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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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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이제는 선비도에서 벗어날 때 댓글:  조회:820  추천:0  2022-06-30
만물유도(万物有道)라는 말이 있다. 세상 만물이 다 제각기 가는 길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길이 있고 너는 너의 길이 있다. 중세의 유럽인들은 기사도를 흠상했다. 그러다가 유럽문명이 발달하면서 신사도로 전환했다. 중국인들은 군자도를 주창했다. 일본인들은 무사도를 확립했다. 우리는 어찌했나? 선비도를 숭상했다. 선비도는 덕이 있고 지조가 굳으며 지식있는 사람으로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선비들은 ‘례의’로 행동을 규제하고 ‘렴치’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단속했으며 안빈락도와 청렴을 실천했다. 또한 선비는 대의를 위해 뻔히 죽을줄 알면서도 임금에게 직언하고 상소하는 엄청난 용기와 정의감을 가진 존재였다. 더우기 선비는 학문을 꾸준히 닦아 경지에 다달아야 했다. 선비는 그저 지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물의 리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선비들은 원리에 충실했고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다. 우리는 이러한 선비도를 숭상하며  선비의 길을 걸어왔다. 세세대대로 유전자 속에 선비정신이 녹아있는 우리 민족은 천성적으로 독서를 좋아했다. 고관대작은 물론 일반 서민들도 공부에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조건이 허용되는 한 짬만 나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일상이 됐다. 19세기 프랑스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 때 헐망한 초가삼간에도 책 몇권씩 놓여있는 것을 보고 심히 놀랐다고 한다. 타민족은 인가가 세채 있으면 식당을 차리지만 우리민족은 서당을 열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거친 만주땅에 와서도 학교부터 세웠으며 거주지에는 꼭 학교가 있었다. 무식하다고 하면 다른 민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저 지식이나 학력이 없는 사람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놈)!”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욕이 된다. 이 말을 들은 당사자 또한 아주 큰 모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설사 어느 집안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그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온 동네에서 모두들 부러워했고 감히 업신여기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인즉 경제활동에 무관심했고 경제에서만큼은 무능했다. 공자는 도에 뜻을 두어 거친 옷이나 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격을 선비의 모습으로 강조했다. 공자가 창시한 유교를 큰 려과없이 숭상한 조선의 선비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조선의 선비들은 손에 돈을 쥐는 법이 없었고 쌀값을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들은 장사 머리가 트지 못했고 상업에서만큼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숙맥이였다. 그런데다가 상인을 깔보기까지 하는 사회적 풍토마저 조성됐던 것이다. 옛날 한양 변두리에는 반상(班商)이라는 령세 상인들이 있었다. 량반 행세로는 목구멍에 풀칠할 수 없어 신분을 속이고 작은 장사를 하는 량반상인들이였다. 그런데 이 량반상인들이 작은 장사를 하여 번 돈으로 먹고 입고 사는 데는 쓰지만 자식들을 가르치는 필묵(笔墨)값으로는 절대 쓰는 법이 없었다. 옛 량반들은 장사를 천대했기에 장사해서 번 돈은 부정하다 하여 글을 가르치는 신성한 일에 쓰지 않는 것으로 량반의 체통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반상들은 직접 농사를 지은 소득으로만 필묵값을 댔다. 구한말에 조선에 온 서양의 선교사나 려행자들은 조선의 량반들이 빈궁하면서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이 놀라왔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시대는 변했다. 21세기에 들어선지도 한참 됐다. 우리 민족이 비전을 가져와야 할 때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공부 잘하는 민족으로만 만족할게 아니라 장사도 잘하고 기업경영도 잘하는 우수한 민족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유태민족은 지식과 금전을 량손에 틀어쥔 민족이다. 유태민족은 어느 나라에서 살든지 주재국의 경제를 주무르며 그 튼튼한 실력으로 정치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 후세들에게 마음 먹고 경제교육을 시킨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영국 엘스터대학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유태인의 평균 IQ(지능지수)는 94, 우리 민족은 106이다. 2003년말 오스트리아의 빈의과대학에서는 50개 나라 민족의 IQ를 비교한 후 우리 민족이 2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제부터는 자식들에게 “공부해라!”는 독촉만 할 것이 아니라 체계를 갖춘 경제교육도 병행하고 가강하여 경제에 대해 눈을 뜨게 하고 재미를 느끼게 함으로써 후대들의 골수에 경제DNA가 녹아들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선진국에 가서 마냥 품팔이만 하는 민족으로 살아갈 수만은 없다. 현재 중국의 로임수준은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로임수준이 선진국의 로임수준과 격차가 좁아져 외국으로 뛰쳐나갈 필요가 없어질 때 우리는 무슨 재간으로 국내에서 벌어먹고 살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선비도의 틀에서 벗어나 경제머리가 트인 민족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시급하고 절실하다. 연변일보 2022-06-28
43    문신은 예술인가 댓글:  조회:693  추천:0  2022-06-01
요즘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훨씬 높아졌고 청결의식도 크게 제고되여 거의 모든 자택에 샤와설비가 설치되여있음에도 시설이 좋고 공간이 널직한 대중 싸우나와 목욕탕을 리용하는 시민들이 많다. 필자도 몇해 전부터 대중목욕탕 출입이 잦아졌다. 목욕탕에서 시민들과 어울려 목욕하면서 예전과 다른 많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몸이 불결하여 씻으러 오는 손님보다도 피로를 풀고 인생을 즐기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공중 질서가 잡혀있었으며 목욕비품들이 분실되는 일이 없었다. 이처럼 여러가지로 많은 변화가 있는 중에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은 몸에 문신을 새긴 남성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깨, 가슴, 팔뚝, 손목, 발 등 여러 부위에 룡, 호랑이, 수리개, 장미꽃, 인명, 영어문자… 등 문양이나 도안을 그린 청년들, 지어는 나이 좀 든 장년들도 곧잘 보인다. 문신을 새긴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시일이 지나 문신남(纹身男)들과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게 되였다.   문신의 력사는 길다. 문신은 고대의 신분증이였다. 혈족에 따라 다른 문양을 새김으로써 소속을 표시하고 그 모양을 달리해 신분고하, 성인 및 결혼여부를 립증했다. 서양에서의 문신은 고대 애급에서부터 소속이나 지위를 나타냈으며 장식의 용도로도 쓰였다. 또한 문신을 통해서 신의 힘을 받아들여 재앙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사악한 힘을 물리치려는  주술적이며 종교적인 목적도 있었다.   동양에서는 문신을 대체로 죽은 사람의 몸에 그려넣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는 행위였다. 주나라 이후 문신을 오랑캐의 풍습으로 여겨 멀리했고 나중에는 범죄자의 몸에 먹물로 문신을 새겨 형벌로 삼았는데 중죄인에게는 중벌로 얼굴에 글자나 문신을 새겨넣기도 했다. 문신에서 범죄를 떠올리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고려왕조부터 조선왕조초까지도 묵형(墨刑)이라는 형벌이 행해졌다. 여기서 유래된 욕이 ‘경(黥)을 치다’이다. 경이란 바로 자자를 뜻한다. ‘경을 칠 놈’이라는 옛 어른들의 질책도 그 뜻을 리해하고 보면 아주 무서운 말이다. 죄를 지어 평생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의 욕설이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주신 몸에 함부로 락서하고 다니면 사람들로부터 망종이라고 숱한 욕을 먹었다. 유교문화의 농후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가의 주요 경전인 13경(经) 중 《효경(孝经)》 첫장에  ‘신체발부수지부모(身体发肤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伤孝之始也)’라는 그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 공자도 제자인 증자에게 ‘효의 원칙과 규범’을 얘기하면서 “사람의 신체와 터럭,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이야 어찌됐던 시대는 확실히 변했다.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문신을 한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크게 퇴색했고 세상은 한결 너그러워졌다. 아르헨띠나의 유명한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걸어다니는 문신이다. 오른팔과 두 다리는 물론 등에도 문신을 새겨넣었다. 전신에 호랑이와 룡, 불교기도문을 새긴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 등 녀성 연예인들의 경우도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다.   문신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신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기성세대중 상당수는 문신이 미풍량속을 해치고 청소년들의 정서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신에 대한 젊은층들의 인식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육체에 대한 엄숙주의도 전복됐다. 젊은층들은 문신을 자신의 몸에 표현한 개성이나 패션, 액세서리, 미용으로 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견해를 들으면서 기성세대는 어느 정도라도 리해를 해줘야 하는 것일가? 력동적인 청춘들이 문신을 하는 것은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우 긴장하고 그만큼 내면의 불안도 크며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하고픈 욕구가 클 것이다. 련인의 이름이나 하트를 새기는 것은 쉽게 만나고 헤여지는 의리 없고 변덕스런 현시대 사랑의 속성에 대한 반항일 것이며 격언이나 맹수의 도안을 새기는 것은 자신을 지탱해줄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문신에 대해 찬반 량론이 무성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정갈한 몸에 인위적으로 문양을 새겨넣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치렬한 론쟁 끝에 문신을 합법화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도 문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나 동양의 일본, 한국의 대중목욕탕에서는 몸에 커다란 문신을 새긴 고객의 출입을 크게 꺼리고 있으며 많은 업소들에서는 아예 거절하고 있다.   2021년 12월 28일, 국가체육총국에서는 향후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축구팀 선수들에 대해 문신을 금지하는 등 사상교양강화 방안을 제기했다. 축구대표팀에서 뛸 선수들은 국가체육총국의 새로운 지침에 따라 문신을 금지하고 또 이미 문신을 새긴 선수들은 이를 제거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는 문신을 가리면 축구대표팀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던 기존의 조치보다 가일층 강화된 규제이다. 결국 나라에서도 문신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 력점을 둔 것이다.   문신을 예술이나 패션으로 보자면 아직은 마음이 영 불편하다. 연변일보 2022-06-01 09:01:09
42    힘내라, 임인년 새해다 댓글:  조회:482  추천:0  2022-03-05
나이가 들수록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빨라진다. 온종일 별로 한 일이 없어 하루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1년도 잠간이다. 그래서‘하루는 긴데 1년은 짧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의 뇌는 시간을 동등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특히 반복되는 일상은 뇌가 주목하지 않기에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기억에 없으니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으로 느끼게 된다. 심지어 시간이 통채로 증발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사다난했던 2021년도 그랬다. 지난 한해에도 세계인들은 고단했다. 세계인들에게 있어서 2021년은 어떻게 기억될가? 막상 떠올리려고 애쓰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2021년은 코로나19 사태가 2년째 이어진 가운데 일상 회복 움직임이 본격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역시 희망은 적고 불안과 두려움이 컸던 한해였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났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만큼 코로나의 여파가 드셌다. 코로나 팬데믹(대류행)은 세계를 마비시켰다. 백신접종이 확산되고 여러가지 방역조치가 효과를 거두면서 코로나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년말에 갑작스레 나타난 오미크론으로 코로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일상으로의 회귀는 더 멀어졌고 인류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회의를 느끼게 했다. 2021년 인류는 지쳐있었으며 참으로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2008년부터 중국 대륙과 대만 량안 학자들은 매년 그 한해를 상징하는 한자를 선정한다. 학자들이 뽑은 한자 후보군 가운데 대륙과 대만 량안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그 해를 상징하는 한자를 뽑는 것이다. 량안 학자들은 지난 년말에도 어김없이 2021년을 상징하는 한자를 뽑았다. 학자들은 총 36개의 한자를 추천했다. 1608만명이 참가한 1차 투표에서 변할 변(变)자와 돌아올 복(复), 느슨할 완(缓)자와 물리칠 병(拼), 근심할 우(尤)와 위태로울 위(危) 등 글자가 최종 10위권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어려울 난(难)자가 113만표를 얻어 2021년을 상징하는 한자로 최종 선정됐다. 그러나 량안의 학자들은 지나간 2021년은 정말 어려움이 많았지만 2022년에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년말년시가 되면 지나간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고 따라서 새로운 한해도 궁금해진다. 