계집애처럼 얼굴 잘 붉히는 사내애를 덥썩 부여잡았다. 언제 보나 류달리 정끌리는 개성적인 얼굴, 총기 있고 지혜있는 눈, 그 누가 보나 《훌륭한 애로구나.》하는 인상을 주는 열여섯살, 한창 망울짓는 미소년이다.        《저…논밭에요. 어머니가 목이 마르다기에 물을 가지러…》        《응, 그래?무척 힘들지?저 땀을…쯧쯧…》        《괜찮습니다. 참, 이게 우리 집인데요. 들어갑시다. 제가 어머 닐 모셔올게요.》        《오, 그렇지, 물론 동무의 어머니를 만나봐야지, 헌데 한성인 왜 학교에 안나 오지?》        추구하는듯 따끔하게 쏘는 선생님의 눈길에 사내애는 흙발을 비비며 떠듬거렸다.        《편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혼자서 도거리농사를 어떻게…어머닌 병도 많으시지…전 아무래두…》        《음, 사정 짐작하구있었소. 하지만 중점고중에도 가고 대학에도 갈수 있는 한성이가 참 애석하구만, 그래 동무어머닌?》        《어머닌 야단이십니다. 뼈를 갈아서라두 꼭 대학공부는 시킨다며 말입니다.》        《오, 참으로 훌륭하신 어머니시구만, 한성이두 효성이 지극하구…그럼 우리 한성이가 어떻게 살고있나 좀 구경할가?》        철민은 한성이를 따라 정지간에 들어섰다. 궁색이 쭉 깔린 살림이다. 몇해전에 갖추었을 색이 바랜 찬장과 그옆에 윤기도는 오지독 몇개, 할머니가 물려주었음직한 옛날 장농 한쌍, 그우에 댕그랗게 얹혀있는 이불 두어채…구석구석을 눈빗질하던 철민의 눈길이 벽에 걸린 사진틀에 굳어졌다. 동공이 점점 커지고 입귀가 자꾸 실룩거린다. 환각도 환영도 아닌 현실의 무서운 비극이 곧 막을 올리려고 한것이다.        철민은 갑자기 몽유병에나 걸린듯 자기자신을 가늠할수 없었다.        《음ㅡ그러니 한성인 여기 태생이겠지?》        《전 잘 몰라요. 어머니의 할아버지랑 저의 외할아버지, 외할 머니랑은 다 이 집에서 살았대요. 외할머닌 재작년에…》        《오, 그럼 동무의 아버지는…》        그렇게 묻는 철민이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전 유복자라나요. 어머닌 늘…》        《오, 그렇구만, 오…》        철민은 그저 《오오》하면서 체증만난 사람처럼 갑자르기만 했다.        한성이가 나가고 빈집에 남은 철민은 안경을 닦아쓰고 사진틀에 바싹 다가섰다. 돌이나 지났을 남자아이를 안은 젊은녀인이 시름겨운 눈길로 철민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녀시절의 생기와 활력은 스러졌으나 보다 성숙한 매력으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있었다. 우수를 머금은 호수같이 서느러운 눈, 지친듯한 얼굴, 애련한 그 모습전체에 비껴있는 암담함과 우울속에서도 뚜렷이 내비치는 성스러운 모성애의 후광…        (아, 분명 그녀다!그녀가 살았단말인가? 어쩌면 그냥 이 집에서…운명은 잔혹도 하구나…헉…)철민은 모진 오열을 토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16년, 기나긴 세월을 두고 겨우 아물구었던 옛상처가 오늘 참회와 자책의 칼끝에 찔리워 다시 피고름을 랑자하게 짜낸다. 철민은 황황해진 마음으로 쫓기는듯 집을 뛰쳐나왔다.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서 무너지듯 쓰러지고보니 역시 그 샘물터, 사연도 많은 첫사랑의 요람이였다. 샘물은 예이제없이 찰찰 넘치여서는 이끼 푸른 돌담새로 돌돌돌 흘러버리고있었지만 이 시각, 철민에게 뼈아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것이였다.        《정녀!그대가 묻었다는 그 순정을 이 철민은 찾을 낯이 없구나. 용서해다오. 아ㅡ아ㅡ》        오장을 후벼내듯 괴롭게 부르짖는 철민의 눈에서 뜨겁고 찝찔 한것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2       우연이 아니였다면 운명의 작간이였으리라. 대학4년을 알뜰히 다니다가 그만 시큰둥해진 그해 봄이였다. 시골에 계시는 고모네집에서 정양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이다. 철민은 다리쉼을 할겸해서 고개턱 로송아래에 잠시 앉았다. 사원들이 하얗게 붙어앉아 김을 매고있는 비탈밭아래 토성마을이 신록속에 잠겨있 었다.     늦은 봄날의 양광이 호듯호듯 가슴을 희롱질하고 싱싱한 계절의 정화는 일만가지 욕망을 꼬드긴다.《혁명》이냐?학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곤혹이 노그라져 하품했다. 그러나 철민이는 아무것도 될수 없었다. 사람마다 성스러운 마음에 숭고한 사명을 품고 열에 떠있었건만 그것은 짓부시고 족치고 잡아내는 지랄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농토에 태줄을 묻고 자란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선량했고 기질적이 못되였다. 철민의 대학교의 그 뮤즈도 하루새에 녀류혁명가가 되더니 그를 싹수없는 시골뜨기, 백면서생이라고 비웃어버리고 높이 날고있었다. 그 자신만이 하찮은 존재 였다. (에이, 차라리 정염에나 콱 빠져볼가부다.) 그는 갑자기 갈증이 느껴지며 올 때 보아두었던 옹달샘이 생각났다. 건정건정 고개를 내려 산기슭 샘물가에 거의 닿았을 때 성긴 관목숲새로 새여나오는 일남일녀의 싱갱이질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싫어요.싫어요.》     《챠, 이거 개똥녀 매화타령인데, 친해보자는데두 왜 이래?이 태씨의 부인이 척 돼보지. 제밀,》     《개똥녀이기에 대상자 못된다는거 아냐요!》     챙챙한 목소리에 울음이 푹 실려있다.     《하, 요것, 정 이러기야? 잔말 말고 요렇게 착ㅡ헤헤…》     《놔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말아요!제게도 인격은 있어요.》     《흥, 네깐 부농딸에게 무슨 개나발같은 인격이야, 자, 곱게 놀면 너네도 살도리가 나진단말이야.》     그저 웃고 지나쳐버릴《밀회》아니였다. 뒤미쳐 씩씩거리는 소리, 옷이 쫙 째지는소리…사태는 아무튼 급했다. 틀림없는 만행이였다. (저런 강도같은놈같으니라구.)철민의 눈앞에는 독수리에게 채인 풋병아리신세가 되였건만 구원의 소리 한마디 못하고 신음하는 처녀의 모습이 보이는듯싶었다. 철민은 관목숲에 훌쩍 뛰여들었다. 충동의 조약이였다.     《손을 놓아라, 짐승같은놈!》     느닷없이 천둥치는 호통에 한창 처녀의 바지띠를 끌러내리느라고 헐씨근거리던 망나니가 기겁해서 일어섰다. 그서슬에 바지가 훌렁 벗겨지며 흉물이 활 드러났다. 뭉툭하고 딱 바라진 몸뚱이에 마른 강낭떡같은 얼굴, 누렁개털같은 머리칼, 음기가 잔뜩 올라 일그러진 눈,     《너…넌 웬 잡놈이냐?물러갓!》     《썩 사라지지 못하겠니?망종같은놈…》     《야, 이새끼 흥을 깨는데, 씨팔것,》     말이 끝나기전에 주먹이 씽 날아들었다. 철민의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에익, 개차반같은…받아라.》     철민의 두주먹이 허공을 그리는가싶더니 세괃은 구두발이 방비없는 그자의 사타구니에 날아들어갔다.《어이쿠》하고 허리를 푹 꺾는 그자에게 철민은 날선 무릎팍으로 면상을 콱 짓찧어놓았다. 피투성이된 그자에게 다시 주먹을 안기려는 순간,《그만 때려요. 그만…》하는 처녀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렸다.    《흥, 좋다. 좀 있다 보자구.》     요행 몸을 뺀 그자는 깨여진 입으로 피를 내뱉으며 마을로 줄행랑을 놓았다.     무서운 황소싸움에 오돌오돌 떨고섰던 처녀는 그제야 《와》하고 설음을 터뜨리며 땅에 푹 주저앉았다. 그렇듯 상심해서 우는 처녀의 울음소리가 무두질하듯 가슴을 마구 긁어내렸다. 허지만 철민은 처녀를 달랠 방책이 나지 않았다. 그저 말없 이 샘물가에 주정앉았다.     산곡간에 퐁퐁 솟아서 차분히 대지를 적셔주는 이 땅의 착한 젖줄기, 솟아서 고여서 사랑의 감로수이건만 이 정가로운 샘물처럼 맑아야 할 시골의 인정속에 어쩌면 저따위 잡놈도 끼여있나싶어지며 세상일이 또 한번 묘연해지기만 하였다.     《정…말 고마와요. 전…》     울음을 그친 처녀의 애련한 목소리에 철민은 고개를 들었다. 비록 해볕에 그을고 바람에 거칠어진 얼굴이였지만 무척도 애된감을 주는 처녀였다. 말못하는 내심의 고통과 감격의 정이 물결침에 오르내리는 젖가슴을 정성껏 감추며 어쩔줄 몰라하는 자태…그 모습은 금방 몹쓸 비바람에 시달린 애잔한 산꽃을 련상시켰다.     《아니, 악행에 좀 용기를 내였을뿐이요. 누구나 다 이렇게 했을거요.》     겸양속에 인정미가 흐르는 청년의 말에 처녀는 용기를 얻은듯 한걸음 다가섰다.     《저ㅡ어 혹시…룡강이라는 마을에서 살지 않았어요. 애명…은 야조》     처녀의 당돌한 눈길에 끌리듯 마주 응시하던 철민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기억의 쪽문이 활짝 열린것이다.     《아니,귀동녀 아니요?나 야조요. 애명이, 아참 여기서 살았댔구만, 생각밖이요.》     《아이, 옳구만요!오빠, 지금은 한정녀라 불러요.》     그들은 얼싸 두손을 움켜잡으며 반가움에 끓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철민이와 정녀는 죽마고우였던것이다. 정녀네는 토지개혁때 오막살이에 이사와서 살았다. 그늘을 모르는 동심은 대번에 어울려졌다. 봄이면 메도 함께 캐였고 일성산 진달래며 나리꽃을 꺾어서는 귀동녀의 머리에 꽂아놓고《각시, 내 각시》하면서 짝짜꿍을 치던 철민이였다.《너는 아부지, 나는 엄마,》하면서 불때고 밥한다, 애기 업는다, 설레발치며 해지는줄 모르던 소꿉각시 정녀였다. 언젠가 한번은 정녀가 무엇에 토라졌는지 각시질 안한다고 쫑알거렸다.     《너 정말 안할래?간나!》     《안해, 안해,뿅!심술쟁이,》     정녀가 어찌나 얄밉게 입을 쫑긋거리는지 철민이는 손에 쥐고 있던 유리쪼각으로 정녀의 이마를 찔러놓았다. 삽시에 이마에서 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만 겁이 더럭 난 철민이는 우는 정녀의 이마를 부등켜안고 와ㅡ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때 그 상처가 지금도 그녀의 반듯한 이마우에 남아있을줄이야!     철민이가 열네살, 정녀가 열한살 때 성분이 나쁜 정녀네는 어느 산골로 쫓겨갔다. 그후 철민이네도 모아산아래 벌마을에 이사 와서 살게 되였다. 그때 그렇게 헤여지고 오늘이 처음이지만 두 동심에 꼭 박혔던 서로의 모습을 용케도 알아본것이다. 그들은 흉허물없이 정녀가 싸온 점심밥을 나누었다.     아쉬운 작별이였다. 집에 돌아온 철민의 마음은 가라앉을줄 몰랐다. 정녀가 시골의 함박꽃으로 피여서일가?아니면 소꿉시절의《각시》여서일가?불행한 그녀, 억눌린 그 넋에서 발산하는 그 빛은 무엇이였던가?아무튼 유혹은 너무도 컸다. 그녀의 몸에서 철민은 사랑의 오아시스를 분명 보았다.     랑만과 환상속에서 자기를 분장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목가적인 시골의 사랑을 그려보며 그 어떤 비장한 희열을 맛보았다. (기사식의 로맨틱한 사랑, 불행에 허덕이는 처녀를 구원해주는 의로운 기사!얼마나 렵기적인가…) 철민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감정의 준마를 타고 그 막연하면서도 신비로운 록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향락주의자는 아니였다. 향락주의가 되여질수 있는 그런 기질은 그에게 없었다. 현실과 장래, 관념과 인습 앞에서 그도 사랑의 저울추를 이리저리 옮겨놓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것이 또하 불만이였지만,     그러던 어느 날, 철민이한테 정녀와 자기의 운명을 과거와 미래로부터 다시 가늠해 보고 이른바 선량한 사나이의 의로운 책임과 고결한 사랑으로 그녀를 구원해 보려는 용단을 내리게 한 일이 생 겼다. 그때 마을에 하중렬이라는 친구가 반란의 기치를 들고 토황제질을 하고있었는데 못하는짓이 없었다. 어느 하루 마을에 로총각 병구와 지껄이는 소리가 우연히 철민의 귀에 걸렸다.     《야, 로병구, 너 생고기 맛을 볼래?》     《어데 있니?곱니?》     《응, 산골미인이야, 상표 잘 붙지 못해 그렇지 일 잘하구 순박하구…에 또…》     《헌데 성분이 뭐니?괜히…》     《야, 그게 썩어떨어질 주제에…녀잔 고우면 단거야.》     《그렇게 곱니? 어쩐다? 그럼,》     《넌 시키는 서방질이나 하면 돼, 내가 다 방법이 있으니까, 헌데 너 될가? 히히…》     《쳇, 바가지들 맥이면 다된다면서?》     《음, 좋아, 헌데 너 누이동생 우리 처남과 약혼시켜야 해.》     《엉?너네 처남 나그네 아니니?》     《야, 싫으면 그만둬, 리혼자린데 뭘 그래,》     《가만 좀 생각해 보자.》     페병쟁이 색귀라더니 숨쉴 때마다 할딱거리면서도 생각은 굴뚝같은 모양이다. 실로 악착한 하씨의 심보요, 어처구니없는 교역이였다. 그리하여 철민이는 마침내《거룩》한 기사로 등장하기로 맘먹었다. 우선 편지를 썼다.     《…정녀, 이로써 대강 사연을 알렸소. 악덕의 라체가 란무하고 수난의 흉수가 모든것을 삼키려 할 때 정녀는 부디 동류의 처녀들처럼 자기를 학대하지 말고 흥정없는 진실한 감정으로 인생의 상록수를 가꿔가기를 바라오. 중언부언했소. 오해하지 말아주오.》                                 걱정많은 소꿉동무로부터     따찌야나에게 한 오네긴식의 긴 설교를 늘여놓은 편지를 보낸후 며칠은 그 어떤 성스러움과 거룩한 감정을 짜릿하게 맛보았다. 그러나 또 인차 후회하기도 하였다. 결국은 그녀의 불우한 처지에서 자기의 우월감을 가진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감정세계에 너무 일찍 뛰여든감도 느꼈던것이다. …     철민은 부끄러운 자기 추억에서 간신히 헤여나왔다. 락조속에 마을이 유정하게, 그리고 쓸쓸하게 안겨왔다. 목에서 겨불내가 났다. 두손으로 샘물을 마구 움켜 마셨다. 그러나 어제날의 물맛이 아니였다. 그의 마음은 그녀의 집 문턱을 언녕 넘어섰고 그녀의 찢어진 마음을 어루쓸고있었다. 거의 같은 시각에 강짜많고 성미가 급한 안해의 충충한 얼굴이 차디차게 마주쳐왔다. (아, 아니다. 역시 오늘도 내가 못갈 집이 되였구나…)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의 눈앞에 한성이의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 (그 애가…설마…?)악몽같은 상념에 가슴은 납덩이같이 무거워졌다. 3       철민이가 샘물가에 쓰러질 때 한성이네 모자가 집에 들어섰다.     《예, 오셨다는 선생님은 ?》     《글쎄요, 기다리신다구 하셨는데…》     《한성아, 내 얼른 밥할게, 너 밖에 나가 찾아보렴. 오신분이 설마 그렇게 훌쩍 가버렸겠니?》     《엄마, 그럼 닭이랑 잡고 점심 잘해요. 네? 얼마나 좋은 선생님이라구요.》     《오냐, 자식두, 어련히 하지 않을라구,》     가마에 물을 퍼넣던 그녀는 문득 아들을 불러세웠다.     《예, 한성아, 게섰거라. 그 선생 성씨가 뭐라했던가? 알구나 인사해야지…》     《성철민이예요.》     한성이는 이렇게 외마디를 내뱉고 삽짝문밖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 얘, 너, 너 뭐라느냐? 성철민?…》     그녀의 손에서 물바가지가 미끌어떨어졌다. 한가득 담겼던 물이 좌르르 소리내며 널장판새로 흘러들었다. 못생긴 과거때문에 슬픔에 절고 전 마음, 악몽같던 전반생을 영영 묻어버리고 살아가려던 그녀의 운명은 또다시 그녀의 여린 가슴을 찢어놓는다. (아이고, 그래 그이란말인가? 어쩌면…) 그녀는 치마폭에 얼굴을 싸안고 흑흑 흐느꼈다. 이윽해서 한성이가 풀이 죽어 들어왔다. 《어머니, 또 우시잖아요? 또 아프세요?》 《응, 오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선생님은?…》 그녀는 아들의 대답을 바란것이 아니다. 마음은 벌써 흘러간 그 봄날의 샘물가에서 철민이를 부등켜안고 태질하고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알뜰히도 사랑했던 그 남자가 안겨준 꿈같던 그 행복이 남긴 굴욕과 가지가지 경난을 떠올리기 앞서 자기에게 열어준 첫사랑의 세계ㅡ그 신비롭고 소중하던 아름다운 화폭들을 먼저 새겨보았다. 사랑에 불행했던 녀인들은 자기의 슬픈 사랑을 눈물로 절이는 순간에도 추억의 꽃다발만 애써 엮어보는 약점이 있는것이다. …그날, 그들은 아름다운 동화를 엮듯 동년시절의 꿈을 되살려보았으며 운명에 짓밟힌 처녀의 불행과 현실을 두고 다정한 오누이처럼 속삭였다. 흉허물이 없던 그 시절의 이름을 버릇처럼 부를때마다 정깊은 미소를 짓는 철민이를 몰래 훔쳐보며 (아이, 내게도 저런 힘센 오빠가 있었으면…)하는 절절한 마음이 솟구치기도 했다. 하여 방금 있었던 그 부끄러운 일마저 가뭇없이 잊고 가슴속에서 이름할수 없는 그 무엇이 싹트는 야릇한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며 은실금실을 늘여보았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자기 인새의 지평선에 놓인 아찔한 낭떠러지와 넘을수 없는 절대경의 험준한 산의 무서운 환영을 확인했다. 동경과 기대, 신뢰에 찾던 얼굴을 머리수건으로 푹 검춰 버렸다… 《정녀, 오늘 정말 기뻤소. 이젠 그만 작별할가? 이제 또 만나게 될거요…》 철민이가 일에 갈라터진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줄 때 정녀는 크고 미더운 그 품에 얼마나 기대고싶었던지 모른다. 정녀는 멀어져가는 철민의 뒤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미련없이 훌쩍 가버는 사람, 이렇게 헤여지고 다시 아니보면 잊혀질가? 잊으면 내 마음 편할가?) 정녀의 좁은 가슴에서 이름못할 아쉬움이 지꿎게, 얄궂게 수수께끼를 엮고있었다. 이리하여 정녀의 단조롭고 적막하던 마음의 동토대우에서 생의 첫봄이 찾아들었다. 해볕이 마음속에 더 깊기 스며들었고 꽃들이 그녀와 소곤거렸다. 남모를 안타 까움속에 살랑이는 미묘한 정감은 꿈길로 번져갔고 그 꿈이랑은 철민이로부터 펼쳐지고 또 모여왔다. 깨끗하고 말쑥한 얼굴, 정열적이고 선량한 눈길, 날렵해보이는 몸매, 그처럼 특이하게 흡인하던 착한 빛과 그 착함속에서도 은연히 내비치던 일종의 위압감…박우물을 마시고 자란 시골의 처녀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하나의 우상이였다. 바로 그러한 때에 철민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녀는 바삐 겉봉을 뜯고 속지를 뽑아들었다. 비록 몇장의 종이이긴 하지만 외롭고 위태로운 자기를 포근히 감싸주는 미더운 품이였고 리해와 지성으로 쌓아올릴 철옹성이기도 한 편지였다.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회답을 썼다. 시간과 공간을 날아넘어 길게 뻗어가는 뜨거운 악수와 쩡 메아리치는 심장의 울림을 실은 편지였다. 두번, 세번 날아가는 편지마다 절절한 호소였고 아픈 마음의 속삭임이였으며 눈물에 전 념원이기도 했다. 고난속에서 허덕이며 의욕과 갈망에 타는 이 불쌍한 처녀를 사랑의 신ㅡ아모르는 그렇듯 기이한 힘으로 서서히 철민에게로 떠밀어주었던것이다. 마침내 철민에게서도 뜨거운 마음들이 전해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여는 열풍으로 정녀를 휩싸버렸다. 어느 날 땅거미질무렵, 정녀가 개울가에서 진빨래를 하다말고 하염없는 우수에 잠겨 속절없는 한숨만 헹구고 앉았는데 소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오더니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정녀의 두눈에 별이 떴다. 《응, 그래, 얘, 집에가 암말두 하지마, 알지 응?》 정녀는 바람처럼 날아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철민이가 내뚝에서 기다리고있는것이다. 마침내 다시 만난 그들, 두 넋은 굳게굳게 껴안았다. 《오셨군요, 흑ㅡ보고싶었어요, 전…》 《그래 이렇게 오지 않았소? 나도 정녀때문에 걱정이 많았소. 자, 내 눈물을 닦아주지.》 《절 이렇게 영원히 지켜주세요. 네?》 《정녀, 날 믿어도 좋소. 리해와 성실의 기반우에 세워진 우리의 에덴동산은 무너지지 않을거요.》 멀고 먼 신비의 나라에서 온 성자마냥 거룩해보이던 철민이, 따사로운 손길로 눈물을 씻어주며 그렇듯 경건하게 미래를 축복하는 님의 품속에서 정녀는 사랑보다 높고 귀중한 리해를 받아안았다. 고마움에 목이 메였고 감격에 전률했다.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숨막히는 시각, 정녀는 처음으로 달콤하고 진지한 입맞춤을 받았다. (아이, 숨차…)하면서도 참지 못하는 격정에 그녀도 그런 입맞춤을 주었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에 못이겨 철민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처녀의 순진한 마음으로 무지개같은 고운 행복을 손짓해보는 애정생활의 첫시작에 흔히 있는 첫키스였지만 정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성결한 령혼이 입술우에 올리는 혼례였고 사랑의 제단에 바치는 기도였다. 피치못할 그 숙명의 밤이였다. 그렇듯 마음을 감동시키는 흥분의 절정에서 달아오른 두몸은 포개지고 밀착되여버렸다. 영원과 순간, 질풍노도같은 격정을 휘몰아치며 작열하던 철민의 숨결은 신비롭고 몽롱한 애무의 미궁에로 그녀를 실어갔다. 육신에 굽이굽이 감돌아치던 형언할길 없던 감각들… 그 밤을 정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녀인의 단순한 심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였다. 자기는 이미 철민의 사람, 살아도 죽어도 그 한사람의 안해가 되여진다고 믿어의 심치않았던것이다. 그만큼 정녀는 청춘의 온 생명을 다해 철민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운명은 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심하는 그런 사람을 우롱하기 좋아했다. 무지개 비꼈던 그 사랑의 호수에 폭푸우가 들이닥쳤다. 파도에 실린 사랑의 쪽배가 사공을 잃었다. 잔인한 심리변태에서 장난질삼아 휘두르는 태씨의 보복의 채찍은 그녀의 집을 무덤으로 만들어놓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비명횡사했고 그 죄명도 어마어마했다. 그다음 아버지가 강물에 던져진 원혼이 되였다. 원래 빈농의 딸이였던 어머니가 요행 남았다. 그러나 들이닥치는 끔찍한 사변들앞에서 미쳐버렸다. 절망, 비통, 망연자실, 허탈속에서 하나의 믿음은 철민이뿐이였다. 그러나 철민이도 발길을  끊었다. 그런 때 누가 감히 올수 있었으랴, 태씨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불난 틈에 도적질하듯 태씨의 누이가 또 페병쟁이와의 혼담을 들이댄다. 그러면서 알아들으라는듯 철민이가 배치를 받고 흑룡강 어데론가 가버렸다고 넌지시 찌른다. 정녀는 앞이 아득했다. 일체가 끝났다. 번개치고 우뢰우는 깊은 밤, 정녀는 샘물가 소나무가지에 환멸의 올가미를 걸었다. (철민씨, 당신도 구원할수 없다면 저는 가렵니다. 나는 당신의 첫안해된 그 마음과 몸을 그대로 안고 갑니다. 부디부디 행복하세요…) 발돋움하며 모지름쓰며 염라국의 문전을 넘으려는 찰나이다. 배속에 뿌리내린 새 생명인 철민의 씨가 별안간 부르르 떨더니 가느다랗게 몸부림을 쳤다. 순간, 옹키고 맺혔던 그 생각, 목숨을 끊어서라도 보복하려던 막생각이 사라지고 강렬한 생의 추구를 주는 신비한 힘이 생겼다. 젊은 녀자의 마음속에 그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가 성큼 올라섰다. 이튿날부터 마을에서 정녀를 볼수 없었다. 마을에서는 의론이 분분했다. 두만강 물에 몸을 던졌다는 설도, 그 건너 제 삼촌을 찾아 도망갔다는 설도…사람을 잡기 일쑤인 패풍이 흙탕물도 오래지 않아 가라앉아버렸다. 해는 여전히 동산에서 솟았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눈이 왔다. 정녀는 죽지 않았다. 갖은 수모와 굴욕을 길량식으로 삼고 철민이를 찾아 북대황에서 헤매이다가 장백현 두메산골 일가집에서 새 생명의 빛을 뿜어올렸다. 달이 가고 해가 지고…묵은 덤불속에 새싹이 움트는 계절, 걸음마타는 아들을 안고 마을에 들어섰다. 시골에 또 한번 풍운이 일었다. 비난의 돌팔매질, 동정의 눈길, 류언비어…그러나 정녀는 끄떡없이 그 모든것을 견디여냈다. 그녀에게 얼룩진 청춘을 보상해주고 미래를 약속해주는 삶의 기둥인 아들이 있었거늘 슬픔도 괴로움도 다 잊을수 있었다. 아들은 무럭무럭 잘도  자랐고 헴도 빨리 들었다. 마침내 이 땅에 추월춘풍이 불어 정녀의 가슴의 고드름도 녹았다. 진리의 해빛은 암흑을 내쫓고 재난의 광대들을 갈곳으로 보냈다. 따사로운 해빛아래서 정녀도 허리를 폈다. 인민의 진정한 봄이 왔건만 정녀의 사랑의 봄은 한번 가더니 올줄 몰랐다.     4   철민은 실면했다. 방황하는 그의 병든 넋은 밤마다 두만강의 탁류와 함께 흐느꼈다. 다른 일이라면 뉘우침의 고배를 마시고 불안의 꿈이라도 꾸는것이 고작이였으련만 정녀와의 해후는 다시금 뼈저린 참회를 낳았고 그 아픈 심회는 그의 온 생명을 단두대우에 내세웠다. 기억의 창고에서 곰팡이 끼였던 정녀의 마지막 편지(어머니앞으로 보냈던것이다.)가 다시금 피를 뚝뚝 돋히며 펼처진다. 《철민씨, 전 당신을 사랑했고 모든것을 바쳤어요. 그러나 믿으라던 그 품은 지금 어데 있나요? 서러워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당신 한몸에 리롭다면 슬픔도 고통도 이 찢어진 가슴에 조용히 싸안겠어요. 철민씨에게 바쳤던 그 순정을 여기 샘물가에 묻어요. 언젠가 추억의 발길 닿거든 저를 위해 눈물 두방울만 뿌려주세요. 아, 구천에 가면 당신의 품은 변함이 없을가요? 저는 먼저 갑니다. 거기서 기다리겠어요. 부디 행복하기를…빌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 편지를 받은 이튿 날 철민은 마을을 영영 떠나버렸다. 북만의 마을과 마을에서, 도시와 도시에서 전전하며 교편을 잡다가 마침내는 눈물겨운 이 변강도시에 들어와 다시금 사랑의 죄인으로 정녀앞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철민이가 번민의 나락속에 깊이 빠져 헤매고있을 때 한성이가 학교로 나왔다. 《한성이, 잘 왔소. 정말 반갑소!》 철민은 밤낮으로 돌아치며 한성에게 정성을 쏟았다. 인습과 관념의 위력앞에서 무릎을 꾼 비겁한 사나이, 너무도 리기적이였던 철민이, 그 자신은 까츄샤에게 속죄하기 위해 경건히 기도하던 네흘류도브가 생각되면서 자신이 가증했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의 평형을  찾아야만 했다. 한성이가 드디어 지구 중점고중에로 떠나던 날이다, 철민은 한성이에게 돈 백원을 슬며시 넣어주고 역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밖에 할수 없었다. 역에서는 아직도 젊고 아름답고 가슴속에 념원과 격정이 차넘칠 정녀가 한성이를 바래리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붐비는 플래트홈에서 정녀가 한성이를 바래고있었다. 그러나 철민이가 그려보는 그런 모습이 아니였다. 병색이 푹 배인 가냘픈 시골의 녀인, 눈에서는 류다른 광채를 뿜고있었다. 한성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어머니, 부디 오래 살아야 해요. 전 꼭 성공하겠어요.》 렬차는 떠나갔다. 인생의 플래트홈, 떠나는 아들을 말없이 바래는 정녀의 가슴속엔 가슴을 저미는 긴 고동소리만 남았다. 다 낡아빠진 기관차가 빈 바곤들을 한데 모으고있었다. 정녀는 자신이 빈 바곤같이 생각되였다. 파란많던 인생의 궤도에서 밀리우고 당기우며 오늘에 이르렀어도 역시 텅빈 가슴이 아닌가…역에서 나온 정녀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는 곧추 집으로 걸어갔다. 10리 산길이건만 뻐스를 타고싶지 않았다. 들꽃이 피여있는 잔디밭도 있었건만 그녀는 그 모든것이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불행과 고통과 비애를 묵묵히 짊어지고 내처 걸으며 힘겹게 찍어가는 그 하나하나의 발자국만이 그녀의 세계였다. 그래 정녀에게 또 무엇이 있을수 있단말인가? 그 이튿 날, 철민이는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그는 두만강기슭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철민씨, 원래는 이런 편지를 쓰리라고는 생각못했어요. 인제는 아득히 흘러간 옛이야기, 세월이 흘러가도 더더욱 가슴만 허벼주는 하나의 사연이 있어요. 불행했던 그 사랑의 열매가 오늘 익어서 생명의 찬란한 빛을 뿜어올리게 되였어요. 그가 누구인지 당신은 알겠지요? 애석하게도 그 애에게 축복해주어야 할 유일한 사람, 당신은 그런 용기마저 없었지요? 한성이, 그 애는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이고 전부입니다. 당신이 찾아오리라는 기대속에 꿈꿀 때 배속에서 꼼질대는 생명, 첫사랑의 선물에 일종의 신비와 감격을 안고 축복했어요. 당신이 저를 버리고 멀리 가신후에도 몸안에서 부드럽게, 때론 급작스레 태동하는 진실한 새 생명은 빼앗긴 그것에 대한 막연한 보상으로, 미래에로 향한 강렬한 힘으로 되여 내 생명의 뿌리를 지켜주었어요. 바로 이것이 그 모진 세월에 죽지 못하고 살아온 원인이랄가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착하고 사랑스럽던 당신, 아, 그러나 당신이 그리도 못생긴 아모르일줄을! 그러기에 불행한 녀인의 첫사랑에 대한 애착과 모성애의 성스러움을 영원히 리해할수 없지요? 인류가 생겨서 인간성은 줄곧 피와 눈물속에서 흐느껴왔고 참된 사랑을 위해서 진실로 비장한 대가를 치른 사람도 많지 않다고 당신은 말했지요. 그것이 당신의 말이였던지 어느 책에서 외운 말인지를 전 몰라요. 다만 당신이 아무말없이 떠날 때 눈물을 흘려보았던가 묻고싶어요.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도 추억하지도 않겠어요. 다만 당신이 늘 말하던 그런 사랑과 인간성, 박애를 당신의 아들, 아니 나의 아들에게 베풀어주실것을 바래요. 내 생명의 나무는 너무도 빨리 말라들어서 그 불쌍한 애에게 그늘을 지어줄수 없군요. 별수 있나요? 폭풍속에 떠돌던 일엽편주, 운명의 작간으로 배주인이 그냥 소용돌이속에 처박아두면 그 배는 갈앉기마련이지요. 너무 긴 말씀을 드렸어요. 그럼 부탁합시다. 정녀》     눈물에 얼룩진 편지지들이 락엽처럼 날려 두만강 물결우에 떠내려갔다.     《아아, 못생긴 아모르! 그래 내가 아모르였던가?!…》     산너머 먼 저쪽 고개에 비를 머금은 구름덩이들이 엉켜돌고있었다. 철민은 자기 가슴을 쾅쾅 짓찧었다. 그것은 이른바 눈물의 참회, 통탄으로 이루어진, 홍소를 터뜨리지 못하는 몸부림이였으리라…  
