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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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칼럼]대학정신과 교장 그리고 보직자들 댓글:  조회:306  추천:0  2019-07-15
대학정신과 교장 그리고 보직자들 김병민   몇년 전부터 대학의 행정화를 없애라고 대학개혁에 관한 문건이 수없이 많이 발포되여있지만 좀처럼 실행되지를 않는다. 그건 도대체 무슨 원인일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첫째는 교육리념의 문제이고 둘째는 제도 자체의 문제이고 셋째는 보직자들의 선발 문제인 것 같다. 왜서 대학에서는 행정화를 없애야 하는가? 그것은 대학의 성격 내지는 사명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이다. 대학의 성격은 인류의 문화전승과 지식창조에 있다. 대학의 사명은 인재양성, 과학연구, 사회봉사에 있다. 따라서 대학의 정신은 진리창출을 위한 과학정신, 인류복지를 위한 인문정신에 있다. 대학의 리상과 량심은 반드시 대학의 성격, 나아가서 대학의 사명과 정신에 맞아야 한다. 대학은 절대 권력이 란무하는 정객들의 놀음판이 되여서는 안되며 행정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꾸려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행정명령식 방법으로는 지식창조가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장, 학장, 처장은 교수들의 대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절대로 교수들의 머리 우에 군림하여 독선을 해서는 안되며 학생들을 관리하는 신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다만 교수들과 학생들을 위해 나선 봉사자라고 생각함이 바람직한 것이다. 요즘 대학 교장이 되면 청장급이라고, 학장, 처장이 되면 현장급이라고 운운하는데 실로 천부당 만부당한 것이다. 대학에는 급별이 없어야 하고 수직체계가 없어야 될듯 싶다. 저명한 교육가로 길림대학, 남경대학의 교장을 지닌 광아명匡亚明선생은 두 대학을 명문대로 쇄신한 분으로 대학리념이 투철하기로 이름난 분이다. 광아명 교장은 어느 날 학교 캠퍼스를 돌아보는데 길가에서 학교 행정부서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한 젊은이가 광아명 교장 앞으로 다가서서 “보고, 수장님.” 하고 인사를 깍듯하게 올렸다고 한다. 이에 광교장은 그 젊은이를 세워놓고 엄숙한 어조로 “이 사람아, 난 수장이 아니야. 이 대학엔 수장이 없어. 가령 우리 대학에 수장이 있다면 저 연구실에서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는 명교수가 바로 수장인 거야. 앞으로 절대 나를 수장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네.”라고 말씀하여 그 젊은이로 하여금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중국 현대 대학의 100년 력사에서 이름 있는 저명한 교장은 종래로 자신을 권력자라고 생각해본 것 같지 않다. 현대 대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채원배蔡元培 교장은 물론이고 매이기梅贻琦, 장백령张伯苓, 장몽린蒋梦麟, 호적胡适, 라가륜罗家伦 등등, 이들 모두는 교수들의 존엄과 인격 그리고 학생들의 리익과 요구를 위해 동분서주하신 분들이다. 채원배 교장은 단기서 군벌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인 교수와 학생들 켠에 튼튼하게 서있었다. 그리고 문학 원장인 로신은 진보적 학생을 탄압, 살해한 장개석 당국에 떳떳이 맞서기도 했다. 대학의 권력을 교수와 학생을 보호함에 행했을 뿐이다. 우리 연변대학의 초대 교장들도 대학리념이 투철했던 것 같다. 연변대학의  림민호 초대 부교장은 가장 좋은 보기이다. 림교장은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정판룡부부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친히 단층집 댁에 찾아가 왕유선생에게 아궁이 불을 지피는 방법을 배워주고 풍구줄을 메워주었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연변대학에 온 한족 젊은 교수들을 사랑하여 친히 자전거를 배우게끔 뒤에서 잡아주었다고 한다. 또한 젊은 교원이 출산하게 되자 자신의 승용차를 집에 보내 산모를 병원에 실어가고 병원에서 집에 실어오게 했다고 한다.  림교장 같은 분이 있었기에 연변대학은 대학정신을 지켜갈 수가 있었고 교수들은 안심하고 인재양성과 과학연구에 전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권력의 수직체계와 행정화를 없애지 않고서는 대학의 비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자면 반드시 복잡한 행정시스템이 정리되여야 하며 보직자 선발에서 학문적 체험이 없고 학자적인 경력이 없는 사람은 인선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학문의 가치와 지식창출의 어려움과 고민을 체험 못한 사람이 어찌 학문을 소중히 여기고 학자를 존중할 수가 있겠는가? 