지난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의 해였고 색상으로는 ‘흰소의 해’였다. 소는 강한 뿔로 아래에서 우로 드세게 치받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의 이런 력동적인 모습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다. 소의 기운을 받은 2021년 인류는 코로나가 종식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아쉽게도 빗나갔다.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이다. 그런데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뭔가 례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력사적으로 임인년은 범상치 않았다. 일례로 60년전인 1962년 임인년에는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던 꾸바사태가 벌어졌었다. 미국과 쏘련의 기싸움에 세계가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였다가 풀려난 해이다. 임진왜란이 벌어졌던 1592년 임진년은 비록 ‘호랑이의 해’는 아니고 ‘룡의 해’였기는 했으나 평범한 룡이 아니라 검은 룡의 해였다. 때문에 올해 검은 호랑이의 례사롭지 않은 기가 제발 좋은 방향으로 뻗쳤으면 하는 소원이 간절하다. 동양학자들이나 역술가들의 해석을 살펴봤더니 “검다는 것은 방위상으로는 북(北)을 가리키고 오행으로는 수(水)이다. 무엇보다도 검다는 것은 력동적이라는 의미이다”라고 풀이한다. 아울러  “2022년은 질풍노도의 해가 될 듯 하다”고 동양학자들은 예언한다. 힘차고 거침이 없는 한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또한 오행의 물이 상징하듯 어떤 모양도 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한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일반적인 짐승이 아니라 존숭과 신앙의 대상, 그리고 동시에 공포의 대상, 보은의 령물로 인식했다. 호랑이가 가진 용맹함과 강인함, 지략과 의리, 덕성때문이다. 지금도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설화에서 호랑이는 신통력을 가진 령물에 인간과 교유하는 동물이자 인간에게 은혜를 갚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민화에서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기원하는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검은 호랑이는 특히 나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는 동물로 알려져있다. 임인년의 검은 호랑이가 코로나를 싹 다 물리치고 모두에게 복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사실 2022년은 이미 정해진 이벤트만 봐도 기분 좋은 축제의 한해가 될 수 있다. 우선 국내적으로 지구촌의 대축제인 북경동계올림픽이 2월 4일 개최된다. 하반년에는 력사적 의미가 깊은 중국공산당 제20차 전당 대회가 열린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까타르 월드컵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산유국인 까타르는 이번 월드컵에 무려 2200억딸라를 퍼붓는다고 한다.  2014년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과 2018년 월드컵 개최국인 로씨야가 쓴 돈의 20배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속에 진정한 지구촌의 대축제가 열렸으면 한다. 해마다 년말이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정치, 경제 평론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새해의 전망을 밝혀보는 책을 발간한다. 그들이 발간한 《2022 세계 대전망》을 살펴보면 2022년 역시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들이닥칠 모양이다. 코로나 팬데믹 종식과 함께 로동과 휴식의 형태부터 변한다고 했다. 동양학과 역술도 별미이지만 서양의 합리적인 예측도 읽어볼만 하다. 솔직히 새해인 2022년을 맞았음에도 이 성가신 코로나를 언제쯤 완전 종식시킬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한 공포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새해를 맞았으니 절망 너머로 꿈꾸는 희망은 있다. 희망은 희망하는 자의 것이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절망의 끝에는 언제나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새해를 맞는 것은 사뭇 설레이는 일이다. 무한반복 일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설레임은 래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라는 희망을 전제로 한다. 우리 인류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온 힘을 쏟고 있으니 새벽의 려명처럼 찾아올 희망을 품어야 한다. 코로나는 인류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대재앙이지만 과거에도 온갖 어려움을 용케 이겨냈듯이 오로지 지혜롭게 련대해 ‘어둠의 강’을 건너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임인년 2022년에도 나아질 것 없을 것이라는 일부 사람들의 비관론이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 새해에도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힘들고 괴롭지만 그래도 우리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인류는 여태까지 길고 긴 고난의 길을 걸어왔고 어려운 고비를 하나 하나 넘기며 인류의 력사를 알차게 써왔다. 코로나 때문에 인류의 력사가 절대로 종말을 고하지는 않을터. 폭풍 뒤에는 반드시 맑은 하늘이 찾아온다. 지금의 이 괴로움이 나중에 더 큰 즐거움으로 찾아올지 그 누가 알겠는가. 새해에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용맹하고 다정한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가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두려움없이 용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한해가 되였으면 한다.
41    마지막 그 한마디 댓글:  조회:1117  추천:2  2022-02-24
마지막 그 한마디 김태호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감회에 젖거나 회한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고마왔던 사람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도 한다. 시한부 삶은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매우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나마 죽음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라도 주어져 어느 정도 수습 정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돌발사고나 분초를 다투는 급병으로 갑작스레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된다면 어찌할가? 만약 당신이 이런 경우에 봉착했다면 누구에게, 그리고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1985년 8월 12일 오후 5시 57분, 일본 수도 도꾜의 하네다공항에서 출발해 오사까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소속 보잉747 려객기가 도꾜에서 100킬로메터 떨어진 군마현 다까마가하라산 릉선에 추락해 탑승인원 524명 중 520명이 숨진 단일 항공기 중 가장 최악의 항공 대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유물 수색 작업 전문 담당팀이 담배갑 하나를 발견했는데 담배갑 겉봉에는 다급하게 적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에 어느 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쓴 마지막 한마디였다. “건강하게 자라라. 뜻을 굽히지 말고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정진하여라. 곁에서 힘이 되여 주지 못하고 일찍 떠나서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에 대항하는 이슬람 과격 테로단체인 알카에다는 려객기를 랍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쎈터 건물을 무너뜨렸다. 려객기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당장 다가올 죽음을 앞두고 가족에게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 그동안 다하지 못한 사랑을 애타게 전했다. 어느 한 딸은 공포에 떨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지금 랍치당했어. 저기에 세명이 폭탄을 가지고 있어.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무너져내리는 세계무역쎈터 건물 안에서 어느 한 남편은 휴대전화로 안해에게 마지막 문자를 썼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여보, 당신을 사랑해. 정말 사랑해! 살아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안녕!” 2014년 4월 16일 오전, 한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린근 바다에서 인천에서 출항해 제주로 향하던 려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수학려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두려움에 떨며 쓴 마지막 문자메시지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저민다. 한 학생은 “엄마, 잠시 뒤면 내가 말 못할가봐 보낸다. 사랑해!”라고 썼다. 평소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죽음을 당장 앞둔 그 순간에 전했던 것이다. 학교 연극부를 다니던 다른 한 학생은 연극부 대화창에 “연극부 친구들, 다들 사랑해! 우리 죽을거 같아. 잘못한거 있으면 용서해줘.”라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2018년 3월 25일 오후 로씨야 케메로보주 케메로보에 있는 쇼핑몰 짐나야 비시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층에 있는 어린이 놀이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불과 10초만에 검은 연기가 건물 내부을 덮었다. 이 화재로 64명이 사망하고 79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 상당수가 어린이들이였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부모를 따라 영화를 보러 나온 어린이들이 많았기에 어린이 희생자가 유난히 많았다. 화마로 희생된 어린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문자메시지들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12살 소녀 비카가 휴대전화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빠져나갈수 없어요. 엄마 사랑해!”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극한의 공포속에서도 가족이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양력설을 나흘 앞둔 자정이 다가오는 심야, 평소에 건강 하나만큼은 자부하던 필자는 원인불명의 심근경색으로 돌연 실신하며 쓰러졌다. 얼마 뒤 겨우 의식을 되찾고 산소호흡기를 장착한채 구급차에 실려 연변병원에 이르렀다. 급진을 마친 심혈관 전문의들은 막힌 혈관 면적이 매우 커서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라며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통보하는 것이였다. 최선을 다해 구급하며 분주히 오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면서 필자는 ‘죽음도 멀리 있는게 아니라 지척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잠간 했다.  순간 일본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고 있는 아들이 그리웠다. 4년 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이였다. 아들이 학업을 원만히 마치고 착한 처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꼭 전하고 싶었다. 다행히 필자는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고 또한 의료진의 높은 의술로 스텐트를 삼입해 심장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받고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가 이승으로 다시 돌아왔다. 퇴원하는 날 병실을 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늘 보던 푸른 하늘이였건만 이날 따라 그토록 아름다웠으며 그 하늘 아래에서 분주히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대지를 우뚝 딛고 숨 한번 크게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로씨야의 대문호 레브 똘스또이는 1885년에《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을 저술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삶에 대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지금부터의 삶을 인생의 덤으로 알고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의 살아숨쉬는 모든 정직하고 선량한 생명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연변일보
40    ‘호랑이 해’ 의 기원 댓글:  조회:590  추천:0  2022-01-27