50    번지없는 집 댓글:  조회:3420  추천:36  2008-01-29
단편소설   번지없는 집                                       최 균 선   ㄷ시주택건설성과에 대한 취재를 마치자바람으로 성필이는 옛친구가 사업하는 ㄷ중학교로 걸음을 날렸다. 귀밑머리 희슥하도록 산골학교에서 전전하던 친구가 ㄷ시에 전근되여 온후 편지마다 놀러오라고 열당부해왔던것이다. 그때 굳혀놓은 약속도 약속이려니와 시골샌님의 묵은 때를 쭉 벗고 그럴듯한 아빠트서재에서 흐뭇해 할 친구의 모습이 무척 보고싶었던것이다. 성필이의 마음같아선 곧추 집으로 찾아가는게 옳겠으나 데퉁한 친구가 집번지를 알리지 않아서 부득이 학교로 가는것이다. 그가 ㄷ중학교에 이르렀을 때는 한창 점심 시간이여서 운동장도 휑뎅그레 비여있었다. 숙직실을 들여다보니 마침 나이 지숙한 령감이 졸음을 청하고있었다. 《저 미안하지만 말씀 좀 물읍시다. 이 학교에 탁우군선생이 계시지요?》 《탁선생이요? 거시기 삼합서 왔다는…》 수직령감은 눈을 치뜨며 늘어지게 대답했다. 《네, 네. 옳습니다. 탁선생 퇴근했겠지요?》 《건 모르겠소만 체육실에 가보면 알수 있을거웨다.》 령감은 더 묻지 말라는듯 목침을 베고 누워버렸다. 《…이 친구가 그 나이에 체육교원은 할수 없겠는데… 혹시 산골수재가 도시학교 에 오더니 밀려난게나 아닌가? 원…》 이렇게 의문을 굴리며 현관층계를 오르던 성필이는 화단 저쪽에서 재깔거리는 두 녀학생의 말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잠간 귀를 강구었다. 《영실아, 난 그저 어문시간만 있었으면 좋겠어. 딴 애들두 어문시간만 고대하 는것 같더라. 넌?…》 《응. 네번째 시간에 어문선생님이 오츄멜로브흉내를 낼 때 난 우스워 혼났어. 아이, 막 배가 아프지 않겠니? 정말 챠플린이야. 호호…》 《넌 막 별명을 짓는구나. 언제 일러바치면 혼나지 않나봐. 호호…》 한참 찧고 까불어대더니 《까르르…》하고 짝자꿍을 놓았다. 빙그레 웃으며 섰던 성필이는 불쑥 친구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닐가 하는 생각에 그들을 놀래울세라 슬그머니 다가갔다. 《학생동무들, 나 말 좀 물어볼가? 동무들은 몇학년생들이지?》 금방 저희들이 한 말이 켕기웠던지 녀자애들은 혀를 홀랑 내밀고는 《2학년입 니다.》 하고 혀아래소리를 했다. 《오, 그러니까 탁선생의 학생들이겠구만.》 성필이는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친구가 성공하고있는것이다.(아무렴, 그렇겠지. 공든탑이 무너질라구, 어떤 친구라구 남에게 짝지겠는가?) 교단에 처음 나섰던 한동안은 우군에게 웃음거리가 많았다. 한번은 밤마다 슬며시 어데론가 나가는 남편을 찾아서 동구 밖까지 뒤를 밟았던 우군의 안해는 그만 깜짝 놀랐다. 글쎄 멀쩡하던 사람이 두만강물을 마주하고 서서 손짓, 몸짓을 해가며 말하다가는 목소리를 높여 시를 읽기도 하고 혼자 연극을 놀기라도 하듯 흐느끼다 가도 《하하》 웃기도 하였다. 글싸귀가 있다더니 미쳐죽은 훈장귀신이나 매달렸나 해서 남편을 붙들고 살을 꼬집어 봤다는 우군안해의 말이 동네방네에 퍼져 골안의 특대 뉴스로 되였던것이다. 시골샌님이 인제는 당당한 도회지교탁을 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한 성필이는 시름덜린 마음으로 체육실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노크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눈익은 상고머리가 나왔다. 《어이구, 이게 누군가?! 성필이!!! 오겠다더니 정말 왔네 그려.》 탁선생은 악수를 한다 어깨를 두드린다 하며 반가와 야단이다. 《그래, 친구 잘 있었나? 점심때도 잊고 열성인걸 보니 일재미가 무더기채 쏟아지는 모양이지. 어떤가? 시골샌님의 도시살림에 깨알이 막 쏟아지겠지?!》 《음, 음, 자 어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구.》 탁선생은 무작정 성필이의 팔을 잡아끈다. 《잠간, 이런 알량한 친구라구야. 난 체육실검사를 할 마음이 없네. 어서 집으로 안내하라구. 우리 쌍가매사모님두 뵙구 가야지.》 《미안하이. 자네 먼길을 다녀올 수고는 던것같네. 여기가 바로 내 집일세.》 《아니, 뭐? 자네 집이라구?!》 《뭐 그리 희한해할것두 없네. 아마 기자선생이 생활의 구석취재는 처음인게로군. 자, 어서!》 성필이는 문안에 들어서는 참으로 기자의 특유한 본성을 가지고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워낙 맨 구석진곳이라서 볕도 잘 들지 않는데 습기까지 축축했다. 알뜰한 안주인의 솜씨가 보이긴 했으나 높다란 천정아래 찬장은 너무나 꾀죄죄해 보인데다가 테블과 나란히 놓여서 도무지 격에 맞지 않았다. 북향작 창밑에 외침대 두개를 맞대여놓고 맞은켠에 좀 사이뜨게 쌍침대가 놓였다. 이불장과 옷장, 책장으로 간막이를 했는데 그뒤엔 먼지투성이 체육기재들이 무드기 쌓여있어 자못 기분을 잡쳤다. 《여보게 탁군, 이런 판인걸 난 또 자네가 체육선생이라도 됐는가 했네그려.》 《음, 사정이 그렇게 되였네. 잠시 체육실주임으로 여겨주게.》 《흥, 그래도 어느 아빠트베란다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시상을 모으고 있는 탁선생을 그려봤더랬지.》 《아따, 이게 좀 좋은 아빠트인가? 나에겐 좀 과만하다고 할가, 부장어른도 이런 집을 못쓰고 살걸. 허허…》 걱정없는이마냥 너털웃음을 치는 친구의 주름많은 얼굴을 정시하는 성필의 눈에는 웃음속에 가리워진 마음의 빈구석이 빤히 보이는듯 했다. 《여보게, 괜히 미륵보살인체 말라구. 딱친구앞에서 딴전을 부리는건 우정을 말아먹는 가증한 재간이야!》 성필이는 공연히 역증이 났다. 《그런데 부인은 왜 보이지 않나? 애들은 공불 잘하겠지?》 《응, 애에미는 저 송도인지 하는 개체식당에서 일하네. 큰 놈은 지금 연길가서 중점고중에 다니는데 사오십원씩 대주기도 조련찮구만.》 《아무튼 림시라도 일자리 있으면 됐네. 하긴 너렁청한 시골집도 안팎에 기름이 돌도록 꾸려놓구 살던 우리 쌍가매가 부아통이 터지게 됐는걸. 응? 안그런가?》 《젠장, 두말이면 잔소리고 세마디면 숨이 차지. 아빠트욕심에 그만 긁쟁이 되여서 신경을 박박 긁어대고있다네. 얌전이가 그만 암펌이 됐네.》 성필이는 탁우군의 처 쌍가매를 잘 알고있었다. 마래골서 나서자란 죽마고우요 소꿉동무였다. 《암, 그야 당연하지. 그래 점심에는 못오겠군그래. 고향친구가 무척 보구싶기도 한데…》 《자네, 형수님께 정성이 갸륵하이. 헌데 유감스럽게도 밤중이 돼야 잠동무하러 오네.》 《허, 생각은 굴뚝같겠군. 저렇게 갈지자 한복판에 화촉동방을 꾸렸으니 갑산 지개비네 아이놈 없으면 다행일세…하하하…》 《그렇기도 하이. 사무실에서 그냥 새우잠을 잘 때가 드문하네. 마음은 아직두 기둥뿌리 뺄 지경인데두말이야. 허허허…》 우군도 넉살좋게 웃어제꼈다. 《자, 빈방아는 그만 찧구 강술이라두 한잔 주게.》 《아차, 이거 귀객 푸대접일세그려.》 두 고향친구는 우정이 찰찰 넘치는 술잔을 마주쳤다. 《자, 죽마고우의 상봉을 위하여!》 《자, 탁선생의 아빠트를 위해서!》 축배도 열렬했고 회포도 절절했다. 그러나 성필에게는 술맛이 별스럽게 씁쓸 했다. 《여보게, 우리 시에 와서 문필사업을 해볼 생각은 없나? 전번에 두번이나 편지 했는데 왜 묵묵부답인가?》 《념려해주어서 정말 고맙네. 허지만 저녁에 우리 긁쟁이 앞에선 그런 말 까땍 내지 말라구. 응?》 《어째 겁나나? 가위라도 눌린게로군, 쳇.》 《글쎄. 긁어댄들 뿌리까지 헤치지는 못할거네만 인젠 〈열전〈랭전〉에 넌덜 머리나네. 자네 편지를 보구 얼마나 콩팔칠팔했다구.》 갑자기 탁우군은 목소리를 죽이더니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 성필이, 나두 침대에 엎드려 교수안을 쓰다가두 아늑한 서재꿈을 꾸기도 하네. 또 뼈시린 겨울밤에 마래골언덕의 그 따스하던 집구들목두 새삼스레 그려보기두 하네. 하지만 생각해보게. 가령 집을 찾아 교단을 훌훌이 떠나버린다면 교원의 알찬 량심이란게 무엇이 되겠나? 응!》 한껏 베풀려는 친구의 진정을 량심따위에 꾸겨박기만 하는것이 저으기 고까와난 성필이는 쀼죽한 말쐐기를 골라 툭 박았다. 《그따위 직업애착병은 자네같은 고리샌님들이나 귀중히 여기는거야…》 《하긴 꿈은 한가지라도 해몽은 제나름이지.》 우군이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성필이는 입만 다시고 앉았다. 대학을 마치고 교단에 떨어지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기고있는 그로서는 더 입씨름할 마음이 없었으나 기어이 한마디 하고야 시원할것 같았다. 《여보게 탁선생, 황소의 유촉은 너무 충직하지 말라는거네. 허지만 자네의 지조에 만세는 불러줍세.》 성필이는 비뚤어진 진정을 작별인사로 남기고는 일어섰다. 《허, 우리 기자선생이 알긴 아는군. 그럼 오리의 선언도 읽었겠네. 걷는 방법은 제각기 다른 법이라네.》 역시 탁우군다운 유모아다. 《챠, 이 친구 한술 더 뜨는데. 또 있는가?》 《있구말구. 돼지의 리상은 배부르게 먹고 늘어지게 자는거라나.》 탁선생은 두눈을 신비롭게 치뜨면서 껄껄거렸다. 《에끼, 이 친구! 아무튼 자넨 석마를 끝까지 찧지 말라는 나귀의 철학을 기억해두게.》 그들은 이렇게 혀로써 악수를 대신하고 작별했다. 거리에 나선 성필이는 저도 모르게 여기저기 기세좋게 일떠선 아빠트들에 신경을 쏟았다. 불현듯 자기의 아늑한 서재가 방금 본 친구의 《아빠트》와 대조적으로 떠올라 그만 측은해진 마음을 누를길 없다. ㄷ시에 올 때까지만도 ㄷ시 주택건설사업의 비약을 보여주는 멋진 기사를 쓰려고 윽벼르던 생각이 태반이나 풀어지는것이 락망이 아닐수 없다. (…탁우군이여, 탁우군! 무엇이 너를 그토록 교단을 못떠나게 하는거냐? 너야말로 영예의 계관에 눈이 시여 무정한 현실속에서 상아탑을 쌓고있는이로구나. 가련하고 위대한 친구여! )성필이는 다시 체머리를 흔들었다. 광음은 또 일년이란 세월을 밀어갔다. 그동안에도 성필이는 우군의 편지를 몇통 잘 받았으나 집이야기는 예이제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으나마나 번지없는 집 주인 으로 만족하고있음에 틀림없었다. 두번째로 ㄷ시에 출장오게 된 성필이는 이른아침차로 내리자 아예 친구의 체육실 로 찾아들었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체육실의 육중한 문에는 소발통같 은 자물쇠가 침묵을 지키고있었던것이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체육기재만 어수선했 다. 《아차, 이 친구가 이사하면서 또 집번지를 알리지 않았군.》 이렇게 혼자 풀풀거리던 성필이는 돌아나오다가 마침 첫사람으로 등교하는 녀학 생을 붙잡았다. 《학생동무, 여기 체육실 탁선생을 어떻게 하면 찾을수 있을가?》 《검은테안경을 건 어문선생님이죠? 알아요, 4층 음악실에 있어요.》 《뭐? 음악실?! 이 친구 정말 팔방미인인걸. 허, 어느새 또 음악선생이 되였 군.》 뚱싯거리며 허위허위 층계를 올라 음악실앞에 이르렀을 때다. 억눌린듯 짜내는 친구의 웅글진 목소리가 성필이의 발목을 잡았다. 《…아니, 그게 당신이 하는 말이요? 그래 호박넝쿨 뻗을적에 곧게 뻗는걸 보았소? 사람이 기다릴성이 있는게 아니라 그저 입만 벌리면 집타령이니 이거 원!》 침이라도 튕겨나올 말타툼에도 속담명구를 끼워서 말하는 탁우군이다. 성필이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그럼 손자턱에 수염날 때까지 기다려보시구려. 먼저 뛰여다니며 좀 공작이나 했던들 그냥 이꼴이모양이겠어요?》 (에라, 그 남편에 걸맞는 아낙인걸.) 성필이는 또 한번 피씩 웃었다. 《저런, 코열고 답답이라구야. 그래 이 탁아무개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구 이 조건 저 조건 칭얼댄단말이요? 흥, 이만치도 복덕방인줄 알라구. 사람이 먹을수록 냠냠이라더니 젠장.》 《여봐요. 볶은콩도 골라먹습디다. 그래 어떤 사람은 층집이 오르내리기 싫다고 단층집에 담장까지 두르고 살고 어떤 사람은 등치고 간빼먹는식으로 국가집을 둘러 맞춰 돈가리를 늘이고. 그래 우리같이 못난 교원은 그냥 이렇게 살라는 법이 어데 있어요?》 우군의 안해도 말솜씨가 제법이다. 《여보,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릴 거두라우. 이밥이면 다 제밥인줄 알았소?》 《그리 잘 아는 량반이 왜 오라는 편지가 두세번 와도 그 잘난 분필통을 안고 맴도는거예요?》 우군의 안해가 점점 육박하는 소리다. 《뭐요? 그래 붙는 불에 키질할 작정이요? 내라고 생각없는 등신이던가? 왜 리해는 못할지언정 들볶아 못살게만 구는거요? 엉?!》 마침내 울분을 터치듯 우뢰치는 남편의 불호령에 우군의 안해는 잠시 꿀꺽인다. 녀자들이란 남편과 만사에 충돌하면서도 교묘하게 재간을 피우는 법이다. 부부간의 설전이 바야흐로 백열화될판이다. (허, 이거 암행어사 출도를 불러야 겠군.) 성필이는 헛기침 두번으로 《정전》을 암시하고 세번 노크로 《중립국개입》을 선포했다. 이윽해서 상고머리가 《무기》를 놓고 나왔다. 《오, 성필이 자네로군. 이건 매복습격인걸. 아무튼 반갑네.》 벙실거리는 탁우군이야말로 정서돌변의 능수였다. 친구의 표정예술에 성필이는 더구나 마음이 여리여진다. 《친구 잘 있었나? 정말 새집에서 손님을 맞는군그래. 허허허…》 《암, 여부가 있나? 자네 올줄 알고 이렇게 4층아빠트로 바꾸어놓았네. 허허허…》 호인다운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찰찰 흘리며 우군이가 넉살을 부리는데는 성필이도 그만 탄복이다. 집안에 들어선 성필이는 아닌보살하고 우군의 안해에게 인사를 했다. 《사모님, 별래무양하십니까?》 서양사람들처럼 모자를 높이 들었다놓는 모양이 어찌나 우습강스러웠던지 여직껏 구석에 쥐죽은듯하고있던 우군의 열살난 딸애가 캐드득거렸다. 《아이유, 철이 아버지군요. 기자선생이라 인사도 개방식인가요?》 우군의 안해도 흉허물없이 웃는 얼굴로 맞는다. 《어서 앉으세요. 내 얼른 아침차릴게요.》 한마을에서 무랍없이 지내온 그들인지라 오가는 말도 구김이 없었다. 성필이는 방안을 일별했다. 체육실보다는 한결 탐탁하고 아늑하게 꾸려졌었다. 《여보게, 단칸이여서 좀 말째지만 널직한게 쾌 살암직 하네그려. 아무튼 셈평이 좀 펴인셈일세.》 《음, 친구씨가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탁씨도 시름놓겠네. 간단한 문제라도 새롭게 신중히 제기될 때면 더는 간단한 문제로 되지 않는 법이네.》 탁우군답지 않게 자못 엄숙하게 말하는 그속에는 분명 지난해의 그런 호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장수엄지손가락만치 굵직하게 말아문 담배만 애꿎은 연기를 내고있다. 두툼한 입술새로 몰려나오는 연기는 동그란 원을 그리다가 점차 커다란 갈구리모양을 방안 가득히 띄워놓았다. 저으기 머쓱해진 성필이는 눈길이 침대머리에 무드기 쌓인 작문책에 박혔다. 간밤에도 늦게까지 수정한게 틀림없었다. 친구의 부석부석한 눈이 너무도 잘 말해 주고있었다. 작문책을 펼쳐보니 여러가지 수정부호들이 벌겋게 그려져있었고 찌르 는듯 띠끔하면서도 어루만지듯 부드러운 평어들이 깨알같이 씌여있었다. 성필이는 모범작문인듯 따로 놓인 작문책을 펼쳐보았다. 《내가 아는사람》 이라는 글제가 무척 인상적이여서 저도 모르는새에 한줄한줄 읽어내려갔다. 《밝음이 인생에서 사랑의 첫봉화라면 교원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새아침을 안아오 는 사랑의 천사이리라.…내가 아는 그 사람은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주는 그 사랑이야말로 평범하지 않다.…》 문장은 비록 잘 맞물리지 못한감이 나지만 중학생 글로 말하면 제법이였다. 실로 맹장수하에 졸병이 없다고 친구의 피타는 노력의 정화가 또렷이 안겨왔다. 《참, 아침 늦었어요. 철이 아버지, 스산한대로 많이 잡수세요. 지난해 든걸음 으로 보내신게 얼마나 미안한지…》 언제보나 열무우갓김치같이 사근사근하고 인절미같이 나긋나긋한 성품을 드러내는 친구의 안해다. 《허, 이거 고맙소. 쌍가매씨께서도 함께 드시지요.》 《어서 드세요. 아까 내전을 하는통에 식당이 그만 늦어진걸요. 점심에 애아버 지와 같이 식당에 오세요. 시원한 국수를 대접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드러난 비밀을 다시 피려치는 안해가 밉강스러웠지만 눙쳐 생각 하고 하는 말이 또한 친구다왔다. 《인품은 열두폭치마 울산애기지. 자, 난 상학때메 안되겠네만 자넨 초다듬이로 서너잔 하라구.》 《감사하네만 어쩐지 이번도 술맛은 쓰네그려. 여보게, 권주가도 좋지만 살진 안주도 집는 현실적인간이 되라구, 응?》 《말뜻은 알만하네. 다음번엔 우리 취하도록 마시고 새 아빠트에서 <번지없는 주막>이나 함께 부르세나.》 《좋네. 그러자면 생활과 생존방식의 시대적변화에 꽤 민감해야 할걸세.》 《자기 로력의 보상에 대한 끈질기고 실속있는 추구야말로 현대가치관념의 정수 란말이겠지? 친구.》 《여보게 탁선생, 설교란 책에 씌여있는게라구. 생활은 우리 앞에 문제를 풀라고 펼쳐져있는거네. 알겠나?》 탁선생은 어깨만 으쓱했다. 《허지만 한걸음에 답안을 찾을수 있는건 아니지 않나?》 우군이로서는 명백한 무엇을 말하는듯싶었으나 성필에게는 그저 벙거지시욱 만지는 소리같이 애매하게만 들리였다. 《좋네. 일을 보아 저녁에 만나도록 합세. 하지만 딱 기다리진 말라구.》 그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고고청산은 변함이 없어도 세월의 언덕에 물레방아계절은 돌고돌아 어언 세번째로 ㄷ시에 오기까지 일년하고도 수삭이 지났건만 성필이는 친구의 집번지를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음악실을 지키고있는게다. 그래서 성필이는 이번길엔 그 친구의 《아빠트》에 가고싶지 않았다. 아니, 번마다 친구를 난처하게 굴고싶지 않았다고 하는게 옳을게다. 그러나 20여년 정분이야 어이 저버리랴. 성필이의 발길 은 저도 모르게 친구에게로 쏠린다. 그가 무작정하고 음악실문을 두드렸더니 바라는 상고머리대신 현대파마머리가 나타났다. 《누굴 찾으시는지…》 《네. 저 고향친구를…》 성필이가 말끝을 맺기도전에 그녀의 약삭바른 대답이다. 《아! 네, 탁선생말씀이죠? 지금은 저 보이라실에…》 성필이는 실례라는것도 잊고 펄쩍 뛰였다. 《뭐요. 보이라실?!》 아연실색하는 성필이의 표정에 그 녀교원은 마치 제잘못이기라도 하듯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참, 이거 제가 실례했습니다.》 성필이는 그제야 사과하고는 맥없이 사색의 층계를 내리였다. 이럴수도 있단말 인가? 주택난이 어제오늘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고 또 탁우군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님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아무튼 왼고개가 탈리는 일이다. 실로 고행하는 친구요, 고집불통 탁우군이다. 성필이는 제사 어깨가 처져가지고 학교건물을 돌아들었다. 웬 일인지 보이라실 널문이 짝 열려있고 마당에는 짐짝들이 널려있었다. 화부실의 열려진 창가에 친구의 펑퍼짐한 어깨가 보였는데 담배연기만 꾸역꾸역 밀려나오고있었다. 성필이는 얼없이 서버렸다. 친구의 사색을 깨고싶지 않다. 탁우군도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다. 한 가정의 세대주면 누구나 바라는 그 모든 것—따스한 보금자리와 마련된 안정을 가지고싶어하는 한 녀인의 남편이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어, 이거 기자선생의 왕림이로군. 어서 오시오. 성황리에 대환영이요.》 문뜩 몸을 돌리던 탁우군이 못박힌듯 서있는 성필이의 출현에 저으기 당황하여 너스레를 떨었다. 《잘 있었나? 친구. 그런데 대관절 올때마다 유격전인가 운동전인가? 원.》 《죄송하이, 하지만 우리네 상봉이야말로 얼마나 극적인가? 번마다 새 무대이니 말이야. 하하하…》 성필이는 어이없었다. 자기라면 웃음은커녕 고함을 질러도 시원치 않을것이다. (저 친구가 억눌린 위선이 항변을 토하는게나 아닌가? 이따위 <아빠트>에서도 밀려나는 신세에 뚱딴지같이 배심을 부리긴, 쳇.)성필이는 누구에게라없이 화가 났다. 《너무 격동하지 말라구. 오늘은 새집드는 날일세. 마침 잘 왔네.》 《어허! 그게 정말인가? 잘됐군 잘됐어. 그래 몇평방인가? 일층인가? 아니면 삼층?…객실도 달린거겠지? 좋아, 오늘 새집턱은 내가 담당하세.》 《노노, 너무 락관할건 못되네.》 《?!》 《집은 집이로되 세집이야. 자네 말마따나 번지없는 집이지.》 그야말로 딸이 온다기에 개물함지를 엎지르며 뛰여나갔다가 미운 시누이 오는걸 보고 시무룩해진격이다. 《뭐요? 일구월심 3년기도에 죽은태를 낳은셈이요? 쳇, 돈나무를 뿌리채 뽑아안았네그려. 당신 진짜 문간방샌님일세, 탁선생!》 탁우군은 허허… 웃었다. 유쾌한 웃음소리는 정신건강의 믿음직한 표지라고들 하지만 우리 탁선생의 웃음은 결코 그런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웃는다. 웃을수밖에 더 있겠는가? 운다는것은 더구나 어리석은짓이다. 《노노, 너무 실망할것두 없네.》 《그래 친구, 이 지경에도 〈광휘로운 직업〉의 꽃양산밑에서 꿈을 꾸려나?》 《진정 변함이 없을 때라야 곧 신념인줄 아네!》 성필이는 채타지 않은 담배대를 비벼끄려다가 깔고앉은 책궤구석에 던져진 원고뭉테기를 쥐여들었다. 문학작품도 있었고 교육론문도 여러편 있었다. 그 복새통에서도 친구는 제할일을 착착 해오고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거칠은 쑥박속에 핀 함박꽃을 보는듯 성필이에게는 류달리 희한스러웠다. 《여보게 친구, 이런 불경기상태에서도 대작을 했네그려. 자넨 정말 소힘줄이야. 허허…》 …성필이는 짐을 가득 실은 밀차를 끌고 붐비는 네거리에서 수굿이 걷고있는 친구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점점 더 커보이기도 하고 또 보잘것없이 왜소해 보이기도 했다.     천지 1988년3월호
49    시조묶음 (2) 댓글:  조회:7802  추천:39  2007-10-08
시조묶음                최 균 선   ※       일월이 밝다한들 음달이야 어이릿고   명암이 이같으매 대명천지 어디런고     조화론 대동세계는 우리가 이뤄보세   ※       해와 달 명랑한데 구름끼여 훼방하고   청풍이 불자는데 흙먼지가 원쑤로다     인간의 심령심처에 좀이낀건 뉘탓인고   ※       달걀이 생생한데 쉬파리가 알을 쓸며   맑은 샘에 미꾸리 솟을줄이 있으랴     기강이 해이해지니 큰쥐들이 난당일세   ※       정의가 좌천하니 사악이 신관사또요   공방형이 득세하니 진리가 퇴직하네     량지는 죽어가는데 리욕만 좋아라꿍   ※       다욕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좋고   명리에 어두우니 갈길이 한곬이라     아희야 사무한신이 좋은줄을 네아느냐   ※       늙도록 살고지면 교훈인들 없으랴만   경험선생 명지함도 장파한뒤 갓쓰기라     백발이 지낭이라고 고집쓰지 마옵소서   ※       정이란 향화여서 그를 좋아 껴안노라   정에 약해 정없이 못산다는 백의족속     보시소 약육강식에 인정사정 네뚜리지   ※       욕망의 바다에 익사한이 얼마련고   탐욕이 인간의 대명사로 남는다면     가석타 즘생무리와 다를것이 무에랴,   ※       낮음을 꺼리여 높은 곳에 깃든새도   먹이는 내려와 찾으니 우습거다     사람도 이와 같도다, 명리에 웃고 돈에 죽고   ※       시비를 캐지 마라. 리욕이 기준이라   조고의 위록지마 옛말뿐 아니여라     지성아 시시비비가 누워서 침뱉기지                     2007 년 4 월 8 일              
48    시조묶음(1) 댓글:  조회:6071  추천:40  2007-10-08
시조묶음   최 균 선   ※       고우면 고운대로 미우면 미운대로   골고루 비춰주는 거울이 무슨 죄랴,     제한몸 올곧은데야 그림자가 삐뚤소냐   ※        녹이 쓴 동경은 닦으면 명경인데    량심의 거울이 흐리면 어이할고      적덕이 돈독해지면 행여나 맑아질가   ※       태종이 가로사대 거울이 세가진데   동경과 옛것과 사람이라 하더라만     아니지, 제왕의 명경 민심인줄 아느니   ※       잠그면 자물쇠요 열자면 열쇠인데   열쇠를 잃고보면 무용지물 자물쇠라     사랑의 꽃대문에는 성실이 금열쇠   ※  아무리 크다한들 제일로 뜬뜬한들   도둑놈 말려내는 자물쇠 있을거냐     량심의 만능열쇠가 으뜸인가 하노라   ※       지기가 하나이면 일생에 족하련만   지금은 네친구 내친구 많기도하이     그 많은 벗들중에서 어느 벗이 참벗인고?   ※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데   혼탁한 정계천엔 웬 잡고기 득시글?     두어라, 렴결봉공이 공담인줄 모르는가   ※       탐욕의 바다가 신주를 잠궜는데   이 땅에 정토가 어디 바로 있으련고?     아마도 안빈락도는 꿈에서나 지켜질듯   ※       세상이 혼탁하매 석수들이 난당이다   모조리 잡아들여 엄벌에 처하고픈데     뒤심이 저몬져알고 앞문으로 들어오더라   ※  한손에 법치들고 또 한손에 정의쥐고   부정부패 탐관오리 정의로 치려는데        법정에 어루신님은 호로묘에 옛중같네      ※       신선을 좋아하매 사신이 득달일세   부정축재 갑부들이 비린웃음 요란타만     재물신 무서운줄을 언제알려 하느니   ※       만사통 공방형을 어느 뉜들 홀대하랴   내것도 내것이요 네것도 내것될제     아뿔싸, 다다익선이 무덤인줄 모르난듸.   ※  닫자고 문이던가 열자고 문이던가    세상에 크고 작은 문들이 많더라만      무상한 마음의 문은 대대소소 예측불가.   ※       닫으면 홀로 코스 열고보면 조화세계   갈수록 꽁꽁 잠근 마음의 문 좀 여이소     세상과 담쌓고 사는 달팽이네 족속님들      ※  우리란 무엇이고 나라는게 누구더냐   뭉치면 철옹성이 물먹으면 모래성이     흰옷의 단군자손들 백년가지 하여이다        2007 년 3 월 25 일  
47    꽃돼지저금통 댓글:  조회:3555  추천:42  2007-10-08