요즘 대학에는 학문을 하지 않고도 중요한 보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직만 가지고 살아감도 꼴불견인데 얼렁뚱땅 상장, 관계수단으로 교수라는 계관까지 얻어쓰니 너무도 당치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교수가 되는 것이 식은 죽 먹기로 생각될 것이다. 어찌 이 뿐이랴? 그런 보직자들은 교수직함을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리익, 명예까지 챙기기에 급급하다. 이를 가리켜 권력으로 교육자원을 롱단한다고 해야 하겠다. 해방 전의 경우, 명문대학일수록 저명한 학자들이 원장, 학부장을 했다. 진독수는 북경대학 문학원장, 로신은 중산대학 문학원 원장, 호적은 북경대학 국학원 원장, 문일다는 산동대학 국문학부장, 풍우란은 하남대학 문학원장 등등, 그들은 대학리념과 학문정신으로 교수를 이끌어나간 대학자, 대문호들이였다. 물론 학술연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그 분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의 소견으로는 전문적인 행정만 하는 보직자-‘교수’가 없어야 대학의 행정화가 극복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른바 대학에서의 행정화를 취소한다는 것은 교수가 중요한 행정보직을 맡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전문적인 교수가 아닌 전문적인 행정보직자를 두는 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요즘 교수는 학문이나 하고 주요한 행정보직은 교수가 아닌 행정간부가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들도 오가고 있다 하니 실로 코 막고 답답하다. 이는 외곡된 리념이고 시비전도이기도 하다. 교수는 대학의 령혼이다. 교수가 당당하게 주인이 되고 교수와 학생이 공동으로 지식창출을 하는 그 날의 명문대학을 상상해본다.  출처:2018 제5호
2    [칼럼] 학문은 인격으로 한다 댓글:  조회:264  추천:0  2019-07-15
학문은 인격으로 한다 김병민   요즘 학술계에서는 학술부패가 늘 거론된다. 그 무슨 다른 사람의 론문을 베껴서 발표했다느니 한편의 론문을 쪼개서 두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다느니 또한 같은 론문을 약간 윤색해서 두개 잡지에 발표하는 등 온갖 수단을 써가며 론문을 발표하고 그것을 교수 승진의 밑거름으로 한다. 어찌 이 뿐이랴? 어떤 이는 정치풍향에 맞추어 학문의 분야를 이리저리 옮겨가는가 하면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추기에 신경전을 벌인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학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반드시 극복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데는 당면 대학의 학술문화 나아가서 대학의 학술평가제도 그리고 정부에서 만들어낸 교수 승진 학술조건 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학자들의 학술리념과 학술인격이다. 대학교수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생명의 선택이고 생활의 전부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대학교수는 학술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기본적인 사명 즉 지식생산의 사명을 수행해나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문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함은 교수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의 정신은 학자의 인격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나는 연변대학 력사학부의 젊은 교수들이 조직한 로교수 박진석교수 90 탄신 및 교육종사 6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였다. 기념행사는 박교수의 제자 수십명이 참가하였고 박교수의 대학동창생들인 박문일 교장, 허청선교수 등 원로들도 참가하였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박진석교수의 학문정신을 찬양하였고 그 학술성과의 가치와 위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그 날 여러분들의 발언을 귀납해보면 첫째는 한마음 한뜻으로 학문에 정진했고 둘째로는 중요한 학술령역 즉 고구려 연구에서 풍부한 성과를 따냈으며 셋째로는 학술 론쟁에 대담히 나서 자신의 학술견해를 피력하여 학술계에 신선한 기운을 몰아온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모두 정평이라 하겠다. 박교수는 9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서하시고 계신다. 