‘호랑이 해’ 의 기원 김태호 1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서 가장 용맹하고 위엄있는 동물인 호랑이의 또 다른 명칭은 ‘범’이다. ‘호랑이’와 ‘범’은 동의어이지만 그 어원이 다르다. ‘호랑이’의 어원은 한자어와 우리 말 접미사가 결합된 것으로서 ‘虎狼이’가 정확한 표기이다. ‘虎狼’은 범을 뜻하는 ‘虎(호)’와 이리를 뜻하는 ‘狼(랑)’이 합쳐진 명사이다. 명사형 접미사 ‘이’가 합쳐져 ‘호랑이’란 이름이 나타나게 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호랑이는 비록 무서운 동물이지만 또한 존귀한 존재여서 인간에게 있어서 신성함의 대상이였다. 하여 ‘범’이라는 순 우리 말이 금기시되면서 그 명칭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호랑이’로 대체됐다. 2 조선왕조 시대에 조선 경내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하여 민가(民家)의 호환(虎患)이 매우 잦았다. 녀자들이 산에 나물 캐러 가거나 버섯 뜯으러 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였다. 특히 생리 중인 녀자가 산에 가면 더욱 위험했다.  호랑이가 먼 곳에서 피냄새를 맡고 달려들었기때문이다. 력사자료에 의하면 17세기 초까지 조선 반도에서 매년 잡힌 호랑이와 표범이 1000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경내에 호랑이가 많고 사람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호식(虎食) 사건이 하도 많이 발생해 “조선에서는 1년 중 절반은 호환 문상을 다니고 절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소문이 중국에서도 떠돌았다고 한다. 또한 호랑이에 관한 옛말이나 호랑이로 인한 사건들이 너무 많이 발생해 학자들은 조선을 ‘호담국(虎谈国)’이라고 칭했으며 구한말기 서양인들은 조선을 ‘호랑이 나라’라고 묘사했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의 대문호 로신 선생도 조선인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들었다고 한다. 3 예로부터 호랑이 그림은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避邪)의 이미지로 사용됐다. 새해 첫날 호랑이 ‘虎’자를 쓴 종이를 대문에 붙이고 호랑이를 그린 세화(岁画)로 액막이를 했다. 단오에는 쑥, 참대쪽, 헝겊 따위로 만든 호랑이 형상의 애호(艾虎)로 악귀를 막았다. 녀자들이 단오에 애호를 만들어 머리에 이면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타는 가마 우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 부정과 잡귀를 막았으며 부녀자들은 액을 막기 위해 호랑이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차고 다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공포의 대상보다도 존숭과 신앙의 대상, 은혜를 갚을줄 아는 보은의 령물로 인식했다. 호랑이가 가진 용맹함과 강인함, 지략과 의리, 덕성은 인간들로부터 매우 인정을 받았다. 하여 호랑이는 흉악하다는 이미지를 벗고 우리와 친숙해졌으며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무진한 기운을 상징하는 동물로 각인됐다. 연변축구팀의 마스코트로 호랑이가 선정됐으며 유니폼 로고에도 호랑이 얼굴이 새겨져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용맹한 호랑이 정신으로 무장해 그 어느 강팀도 두려워하지 않는 연변축구팀의 기개는 중국 축구팬들을 감탄시켰으며 연변축구팀의 불굴의 투지 앞에서 국내 여러 축구 강팀들은 떨고 떨었다. 하여 연변축구팀은 전국에서 ‘장백호랑이’ 불리웠다. 4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이다. 호랑이 중에서도 ‘검은 호랑’이다. 동양학에 의하면 우주 만물은 오행, 즉 목·화·토·금·수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음양을 합치면 10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10간이다. 10간은 각기 특정한 색과 방향, 시간을 상징한다. 갑·을은 청색, 병·정은 적색, 무·기는 황색, 경·신은 백색, 임·계는 흑색이다. 임(壬)은 색상으로는 검은 색이고 년도를 나타내는 인(寅)이 호랑이기때문에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계에 실제로 검은 호랑이가  존재할가?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자연에서 백호는 가끔 목격되지만 진짜 흑호가 발견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한다. 흑호라고 불리우는 호랑이가 있기는 하나 엄밀한 의미의 진짜 검은 호랑이가 아니라 무늬나 점이 크고 짙어지는 아분티즘 증상을 띤 호랑이로서 이 현상은 특이하게도 벵골호랑이에게서만 매우 드물게 관찰된다고 한다. 5 호랑이에 관한 묘사나 사자성구가 많다. 사납고 잘 싸우며 위엄있는 장수를 ‘호랑이같은 장수’라고 일컬으며 한가지 재주만으로도 훌륭한 사람에게  그에 못지 않은 좋은 재간이 또 하나 늘었음을 이를 때 ‘호랑이에게 날개 돋친듯’이라고 비유한다. 목표물을 취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며 날카롭게 형세를 살핌을 ‘호시탐탐(虎视眈眈)’이라 하고 처지가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호미춘빙(虎尾春冰)이라고도 한다. 호랑이는 예리한 눈으로 방향을 잡고 기회를 포착한 후 민첩하게 사냥물을 포획한다. 산 중의 대왕이지만 연약한 산토끼 한마리를 낚아채는데도 추호의 소홀함이 없이 까근한 전술을 구사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과연 ‘백수의 왕’다운 장중한 풍격이다. 6 호랑이가 내려왔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가 시작됐다. 동양학자들은 “검다는 것은 력동적이라는 의미이며2022년은 힘차고 거침없는 질풍노도의 한해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특히 검은 호랑이는 액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는 동물로 알려져있다. 용맹하고 신성한 호랑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호시탐탐 코로나를 노리다가 날렵하게 단번에 코로나를 콱 물어갔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용맹한 호랑이를 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좋은 결과과 있기를 기대하고 기원해본다. 2022 임인년은 호랑이의 힘으로 나쁜 기운을 누르고 코로나19라는 인류 력사상 류례없는 역병을 물리치고 인류에게 복을 가져오는 길상의 해가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연변일보 
39    기품으로 승부를 걸어라 댓글:  조회:768  추천:0  2021-08-03
“녀성은 25세가 지나면 청춘을 말하지 않고 35세가 지나면 젊음을 론하지 않으며 40세를 넘기면 자신이 청춘시절에 얼마나 예뻤던 간에 더 이상 자색을 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녀성은 영원히 아름다움을 화제로 삼는다.”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저명한 아나운서 서리(徐俐)는 청춘과 미에 대한 녀성들의 심리를 이처럼 단적으로 표현했다. 높은 지적 수양을 구비한 녀성의 말이라 신빙성이 느껴지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말에는 소극적인 견해가 살짝 내포돼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랑만적인 프랑스 녀성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이와는 좀 달리  해석한다. "20대 녀성은 청춘에 살고 30대 녀성은 우아한 멋에 살며 40대 녀성은 지혜로 살고 50대 녀성은 평온하게 살며  60대 녀성은 마음 편히 살고 70대 녀성은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귀중한 보배(无价之宝)이다." 세월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고 나이와 무관하게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사는 프랑스 녀성 특유의 고상한 사유라 하겠다. 살아 평생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의 녀성들에게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먹는 나이 앞에서 자신감을 잃고 기죽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년에 들어서면 기분은 완전 소침해져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난 녀자로서 류통기한이 다 지났어. 내 란자는 이미 화석이 다 됐을거야…"라며 푸념하기도 한다. 많은 녀성들은 청춘과 미모를 녀성의 최대 자본으로 친다. 그러나 청춘은 순간이요 미모는 잠간이다. 청춘과 미모로 승부를 거는 녀성은 어리석은 녀자이다. 그러면 녀성은 무엇으로 승부을 걸어야 하는가? 다름 아닌 기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한눈에 보아낼 수 있는 표면현상일뿐이다. 그러나 기품은 내심에서 산발하는 강한 흡인력이다. 한 녀성이 기품을 갖추었다면 마치 생명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옹유한 것과 같다. 녀성의 기품은 문화와 품위가 깔려있는 진귀한 품질로서 나이가 들어도 일세를 풍미할 수 있다. 무슨 영문인지 중국녀성들은 젊어서는 그런대로 멋을 추구하다가도 나이가 좀 들면  미에 대한 신념이 결핍하고 추구가 불확실하다. 늙어서도 멋있는 녀성들에 대한 기억은 거개가 외국녀성들로부터 온다. 오드리 햅번, 데일 하이든, 쏘피아 로란 등 녀성들은 젊어서는 아름다웠고 늙어서는 멋있었다. 중국녀성들은 중년에 들어서면 미에 대해 무감각하며 심지어 자신이 늙었다고 스스로 조소한다. 이것이 중국 따마(大妈)들의 전형적인 형상이다. 동양의 일본녀성과 서양의 프랑스 녀성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녀성의 표본으로 삼기도 한다.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상한 기품을 갖추었다. 프랑스와 일본에는 늙어서도 풍치있고 멋있는 녀성들이 즐비하다. 기품은 어디에서 오는가? 원천은 다양하겠으나 주로는 독서에서 온다. 일본녀성과 프랑스 녀성의 공통 점은 바로 독서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세습 전승되고 있는 우아함은 열독과 깊이 련관이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도처에서 독서하는 녀성들을 볼 수 있다. 커피점, 음식점, 대중교통 뻐스, 전철역… 전자통신이 시대를 개변했지만 일본녀성들과 프랑스 녀성들의 독서를 즐기는 전통은 의연히 개변이 없다. 필자는 전철에 오르자마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 일본녀성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이 지긋한 일본녀성들도 돋보기를 걸고 핸드백에서 소형 책을 꺼내 읽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우아한 녀성이 되자면 기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신변의 작은 일로부터 후천적인 수련을 거치면 우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고 문화기질과 수양을 제고시키면 자연히 기품이 형성돼 자신의 결함과 약점이 덮어진다. 화려한 옷을 걸치고 다니면서 아는 것은 없다든지 고가의 장식품은 지니고 있는데 지적 대화에는 참여할 수 없다면 그 녀성을 존경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직업상 녀성 문화인들과 자주 만난다. 그들은 대체로 화려한 옷이나 분에 넘치는 몸치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녀성다운 품위와 고상한 자질을 고요히 풍겨주군 한다. 흐르는 세월도 무색하리만큼 그들은 나이 좀 들었어도 운치있고 멋있으며 도고하다. 이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물질적 소유나 외적인 미모에서가 아니라 정신적 소양과 지적 함축성에서 오는 것이다. 어느 철인이 말했다. "세계는 아름답다. 그러나 녀성이 없으면 세상은 7할의 색채를 잃는다. 녀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녀성이 책을 멀리 한다면 7할의 매력을 잃는다." 매력적인 녀성의 몸에서는 언제나 책의 향기가 풍긴다. 1년이 다 가도록 책 한권 독파하지 않은 녀성에게 도도한 기품이 형성될리 없으며 은은한 향기가 풍길리 없는 것이다. 녀성이라면, 더우기 외모가 아름다운 녀성이라면 이 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일체 아름다움은 모두 순간적인 정채로움이다. 당신의 용모는 언젠가는 꼭 광채를 잃을 것이며 아름다움을 믿고  일생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젊었을 때 시간을 다그쳐 자기를 충실히 해야 하며 평소에 갈고 닦은 충분한 지식과 깊은 수양은 나중에 당신을 멋진 녀성으로 만들 것이다. 당신의 머리가 비여있다면 아름다운 용모는 당신의 최대의 불행이다." 사랑스런 우리의 녀성들이 조용히 지적 수양을 닦고 고상한 품위를 지니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없이 고귀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38    만남과 인연 댓글:  조회:938  추천:3  2021-02-26
[삶과 문화] 만남과 인연 김태호 세월의 속성이라 할가,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면 자연 추억이 갈마들고 지나온 길 뒤돌아보면서 인생에 대해 음미하게 된다. 인생이란 뭘가? 그 내함이 하도 풍부하여 각자 해석도 각이하겠으나 너와 나와의 만남이 인연이 되여 한세상을 살아가다가 일생을 마치는 게 인생이 아닐가 하고 중지(众知)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인생은 만남이다. 사회라는 한자에서 사(社)는 제사를 지내는 공공장소요, 회(会)는 서로 만남을 뜻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아갈 수 없으며 미상불 사회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현재 지구상에 76억 인구가 살고 있지만 누구와도 다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자주 만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또한 만났다고 해서 다 좋은 인연이 맺어지는 것도 아니다. 뜻이 맞아야 인연을 맺을 수 있고 그 인연을  아끼고 보듬어야 깊은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다. 우연한 만남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승화하는가 하면 이미 맺은 좋은 인연도 허투로 대하면 나중에 악연으로 매듭짓게 된다. 어떤 것이 인연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국의 한  부유한 귀족집 아들이 시골에 놀러 갔다가 수영을 하려고 호수에 들어갔는데 그만 다리에 쥐가 나는 통에 익사할 지경에 이르게 되였다. 이때 길 가던 가난한 농부집 아들이 서슴없이 호수에 뛰여들어 귀족집 아들을 구해주었다. 농부의 아들은 능수능란한 수영재주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둘은 헤여져서도 늘 편지를 주고받으며 끈끈한 우정을 이어갔다. 어느덧 그들은 소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였다. 귀족집 아들이 농부의 아들을 찾아와 물었다. “너는 이담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농부의 아들은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그런데 우리 집은 가난하고 형제가 9명이나 돼서 난 공부하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 없어.”라고 의기소침해서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귀족집 아들은 가난한 농부집 아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귀족집 가족은 런던으로 이사가게 되였다. 귀족집 아들은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농부집 아들도 데리고 가자고 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는 선뜻 동의했다. 그렇게 농부집 아들은 귀족 가족을 따라 런던에 가게 되였으며 귀족집의 경제후원을 받아 공부하게 되였다. 농부 집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 나중에 자기의 소원 대로 런던의 유명 의과대학에 다니게 되였다. 졸업한 후에는 포도상구균을 연구하여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냈다. 이 의학자가 바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산드 프레밍이다. 한편 그의 의학공부를 도와준 귀족집 아들은 뛰여난 정치가로 성장해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나젊은 정치가가 제2차세계대전 발발 중에 페염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였다. 당시 페염은 불치병과 같은 엄청 공포스러운 병이였다. 그때 알렉산드 프레밍이 발명한 페니실린이 급송되여 나젊은 정치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농부집 아들이 두번이나 생명을 구해준 귀족집 아들은 다름아닌 영국인들로부터 최고의 추앙을 받는 불세출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 높은 덕성으로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인연의 교과서요, 표본이라 하겠다. 성공한 사람들을 두루 살펴보면 하나같이 인연이 좋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만나도 스쳐지나고 보통 사람은 좋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며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이룬다.”는 경전의 글귀가 있다. 또한 “인연이 있으면 천리도 지척이요, 인연이 없으면 지척도 천리이다.”라는 격언도 있다. 틀림없는 진리라 해도 대과(大过)가 없다. 한학급에서 공부하는 동창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업자도 결국은 다 인연이 있기에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서로 질투하고 암투를 벌이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정년 퇴직을 한 사람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뭔가고 물었더니 대부분 현역시절 동업자들과의 불화와 반목을 들었다. 인연 가운데서도 가장 깊고 진한 인연은 아마도 부부의 연(缘)일 것이다. 남남으로 만나 서로 사랑하다가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생명도 탄생시킨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귀한 인연이 또 어디에 있을가. 그러나 이 거룩한 부부의 연도 쉽게 맺고 쉽게 끊어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통탄할 일이다. 사람들은 인연의 완벽한 결과만을 보고 나에게도 이런 인연이 나타났으면 하는 욕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두 그러하듯이 깊은 인연은 절대로 쉽고 간단하게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리를 중히 여겼다든가 덕을 쌓았다든가 선을 베풀었다든가 해서 나중에 좋은 인연을 맺게 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결국 덕행(德行)이 길연(吉缘)을 맺고 인덕(仁德)이 길운(吉运)을 낳는 것이다. 연변일보 
