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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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선족의 드림 댓글:  조회:4686  추천:5  2012-07-06
지난 90년대 초의 중한 수교는 조선족 력사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아왔다. 조선족 한국행의 획기적인 서막이 열린 것이다.   20여년의 변천을 거쳐 오늘의 한국은 명실공히 우리의   반경 안에 놓여 있다. 조선족이 한국 붐에서 전례없는 실리를 챙긴 것도 확연한 현실이다.그중의 다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한국의 출국,한국 문화의 향수, 한국 산품의 소비는 생활화되어있고 심지어 범조선족이 한국에 턱을 대고 발편잠을 자는 소강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보다 더 값진 수확은 조선족이 한국 사회의 진수를 리해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삶을 영위하는 노하우를 키웠다는 기꺼운 현상이다.낡은 가치관과 관습은 이국 땅의 고통속에서 무너지고 적자생존의 찬바람 속에서 얻은 처세의 지혜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지평을 대대적으로 넓혀 주었다.생존경쟁의 잔혹한 론리가 살판치는 이국이지만 중국땅에서 지켜온 민족문화의 가치의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허나 한국행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얻은 수확에 반하여 상실한 대가도 만만치 않다. 인구의 격감으로 공동체의 해체,문화의 황페,교육의 위기가 민족의 뿌리를 쾌속으로 잠식하는 엄혹한 사실이다.이 생사존망의 된고비를 넘지 못하면 민족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고 아우성소리가 높아만 간다.조선족은 금의옥식(錦衣玉食)을 얻은 대가로 민족적 을 잃어 버린 것이다.   희비가 헷갈리는 코리안 드림의 싸움판에서 우리의 민족사회는 재정립이냐,사멸이냐 하는 혼돈의 시대를 맞아왔다.지난날에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원인으로 이국을 찾은 것은 시대적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그렇다면 절박하던 생계 문제가 차요화 된 오늘 조선족은 더 높은 단계에서 지난 세월과 판이한 청사진을 그려야 마땅하다.   조선족에게 있어서 한국과 한반도는 영원한 희망의 땅이다.한반도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조선족의 발전과 정비례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지금의 조선족은 돈을 번다는 원초적인 목표를 넘어 매개인이 진정 한국에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고 전체 민족은 지구상 한민족의 믿음직한 집단으로 되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가져야 한다.이것이 중한 두 나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 속에서의 조선족의 일차적 작용이다.   조선족은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타민족과 공생공영하는 례의 바른 민족으로 되어야 한다.위해서는 우선 완벽한 조선족이 되어야 한다.시대에 바싹 따르고 타민족과 잘 단결하며 공적인 사업에 애정을 보내는 슬기로운 민족이어야 남에게 돋보인다.이리하여 우리 민족의 공동체를 타민족과의 융합이 진정을 실현된 중국특색의 민족문화 공간으로 건설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전사회가 조선족에게 바라는 기대이다.   후대들의 교양은 가장 절박한 문제이고 시급한 문제이고 심난한 문제이다.많은 지성인들의 노력은 필수이겠지만 전 민족적인 자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약동하는 중국에서 세계7000만 한민족의 당찬 집단이란 이것이 조선족의 최고 값진 재산이다.후대들에게 이 문화를 완전무결하게 전승시키는 것이 잘 살아가는 첫째 비결이고 남의 존경을 받는 첫째 리유이고 나라에 대한 위선 공헌이라는 이 점은 기성 세대들부터 명기해야 할 요체(要諦)이다.   조선족 공무원들이 사회 사업관 민족 단결에서 찬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민족의 인문 자원을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가치로 실현시키는 사업은 공무원들의 몫이다.오늘에 민족적 삶에 경제 기반이 구축되었다면 튼실한 민족산업과 출중한 비지니스 사회를 건설하여 세인에게 펼쳐 보여야 한다. 많은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우리 공직자들의 노력과 지혜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중한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조선족의 영원한 과제이다.세계화 시대에 효률적인 소통을 위하여 지배적 언어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지만 이럴수록 민족언어가 수요되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조선족이 꿰찬 두 나라의 언어와 문물은 기필코 선진생산력의 힘찬 활력소로 전화되어 무한한 재부를 창조할 것이다.   새 시대의 조선족이 중화민족의 화원에서 우수한 민족구성원으로 되고 전세계 한민족의 차이나(China) 교두보로 된다면 속절없는 꿈은 아닐 것이다. (끝) 2012-06-10  