또한 론문을 써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로 되여있어 모두들 감격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 날 나도 발언할 기회를 얻어 언감생심 로교수의 삶과 학문정신에 대해 찬사를 한 바 있다.  나는 1980년대 후반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박교수에게서 조선력사 과목을 경청한 바 있다. 박교수의 첫날 강의는 참고서와 참고론문을 제시해주는 날로 되였는데 무려 30여부 저서와 160여편의 론문을 참고문헌으로 제기하였다. 박교수가 읽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써야 했는데 두시간 남짓이 받아쓰고 나니 손목과 팔꿈치가 시큰시큰했다.  강의시간에는 교재내용 대로 강의하지 않았고 주로는 학술계에서 쟁론되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학술견해를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조선력사에서의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겠는가? 조선 삼국시기와 일본의 관계에서 어떤 학문적인 론쟁이 있는가? 리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뚤러싸고 어떤 부동한 견해들이 있는가 하는 내용들이였다. 이런 강의내용은 조선력사를 처음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큰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따라서 박교수의 강의를 통해 학문의 취지, 학문의 내용, 학문의 목표 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터득할 수 있었다. 종강이 되자 학기말 성적으로 론문 한편을 쓰되 반드시 발표할 수 있는 수준이여야 했다. 그 해 나는 력사학 관련 론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했다. 아무튼 박교수의 강의는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문학연구의 력사학 시각, 그리고 풍부한 력사지식과 함께 문학과 력사학의 학제적인 연구에 좋은 길잡이가 되였다. 그 때 나는 학자의 권위성은 학술수준, 그리고  론문수준으로 평가됨을 터득하였다.   박진석교수님은 일심정력으로 학문에 정진한 분으로 학문 이외 다른 일에 한번도 정신을 팔아본 적이 없다 한다. 이를테면 행정보직이라던가, 명예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선 넘겨다 보지 않고 초월한 자세로 살아오신 분이다. 특히 중년 이후로는 매일 건강관리를 위한 산책 외는 독서와 론문 집필에 몰두하여 학자의 귀감이 된 분이시다.  박진석교수의 학자적인 인격은 학문적인 쟁론에서 추호의 양보도 없는 대쪽 같은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호태왕비 연구를 둘러싸고 일본 학자의 그릇된 관점에 대해 충분한 근거로 비판하고 자신의 독보적인 관점을 제시하여 학계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박교수의 학술적 거작인 《호태왕비와 고대 조일 관계 연구》(1993)는 그 풍부한 지식성과 학문적 견해의 독창성으로 학술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저서에는 박진석교수의 학술인격 즉 학자적인 독립성이 잘 반영되여 주목된다 하겠다. 진정으로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학술적 인격이 구비되여야만 한다. 가령 학문적으로 독립정신이 없이 갈대처럼 바람에 따라 좌왕우왕한다면 학자로서 자격미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릇된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가 있다. 또한 사이비 학문으로 하여 력사에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우리는 문화혁명 시기 정치적인 풍향에 따라 자신의 지위, 명예, 리익 등을 위해 학문을 외곡하고 세상을 크게 그르친 사이비 학자들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박진석교수는 문화혁명 시기에는 진정한 학문을 할 수가 없어 절필하면 했지 어용학자 격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특히 한때 고구려연구가 국제정치 관계 문제로 불거지여 일부 청년학자들은 적지 않게 고구려 연구에서 손을 떼려고 할 때도 박진석교수는 오히려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연구가 요청되지 않겠는가? 부동한 견해를 서로 내놓고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 진상을 밝히는 것이 력사학자의 사명이니 절대 뒤로 물러설 수가 없다.” 라고 했다. 박교수는 이렇게 말씀했을 뿐만 아니라 실행에 옮기여 고구려에 대한 학술 연구를 심입시키였고 좋은 론문을 써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하여 나중에는 국가 주요 연구기관의 학자들의 주목한 바 되였고 두 나라 사이 력사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어감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훌륭한 학자는 진정한 학문성과를 통해 진리창출을 실현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박진석교수의 학문적 인격과 독립정신은 연변대학 인문정신의 일부분으로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출처:2018 제5호