                                꽃돼지저금통                                      최 균 필         고래희 70에 맞는 손녀의 돌생일은 내 인생에서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찍는것 인지도 모를 감탄표이다. 갓마흔에 첫버선처럼 뒤늦게 생긴 손녀의 생일잔치를 앞두고 나는 공연히 로심초사하였다. 아이의 첫생일상에 무엇을 놓아줄것인가를 두고 남모래 많은 생각을 굴렸던것이다. 관습대로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올려놓지 못할것도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타산을 굳히고있었다.     돐생일상앞에 손녀를 안아다 놓기바쁘게 외할아버지는 두툼한 돈봉투를 보란듯이 올려놓았지만 친할애비인 나는 남의 눈치가 보이건 말건 작정한대로 꽃돼지모양의 커다란 저금통을 달랑 올려놓았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해서 한 노릇인데 그만 말썽거리를 지지고 볶아댈줄은 미처 생각못했다. 나의 거동을 지켜보던 모든 친척 들과 손님들이 수근대는건 물론 로친네와 며느리마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저금통 꽃돼지보다 더 삐여지게 입들이 쀼죽해졌던것이다.     그런데 작은 천사같은 내손녀가 생각밖에도 대뜸 고사리손을 쏙 내밀어 꽃돼지의 입이며 눈이며 축늘어진 두귀를 어루만지면서 해죽해죽 웃는것이 아니겠는가? 생일상 을 빙둘러싸고 무엇을 먼저 쥐나 눈길을 박고있던 사람들속에서 먹새쟁이가 되겠다느 니 욕심쟁이가 될게 틀림없다니 저팔계의 손녀라느니 악의없이 중구난방으로 입방아 를 찧었다. 제일 앞에 바로 놓인 연필이며 필통, 붓을 먼저 쥐였으면 하고 잔뜩 기대 를 걸고있었겠는데 하필이면 배불뚝이 새끼저팔계를 쥐였으니 그럴만도 하리라.     수백년을 내려온 전통습관대로 연필이나 공책을 쥐면 장차 공부를 잘하고 청운에 뜻을 펼것이라고 미래를 기탁하기가 관례인데 손녀가 무슨 용도를 가지고있는지도 모 르면서 괴상한것부터 쥐여서 여기저기서 객적은 소리까지 나오는지라 원래 보살상인 며느리의 얼굴색은 명랑하지 못했고 곱다랗게 폭폭 패이던 볼우물자리가 부어나고있 는것이 내눈를 속이지 못하고있었다.     하긴 리해가 안가는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소궁둥이를 두드린 농부들은 손군들이 공부를 잘해서 립신양명하기를 일구월심 고대하는 뿌리깊은 심성들이니 말이다. 그러 나 그것은 아름다운 희망사항일뿐이다. 세상에 자기의 돌생일에 있은 세절들을 기억 할 아이는 없는줄 안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애비에미의 결혼잔치를 보았다는 얘기 만큼 웃기는 얘기니까. 그러나 나는 내 손녀가 돌생일에 남달리 선물한 꽃돼지저금 통을 기억하고 그것에 담긴 속사정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다.     생일 이튿날 나는 며느리가 손자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 격이라고 고깝게 생각할수도 있을줄 짐작하면서도 아닌보살하고 생일부조돈을 손녀의 이름으로 저금 하라고 지시했다. 내 명령을 며느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 았다. 내 충심이 언젠가 밝혀지는 날이면 며느리도 취옹의 마음이 술에 있지 않음을 터득하리라고 믿었다. 고소비시대 내 손녀도 류행을 쫓는 소비원동원이 되지 말기를 기원하였기때문이기도 했다.     내 손녀만은 현시대 공주님이 되지 않고 고소비열풍에 말려들지 말아야 했다. 너무 서둘러 착수한 조기교육일수도 있겠으나 옛속담에 색시그루는 색동저고리때부 터 앉히라고 했듯이 돈이 어떻게 생기는것도 일찍 알게 하고 어떻게 아껴야 하는가를 인생의 새벽길부터 바르게 떠나도록 가르치려고 작심한 나이다. 내가 한창 잘나갈 때 하나 아들을 너무 곱게 키워서 서운한 점이 너무 많은 교훈이 내가 마음을 각박하게 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 념원속에 세월은 흘렀다. 손녀는 걸음발이 탄탄해지는것과 더불어 지력상수도 놀라만큼 빨리 높아졌다. 매번 거스름으로 받은 엽전이나 단돈을 손녀앞에서 꽃돼지 에게 먹이며 어른에게나 할만한 말도 많이 들려주었다. 이 꽃돼지가 배고프지 않게 잘 먹여야 고운 어린이라고 칭찬도 하면서 그 고사리 손으로 돈을 직접 꽃돼지입에 넣도록 가르쳐주었더니 아이앞에서는 거리떡도 사먹지 말랬다고 모방성이 강한 나이라서 그런지 손녀도 엽전잎이나 생기면 저절로 꽃돼지를 먹여주었다.      손녀도 차차 제절로 하려고 덤벼치는 나이가 되였다. 어느 날 저녁, 한 며느리 가 매일 저녁마다 따스한 물을 떠다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세수시키고 발까지 씻어주는 장면을 보며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놀라웁게도 그녀의 아들애가  저도 제에미의 발을 씻어준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오느라 덤벼치는 장면은 눈물이 찔끔 나게 감동적이였다. 제힘에 부치는 세수대야를 들고오느라 옷섶이 다 젖었건만 생글대는 그 장면은 광고중에도 제일 멋지고 인상적인 효도광고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그머니 손녀를 훔쳐보았다. 그 어린 마음에 어찌 어른같은 감동 이 있기를 기대하련만 화면속에 남자애만큼 크면 제에미 발을 씻는다고 씩씩거릴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을 가져보았다. 손녀는 에미의 발을 씻어주는 효도는 아니래도 내 기원대로 꽃돼에게만은 게으르지 않았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싶었다. 아이가 유치 원에 다니면서부터 꽃돼지를 먹이는 일은 도거리하였다. 물론 어른들이 의식적으로 그애게 잔돈이 생기게 연극을 놀긴했지만 자기 몫이 된 돈을 절약할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제에미애비에게서 후려낸 돈이랑 내가 쥐여주는 소비돈이란 어떻게 써야할지 아는것 같았다. 먹일수로 무거워지는 꽃돼지를 보며 무슨 생각이 있었던지 얼음과자랑 무작정 사먹지 않고 남겼다가는 자랑스레 꽃돼지를 먹이고 또 먹였다. 그 렇게 세돐이 되던 해 꽃돼지의 배를 가르고 한무지나 되는 엽전, 지전을 세여보니 천 원이 넘었다. 시체소비에 락제생이 아니던 며느리는 제풀에 놀란 꽃사슴의 눈이 되여 서 생일날 부어있던 그  보조개자리에 함박꽃이 활짝 피여났다. 그리고 살짝 얼굴을 붉이고 있는 모습은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할애비가 체면깎일 일을 해서 친척과 동네를 웃겼다며 두고두고 시설질하던 로친네도 작은 꽃돼지가 큰돼지 판돈을 게웠다며 입이 함지박이 되였다. 그러면서 《에구,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하면서 문자까지 쓰는것을 잊지 않았다. 장하고 장하다는 칭찬바구니를 안은 손녀도 내 품에 와락 안기였다.     첫돐생일날 천원을 내놓아서 며느리가 어깨가 올라갔는지 몰라도 내가 현대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주기 가장 어려운 하나의 전통미덕을 심어주었다는것을 알게 된 며느리는 각박했던 이 시아버지의 고심을 늦게나마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다시 한번 며느리의 얼굴에 핀 함박꽃을 슬며시 바라보며 버릇처럼 제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걱정공장의 지배인 되여 끝없는 걱정을 흐름식으로 생산해내 는 법이여서인가, 손녀가 대학가고 어른이 되여 사회에 진출한다음에도 이 할아버 지의 기원대로 첫돐의 선물인 꽃돼지를 그냥 살찌울 일념을 가지고 경제시대, 고소비 시대를 알차게 장식해갈런지…별로 크지 않은 이 꽃돼지가 3년에 한번씩 천원을 낳는다면 아이가 성인이 될때 얼마나 낳을가? 아니, 이런 돈은 수자로 계산하는게 아니다. 자초에 내가 남의 눈총을 받으며 꽃돼지저금통을 생일상에 올려놓은것은 닭알장사가 기와집 짓고 황소사고 밭을 살 돈낟가리를 쌓는 그런 허황한 계산법을 해서가 아니였다. 황금돼지해인 올해 우리 한가정에 웃음꽃이 더 싱그러운것도 꽃돼지가 공돈같은 천원을 낳아서만이 아니다. 집집마다 하나의 도련님, 공주님을 키우며 만금도 아끼지 않는 시대의 풍조에 비하면 나의 후대교양이 너무 보수적일지도 모른다만 나는 내방식으로 내 손녀를 반듯하게 최대의 미덕인 절약정신을 가진 소녀로, 미래의 알뜰한 가정주부로 키워가련다.    서로 뒤질세라 물밑경쟁을 벌리며 더 좋은것을, 더 많은것을 아름차게 안겨주려는 멋진 할아버지들을 뒤쫓느라 왼심도 쓰지 말아겠다. 무보수의 늙은 가정교사로 내손 녀의 오늘을 가르치며 먼 장래를 준비해야겠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고집쟁이 이 늙은《가정교사》가 참으로 훌륭했다는것을 새삼스레 느껴보는 내 손녀가 첫걸음부터  바르게 시작한 인생길에 곱게 걸린 무지개를 건너서 아침노을 같은 래일을 향해 흔들 림없이 걸어가리라 믿고싶은 마음이다.                                 2007 년 10 월 7 일  
46    해변가에 울린 아리랑 댓글:  조회:2633  추천:30  2007-10-06
해변가에 울리는 아리랑   최 균 필       쾌청한 날씨! 건뜻 들린 9월의 하늘가에 평화로운 서기가 칠색고운 무지개처럼 비낄듯 싶기도 하다, 어제까지만도 8급태풍이 먹장구름을 몰아다가 해변도시에 폭우 를 쏟아부으며 살풍경을 이루었는데 하늘이 굽어 보셨는가 오늘은 씻은듯 가신듯한 청청하늘에 구름한점 없고 미풍에 잔파도 일렁이는 바다도 축복으로 넘실거린다.     명절아닌 명절, 유달리 눈길을 잡는 하얀 옷차림의 조선족할머니들이 손자손녀들 의 손길에 이끌려 삼삼오오 모여든다. 하얀 중절모를 멋지게 쓴 로신사들도 친지들을 만난듯 서로 반갑게 웃으며 모여들어 동포애의 정을 나눈다.     여기 중국북해함대해군구락부정문에 보란듯 나붙은 “아리랑공연”광고가 눈이 시게 이목을 끌고있다. 추석을 이틀 앞둔 9월 22일 청도시 리창구로인협회에서 꾸린 《아리랑예술단》성립 한돐을 기념하는 문예연출이 성황리에 막을 올리게 된것이다.     청도는 한국기업들의 대중국진출의 본영이며 중국조선족들이 새 삶터를 개척한 집거지이기도 하다. 8만도 웃도는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20만을 헤아리는 조선족들이 대도시진출에서 현실로 열매맺을 창창한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의미로운 곳이다. 원래 아름답고 아늑한 해변도시로 소문난 청도는 명년에 열릴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돛배경기장으로 선정된지라 밤자고 나면 눈이 번쩍 띄이게 새 풍경을 펼치고있다.     그러나 정든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집거지를 창설하고 있는 조선족들로 말하면 아직도 문화생활의 터전이 바람직하게 마련되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아리랑예술단》을 창립하였다. 그렇게 세워진 예술단이 천신만고끝에 첫선 을 보이게 된것이니 어찌 경사롭지 않으랴!     청도리창구로인협회는 퇴직하고 청도에 자리잡고 사는 로문예일군들과 숨은 재간 둥이들을 핵심으로 조선족전통문화의 전파기지로 세웠는데 처음엔 경비도 없고 련습 장소도 없어서 여러가지 애로에 부딪쳤지만 어떻게 하나 아리랑선률이 이역땅 만리에 울려퍼지게 하려는 일념으로 끈덕진 심혈을 쏟아부었다.     손풍금 하나에 장고 하나, 색스폰 하나로 악대반주를 한다는것은 현대시점에서는 거의 원시적이라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일년사이에 예술단은 성숙을 앞당기여 첫공연 의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다. 반주는 현대적이 아니였지만 겨레의 가슴가슴에 아로새 겨진 아리랑선률이여서 전통무용들인 장고춤, 농악무, 방울춤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문예종목들이 그칠줄 모르는 박수갈채와 환성속에서 이어지고있다.     로연예인들의 묵은 솜씨로하여 절목마다 정채로운 탓도 있었지만 천애이역에서도 잊지 못하던 가슴뜨거워지는 선률속에서 저도 모르게 고향을 그리게 되였고 절절한 향토애와 더불어 감개무량함에 눈굽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조선민족은 부착력 이 강하고 생명력도 강하여 어디가나 제앞을 잘 가리고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청도바다가에까지 아리랑선률이 울려펴지게 되기까지에 깃든 하많은 사연을 두고 나는 다시 우리 겨례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어떻게 될지 모를 앞날을 생각하며 가슴을 어루쓸게 되였다. 지금 한창 무대가 좁다고 쌍무를 추며 신명나게 돌아가는 로무도가들의 모습은 젊은 무도가들도 무색할지경이다. 60이 청춘이라던 말도 어제 얘기가 되였는가 고래희를 저만치 바라보는 로연예인들의 예술생명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모르겠다.     무대에 곱게 차린 녀독창가수가 올라와서 폼을 잡고있다. 그녀는 쌍둥이 대학생 을 키워내여 청도판에서 소문짜한 “김치할머니”이다. 사람은 늙어도 청산은 늙지 않는다지만 저 녀인의 타고난 목청과 노래솜씨는 어쩌면 그렇듯 청춘을 확보하고 있는것일가? 산설고 물설을 이 청도판에서 김치를 담그어 팔아서 두대학생의 뒤바라 지를 하였다는 그녀의 인생길이 얼마나 힘겨웠을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여기 청도에도 아리랑곡이 울려펴지게 된것이 아니며 저런 생활의 강자들이 있기에 조선족들의 새로운 삶터가 차차 넓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찬 우리네 문화전통이 저 푸른 하늘을 견주어 새도약을 기약하게 된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끝없는 상념이 문뜩 엉뚱한데로 흘러가는것을 막을수 없다. 만약 저 사랑스러운 로연예가들이 세상을 떠나고 한어의 망망대해속에 일엽편주같이 민족적인 생활상을 담고가는 새 일대들만 남을때 이 청도바다가에 들어도 들어도 감격스러운 아리랑곡이 울려펴질수 있을것인가? 중국의 넓고 넓은 땅에서 젊음을 빛내고 있는 우리 후대들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그들은 아리랑, 도라지의 민족정서에 차차 랭담 해지고 숫제 왼고개짓을 하고있다. 이는 무엇을 예고하는것인가?     동경과 열망의 한해가 되여질 2008년 올림픽대회에 남북선수단이 조선반도기를 추겨들고 아리랑선률속에 반도남아들의 합쳐진 마음들을 보이며 입장할 장거를 미리 떠올리면서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울렁거려 본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피는 영원히 물보다 진하거늘, 단군님의 한 후손으로서 우리 민족, 우리 겨레가 단합된 힘을 이 대천세계에 과시하는것보다 더 감격스럽고 환희로운 일이 있을것인가!     래년 6월에 있을 범선(돛배)경기가 청도 앞바다에서 펼쳐지면 수난많은 우리 민 족의 젊은이들이 파도를 차며 자유로이 날아예는 갈매기처럼 맨앞장에서 반도기를 날리며 내달릴 그 장쾌한 모습이 방불히 보이는것 같아서 숨이 벅차오른다.     상념은 오주사해를 질주하고 마음의 귀는 아름다운 우리 민족음악의 선률에 사로 잡혀 감동에 전률한다. 문예공연은 서서히 대단원에 이르고있지만 내몸은 자리를 떠 나고 싶지 않다. 청도의 우리 민족들만 해낼수 있는 이 민족문화축제의 날, 사람들의 심금을 사로잡은 연예인들의 만년의 보람찬 삶의 자세에 축수를 보내면서 나는 눈길 을 돌리지 못한다.     푸른 바다  흰파도우에 실려 멀리멀리 울려퍼졌을 아리랑의 선률이 그 언젠가는 펼쳐지고야말 통일의 광장에서 아리랑민족의 대합창과 어우러질 그 시각을 기리는 마음이 너무너무 간절해서일가. 그날은 오고야말것이라는 신념으로 손바닥이 얼얼하 도록 손벽을 치고 또 쳤다.     아득히 보일듯 싶고 성큼 올라 딛고 싶은 삼천리 아름다운 강산에서 떠난 통일의 하얀 돛배가 자주강국의 기발을 펄펄 날리며 둥실떠서 오면 물보라에 옷이 함뿍 젖 도록 뛰여들어 평화통일의 천사들을 마중한다면 그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수 있으련만…오, 어서 오라! 흰옷입은 반가운 손님들이여!                                  2007 년 9 월 22 일                                                                                  청도에서            
45    문학리론 (출판본) 댓글:  조회:8607  추천:22  2007-09-19
                      문학리론 (출판본)                                                     차 례 머리글을 대신하여1 제1편 문학일반론 제1장 문학의 내함2 제1절 문학의 본질2 제2절 문학의 제 특성8 제3절 문학의 속성24 제2장 문학과 제령역의 관계35 제1절 문학과 제 사회관계35 제2절 문학의 지향성41 제3절 문학의 기능45 제3장 문학의 내용과 형식52 제1절 문학의 내용52 제2절 문학의 형식57 제3절 문학언어 63 제2편 문학의 분류 제1장 독립형태의 문학양식76 제1절 형태로서의 분류76 제2절 시문학80 제3절 소설문학123 제2장 소설창작의 원리153 제1절 소설창작의 기법153 제2절 단편소설창작기법177 제3절 중, 장편소설 창작기법199 제3장 산문류형태215 제1절 산문론215 제2절 수필문학222 제3절 잡문론252 제4장 의뢰형문체263 제1절 희곡론263 제2절 씨나리오273 제3절 텔레비죤드라마283 제3편 창작방법론 제1장 문학창작실제296 제1절 전형화리론296 제2절 문예사조와 창작방법313 제3절 문학의 스찔332 제2장 현대주의문학344 제1절 현대주의문학의 개황344 제2절 현대주의문학의 류파349 제3절 현대주의문학에 대한 종합적고찰365 제3장 현대주의문학의 실제369 제1절 현대시론369 제2절 현대주의소설론386 제3절 현대주의서사극400 제4편 흔상, 평론, 발전론 제1장 문학예술흔상미학408 제1절 문학예술흔상의 특성408 제2절 문학예술흔상심리412 제3절 문학예술의 몽롱미415 제2장 문학의 삼각지대422 제1절 작가와 문학422 제2절 작가의 자아실현431 제3절 독자와 문학437 제3장 문학평론444 제1절 문학평론의 본질444 제2절 문학평론의 양식과 방법 453 제3절 현대주의평론462 제 4장 발전론472 제1절 문학의 기원472 제2절 비교문학리론475 제3절 문학의 계승과 혁신479 집필을 마무리하면서486 주요참고서적487                      
44    집필을 마무리하며 댓글:  조회:4149  추천:14  2007-09-19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졸고를 집필한지 꼭 12년째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은 아니변하고 사람만 로쇠하였다. 다만 끈질김만 헐떡거린다. 시대는 비약하고 생활은 쉬임없이 자기 양상을 바꾼다. 문학도 격변하는 시대와 생활을 바싹 뒤쫓아가며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있다.   새록새록 새 개념들이 나오고 각종 문학리론서들이 쏟아져나왔다. 동서방비교문학, 비교문학개론…변화다단한 문학의 발걸음에 맞추어 문학을 개괄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떠난 길이여서 일심불란 경영하다보니 문학리론서의 몰골을 갖추었다.   현시대 문학소비의 열정이 날로 식어감에 따라 저곡에 들어선 문학이 되였지만 거품을 부풀리고있다. 이런 문학현상을 두고 들끓는 가상으로 내심의 공허와 두려움을 덮어감추고 고독과 위기라는 이 정신상태를 다른 행위로 전화시키려고 시도하고있다.   이런 문학거품은 구경 “력사”의 발효인가 아니면 “현실”의 팽창인가? 소비열광속에서 문학경전은 “청춘소설”, “큰 소리문학” “력사를 말하다” 앞에서 전면 붕괴되였다. 진정한 문학은 이제 뒤줄에 물러나 더는 문학의 진정한 심미의의를 바라볼수 없게 되였다. 문학은 마지막 효용 즉 서사적련속성을 붙안고있다. 문학은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오래동안 자유와 방황을 한몸에 감을것이다.   낡은 일원화가 결속되지 않았고 새로운 일원화도 아직 접종되지 않고있다. 사람들은 상품적, 교환적, 오락적인 일원화속에서 문학을 영위할것이다. 문학이 날로 변연화되고 갈수록 사회주류의 시야에서 벗어나고있지만 인류의 정감생활이 지속되는 한 죽지 않을것이다.   키보드를 다 두드리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는 불야성속에서 많은 별들이 숨어버리고 큰별들만 반짝인다. 나의 졸고가 독자들에게 한가닥 빛이라도 될수 있을가? 기대심은 뭇별처럼 깜박이기만 한다…                           2012년 5 월 10일                                                  주요참고서적   1. 《미학백과사전》호남인민출판사.1988년 7월 출판 (중문판) 2. 《어문지식사전》하북인민출판사. 1985년, 5월 출판 (중문판) 3. 《미학론집》    상해문예출판사. 1980년 7월 출판 (중문판) 4. 《미학과 예술평론》복단대학출판사. 1985년 2월 출판 (중문판) 5. 《조선문학사》연변교육출판사. 1957년8월 출판 (조문판. 상하) 6. 《예술론》(맑스, 엥겔스) 연변인민출판사 1958년 출판 (조문판) 7.《예술심리학》료녕인민출판사 1988년1월 출판 (중문판) 8.《중국문체지식사전》호남교육출판사 1988년11월 출판 (중문판) 9.《감각, 지혜와 시》곤륜출판사 1987년12월 출판(중문판) 10.《현대소설미학》장덕림.호남문예출판사. 1987년 12월 (중문) 11.《현대시구조》후고 프리드리히 한길사출판. 장희장 옮김 12.《현대시학》한국 윤석산 저 도서풀판사 1996년 출판 (한국어판) 13. 《시론》한국 1이승훈 저.1997년3월 출판 (재판본)  14.《문학과 예술론》맑스. 엥겔스. 조선로동당출판사.1966년7월판 15.《맑스, 엥겔스선집》(1.2권)조선로동당출판사) 1966년 출판 (조문판) 16.《소설창작기교》 김흥섭 . 조선문예출판사 1990년10월 출판 17.《서정과 시창작》장요남 저 조선문예출판사. 1990년 10월 출판 18.《벨린쓰끼선집 2. 4권》 조쏘출판사 19.《문학리론교정》고등교육출판사 2005년 수정제2판 (중문판) 20.《문예소사전》조쏘출판사 193년11월 출판  (조문판) 21.《조선문학통사 (상)》조선 과학원출판사 1959년 출판 (조문판) 22.《꿈의 해석》프로이드 저. 상무인서관 1986년 (중문판) 23.《문학비평의 방법과 실제》리선녕 삼지원출판사 1990년판 24.《현대문학이론》한국 문예출판사 1991년 출판 25.《접수미학과 접수리론》료녕인민출판사 1987년 출판 (조문판) 26.《문학이론입문》한국 창작과 비평사 1988년 출판 27.《현대문학이론》한 종로서적 1989년출판 28.《장편소설과 민중언어》한국 창작과 비평사 1988년 출판 29.《문예심리학》(중문) 길림교육출판사 1988년 8월 출판 30.《현대심리학과 문학》길림교육출판사 (중문)1994년12월 출판 31. 발자끄 《문학은 장엄한 거짓말이다.》(《《서방문론선》하권 상해역문 출판사 1979년 중문판    
43    제 3절 문학의 계승과 발전 댓글:  조회:4594  추천:15  2007-09-18
제3절 문학의 계승과 혁신 1. 전통문학과 현대문학의 대결 력사적으로 고찰한다면 중국문학이나 조선반도의 문학이나 그 흐름을 보면 우선 근대성(모디니티)의 지향성과 전통에의 지향성이 대결되여 걸어온 흔적을 력력히 찾아볼수 있다. 이것은 동양문학이 서양문화에 대비해 말단 주변문화권에 속하는 사실을 승인한것이다. 사실 어느 시대나 서방의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현상이 주변문화권에서늘 존재해 왔다. 그런데 외래사조가 범람함으로써 자기것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전통론도 주기적으로 오게 되였다. 동방의 문화권내에서 중국, 일본, 조선반도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의 의미는 세가지 양상으로 접수되였다. 첫째, 모더니즘이 부정적으로 인식된것이다. 이 용어자체가 다분히 리얼리즘차원이며 엄밀한 개념규정이 단행된바 없다. 즉 이질적문화의 총칭으로 인식되여있다. 1920년대 조선반도에도 모던껄이란 말이 유행된바 있다. 그때까지는 다분히 멸시를 동반한 개념이였다. 그렇게 된 내면에는 동시대적으로 생활양식상 차이가 현저했지만 거부감부터 앞세웠기때문이다. 둘째, 모더니즘과 맑스주의와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더 현저하게 나타났다. 물론 량자가 다 이질적인것이다. 량자는 발생초기부터 동양에 인입되면서까지 상반된 가치관으로서 수용되였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분비된 예술로서 루카치는 반리얼리즘으로 규정하였다. 셋째, 국가적, 지구적인 보수주의 내지는 민족주의와의 대립양상으로서의 모더니즘이다. 근대주의 지향으로서의 당위성이 제국주의가 추구하는것이라면 그들의 희생품이 될수밖에 없는 모든 비서방권내에서 국가내지,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서구의 분비물인 모더니즘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가 필연적이였다. 2. 새 시기의 현대문학 문학전통 자체는 동태적이고 개방적이며 부단히 발전하는 계통이다. 그만큼 대변혁시대, 문학도 혁신의 길에서 진통을 격기마련이다. 중국문학은 1976년 눈물의 청명절날에 장려한 서막을 열어 “상처문학”, “반성문학”, “개혁문학”, “뿌리찾기문학”, “선봉파문학” 등 파란만장한 려정을 거쳐 문학발전행정에서 가장 풍부하고 새롭고 쟁론도 많고 사회효응도 거대했던 새 시대에 들어섰다. 10년간 지속되였던 대동란이 흐지부지하게 결속되고 미구에 쑥대밭이 되였던 중국문학의 화원이 복구되기 시작하여 점차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였다. 그먼저 문학은 사회의 기타 령역과 마찬가지로 비틀어진것을 바로잡는 력사적사명을 완수해야 했다. 특히 “문예는 계급투쟁의 도구”라는 “사인무리”의 발명만이 아니라 유론의 유독을 가급적으로 철저히 청산하고 문예와 정치와의 합리한 관계를 규명해야 하였다. 하여 1979년 ≪상해문학≫에 발표된 론평원의 문장이 발단이 되여 마침내≪문예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대쟁명이 벌어졌다. 쟁론은 그 ≪강화≫이래의 유관된 관점을 어떻게 평가할것인가? 하는 첨예한 문제에 소급되였다. 1980년 7월 ≪인민일보≫에 “문예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사론이 발표되자 그번 쟁론은 명확하게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이 사변(思辨)시대는 점차 각종 가치추구를 만족시키기 시작하였다. 행동의 시대에 일체 장애를 부시려고 하였는바 이런 행동은 찬반이 엇갈렸지만 창작사조들이 굴기하고 새로운 관점들이 분분하여 문학리론방면에서 몇차례 쟁 론이 벌어지였다. 1980년전후 4인무리시대 가짜, 큰 소리, 빈소리가 넘쳐나던 문학창작활동에 대립하여 누군가 “진실을 쓰자” “본질을 쓰자”는 구호를 내놓아 사실주의문제에 대한 쟁론에 불붙었다. 그러나 그번 쟁론이 치렬해질 때에 문제는 다시 새로운 력사조건하에서 사실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것인가? 하는 두개의 관점이 대립되였는데 사실주의문학은 전방위적인 발굴과 심화를 도모할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여 나중에 사회주의사실주의와 혁명적사실주의와 혁명적랑만주의를 결합하는 “량자결합”창작방법은 력사의 선택에 따를수밖에 없었다. 그후 문단에 상업주의사조가 싹트고 점차 장대해져 인문주의와 상업주의 분야가 출현되였다. 뒤따라 분분한 문학주장과 창작기법들이 나왔다. 이는 과학과 신화가 서로 얽힌 시대로서 오색찬란한 외계의 정보가 밀려들어 작가들의 남구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20세기 80년대초까지 사실주의창작방법으로 창작하던 일부 작가들이 서방현대주의수법으로 의식의 흐름소설이라든가 “선봉파”라고 불리운 작품들을 써내기 시작하였다. 1981년 고행건의 ≪현대소설기교초탐≫이 나오자 미구하여 네작가가 련명으로 “중국은 현대파문학을 수요한다”는 구호를 제기하여 적막하던 문단상공에 네개의 “아름다운 작은 연”이라 명명된 사건이 터졌다. 그리하여 전국적범위내에서 사실주의와 현대파간의 쟁론이 끓어번지게 되였다. 그번 쟁론은 1980년중기까지 지속되다가 한패의 준현대파와 선봉파작가들의 작품이 문단에 류행되자서 슬그머니 갈앉아버리였다. 한편 상품경제의 격류에 따라 문학도 궤도를 바꾸기 시작하였는바 후현대주의의 영향이 바야흐로 심입되였다. 권위에 대한 반항, 주류문학에 대한 배반은 새 시기 문학의 단적인 표현형식이다. 순문학적쟁론은 전위와 수구, 반전통, 실험군체와 리익군체의 모순과 충돌이였다. 80년대 후기 문학쟁론의 초점은 거의 모두 리론성문제 즉 문학평론방법, 문학의 주체성문제, 소설창작에서의 예술창신문제, 문학의 뿌리찾기문제 등 몇개 방면에서의 쟁론이였다. 