37    "소의 해"의 길운을 바라며 댓글:  조회:841  추천:0  2021-01-14
"소의 해"의 길운을 바라며 삶과 문화 김태호 기원 2020년, 살아온 것이 아닌 살아내야 했던 잊지 못할 한해였다. 이제 우리는 그 2020년과 영원한 작별을 했다. 2020년은 아마도 전세계인들에게 인류력사상 특별히 환난이 닥친 한해로 기억될 것이며 학자들은 인류의 족적을 기술할 때 2020년을 반드시 소환해 특필할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는 정말 보귀한 시간인데 우리는 2020년을 코로나19라는 지독한 바이러스때문에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지난 한해에 뭘하며 지냈나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일상에서 신체의 일부가 된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며 지리멸렬한 공포에 떨었던 기억뿐이다. 그래서 2020년은 자신이 사용하지 않았으니 자기 나이에서 한해를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한해에 전례없는 역병으로 인해 세상은 일순간에 확 바뀌여버렸다. 우리의 일상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얼마전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워싱톤포스트가 독자들을 상대로 2020년이 어떤 해였는지 짧게 표현해보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놀랍게도 9세 소년의 신통하고 생동한 짧은 표현이 수많은 응모자들을 누르고 1등으로 뽑혔다. 소년은 이렇게 적었다. “길 량쪽을 잘 살피며 교차로를 건너고 있었는데 잠수함에 치인 것과 같은 한해였다.” 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만난 잠수함과 같은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우리는 정말 애를 썼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한 방역조치로 코로나19가 주춤하고 몇가지 백신도 개발돼 세계인이 안도의 숨을 쉬려던 차에 또 다른 변이바이러스가 여기저기서 튀여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한 세공사(细工师)가 승리의 오만에 취했을 때 겸손을 일깨워주고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희망을 주는 한마디를 ‘지혜의 왕’으로 불리운 솔로몬 왕자에게 묻자 그는 력사에 길이 남을 명답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것은 바로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뜻이다. 승리의 기쁨이나 좌절의 괴로움에도 끝이 있으니 오늘 그속에 있다고 한들 거기에 빠져 기뻐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말이다. 코로나19라는 험악한 사태에서도 우리는 맥을 놓거나 정신줄을 놓아서는 절대 안된다. 2021년 새해를 맞았음에도 들 뜨고 설레이는 기분은 아니다. 이 성가신 역병이 언제쯤 종식될지 알 수 없어 가슴 답답한 공포가 마음을 짓누른다. 그렇지만 인류는 이번 위기 극복에 온 힘을 다 쏟아붓고 있으니 필연 찾아올 새벽의 려명처럼 역병을 전승할 그날이 꼭 돌아올 것이다. 과거에도  온갖 역병을 다 이겨냈듯이 이번 대재앙에서도 모두가 지혜를 발휘하고 힘을 합쳐 ‘어둠의 강’을 건너야 하며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가야 한다. 원래 동 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춥고 어두운 법이다. 어처구니 없이 2020년을 보냈다. 그러나 2021년에는 더 안정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져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인류가 다시금 일상의 평화를 누릴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 공항과 철도역, 뻐스역에는 고객들로 북적이고 항구에는 컨테이너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며 관광지에는 유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쇼핑가에는 쇼핑객들로 넘쳐나는 그런 일상들 말이다. 새해의 묘미는 바로 미래에 대한 희망에 있다. 2021년은 신축년 ‘소의 해’이다. 소는 버릴게 하나 없는 보배이다. 그래서 “소는 하품밖에 버릴게 없다”는 속담이 생겼다. 소는 그 듬직한 외모와 진중한 행동가짐에서 근면과 희생, 성실의 이미지를 얻었다. “소띠해에 태여나면 부지런히 일해서 큰 재산을 일군다”는 덕담도 있다. 과연 옛날부터 소처럼 부지런하고 뚝심있게 일해서 가업을 이룬 사람이 많았다. 소는 또한 강한 뿔로 아래에서 우로 드세게 치받는 성질도 있다. 서양사람들은 소의 이런 력동적인 모습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다. 주식시장의 상승장이 ‘황소장’이란 명칭이 붙고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황소 동상이 세워져있는 것도 그런 리유이다. 소는 일상에서 말없이 인간을 도왔다. 더우기 소는 인간을 구하기도 한 상서로운 동물이다. 18세기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는 인류를 크게 괴롭혀 온 천연두를 퇴치하는 우두법을 발명했다. 이 우두법이 바로 소의 고름을 활용한 것이였다. 상서로운 ‘소의 해’에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길운이 있으리라. 지난 한해는 상실의 세월이였지만 새해에는 지구촌에 사는 전체 인류가 마스크를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숨쉬며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하늘에서 태양이 여전히 환히 비추고 있고 땅우에서 우리는 아직 씩씩하게 숨 쉬고 있으며 신변에는 정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기억하자. 그래서 미웠던 2020년과 흔쾌히 작별인사를 한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여, 그러면 안녕! 연변일보 
36    고사성어에서 배우는 인생 댓글:  조회:1060  추천:0  2020-12-17
고사성어에는 깊은 철학이 내재되여있고 인생의 경험과 교훈이 담겨있으며 생활의 예지가 배여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지침이 되는 많은 지혜를 얻게 된다. 《사기(史记)》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위편삼절(韦编三绝)이란 고사성어가 나온다. ‘위편’은 가죽으로 맨 책끈이다. 위편삼절이란 가죽책끈이 닳고 닳아 세번이나 끊어졌다는 말이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해서 어찌나 읽고 또 읽었는지 그만 참대쪽을 엮은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현량자고(悬樑刺股)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른다’는 뜻으로서 고통을 감수하며 분발하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비유한다. 한나라 때의 대학자인 손경(孙敬)과 전국시대에 종횡가(纵横家)로 명성을 떨친 소진(苏秦)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손경은 젊은 시절 학문을 좋아하여 두문불출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을 닦았다. 그는 공부할 때 노끈으로 상투를 묶어 대들보에 매달았다. 잠이 몰려와 고개를 떨구면 노끈이 팽팽해지면서 상투를 잡아당겨 잠에서 깨게 된다. 손경은 정신을 추스리고 다시 공부를 계속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나중에 당대의 대유학자가 되였다. 소진은 진나라의 혜왕에게 련횡책(连横策)을 유세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모두들 그를 업신여겼다. 그는 크게 한탄하며 궤짝에 있는 책들을 다시 꺼내 살펴보다가 강태공이 지은 모략병서인 《음부(阴符)》를 발견했다. 소진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송곳으로 넙적다리를 찔러 오는 잠 물리치며 공부했다. 1년 후 소진은 《음부》의 리치를 터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명성을 떨치며 전국시대 6국의 재상이 되였다. 조선왕조 중기 중종 때의 문신 량연(梁渊)은 공부에 뜻이 없어 허송세월하다가 나이 마흔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왼손을 꽉 쥐고서 학문을 이루기 전에는 결단코 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몇해 뒤 과거에 급제하여 꽉 쥔 왼손을 펴려 하자 그 사이에 자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가 펼 수가 없었다. 조갑천장(爪甲穿掌)의 유래이다. 조선왕조 후기의 문신 김간(金幹)의 학문과 덕행은 너무도 뛰여나 누구도 그와 비길 수가 없었다. 하루는 한 제자가 김간에게 물었다. “스승님, 독서에도 일슬지공(一膝之工)이 있습니까?” 일슬지공이란 두 무릎을 바닥에 딱 붙이고 드팀없이 하는 공부를 뜻한다. 김간의 대답은 놀라웠다. “예전에 내가 절간에서 책을 읽을 때였네. 3월부터 9월까지 일곱달 동안 허리띠를 풀지 않고 갓도 벗지 않았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잔 적도 없었지. 책을 읽다가 밤이 깊어 졸음이 오면 두 주먹을 포개여 이마를 그 우에 받쳤다네. 잠이 깊이 들려 하면 이마가 기울어져 떨어졌지. 그러면 잠을 깨우치며 다시 책을 읽었네. 산에 들어갈 때 금방 파종을 시작하는 것을 봤는데 산에서 나올 때는 추수가 끝났더군.” 김간은 목욕 한번 안하고 늦봄부터 삼복더위를 지나 초겨울을 코앞에 두고서야 산에서 나왔다. 아하,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었구나! 옛 성인과 현자들은 공부를 머리로만 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엉덩이와 무릎으로 했던 것이다. 총명한 사람과 아둔한 사람은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둔한 사람도 좀 늦을 뿐 했지 마음만 먹으면 리치와 해법을 종당에는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총명과 아둔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다. 공부에서는 타고났지만 다른 일을 배우는 데서는 늦다.  공부에서는 아둔하지만 다른 기능을 배우는 데서는 천재성을 가졌다. 과연 누가 총명하고 누가 아둔한가? 세상만사는 피타는 노력이 밑거름돼야 이룰 수 있다. 공부도 그렇다. 총명을 뽐내며 명문대학에 간  수재도 알고 보면 밤을 지새우며 공부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간 후 공부를 느슨히 해 학기마다 보충시험 치르며 겨우 졸업한 총명한 수재도 있다. 공부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엉덩이를 자리에 진득이 붙이고 잡념을 접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매일매일 정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인생에서 관건적인 변곡점중의 하나인 고중시절에 공부에 진력하지 않았다. 그것이 평생 여한으로 남는다. 여한은 어째서 오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 성현들처럼 도를 닦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도 노력에 노력을 더했더라면 이토록 인생의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노력했음에도 이루지 못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다. 이루지 못했어도 노력을 했다면 최소한 죄책감은 없을게다. 지금 이 나이에도 시험날자가 코앞에 닥쳐왔는데 준비가 되지 않아 가슴 졸이며 달달 볶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쳐 잠에서 깬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공부도 한철인데 학창시절 공부에 열중했더라면 지금 이런 트라우마로 괴로울가. 어찌 공부 뿐이겠는가. 인생도 허송세월하거나 무위도식한다면 만년에 지꿎게 뒤따라오는 것은 한탄과 자괴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열심히 살고 볼 일이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흘러간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큰일은 못해도 작은 일 하나하나 착착 해나가면서 인생의 뒤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타산을 해본다. 연변일보 
35    세월의 흐름을 늦추려면 댓글:  조회:915  추천:0  2020-11-19
어릴 때는 더디게 흘러가던 세월이 40대에 들어서자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50대에 들어서니 가속도가 붙는다. 세월은 자기 나이 만큼 속도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분주한 경주 속에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중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야말로 “먹는 나이는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다.”는 장자의 말 그대로이다. 중년에 들어서면 과연 많은 면에서 변화를 가져온다. 피부는 탄력을 잃어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거나 탈모가 진행된다. 자기의 몸 움직임이 부모님과 닮아갈 때 나도 이젠 한창 나이가 지났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더우기 중년이 되면 호기심이 없어지고 진취심이 고갈되며 의욕이 사라진다. 말끝마다 무의식중에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육체적인 쇠퇴보다도 정신적인 늙음이 앞선다. 미국미네소타의학협회가 정의한 ‘로인의 기준’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군 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젊은이들의 활동에 관심이 없다’,  ‘래일을 기약 못한다고 느낀다.’ 등 내용들이다. 로인을 구분 짓는 자대는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란 뜻이다. 이 자대를 중년기에 갖다대면 겹치는 부분이 많다. 중년기에 로인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고갱은 나이 들면서도 소침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속속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늙는다는 것은 신체년령이 많아졌다는 것일 뿐 세상을 보는 시야는 넓고 깊어진다는 의미이다. 중년기에 웅지를 펼치며 천하를 호령한 삼국시기의 조조는 만년에도 마음은 푸르러 이런 명시를 남겼다. “늙은 명마는 마구간에 엎드려있어도 마음은 천리를 달리고 선비는 나이 들어도 비장한 기상이 꺾이지 않는다.” 조조는 나이가 들어서도 늙은 명마처럼 천하를 누비고 싶어했다. 세월이 순간도 그 흐름을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은 늙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늙어감을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늦출 수는 있다. 