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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인격으로 한다
김병민
요즘 학술계에서는 학술부패가 늘 거론된다. 그 무슨 다른 사람의 론문을 베껴서 발표했다느니 한편의 론문을 쪼개서 두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다느니 또한 같은 론문을 약간 윤색해서 두개 잡지에 발표하는 등 온갖 수단을 써가며 론문을 발표하고 그것을 교수 승진의 밑거름으로 한다. 어찌 이 뿐이랴? 어떤 이는 정치풍향에 맞추어 학문의 분야를 이리저리 옮겨가는가 하면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추기에 신경전을 벌인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학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반드시 극복되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데는 당면 대학의 학술문화 나아가서 대학의 학술평가제도 그리고 정부에서 만들어낸 교수 승진 학술조건 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학자들의 학술리념과 학술인격이다. 대학교수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생명의 선택이고 생활의 전부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대학교수는 학술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기본적인 사명 즉 지식생산의 사명을 수행해나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문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함은 교수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의 정신은 학자의 인격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나는 연변대학 력사학부의 젊은 교수들이 조직한 로교수 박진석교수 90 탄신 및 교육종사 6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였다. 기념행사는 박교수의 제자 수십명이 참가하였고 박교수의 대학동창생들인 박문일 교장, 허청선교수 등 원로들도 참가하였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박진석교수의 학문정신을 찬양하였고 그 학술성과의 가치와 위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그 날 여러분들의 발언을 귀납해보면 첫째는 한마음 한뜻으로 학문에 정진했고 둘째로는 중요한 학술령역 즉 고구려 연구에서 풍부한 성과를 따냈으며 셋째로는 학술 론쟁에 대담히 나서 자신의 학술견해를 피력하여 학술계에 신선한 기운을 몰아온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모두 정평이라 하겠다. 박교수는 9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서하시고 계신다. 또한 론문을 써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로 되여있어 모두들 감격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 날 나도 발언할 기회를 얻어 언감생심 로교수의 삶과 학문정신에 대해 찬사를 한 바 있다.
나는 1980년대 후반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박교수에게서 조선력사 과목을 경청한 바 있다. 박교수의 첫날 강의는 참고서와 참고론문을 제시해주는 날로 되였는데 무려 30여부 저서와 160여편의 론문을 참고문헌으로 제기하였다. 박교수가 읽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써야 했는데 두시간 남짓이 받아쓰고 나니 손목과 팔꿈치가 시큰시큰했다. 강의시간에는 교재내용 대로 강의하지 않았고 주로는 학술계에서 쟁론되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학술견해를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조선력사에서의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을 어떻게 보겠는가? 조선 삼국시기와 일본의 관계에서 어떤 학문적인 론쟁이 있는가? 리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뚤러싸고 어떤 부동한 견해들이 있는가 하는 내용들이였다. 이런 강의내용은 조선력사를 처음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큰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따라서 박교수의 강의를 통해 학문의 취지, 학문의 내용, 학문의 목표 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터득할 수 있었다. 종강이 되자 학기말 성적으로 론문 한편을 쓰되 반드시 발표할 수 있는 수준이여야 했다. 그 해 나는 력사학 관련 론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했다. 아무튼 박교수의 강의는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문학연구의 력사학 시각, 그리고 풍부한 력사지식과 함께 문학과 력사학의 학제적인 연구에 좋은 길잡이가 되였다. 그 때 나는 학자의 권위성은 학술수준, 그리고 론문수준으로 평가됨을 터득하였다.
박진석교수님은 일심정력으로 학문에 정진한 분으로 학문 이외 다른 일에 한번도 정신을 팔아본 적이 없다 한다. 이를테면 행정보직이라던가, 명예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선 넘겨다 보지 않고 초월한 자세로 살아오신 분이다. 특히 중년 이후로는 매일 건강관리를 위한 산책 외는 독서와 론문 집필에 몰두하여 학자의 귀감이 된 분이시다.
박진석교수의 학자적인 인격은 학문적인 쟁론에서 추호의 양보도 없는 대쪽 같은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호태왕비 연구를 둘러싸고 일본 학자의 그릇된 관점에 대해 충분한 근거로 비판하고 자신의 독보적인 관점을 제시하여 학계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박교수의 학술적 거작인 《호태왕비와 고대 조일 관계 연구》(1993)는 그 풍부한 지식성과 학문적 견해의 독창성으로 학술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저서에는 박진석교수의 학술인격 즉 학자적인 독립성이 잘 반영되여 주목된다 하겠다.
진정으로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학술적 인격이 구비되여야만 한다. 가령 학문적으로 독립정신이 없이 갈대처럼 바람에 따라 좌왕우왕한다면 학자로서 자격미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릇된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가 있다. 또한 사이비 학문으로 하여 력사에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우리는 문화혁명 시기 정치적인 풍향에 따라 자신의 지위, 명예, 리익 등을 위해 학문을 외곡하고 세상을 크게 그르친 사이비 학자들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박진석교수는 문화혁명 시기에는 진정한 학문을 할 수가 없어 절필하면 했지 어용학자 격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특히 한때 고구려연구가 국제정치 관계 문제로 불거지여 일부 청년학자들은 적지 않게 고구려 연구에서 손을 떼려고 할 때도 박진석교수는 오히려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연구가 요청되지 않겠는가? 부동한 견해를 서로 내놓고 허심탄회하게 교류하고 진상을 밝히는 것이 력사학자의 사명이니 절대 뒤로 물러설 수가 없다.” 라고 했다. 박교수는 이렇게 말씀했을 뿐만 아니라 실행에 옮기여 고구려에 대한 학술 연구를 심입시키였고 좋은 론문을 써서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하여 나중에는 국가 주요 연구기관의 학자들의 주목한 바 되였고 두 나라 사이 력사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어감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훌륭한 학자는 진정한 학문성과를 통해 진리창출을 실현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박진석교수의 학문적 인격과 독립정신은 연변대학 인문정신의 일부분으로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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