3. 문학의 현황 새 시기이래 문예창작은 이미 충분히 개방적이고 다원적으로 발전하였기에 어떻게 창신하고 다원화발전을 도모할것인가는 문제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사숙고 할 문제는 문예창작에 대한 인식과 문예와 현실의 관계를 처리함에서 엄중한 오구가 나타난 사실이다. 우선 현실도피의 창작관념을 가지고 있기에 사회책임과 작가적사명을 외면하였고 문학은 자아표현과 자아가치실현의 수단으로 전락되였다. 그리하여 현실생활에 존재하지도 않는 서방의 후현대주의사조와 전위문화사상, 관념과 리론자원을 빌어다가 기계적으로 해석하기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인위적인 황당과 변형을 시도하며 현실생활중의 어떤 표상과 신변잡사를 묘사하거나 개인의 욕망을 서사화하면서 자아감각에 도취되고 자족하거나 새 부자들의 심미정취에 빠져버렸다. 한마디로 작가들은 창작과 현실관계에서 “집체적도피”를 선택하였다. 그들은 현실생활에서 출발하여 창작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기성된 사상관념과 추상적리론, 개념에 매달려 창작한다. 마침내 문학은 시대와 생활의 최하층, 고난과 진실, 보편적인 심령을 떠나버렸다. 문학창작의 선도자역할을 해야 할 평론계도 흔히 오도하고있다. 당대중국문학창작을 총체적으로 고찰한다면 잡다한 의론들이 많은데 이른바 “변연론”, “사망론” 외에도 근래에 나도는 “쓰레기설”, “고도설(高度说)”, “가치설” 등이다. 이 모든 문학현상은 문학의 랭각과 지위의 하락, 딱한 처경을 자초하였다. 물론 다매체, 인터넷의 영향도 문제지만 가장 곤혹스러운것은 문학자체와 현실생활이 엄중하게 탈절되였다는 문단현실이다. 벨린쓰끼는 일찍 “어느 한 시인도 자신과 자신에 의하여 위대해질수 없다. 그가 자기의 고통, 자기의 행복에 의거하지 않는다. 어떠한 위대한 시인이 위대해진것은 바로 그의 고통과 행복이 사회와 력사의 토양에 깊이 뿌리박았기때문이다.”고 단언하였지만 그의 명석한 론단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1980년 이래 “신계몽”주의의 추동하에 사실주의는 점차 소외당하고 망각되여버렸다. 리론계와 평론계는 최초의 문예인식론으로부터 반영론에 이르고 후에는 문학주체론, 심미의식형태론, 언어형식주체론에 이르고 다시 당대문학의 심미문화론, 감관소비론과 욕망만족론 등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경향들 역시 문학의 저조기와 랭각시대을 불러온 원인중의 하나이다. 드디어 개인지상주의를 고양하는 “인간의 문학”과 언어유희식 기교의 산물인 “순문학”창작이 류행되였다. 1990년대 시장경제의 파도가 중국을 휘말아올리게 되자 자기를 읊는 “순문학”은 창작방향을 잃게 되였고 “인간문학”은 “신체욕망”과 “감관자극”의 상업성을 우선으로 하면서 소비성대중문학으로 변질 되였다. 일부 지성적작가들이 이런 문학현상들에 중시를 돌리면서 신사실주의, 신사실(新写实)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규칙과 관념문제로 인하여 사실적묘사와 진실성과 비판력도를 약화시켰기에 역시 광대한 독자대중의 심목속에 자리잡지 못하고 결국 잠간 흔들어 보다가 간 “사실주의충격파”로 되였다. 신사실주의는 “가치중립”의 창작자세를 가졌기에 “진실한 생활”을 묘사하면서 더구나 자연주의에 기울어지게 되였다. 이른바 “원생태”의 창작은 다변하는 현실생활을 파악할수 없었으므로 자진하여 포기하고 현실의 변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와 소비향락주의 론리를 맹종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전통문화가치 추구의 립장과 주류의식형태와 인민성의 창작원칙을 내던지게 되였다. 이는 현실의 본질문제를 파악할 작가들의 능력부재와 진실의 붓을 잡을 용기의 결핍에서 비롯된것이다. 민중의 생활속에는 문학의 원료가 무진장하게 매장되여 있지만 그것을 발굴하려는 창작의욕도 희석되고 말았다. 도스또옙쓰끼는 “중요한것은 예술이 시종 현실에 고도로 충실하는것이며 …예술이 근근이 현실에 영원히 충실해야 할뿐만아니라 당대현실에 충실하지 않을수도 없다.”라고 하였는데 문학의 사인화를 주장하는 작가들로 말하면 경세지언이다. 4. 문학의 전망 문학은 어떻게 발전하며 어디로 나갈것인가? 많은 리론가들이 문학발전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타산을 천명했다. 력대의 리론가들의 예측과 타산은 각이하다. 헤겔은 비관적태도를 가지고 문예의 사멸을 운운하면서 장차 철학으로 대체될것이라고 선언했다. 문학은 오랜 전통격식에서 벗어나려고 새로운 양식을 시도하고 실천한지 오래다. 하지만 디지털, 사이버문화의 등장으로 하여 문학예술효용의 약화는 더더욱 위기감을 고조시키고있다. 첫째, 문화가운데서의 지위와 담당하고있는 각색에서 볼 때 문학의 단일한 심미본질은 진작 더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특성에 자리를 내주었다. 80년대 지식계에서 대담하게 “정치와의 리혼”을 극력 주장하면서 심미본질을 추켜들고 문학이 초연이 자욱하던 정치투쟁의 전초로부터 떠나 시의가 넘치는 심미성전에 들어서게 되였다. 둘째, 이미 문화문제로 된 이상 문학은 이제 더는 고상하고 우아한 지고무상의 문화가 아니다. 존재방식상 문학은 단순한 문자와 종이로 된 책으로부터 문자, 소리, 영상 등 종합매체형태로 변하였다. 독자와의 관계를 보아도 문자가 더는 고급정신량식이 아니라 대중의 일상 소비물품의 일부분일뿐이다. 맑스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력사를 창조하지만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창조하는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기의 력사를 자기 자신이 선택한 환경속에서 창조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앞에 놓여있는 이미 이루어진, 과거에서 물려받은 환경속에서 창조한다.”고 제시하고있다. 물론 사회가 변하는만큼 문학도 변하지 않을수 없다. 인간의 삶이, 그 현실속에 인간들의 모습도 바뀌는데 그 삶이 현장과 인간상을 조명하는 문학예술이 바뀌지 않을수 없다. 문학에서 맛이란 바로 사람냄새이고 멋이란 바로 진실한 삶의 양상과 양태이다.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전통뉴대가 파괴되여가는 마당에서 문학의 주제의식은 의연히 상실당한 인간성으 회복에 집착해야 한다면 현대인들을 상대로 한 인간적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만이 문학을 구할수 있을것이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따스하고 강과 바다가 우리의 심령과 융합되게 할수 있으며 인간간의 화해, 자연과 인류의 조화를 이룰수 있다. “생명은 짧고 예술은 길다.” 전통문학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혁신해야 하는가? 1) 내용의 계승성과 혁신 문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행로를 걸어왔다. 지구는 인류를 위해 존재한것은 아니지만 문학은 문명한 인류를 위하여 출현되였다. 모든 예술이 일종의 심리활동이듯이 문학의 모체도 인류의 심령이다. 문학예술의 유산에 대한 비판적계승은 문학자체의 생리이다. 19세기 문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내용, 형식 등 많은 방면에서 도전에 직면하였다. 특히 리얼리즘으로부터 반리성주의(다다이즘), 립체파(큐비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황당파 등 파격적이고 반역적인 각양각색의 예술운동의 도전을 받으면서 20세기의 새 언덕에 올라섰다. 정보시대, 다매체시대를 맞아 문학은 전성기를 넘어 소외당하는 의식형태로 되여간다. 인간의 정신가원(精神家园)인 문학의 발전공간을 확보하고 변화하는 21세기에 문화시장을 개척하려면 문학계가 획기적인 진로를 개척해야 할것이다. 소위 현대성이란 실질적으로 전시기의 현대성에 상대하여 하는 말이다. 무릇 현대성의 핵심은 인간의 주체성이며 인성을 신장하는것은 현대성리론의 공 통한 특징이다. 그러나 한 작가가 민족특색이 있는 훌륭한 작품을 창조해내려면 민족문화정신을 무시할수 없으며 오직 민족문화정신의 가치선택을 존중해야만 예술생명을 얻을수 있다. 민족적일수록 더욱 보편적인 세계적가치를 창조할수 있다는것은 실증할 필요가 없다. 2) 형식의 계승과 혁신 문학의 계승성은 예술형식에서 더욱 심각하게 표현되고있다. 문학형식도 진화하는것이다. 소중한 문학유산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의 모색도 필요하다. 이는 형식의 파괴가 아닌 급변하는 시대정서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하고 지혜로운 창조적인 모색인것이다. 문학이 극복해야 할 가 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문학특성의 확보이고 그것을 고양하는것이다. 오늘날 전파정보매체와 첨단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전통적인 민족문학은 형식상에서부터 해체되는 도전을 받고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통문학의 형식이 바뀐다고 해서 전통문학의 형식이 담고있던 내용과 민족정서까지 바뀌는것은 아니다. 민족문학의 현재적생명력은 어디까지나 보편성과 대중성을 전제로 하고있다. 그러므로 형식의 전환을 경계할 필요없으며 문학의 내용을 중점으로 전통적문학을 현재적으로 계승할 방법을 찾아야 할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문학은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정신을 떨치게 하는 작용을 한다. 하기에 문학이 근근이 오락성과 취미성에 머물러서는 희망이 없다. 문학은 마땅히 진,선,미에로 인도해야 하며 인간의 력량을 제조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정면적인 정신가치에 대한 긍정과 신장을 도모해야 함은 자명하다. 매 한차례 문학의 초월성은 문학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기도 하였다. 주체성을 신장하는 문예학사상은 그 시기 문학가들에 의하여 선명한 표술로 되였다. 그것은 문학의 생존전략이다. 새 시대의 문학은 언제나 시대의 양상과 색채와 소리와 더불어 생활의 주선률이 될 때에라야만이 생존공간을 개척하고 확보해 나갈수 있다. 문학의 사인화, 개인화, 은밀화의 창작은 공공성에로 통하는 대문을 닫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는 딱한 결과를 낳을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전 문학리론은 현대성위기에 직면했다고 하면서 작가들은 더는 사회량심이라든가 인류령혼의 공정사로 자처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을 보편적주체로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회를 개조하려는 유토피아 식의 구상과 충동을 버려야 하며 대변인식의 창작태도를 벌리고 사회력사적객관수요와 전인류 및 전체 인민의 주관수요를 적게 표현하거나 아예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력설하고있다. 20세기 90년대에는 혁명과 결별하고 계몽을 포기하며 주류를 담담하게 대 하고 본연에로 회귀해야 한다는것이 류행어로 되었다. 그러나 사인적창작태도가 공동한 인식과 공공성을 무시했으되 인간의 기본생활질서와 기본적가치표준 마저 등돌릴수 없었다. 실천이 증명하다싶이 현대성서사론술은 주어진 인문환 경에서는 자가당착에 빠지고말았던것이다. 어떻게 인식하고 주장하든간에 목욕물을 버릴 때 아이도 함께 내던지듯이 객관적인 자기존재의 환경마저 무시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인화창작의 합리 성을 량자대립의 기초우에 세우려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문학은 사인령역과 공공령역의 사이에 중간지대에 놓여있으며 대표형공공령역이 시민공공령역에로 과도하는 중간환절속에 처할수밖에 없는 숙명을 벗어버릴수 없다. 말하자면 문학은 사인생활에 뿌리내려야 하거니와 공공령역에서 꽃피고 열매맺아야 한다는것이다. 소위 자아표현이란 일종 환각같은 동경으로서 진정 표현되는것은 하나의 의식형태화된 “공공인(公公人)”에 불과하다. 자아본신은 이미 의식형태화된 사회구성원으로서 문학창작에 진공상태란 없으며 그만큼 진실한 자아란 거울속에 꽃이나 물속에 달과 같아서 볼수는 있어도 눈썹사이에 잡아둘수 없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인간의 생존전략이지만 때가 지나면 한물가는 류행복이 아니다. 작가의 본질은 자아표현이 아니라 자아초월이다. 자아실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자아초월의 수단이여야 한다. 동일성도 역시 현대성의 표징의 하나라고 할 때 적어도 동일성문제에서 현대성은 멋대로 초월할수 없기때문이다. 새 시대의 문학은 어디까지나 시대의 양상과 색채와 소리와 함께 생활의 주선률이 될 때에라야 생존공간이 확보되고 미래를 개척할수 있다.  
42    제2절 비교문학론 댓글:  조회:4554  추천:21  2007-09-18
                                             제2절 비교문학리론 1. 비교문학의 개념 비교문학은 19세기말, 20세기초에 흥기한 문학연구의 한갈래로서 두가지 종류 이상의 민족문학지간의 호상작용과 과정, 문학과 다른 예술형식, 나아가서 의식형태들 사이의 호상관계를 력사적으로 비교연구하는 학과이다. 비교문학은 국제간의 문학적교류사 즉 한 나라의 문학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외국문학에 미쳤거나 받았을 영향의 상관관계를 밝혀 상호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규명해내 는 학문으로서 문학사의 한 분야이다 프랑스의 비교문학연구가인 귀아르(Marius Francois Guyard)는《비교문학》서문에 자신의 비교문학관을 세가지 명제로 나누어 기술하고있다. “비교문학은 단순히 문학의 비교가 아니고 문학사의 한 분야이며 일반문학이 아니다.” 그의 이런 정의는 국제간에 이루어진 문학적영향관계를 전제로 한 사실존중과 인과론을 중시한것이다. 비교문학은 자체의 민족문학을 연구하지 않으며 전 세계의 각 민족문학에 공동하게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규률도 탐구하지 않는다. 비교문학은 하나의 학과이지만 일반 문학연구상에서의 비교의 방법과는 다르다. 비교문학은 세계적시각과 흉금으로 부동한 국가, 부동한 문명권내에서 두가지 이상의 민족문학지간의 상호작용의 과정, 문학과 다른 예술형식, 나아가서 의식형태들사이의 상호관계를 력사적으로 비교연구하는 학과이다. 비교라는 개념은 의미의 폭이 넓지만 비교문학론에서 사용될 때에는 “영향관계”를 검토하는 문학연구의 한가지 방법론이다. 비교문학에서는 주요하게 세계문학현상에서 동원성(同源性), 류동성, 변이성, 이질성과 상호보충성을 연구하는 실증적영향연구, 문학의 변이성연구, 평행연구와 총체적문학연구를 기본방법론으로 삼는다. 2. 비교문학의 연혁 서구에서 비교문학연구의 계기는 랑만주의의 등장이였다. 랑만주의와 더불어 각국 문학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빈번한 교류가 시작되였던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시대 이후 유럽문학의 상호관련이 더욱 복잡화되고 긴밀화되면서 단일한 국민문학적연구체제로는 문학의 여러가지 현상을 전체적으로 밝힐수 없게 되자 문학의 상호련관성을 찾기 위해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였다. 그러나 비교문학에 대한 구체적목표와 방법론의 정립은 19세기중엽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비교문학이라는 용어는 1827년 프랑스 소르보대학의 교수 월만이 자기의 강의제목을《비교문학연구≫라고 칭한데서 기인된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국제간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리론적으로 발전하고 령역을 확장하여 현재 서구에서 주목받는 문학연구분야로서 부상되였다. 비교문학은 국제지간의 문학적관계의 력사로서 국가적인 측면과 세계적측면에서 해석되고있다. 국가적측면에서의 비교문학은 서로 다른 문학권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한 나라의 문학이 다른 나라의 문학에 어떻게 영향주었는가? 그 변형의 구체적관계는 어떠한가를 탐구하고 어떤 제시를 하는것이다. 3. 비교문학의 연구령역 비교문학은 일반적으로 문학실체의 비교가 아니라 부동한 언어, 부동한 국가 문학령역에서 창작 및 작품에 대한 연구성과비교이다. 비교의 초점은 반드시 비교가능성의 문제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연구에 실효성이 보장될수 있다. 비교문학은 부동한 시점에 따라 두가지 연구류형으로 나뉘여졌다. 첫째는 영향연구이고 둘째는 평행연구이다. 영향연구는 각국 문학의 연원과 전파와 그 매개성을 거슬러 올라가서 따져본다. 이 방법은 프랑스, 독일 등 모든 해당 나라에 직접적영향이 없거나 련대성이 없는 그러한 문학비교이다. 이 연구방법으로 작품의 문체와 구성, 언어, 정조(情调) 및 문학관계에 대한 분석을 거쳐 동일성을 찾으면서 부동한 일면에 대한 연구도 포괄한다. 비교문학의 연구방법은 각 나라의 작가, 작품의 상호영향관계를 비교분석하는것인데 구체적으로 문학에 있어 어떤 영향들이 받아들여졌거나 거부되였으며 그 영향들이 얼마만큼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밝히는것이다. 이를 또 각 분야별로 나누어 고찰해 본다. 첫째로는 각 장르의 형식이 어떻게 발전하고 전파되였는지를 연구하는 문학형식연구이고 둘째로는 문학의 소재가 되는 인간형과 전통의 문제를 다루는 제재 연구이며 셋째로는 작가의 사상과 철학, 또는 한 시대, 한 지역의 사조 등이 어떻게 전파되고 영향주었는가를 살펴보는 사상 및 감정의 영향연구이고 넷째로는 한 나라 국민문학에 미치는 세계적인 작가의 영향관계를 비교,검토하는 작가연구 등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작가연구이다. 한 작가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속에 형식, 제재,사상의 연구가 집중적으로 포괄될수 있기때문이다. 1950년이후 단순히 국가간의 문학영향관계뿐만아니라 문학과 린접학문의 영향관계(예술,철학,력사,사회과학,자연과학,종교 등)에까지 관심령역을 확장했다. 문학이 단순히 자체내의 영향뿐만아니라 지식과 사고체계가 다른 여러 학문의 영향까지 받는것으로 보고 단일한 비교체계로부터 사고체계의 전반적영향관계에까지 연구분야를 넓힌것이다. 특히 문학과 기타 예술과의 관계는 1970년대, 1980년대 비교문학연구의 중심을 이루고있다. 비교문학연구에서는 직접적관계가 없는 부동한 민족문학의 주제, 제재, 문체류별, 인물형상, 풍격특점 등에 존재하는 같은 점과 차이에 대한 연구를 평행연구라고 한다. 평행연구에는 “제재력사”, “주제학”, “류형학”, “형태학”, “비교비평(비교시학)” 등 내용이 포괄된다. “주제학”에서는 동일한 주제사상ㅡ“사랑과 의무의 충돌”, “인생의 짧음과 자연의 영구함의 모순” 등의 부동한 민족문학에서의 표현 등을 대비연구한다. “류형학”은 각 민족문학의 동일한 류형의 작가와 작품, 인물형상과 이야기정절 등을 대비연구한다, “형태학”은 동일한 문체가 부동한 민족문학에서의 부동한 발전과정을 연구한다. “비교비평”에서는 부동한 민족문학의 부동한 비평개념과 비평원칙 및 기타 발전력사, 각 민족시가창작의 공성과 특색을 연구한다. 평행연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넓은 시야로 문학의 보편적인 규률을 총화해내고 더 풍부한 문학현상을 개괄하는 동시에 자기 민족문학의 독창성을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4. 각 민족문학의 호상영향 학실천이 보여주다싶이 한개 민족문학의 번영은 외래문화를 잘 흡수하는가 자기를 봉쇄하는가와 밀접한 련관이 있다. 당시 아랍문화, 인도문화, 서역 각국의 문화는 당조의 문화발전을 크게 추동하였는바 음악, 무용, 문학 등 방면에서 뚜렷한 성취를 거두었다. 19세기 로씨야의 비판적사실주의문학의 번영도 작가들이 외래의 영향을 접수한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여있다. 각민족문학의 호상영향은 문학발전에서 객관적이고 규률성적인 문화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경제, 정치, 문화의 수요와 밀접한 관계에서 산생되였다. 각민족문학은 모두 인류의 공통한 감정 및 세계에 대한 공통한 감수와 욕망을 반영한다. 애정, 애국주의 등은 력대로 모든 민족문학의 기본주제였다. 각 민족문학은 모두 본민족문화사의 생활내용과 상응한 표현형식이 있지만 때로는 비슷한 점들이 있다. 각 민족문학은 일정한 시공간의 문학사조와 문학관념의 영향을 입어 호상적응되는 창작방법을 쓰고있다. 이를테면 진,선,미 등을 추구하는 문학관념 은 거의 공통하다. 애정, 애국주의 등은 모든 민족문학의 기본주제였다. 문학발전은 본민족문화유산을 계승하고 타민족문학의 우수한것을 섭취한 결과이다. 례하면 ≪삼국연의≫, ≪수호전≫등이 구라파각국의 언어로 번역된후 볼테르, 괴테, 쉴러, 헤겔 등 작가,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반대로 20세기후 뿌쉬낀, 레르몬또브, 바이론, 쉘리, 뻬뙤피 등 반항정신, 애국주의정신으로 충만된 작품들이 로신에 의해 중국에 소개되였으며 “5. 4” 이후에는 발자끄, 졸라, 모파쌍, 프로벨 등 작가들의 비판적사실주의작품들이 중국에 전파되였다. 다음 예술형식, 표현기교상에서 호상 학습하는 본보기로 되였다는 점이다. 두보, 리백 등의 작품이 영문으로 번역되여 서방시단을 진동했다고 한다. 선진적창작방법의 교류에서 왕왕 한나라에서 선행된후 뒤미처 세계문학사조로 되였다. 례하면 1910넌대 이딸리아의 시인 마리넷티가 미래주의선언을 발표한후 프랑스, 로씨야 등 나라에서 “립체미래주의파”, “자아미래주의파”등 미래주의파들이 륙속 산생된 사실이다.  
41    제 4 장 발전론 제1절 문학의 기원 댓글:  조회:4275  추천:17  2007-09-18
                                             제1절 문학의 기원 문학예술은 언제 어떻게 발생하였을가? 인류는 어떤 환경과 심리기제하에서 문학예술을 수요하게 되였을가? 력대의 문예리론가들은 줄곧 문학의 기원문제를 명확하게 규명하려고 하였지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였다. 조형예술의 출현과 책의 출현과의 사이에 수만년 력사가 흘렀다. 그림과 문자사이에도 오랜 진보과정이 수요되였다. 책에 의해 문학이 류포된것은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된 썩후의 일이다. 1. 모방설 고대로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학론에서 가장 주류를 이룬것은 문학을 일종의 모방으로 보는 견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예술을 “모방”이라고 규정하고 이 모방은 인간의 원초적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즐거운것이라고 주장했다.“모방”이란 용어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의《대화편》에 최초로 나타났는데 후에는 복합개념으로 사용되였다. 플라톤은 자기의 저서《공화국》제10권에서 스승의 견해를 빌어 회화, 시, 음악, 무용, 조각 등 모두 모방의 세계라고 단언했다 이 견해를 기준한다면 문학론은 진리나 정의, 덕성, 교화라는 이 론리기점을 떠나서는 론의할수 없다. 이런 모방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래 서방의 예술사상을 오래동안 지배해오다가 19세기 자연주의리론에 이르러서는 형식적인면이 더욱 극단적으로 강조되였다. 데모크리스트는 “거미에게서 직포착상과 바느질을 배우고 제비에게서 집을 짓는 방법을 알았으며 백조와 황조 등 새들에게서 노래부르는것을 배웠다”고 하였다. 그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문예는 인류의 모방기능과 모방해낸 작품에서 쾌감을 느끼는데서 산생되였다고 피력하면서《시의 기원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는데 모두 인간의 천성에서 온것이다》라고 력설했다. 동양의 모방론은 서양의 경우처럼 자연의 모방이라는 론리를 내세우지 않고 신과 인간과 자연을 동일체로 파악했다. 예술상에서의 모방에는 두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 기타 예술작품을 본보기로 삼고 작품을 제작하는 대상에 대한 모방이다. 둘째, 현실적존재를 모델로 하여 같은것을 제작해내는것으로서 곧 대상에 대한 묘사이다. 첫번째 함의는 고전예술에 대한 모방에서 표현되고 두번째 함의는 예술은 현실 혹은 자연을 모방한것이라는것이다. 미학상에서 주요과제는 후자이다. 여기에 두가지 정황이 있는데 객관적대상물에 대한 표현으로서의“재현”혹은 “묘사”이다. 이렇듯 “모방론”은 가장 오랜 문예발생론이다. 2. 표현본능설 이 기원설은 허드슨이 주장한 학설이다. 문명개화기에 들어선 인간으로 말하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있기에 그 욕구가 언어에 의해 표현될 때 문학이 발생했다는것은 추측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표현기원설에서 예술의 본질은 표현, 특히는 감정표출에 있으며 예술활동은 “표현충동”에서 출발했다고 인식하고있다. 레브 똘쓰또이는 한사람이 자기가 체험했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다시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모종 외재적표지로써 표달해내는것이 곧 예술이라고 하였다. 그후 이딸리아 미학가 크로체와 영국문예리론가 꼬린우드도 “표현기원설” 리론을 더 심입,발전시켰다. 동양의 경우 표현론은 “성정론(性情论)”, “기상론(气象论)”으로 나눈다. 성정론에서는 시를 인간의 본편적성정의 표현로 보았고 ≪서경(书经)≫에서 “시란 자기 뜻을 말로 표현한것이요 노래는 가락에 맞춘 말(诗言志歌永言)”이라고 주장했고 ≪시경≫에서 “마음이 흘러가는바를 적은것이 시”라는 주장했다. 3. “로동”기원설 문예가 “로동”에 의해서 기원하였다는 리론의 가장 유력한 제창자는 로씨야의 쁠레하노브였다. 말하자면 원시인들이 로동과정에 협동적동작, 피로의 경감, 사상 감정교류를 위해 늘 일정한 박자에 따라 절주있게 소리를 냈는데 이것이 최초의 음악절주의 래원이라고 하였다. 이런 절주있는 로동가운데서 합창과 일정한 의의가 있는 언어가 결합되여 최초의 시가 산생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맑스주의관점에서 상술한 제 인소들중에서 로동기원설이 특별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인정하고있다. 4. 기타의 기원설 1) 유희충동설 예술을 일종의 유희로 보면서“유희충동”이 창작동기라는 학설이다. 문예의 유희기원설리론의 창시자는 칸트였으나 그것을 명확하게 계통적으로 천명한것은 쉴러와 스펜서였다. 쉴러에 이르러 예술이“유희”에서 기원되였다는 리론이 명확히 제출되였다. 그는 자기의 저작《심미교육서간》에서《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생활하므로 자연력과 물질수요에 강박당하고 또 리성법칙의 온갖 약속을 받지 않을수 없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여 사람들은 늘 자기의 남은 정력으로 자유로운 천지를 창조하려 하는데 이것이 곧 유희다.》라고 천명였다. 2) 만물유령 기원설 인류문화의 발전에 따라 19세기말 20세기초 만물유령론 (아미니즘)이 점차 흥기하였다. 고대중국의 문학리론에서는 무술론 (巫术论)이라고 한다. 이 리론의 출현은 영국의 인류학자인 타일러의《원시문화》라는 저서에서였다. 후에 영국의 다른 인류학자 프라이저와 프랑스의 레이냐크 등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전되였는데 지금까지도 서방에서 일정한 시장을 차지하고있다.