사람에 따라 방법도 다양하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취미를 갖고 무언가를 배우며 일손을 놓지 않는 것이 세월의 흐름을 늦추며 늙음을 지연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가 생각한다. 취미가 없다면 취미를 발굴하면 되고 취미가 발굴되면 의욕이 생기며 의욕이 생기면 분발하게 된다. 퇴직한 후 할일없어 장우단탄으로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과 일거리를 찾아 현역처럼 활동을 벌리는 사람을 몇해 지나 다시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지난 여름 아침운동을 마친 후 귀가길에 사회구역 활동실을 지나치다가 어눌한 색스폰소리가 들려와 호기심을 품고 들어가봤다. 평소 내가 늘 존경하던 선배가 한창 색스폰 련습에 골몰하고 있었다. 정년이 되여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 취미를 갖고 색스폰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배운 지 여러달 됐지만 쉬운 색스폰 연주곡 한곡 아직 제대로 못 분다며 어려워했다. 그리고는 씩~ 웃으면서 던진 선배의 한마디 말은 지금도 필자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으며 사색하게 만든다. “기다려봐, 내가 칠십이 되면 깜짝 놀라게 멋진 곡 한번 들려줄게.” 사람들은 대개 중년이 되고 나이 듦에 따라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후회를 많이 한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면 인간은 늙기 시작한다. 꿈이 후회를 덮으면 육체적 나이는 들지언정 정신적으로 늙지 않는다. 보통 꿈은 클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년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니다. 관건은 그 꿈을 위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을 원망하고 현실을 탓하며 흘러간 세월을 후회하며 살아서는 뭘 하겠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배우고 익히면서 인생을 알차게 다져간다면 우리는 늙음에 무감각할 것이며 세월의 흐름을 늦출 것이다. 지난 7월 일본에서 ‘80세 정년제’를 채택한 회사가 나왔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경력사원의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결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가나가와현 요꼬하마의 유명 가전판매회사 ‘노지마’는 8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노지마의 원래 정년은 65세인데 이를 한꺼번에 15년이나 늘였다. 적용대상은 3000여명에 달하는 전체 직원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일단 체력적인 면을 고려해 상한을 80세로 정했지만 더 일하기를 원한다면 80세를 넘어서도 근무할  수 있도록 추가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50대 중반에 들어선 필자는 세월의 쾌속에 잠간 당황했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이 영원한 현역인 것 같아 온몸에서 힘이 솟구쳤다. 벌써 중년이 아니라 이제 중년이다. 중년들이여, 기죽지 말자. 가슴을 쫙 펴고 어깨에 힘을 주라! 연변일보   
34    절제는 성공을 부른다 댓글:  조회:988  추천:0  2020-05-03
성공한 사람들을 두루 살펴보면 각자 여러가지 장점들이 있겠으나 그중 공통점 한가지를 짚는다면 ‘절제’다. 성공자는 절제한다. 절제란 무엇인가? 누릴 수 있지만 누리지 않는 것이 절제요,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는 것이 절제다. 인생에서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대개 절제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한순간에 끝장난다. 절제는 성공자의 덕목이요, 수심소욕(随心所欲)은 실패자의 습관이다. 세계 경마무대를 평정한 말이 있었다. 1999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스포츠 전문 방송국 ESPN은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100인을 선정했는데 동물로는 유일하게 이 말이 명단에 올라 35위를 차지했다. 이 불세출의 명마의 이름은 세크리테리엇이다. 이 말은 처음부터 여느 말과 달라 조련사의 눈에 띄였다. 조련사는 100여마리의 우량 말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삼복염천 땡볕에서 물도 제대로 먹이지 않는 일주일간의 맹훈련이였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갈 무렵 조련사는 말들을 거느리고 강가로 향했다. 강을 발견한 말들은 미친듯이 강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 조련사의 돌아오라는 명령의 호각소리가 울렸다. 말들은 조련사의 호각소리를 아예 무시한채 정신없이 강물을 마셨다. 하지만 그 갈증을 참고 조련사에게로 되돌아온 말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세크리테리엇이였다. 이런 초절제력을 구비한 세크리테리엇은 특유의 강점으로 나중에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1973년 캔터키 더비 2000메터 우승, 1973년 프리크니스 경마대회 1900메터 우승, 벨몬트 경마대회 2400메터 우승 등 기록을 달성해 세계 최고의 명마로 자리 잡는다. 이 말은 2000메터를 1분 59초만에 주파했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심리학에 ‘만족지연’이라는 개념이 있다. 만족지연이란 ‘보다 크고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순간의 충독적인 욕구나 행동을 자제하며 즐거움과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만족지연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재미나는 실험을 했다. 그는 5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실험전에 5시간 굶긴 다음 식탁으로 데리고 와서 아이들 앞에 빵 하나씩을 놓았다. 그리고 선택권을 주었다. 지금 빵을 먹어도 좋지만 먹지 않고 15분만 더 기다리면 빵을 하나 더 준다고 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몰래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어떤 아이들은 인차 빵을 먹었다. 어떤 아이들은 참고 기다렸다. 참고 기다리는 아이들 중 어떤 아이는 일부러 눈앞의 빵을 보지 않으려고 딴 곳을 보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유혹을 참느라 자기 머리를 쥐여뜯기도 했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그 뒤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였다. 그런데 빵을 즉석에서 먹어치운 아이와 참고 기다린 아이는 놀랄만큼 성취도가 달랐다. 참고 기다린 아이들은 공부도 잘했고 사회적응성도 높았으며 부자가 되였다고 한다. 반대로 만족지연 능력이 떨어지는 즉 자아통제 능력이 결핍한 아이들은 범죄행위나 반사회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얼마전 일본의 TV예능 프로에서도 ‘만족지연’에 관한 실험을 했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밀실에서 유치원 꼬마들에게 향기 나는 케익을 하나씩 나눠주고 15분 동안 참고 먹지 않으면 그 대신 장려로 케익 하나 더 준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실험에 참가한 20명 꼬마 전원이 먹지 않고 참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전해 들으면서 필자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우리 민족은 여느 민족에 비해 참으로 많은 우점과 강점을 가지고 있다. 총명하고 똑똑하며 지능이 우수하다. 력동적이며 격정이 있다. 그러나 절제에서는 약하다. 말도 절제를 잘 못하고 술도 절제를 잘 못한다. 순간순간의 기분을 눅잦히지 못하고 버럭버럭 화도 잘 낸다. 경제사용에 있어서도 절제를 못해 충동구매가 많다. 있는 돈은 쓰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무엇을 한건 하려 해도 종자돈이 없다. 큰 돈을 벌려는 욕심에 무단 투자를 하다가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권력이 있지만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이것은 덕이다. 정치는 덕치다. 덕치를 베풀면 온 나라가 창평하다.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는 것, 이것은 극기력이다. 식탐을 버려야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할 말은 많지만 참는 것, 이것은 군자다. 군자는 입을 아끼고 범은 발톱을 아낀다고 했다. 세치 혀끝이 화를 불러온다. 그래서 족함을 알고 절제를 하면 만사가 처음처럼 끝도 좋다고 선철들은 권고했다. 또한 “만족할 줄 알면 결코 모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줄 알면 떨어지지 않는다. (知足不辱 知之不落)”고도 했다. 로자의 말이다. 결국 절제가 인생의 성공을 부르게 돼있는 것이다.
33    우리가 하나 될 때 댓글:  조회:1245  추천:1  2020-04-30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내가 연변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우리 학급에 흑룡강성 오상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성미가 서글서글한 그였지만 처음 한동안은 연변출신인 우리들을 멀리하고 고향친구들과만 어울려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마음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궁금해서 그 까닭을 물으니 자기는 어려서부터 “연변사람들은 인심이 박하고 리속이 밝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는데 정작 와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면서 연변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연변은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말했다. 생각이 바뀐 오상친구는 대학시절 4년 동안 ‘연변내기’인 우리들과 정말 절친하게 지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연변에 배치받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품고 귀향했다. 오상친구는 연변을 떠나면서 굵직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울면서 왔다가 웃으면서 간다”는 말이 있으나 오상친구는 울면서 왔다가 역시 울면서 떠나갔다. 연변에 오기 싫어서 울면서 왔는데 연변을 떠나기 싫어서 울면서 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한동안 하북성 진황도에 있는 창녕그룹에 몸을 담았었다. 창녕그룹의 임직원들과 로동자들은 거개가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들이였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나를 멀리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남에 따라 나는 그들과 감정을 교류하게 되였고 정을 쌓게 되였다. 서로가 사이 좋게 지내던중 언제인가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너는 연변사람이 아니야!” 나중에야 그 까닭을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말은 나에 대한 그들 나름의 인정이였다. 나 역시 그들과 어울리면서 전에 가졌던 틀린 생각들을 고칠 수가 있었다. 흑룡강성 조선족들은 성질이 급하고 거칠며 래일에 대한 타산이 없고 궁리가 없다는 등 편견들이 사그라졌다. 나도 그 때까지 흑룡강성에 가본 적이 없었고 그들 절대 대부분도 연변에서 생활해본 경력이 전무했던 것이다. 모두가 실제 체험에 기초한 견해가 아니고 풍문만 듣고 생긴 오해였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자기와 좀 다르다는 생각 하나로 상대가 틀렸다고만 여기며 오해와 편견으로 서로를 대해왔고 심지어 반목하며 살아왔다. 연변의 조선족과 산재지역의 조선족은 알게 모르게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다. 사돈을 맺으려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꺼리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총명하고 똑똑하며 사리에 밝은 우수한 민족이다. 인종으로서의 좋은 점을 거의다 구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저마다 똑똑하기에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을 잘 인정하지 않으며 포용력이 결핍하고 배타적 심리가 강하다. 세계 각국에 산재해있는 유태인들은 한마음한뜻으로 경제적 및 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은 지금 작지만 강한 나라로, 지역의 맹주로 튼튼히 자리 잡았다. 인류문화학자들은 유태민족과 우리 민족의 공통점을 주목하면서 문화비교학의 각도에서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다. 두 민족 다 총명하고 똑똑하며 지식을 숭상하며 학구열이 아주 높다. 그런데 우리는 배타주의가 심해 잘 뭉치지 못한다. 유태인들도 론쟁을 하고 시비가 붙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만의 철학으로 지혜롭게 처사하여 합의를 보며 매사에서 매듭을 잘 짓는다. 우리는 론쟁을 하고 자기의 주견을 세우는 데는 강하지만 결론을 얻지 못하고 빈 공론으로 끝날 때가 많다.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을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소질이 그 담보로 된다. 여태까지 우리에게는 명확한 철학이 없었다. 이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명확한 철학이 없으면 전략이 없다. 전략이 없는 전술은 잔재주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자기의 명확한 철학을 세우고 자기의 사상을 가진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 왜냐 하면 우리가 하나가 되면 거대한 에너지가 발산될 것이며 우리는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변사람이니 흑룡강성 사람이니 집거지역이니 산재지역이니 하면서 서로 우렬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으로서 이젠 그만둘 때가 되였다고 본다. 기실 사귀다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우점만 보이는 법이니 그러면 우리가 하나로 되는 것 쯤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길림신문
32    늑대에게서 배우는 기업경영 댓글:  조회:1156  추천:0  2020-04-23