14    개방 소고(開放 小考) 댓글:  조회:3974  추천:3  2012-06-09
                                                                      개방 소고(開放 小考)                                                                                                                           김인섭     2012-06-04 이란 단어가 뒤에 따라붙어 인구에 회자된지 긴 시간이 흘러갔다.아마 중국 력사의 한 전성시대를 대변하는 벽어로 청사에 각인될 듯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란 의미를 유달리 고심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한국어 사전에서 개방은 로 씌여있다.중국어 사전에서 등의 뜻으로 풀이된다.오늘 우리가 말하는 개방은 대외와 대내적으로 서로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저애하던 모든 사상적, 제도적인 질곡을 타파한다는 것이다.이 시각에서 보면 개방은 역시 개혁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된다. 개방이란 페쇄를 상대하여 말하는데 한 개 사회제도의 서로 모순되는  두 개 방면이다.절대적 개방과 절대적 페쇄란 존재할 수 없다. 개방사회도 부분적인 페쇄가 따르고 페쇄사회도 일정한 개방이 존재한다.사회는 개방과 페쇄의 유기적인 결합가운데서서 발전하는 것으로서 개방은 필연적으로 제한적인 페쇄와 병립하게 된다. 사회는 부단히 개방과 페쇄라는 이중적 과업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 발전에서의 영원한 명제이다.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개방이란 문호개방,경제개방,문화개방,사회개방,정치개방 등이 망라된다.개방은 시대적 내용을 가지는 바 현실을 리탈한 무분별한 개방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무작정한 페쇄는 사회의 질식을 초래한다.간단히 말하면 개방할 것은 전부 개방하고 패쇄할 것은 전부 페쇄해야만 사회가 순리롭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방 사업은 고도의 과학성과  민주성을 수요하는 시스템 공사이다. 개방이란 어의(語義)에서 보면 열어놓고 풀어놓는다는 뜻이나 모든 규제의 환화와 제도의 해제가 무조건 정확한 것이 아니며 반대로 모든 페쇄 자체가 무조건 착오인 것이 아니다. 그의 정확성 여부는 그것이 활력있는 사회를 재정립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추진하려는 요구에 부합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제도적인 개페(開閉)의 균형을 맞추는 사업은 사회모순을 해결하는 주요 사업의 하나로 된다. 개방은  내부적 개방과 외부적 개방이 있는데 내부적 개방은 외부적 개방을 결정한다.정확한 내부적 개방이 없이 성과적 외부 개방이 있을 수 없다.내적 개방은 외적 개방의 기초이고 외적 개방은 내적 개방의 표현이고 그의 발전이고 전개이다.내적 개방과 외적 개방의 유기적인 결합은 과학적 개방의 핵심 과제이다. 우리가 말하는 개방은 경제개방과 사회개방(외교,문화,정치 포함)인데 경제개방은 사회개방의 귀결점이고 사회개방은 경제개방의 보증이다.정확한 사회개방이 없는 경제개방은 성공할 수 없고 경제목표를 떠난 사회개방은 도비심력(徒費心力)에 불과하다.인류 사회는 영원한 사회개방과 경제개방의 상보상제(相補相制)의 교호작용 속에서 발전한다.지도자의 걸출한 지혜는 이 량자의 관계를 정확히 처리하는데서 표현된다. 개방은 리익을 조절하는 사회적 운동이다.그 과정에서 부동한 사람과 집단은 자기의 리익과 가치관에 따라 그를 평가하고 인식하게 되는데 그 실천에서 그들의 태도는 천양지차로 나타난다.개방이 자기 이익과 가치관에 배리되면 필연적으로 반대하고 제애하게 된다.그러므로 개방 사업은 다수인의 이익을 보증할 수 있는 제도적으로 확보된 사회개방이 전제로 되어야 한다.오로지 진보적 력량이 우위를 점한 사회만이 생기있는 개방사회로 될 수 있다.   개방의 목표는 전체 사회성원이 평등하게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법치사회를 건립하는 것이다. 진정한 개방사회는 전체 인민들의 도덕적 감정과 사회적 각성의 최고치를 불러낸다.이 사회의 표지는 과학적인 개방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다수인의 의사에 따라 조화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축된 것이다.