40    제 3절 현대주의평론 댓글:  조회:4363  추천:19  2007-09-18
                                                    제3절 현대주의평론 1 력사주의비평과 사회문화비평 1) 력사주의비평이란 문학작품과 그것이 둘러싸고있는 사회적문화적맥락을 다루는 방법으로서 주로 작품의 근원을 밝히려 한다. 작품이 생산된 력사적맥락과 사회적소산으로서의 작품, 그 작품이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요소들에 준 충격, 그 작품에 대한 후세의 독자가 느끼는 의의 등의 상호관계를 밝힌다. 여기서 작가야말로 작품의 근원이고 출발이며 원인이기 때문에 작에 대한 전기적연구가 중요하게 대두한다. 력사주의비평에서 착수하는 첫작업은 원본(text)의 확정이다. 활자화되여있는 한 작품이 진본이냐 아니냐는 력사주의자의 특별한 관심사이다. 원본의 확정은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의 특질과 의도에 대한 민감한 판단력이 필요한것이다. 그런 까닭에 원본확정작업을 특별히 원본비평이라 부르는 독자의 령역으로 인정하고있다. 고대시가의 경우 원본비평은 더없이 중대한 과제가 된다. 원본비평 이론의 권위자인 미국의 프레드슨 바우어즈는 원본비평의 목표를 “한 작가의 텍스트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한편, 판을 거듭함에 따라 늘 생기는 와전으로부터 그 순수성을 보존하는것”이라며 원본확정에 몰두한다. 다음 력사주의비평가는 작품의 “해석”보다는 “해설”에 일차적관심을 가진다. “해설”은 현재의 독자들을 위한 일종의 “번역”이다. 작품을 “번역” 하다보니 옛말의 문법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굳어진다.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작품에 대한 주석, 해설, 번역은 확실히 비평적로작이다. 문학이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가치의식을 내포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문학작품의 제일차적참고서는 사전과 문법서이였다. 력사주의비평은 자체에 한계를 가지고있는바 연구결과보다 연구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것이였다. 문학작품의 원천에 대한 기본조사가 연구수단임과 동시에 연구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고 기원과 가치평가를 혼동하는 발생학적오유(发生学的误谬)를 범한다. 그만큼 작품의 형식, 구조 등의 미적의미의 규정에 대해 간과해버리며 작품의 과거성에 집중하다보니 현재성에 대한 감상이 소홀해지기 쉽다. 력사주의비평은 1920년대에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연구를 주도했지만 30년대에는 형식주의의 공격으로 수세에 처했다가 40년대에 퇴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다시 부흥하여 현재에 이르렀다.력사주의비평이후 신역사주의도 출현되였다.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리론가는 미국의 문화비평가 그린블랫(S. Gre enblatt)이다. 1982년에 문학잡지《쟝르》의 특집호에서 처음 사용한후 력사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비평을 지칭하는 용어로 되였다. 푸코의 영향하에 출발한 신역사주의는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 전통적력사학자들과 구분된다. 전통적인 력사학자들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역력사를 어떤것으로 생각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데 반해 신력사주의자들은 그 사건이 어떻게 해석되여 왔는지를 문제삼고 그 해석을 통해 해석자들에 관하여 어떤것을 알수 있는가에 관심을 쏟는다. 또 전통적력사학자들은 력사가 일련의 인과관계에 의해 일어난 사건들의 련속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해, 신력사주의자들은 력사적사실에 대하여 명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이런 리유로 신력사주의자들은 사건을 련속적으로 서술하는 대신 오직 해석하는 일만이 존재할뿐이라고 말한다. 그 리유는 사실상 력사적사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기때문이였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력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이다. 그렇기때문에 모든 력사적설명은 일종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이야기를 분석하는 문학비평의 방법으로만 분석이 가능하다. 둘째, 력사는 인과관계에 의해 직선적으로 발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렇기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거나 인류력사의 발전을 론의할 필요가 없다. 셋째, 권력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의해 규정되는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물질적조건이나 그 사회의 문화가 생산한 담론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상의 변화속에서 순환된다. 넷째, 어떤 시대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담론들 사이에서 력동적이고 비고정적인 상호작용이 있을뿐이다. 다섯째, 개인의 정체성은 문화에 의해 형성되며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정상/비정상’과 같은 범주는 개념정의의 문제에 불과하다. 여섯째, 모든 력사적분석은 불가피하게 주관적이다. 그래서 력사학자들은 력사를 해석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이 취한 방법을 드러내야 한다. 이런주장을 근거로 신력사주의자들은 전통적력사주의자들처럼 문학작품의 흥미로운 력사적배경을 제시하는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학과 력사를 분리하여 문학을 그 자체가 완결적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학텍스트를 담론들의 상호작용의 일부분이자 사회적의미망(意味网)을 구성하는 하나의 끈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한편 문학텍스트만큼이나 그것이 등장하게 된 력사적상황도 똑같이 중요시하였다. 2) 사회문화비평: 력사주의비평이 문학을 바라보는 손쉬운 방법으로 널리 선호될무렵, 사회문화비평방법이 등장하였다. 사회,문화비평은 사회학적각도에서 문학비평을 진행하는것으로서 일명 사회학적방법(반영론, 모방론)이라고도 한다. 사회, 문화비평은 사회학자, 문예학이 결합된 산아로서 사회학과 미학, 문예학을 겸비한 비평방법이다. 이 비평방법을 가장 일찍 도입한 사람은 이딸리아의 철학가 비코였고 그후 프랑스의 녀류작가 스탈부인이 계속 연구하였다. 이렇듯 사회학적비평은 력사가 유구하지만 일종의 비평류파로 형성된것은 18세기 이후였다. 프랑스의 비평가 테느가 ≪영국문학≫, ≪예술철학≫ 등에서 문학예술의 3요소결정론을 내놓았다. 즉 문학예술은 종족(선천적생리유전인소), 환경, 시대, 이 세가지 요소로부터 결정된다는 관점은 사회력사평론방법에 리론기틀을 잡아주었다. 테느는 “주의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남들더러 접수하라고 할 대신 다만 약간의 법칙들을 증명할뿐이다.”라고 썼다(≪예술철학≫ 한문판 제10페지) 이 비평방법은 문학을 사회적소산으로 보고 사회문화적요인의 복잡한 상호관계의 반영이나 결과로 보면서 문학과 사회제도, 작자의 사회적지위, 소재로서 사회의 모습, 문학의 전달과 공급의 문제를 취급한다. 문학은 그것이 생성된 환경, 문화와 분리되면 충분히 리해될수 없으므로 사회상이나 사상도 작품의 형태나 기법처럼 중요하다고 인정한다. 이 비평방법의 특징은 문학작품은 그것을 생산한 환경, 문화, 문명과 분리할수 없고 작품속에 구현된 사상은 형식과 기교못지 않게 중요하며 생명력있는 작품은 당시의 문화나 개개의 독자와의 관계에서 매우 도덕적이고 이데올로기의 표현이기에 비평은 작품에 대한 심미적관조 이상의것이 되여야 하며 비평가는 과거나 현재의 문학작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것이다. 력사주의비평이 원천을 강조한다면 사회문화비평은 문학의 개별적인 전체성을 강조한다. 즉 텍스트, 언어조건, 전달방식, 전기, 쟝르, 관습, 전통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작품과 삶의 현실과의 상호관계에 주목한다. 력사비평이 실증적인데 반해 사회문화비평은 리념적이며 문학과 사회의 소통을 중시하였다. 이 비평방법에는 사회학적측면과 력사적측면이 있다. 작품에 대한 테느의 력사적고찰과 비평방법에는 심각한 일면이 있다. 그리하여 사회문화비평의 대표자로 되였다. 이 방법의 취지는 작가와 환경, 작품과 환경간의 호상관계를 밝혀내고 아울러 문학의 사회적지위를 확정하는데 있다. 첫째, 문학작품을 사회생활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중에서 총체적으로 고찰했다. 사회비평방법은 작품을 한갓 형식적표현으로만 간주하는것도 반대하거니와 문학창작을 작가의 자아표현의 결과로만 간주하는것도 반대하였다. 둘째, 실증적인 분석방법을 중시했다. 사회현상으로서의 문학자체의 내부결구를 분석하고 천명하며 문학현상의 내부결구와 전반사회결구의 관계를 밝였다. 사회문화비평의 의의는 현실과 력사를 합리적으로 리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의 삶을 바르게 질서화하고 편견에 맞서싸우려는 인간다운 인식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는데 있으며 시대의 폭력과 사회의 타락에 저항하며 민중의 건전한 생활과 력사의 옳바른 진행을 위한 참다운 창작과 비평을 인도한데 있다. 반면에 사회력사배경을 고찰함에서 문학을 제약하는 경제적층차에까지 심입되지 못했으며 외재세계의 문학에서의 투영에만 중시를 돌리면서 사회에 대한 문학의 반작용을 홀시하였다. 작품의 배경, 소재나 주제를 사회와 문화를 통해서 고찰으로써 작품의 미학적질서나 창조솜씨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문화비평리론은 많은 부분에서 신력사주의와 리론적전제를 공유한다. 다만 문화비평리론은 보다 정치적이고 마치 맑스주의자들처럼 억압받는 집단을 지원하며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구별이가 있다. 2.형식주의비평과 신비평리론 1) 형식주의비평 1920년대, 사회,문화적비평방법이 동시에 범하고있는 약점을 극복하고 등장한것이 형식주의비평이다. 형식주의비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후 가장 오래된 정통적비평방법이다. “문학은 작가의 인격과 환경의 반영이다.”, “작가의 의도와 텍스트는 일치한다.”는 력사적방법에 대한 반명제(反命题)로서 문학성을 철저하게 그 언어조직과 일체화시켜 분석하고 기술한다. 형식주의란 용어는 로씨아의 내용주의자들이 문학의 주제대신 음성이나 단어의 형식상의 방식(패턴)을 중요시하는것을 비판한 뜻에서 유래되였는데 문학을 언어적형식, 언어적구조로 보며 작품에 내재한 문학의 존재성, 독자적자률성 등을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비평방법이다. 이 비평에서는 문학작품은 자체의 법칙과 질서체계를 가지며 그 자체가 완정하므로 비평가는 작품자체로 접근하여 작품의 독자성,우위성과 “작품자체”라는 명제를 강조하고 제시한다. 이를테면 작품을 구성하고있는 언어의 상호관계, 문장의 양상, 패턴, 류사한 낱말과 어구, 주어부와 술어부의 호응관계, 말투, 말들의 선택, 문맥의 련결관계 등 내적련관성을 주로 연구한다. 형식주의비평의 성과를 론한다면 작품 자체의 형식미를 밝혀내려하기에 서정시를 다루는데 성공적이고 문학의 외적조건에 의한 평가와 문학을 종속화하려는 경향에 반하여 문학의 독자적자률성을 주장한것에 적극성이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체에 한계성을 가지고있는바 특별히 선별된 작가와 작품만을 다루었고 서사적쟝르의 분석과 비평에서는 실패하였다는것, 작품의 어느 언어, 이미지, 서술방법 등 국부성에 치중한것, 문학사를 무시한것, 객관적오유와 소비적오유, 본체론적오유를 범한것 등 제약성을 보였다. 2) 신비평리론 신비평리론은 20세기 30년대 주요하게 미국남부에서 형성되여 후에 서방 각국에 큰 영향을 끼친 문학비평경향이다. 신비평이란 명칭은 크로우드 램슨이 1941년에 출판한 자기의 평론집에 단 제목에서 유래된것이였다. 신비평은 “결코 통일된 단일한 리론이 아니라 상호련관되고있으면서도 전적으로 일관성을 형성하지 못한 여러 리론들의 복합체이다.” 영미신비평의 각 류파들의 리론체계가 각이하고 강조하는 중심이 다름에도 연구대상은 작품의 시대배경이나 작가의 생애나 심리 혹은 독자의 정감반응이 아니라 문학작품자체라고 보는데서는 관점이 일치했다. 시는 “주요하게 시이지 다른 어떤 물건으로 보지 않는다.”② 라고 한 엘리어트의 이 한마디 말에서 벌써 신비평의 리론주장이 분명하게 표명되고있다. 신평론의 특점은 주요하게 두가지다. 하나는 본체론을 견지하며 작품을 평론의 출발점과 종지로 삼은것이다. 신비평은 작가를 중심으로 외부적연구를 하는 사회력사비평을 버리고 작품을 중심으로 한 내부연구에로 전향했다. 신비평의 리론가 W.K.윔섯은 1940년대 후반기, 그의 동료 M.C.비어즐리와 공동명의로 《의도적오유(Intentional Fallacy)》와《영향적오유(Affective Fallacy)》라는 두편의 론문을 발표했는데 “의도적오유”와 “감각의 오유”라는 명제들이 제기되였다. 작가의 창작의도로부터 출발하여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것은 착오적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의도적오유”이다. 그는 작품의 의미와 독자의 정감효과를 혼동하는것은 착오라고 하였다. 환언한다면 작가의 창작의도와 작품에서 실현된 예술세계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구별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던것이다. 그러면서 문학평론의 대상은 마땅히 작품자체여야 하며 작자의 창작의도 같은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이 “감각의 오유”라는 명제이다. 그리고 만약 작품이 봉페형이 된다면 일체 력사적관점은 여기서 모두 소실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작자의 의도가 그가 완성한 작품을 훨씬 초과할수 있다. 그런데 그의 실천이 목표보다 퍽 못하거나 또는 이 목표와 거리가 너무 멀수도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신비평가 부룩스는 “시에는 모종 초시대적인것이 있기에 보편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으며 “감각오유” 리론에서는 독자가 작품을 읽을 때 감수상에서 오유가 생길수 있는바 감수한것이 작품에서 표현된 의의와 똑 같을수 없으므로 독자의 감수가 어떠한가는 관계할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신비평은 문학활동에서 작가ㅡ독자ㅡ작품 이 세개 환절에서 문본을 독립적이고 자재적인 실체로 간주하고 작품의 의의는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다음 글자마다 따져가며 자세히 읽고 상세히 분석하고 해석할것을 주장했다. 신비평리론에는 진보적인것과 이처럼 합리적인것들도 많은 반면 맑스주의관점에서 고찰할 때 일정한 제약성도 보이고있다. 3.구조주의비평과 심리주의비평 1) 구조주의비평 구조란 개념의 어원은 라틴어로서 통일체내의 각 부분, 각 요소, 각 단원지간의 관계 혹은 본질적련계를 의미하고있다. 이 원리에 근거하여 문학작품을 하나의 총체적구조로 보고 그 구조를 이루고있는 요소들을 텍스트안에서 찾아 문학의 독자적 ,자족적인 존재성을 확실하게 규명하는 비평방법이다. 문학에 대한 구조주의적인 접근법은 일반독자들의 평소의 신념을 헝클어놓았다. 통념상 문학작품은 작가의 창작의 산물이며 작가의 근본적인 자아표현이다. 또한 텍스트는 독자가 그속에 들어가서 작가의 사상 혹은 감정과 정신적 또는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대화장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작가는 “죽었으며” 문학적언술에는 진실이라는 기능이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롤랑 바르트는 구조주의적립장을 천명하면서 작가들이란 이미 쓰인 문장들을 뒤섞어 재결합하거나 재배치하는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까지 역설하였다. 구조주의는 근원적으로 스위스의 언어학자 드 소쉬르의 언어학적배경에서 출발한다. 구조주의는 모방론, 표현론, 효용론과 대립하며 작품의 외재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반현상학적립장에 서있는것이 특징이다. 이 리론에서는 언어학연구의 주된 목적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특정된 표현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체계를 연구하는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소쉬르는 언어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것이 아니라 다른것과의 구별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는것으로 보았다. 즉 신호등의 빨간색은 “초록색이 아님”이고 “정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모든 기호는 이렇듯 기의(정지)와 기표(빨간)의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렇듯 구조주의가 기존의 방법들과 근본적으로 다른것은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전통적신념을 철저히 거부하면서 시작한다는것이다. 신결구주의평론은 “서술학”이라 하며 프랑스의 “신비평”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영미의 신비평에 뒤이어 20세기 60년대에 흥기한 일종 더 새로운 본체론식평론으로서 광의적의미에서의 형식주의평론에 속한다. 결구주의평론의 정초자는 소쉬르이지만 집대성한 사람은 프랑스의 평론가 롤랑 바르트이다. ≪서사작품결구분석도론≫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구조주의비평의 선언서로 되었다. 구조주의는 주요하게 두가지 특점을 구비하고있다. 첫째, 평론의 내재성과 평론의 내재성과 추상성을 견지하면서 구체작품으로부터 출발하여 력사사건, 사회사조, 작자의 생평 등 외재인소를 분석, 해석하는것은 반대한것이다. 둘째로 작품에 대해 “원문분석”을 하여 내부결구와 일반규률을 제시할것을 주장한것이다. 영미의 신비평에 비하여 구조주의의 진보적의의는 정체결구에 대한 강조가 계통론에 접근한것은 성과이기도 하다. 구조주의 비평은 문학의 령역에 엄밀성과 객관성을 도입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실제 텍스트의 특수성을 무시하여 개별적인 텍스트를 다루고 작가와 력사, 작가의 언어를 무시하여 문학의 탈신비화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명랑한것은 아니였다. 2) 심리주의비평 우리가 문학을 론의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학정신, 문학적감동, 사상, 령감, 정서, 성격, 동기 등은 모두 인간의 실리상태를 표현한다는데서는 공통성을 가진다. 이것을 세분한다면 문학정신, 사상, 령감 등은 문학작품을 창작할 때의 상태이고 정서, 감동 등은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상태이며 성격, 동기 등은 문학작품내부의 요소라 할수 있다. 문학연구에서 작가의 창작, 독자의 수용, 작품의 내용을 인간성의 면에서 고찰하는 일은 불가결의 중요한 과제가 되였다. 심리비평방법에는 광의적의미와 협의적의미가 있다. 광의적의미로는 문학비평과정에 심리학의 기본리론과 원칙에 따라 심리학연구수단과 방식을 문화비평대상의 특점과 결부시켜 문학창작활동중의 어떤 독특한 심리현상과 법칙성을 도출해 내려는것을 말한다. 협의적의미로는 곧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원리에 의거하여 창작과정과 감상과정에서 보아내기 어려운 심층적심리동기를 고찰하는것을 말한다. 이 방법은 인간의 변태심리와 잠재의식에 근거하여 문학현상을 해석하려는것이다. 프로이드는 “무의식 유일론자”이다. 그의 심리학에서 문학과 가장 긴밀히 련계되는것은 인격결구리론과 꿈에 대한 해석리론, “성본능설”이다. 이 방법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원리에 근거하여 인간의 변태심리와 잠재의식을 빌어 문학현상을 해석할것을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정과 인격특징은 “본아”와 “자아”, “초자아”로 조성된 세개차원의 심리결구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정하였다. 그후 여러 류파들에서 심리학을 문학연구에 응용하게 되였다. 4. 정신분석비평과 신화비평리론 신화비평이란 문학을 신화체계내의 한 존재로 보고 문학속에 내재해 있는 신화체계를 밝히려는 비평형태이다. 신화비평은 원형비평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문학속에 내재해 있는 신화적요소가 신화적원형을 이루고있기때문이다. 또한 신화라는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편적인것인데 이것은 상이한 신화속에 유사한 모티프나 테마가 발견되며 류사한 심리적반응이나 문화적기능을 하게 된다는것으로서 이러한 모티브나 이미지는 원형(보편적인 상징형식)이다. 원형비평을 일명 신화비평, 토템식비평이라고도 하는비 새로운 비평목적으로서 옹근 한세대의 평론가들에게 영향주었다. 원형비평의 정초자는 스위스의 칼 융이다. “원형”을 원시모형이라고도 하는데 최초의 “원시적”이라는것이다. “원형리론”의 창시자 칼. 융은 문학원형을 세개 큰 류형으로 나누어 론술했다. 1) 신화원형 융은 문학예술의 원천을 그의 집체무의식과 원형에서 찾으면서 모든 위대한 예술창조는 신화와 집체무의식에서 원천을 찾게 되여있다고 주장했다. 고대중국의 ≪대우의 치수≫, ≪녀와씨가 하늘을 깁다≫라든가 쉘리의 ≪해방된 프로메테우스≫에서 등 희랍신화는 후세의 동서방문학에 영향이 컸는바 창작의 원형으로 되여 문학발전에 풍부한 재료와 예술상상력을 제공해 주었다. 2) 이미지형원형 융은 “예술창작이란 우리들이 추구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즉 무의식중에서 원형형상을 격발시켜 그것을 정밀하게 가공하여 완정한 작품으로 되게 하는것이다.”라고 쓰고있다. 중국의 고대시가에서도 이미지를 강조했다. 우선 식물이미지이다. 사람들의 견정한 품격을 상징하는 소나무, 순결을 상징하는 련꽃, 선구자를 상징하는 진달래꽃, 굳은 절개를 상징하는 참대의 이미지 등이다. 다음 동물이미지다. 례하면 사랑을 상징하는 원앙새, 길한 소식 전달자를 상징하는 기러기, 장수를 상징하는 거부기와 송학의 이미지, 근로하고 충성을 상징하는 황소 등등. 셋째로 사물이미지이다. 기독교인의 도를 상징하는 십자가, 경사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이미지, 상사심리를 상징하는 달이미지 등이다. 3) 의경원형 각 민족시가에서 의경원형은 각 민족의 특징으로서 전형환경을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고대시가와 산문에서의 봉래산선경, 광한궁선경, 동해룡궁선경, 염라지부정경, 우리 민족의 백두선경, 금강산선경 등은 모두 의경원형에 속한다. 원형은 인류가 력사행정에서의 집체경험으로서 매개 사람에게 같으므로 초개성적인 공통심리기초를 구성한다. 칼 융은 예술가들이 신화원형을 감지하고 발견하는것은 예술창조의 불가결의 기본공이며 작가의 재능이라고 인정하였다. 평범한 작가, 시인들은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대로 창작하지만 위대한 작가, 시인들은 시종 력사를 관통시키면서 력사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창작을 시작한다고 하였다. 괴테가 그러하였고 니체가 그러하였는데 그들의 전부의 재능이란 력사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한 무의식과 원형을 감수하고 예감하고 표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원형반영은 작가의 생활환경과 심미리상, 심미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같은 진달래도, 밝은 달도 그 의경원형은 차일시피일시이고 각자의 심미정서에 따라 각이할수밖에 없다. 신화비평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있는데 우선 문학을 신화의 신비로써 신비로움을 해석하기에 문제의 추향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문학자체 의 특성에 대한 연구공능, 미학적가치평가가 약화할수도 있으며 거시적고찰이 미시적고찰을 소외시키고 대신 원형발굴에 주관색채가 선행할수도 있다. 칼 융의 리론은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있음에도 문학원형의 성격조합성 및 증대속성등은 묘사내용에 광활한 새 천지를 열어주었다고 충분히 긍정해야 할것이다.    
39    제 2 절 문학평론의 양식과 방법 댓글:  조회:4593  추천:16  2007-09-18
                                        제2절 문학평론의 양식과 방법 1. 문학평론의 양식 1) 리론성평론 리론성평론은 일반원리에 의하여 문학평론체계와 방법, 그것들을 설명할 일정한 용어와 범주를 수립하여 문학작품을 평가할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리론형평론의 핵심은 문학의 개념, 기능해명이며 작품의 우렬에 대한 평가이다. 따라서 문학의 본질, 기능, 가치평가의 기준이 평론의 척도로 된다. 가히 전면적분석평가를 할수도 있고 치중해 모종 문제를 평론할수도 있다. 분석식, 판단식 혹은 종합적으로 평론할수도 있고 혹은 비교식으로 할수도 있으며 혹은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평론할수도 있다. 이런 평론은 대체로 서론, 본론, 결론의 결구를 가진다. 2) 감상분석형평론 감상분석형비평은 실제로 구체적인 작가나 작품에 대한 론의를 말한다. 그러나 분석과 평가를 뒤받침하는 원칙과 리론은 대개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만 인용한다. 실제비평의 착안점은 평론가가 실제작품 또는 작가에 대하여 어떤 리해와 평가를 내리는가 하는것이다. 이 평론은 독자들에게 낯을 돌리는 평론으로서 작품소개에 치중하는데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작품에 대한 소개가 꼭 완정한것은 아니여서 인물을 핵심으로 룡에게 눈을 그려넣는식으로 분석해도 되며 한개 편단을 평론하거나 작품의 특색을 제시할수도 있다. 그리고 작품의 내용외에도 작자의 정황(생활, 창작경력)에 대해 소개하여도 된다. 마감으로 자기의 인식과 결합하여 작가, 작품에 대한 인상, 태도를 담론한다. 감상형평론을 인상식평론이라고도 하는데 작품을 론할 때 철학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자기의 인상을 충실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주관적반응을 강조하는 평론이다. 신문에 “월평”이나 잡지들에서의 “이달의 화제”라거나 하는 서평들이 이에 속한다. 주로 평론대상에서 얻은 정서체험과 느껴지는 자기의 견해, 평가를 간결한 언어 혹은 시적언어로 전달한다. 독후감과 비슷하지만 구별이 있다. 감상, 체득형식을 취하면서 분석, 론증하지 않는다. 평론가는 발휘에 중점을 두는바 작품을 두고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르는 련상으로 이것저것 말하기도 하고 옛것을 빌어 오늘을 말하면서 문예문제를 연구, 토론한다. 이런 평론은 흔히 문예수필, 잡기, 서신, 대화 등 형식으로 쓰기도 한다. 이런 평론은 언어가 간결하고 우아하며 직관적특색이 있으나 리성분석이 결핍하기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뿐만아니라 설득력이 결핍하다. 감상식평론은 작품을 감상할 때 직감과 감수로부터 출발하지만 반드시 문학리론으로 작품에 과학적분석과 판단을 진행하는데로 승화시켜야 한다. 3) 창조성평론 창조성평론이란 평론이 단순한 작품에 머물지 않고 평론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새롭고 독창적인 견해를 전개하여 그 평론자체에 예술적인 창조성을 부여하는 평론방법이다. 그러나 청탁받고 평론하거나 개인적감정에 얽매여 평론하면 편파적인 평론이 되기 십상이다. 창조성평론의 실질은 “자기를 예술작품속에 명시되여있는 재능과 일치시키는것”을 의미하며 작품과 창작과정의 흔상과 연구를 거쳐 작품을 재생, 재현하는것을 의미하며 예술작품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작업인것처럼 평론 또한 창조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평론가가 평론대상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형식을 통해서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 바로 창조성평론이다. 4) 재단성평론 재단성평론을 립법평론, 제작성평론이라고도 한다. 즉 실제작품의 창작기법에 대해 론평한다. 이를테면 소설창작방법, 서술기법이든지 시창작의 원리같은것이 평론내용이 된다. 창작방법이나 기법을 론한다는 시점에서는 리론평론에 가깝다. 이 류의 평론은 자체의 특점을 고유하고있다. 즉 시야가 비교적 넓은바 평론하는 작품이 한부나 두부에 제기되지 않고 어느 한 시기의 동일한 제재나 동일부류의 작품에 대해 종합평론을 하면서 종횡으로 진술하여 그 시기의 창작경향 특색 및 성과와 부족점을 총화한다. 하여 독자들이 해당 시기의 문학창작과 시대맥박간의 관계에 대하여 대체적인 료해를 가지게 한다. 례하면 ≪××년 단편소설 만평≫≪××년 중편소설순례≫등. 5 )해석식평론 해석식평론에서는 주관적감수도 그 어떤 발양도 하지 않고 객관성을 강조하면서 작품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있는가를 적중하게 틀어쥐고 인물형상부각이 어떠하며 그 사상내용의 인식적, 교육적, 사회적, 미학적가치가 어떠한가를 분석, 판단,평가한다. 이런 평론방법은 중국의 한유의 주경, 석경(释经)에서 기원하여 점차 전통으로 형성되였다. 하여 거의 모든 명가,명작에 해석본들이 나왔다.《시경》훌륭한 례로 될수 있다. 이 평론방법은 작품의 본의에 대한 탐구를 중시하였기에 취할점이 있으나 평론의 창조성을 부정하거나 말살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관적이고 막연한 인상식평론과는 달리 객관적이며 극력 상세한 해석, 설명을 강구해야 한다. 6) 고증식평론방법 고증식평론은 해석식평론과 련관되는바 특점이라면 대량의 방증재료로 해석을 증명한것이다. 서방에서는 실증평론이라 한다. “5. 4”시기 호적이 서방의 실험주의를 인입하여 이 평론방법을 새롭게 발전시켰다. 문학평론방법으로서는 국한성을 가지고있는바 기계적사유를 운용함으로써 근근히 고증차원에 머문다. 7) 발양식평론 작품의 어느 한점 혹은 몇개점을 틀어쥐고 평론가 자신이 철학, 정치, 론리 및 사회관점 등을 동원하여 발양하는것이다. 감상식평론은 작품의 내용을 바싹 에워싸고 자기 감수를 펴나가지만 발양식평론은 가끔씩 작품을 떠나 의론을 펴나가는 그 발양성에서 자기의 평론개성과 특점이 체현된다. 문본하나만 붙들고 고립적으로 연구분석하려는 페단이 있다. 그만큼 문학현상과 그것의 정신적가치에 대해 바람직한 평가를 줄수 없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성음, 의의, 이미지와 은유, 상징과 상징관계 형식과 기교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수 있다. 8) 쟁명형 쟁명형의 평론은 예술의 진리를 탐색하기 위해 진행하는 리론상의 쟁론과 변론이다. 부동한 의견을 발표하는것이 주요특색으로서 비평과 반비평을 포괄한다. 문예쟁론은 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론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로신은 “문예는 반드시 평론이 있어야 한다. 만약 평론이 틀렸다면 평론으로 반박해야 한다. 그래야 문예와 평론이 함께 전진할수 있다.”고 가르치고있다. 로씨야문학사에서 뚜르게네브의 ≪전야≫가 발표되자 평론가 도브롤류보브는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뚜르게네브는 도브롤류보브의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반대해 나섰다. 당시 주편이였던 네크라쏘브는 “도브롤류보브의 진리는 뚜르게네브에 대한 우의보다 더 진귀하다.”고 하면서 ≪진정한 대낮은 언제 오는가?≫라는 도브롤류보브의 평론을 그냥 발표하였다. 뚜르게네브의 진정한 평론가의 자세가 돋보이는 전형적인 례증이다. 과학적평론은 인상식평론의 주관주의, 판단식평론의 절대주의경향에 대립하여 나온것이다. 과학적평론은 객관주의, 상대주의로부터 출발하여 대량적인 과학법칙 혹은 리론, 특히는 사회과학, 심리학 및 생리학, 진화론 등 리론과 지식을 인입하면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거시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한다. 2. 전통적평론의 방법 “방법”이란 이 말은 희랍어에서 왔는데 최초의 어원학적의미는 모종 길을 따라 전진한다는것이였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방법이란 문학연구에서의 인식도경, 리론, 학설 및 구체적으로 착수하는 각도, 연구, 수단, 순서를 말한다. 중외문학평론사상에서 영향력이 큰 평론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다. 1) 사회, 륜리적방법 문학작품의 해석, 평가에 있어서 사회륜리적방법이란 작품을 사회적, 경제적, 륜리적, 문학적환경과 관련시켜 리해하는 방법으로서 작품의 원천을 중요시하는 력사주의적방법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사실 문학작품의 분석비평에 있어서 작품의 사회적사실은 력사적성격이 전제되여야 제대로 해명될수 있는것이기때문에 이 두가지 측면은 서로 분리할수없이 밀접히 련계되여있다. 사회, 륜리적방법은 단순한 사실의 확정보다는 작가의 전기적사실이나 그의 사회적위치, 그리고 작가의 륜리의식과 문학작품의 사회적기능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다시 력사적으로 고찰해서 궁극적으로 작품과 사회와의 상관관계와 그 내재적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이런 륜리도덕평론은 몇가지 특점을 가지고있다. 첫째로 각계급, 각민족, 각사회형태가 모두 도덕으로 사람들의 의지행위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국가 혹은 군체의 륜리관계를 규범화하고 생존과 발전을 수호하려 하기에 륜리도덕평론은 력사적인 원견성을 가지게 된다. 둘째로 륜리도덕평론의 내함과 도덕표준은 사회발전과 사회관계의 변화에 따라 변화발전하며 계급, 민족의 부동함에 따라 차이가 있고 륜리도덕평론모식은 형식상 영구성적인듯 하지만 내용상에서는 변화하는바 이는 륜리도덕평론으로 하여금 일종 모식으로 되여지게 하고 또한 다양성을 가지게 한다. 셋째로 륜리도덕평론의 력사성과 다양성으로 하여 작품이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를 평가할 때 선명한 차이성 심지어 적대성까지 가지게 한다. 중국은 오래동안 유가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시경≫에 대한 평론이 륜리평론이였다고 단정할수 있다. 2) 사회, 력사주의비평방법 작가와 작품을 력사배경, 사회환경, 작가의 전기 등 문학작품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체계와 관련시켜 다루는 방법이 력사주의비평방법이다. 한 작품을 력사적사건으로 취급하는데에서 문학연구의 력사적방법이 시작된다. 이 비평방법은 일찍 산생되였고 영향면도 큰 비평모식이다. 기본원칙은 작품을 분석하고 리해하고 평가할 때 반드시 그 작품의 시대배경, 력사조건 및 작가의 생활경력 등을 작품과 련계시켜 고찰하는것이다. 문학의 기원, 특히 한 쟝르의 발생, 변천사는 력사주의비평가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발생사평론이라고도 한다. 만약 해방전 조선문학작품속에서 가능껏 일제에 대한 저항의 낌새를 들추려한다면 력사비평의 한가지 방법이지만 발생론적오유에 빠지고 원인과 환경이 같으면 결과(작품)도 같은가? 하는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다. 문학작품보다 외적요소에 치우침으로써 결국 비평의 힘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 3) 심미비평 심미비평은 문학작품의 미적구성 및 심미가치에 착안하고 작품의 정감이입 등 효과성과 오락성, 유쾌성 작용을 강조하며 문학작품을 진실, 선량함의 기초상에서 그것을 초월한 초공리적인 심미대상으로 본다. 그리고 작품이 독자에게 산생시킨 미감정도의 강약과 장구성, 잠시성과 련계시켜 우렬, 득실을 평가한다. 서방에서 심미비평의 립법자는 칸트였다. 왈드를 비롯한 유미주의자들은 당시 세인들이 경악할 예술주장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다음같은것들이다. ㄱ) 예술과 자연: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것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인상파화가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런던의 안개를 알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ㄴ) 예술과 인생: 예술이 인생을 모방할것이 아니라 인생이 예술을 모방해야 한다. 그는 인생이란 불완전하고 추악하지만 예술은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ㄷ) 예술과 도덕: 예술과 도덕은 관계없다. 예술가는 오직 미를 추구한다. 죄악과 미덕은 예술의 원료라고 하면서 “일체 예술은 모두 도덕적이다.”라고 역설했다. ㄹ) 예술과 시대: 예술과 시대는 대항적이다. 예술은 오직 자신의 미를 표현할따름으로서 시대를 표현하는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ㅁ) 예술과 비평: 비평가는 예술가와 같다. 칸트는 “가장 완미한 비평가는 본질상에서 순수주관적이여야 한다. 그것이 필요한것은 그 자신의 비밀이지 몸밖에 비밀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런 주장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공리주의와 도덕주의의 공제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3. 평론과 문학의 교류 평론과정에서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즉 종적으로 전통적인 발상법과 횡적으로 외래적인 발상법의 교차관계, 모순관계 또는 종적으로 각 시대의 시와 소설에서의 발상법과 종횡적인 관계를 고찰할 때 새로운 내재적체험과 체험의 력사적기반으로서의 전통의 존재와 긍정부정의 문제를 회피할수 없다는것이다. 평론작업에서 동시적으로 부닥치는 종적인 고민과 횡적인 고민과 선택이야말로 평론의 기초가 되는것이다. 우리가 오래동안 지니고 내려온 경화된 고유의 사고방식과 외래문화와의 충돌, 사회현실과 개체의 리해관계 등 여러가지 문제가 평론가앞에 제기된 과제이다. 지금 중요한것은 감성을 회복하는것이다. 더 잘 보고 더 잘 느끼게 하는 평론이 요청된다. 평론의 임무는 작품의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것이 아니며 작품속에 있는것 이상의 내용을 짜내것이 아니다. 환언한다면 평론은 작품으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훨씬 더 실감이 나도록 인도하는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지 아카데미즘식의 리론강의가 되여서는 안된다. 한부의 문학작품에 대한 접근방식과 리해의 폭이 중간에 끼여든 평론문으로 하여 외곡되고 변형될수도 있는데 그런 평론은 아니하기만 못하다. 무릇 평론은 용속사회학경향을 극복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런 평론은 문학작품을 성음요소, 의의, 이미지와 은유, 상징성, 형식미와 기교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 평가하여 독자의 리해를 도와주어야 바람직하다. 례를 들어 말해보자. 시인 김소월은 꽃과 풀과 산이나 사랑을 많이 노래하였는데 얼핏 생각하면 화조월석에 음풍영월로 소일한 한적한 시인으로 여길수 있다. 그러나 기실 시인의 창작은 당대의 조선인민의 암담한 비극적운명이 빚어내는 사상과 정서를 다면적으로 표현하고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김소월과 조국의 자연이 상봉함으로써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게 되였는데 시인이 조국의 자연을 자연그대로 노래하였기때문이 아니라 당대 조선인민의 사상ㅡ정서적감정의 운동을 자연을 통하여 진실하게 노래하였기때문이다. 피상적으로 감지한다면 그의 시에서 시적형상은 주요하게 집과 고향, 님과 조국을 잃고 방황하는 막무가내한 형상이다. 례하여 ≪님에게≫, ≪초혼≫, ≪님의 노래≫, ≪그리워≫ 등 사랑을 노래한 시들에서 “님”을 자칫 단순한 님으로 파악할수 있다. 그러나 상징이미지에서 보면 사랑을 노래하면서 “님”에 대한 사랑이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치달아올라 서정세계에서 몸부림치며 피맺힌 ≪초혼≫에까지 치달아오른것으로 인지하여야 시적이미지를 깊이 새길수 있다. 련계성으로 말하면 문학평론과 문학감상은 모두 문학작품에 대한 창조성적인 열독이고 리해이며 평가이다. 그러나 량자는 대상범위, 접수특징과 지식배경 등 방면에서 다르다. 문학접수의 대상은 문학작품에 국한되고 문학평론은 작품을 주요 대상과 기본출발점으로 한다. 문학접수에는 개체성이 두드러지지만 문학평론은 일정한 정도에서 사회성접수이다. 문학감상은 문학평론의 기초이며 전제이다. 로신은 “시는 철학과 지력으로 깨칠수 없다. 감정이 이미 얼어붙은 시인에 대해 왕왕 오유적인 판단을 내리고 간막이밖에서 야유한다.”고 무책임한 평론가에 대해 힐난한바 있다. 평론가에게 있어서 작품은 실질상 순전히 객관의의상에서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체험, 가치관념 등 주객체의 공동체이다. 4. 문학리론연구의 방향 모든 문학리론은 각각 저마다의 립각점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시된것이기때문에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상이한 해석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김소월의 시 ≪산월화≫는 력사주의적관점에서 볼 때 조국의 주권을 박탈당한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소극적저항의식을 노래한것으로 풀이될수도 있고 형식주의적관점에서 볼때에는 시인이 일상생활에서 느낀 사사로운 감정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한편의 소박한 서정소곡과 같은것으로 풀이될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각을 복잡하게 이끄는 이러한 문학리론들이 어쩌면 비평의 다양성을 부여하게 된것인지도 모른다.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각 문학리론들은 저마다 불완전하고 편협한것이라 하더라도 문학의 본질과 기능 및 구조에 관한 개념들을 제공한것들로서 문학리해와 감상에 나름대로 이바지하였다. 중요한것은 이렇듯 다양한 문학리론들을 단일한 한개의 론의의 평면우에 옮겨놓고 종합적으로 체계화할수 있는 좌표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리고 각 리론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식별하고 계통별로 분류함으로써 문학연구에 온갖 리론이 고루 적용될수 있는 공통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에이브럼즈는 예술가, 작품, 우주, 청중이라는 네개의 좌표를 설정한 다음 이것들의 상호관련을 통해 네개의 리론체계가 형성되였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을 빌면 문학작품을 그 제재가 되는 우주와의 관계속에서 해명하려는것이 모방론이고 그 향수자가 되는 독자와의 관계속에서 해명하려는것이 효용론이며 그 제작자가 되는 예술가와의 관계속에서 해명하려는것이 표현론이다. 현대의 비평정신은 전통적비평정신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있다. 이를테면 시의 언어는 아름답고 풍부해야 한다고 인정하였으나 현대예술은 종래의 미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파괴한다. 미라고 할수 없는것이 예술에서 추구된다고조차 할수 있을 정도이다. 미란 그저 단순히 언어를 교묘하게 조합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것으로 끝날수 없을 만큼 현대는 복잡화되여있다. 평론가는 작품 스스로 빛을 내는 반짝임 그 자체를 리해하는 일, 그것이 작품을 경험하는 일이다. 평론가의 평론의 투명성은 독자들의 생생한 심미경험을 해석해주면서 그에 부합되여야 한다. 결국 독자들과의 제2차 담화를 어떻게 준비할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평론은 평론가의 선택이지만 다음과 같은 방면에서 문학흔상을 초월한다. 첫째, 대상성에서 초월성이 표현된다. 둘째, 접수미학층차에서 표현된다. “내가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말은 다만 식단, 가육, 준마, 사냥개…등에 소급될 때에라야만이 가능하게 위신이 설것이다.” 이 말은 평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다. 셋째, 문학접수연구는 심미경험 혹은 예술심리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진행된다. 평론에서 중요한것은 감성을 회복하는것이다. 더 잘 보고 더 잘 느끼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평론의 가치는 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있는것 이상의 내용을 짜내고 가미하지 않는데서 진실하게 실현된다. 평론의 기능은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것이다.