늑대에 관한 전문가들의 글들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여태까지 늑대에 대해 잘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늑대는 강인하다.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유명한 서커스단에도 늑대가 표연하는 종목은 없다. 호랑이, 사자, 독수리 등 맹수나 맹금은 등장하지만 늑대만은 보이지 않는다. 왜냐? 늑대는 죽어도 굴하지 않기에 아무리 유능한 조련사라 해도 늑대를 도저히 길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늑대는 지능이 아주 높아 자기들만의 전략을 확정하고 전술을 활용하며 싸우는 맹수다. 무리의 구성원들은 늑대 우두머리의 지휘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지형을 리용하여 포위전술을 구사하고 기습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사냥감이 눈앞에 있어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인내를 하며 매복습격전으로 사냥감을 일순간에 포획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늑대는 사냥군들이 놓은 덫에 걸리면 자기 입으로 다리를 물어 끊어내고 달아나는 지독한 성정(性情)이 있다. 무리 가운데 한놈이 싸우다가 중상을 입어 집단적인 작전에 방해라도 될 듯싶으면 늑대 우두머리가 당장 물어죽인다.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늑대 특유의 작전을 펼치려고 인간들이 지어낸 36계 중의 제34계 고육계를 실행하는 것이다. 한때 유럽을 떨게 했던 동방의 성웅(圣雄) 칭키스칸은 일찌기 ‘초원의 왕’ 늑대의 전략전술을 답습했다고 한다. 또한 초원에서 늑대와의 실전을 통해 몽골군의 강한 전투력을 키웠다. 몽골군은 로씨야를 두차례나 정벌했으며 오늘날의 뽈스까와 웽그리아, 로므니아 등 동유럽을 공략하고 이딸리아에까지 진격했다. 칭키스칸의 심복인 제베 장군은 2000명의 기마병으로 동유럽의 10만 대군을 라이프니츠 들판에서 전멸시켰다. 늑대의 전략전술은 잔인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배울 게 많다. 특히 21세기 생존경쟁에서 사투를 거는 기업은 늑대의 정신으로 경영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자랑하는 화위(华为)그룹의 창업자 임정비(任正非)는 중국인민해방군 출신이다. 그는 1987년에 종자돈 2만 1000원을 갖고 회사를 세웠다.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하던 통신장비 시장을 점령하기 위해 회사 특유의 전략을 정하고 전술을 택했다. 전략상에서 모택동의 혁명전략을 적용했다. 즉 ‘농촌(후진국)을 장악한 후 도시(선진국)를 포위하고 진격’하는 전략이다. 창립 초기에는 중국의 농촌지역을 돌며 단순 통신교환기를 한대씩 팔았고 힘을 키운 후에는 곧바로 도시를 진격했다. 세계의 글로벌 기업들이 무시하던 씨비리의 렬악한 지대에서 통신장비를 팔다가 로씨야 전역, 남미의 여러 신흥국들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나중에는 유럽과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전술상에서 늑대의 전술을 구사했다. 창립 10돐을 맞은 지난 1997년 임정비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늑대처럼 민감한 후각과 불굴의 투쟁심 그리고 협동정신이 필요하다.”고 격정 있게 말하면서 “가진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한번 목표물을 정하면 무리 전체가 용맹하고 일사불란하게 공격하는 늑대처럼 화위는 조직의 목표를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늑대문화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했다. 임정비는 화위그룹의 창업자여서 많은 주식을 가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직원들을 배려하는 데 있어서 더없이 후하다. 대신 성과를 못 내는 직원 5%를 매년 가차없이 도태시킨다. 발전성이 없는 직원을 절대 품고 가지 않는다. 상벌제도를 병행하여 실시하는 데는 아주 엄격하다. 능력 없어 성과를 못 내는 직원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내치는 대신 능력 있는 직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들의 재능을 맘껏 뽐내게 하며 적극성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한다. 회사에 대한 공헌이 많은 직원에게는 거액의 보너스를 두둑이 지급한다. 인재를 금싸락처럼 아끼며 그에 걸맞는 대우가 어김없이 뒤따른다. 그러니 화위그룹 직원들의 용기는 대성(大盛)하고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처럼 화위그룹은 상(赏)과 벌(罚)이 분명하다. 상만 있고 벌이 없어서는 안되지만 벌만 있고 상이 없어서는 더욱 안된다. 1987년에 직원 5명으로 창업한 임정비는 현재 직원 18만명, 연구개발인력 8만명이 넘는 화위그룹을 이끌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인력 8만명이라는 진취심 강하고 생기발랄한 나젊은 ‘늑대’들을 전장에 투입시켜 회사 창립 30년 만에 화위를 세계 통신장비시장 1위, 스마트폰시장 2위로 키웠다. 4차산업의 핵심인 5G기술을 주도하면서 화위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기업이 됐다.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꾀하지 않으며 안일한 나날을 보내다가는 언젠가는 랑패를 볼 것이다. 능력이 있던 없던, 회사에 대한 공헌이 크던 적던 대우가 일률적이라면 직원들의 적극성은 말살된다. 특히는  인재들의 품값을 지불하는 데 린색하다면 기업은 생명력을 잃고 만다. 금값인 인재들에게 쇠값을 지불해서야 되겠는가. 인재를 모집하기도 힘들거니와 어렵사리 모집했다 해도 도통 묶어둘 수가 없다. 대우가 따라 못가는데 21세기를 선도할 유능한 인재를 모집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인간에게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만물의 령장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서는 짐승에게서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실생활에서나 기업경영에서 인간이 짐승보다 못할 때도 가끔 있는 법이다. 늑대문화는 인간들의 21세기 기업경영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31    나와 다르다고 그가 틀렸는가 댓글:  조회:1376  추천:2  2019-04-30
한국에서 수년간 생활한 우리 조선족들에게는 언어표현의 변화가 여러가지 있는 중에 가장 뚜렷한 변화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하고 있거나 ‘다르다’를  ‘틀리다’로 대체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한국어의 특징으로 알고 있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렇게 오용하고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가 한국에서 생활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일부러 티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한때 한국나들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난중지난사(难中之难事)였으니까.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 공영방송에서도 교정해주며 사용하지 말것을 권장하고있다. ‘다르다’는 것은 ‘사물이 같지 않다’는 뜻이고 ‘틀리다’는 판단의 기준이 가첨돼 ‘옳지 않고 그릇됨’을 나타낸다. 문제는 그저 단어를 헛갈려 쓴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의식형태도 그에 따라 변한다는데 있다. 무의식중에 나와 다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집이요 고집일뿐이다. 항상 내가 맞고 그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리고 그가 맞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의 리치이다. 그가 옳고 내가 틀렸음을 성실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에야만 인간은 클 수 있고 인격도야를 이룰수 있으며 인생은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남을 인정할줄 아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상대방을 언제나 내 뜻에 맞게 통채로 변화시킬수는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시비가리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비 걸고 다툼 끝에 이겼다고 해도 진정한 승자가 될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적만 만들뿐이다. 알고보면 개인 지간의 싸움은 물론 인류력사상의 많은 전쟁도 다름을 틀림으로 보고 다툰 데서 발생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불필요한 론쟁은 회피하며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야 말로 옳바른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다 .“론쟁이 길어질수록 그것은 쌍방 모두가 틀렸다는것을 뜻한다.”고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말했다. 20세기 현대사상의 거두라고 불리우는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상대방의 이질성을 상대방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상대방과의 친화를 도모하는 것을 ‘이질성의 포용’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21세기 철학의 화두로 삼았다. 이질성의 포용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필요한데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하거나 오용하는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틀리다’를 쓰고 있는 것은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리념은 옳고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리념은 틀렸다고 여기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심어줄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선철들은 말했다. 틀린 말은 틀린 행동을 만들뿐이다. 어떤 철학자가 ‘+’가 그려진 카드를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수학자는 더하기,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는 십자가,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답했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답은 틀린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서로 부정이 아닌 리해와 긍정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리유이다.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따지며 ‘틀림’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가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상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상대로부터 배울 수 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따로 없다.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서로 리해하고 상호 존중하며 긴밀히 협동하면서 공존·공생·공영하는 길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총명하고 똑똑한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 주견이 세며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만 옳다는 경향이 짙어 시비를 걸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남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배타적이다 보니  영웅을 하나 제대로 만들기도 힘들다. 영웅을 만들어놓고 치켜세우면서 그 두리에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더 찬란한 력사를 창조할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남은 야심차게 칼을 갈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였고 그 동인이 또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였다. 허구한 세월 그저 론쟁만 하고 당쟁만 일삼다보니 한번 크게 당했다. 수백년이 지나도 그 모양이여서 마침내 국운은 기울어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설음도 맛 보았다. 나와 다르다고 그가 틀렸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아예 버리자. 지금이라도 도리를 깨달아 큰 마음 먹고 응집력을 키우자. 그러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30    ‘연변의 눈물’이 언젠가는 ‘연변​의 환성’으로 댓글:  조회:1698  추천:1  2019-03-28
스웨리예의 항구도시 말뫼에 있는 코쿰스 조선사(造船社)는 20세기 세계 조선산업을 주무르던 굴지의 기업이였다. 높이 140m에 달하는 코쿰스사의 초대형 크레인은 스웨리예 조선산업의 위상을 자랑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스웨리예의 조선산업은 한국과의 경쟁에서 역전 당하면서 코쿰스사는 1986년에  도산했다. 결국 2002년에 막대한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대형 크레인을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돈 1딸라에 파는 수모를 당했다. 말뫼의 상징이였던 대형 크레인이 해체되여 한국의 울산조선소로 향하던 날 스웨리예의  TV방송사들은 일제히 장송곡을 내보내면서 “말뫼가 울었다”고 크게 보도했다. 크레인을 해체하는 현장에는 수많은 말뫼의 시민들이 나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말뫼의 눈물’이다. 지난 2월 26일 오후 연변축구팀을 해체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터졌다. 이로써 1955년에 창단해 조선족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연변축구는 64년만에 공중분해됐다. ‘설마’하며 요행을 바랐는데 ‘아차!’하며 가슴을 쥐여뜯어야 했다. 연변은 암연히 눈물을 흘릴 게 아니라 차라리 통곡해야 했다. 예루살렘에는 그래도 ‘통곡의 벽’이라는게 있어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서 통곡해야 한단 말인가! 연변팀이 2000년에 절강성으로 팔려 갈 때 우리는 쓰거운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기원 2019년 연변팀이 해체될 때 우리는 찐득한 혈루를  흘려야 했다. 한때 하늘은 우리를 돕는듯 했다. 연변팀이 2014년 을급팀으로 강등했을 때 앞길이 묘연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였던가, 섬서오주축구팀의 자격취소로 연변팀은 2015년 갑급리그로 운 좋게 복귀했다. 훌륭한 감독을 만났고 열혈의 축구팬들을 등에 업으며 천시, 지리, 인화의 3위1체를 이루면서 갑급리그 1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중국슈퍼리그에 당당하게 진출하게 됐다. 또한 2016년 슈퍼리그에서는 우리 민족 특유의 투혼과 불굴의 정신으로 내로라 하는 강팀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었다. “력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그 흐름은 되풀이 된다”고 마크 투웬이 말했던가.  2015년에 연변팀의 "제물"이 되였던 섬서 소속 축구팀이 이번에는 연변팀의 해체로 갑급팀으로 승격하게 됐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연변의 한 스포츠 전문가는 “연변팀의 해체는 연변부덕축구구락부의 부실한 경영관리능력과 건전하지 못한 재무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천만지당하다. 그러나 파산의 원인은 다만 이것뿐이였겠는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말뫼는 그후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가. 활력을 잃어 삭막하던 말뫼시는  재생기능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변신을 시도했다. 버려진 조선소와 공장부지에  지식산업체를 유치하여 친환경도시로 재탄생했다. 2007년 유럽환경계획은 말뫼시를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했다. 말뫼가 통한의 눈물을 흘린지 꼭 5년만이다. ‘말뫼의 눈물’이 드디여 ‘말뫼의 기쁨’으로 전환한 것이다. ‘말뫼의 눈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센 의지와 드팀없는 노력이 있다면 재기는 필연이다. 