13    개혁 주석(改革 注釋) 댓글:  조회:3404  추천:1  2012-06-08
                                                                        개혁이란 말을 몇십 년 되풀이하다 요즘에야 내포된 함의를 한참 숙고해 보았다. 한국어 사전에서 개혁은 으로 씌여있고 한어 사전에서는 고 풀이하고 설명한다. 간단히 개혁이란 사회 수요에 배리되는 제도적인 조직과 구조 및 그에 상응하는 법률과 정책에 대한 인간의 주동적인 개정 및 재정립을 말한다.포괄적으로 말하면 개혁이란 새로운 법적 제도의 건립으로서 그  범위와 심도에 따라 개혁,혁신,혁명 등 용어를 늘 사용하게 된다. 개혁은 광의적 개혁과 협의적 개혁으로 나누는데 전자는 개혁의 일반성 즉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혁신 행위를 말하고 후자는 그 개혁의 상대성 즉  그 시대의 특수성이 담긴 혁신을 말한다. 사회는 영원히 진보와 퇴보,진보와 보수간의 모순 속에서 발전하므로 인류문명의 력사는 변혁과 반변혁간의 투쟁의 력사라고도 말한다.결국 개혁이란 전진이냐  퇴보냐 하는 승부 겨룸이다.   허나 모든 개변이 개혁이 될 수 없다.그 개변이 사회 발전에 유리하면 개혁이고, 낡은 것을 지키려 한다면 보수이고, 옛것을 복고하려 한다면 반동이다.결과적으로 그 진보 여부의 객관적 기준은 그 개변이 생산력의 발전에 부응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혁의 핵심은 경제적  리익관계를 조절하는 분배구조의 재구성이다.그는 부동한 이익을 반영하는 주장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개입하는 사회적 합의 사항이기에 각자는 자기의 이익에 따라 부동한 태도를 가진다.대체로 개혁이 그의 이익을 건드린다면 반대 세력이 되고 그 상대측은 추진 력량이 된다. 그러므로 개혁의 사업엔 대량적인 진보 력량의 후원하는 인재 집단이 선두주자로 서야 한다.개혁의 주도권을 누가 잡는가에 의해 그 결과는 운니지차(雲泥之差)로 나타난다.  사회적 개혁의 추진은 정확한 결책을 내리고 강유력히 추진하는 권력을 수요한다.그러나 반드시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첫째는 모든 권력에 한계선을 그어 놓고 누구를 막론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강력하도록 해야하고, 둘째는 그 라인을 침범하거나 넘어선다면 즉시 견제하고 심각한 처벌을 가하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권력이 있으야 한다. 법제화된 민주적 결책,강력한 집행, 강력한 감독의 유기적인 결합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삼대 요소이다. 개혁은 신구교체의 과정으로서 늘 불온정의 요소를 가지게 되는데 모든 권력 행사는 민주감독과 여론감독의 시야에 놓여야 한다.특히 집행자들은 권력람용, 권력오용,부정축재(不正蓄財)의 비행이 있을 경우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적 위협 속에 있어야 한다.어떠한 개인이나 사회 집단이던지 한결같이 리기본위의 경향을 가지므로 그들의 모든 행위는 전사회적 감독과 비판이란 타률(他律)의 위력이 있어야만 손인리기(損人利己)의 비행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다. 실시간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론공행상(論功行賞)하는 사회 시스템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공구이다. 사회는 영원히 량변에서 질변에 이르는 운동,변화 과정이다.그러므로 개혁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그 과정은 부단히 경험을 총화하고 교훈을 섭취하며 자아 성찰을 진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이 과정을 이탈한다면 개혁은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또 어떠한 개혁이던지 그는 전반 력사의 한 단락일 수 밖에 없으므로  한 개혁의 도착점은 다른 한 개혁의 출발점으로 된다는 점을 명기하여야 한다.  개혁의 목표는 사회평등,경제평등,정치평등이 보장된 조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그 외적 표현은 사회의 모든 성원이 충분한 민주 권리와 공민 권리를 향수하고 진정으로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법제 원칙이 실현되는 것이다.전체 인민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개혁의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그의 최종 결과이다.   (끝) 2012-05-26  