38    제3장 문학평론 제1절 문학평론의 기능 댓글:  조회:4516  추천:16  2007-09-16
                                      제1절 문학평론의 본질 1. 평론의 함의 평론(비평)이라는 말은 희랍어와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있다. 희랍어 “식별, 구분, 분할하다”의 뜻을 지니고있고 라틴어 “재판관, 심판, 감정가”의 뜻을 지니고있다. 문학평론을 정의한다면 문학의 본질적기능, 종류,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해설하고 평가하는 일체 문학행위라고 말할수 있다. 문학평론은 대체로 작품에 대한 해설과 평가를 가리키지만 동일한 성질의것은 아니다. 해설이 작품의 내용의 심층적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이라면 평가는 그 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얼마만큼 가지고있는가를 검토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전자는 알게 하는 일에 속하며 후자는 가치판단에 속하는 개념이다. 해설은 작품과 인과관계에 있지만 평론은 작품해설에 머물지 않고 도리여 거기서 출발하여 명확한 가치판단으로 끝난다. 평론가의 선험적인 문학적체험을 전반적인생경험과 련계시키면서 적극적인 인생태도를 세우는 그 자체가 평론의 가치를 포함한다. 평론은 후천적으로 문학창작에 봉사하지만 종속관계가 아닌 독립형태로서 그 존재리유는 평론대상에서 기인된다. 한 작품이 명성을 떨치는가 못하는가는 많은 경우 평론가에게 달린다. 이처럼 동시대의 가장 우수한 문학작품과 평론가사이에는 숙명적인 인연이 있다. 평론형식은 우연한 착상에서 결정되는것이 아니라 평론대상의 형식에 의해 결정된다. 평론은 평론관점에 의해 주관주의평론, 객관주의평론으로 나누게 된다. 주관적평론은 순수 평론가 자신의 취미와 기질, 문학소양에 의하여 작품에서 받은 감응을 중요시하는 평론이고 문단평론, 취미평론, 인상평론 등은 주관주의평론이라고 하는데 문학 감상차원의 작업이라 할수 있다. 객관적평론은 미적흔상대상을 설명함으로써 독자의 리해를 돕는데 있는바 작품을 리해하고 설명할 때 어떤 일정한 관점을 미리 설정해놓고 그 관점을 자대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작업으로서 그만큼 비개성적이다. 문학평론은 기타 학설처럼 자재적대상이 아닌 정신산품이며 언어를 존재형식으로 한다. 2. 평론의 기능 평론은 새로운 문학리론을 정립하고 작가의 창작활동을 고무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체르늬쉡쓰끼는 “평론의 사명은 우수한 독자의 의견을 표달하는것”이라고 했고 뿌쉬낀은 “문학평론은 문학작품의 미와 결점을 비평하는 과학”이라 하였다. 로신도 문학평론의 기능을 두고 “비평은 반드시 잘 된점은 잘되였다 하고 나쁜것은 나쁘다고 해야 비로소 작자에게 유익하다.”고 기치선명하게 진술하였다. 평론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밝힌다. 평론가는 문학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고 작품을 옳바로 평가함으로써 작가와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할수 있게 하는 구실을 하며 나아가서 작가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의미까지도 추출해낸다. 문학평론을 “제2창작”이라고 하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평론은 추상성을 가진 계통성적인 과학인식활동이다. 평론가는 론술의 정확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철학, 정치, 도덕, 문학, 미학 등 관점을 일정하게 운용하여 작품의 언어기교, 내용선택, 결구 등을 분석하고 대조하고 귀잡총화하며 작자의 생활경험 및 그가 처한 시대의 사회문화에서 증거를 찾기도 한다. 문학평론은 사회비평적인소를 포함하지 않을수 없다. 평론가는 문학작품이 어느 정도로 사회생활의 본질과 시대정신을 반영했는가를 고찰할뿐만아니라 왕왕 작품자체를 벗어나 사회생활도 평론한다. 례하면 벨린쓰기는 뿌쉬낀, 고골리 등 작가들의 창작득실에 대해 평가할 때 로씨야 농노제도에 대해서도 심각한 해부를 들이댔다 문학평론은 동시에 또 문학활동의 의의와 가치를 규명함으로 사회비평과 융합된 미학비평이 되기도 한다. 문학평론의 방식을 심미체험, 리성분석, 가치판단 세마디 말로 개괄할수 있다. 평론은 새로운 문학리론을 정립하고 작가의 창작활동을 고무하여 자각시키여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도 가지고있다. 한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가치판단은 그 작가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체호브도 처음엔 지방신문에 풍자소품이나 발표하는 무명작가였다. 그런데 평론가였던 그리고리예위치가 체호브의 작가적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축하의 편지를 써보냈다. 그의 축하편지에 감동된 체호브는 이렇게 답장을 썼다. “당신은 당신의 편지가 나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작용을 일으켰는가를 능히 판단할수 있을것입니다. 당신의 편지는 그 어떤 장금보다 귀중하며 한 초학자로 말하면 현재는 물론 장래에 있어서도 일종의 보수로 될것입니다. 나는 다만 반복할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장려는 정말 저를 진동시켰습니다.” 체호브에 대한 그리고리예위치의 원견성있는 평가와 고무격려가 세계적인 단편소설가를 낳았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체호브는 “평론가들이 결핍했던탓으로 많은 생명들과 예술작품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소실되여버렸다. 우리들의 시대에 훌륭한 평론가가 없으므로 수많은 문명적인것, 수많은 예술품들이 매몰되였다.”고 개탄한바 있다. 사실 일부 훌륭한 문학작품들이 해빛을 금방 보았을 때 무참히 압살당할번했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례하면 고골리의 중편소설집 ≪미르고로드≫와 ≪소품집≫이 방금 출판되였을 때 작품에서 로씨야 농노제의 반동본질을 첨예하게 폭로비판하였기에 한무리 반동문인들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심지어 “자연주의문학”이라고 조소를 받기까지 하였다. 고골리가 어쩔줄 몰라서 불안해 할 때 탁월한 평론가 벨린끼가 용약 맞받아 나서서 세계적인 문학평론의 로작으로 자리매김한 ≪로씨야의 중편소설과 고골리씨의 중편소설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벨린쓰끼는 고골리 창작의 사상예술적성취를 높이 평가하고 그의 사실주의방향을 충분히 긍정하였으며 뿌쉬낀과 나란히 놓았다. 그가 고골리의 창작열정과 작품을 유력하게 보호하여 나섰기에 작가로 하여금 그후 ≪죽은 넋≫, ≪검찰관≫같은 불후의 명작을 내놓을수 있게 했던것이다. 3. 문학평론의 임무 문학평론은 문학작품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들 즉 아름다운것과 추악한것이나 그것에 관한 판단, 해석은 작품과 인과관계에 있지만 작품해석에 머물지 않고 거기서 출발하여 명확한 가치판단에 이른다. 문학평론의 성질이 자체의 네가지 임무를 결정한다. 1) 작품평론을 한다. 평론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문학작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평론하는것이다. 이에 뿌쉬낀은 “문학평론은 문학작품의 미와 결점을 제시하는 과학”이라 하였다. 문학의 백화원에는 아름다운 꽃송이도 있고 잡초도 있을수 있다. 만약 평론가가 제때에 잡초를 매버리지 않는다면 향초가 잘 자랄수 없다. 어떤 때는 한 작가에게서 향초가 꽃핀후 또 이런저런 잡초도 자랄수도 있다. 례하면 고골리는 일계렬의 훌륭한 반농노제도의 작품을 써내여 벨린쓰끼의 긍정을 받았지만 후에 ≪벗에게 보낸 서신집≫에서는 농노제를 옹호하는 착오적경향이 표현되였다. 벨린쓰끼는 이에 추호의 사정도 두지 않고 견책의 채찍을 들었다. 문학평론은 향초를 가꾸고 잡초를 매버리는 동시에 창작과 감상도 지도해야 한다. 작가도 자기의 창작품을 정확하게 대해고 평론가의 평론과 조언에 허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학가 디드로는 “한 극작가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평론가가 수요된다. 만약 그보다 더 천재적인 명실에 부합되는 평론가를 만난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할것이랴!”라고 말한바가 있다. 벨린쓰끼는 “비평가와 독자는 담화하는 두사람이다. 즉 그들은 담화를 위해 선정된 그 대상의 의의를 사전에 약속하고 동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서로 리해하기 곤난할것이다. 당신들은 한 작품을 분석하고 창작방법들에 대하여 엄숙하게 론의하며 이 법칙들을 분석대상인 작품에 적용하고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립증할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은 당신들의 비평을 읽고 황홀해져서 당신들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고 정말 미학적법칙의 조항들이 정확히 적용되였으며 작품은 잘 되여있다고 보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앓은 결과를 초래할것이다. 즉 당신들의 비평을 잊어버리기도전에 당신들이 찬양한 그 작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기때문이다. 그것은 당신들의 분석대상인 작품이 미문학(美文学)작품이 아니라 속임수의 잡화와 같은 작품이기때문이며 미학적형식은 있는듯하나 미학적생활정신이 없었기때문이다.”라고 쓰고있다. 고대희랍의 미학가 하라스는 “창작을 ‘칼’이라면 평론은 ‘숫돌’이다. ‘숫돌’은 비록 자기절로 움직일수 없지만 능히 강철칼을 날카롭게 날을 세워줄수 있다.” 라고 정채로운 비유를 하였다. 문학평론은 독자의 감상지도에서도 십분 중요하다. 문학평론이 문학흔상지도에서 노는 구실은 주요하게 세개면에서 표현된다. 우선 작품선택에 도움을 주며 가치관념상에서 독자를 이끌어주면서 위해로운 작품에 붉은등을 달아주어 독자들에게 주의를 상기시킬수 있다. 2) 문학평론은 시각차이을 조절해준다. 작자와 독자의 시각차이는 문학감상에서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한것은 작품의 시각감만이 독자들의 열독흥취를 격발시킬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창작과정에 세계에 대한 리해방식이 독특할것을 극력 추구하게 된다. 서방의 현대주의문학에서 소위 “낯설게 하기”수법이 바로 이런 심리수요로부터 창상된 표현수법의 일대 혁명이다. 다른 한방면으로 독자의 기대시야가 작자의 시야와 융합되여야 감상활동이 효과적이지만 반대로 량자의 시각차이가 너무 현격하면 접수심리상 충돌이 생기여 문학재창조활동에 참여할수 있는 조건인 리해성과 가독성이 거부당하고만다. 이런 시각차이의 이률배반현상을 해결하는것이 평론가의 두번째로 되는 공정성을 요구하는 임무이다. 평론가는 작가와 일반독자, 창작과 감상자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해하여야 한다. 평론가 자신이 독자이기도 하므로 그의 사명은 “우수한 독자의 의견을 표달하는것이다.” 평론가는 독자들에게 예술상에서 성숙되고 재창조열정을 지니도록 요구하는 가장 리상적인 표달자로 충당되여야 한다. 3) 문학평론은 문학발전의 개척, 혁신을 추동한다. 문학평론가는 구체적작품을 분석, 평가해야 할뿐만아니라 창작경험을 총화한 기초상에서 한개 시기의 문학발전과 연변과정에서의 일부 중대한 문제를 거시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이를테면 한개 시기의 문학사조의 특점, 스찔과 류파의 형성 및 연변, 창작방법과 제재선택, 민족전통의 계승과 외래영향 등이다. 례하여 디드로의 희곡평론은 자산계급희곡에서 “엄숙극종”의 건립에 직접적인 기초작용을 놀았다. 벨린쓰끼, 체르늬쉡쓰끼의 평론중에서 사실주의, 전형, 문학의 인민성과 민족성 등 문제에 대한 론술은 로씨야 19세기 비판적사실주의의 발전과 번영을 안아왔다. 벨린쓰끼는 고골리의 중편소설을 평론하면서 이렇게 주장하고있다. “우리에게는 미에 대한 개념들이 불완전하고 취미가 아직 설익었기때문에 우리의 비평은 그 수법들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구라파적인 비평을 피해야 할것이다. 우리 나라의 한가한 몇몇 미학가들은 미의 법칙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마치 수학처럼 정확히 규정되여있는듯이 말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이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 말에서 평론가들은 자기의 진정한 임무가 무엇인지 알수 있을것이다. 4) 문학현상에 대한 론쟁을 전개한다. 문학이 발전하려면 낡은 문학관념과의 쟁론은 불가피하다. 다른 한면으로 동시대의 각종 문학사조, 류파지간에도 각자의 문학관념, 미학리상을 선양하는 쟁론들이 전개된다. 문학평론이야말로 이런 쟁론의 유력한 무기인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평론이 인맥을 따라 비실제적으로 올리추는 수단으로 되지 말아야 비판성이 공정하게 되고 효력을 볼수 있다. 중국의 경우 한시기 “좌적”영향으로 말미암아 문학평론은 “계급투쟁의 도구”로, 문화사업일군들을 정치적박해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였다. 문학평론은 자기 본연을 잃고 학술문제와 정치문제를 뒤섞어가지고 작가들을 한몽둥이에 때려잡는 참담한 문화비극을 산생시켰다. 문학은 자유정신의 표현이요 탐구적정신의 소산이므로 구속을 싫어한다. 그리하여 정치나 시대를 초월하여 그것을 자기의 법칙밑에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즉 선전이나 교화의 역할을 버리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하기 위해 정치나 사상의 하녀가 되지 말아야 하며 사상선전과 계몽의 목적이 작가의 상상력속에 용해되였다가 감정(정서)의 옷을 입고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작품에 고유한 법칙에 따라 한 작품이 얼마만한 선전성과 계몽가치를 가졌다거나 어떤 사상과 의도를 가졌다거나를 측정하고 지적할것이 아니라 작품에 나타난 사상과 현실이 작가의 상상력과 감정속에 얼마만큼 용해되였으며 그것이 독자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면서 작가의 의도가 얼마나 실현되였는가? 그 결과 작품이 얼마나 독자를 유익하게 하였는가를 말해야 할것이다. 진정 훌륭한 평론은 창작방법을 가르치고 창작과정을 감시하는 대신에 작가의 창작력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그에 필요한 분위기와 신념의 계렬을 준비해야 할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작가의 창작능력의 건전한 성장과 발현을 볼 때 비로소 평론의 지도성이 발생한다. 4. 문학평론의 기준 문학평론의 기준은 력사적이고 상대적인 평가척도일뿐 절대적선험이 아니며 불변의 리론모식도 아니다. 로신은 “우리가 일찍 문학비평사에 일정한 테두리가 없는 평론가를 본적이 있는가? 없다. 테두리가 아니면 진실의 테두리거나 전진의 테두리였다.…우리는 그에게 테두리가 있다고 비난할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의 테두리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것만 평론할수 있을뿐이다.”라고 했다. 공통적인 문학평론표준을 다음 몇가지로 설정하고있다. 1) 진실성기준 문학예술에서 심미가치가 제1요소이지만 반드시 진, 선, 미의 기초이며 진실이 곧 미이다. 여기서 진실은 일상생활에서의 론리로 평가하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성표준에는 세가지 내용이 포괄된다. 우선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고 감상자가 사회생활의 본질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도록 독특하게 격발했는가? 사회생활의 절실한 체험을 표현했는가? 감상자들이 열정적으로 대상을 포옹하고 동감하고 체험하고 재창조하고 자연스럽고 진지한 감정으로 이끌어주는가? 하는 등 일련의 문제들이다. 문학평론은 하나의 작품이 좋다, 나쁘다로 금을 그으면 작업이 끝나는것이 아니라 왜 좋은가? 왜 나쁜가를 판단적근거로 세시하는 작업으로서 평론가가 초점을 사회현실에 둘것인가? 독자에게 둘것인가? 작가에게 둘것인가 아니면 하나의 실체로서의 작품자체에 둘것인가에 따라 그 평가는 다르게 나온다. 한부의 문학작품을 사회현실(세계)과 인간의 삶의 현장에 대한 조명, 재현으로 보며 그것의 진실성 여하를 론해야 할것이다. 가령 한국작가 조정래의 대표작《태백산맥》을 평가한다고 할 때, 소설이 당시 조선반도의 사회상과 전쟁의 재난속에서 특이하게 영위된 인간의 삶의 양상을 얼마나 핍진하고 실감나 게 재현했는가에 가치척도를 둘 때 곧 진실성이 기준이 되는것이다. 작가 조정래는 리념투쟁의 필연적결과물인 비인간적인 전쟁극을 다루면서도 자기 처하고 있는 국가, 리념의 속박을 념두에 두지 않고 장가적인 안목으로 현실을 투시하고 인문주의적인 자세로 사건과 인물들을 다룸으로써 진실성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그리함으로써 독자세계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2) 경향성기준 경향성을 문학평론의 한개 기준으로 삼는것은 우리들의 문학평론활동이 현실적사회공리성의 목적으로부터 문학작품의 가치, 의의를 유익한 면에서 판단할것을 요구하기때문이다. 이 공리성을 우리는 “착한것”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진실이 곧 미일진대 착함도 곧 미의 전제이자 미자체가 되여진다. 여기서 착한것인즉 인류와 인류진보에 유리하고 유용하며 유익한것을 가리킨다. 웰렉은 자기의 “문학의 리론”에서 진실성기준, 효용성기준, 독창성기준은 외재적평론의 기준에 속하고 복잡성과 일관성 기준은 내재적기준에 속한다고 규명하고있다. 3) 예술규준 문학평론에서 대상의 예술미에 대한 분석평가는 곧 예술가치에 대한 발굴이다. 문학평론 예술성규준을 다음의 두개방면에서 체현할수 있다. 우선 문학작품의 독창성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이다. 독창에는 제재선택, 예술구상, 표현 수법, 언어풍격 등 면에서의 독특성이 포괄될뿐만아니라 생활에 대한 리해와 생활을 발굴한 예술시각의 독특성도 포함된다. 다음 예술매력은 감상자들을 매료하고 감동시킨 거기에서 실증된다. 때문에 문학작품의 심미가치판단에서 작품의 감화력을 우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문학작품의 가치실현에 관한 문제이며 나아가서 문학의 공리성문제이다. 공통적인 평론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정체성원칙: 평가의 정체성이란 우리들이 문학작품과 문학현상에 대한 평론에서 반드시 정체적으로 착안하고 대상의 각개 구성요소 및 내재련계를 계통적으로 고찰, 파악하면서 대상의 가치와 의의를 전면적으로 평가할것을 요구하는 원칙이다. “어떠한 개인이든 문학상의 가치는 자기가 결정하는것이 아니라 오직 정체적비교속에서만 결정된다.” 이 말에는 두개층차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엽적문제를 캘것이 아니라 그의 정체적창작을 보아야 한다는것이다. (2) 동태성원칙: 문학현상자체가 부단히 발전변화하는 개방식계통이다. 분석의 동태성원칙은 구체대상에 대한 평가에서 그 가치, 의의를 발전적안광으로 볼것을 요구하고있다. 문학에 대한 어떠한 해석, 결론이든지 계단성의의를 가질수밖에 없다. 례하면 중국에서《홍루몽》에 대한 연구는 하나의 학문으로서 “홍학”으로까지 부상되였는데 사회문화적가치, 문학사적의의 등등에 론술들은 부단히 파생된 현상 그에 반하여 한시기 중국의 억천만 독자들의 가슴을 진동시켰던 “상처문학” 은 지나가버린 지진처럼 잠잠해지고 시대적리정비로 자리매김했던 그 문학의 거대한 영향은 계승이 단절된 현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3) 창조성원칙: 평론가가 자기의 독특한 심미시각과 심미경험으로써 객체를 창조성적으로 접수하고 재창조하고 대상속에서 독특한 발견을 하는것이다. 기계적으로 모종 평론표준에 깎아맞추지 않으며 열정적인 참여와 독립자주적의식으로 대상자체의 궤적을 탈리하지 않는것을 전제로 리론과 주장 및 심미취미를 침투시킬것을 요구한다. 엘리어트는 “내가 말하는 평론의 의미는 물론 예술작품에 대한 문자로 표달된 평론과 해석을 가리킨다. …평론은 반드시 목적이 명확해야 하는바 솔직히 말해서 작자에게서 해탈되여 독자의 감상능력을 규정해 주어야 한다.”라는 정채로운 론단으로 평론가들에게 좌표를 세우주고있다.  