연변축구가 재기를 하려면 우선 정부와 해당부문 지도간부들의 강력한 지지와 일관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연변축구에 대해 오불관언(吾不关焉)이 아닌 연변축구에 운명을 거는 격정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연변축구는 연변은 물론 국내외에 있는 전체 조선족들의 최대의 관심사이며 우리 조선족의 자존심이다. 탄탄한 경제력이 뒤받침돼야 한다. 한때 연변팀이 반짝 호황기를 누릴 때 ‘금원축구’ 저리 가라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경제시대에 그래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력이 약하면 유능한 축구외교가라도 있어 긴 세월 꾸준히 후원하는 건실한 후원자를 찾으면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겠으나 허구한 날 땜질식으로 일처리하면 언젠가는 파멸을 자초할 것이다. 튼튼한 후원자도 못 찾고 지방의 경제력도 보장이 없으면 뭘 믿고 하겠는가. 갑급, 슈퍼리그 팀으로 다시 승격한다 해도 역시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잘 살지 못하면 이래저래 억울하고 설음이 많다. 축구의 불씨를 살리려고 사회 각 계층에서 여러모로 애를 바득바득 써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그나마 위안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연변해란강축구팀의 결성이다. 재속에 남은 한점의 불꽃과 같다. 이 한점의 불꽃이 료원의 불길로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연변축구의 맥을 어어가려고 애를 쓰는 우리 해란강축구팀 용사들이 비장하게 느껴진다. 용사들의 건투를 간절히 바라며 건승을 두손 모아 빈다. ‘말뫼의 눈물’이 ‘말뫼의 기쁨’으로 변했듯이 ‘연변의 눈물’이 ‘연변의 기쁨’으로, 연변의 ‘통곡’이 ‘연변의 환성’으로 되돌아오는 날이 필연 도래할 것이다. 축구풍토가 비옥한 연변의 대지를 품으로 삼고 그 흐름을 멈추지 않는 해란강을 젖줄로 삼는다면 연변축구는 기필코 튼튼하게 성장할 것이다. 빼앗긴 나라도 되찾을라니 축구의 뿌리가 깊고 우수한 축구유전자를 가진 우리 민족이 자기의 축구가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 같은가. 하늘에서 태양이 비추고 이 땅에 꽃이 피며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한 연변축구는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두고보라, 우리가 누구인가! 2019-3-28 
29    효에 길이 있어 댓글:  조회:1338  추천:2  2019-03-05
상형(象形)문자이면서도 표의(表意)문자인 한자에는 철학이 담겨져있다. 효(孝)자는 로인 로(老)와 아들 자(子)의 뜻이 합성된것으로 자식이 년세 드신 부모님을 업고있는 모양이다. 도(道)는 길이라는 의미와 함께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사명을 잘 따라야 함을 뜻한다. 부모님을 잘 섬기는것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요 진리이니 효는 곧 도이다. 그래서 효도라는 말이 생겨났다. 학(学)자는 깨달을 각(觉)과 아들 자(子)가 합성된 글자이다. 내가 부모로부터 생명과 정신을 이어받은 자식이라는 도리를 자각하고  공부하는것이 바로 학문의 본래 의미이다. 또한 부모님께 효도하는것을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뜻에서 가르칠 교(教)자를 효도 효(孝)와 어버이 부(父)를 합쳐서 만들었으니 효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참교육이 아니고 효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참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현대인들이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지 않는 리유는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만들어주셨고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셨다. 피를 쏟는 산고(产苦) 속에서 자식을 낳고서도 그 아픔을 모두 잊고 자식사랑에 지극한 어머니, 자식에게 젖을 먹이며 키워주신 어머니의 하늘같은 은혜, 자식이 잘되는 길이라면 생사를 무릎 쓰고 불바다에도 뛰여드는 부모님,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버리지 않는 한결같은 자식사랑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목숨까지도 선뜻이 내여줄수 있는 부모님이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하는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도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일에서는 대단히 린색하고 소홀하다. 특히나 가슴 아픈것은 요즘 핵가족화현상으로 인하여 민족의 전통적가치관은 무너져내리고 효도라 하면 봉건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최상의 복지를 자랑하는 선진국들에서는 양로, 의료 등 복지제도가 로후를 충분히 보장시켜줌에도  로인들이 만년의 고독을 못이기며 괴로워하는것을 볼 때 로인의 행복이라는것은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충분히 가능한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자식들의 효도가 우선되여야 한다고 느껴진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자식을 효자로 기르는것보다 더 좋은 로후대책은 없는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는것이며 효도교육은 인간교육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교육이다. 그러나 현대교육은 어떠한가? 대학입학시험, 취직만을 목표로 하는 출세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학교는 사회경쟁을 위한 준비장소가 되여버렸고 부모는 자녀교육의 목표를 인간성 배양과 지식 쌓기에 두지 않고 남의 자식들보다 학업성적이 뛰여난 자식으로 키우고 남을 이기는것에 두고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너만 출세하면 된다.  우리는 늙으면 양로원으로  가겠다. 부모걱정은 하지도 말아라.”라는 식으로 자식에게 효도교육을 할 대신 불효도 수용하겠다는 의향을 로골적으로 미리 자식에게 시사한다. 부모들은 중년쯤 되면 벌써 최선의 로후대책으로 양로원을 택하는것이다. 아글타글 고생하면서 자식을 키우는 목적이 무엇인가? 양로원으로 가려고 자식을 키우는것은  아닐것이다. 아무리 핵가족시대라 할지라도 되도록이면  조손3대가 같이 생활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것이 바람직하다. 단지 손자 손녀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주고 맞아오는 순간적인 접촉에만 그치지 말고 함께 살아감으로써 두터운 정을 쌓아 애들로 하여금 로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애대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싹트게 해야 한다. 자기의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경하는 어린이는 나중에는 이 세상의 모든 로인들도 존경하게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울것인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추호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깊어만 가건만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성은 나날이 옅어져가는 이 슬픈 시대에 우리의 후대들을 장차 민족의 지도자요 나라의 기둥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효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간에 여러 중소학교들에서 학생들에게 효에 대해 가르치면서 지은(知恩), 감은(感恩), 보은(报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데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럽고 아주 잘된 일이다.    예로부터 “효자가문에 충신이 난다” 하였고 “충신을 효자가문에서 구한다”고 하였다. 효자가 많으면 충신도 많은 법. 효자가 많으면 가문이 행복하고 충신이 많으면 나라가 튼튼하다. 세상에서 이 이상 더 바랄것이 무엇이랴!    결국 효(孝)에 길(道)이 있는 것이다. 2015-10-1       
28    란폭운전, 이제 그만 댓글:  조회:1184  추천:0  2019-03-05
나는 일본에서 여러해 생활하면서 이곳에서는 너무 흔한 세가지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자동차경적(警笛)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고 자동차충돌사고를 목격한적이 없으며 사고 뒤 물리적인 몸싸움은 물론 언성으로 다투는것 조차 보지 못하였다. 일본의 경찰서나 파출소앞에는 교통게시판이 걸려있는데 당일의  교통사고건수를 실시간으로 통보한다. 전국적인 통계수치라 해도 사고건수가 아주 적은데 나는 그것마저도 의심되였다. 과연 일본에도 교통사고가 있기는 한것인가고.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이라 처음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다. 한번은 횡단보도에 록색불이 들어왔는데도 나는 어느쪽으로 건너야 할지 머뭇거리며 서있었다. 길을 분간하고 건너려는 순간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였다. 그럼에도 내가 길을 건널것이라 생각하고 그 많은 차들이 그대로 정지해있는것이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자들에게서 크게 감동을 받은 나는 길을 건너면서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연길의 도심거리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한번은 내가 아침출근시 교통신호등에  록색불이 들어와 인도를 거의 건느는데도 멀리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질주해오더니 급히 우회전을 하려 했다.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이 굳어져 서있는데 운전자가 차창문을 열고 “눈이 없는가? 죽고싶어 그러는가? ” 며 욕설을 퍼붓고는 달려가는 것이였다. 아침  첫 출근시간에 이만큼 재수없는 일이 또 있을가. 일본에서는 모든 면에서 사람이 최우선이다. 보행자가 차를 피해야 하는 이곳 문화가 몸에 배인 나는 길을 건널 때면 항상 머뭇거렸는데 그때마다 운전자들은 차를 멈춰세우고는 나더러 먼저 건너가라고 손짓했다. 정말 대단한 교통매너였다. 일본에서는 경적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운전자와 운전자, 운전자와 보행자 서로가 양보하고 인내한다. 보행자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경적을 울리는 무례한 행위는 절대 없다. 차가 막혀도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법이 없다. 일본인 친구에게 경적을 어떨 때 사용하는가고 물었더니 앞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하고있는것 같으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할수 없이 사용한다고 했다. 우리 이곳은 어떤가? 온통 경적란발이다. 한창 걸어가는 보행자에게 길 비키라고 뿡, 앞차 보고 빨리 움직이라고 뿡, 고맙다는 인사도 뿡, 작별시에도 뿡, 자기 택시에 앉으라고 뒤쫓아오면서 뿡—뿡, 그 소음으로 머리가 뗑하다. 이곳 운전자들은 주행시 질서가 없고 란폭하기 그지 없다. 중앙선을 침범하는가 하면 남의 차도에 마구 진입하고 차도를 제마음대로 변경한다. 차종에 따른 전용도로도 없어 한데 뒤섞여 범벅이다. 특히 연길시의 택시는 도시의 최고 무법자다. 상대가 양보하려니 여기면서 겁없이 아무데나 들이받는다. 택시차들은 성한것이 별로 없는 상처투성이 차들이다. 보행자나 운전자나 택시가 나타나면 일찌감치 멀리 피하는것이 상책이다. 일본에서 차를 배운 사람은 연길에서 차를 몰기 어렵다. 두려움때문이다. 그러나 연길도심에서 운전하던 웬만한 실력자라면 일본에서는 아무 부담없이 자유자재로 몰수 있지 않을가 감히 상상해본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나는 일본인 친구에게서 기초운전을 배웠었다.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승차한 사람이 시름 놓일수 있게 편안하도록 운전하라. 운전속도가 늦어도 괜찮다. 항상 직진, 회전, 정지 등 자신의 의도를 상대편 운전자에게 미리 분명히 알려라. 항상 다른 운전자가 광인(狂人)이라 생각하고 방어운전하라. 차운전에서만은 자존심을 누르고 져주라. 세월이 흐른지 한참 되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조언이 기억에 뚜렷하다. 그래서 그의 조언을 지키기에 항상 노력한다. 그러나 나만 주의한다고 될 일인가, 상대가 란폭운전을 하는데는 도통 방법이 없다. 혼잡한 교통질서속에서 나는 두번 당했다. 두번 다 내가 싫다는데도 다른 차가 다가와 억지로  내 차를 사정없이 “키스”했다. “자연은 무질서해야 아름답고 인간은 질서가 있어야 아름답다”고 어느 철인은 말했다. 자연에게는 저절로 법칙이 존재하며 스스로 풍성하고 아름다움을 가꾸지만 인간사회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규범과 질서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 흔히들 미국이나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개인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것으로 사람들은 착각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져왔고 정화된 사회질서의식이 대단히 높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고 엄격한 사회질서속에서 살고있으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불편을 느끼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소득수준이 높다고만 되는것이 아니다. 그에 따른 정신적수준도 경제소득수준 이상으로 높아야 한다. 중국은 이미 경제규모가 독일을 추월하고 일본을 릉가한 세계 제2의 경제실체를 이뤘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문명에서 한참 떨어져있다. 우리는 언제면 선진국들처럼 법과 질서를 갖춘 서로가 편한 사회를 이룰가? 답은 궁해진다.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태산같다. 작은것부터 고치자. 란폭운전, 제발 이제 그만! 2013-4-16  
27    오랜만에 맞는 반가운 혁명 댓글:  조회:1065  추천:0  2019-03-03