12    디아스포라와 조선족 댓글:  조회:4416  추천:2  2012-05-22
디아스포라와 조선족                                                                                                           김인섭   2012-05-10 요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가 그다지 생소하지 않다.그의 기본 의미는 리산(離散)이지만 지금은 불행한 력사적 원인으로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점차 고착되었다. 최근에는 자기 국가 혹은 공동체를 떠나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외연이 확장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수천 년 동안 받은 박해,류배,축출,도살의 액운은 인류사상 류례가 없다.특히 2차세계 대전 기간에 나치스에게 600만이나 학살 당한 참사는 지금도 사람들을 공포의 나락에 떨어뜨린다.그러나 그들은 그 팔한지옥에서도 민족의 신념과 문화 강산을 철석같이 지키며 세세대대로 분투하여 옛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우는 숙원을 끝내 이룩하였다.    이스라엘은 650만(국내) 인구의 소국이지만 주변 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하여 세인을 놀래우고 있으며 세계인구의0.3% 안팍인 나라에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국력을 키워 세계 경쟁에서 늘 불패를 자랑한다. 북미와 유럽에서 금융시장을 떡주무르듯 해대는 그들에게 강대국들도 늘 주억주억할 수 밖에 없다.문자 그대로 가난하고 말끔한 장대촌지(掌大寸地)에서도 세계의 면면에 거센 제어력과 추진력을 뽐내는 데는 유대인의 특유의 문명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식이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민족의 자부심과 꼭 성공한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한다.민족의 비장한 력사에 대한 숭상과 역경 속에서도 그 전통를 고양하는 유대인의 뒤에는 철상철하의 교육이 뒷받침 되어있다.교육에 대한 국가적 노력과 투자도 세계적 으뜸인 바 줄곧 국가예산의 10%를 웃돌고 있다.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중 35%가 1700만 유대인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교육에 내재한 저력이 얼마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각설하고,유대인의 민족적 자부심.범민족적 대화합, 후대 양성에 대한 집착,타민족과의 조화 등이 이스라엘의 휘황을 이룩시키는 벋팀목이 되었다면 바로 이것이 리산,분화,조합의 미궁에서 갈팡질팡하는 조선족에게 거울로 되지 않을가?   개혁개방의 쾌거와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조선족 사회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전체적인 발전은 더 말할 것 없지만 인구 이동,인구 격감,공동체 해체,교육 위축,문화 산실,가치관 요동 등 반동 작용이 급물살처럼 뒤를 따라 이 약소 민족이 소실의 직전에 이르렀다는 소리도 부풀부풀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시대적 고민이다.하여 유대인의 양상에서 이 난제를 풀어갈 몇 가닥의 계시라도 받을 수 있을가 싶다.   유대족의 의지와 자신심이 그들의 약진을 부추긴 냅뜰힘이었다면 조선족의 비전과 발전의 좌표는 어디 있을가 넘겨다본다. 중국은 조선족의 영원한 삶터이고 조선족의 천혜의 재산이다.