1    [칼럼]‘인재쟁탈전’과 ‘양귀비꽃’ 댓글:  조회:248  추천:0  2019-07-15
‘인재쟁탈전’과 ‘양귀비꽃’ 김병민   요즘 중국 대학들에서는 이른바 ‘인재쟁탈전’이 벌어져 그 ‘싸움터에는 포연’이 자욱하다. 특히 중국의 서부지역이거나 동북지역의 대학들에서는 인재들이 적지 않게 남방지역이거나 동부지역으로 빠져나간다. 하여 상기 지역의 대학교장들은 혼비백산이 될 지경이다. 왜냐 하면 주어진 조건으로 봐서 좋은 인재 유치하기는커녕 이미 확보했던 인재들마저 떠나가니 실로 집기둥이 흔들흔들할 지경이다. 남방이나 동부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높은 대우를 줄 수가 있다면서 서슴없이 초빙광고를 인터넷에 올려보낸다. 무슨 “100만원의 로임, 200만원의 연구경비 조달, 그리고 아빠트 구입비를 조달하고 자식들의 좋은 학교 전학 등 그 조건이 그야말로 화려한 백화점의 금품가게를 통채로 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른바 특별초빙해가는 인재들은 반드시 알송달송한 ‘월계관’을 가진 학자들이거나 그 무슨 ‘학과권력’을 가진 교수가 최우선으로 뽑혀간다. 례하면 ‘월계관’을 쓴 학자들 즉 ‘장강학자’, ‘천인계획인재’, ‘걸출한 청년인재’, ‘백천만 우수인재’, ‘장백산학자’, ‘룡강학자’, ‘교육부 과세기 인재’ 등등. 이외에 또 ‘전국명사’, ‘전국로동모범’ 등 정부에서 선발했다고 하는 다양한 첨단인재들의 호칭들이다. 어찌 이 뿐이랴? 학자들에게 차례진 수두룩한 ‘학과권력’도 있다. ‘국무원 학위위원회 학과조 평심위원’, ‘교육부 전업 지도 위원회 위원’, 그리고 또 무슨 ‘국가중대프로젝트 수석교수’, ‘국가사회과학기금 프로젝트 평심전문가’ 등등. 그래서 ‘월계관’과 ‘학과권력’에 따라 값을 매기게 되는데 대체로 년봉 80만 혹은 60만으로 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년봉 100만, 200만원 지어는 300만원을 준다는 광고도 있어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다. ‘월계관’과 ‘학과권력’을 가진 학자들이 살아갈 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리해하기 힘든 것은 이른바 ‘월계관’을 쓴 교수들 가운데는 이미 국가정부적인 례우를 받았는데 아예 재탕해서 그 이름으로 팔려간다는 점이다. 또한 무슨 위원이요, 무슨 전문가요 하는 것은 정부 교육행정부문에서 학과평가거나 전업 평가 필요를 위해 선발된 사람들인데 그 책임이 ‘학과권력’이 되고  돈으로 계산되여 시장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이다. 대학교를 잘 꾸리려면 고차원의 인재가 요구되고 또한 인재가 대우거나 교육환경을 보고 류동하는 것은 정상적인 이주 현상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재  ‘쟁탈전’은 정상적인 인재류동이 아니라 일종의 체제운행의 페단으로 인기되는 악순환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재쟁탈전’이 벌어지는 주된 원인은 당면 대학 평가와 그에 따른 교육자원 특히는 자금투자가 문제가 있다. 왜서? 지금 국가에서는 세계일류 대학, 세계일류 학과 건설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에 보조를 맞추어 각 지역들에서도 일류학과, 일류대학 건설을 다그치고 있다. 이는 나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그에 따른 평가내용이거나 평가기제가 문제가 있다. 대학 평가의 기준을 보면 상기한 인재들에 대한 유무는 중요한 지표로 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거나 각 성 정부에서의 일류대학, 일류학과 건설 행렬에 뽑힘에 따라 교육자원을 분배받게 되는데 정부차원의 거액투자가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각 대학들에서는 이러한 체제에 부응하여 인재유치를 하기 마련이며 그것이 이미 악순환되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과연 대학발전에 리로운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할 바이다. 다음으로 대학교수들 자체로서도 생각해볼 바가 없지 않다. 물론 수많은 ‘월계관’과 ‘학과권력’을 가진 교수들 가운데는 뛰여난 인재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요리조리 관계망을 늘여가면서 ‘월계관’과 ‘학과권력’을 독차지한 교수도 적지 않으니 특히 그 후자의 교수들이 팔려가는 자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학의 교수는 대학의 령혼이고 사회량심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그럴진대 개인적 타산에 기울어져 ‘월계관’이거나 ‘학과권력’을 팔아서 가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난감하다. 