37    제3절 독자와 문학 댓글:  조회:4252  추천:24  2007-09-16
                                      제3절 독자와 문학 1. 독자와 문학 독자란 작가사상의 수신자이다. 독일의 교육연구가 미하엘 바인리히는 문학작품을 작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독자의 관점에서 관찰할것을 강조하면서 “독자들의 기대가 문학작품의 구성요소이기때문에, 그리고 문학은 독자와의 대화에서 존재하기때문에 문학사는 바로 이 대화의 력사”가 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학사회학에서 문학과 사회관계를 세가지로 구별하고 관찰하였다.    첫번째는 작가와 그가 속하는 사회관계이다. 작가가 사회의 어느 층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작가의 리념과 더불어 작품속에 반영된다. 두번째로 문학작품과 독자도 포함한다는것이다.  그런데 독자와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례컨대 작가가 작품을 쓸 때 마음속으로 예측하였던 독자 즉 대화의 파트너와 실제 독자는 일치하지 않을수 있는것이다. 독일의 프란츠 카프카는 ≪성≫, ≪아메리카≫ 등 대작을 썼을 때 어떠한 가상의 독자도 없었다. 자기가 죽은 다음 원고들을 불살라버리라는 유언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그가 죽은후 그의 유언을 어기고 출판을 하는데 뜻하지 않았던 전세계의 독자를 확보하게 되였다. 또한 로신의 경우에는 1918년에서 1936년 걸쳐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 혁명동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주 소수의 써클을 위한 잡지와 소설집에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던것인데 결과적으로 수천만의 중국인을 위한 저술이 되였다. 중국혁명이 로신의 의도에 호응할만한 능력있는 출판자를 로신의 작품에 제공할수 있었기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속에 반영된 사회현실의 제관계인것이다.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것이냐, 가르침을 주는것이냐? 시드니와 같은 대다수의 르네쌍스 비평가들에게는 도덕적효과가 최종목적이었고 쾌감과 감정은 부수적인것이였다. 그는 “시는 말하는 그림이며 가르침과 즐거움을 주는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좋은 시인은 독자의 요청에 부응하는 시인이다. 독자의 요청을 어느만큼 만족시켜 주느냐하는것이 그 시인에 대한 평가기준이 된다. 시드니의 문학관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철저히 효용론의 립장을 취하고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자기의 교훈을 이야기속에 숨김으로써 “잔인한 악인”까지도 “앵두알을 먹듯이” 저도 모르게 선을 사랑하도록 유도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서사시는 “가치있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신을 가장 불타게 하기”때문에 시의 왕림을 스스로 증명한다. 공자는 ≪론어≫에서 “시 3백편을 읽으면 사특한 마음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 독자를 의식한 말임을 알수 있다. 문학작품의 감동의 효과는 마치 설사약이 위장을 깨끗이 씻어내듯이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어 정화시켜주는것에 비유할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취향도 가지가지, 불만도 가지가지이고 바라는것도 가지가지이다. 열독흥취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라 할수 있지만 독서계의 통일성에는 불안한 인소로서  “기대지평”의 불온정성을 의미한다. 특히 시대의 발전과 문학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학작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며 그때마다 독자들은 텍스트ㅡ문학문본의 새로운 지평에 부딪치게 된다. 독자들의 “친숙한 지평” 과 텍스트의 “새로운 지평”사이의 이런저런 충돌 로 인하여 이른바 “지평의 전환”이 생겨난다. 이러한 지평의 전환은 곧 독자들에게 수용되여 새로운 “기대지평”으로 작가들을 충격하고 무형의 압력을 준다. 그래서 문학관념의 소통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기도 한다. 주제의 적극성이라든가, 사회적가치라든가, 작품의 지적수준이라든가, 질적함량이라든가를 불문하고 결국 재미있느냐? 없는냐? 하는 이률배반적이고 이중성적인 열독취향은 상품화된 문학작품의 가치취향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가치기준도 불가예측이 되게 하였다. 문학작품이 재미있다고 할 때 그 재미란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 지식적유희를 말할것이다. 간접적경험, 감동으로 말할 때 만화를 보는듯 홀가분한 유모아감일것이다. 책을 덮은뒤 무겁고 비장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현시대의 열독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문학은 작가의 상상, 감정을 독자의 상상력, 감정에 호소하고 감동시키는것이다. 2. 독자의 위치 현대비평이 거둔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은 어쩌면 독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던 독자의 위치를 새롭게 자리매김해준데 있다. 독자는 자유로운 신분이다. 문학은 별다른 선택이 없다. 오직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를 열애하는 독자를 쟁취하는 길뿐이다. 문학예술은 발송인에서 접수인으로 일방통행으로 보내지는 소포같은것은 아니라 감정의 소통수단이다. 감정의 통과작용이기때문에 일방통행일수 없듯이 심혼의 울림이 없는 작품이 살아남을수 없다. 흔히 독자는 무서운 군체라고 하는데 작가가 심혈을 쏟아부어 생산한 정신산품ㅡ책을 구매해주는 큰 손이고 열독주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령역에는 작가ㅡ문학이라는 두점과 선이외에 이 량자와 등거리관계에 있는 세번째 점인 독자의 존재를 중시해야 한다. 문학령역에 이 세개의 각색이 곧 “문학의 기묘한 3각지대”를 이루고있다. 물론 작자의 창작과 독자의 열독수요가 이 3각지대에서 주요한 모순으로서 기타 모순과 서로 련관되여있거나 굴절반사가 되여진다. 문학작품은 독자에 의해 진정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작품이 재창조된다. 독서는 텍스트에 의존하며 그 텍스트는 읽고있는 독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어떤 텍스트의 독서내용은 독자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편차를 가지며  동일한 독자라도 상황이 달라지면 동일한 텍스트를 다르게 읽을수도  있다. 작가의 립장에서 본다면 자기의 “정신수출”이 독자의 심령세계에 “침략”이 될것인지 아니면 “문화건설자”가 될것인지는 작가가 수출한 정신의 우렬과 흡인력유무, 유익점, 그에 반해서 독자가 원래 가지고있는 정신상태와 조건, 당시의 정신적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은 독자의 독서행위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샤르트르의 독자론은 그만큼 소홀히 취급하였던 독자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켜준것이다. 문학활동은 작가와 독자의 상호합작관계속에서 진행된다. 독자의 감상에서 정보귀환은 작가의 예술추구에 중요한 참조계로 되며 심지어 일종 고삐가 되여 창작을 제약하기도 한다. 어느 작가는 이렇게 쓰고있다. “작가가 원고지를 펼쳐놓고 창작할 때 미지의 독자의 그림자가 작가의 뒤에 서있으며 작가가 그림자의 존재를 의식하기를 원치않을 때에도 그냥 그의 등뒤에 서있는다. 이 독자는 원고지우에 작가가 볼수 없는, 그러나 마멸해 버릴수 없는 표기를 찍어놓는다.” 아. 똘쓰또이도 “개인의 창작경험에 근거하여 나는 내가 쓰려는 작품의 응당 있어야 할 력량과 질량은 나의 심목중에 제일 먼저 제기되는 독자와 관련된 개념에서 얻어진다는것을 알았다.”고 쓰고있다. 이렇듯 여기에는 상품을 련결점으로 한 량자의 긴밀한 합작이 수요되거니와 전제조건이 있다. 작가는 자기의 정신수출행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독자는 단순히 수동적기능만 갖는것이 아니라 력사형성의 에네르기가 되고있는 점을 전제로 삼아야 하며 문학작품의 력사적생명은 그 수용자 즉 독자의 능동적참여에 의해서 련속성과 재생산성으로 발전할수 있다는 점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따라서 문학의 력사는 작품의 전달기능과 마찬가지로 독자와의 대화적이며 과정적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도리로서가 아니라 정감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3. 독자의 류형 광의적의미에서의 독자는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포섭하고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란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를 말한다. 열독심리에서 착안한다면 능동형, 피동형, 참여형, 구지형, 소일형이 있고 열독효과에서 본다면 일반독자, 초일급독자, 작품의 원뜻을 등진 창조형독자가 있다. 감상수준을 평가하여 경험있는 독자, 리상적인 독자, 유능한 독자, 진부한 독자, 둔감한 독자…등으로 나눌수도 있고 감상기호로부터 우아한것과 통속적인것으로 나눌수도 있다. 여기서 흥미, 환원과 이변, 오해와 공명 등에 층차성이 생긴다. 독자의 층차를 또 제1독자(작자 및 가족, 친우 등)와 제2독자(편집. 출판인)과 제3독자(문학계, 평론계)로 나누기도 한다. 이런 부동한 독자층이 문학활동에서의 참여정도를 결정한다. 여기서는 제4독자층에 대해 연구한다. 이 층차의 독자층은 가장 방대한 구매대오로서 문학에 “명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독자층에 문학형독자층이 따로 있는데 구지형독자를 비롯해서 문학에 매료되였거나 학습하여 장차 문학창작권에 들어서려 시도하는 독자가 들어있다. 다음 비문학형독자군에는 우연하게 혹은 경우에 따라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 “핍박”에 의해 열독하는 독자(광범한 학생층), 소일형, 오락형독자 등이 포괄된다. 이런 분류는 이딸리아 “접수미학” 학자인 모르가리의 분류법에 근거한것이다. 문학형독자군속에도 통속문학독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 부류의 독자들은 생활경력, 경제상황, 정치, 사회지위, 문화정도, 지식결구, 도덕관념, 심리상태, 감상수준 등 제원인으로 하여 문학에 부동한 리해와 평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문학을 실제로 가능케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작가와 독자는 동등한 립장이 된다. 소설가가 없으면 소설독자가 존재할수 없듯이 소설독자가 없으면 소설가도 존재할수 없다. 독자가 문학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이른 현시대가 된것이다. 목전, 인터넷문학이 흥성하면서 인터넷문학이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네티즌들의 열독의식, 열독심리는 “변수”로서 전면적이고 객관적일수도 있고 편파적이고 주관적 일수도 있기에 작가의 주관관념이 독자들의 열독심리, 심미취미와 등호로 성립될수는 없다. 이것은 문화소비에서의 절대현상이다. 4. 작가와 독자 작가와 독자는 비유하건대 기하학상에서 직선으로 련계되는 두개 점이고 사회학이라는 이 망망한 대해속에서 서로 흡인하고 의뢰하는 두개의 마음이다. 싸르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모든 작품은 일종의 부름이다. 쓴다는것은 언어를 수단으로 자신의 기획을 객관적존재로 구체화시켜달라고 독자를 향해 웨치는 행위”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누리지 못하는 삶의 기쁨과 의의, 인격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하여 한평생 혹사한 그런 숭고한 작가들이 많고 많다. 그러한 작가들의 대작들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도 시나브로 심화되고 확충되여 간다. 그들 의 격려에 힘을 입어 우리는 인생의 허무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갈수 있고 삶의 가치에,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눈을 더 크게 뜰수 있는것이다. 위대한 소설들은 인간들의 진정한 적은 자신의 독선과 리기심이라는것을 일깨워주었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삶을 존엄스럽게 해준다는 교훈도 주고있다. 실로 작가들은 슬픔과 절망조차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부분임을 우리들로 하여금 체험하게 한다. 스티븐슨과 동행하면 보물섬에도 갈수 있고 쎄르반떼스를 따라서 돈 끼호떼의 기사수업을 추적하노라면 시대락오자의 참패가 어데서 오고 그 뼈저린 맛을 알게 된다. 발자끄의 ≪인간희극≫속에서 우리는 각양각색의 문명인의 탐욕과 우매와 비틀어진 인격상에 통탄하게 되고 모파쌍의 ≪미모의 벗≫에서 웅성의 잔인함과 리기심을 보면서 몸서리치게 된다. 몰리에르의 ≪따르뜌프≫에서 우리는 위선과 사악의 근원을 보며 인간의 원죄와 추태에 얼굴을 붉히게 된다. 일반독자이든 전업적안광을 가진 비일반독자이든 한부의 책을 읽을 때 그 작품을 쓴 작가와의 한차례 지력겨룸, 사상, 정감의 겨룸, 관찰과 인식의 겨룸, 표달방식과 능력의 겨룸이라 할수 있다. 작가가 각 방면에서 독자의 우위에 있으면 독자는 탄복한다. 이처럼 독자의 기대심리는 중대한것이다. 공명은 문학접수의 고조계단의 특유한 상황으로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강렬한 심령의 반응이며 혹은 동일한 작품에서 산생된 부동한 독자들사이의 심령감응현상이다. 따라서 자연히 작가군과 독자군의 문화반응문제가 뒤따라 선다. 그것의 첫째로 공명대이다. 공명은 문학접수의 고조계단의 특유한 상황으로서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강렬한 심령의 반응이며 혹은 동일한 작품에서 산생된 부동한 독자들사이의 심령감응현상이다. 여기서 두가지 의미에서의 공명이 산생된다. 례를 들어 쉘리의 경우, 당시 영국사람들이 금빛면사포를 쓴 이른바 “도덕”앞에 전전긍긍해 있을 때 쉘리가 일떠나서 그런 도덕의 허위와 잔혹성을 발가놓았다. 그러나 영국사람들이 쉘리에게 안겨준것은 인신공격이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가치의 실현은 하나의 협조적감상과정이 아니라 충돌의 력사이기도 한것임을 충분하게 알수 있다. 단떼의 ≪신곡≫을 두고 맑스는 중세기의 제일 마지막 시인이자 새 세기의 첫시인이라는 영예의 계관을 내려주었지만 너무나 일찌기 발표한 시인의 시대리상, 시인의 정신과 관념은 프로렌스 공민들에게서 얼마 리해받지 못하였다. 1800년이란 세월이 흐른후 랑만주의가 흥기해서야 단떼의 정신이 이딸리아사람들의 심령속에서 부활되였고 그제야 괴테식정신으로 환기되였다. ≪데카메론≫의 작자 보카치오도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세계고전작가의 보좌에 모셔졌다. 상술한바와 같이 작가군과 독자군사이에 문화반응은 심각해질수 있다. 현대주의국가들에서도 작가군과 독자군사이의 관계가 팽팽해졌다. 현대파가 직면한것은 한개 문명의 극적변화, 문화렬변의 시대였다. 례하면 카프카, 유네쓰꾸 등의 작품들은 온작 시련을 거쳐서야 독자들에게 접수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렬차는 달리고 승객들은 부단히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은 시대가 작가들에게 내주는 다할길 없는 숙제로 되고있다. 책은 누군가와 만나야만 살아날수 있다. 그 마법의 주인공이 독자들이다. 문학작품이 잠들어있는 공주라면 독자가 바로 그 행운의 왕자이다. 하지만 아무나 잠자는 “공주를 깨울수” 없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뜨게 할수 있는것은 그처럼 아름다운 공주를 차지할수 있는 자격이 있는 “왕자”의 입맞춤뿐이다. 그만큼 독자와의 문학적대화는 진솔하고 진지해야 한다. 이 점은 작자의 사명감과 더불어 사회적책임성을 규정하게 된다. 검투사가 검으로 말하듯이 작가 는 글로 대화한다. 글의 주재자는 곧 독자들이다. 문학작품이란 작자가 자신의 전부의 능력을 동원한 정신산품이다. 문학예술은 독자의 령혼심처를 울림으로써 더욱 소중하게 되지만 문학의 진동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는 시대변화의 현상으로서 독자들의 탓이 아니다. 과거는 물론 현대에는 더구나 작가의 열정적인 감정의 전달, 확산이 어떻 게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가 하는 독자의 반응이 그 작품의 사활을 결정하게 되 였다. 헤겔은 “무릇 현실은 모두 합리하며 무릇 합리한것은 모두 현실”이라는 쟁의 있는 명제를 내놓았는데 정말로 문학예술을 그저 소일거리로 삼는다면 문학에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조우는 없을것이다. 비유하건대 작가와 독자는 물과 고기의 관계이다. 누가 물이고 누가 고기일가? 량자는 변수관계이다. 작가는 자신이 독자라는 대해속에 하나의 작은 고기라고 생각하면 창작에 근신할수 있고 독자는 자신이 일종 지혜의 집합속에서 정신서식한다고 생각하면 작자가 리해될것이다. 아무튼 작자와 독자는 영원한 파트너이다. 물떠나 고기가 살수 없고 고기가 없는 물은 “사해”이다. 이 점이 오늘날 문학의 삼각지대에 세워진 풍경이다.
36    제 2절 작가의 자아실현 댓글:  조회:4293  추천:21  2007-09-16
                                      제2절 작가의 자아실현 1. 자아실현의 함의 “자아”란 사회심리학상에서는 자아관념, 자아의식이라고 하는데 자기 혹은 타인 및 단체와의 교제중에서 감지나 공제, 나아가서 개체가 자기의 심신활동상태에 대한 감지와 공제를 가리킨다. 근래의 문학리론서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자아개념은 심리학상에서의 개념과 상통한것으로서 작가의 자아는 사회생활에서 작가의 행위방식을 결정한다. 한방면으로는 작가의 일언일행이나 일거일동을 제약하고 공제하며 모종 약속력밑에 잡아둔다. 다른 한방면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작가가 표현한 행위방식으로부터 작가적자아에 대해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의 자아는 자아평가와 다른 사람들의 평가속에서 건립되는것으로서 작가의 사람됨을 판정하는 중요한 표지로 된다. 작가가 일반사람들과 다르다고 하는것은 작가의 자아가 사회생활에서 그의 행위방식을 규정지을뿐만아니라 작가의 인식활동도 결정하므로 작가의 위인과 창작은 불가분리이기때문이다. 작가의 자아본질은 일정한 사회관념이 작가의 몸에서의 내화로서 작가의 성격, 정감 및 문화자질상의 특징을 띠게 된다. 인간의 수요심리에서 가장 높은 층차는 자아실현이다. 예술수요가 바로 자아실현의 표현으로서 인간의 본연이며 실현하고자 하는 잠재력이다. 지난시기문학창작에서 “자아표현”문제는 이단사설로 되였는데 극좌사상으로 작가의 자아표현의 합리성을 부정해온데서 인기된 사상상의 관성이라 할것이다. 자아실현은 문명의 주체의 척도로서 선명한 시대특징을 가진다. 자아실현은 한개 력사적범주이며 또한 한 개체생명의 표준이다. 이에는 두개층차가 있다. 하나는 어느 방면에서 인간의 능력이 미칠수 있는 수준이고 다른 한방면은 본질적력량의 종합적실현이다. 자아실현의 조건은 자아와 환경관계이다. 작가는 자아실현을 수요하고 예술공능도 작가로 하여금 자아를 실현하게 한다. 2. 자아실현의 자세 매 한가지 심미규범에는 모두 주관과 객관 두개 방면이 있는데 미적감수는 창작주체와 심미객체의 관계속에서 산생된다. 때문에 예술미감의 성질은 순수하게 객체의 성질에 속하는게 아니라 량자의 융합에 속하게 된다. 그중에서 주관인소가 주요하고 결정적이다. 레브 똘쓰또이가 “사람들은 언어로 서로 자기의 사상을 전달하고 예술로 감정을 교류한다.”고 했듯이 인간의 정감은 토로를 수요한다. 자아실현의 부동한 수요에서 예술수요가 정감특성을 가지고 있는것은 독특한 풍경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새 시기 문학예술활동에서 주관작용이 극대화되면서 문학창작을 순 자아표현이라는 다른 한 극단에로 나아갔다. 문학창작에서 자아표현의 존재의 보편성 및 그 본질, 자아표현의 객관적필연성과 의의와 역할을 옳바르게 리해하는것은 창작에 선행되여야 할 관념과 태도이다. 고왕금래의 문학창작실제가 시사하다싶이 “표현형식상 부동한 특점이 있을뿐 예술작품이라고 할수 있는 모든 작품속에 작자의 자아표현의 인소가 포함되지 않은것이 없다. 시는 곧  “언지(言志)”라거나 “연정(缘情)” 이라고 한 선인들의 말은 실질상에서 자아표현에 대해 론한것이다. 벨린쓰끼는 “서정류의 시는 주관적, 내재적시이다.”라고 말하고있다. 고대중국에서 가장 긴 서정시인 ≪리소≫가 바로 굴원의 “자아표현”의 걸작이다. 그는 여러방면에서 시인의 자아ㅡ조국을 아끼고 인민을 걱정하고 세속의 질투와 암해를 분노의 목소리로 질타하면서 아름다운 리상을 추구하였다. 두어라!나라엔 알아줄이 없나니/옛서울 그릴것 무엇이뇨? 손잡고 덕정을 베풀자 없거늘/팽함의 거처로나 찾아가리라! (已矣哉!国人莫我知兮,又何怀乎故都? 既莫足与为美政兮,吾将从彭咸之所居!) 시에서 보여주다싶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버려진 몸이 되였어도 시인은 자기의 새명과 일체를 조국과 백성의 운명에 긴밀히 련계시키며 개탄하고있다. 진자앙의 ≪유주대에 올라≫서도 시기를 만나지 못하고 지기도 없이 고립무원한 처지와 인생이 덧없이 늙어가는 비분강개함을 눈물을 머금고 절절하게 토로하고있다. 그러나 고독한 시인의 자아의 뒤에서 빛나는 보다 숭고하고 포용적인 시인의 자태를 볼수 있으므로 시인과 함께 흐느끼고 동정하게 되는것이다. 앞에간 옛사람들 까마득이 사라지고 뒤따르는 사람들도 보이지 아니하니 천지를 생각하며 나홀로 외로이 슬픈 눈물 휘뿌리노라. (前不见古人,后不见来者, 念天之悠莜,独伧然而涕下. ) 이렇듯 예로부터 시작품들에서는 시인의 자아를 표현하고있다. 서정시에서는 시인이 “자아”를 대상으로 하고 주관정서를 특징으로 하기에 작품속에 자아의 표현이 직접적으로 뚜렷이 드러나지만 서사적문학에서는 “자아”는 표현이 더 함축적이고 심각하다. 레닌이 레브 똘쓰또이를 “로씨야의 거울”이라 하였는데 이 “거울”속에는 당시 현실생활의 축영이 비껴있는 외에도 작가의 주관적 인소들도 비쳐있다. 말하자면 “로씨야사회에 대한 비할바 없는 화폭뿐만아니라” “분명”하면서도 또한 “종교에 미친 지주”의 모습이 비쳐있고 다른 한 일면에서는 “사회적거짓과 허위를 반대하는 극히 강력하고 직접적인”작가의 숭고 한 령혼이 비껴있다. 결 과적으로 말하면 작가는 소설로서 자아를 빛나게 실현한것이다. 창작활동에서 주관과 객관, 창작과 생활에 대한 관점과 태도의 부동함에 따라 작품에서 체현되는 “자아표현”도 달라진다. 랑만주의자들은 작작의 주관과 리상이 강조되고 자기가 희망하고 보고싶은것을 표현하며 내심세계의 표현과 상상이 창작에서 노는 구실을 중시하기에 필연적으로 그 표현이 선명하고 강렬할수밖에 없다. 작품속의 인물들은 실제상 작자의 리상의 화신이며 예술형상들은 작가의 주관인소의 직접적인 현연이다. 서방현대파는 객관현실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눈길을 자아세계에로 돌리며 주관적이고 내재적인소를 발굴할것을 강조한다. 그들의 창작은 주관인소의 작용을 극도로 과장하기에 생활실제를 완전히 탈리한 순수의 “자아표현”이 되여 문학예술창작에서 자아표현의 합리한 인소가 반면에로 나아가게 하였다. 사실주의문학에서의 자아표현은 사물에 대한 객관적묘사와 결합되여있다. 문학작품에서의 자아표현은 작가의 자아정신세계의 풍부성과 독특성이 작품속에서의 표현이며 예술창작규률과 련계된 있을법한 현상으로서 주관념원에 의해 전이되는것이 아니다. 괴테는 “예술가는 정체로써 세상과 대화한다. 그러나 이 정체는 그가 자연계에서 능히 찾을수 있는것으로서 그의 마음과 지혜의 결실이다.”라고 쓰고있다. 이른바 “마음의 결실”은 비록 사회생활속에 뿌리내리지만 작가의 정신적창조이다. 예술창작과정에 이런 인소들은 부동한 작용을 하며 창작의 전과정을 제약하며 작품의 풍모, 품격, 가치와 효과를 결정한다. 작가의 자아는 일종 복잡한 정신인소의 총화이다. 그속에는 작가의 세계관, 예술관, 심리, 성격, 정취와 애호, 예술경험과 재능 등외에도 작가의 신세, 경력 심지어 모종 유전과 생리인소까지 포괄되며 예술창작과정에 풍모, 품격, 가치와 효과를 결정한다. 진자앙의 유주대에 올라 눈물을 흘린것이나 림대옥이 지는 꽃을 보고 마음이 찢기는것이나 다 그의 자아와 련계된다. 레브 똘쓰또이는 “작가가 묘사한 사람이 성인이든, 강도이든, 황제이든, 노복이든 우리가 찾아보려는것은 작가 자신의 령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작품속에서의 자아표현은 결코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다. 프로벨은 “예술가는 그의 작품속에 마땅히 하느님처럼 자취를 감추고있으면서도 만능이여서 도처에서 그가 볼수 없는 그를 감수하게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자기 작품속의 인물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자아를 표현한다. 발자끄의 자아가 있었기에 천고절창의 ≪인간희극≫이 있게 되였고 조설근의 자아표현욕이 있었기에 ≪홍루몽≫이 있게 되였다. 작가의 정신세계의 본질로 말하면 작가의 자아를 둘러싸고 건립된 방대하고 다변하는 의식결구로 사회의식결구의 축도로 된다. 괴테는 파우스트에게 세기적인 새 생명을 부여하였고 로신의 자아표현이 있었기에 아Q라는 불행하고 세상과 다툴줄 모르는 인물이 창조되였다. 더 례를 든다면 죠이스가 없었다면 ≪율리시즈≫가 없을것이며 마르쿠스가 없었다면 그의 ≪백년의 고독≫이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3. 자아실현의 가치척도 사람들은 자아표현이 문학예술창작의 보편적규률이라는것을 갈수록 더 공인하고있다. 특히 서정시에서 작가의 자아는 자아표현의 형식을 취하여 개인정감을 토로하는것으로 사회생활을 반영할수밖에 없는데 이에는 작가의 자아의 락인이 찍히게 된다. 작품의 심미가치의 고저는 오직 작가의 자아표현에 독특한 가치척도와 개성척도가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지만 반드시 자아로 관찰하고 체험하고 다른 사람의 자아를 그려냄으로써 다른 사람의 령혼의 전률을 통찰해야 한다. 작가에 의해 나온 타인의 자아는 결국 작가의 자아의 일종 이화이며 작가의 자아에서 파생되여 나온것으로서 공제와 제약을 받는 가상적자아인것이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자아는 작가의 진실한 자아를 핵심으로 하고있다. 작가의 진실한 자아는 정신세계속의 창작의식을 공제하기마련이다. “자아표현”은 예술내용의 주관적정신인소이고 작품속에 반영된 객관사물은 곧 내용의 객관인소이다. 문학내용은 바로 이 두개인소의 통일이다. 그 통일은 절반대 절반의 가하기가 아니라 주관인소의 지배속에 상호침투되여 융합된것이다. 만약 예술작품의 객관적인소를 육체라고 한다면 예술의 주관인소(사상, 경향, 심미관점) 즉 작자의 “자아”는 예술작품의 령혼이다. 만약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문학작품을 창작한다면, 만약 강렬한 주관격정에 시대적냄새가 없다면 작품은 곧 태여나자마자 요절하고 말것이다. 4. 자아실현의 개성과 공성 작가의 자아실현에는 개성과 공성문제가 제기된다. 자아는 주관적특점을 가지고있고 개성특점도 가지고있다. 매 하나의 자아는 모두 하나의 개성으로서 창작개성과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는 내재적근거이다. 이 두가지는 예술창작에서의 “자아표현” 일종 형식이다. 여기서 “강렬한 주관격정”은 예술에 령혼과 생기를 부여하는 자아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다. 그 경우 작가가의 자아는 아름답고 고상하며 미래지향적이고 풍부하고 타채롭고 확실하고 투철한것이여야 한다. “자아표현”은 작가의 자유이고 본능이지만 자기의 신변잡사에 불과한 쇄말주의적(트리비얼리즘)적인 비속하고 소극적인 “자아”는 태생적으로 무가치하고 생명력이 박약하게 된다. “물론 문필활동에 있어서는 기계적인 평균화라든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라든가 하는 일은 가장 있을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 활동에 있어서는 개인의 창의성이나 개인적기호의 자유, 사색과 환상, 형식과 내용의 자유가 보다 많이 보장되도록 하는것이 절대로 필요 하다. 이러한 모든것은 다툴수 없는 일이다.” 쁠레하노브는 “사상이란 그 무슨 세계를 탈리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떤 개인의 사상이든 모두 이 세계에 대한 그의 관계로부터 결정되며 풍부해진다. 한 개인과 이 세계와의 관계가 자기의 ‘자아’를 유일한 현실로 간주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는 영락없이 사상빈곤자로 전락하고말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술과 사회생활) “하나의 예술작품에서 기본적인것은 응당 개인의 생활범위를 멀리 초월한것이 되여야 한다. 시인은 응당 인간의 신분으로 개인 내지 전 인류의 정신과 심령을 표현해야 한다. 예술령역에서 개인 요소가 끼여드는것은 하나의 결함으로써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하나의 예술형식이 주요하게 개인적인것이라면 그것을 다만 정신면으로 대해야 한다.” 칼 융의 이 주장은 예술은 자아를 표현하거나 개성을 표현할것이 아니라 인간 및 인간의 정신심령ㅡ력사적으로 침전된 집체무의식의 표현이라는것이다. 그러나 벨린쓰끼는 정채롭게 쓰고있다. “문학의 다른 측면, 사실적문학, 생활의 문학, 현실의 문학, 진정하고 참다운 현대문학이 나왔다. 이 문학의 특수성은 현실에 대한 진실한 묘사에 있다. 이 문학은 생활을 개조하는것이 아니라 재현하고 부흥시키며 생활의 다양한 현상들중에서 완전하고 활기있고 유일한 화폭에 필요한것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렌즈처럼 반영한다. 이 내용이 가지는 내용의 분량과 한계는 문학작품의 위대성과 재능으로 규정되여야 한다.”
35    제 2 장 문학의 삼각지대 , 제1절 작가와 문학 댓글:  조회:3947  추천:24  2007-09-16
                                               제2장 문학의 삼각지대                                              제1절 작가와 문학 1. 작가와 문학 문학이 개체의 사상감정이나 정서의 표혀이라는 정의외에도 자주 우리의 입에 오르는것은 문학은 현실의 반영, 표현이라는 말이다. 문학작품은 개인적창작물인 동시에 사회적산물이며 개성적문제로 표현되는 동시에 의사소통이라는 사회적보편성을 지녀야 하고 또한 작가, 작품, 독자라는 사회적3각관계를 떠나서는 성립될수 없다. 문학, 사회학자, 수용미학자들은 작가, 작품, 독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 한네로레 링크는 작가를 세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1) 사실로서의 작가: 일정한 체험과 생활의 내용을 가진 즉 개인적인 삶이 강조된 경우의 작가를 말한다. 그의 작품은 그 나름대로 개성적인 삶의 세계를 가지는 전기적자료에 그 자체이기도 하다. 2) 추상으로서의 작가: 함축적인 작가라고도 하는데 일정한 작품의 생산, 창조하는 예술가 혹은 의식의 탐구자로서 주제의식의 작가 혹은 사상가로서의 작가를 가리킨다. 3) 허구로서의 작가: 해설을 중시하는 작가로서 작품속에 직접 등장하여 일정한 허구적현장에 대해 진술하는 작가를 의미한다. 문학작품은 외부세계의 사물이 작가의 내적정신상태에 의해 문학으로 전환된것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례를 들어보자.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 시행은 시인의 내부세계에서 우러나온것으로서 시인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일련의 충동들이 자연발생적인 힘에 의해 스스로 흘러나온것이다. 이 시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시인의 내적정신 상태가 투영되여 하나의 상징체계를 이루고있다. 국화꽃, 천둥, 먹구름이 상징하는 그 세계에 시가 살아있다. 2. 작가의 창작정신 작가는 왜 신들린듯이 창작욕에 불타는것일가? 마슬로의 수요층차설에 따르면 “수요는 생명활동의 필연이고 가장 높은 차원은 자아실현”이다. 인간의 그 많은 수요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수요는 일종 필연의 수요이고 다시 자아실현의 수요가 된다. 로단은 “예술은 곧 감정이다.”라고 하였다. 레브 똘쓰또이는 “사람들은 언어로 상호자기의 사상감정을 전달하며 예술로 자기의 감정을 전달한다.”고 하였다. 작가의 정신은 기타 정신현상과 달리 초월성, 실상성, 변이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례하면 작가적심리고통은 창작활동과 동반된다. 이는 일종 심각한 고통으로서 작가는 이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창작한다. 작가의 고통은 지혜의 고통으로서 위해한 작가일수록 그 고통은 거대하고 침중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헤겔은 “하나의 심각한 령혼속에서는 고통이 어디까지나 그 미를 잃지 않는다.”라고 쓰고있다. 이와 관련된 작가의 정신현상은 작가정신의 일종 비애라 할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작가는 미쳐야 미칠수 있다고 하는것이다. 한세대 한세대를 내려오면서 위대한 작가들은 정도부동하게 이런 고통과 비애를 가지고 자기 작품에 그런 인생정서를 반영하였다. 적막감도 작가들의 한가지 정신현상이다. 이것은 작가의 사회적각색과 예술생애와 유관되는바 초월의식을 가지고있으므로 해서 동시대인들이 몰리해하거나 랭대하기도 하였다. 작가의 적막감은 자아성찰에 유조하며 내재적생명의 심도를 추구하게도 한다. 작가의 창작욕망은 내심의 수요, 외재적충격이 아닌 내구력(耐久力)에서 산생된다. 이를테면 도덕적력량의 촉동, 사명감 등등에 의해 인간과 인간, 개인과 사회, 주체와 객체자유와 필연간 모순속에서 정신적배신감, 정감의 표출, 념원의 기탁물을 얻으려한다. 작가의 고통은 지혜의 고통으로서 위해한 작가일수록 그 고통은 거대하고 침중하게 표현된다. 작가의 정신현상은 심미방식으로 표현되는 천지만물과 인간에 대한 감정, 태도이기도 하다. 3. 작가의 필요조건 1) 작가의 사유자질 작가의 사유자질구성은 일반사람들과 다른바 형상사유력이 특별히 강하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한낱 사유대상에 불과한것도 작가에게는 벌써 감각대상으로 되여 신묘한 도리로 인상지어진다. 인간의 대뇌좌반구는 “과학형”이고 우반구는 “예술형”이라 하는데 작가는 보통 우반구공능이 발달되여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허구라는 이 지레대를 잘 운용할수 있는것이다. 문학창작에서 허구는 그 자체가 생활에 대한 관찰이 축적된 결과일 때에만이 비로소 바람직한 전형형상을 창조할수 있다. 그러나 고리끼는 “관찰하고 연구하고 아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허구하며’ 창조하는것이 필요하다. 창작이란 수많은 쇄말사들을 완성된 형식을 갖춘 하나의 일정한 전일체속에 결합시키는것이다.”라고 투철하게 천명하고있다. 작가의 관찰은 기계적광학화의 과정이 아니라 이미전에 축적된 체적영상, 원형에 바탕을 둔것으로서 그런 감각, 지각에서 얻은 직관영상은 잠재사유의 려과를 거친 저급적이미지이다. 다시 심미의식과 려과를 거치고 제련을 거쳤을 때는 그 형상이 더욱 선명하게 심미가치가 있는것으로 부상된다. 이런 사유재료의 특징을 형상성, 독창성, 운동성, 제시성이라고 지칭한다. 작가의 기본사유형식은 형상사유이고 특수사유형상은 령감사유이다. 지각이 일반적형상직관, 직감을 초월하여 갑자기 얻어지는 모종 깨달음이 령감사유인데 기실 그것은 직각의 특수형식이다. 령감의 특점은 비자각성과 돌발성, 비일반성, 독창성이다, 령감사유는 잠재의식 현의식적통감에서 얻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사유자질에는 정감의 경향성도 들어있다. 작가의 정감은 창작사유에 발동을 걸어주는 작용을 하며 창작과정을 추진한다. 즉 예술직각, 직감은 정감이라는 이 “만유인력”에 의해 맹렬한 창작활동이 전개된다. 2) 작가의 심리자질 작가가 구비해야 할 심리자질을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고찰할수 있다. (1) 작가의 인격심리: 인격이란 일정한 경향성을 띤 각종 심리자질의 총화로서 곧 진실된 그 사람이다. 작가는 늘 이 세계에 대한 심미관계속에 얽매여있는 심미류형의 인간이다. 작가의 첫째로 되는 인격특질은 심미성이다. 작가는 늘 심미적안광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며 심령의 민감성과 비론리성을 드러낸다. (2) 정서심리: 작가는 곧 인류정서의 대변자이고 자아정서의 표현자이기도하다. 작가의 정서에는 량극이 뚜렷한바 걱정이 많고 선심도 잘 쓰는게 작가의 보편적정서특징이다. 작가는 창작의 격정상태에서는 완전히 무아상태에 빠진다. 발자끄는 일단 붓을 날려 창작에 몰두하면 마치 마귀가 접한듯 자기가 쓰고있는 작품세계에서 환각세계까지 만들어내군 하였다. 창작과정에 있었던 일련의 일화들은 지금까지도 작가의 창작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3) 창작주체의 필요조건 (1) 생활루적: 작가지망생은 생활의 대학이 가장 훌륭한 대학이지만 풍부한 경력이 작가수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체호브는 “만약 인간과 생활을 묘사하려 한다면 늘 생활을 체험하고 생활에 익숙해야 하지 서책연구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가르치고있다. (2) 작가적안목: 작가는 찬 눈길로 세상을 보고 따스한 가슴으로 인류 일반을 포용하며 생활의 바다에 량지와 사색의 갈구리를 던져 인생의 의미를 낚는 지성인이 되여야 한다. 보고싶은것만 보는것은 유흥객의 시각이고 보이지 않는것을 보아내는것은 관찰자의 시각이며 보이지 않는것의 뒤를 투시하는것이 작가적안목이다. (3) 예술능력: 소위 예술능력이란 곧 창작주체의 예술감수능력, 예술발견능력, 예술표현능력을 가리킨다. 도브롤류보브는 쓰고있다. “감수력이 비교적 민감한 사람은 예술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주위의 현실세계에서 한 사물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첫사실을 발견했을 때 강렬한 감동을 받는다. 예술능력이 없는 사람은 강산을 두루 밟았어도 남는것은 한때 감탄뿐이다.” (4) 사상준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고통스러운 사색에서 생성된 사상이다. 그 사상은 정치와 련관되는것만은 아니다. (5) 문화지식: 예술수양은 다만 창작활동에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창작주체의 다방면의 수양에는 연박한 지식이 선행한다. 만권책을 독파하고 만리길을 걸으면 붓놀림이 귀신같이 된다는 고훈이 있다. 이것은 리론지식과 실천의 결합을 제시하고있다. (6) 상상력과 련상능력: 상상력은 작가의 자질에서 기본적인 자질이다. 그만큼 창작능력의 동력인 상상력의 래원에 있다. 프랭클랜은 “아무것도 배운것이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의 상상력은 비록 날개는 있지만 발이 없는것과 같다.”라고 정채로운 비유를 하고있다. 이를 더 전개한다면 상상력이 없는 작가는 기름이 없는 등잔과 같고 운전할줄 모르는 자동차임자와 같다고 할수 있다. (7) 작가의 인격력량: 작가는 일반적으로 강한 심미감수능력이 있기에 직각인상이 곧잘 산생되고 정감, 사유, 의지와 정서가 수시로 표상으로 전화한다. 이점을 문학자질이라 한다. 작가의 지식결구의 특점은 형상화, 생활화, 미학화이다. 작가의 지식은 형상지식으로서 감성직관의 형태를 보류한 리성지식이기도 하다. 구체적지식결구에는 생활지식, 전업지식 및 보조지식, 세개 기본요소가 있는데 학자형 작가라야 유능한 작가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할수 있다. 작가의 창조정신은 창조력의 격소로서 창조성활동에 구비되여야 할 자각성, 능동성, 방향성을 가리킨다. 창조정신의 특수성에는 작가의 폭발성, 변통성, 독특성이 포괄된다. 작가의 인재적인 요소에는 내적인소와 외재인소가 있다. 내재적인소에는 지력상수와 창작시의 심리와 지혜활동수준이 포괄되는바 곧 관찰력, 감수력, 상상력이다. 작가의 첫째로 되는 인격특질은 사명감이다. 즉 다른 사람의 마음을 리해할줄 아는 포옹력, 따뜻한 인간애와 관용적태도, 미적발견과 창조로써 사막화되여가는 인정세계에 한뙈기 록지를 개척하려는 사회적사명감 등이다. 작가의 직업도덕의 핵은 곧 예술적량지로서 바로 작가적인 진솔함이다. 작가의 둘째로 되는 인격특질은 자률성이다. 작가는 언제나 자아가치와 정감으로 자기의 생활을 지배하며 다분히 자기의 내심세계에 의거하여 자아를 실현한다. 작가는 객관적제약에 달가와 하지 않으며 기이한 환상에 잘 빠지고 보통사람과 모종 심리거리를 가지고있다. 작가에게는 고도의 자률정신이 있어야 한다. 문학작품이라는 정신산품을 만들어 내는 “자유직업자”인 작가의 륜리적력량은 주요하게 자아의지, 주동적인 선택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내재적인 자신의 자각명령ㅡ그것의 준수를 작가의 도덕자률이라고 한다. 작가의 셋째로 되는 인격특질은 자아실현성이다. 작가는 최고의 감정세계의 미를 인생의 본체가치로 간주하기에 자아인격가치실현이 인생의 기본목적이 된다. 따라서 생활추구는 자기창조과정에 있다. 작가의 인격결구는 작위성을 고유하고있다. 그 한가지는 교체인격성으로서 부동한 시간에 두가지 부동한 개성특징을 표현한다. 례하면 창작할 때와 실제생활속에 있는 그가 다를수 있다. 작가들에게는 자체의 고유한 륜리가 있어야 한다. 작가의 륜리에는 지적도덕과 지적능력이 포괄된다. 지적도덕이란 작가의 몸에서 현시되는 예술진리에 대한 지혜적도덕가치 및 일정한 사회도덕원칙과 규범에 따라 운용하는 지적도덕품질이다. “문여기인”이라 하지만 작가의 인격과 정조와 품행 등은 각종 도경을 거쳐서 작품과 하나로 융합될 때 명실상부한다. 작가의 인품은 흔히 작품의 격조와 정조, 질과 품위에 영향주지만 작가의 인품과 글의 품격이 절대적으로 일치한것은 아니다. 다음 생활관과 예술관념에 차이가 있기마련이므로 작위현상은 피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인격결구의 이중성, 다중성이다. 일부 객관원인으로 하여 작가가 모종 관념 혹은 심미요구에 영합하거나 막부득이 복종하여 개성품질이 희생당하거나 억압당할수 있기때문이다. 4. 작가의 사회의식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작가의식은 현실반영의 렌즈이며 그 렌즈의 각도에 따라 작품에 드러난 현실반영의 명암이 갈라지고 세계관을 엿볼수 있다. 문학은 사회적반영이라기보다는 사회적굴절이다. 여기서 굴절이란 말은 사회현실을 조명할 때의 작가의식을 가리킨다. 사회의식이란 사회생활의 정신적방면을 가리킨다. 이에는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제견해가 포괄된다. 문학은 언제나 시대의 앞장에서 해당 사회의식을 충실하게 담는 큰 그릇이 된다. 문학창작에서 표현되는 작가의 사회의식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개괄할수 있다. 1) 주체의식 세계는 문학활동의 기본요소의 하나이다. 주관세계이든 객관세계이든 인간은 문학이 반영하는 “세계”의 중심이다. 따라서 문학창작에서 주체는 작가이며 특별히는 작가의 주관인소로서 인식능력과 창조능력외에도 심미의식이 핵심인소이다. 주체의식은 작가에게 있어서 창작생명이다. 작가의 주체정신은 부동한 층차를 이루고있다. 주체의식의 최고층차는 작가의 자아실현으로서 정신세계의 자유적개척이며 내우주의 대문을 활짝 열고 외우주의 맥박에 감응되여 참신한 내우주를 창조하는것이다. 주체의식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세속관념, 상규적생활, 전통적습관에서 오는 편견의 속박에서 해탈하려는것, 둘째, 거대한 력사적투시력과 예견성으로 세속세계의 시공간계선을 초월하려는것, 셋째, 자아의 감정을 인류사회에 개방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가운데서 개체의 주체가치를 실현하려 하는것이다. 2) 심미의식 심리학에서의 심미의식은 미적태도의 의식과정을 가리키며 철학관점에서 말하면 미적가치에 대한 직접적체험을 의미한다. 심미의식은 작가의 창작에서 유익한 창작원천의 발굴자이며 간거한 창작활동에서 유력한 지레대이다. 근년래 작가들의 문학관념은 풍부해지고 가능한 확장되였다. 3) 력사의식 력사의식이란 작가가 목적의식적으로 전반 력사진전가운데서 생활의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물론 력사대사변을 묘사할것만 요구하는것은 아니며 작가로 하여금 태고시기에로 돌아가서 민족생활과 민족정신 속에 원시적이고 몽매한 본능적인 습관, 풍속과 의식을 쓰라는것이 아니다. 4) 미래의식 미래의식이란 작가가 자각의식을 가지고 전면발전의 안광으로 가능하게 예견할수 있는 객관세계와 문학예술의 발전추세를 파악하고 자신의 창작방향과 자세를 부단히 조절, 갱신해나가는 창신의식이다. 5) 우환의식 작가의 주체성실현에는 자유의식외에 반드시 고도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작가의 심령과 력사시대의 맥박과 통하는것을 가리키는바 인간세상의 일체 고뇌를 짊어지고 력사가 남겨놓은 온갖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작가의 사명의식은 필연적으로 깊고 넓은 우환의식으로 표현된다. 6) 참회의식 참회란 반성과 새 인식이라 할수 있다. 참회자가 림하는것은 만구할수 없는 력사성적인것이므로 그 참회는 필연적으로 감정상의 고통과 령혼의 내재적시달림에 모대기게 된다. 7) 관용의식 작가들은 보다 성숙한 력사적안광과 인생의 지혜로 착잡한 생활현상과 형형색색의 세속인생에 대해 될수록 많이 리해하고 민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인생현장의 본질을 투시할 때 자신감을 가지고 초월하여야 예술표현작업을 진지하게 진행할수 있다. 8) 민족문화의식 문학의 “뿌리”는 마땅히 자기 민족문화전통의 토양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소설창작에서 민족의식의 침투는 옛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며 복고사상이나 전통에 대한 특수한 회포가 아니라 민족성으로 충만된 현실생활에 대한 깊은 발굴이며 분석이고 표현이다. 9) 위치의식 작가는 때론 일종 역향적정감활동을 표현할 때가 있다. 작가는 투철한 력사의식으로 세계에 대한 묘사를 진행하는데서 일종 미학사상의 위치가 뒤바뀌는 현상이 출현할수도 있는데 이런 위치바뀜(错位)현상을 반영한 소설내용은 단순한 심미충돌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미학적사색의 결과이다. 10) 철학의식 작가는 작가이기에 학자가 되여야 하고 철학가가 되여야 한다. 예술사고는 언제나 철학적사고가 선행되여야 인간이 력사와 현실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가치, 의의를 바르게 분석판단 할수 있다. 11) 작가의 문제의식 영국의 시인 테드휴즈의 ≪시작법≫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어떤 사물을 대할 때나 어떤 생각을 할 때,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적현상을 대할 때 문제의식을 가지는것, 이것이 문학정신이며 핵심적인 작가정신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소재의 터밭이며 창작충동과 핵심주제를 키워내는 온상이며 문제의식은 열독심리에 유력한 흥분제로 된다. 12) 작가의 성의식 작가는 끈질기게 현실과 력사일반에 대해 고발하고 력사를 초월하면서 성문화에 대해 인간적으로, 철학적으로 사고할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심미의식속에서 인간의 성심리와 성관념, 성활동은 단순히 인간의 생리기제로 파악되는것이 아니다. 작가는 가치관념의 각도에서 성의식을 탐구해야 한다.