하이힐(高跟鞋)의 기원에 대한 설(说)은 다양하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자신의 키를 상쇄하기 위해 굽 높은 신을 특별 제조하여 신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남편의 외도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모멸감과 실의에 빠져 하이힐을 만들어 신고 다녔다는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16세기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는 변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왕이 초청한 만찬에 참가한 귀족들은 정원의 구석이나 부근의 숲을 찾아 용변을 보았다. 여기 저기에 널려있는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이 바로 ‘하이힐’이라는것이다. 선진국 프랑스, 그것도 문화에서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것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1987년 봄부터 여름까지 한 학기 동안 나는 다니던 대학의 배려로 북경에서 한어연수를 했다. 북경대학에서 멀지 않는 해전구의 한 동네에 주숙을 정했었다. 여기서나는 놀라운 광경을 접하게 되였다. 동네에 있는 공중변소에 들어가보니 칸칸에 문이 없었고 칸막이마저도 없이 그냥 콩크리트 바닥에 여러개의 구멍만 뚫어져 있었다. 그것도 한줄로만 배렬돼 있으면 그나마 덜 난처하겠지만 두줄로 배렬돼 있으니  참으로 기겁할 일이였다.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모든 것을 다 드러낸채 얼굴을 맞대고 볼 일을 봐야 했으니까. 연변은 북경에 비해서 시골이지만 당시 공중변소의 칸칸에 가림 문은 없어도 칸막이는 있었고 서로 마주보며 뒤처리하는 딱한 경우는 없었다. 북경사람들은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환경에서도 서로 국제국내 형세를 담론하면서 태연하게  용변을 보는것이였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였다. 수도 북경이 이러했으니 다른 지방이야 더 말할나위 없었을터. 얼마전에 섬서성에 다녀왔다. 섬북의 농촌환경은 여전히 렬악했다. 홍군이 장시기 머물렀던 그 유명한 남니만에서는 지금도 구덩이를 파고 널판자 두개를 얹어놓은 재래식 변소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관광객들에게서 사용료 1원씩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지 70년이 되여오는데도 말이다. 변기의 사용수준과 변소의 청결정도는 한 나라의 문명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지금과 비슷한 수세식 변기는 1596년에 영국의 재능있는 작가 존 해링턴이 고안했다. 그 뒤 1775년 영국의 발명가 알렉산더 커밍스에 의해 수세식 변기가 처음 발명되였고 1778년 역시 영국의 발명가 조셉 브라마가 훨씬 개선된 수세식 변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과연 신사의 나라 영국다운 인류문명사의 한 단락이다. 선진국들은 일단 변소부터 깨끗하다. 변소에서도 식사를 할수 있는 정도로 청결해야 한다는것이 선진국 국민들의 희망사항이다. 독일의 유명 시인 브레히트는 깨끗한 변소를 “혼자서도 첫날밤을 치른 사람처럼 행복한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9년 청년 습근평은 섬서성에서도 오지인 량가하(梁家河)로 하방됐다. 그는 7년간 농촌생활을 했는데 당시 그와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습근평이 쓰던 변소는 칸막이만 대충 있는 남녀 공용의 불결한 변소였다고 한다. 쾌적하지 않는 변소를 사용해야 했던 청년 습근평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것이다. 그래서 2012년에 취임한 습근평 주석은 거시적인 면에서 ‘중국꿈’의 실현을 호소했고 미시적인 면에서는 변소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지방시찰을 할 때마다 수세식화장실 사용을 점검하면서 농촌화장실 개선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 중앙정부는 3년에 걸쳐 깨끗한 변소를 만드는 ‘변소혁명’에 착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뒤 적극적인 실행에 옮겨 2015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중앙정부 예산 10억원과 지방정부 예산 200억원을 ‘변소혁명’에 투입함으로써 6만 8000여개의 변소가 개조되거나 신설되였다. 올해 11월 21일 습근평 주석은 “지난 2년간 좋은 성과를 낸 ‘변소혁명’을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변소문제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문명건설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한 이번 변소혁명이 단순한 관광진흥책략이 아니라 농촌지역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면서 1차에 이어 2차 ‘변소혁명’을 선언했다. 중국에서는 력사적인 큰 사건들을 ‘사변’이나 ‘운동’으로 명명한다. ‘9.18사변’, ‘서안사변’, ‘5.4운동’, ‘대약진운동’ 등 호칭들이다. 조대가 바뀌거나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큰 일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신해혁명’, ‘문화대혁명’ 등 호칭들이다. 가난한 중국을 환골탈태시킨 개혁개방도 ‘혁명’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변소현대화 작업에는 ‘혁명’이란 이름을 붙였다. 문명건설에서 국가 지도부의 드팀없는 굳센 의지를 나타낸다. 오랜만에 맞는 현실적인 혁명이요, 국민들이 소원하는 반가운 혁명이다. 중국이라는 대국이 거시적인 면을 넘어 미시적인 면에서도 거대한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인류문명사에 기재될 또 하나의 질적 비약이 예상된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엿볼수 있다. ‘중국꿈’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질것 같다. 2018-1-2  
26    다가오는 건망증, 그리고 치매 댓글:  조회:1149  추천:0  2019-03-03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50대에 진입하게 되면 홀연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게 되고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길 가는 군인들이 어려보이고 TV를 보다가 어느새 잠 드는 일이 잦아지며 잔소리가 늘고 외모 가꾸기에도 등한하다. 누군가 갑자기 자기의 나이를 물으면 반응이 늦어 뜸을 들여서야 대답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 늦어지는 반응이야 어찌할 수 없겠으나 건망증이 발볌발볌 다가오는데는 과연 속수무책이다. 오래전의 일은 기억에 뚜렷한데 엊그제일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평소에 머리를 쓰지 않고 독서에 게을리해서 그럴가? 그러나 이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생 사색을 멈추지 않고 창의력이 넘치던 과학자나 발명가, 음악가들도 건망증으로 애를 먹었다. 아인슈타인은 집주소를 자주 잊어버려 퇴근할 때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거나 집주소가 떠오르지 않아 근무하는 대학에 전화를 걸어 묻기도 했다. 발명왕 에디슨은 은행에 일 보러 갔다가 은행직원이 이름을 묻자 생각이 나지 않아 집에 가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보고 왔다는 어이없는 일화도 있다. 음악가 슈베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으면서도 “누가 작곡했는지 참 아름다운 곡”이라며 스스로 칭찬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인가 문득 기억력이 저하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두려움이 앞선다. 혹시 치매의 전조증상이 아닌지 은근히 불안하다. 그러나 건망증과 치매는 다르다는 것이 전문의사들의 견해다. 건망증은 나이가 들면서 뇌의 신경회로의 기능이 저하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치매는 뇌세포손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관건은 치매다. 안타깝게도 치매에는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다는것이다. 최근 1~2년 사이 세계적인 유명 의약회사들이 잇따라 치매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치료제도 발병 이후 증상만 조금 완화시켜 줄뿐 근본적으로 손상된 뇌를 회복시키는 약물은 없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나면 김이 빠지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것 또한 비겁한 짓이다. 전문가들에게서 조언을 구했다. 듣고보니 모두가  평범한 일상들이였지만 구구절절 진리였다. 운동을 안하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머리도 잘 쓰지 않으면 인지능력이 저하된다. 그러므로 뇌는 부지런히 사용해 뇌근육을 자꾸 써야 한다. 신체 나이와 뇌 나이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3년 미국 켄터키대학의 연구팀은 2개국 언어를 사용하는 로인들과 모국어만 사용하는 로인들을 비교했다. 이들의 뇌 영상에서 모국어만 사용하는 로인의 뇌는 과제를 완성하는데 더 많은 일을 하는 반면, 2개국 언어를 사용하는 로인의 뇌는 젊은 사람의 뇌처럼 효률적인 처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신경세포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필요없다고 인식하고 죽어버린다. 반대로 자극이 가해지면 정보전달을 위해 뇌를 활발하게 움직인다. 즉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고령이라 하더라도 자극을 계속 주면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서, 외국어 학습, 악기 배우기, 명상 등이 뇌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매일 똑같은 활동만 되풀이 하지 말고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골고루 자극을 주는 것이 균형 잡힌 건강한 뇌를 만드는 비결이다. 습관이 굳은 늘 걷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해도 다른 로선으로 달리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정말 꼭 명기해야 할 사항이 있다. 뇌 전문가들에 의하면 뇌의 활성세포 감소와 뇌조직 위축은 치매발생 20년전부터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70대에 똑똑한 정신을 가진 정상인으로 후대들에게서 괄시를 받지 않고 대우 받으며 살려면 40대 후반부터 늦어도 50대부터는 치매예방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몸과 머리를 부단히 움직이고 써야 한다. 독서로 지금껏 모르고 살던걸 배우면서 락을 느끼며 늘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좋은 생각을 하면서 불필요한 걱정과 쓸데 없는 시기나 질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치매는 가족에게는 지옥, 본인에게는 천국’이라는 말이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을 가리킨다. 치매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건망증과 치매를 구분하는 유모아도 있다. 안해의 생일을 잊어버리면 건망증이지만 안해의 얼굴을 잊어버리면 치매다. 50대에 진입하니 기억력이 깜빡할 때가 많다. 물건 가지러 갔다가 왜 왔는지 생각나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안해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일만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래서 슬슬 걱정이 앞선다. 치매와는 연(缘)이 닿지 말아야겠는데… 2018-11-30
25    가는 세월 오는 세월 댓글:  조회:1068  추천:0  2019-03-03
세월은 자기 나이만큼 가속도가 붙는다고 했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체감속도는 빠르다. 청춘시절 한창 때엔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나이 50을 넘어서면 ‘아차!’ 싶다. 물속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던 랑만의 시선(诗仙) 리태백도 세월의 흐름에 고뇌를 느끼며 “나를 버리고 간 지난 세월은 머물러있게 할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현재의 세월은 번민과 근심이 많구나”라고 덧없는 세월의 회한을 토로했다. 어찌 리태백뿐이랴. 공자같은 대성인도 강가에 서서 순간도 그 흐름을 멈추지 않는 저 강물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흘러가는 세월은 이와 같은가, 밤낮으로 멈출 때가 없도다”라고 무상한 세월을 탄식했다. 세월의 공평함이라 할가. 새해를 맞으며 누구나 똑같이 한살 더 먹는다. 하지만 그 느낌만은 저마다 다르다.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보다 다가오는 세월에 대한 희망이 앞선다면 그것은 바로 젊음의 표징이다. 이와 반대로 래일에 대한 설레임이 없이 어제를 그리워하며 추억을 먹고 산다면 곧바로 나이 들었음을 상징한다. 년말년시가 되면 지나가는 한해를 뒤돌아보게 되고 다가오는 새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낮추게 된다. 원망과 노여움도 가라앉히며 마음을 비우게 되고 혹시 본의 아닌 불찰로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이 없나 헤아리게 된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니 잘한 일은 선뜻 떠오르지 않고 아쉬움과 미안함이 많이 남는다. 그랬어도 나를 받아준 하늘과 땅에 감사하며 아직도 넉넉한 세상의 인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지난 한해에 가정은 안온했고 그 구성원들은 건강했으며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바라던 일들은 이루어졌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할 곳이 있어 아침식사를 뚝딱 해치우고 밖에 나갈수 있었다는것, 지난 세월 인연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수 있었다는것, 인간성 좋은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꼈고 선배다운 선배로부터 인격도야를 배우며 익혔다. 매일같이 출근길 즐거웠고 퇴근길 거뜬했다. 그래, 그러면 됐다. 이 이상 더 바랄게 뭔가. 지난해 내 인생의 손익계산서는 에누리 없는 흑자이다. 지난 한해는 흘러갔으니 과거로 덮어두고 새해의 소박한 타산을 가져본다. 우선 뭐니뭐니해도 관건은 건강이다. 새해에도 건강관리 잘 해서 심신이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이다. 알고보면 존재 자체가 거룩함이요, 살아있는 자체가 축복인데 건강하게 나날을 보낼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자연의 리치대로 살아야겠다. 가는 세월 잡지 말고 오는 세월 막지도 말자. 세월은 비껴갈수 없는 법. 세월 앞에 장사가 따로 없다. 육체는 쇠퇴해지고 얼굴엔 주름이 늘어가지만 자연의 섭리라 담담히 받아들이자. 그러하오나 령혼만은 주름지지 않게 함으로써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어야지. 자기와 무관한 가치없는 세상사 묻지도 따지지도 말며 지나칠것은 지나치고 덮어둘것은 덮어두자. 사심이 없으면 천하가 넓다고 했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역지사지로 상대를 수용한다면 인생은 고달프지 않고 령혼은 늙지 않을것이다. 뛰여난 재기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세계적인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육체는 젊게 태여나 늙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그러나 령혼은 늙게 태여나 젊게 성장한다. 이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나이 들었다고 꿈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할 일 없어 래일을 어떻게 보낼가 걱정하기 보다는 나이에 걸맞는 착실한 꿈을 갖고 착착 실행해가자. 그러면 인생의 재미를 짭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나이에 무슨…”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습관을 갖지 말자. 포기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늙기 시작한다. 새해도 각자도생(各自图生)으로 세상은 역시 분주할것이다. 세월은 류수같고 광음은 쏜살같아 필시 세월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흐를것인즉 그것을 부정할수 없다면 편한 마음으로 순리를 따르며 인생을 즐기자. 2018년에도 기쁜 일과 슬픈 일,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한해가 되겠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끈끈한 형제애가 있으며 그리운 사람들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늘에 태양이 있고 그 아래서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세월앞에 기죽지 말며 기합 한번 크게 주고 기운을 내자. 저 푸른 하늘을 향해 크게 한번 웨쳐라. “세월아, 비켜라! 내가 간다”고. 가는 세월 오는 세월. 만족스레 2017년을 배웅하며 자신있게 2018년을 영접한다. 201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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