정녕 가장 우수한 교수는 자신의 학문으로 사회의 량심과 도덕을 설계하고 그것을 사회적 실천으로 옮겨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상반대로 자신의 안일과 리익에 대비해 이리저리 옮겨가니 평범한 교수들에게 주는 타격은 일언 난방이다. 가령 학문의 실력으로 그리고 학문연구의 욕망으로부터 더 좋은 대학으로 간다면 그래도 리해가 간다. 례를 들어 지방대학에서 국가중점대학으로 옮겨간다면 리해가 가지만 국가중점대학에서 지방대학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분명 그것은 리해타산에 기울어진 소행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인젠 년령상 학문적 연구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팔려가는 것은 ‘월계관’과 ‘학과권력’을 시장에 팔아넘기는 장사군의 소행이다.  당면한 현실에서 이러한 악순환을 수습하자면 국가차원에서의 대학평가 내용과 기제를 바꾸어야 한다. 즉 수다한  ‘월계관’과 ‘학과권력’들을 평가내용에서 일축하여야 하며 좋기는 학자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거나 ‘학과권력’을 급별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가령 학과평가를 위해 전문가가 필요하다면 매차례 평가를 위해 전문가소조를 구성하면 될 것이지 굳이 학과평의조 성원도 2기씩 즉 10년씩이나 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 10년씩이나 하게 되니 자연히 ‘학과권력’이 형성되고 ‘기득권리익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대학들을 살펴보면 교수들에게 ‘월계관’을 달아주거나 ‘학과권력’을 행정적으로 주는 경우는 지극히 보기 드물다. 그 일례로 원사라는 학문적인 영예는 있어도 그것은 영예에 그치지 그것이 그 어떤 급별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명함장에는 물론 리력에서도 원사라고 밝히지 않는다.  북경대학 석좌교수인 전리군钱理群교수는 대학에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흔들림에 대하여 “북경대학을 포함한  우리의 대학들은 지금 적지 않은 총명한 리기주의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들은 지력이 아주 높고 세속적이며 성숙되여있고 표현력이 아주 좋고 협조력이 강하며 특히는 체제를 리용하여 손쉽게 자기의 목적에 도달한다. 일단 이러한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장악된다면 일반적인 탐관오리들에 비해 위해가 더 크게 된다. 우리의 대학들에서는 지금 이러한 독 있는 양귀비꽃들을 양성하고 있다.” 참으로 정곡을 찌른 명가의 소름 끼치는 발언이다. 나는 얼마 전 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이며 학부주임인 장교수를 만나 당전의 ‘인재쟁탈전’에 대하여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장교수는 모 지방대학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는 나에게 남방의 어느 대학에서 거금을 내놓겠다고 하면서 종신교수로 초빙하겠으니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단호히 거절했다고 했다. 그 거절한 리유인즉 학자가 현실의 리익 혹은 만년의 안일을 위해 직위거나 지식을 팔아가는 소행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대학자는 학문으로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인류복지를 위해야 한다는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장교수의 가치관념에 동감되기도 했다. 장교수와 같은 진정한 학자들은 정말 사회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지극히 아름다와도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복지에 독이 되는 그런 ‘양귀비꽃’과 같은 학자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장사군들은 현실에서 살고 진정한 학자는 력사의 장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력사의 장안에 남을 수 있는 진정한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 순수한 학문의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그 날을 기대해본다.    출처: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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