34    제 3절 문학예술의 몽롱미 댓글:  조회:4451  추천:12  2007-09-16
                                          제3절 문학예술의 몽롱미 1. 몽롱미리론의 기원 소위 몽롱이란 사물이 모호하여 똑똑하지 않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여 사이비하고 이렇기도 한것같고 저렇기도 한것같은 현상 즉 명료성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몽롱성은 미감을 순수화하고 풍부하게 하며 인차 사라지지 않게 하는 특성이 있다. 몽롱미란 곧 형상의 모호, 개념의 불확정성, 터득할수는 있으나 말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몽롱하고 함축된 미를 지칭한다. 몽롱미는 보일듯 말듯하고 그 뜻을 밝히기 어려운 미로서 모호미라 지칭하는 미감의 일종이다. 옛글에 “말우에서 용사를 가려내고 달아래에서 미인을 본다.”고 하였다. 미는 일정한 거리감에서도 오지만 몽롱성에서도 온다. 장강 3협의 선녀봉은 일년내내 구름에 덮혀 험준한 절경이 태반이나 가리워진다. 그리하여 “선경절반, 인간세상 절반” 이라는 경구가 나왔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몽롱미는 완전히 로출된것보다 더욱 매력이 있을수 있다. 만약 구름이 걷힌 날 가까이서 본다면 “신선세계”의 절반은 사라지고 들쑹날쑹한 면면한 산봉에 기암괴석만이 보일것이다. 구름속에 달, 교교한 월색, 운무속에 황산, 자오록한 비발속에 잠긴 계림의 산수, 동정호의 묘망한 돛배그림자…등등은 다 몽롱미의 극치라 해야 할것이다. 이처럼 몽롱성은 일부 모종 사물의 허물을 덮어감추고 일종의 특이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활짝 드러낸 상태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적인 미적향수를 느낄수 없을것이다. 마치 확대경속에는 비단결처럼 보드랍고 아름다운 피부가 없는것과 같은 도리이다. 이와같이 몽롱성은 모종 사물의 진면모를 투철하게 꿰뚫어볼수 없게 함으로써 심미심리에 미지의 공간을 남겨 그냥 흥미를 보유하게 한다. 몽롱은 선명함에 상대되는 개념이지만 대천세계에 허다한 객관사물 지간의 계선은 몽롱하고 모호하다. 달빛도 몽롱하고 안개도 몽롱하고 산도 몽롱하고 물도 몽롱하고…안개속에 다소곳한 꽃을 흔상할 때, 물속에서 비낀 달에 홀릴 때, 눈앞아물아물하는 아지랑이 등은 몽롱한 느낌을 준다. 몽롱미는 자연경물중에 고유한 일종의 풍경선이 아닐수 없다 사람들의 전통관념과 관습속에는 몽롱성이 나쁜 의미로 락인찍혀있는데 이는 심미표준의 시대적변천과정에서 생긴 심미심리장애라고 할수 있다. 기실 문학작품에서의 모호이미지, 회화에서 몰롱성 등은 다 미적표상이다. 몽롱미는 일종 미일뿐만아니라 일종 예술풍격미이기도 하다. 몽롱미의 특징은 몽롱하고 모호하며 함축된 형식으로 다의성내용을 표현하여 흔상자로 하여금 알아맞추고 상상해 보고 곰곰이 음미해야 비로소 심미향수를 만끽하게 하는것이다. 자기의 시로써 세상과 대화는 하려하면서도 열독을 방애하는 회삽(晦涩)이야말로 병태이며 내용상의 빈혈이다. 미국계통론학자 쟈드는 20세기 60년대 사물의 모호성문제를 제기하여 과학리론으로 연구되였다. 1975년 모호학은 하나의 학과로 세계적범위에서 중시받았다. 20세기 80년대 중국의 첫전문서인《모호학인론》나왔고 70년대 몽롱시에 대한 대론쟁을 거친후 문예계에서 모호리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기에 모호이미지와 몽롱한 미적표상은 더는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 칸트는 “모호개념은 선명한 개념보다 더 표현력이 있다. 미란 응당 말로 전달할수 없는것이 되여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들이 생각하는것을 언어로 충분히 표현할수 없다.”고 쓰고있다. 현대 중외의 작가들이 창작에서 모호성, 추상성을 추구하는것은 몽롱미의 효과에 이르려는 시도이다. 예술작품속에 몽롱미는 내용속에 숨겨둔 모호성, 다의성, 추상성, 적라라하지 않은 함축된 내함으로 표현되며 비흥(比兴), 상징,은유, 말속에 말 등으로 체현된다. 사물의 모양과 색채와 소리가 융화되여 불확정적이고 일상을 초월하도록 변형시켜 직관과 상식적인 도리로는 리해하기 어려워 풍부한 상상력으로 예측하고 추단해야 그것의 진실한 함의와 내재미를 파악할수 있다. 2. 몽롱성의 미학공능 사람은 금방 접촉한 사물에서 미적향수의 수요가 왕성하지만 일차성적으로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에 “접근성 미감”이 산생된다. 이때가 바로 미감수요가 가장 강렬할 때이다. “행위과학”의 시점에서 볼 때 인간행위의 발동기라고 할수 있는 욕망(심리수요)이 일단 만족되면 곧 소실되고 새 욕망이 새 행위를 발동한다. 몽롱성의 미학공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적대상에 흥미도도하여 련련한 정을 보류하는 그 미감의 지속성, 접근성 미감에 있다. 몽롱미는 특정한 의경(意境)을 창조하여 호기심을 유발하며 탐구욕에 불을 지펴 알듯하면서도 묘망한 느낌속에 특수한 심미감수를 얻게 한다. 심미적대상에 대한 이런 고유한 심미심리 혹은 그런 기대심리를 예술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법을 운용한다. 이를테면 “뜻은 명철하나 말은 에두른다.”는 수법으로 글에 함축미가 있게 여지를 남겨두거나 서정토로도 곧이 곧대로가 아니라 몽롱성속에 숨김으로써 예술미를 창조한다. 몽롱미에서 펼쳐지는 경지는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며 미적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문학예술창조활동에서도 창조적사유의 일종인 련상의 공간을 제공하는 몽롱성은 중요하다. 객관적사물의 몽롱성은 결코 희미한것이 아니고 알쏭달쏭함도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시창작에서 몽롱성원리를 리용하여 몽롱미를 창조하더라도 흔상자들에게 파악불능이 되게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새 시기 현대시의 영향을 받아 젊은 일대들이 몽롱성이 짙은 시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례하면 “어두운 밤은 나에게 검은 눈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눈으로 광명을 찾았다.”, “광풍은 꿈속에 재부를 빼앗아갔지만/도리어 나에게 사고의 유산을 남겨주었다.” 등에서처럼 몽롱성을 리용하고 몽롱미를 창조한것은 흔상자들에게 끝까지 파악불능의 수수께끼를 내는것이 아니다. 물론 충만된 격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것이 아니라 한폭한폭의 구체적도화(图画)로써 시인의 사상감정을 은근히 암시하고 상징하며 두드러지게 하는 새로운 시형식이 독자들앞에 돌연 나타났을 때 일반사람들의 흔상심리지각상 필연코 습관되지 않아 입에 잘 오르지 않는다거나 개운하지 않다거나 알수 없다거나 하면서 심지어 노해서 외면하기도 한다. 례하여 이런 시가 있다. 비둘기마저 성숙한 울음을 운다. 지나간 비바람 모질던 그 여름을. 이 시는 얼핏 보면 대자연속에 가을을 쓴것 같다. 그러나 다시금 음미해보면 “10년동란시기”의 그 “비바람 모질던 여름”을 읊고있고 오늘의 조국을 그려내고있다. 시는 리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작자는 직설적으로 자기 감정파동을 토로하지 않고 시속에 한층의 상징적의미를 깔아놓고있는데 이 역시 미적창조의 새로운 풍경이 아닐수 없다. 3. 몽롱미의 필수성 문예는 몽롱성을 수요하며 문예는 몽롱성을 떠날수 없다. 문예의 몽롱은 일종의 미를 현시한다. 그러나 무작정 새것을 추구하고 색다른것을 표방하기 위한것이 아니다. 문예작품은 인류생활정보의 일종 귀환으로서 작가들이 모호세계에서 취한 정보와 소재가 또 인간의 관측할길 없는 “흑상(黑箱)”속에서 가공되므로 충분히 몽롱성을 띠게 된다. 작가가 가공해낸 작품은 몽롱세계에 대한 투시 혹은 굴절반사의 형상일뿐이다. 례하면 화면에 나타나는 장백산이나 계림산수는 비록 부분적모습만이라도 장백산은 장백산이고 계림산수는 계림산수이다. 한것은 량자는 부동한 개념으로서 장백산, 계림의 완정한 형식과 내용을 포괄하기때문이다. 허적인 각도에서 보아도 선명하다. 화면에 나타난것이 각자의 특징을 구별해주기때문이다. 다음 문학형상은 모두 모호개념 집합으로 구성되였다고 할수 있을진대 작가는 상상, 허구로 형상을 창조한다. 즉 실체적대상을 떠난 정황하에서 원래 저축하였던 흩어지고 모호한 인상으로 개조하여 다시 결구를 짜는바 모호수거의 결합체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자연물에 대한 형상묘사는 더구나 모호언어를 위주로 한다. 미국의 현대 시인 로닐의 시 ≪조우≫를 보자. 단풍잎에 이슬은 붉게붉게 빛나는데 련꽃잎에 이슬은 눈물처럼 투명하네. 이 시에서 단풍잎, 이슬, 련꽃잎, 눈물방울은 모두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딱히 알수 없다. 황차 세상에 똑같은 사물이란 없음에랴, 사물의 상대론각도에서 볼 때 모인물, 모사물도 순간마다 그것일수도 있고 또 그것이 아닐수도 있다. 모두어 말해서 사물의 무궁한 변화, 형상의 천차만별로 하여 종잡을수 없기에 사물의 특수성과 몽롱성이 충만되여있게 된다. 문예는 오직 사물의 이런 특수성과 몽롱성을 형상적으로 드러낼 때에야만이 풍부하고 다채롭고 정취가 그윽한 매력과 미감을 선물할수 있다. 무형속에 형상이 현연되여야 볼 때는 없는듯하지만 사색속에서는 실재를 느낀다. 이것은 전통적예술추구로서 일종 몽롱미에 대한 야릇하고 불가항력적인 추구이다. 표현방면에서 본다면 시가, 소설, 산문에서의 생략 혹은 비약이며 회화에서의 공백이고 영사막, 무대에서의 공간 모두가 기실 일종의 몽롱미이다. 례하면 영화 ≪붉은수수≫에서 “나의 할아버지”와 “나의 할머니”가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앞에 펼쳐진것은 설레이는 일망무제한 붉은수수밭이다. 그들은 인적기가 없고 장려한 대자연속에서 하늘을 이불로 삼고 대지를 침상으로 삼고 그렇게 미칠듯이 야하게 그러면서도 순결하고 자연스럽게 정욕을 불태운다. 그 광활한 대자연은 “실재적”인 붉은수수밭이 아니라 “허적인 예술공간”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로이 나래칠수 있는 황야이고 정감의 심연이며 사랑의 바다의 상징이다. 거기서 자유의 불길, 사랑의 불길, 생명의 불길이 활활 타번진것이다. 정직하고 강인하며 랑만적이고 호현한가하면 온순하고 순박한 다종기질의 사나이가 거기서 원시적인간성이 빛을 발산한다. 바로 그 붉은수수가 우매무지하던 시대의 인간성복귀의 상징이다. “한뙈기 붉은수수는 한사발의 붉은수수술을 고아낼수 있고 또 붉은 선혈로 변하여 나중엔 붉게 타오르는 민족정신으로 승화하였다.”고 상상해보라. 넓고 거칠고 야한 록색의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얼마나 모호하고 몽롱한가? 립체감도 있고 류동감도 있어 실로 끝이 보이지 않고 사색이 끝없는 공령(空灵)의 경지에 이르게 할수 있다. “사람은 아름답기에 사랑스러운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기에 아름다운것이다.”(레브 똘쓰또이) 이 명제에 근거하여 우리는 문예의 몽롱미를 련인의 눈속의 “서시”에 비유할수 있다. 서시가 그토록 아름다운것은 “서시”를 심미적눈길로 바라보고 “서시”를 죽도록 사랑하고 추구하는 련인의 모호하고 몽롱한 심령즉 아름다운 기대심리에 도취되여있끼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얼마의 련인이 있으면 얼마의 “서시”가 있게 된다. 문예의 몽롱미는 이처럼 현묘하고 알쏭달쏭하며 풍부하고 다채롭다. 사람이 몽롱하면 사실도 몽롱해지고 몽롱한 붓끝아래 대중도 따르기 어렵게 된다. 시 ≪가자!≫(북도)를 음미해 보자. 가자!락엽은 골짜기에 날려들고 노래는 오히려 갈곳이 없다. 가자!얼음위에 달빛이 강바닥에 넘쳐흐른다. 가자!눈은 한곳 하늘을 보라. 눈은 한곳 하늘을 보라. 마음은 황혼빛 북을 친다. 가자! 우리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가서 생명의 호수를 찾자. 가자!길이여, 길이여, 붉은 양귀비 흩날린다. ≪가자≫는 인생도로의 험난함이 주제로 된 서정시이다. 시에는 감상적인 기분이 짙게 흐른다. 그러나 “생명의 호수”를 찾는것은 잊지 않고있다. 인생의 가을에 “갈곳이 없고” 황혼빛 창망한데 일체 희망은 모두 물거품이 되여버려 마음속에서 북소리 울린다. 현실속에 인생의 길, 갈래갈래에 붉은 마취제인 아편꽃 흩날린다. 어디가서 생명의 호수를 찾는단말인가?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된다. 가자! 가자! 가자! 한걸음 한걸음 가는데까지다. 이것이 북도의 마음의 절규이다. ≪가자≫는 얼핏 보고는 알둥말둥하다. 마치 지옥에 오래 갇혀있다가 도망쳐나온 도주범의 번뇌와 갈망이 숨겨져있는것 같다. 어찌 생각하면 한창 청춘시절을 잃어버린 처녀가 아무리해도 되찾을길 없는 그 아픈 마음과 쓰라림을 호소하고있는듯도 하고 방불히 실총당하여 버림받은 적자가 다시 총애의 품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만 이미 아득히 흘러가버린 세월을 한탄하며 돌아와도 들어갈 문이없어 처절한 신음을 토해내는것같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을 쏟아지는 울분대로 직설하지 않고 시적대상물에 정감을 이입시키는 수법으로 보일듯 말듯 정감의 베일속에 감추고 은근히 토로한다. 독자는 바로 그 숨겨진 심령심처의 구석구석에 더 호기심이 끌리고 보이지 않는 그 말을 더 풍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곳을 엿보고 싶어하고 밟아보고 싶어진다. 시인은 이렇듯 수수께끼로가 아니라 몽롱미로 자기의 절절한 감수를 장식함으로써 시에 더 없는 매력을 싣고있다. 4. 몽롱의식의 영구성 인류가 생활하고있는 환경으로 말하면 어느 사람에게나 하나의 모호 세계라고 말할수 있다. 인간의 정신령역과 정감세계는 오색잡다하고 변화무상하여 조종할 방법이 없는 미형컴퓨터나 열수 없고 또 내부상태를 직접관찰할수 없는 “흑상(黑箱)”같다고 할수 있다. 객관세계와 주관세계 자체의 정지상태에서나 변화각도에서 보아도 완전히 다 알수 없고 다 꿰뚫어볼수 없는 몽롱성이 존재하므로 인식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몽롱의식이 산생된다. 인간의 현실에 대한 개조, 사람지간의 투쟁 및 사물자체의 발전변화는 사물을 시종 운동상태에 처하게 한다. 만약 인간이 정지적인 안광으로 변동속의 사물을 투시한다면 필연적으로 의혹과 모호의식이 산생된다. 만약 인간이 정지적안광으로 변동속의 사물을 투시한다면 필연적으로 의혹과 모호의식이 산생된다. 이런 주관의식의 몽롱성은 부단히 소실되고 부단히 산생된다. 그런데 이런 소실은 국부적이고 잠시적이다. 인간의 인식과 운동하는 세계사이에는 시공간적차이가 있기에 주관의식의 몽롱성은 불가피면적이다. 세계상의 어떠한 언어이든지 물질세계와 복잡다단한 심령세계의 기술하고 묘사함에서 의도적인 다의성보류, 추상성, 편파성, 파생성 등 불확실성을 가지게 되므로 핍진하지 못한 표현의 곤혹을 철저히 극복할수는 없다. 예술언어도 주관의식을 표현할 때 스스로 막무가내한 모호성과 몽롱성을 의식하게 된다. 이는 인류언어의 빈곤증을 의미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다.
33    제 2절 문학예술흔상심리 댓글:  조회:4166  추천:23  2007-09-16
                                                 제2절 문학예술흔상심리 1. 문학예술감수의 특수성 감수성을 감성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의식의 정서적성향을 가리킨다. 18세기초 영국에서 처음에는 사랑, 동정심, 련민의 정 등 부드러운 감정을 잘 느끼는 성격을 뜻하다가 그후 아름다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성격을 뜻하게 되였다. 근대비평가들은 감수성을 감각, 사고 및 감정에 있어서 경험에 반응하는 작가의 특징적인 능력을 가리키였다. 감수성은 자연이나 예술미의 숭고에 대한 강렬한 정서적반응이라는 뜻이 며 인식으로서의 문학, 경험으로서의 문학의 전제조건이다. 문학감수는 그저 한부의 두터운 소설책, 지어낸 이야기를 적은 문학서적…등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파묻혀 개체자신의 정감반응정보에 목적을 두고있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나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더라.   얼핏 읽어보면 그뜻이 잘 알리는듯싶다. 그러나 시인은 자연상태의 변화를 설명한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섭리에 일종 철학적사상을 담고있는것이다. 막무가내하고 속절없이 가버린 영웅인물에 대한 숭경의 마음과 그리움 등 정감속에 담긴 철리적사색의 정화를 느꼈을 때에만이 시조에 감동될수 있는것이다. 2. 문학감수에서의 주관능동성 문학흔상에서 “기계적반응”도 있게 된다. 말하자면 판에 박힌 반응, 무비판적반응 등을 이르는 말이다. 열독과정에서 독자의 기대시야와 텍스트사이에 흔히 순향적상응과 역향적좌절 이 두가지 정황이 나나타고 문학접수의 고조도 있게 된다. 문학접수에서 공명감은 고조단계에 들어갔다는 주요한 표지이다. 문학의 사회적기능은 독자의 문학경험이 그 삶의 실천속에서 우러나온 기대지평속으로 파고들어 그의 세계 리해를 미리 형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되돌 아와 그의 사회적태도에 작용할 때 그 진정한 가능성이 발현된다. 독자의 주관능동성에는 다음 몇가지가 있다. 첫째로 온정성주의력이다. 우선 감상자를 매료시키는 선결조건은 작품에 주어져야 하지만 감상자의 열독의지력, 온정성 주의력 등 능동작용도 베제해서는 안된다. 무심한자에게는 어떤 절경도 매혹적이 못되듯 독서열정이 없으면 어떤 명작에도 매료될수 없다. 둘째로 분석비교이다. 동일작가의 여러 작품을 비교할수도 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횡적비교를 할수도 있으며 중외작품비교, 고금작품비교, 전통수법과 현대수법의 비교 등 종횡비교를 진행하면 그 감수가 더 심각해질수 있다. 례하면 고골리의 ≪죽은 넋≫의 쁠류쉬낀과 발자끄의 ≪우제니 그랑데≫에서 그랑데의 인물성격, 형상창조수법상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볼수도 있다. 두인물의 성격상의 공통점이라면 재물과 금전에 대한 탐욕성, 린색성, 그로인한 비인간성이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그랑데는 교활하고 허위적이고 잔인한 신흥자산계급전형이고 쁠류쉬낀은 우매하고 부패몰락한 지주계급전형이다. 이처럼 같으면서도 인물형상은 비교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안겨온다. 예술에 대한 인류의 감수는 리해와 결합되여있다. 이런 지각ㅡ감수의 심입은 사상적심각성과 사물에 대한 리해의 심도와 갈라놓을수 없다. 김소월의 ≪산≫, ≪가는 길≫, ≪진달래꽃≫, ≪금잔디≫ 등 일련의 아름다운 시편들을 읊어보노라면 꽃잎지고 달이 뜨는 평화로운 밤, 귀뚜라미소리를 듣는듯 정답기도 하고 쓸쓸한 기분에 잠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 애수에 사무친 정서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애수의 저 너머에서 무엇인가 구하여마지 않는 강렬한 동경과 풀수 없는 인도주의적지향과 생에 대한 긍정심을 토로하고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김소월의 시에는 격정을 불지르는 치렬한 시어들이 없어 외재형식상에서는 마치도 잔잔한 호수의 잔물결같은 감각을 준다, 그러나 저 호수 깊이에 생명들이 활약하듯 시속에서 생명이 약동한다. 문학예술흔상에는 흔상자의 련상과 상상력이 수요된다. 발자끄는 “진정한 시를 아는 사람은 시구에 토로된 미세한것을 가지고도 자기의 심목속에서 발전시켜나간다.”고 썼다. 련상과 상상은 예술이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교량이다. 3. 문학작품의 자률성 주지하다싶이 창작은 모종 특정된 예술수단으로 현실생활에 대해 예술적처리를 거쳐 예술형상을 창조하는데 이런 생활로부터 예술세계로의 전화는 련상과 상상을 거쳐 실현되므로 감상속에서 예술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하자면 역시 련상과 상상으로 실현할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에 의해 완성된 작품은 그 자체로서 자립하고 자족 할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있어야 한다. 작품을 리해하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을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든가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야 리해할수 있다면 그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작품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서 작가는 물론 독자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률성을 지닌 존재인것이다. 창조된 예술형상은 질적규정성을 고유하기때문이다. 4. 문학흔상에서의 정감성 독자에게 정감이라는 심리품질이 없다면 아무리 뛰여난 필력도 흉금을 사로잡을수 없다. 누군가 작자는 반드시 먼저 나를 놀래우고 마음을 찢어놓고 두렵게 하며 전률시키고 감동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하며 분노하게 하고 그 다음 만약 남은 힘이 있다면 나의 두눈을 즐겁게 하라고 말했다. 이렇듯 문학흔상에서 흔상자는 작품에 대한 인식에 따라 자발적으로 정감활동이 산생된다. 작가가 묘사하는것이 비록 개인생활의 범위이지만 개인생활의 범위와 시대, 사회생활범위는 공통성을 가진다. 1822년 프랑스의 한 극장에서 ≪오쎌로≫를 공연하였는데 제5막에서 오쎌로가 데스데모나의 목을 죄여죽이는 장면을 보던 극장보위를 맡은 한 병사가 그만 격분해서 “나는 저 죽여치울 흑인놈이 내 앞에서 공공연히 백인녀자를 죽이는것을 용인할수 없다!”고 소리치면서 총을 쏘아 오쎌로 배역의 어깨에 부상을 입혔다. 이는 치렬한 정감활동에서 조절력을 상실함으로써 빚어진 아름다운 충동성실수이지만 예술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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