이 땅에서 민족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 조선족의 제일 장점이고 잘 살고 빨리 발전하는 지름길이고 중국과 한민족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광활한 천지이다. 우리가 중한 두 민족의 문화를 꿰찼다는 감점(强點)은 이 땅에서 우수한 민족 구성원으로 되고 세계 한민족의 걸출한 집단이 될 수 있는 충분한 리유가 된다.   결코 장밋빛만이 아닌 거대한 중국의 광명한 미래와 조선반도의 필연적인 발전추세는 조선족에게 무한한 도전의 기회를 안겨 줄 것이다.뿐만이 아니고 한민족과 중국간의 교류에서 누구도 대체가 안되는 천부적 독점지위가 부여되어 있어 숱한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귀영달의 발판을 딛고 있다.이는 우리의 뱃길에 투영된 가시적인 추세로서 조선족의 참된 노력은 민족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적 영예를 따내는 일석삼조의 시너지 효과를 발생할 수 있는 값진 로동이라는 명증이다. 민족지리의 산맥에서 문화민족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영예로운 삶의 고지를 점령하는 탄탄대로임을 조선족은 명기하여야 한다.   교육이 조선족 사회의 계승과 발전의 요충지임을 강조하는 말이다.교육은 이 사회의 존속과 발전의 기본 조건이고 만년 대계이다. 후대에게 민족의 앞날을 제시하고 민족 문화의 가치를 습득시키며 타민족과의 화합,공존의 지혜를 키워주고 역경속에서 사는  처세술을 잘 가르쳐야 한다.가정,사회가 일치로 교육에 핵에너지를 퍼붓는 유대인을 따라 배워야 한다.   마우스의 간단한 클릭으로 의 저애없이 실시간으로 오갈 수 있는 오늘이 디지털 시대이다. 중국 속의 조선족 사회가 7000여만 인구의 의 튼실한 플랫홈이 된다면 무진장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않을까 싶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어도 한결같이 지역의 환경에 걸맞는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고 상호 련계의 네트웍을 이루는데 그 범민족적 결속력은 엄청난 부를 창조하고 있다.   는 명구를 상기한다.격변의 소용돌이를 무난히 헤쳐가고 미래의 웅비를 다지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삶속에서 뭔가를 훔쳐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절감이 맘속에 서려 있다. (끝)  
11    (수필)석별의 아픔 댓글:  조회:3816  추천:2  2012-04-07
                                                    석별의 아픔                                                       2012-02-29    김인섭   공항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써늘한 한기가 몸통을 감싸며 썰렁한 집안에서 울적한 기분이 부걱부걱 솟아올랐다.   휘영휘영한 가슴속을 갈앉히려 뒤산의 놀이공원으로 올라갔다.바다를 향해 남으로 탁 트인 전경은 예와 같이 변함없을 터인데 보고봐도 안개 속마냥 시뿌옇기만 하다.세차게 쏟아지는 해빛도 서서늘한 등곬을 덥히기엔 역부족이다.어제였다면 텃새들의 반겨맞는 소리도 더없는 축복이었을  것인데 그저 귀찮은 지청구로 들릴 뿐이다.숲속으로 쭉 벋은 산릉선을 따라 터덜터덜 걸으며 오래도록 원생태의 공기를 실컷 마시는데 답답한 가슴은 답답한 그대로다.    이것도 인생에서 맛 보아야만 할 고배란 말인가! 텅 빈 뇌리에서 한가닥의 불평이 야기부리는데 막을 수도 없었다..   이국 땅에서 금방 태난 외손자를 데리고 잠시 함께 있던 딸애가 인젠 됐다고 불불이  동경의 벌이터로 떠난 것이다.딸이 15살 나는 해 나는 기나긴 타향살이에 나섰었다. 이 사이에 간혹 내가 귀성하거나 그들의 방학이면 놀러와 잠간 만나보고 푼돈이나 쥐어 주었을 뿐 다망을 핑계로 단란지락의 분위기를 만들어 본 일이 없고 훈훈한 환담도 나눠본 기억이 없다.그 새에 애는 대학에 진학하고 외국 류학을 선택하여 전전하다가 근간에 신생아의 양육기를 집에 와 보냈는데 고작해야 일년이 안된 일일편시이다.객지에 내 보내고 각거하고 살면서 이번이 17년을 지나고 제일 긴 함께 있은 시간이다. 일생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같이 하는 날들이 얼마일가! 손을 꼽아도 몇 개가 안 꼽힌다.   덧없는 시간이면서 친자식과 외손자를 데리고 천륜지락을 누리던 잔재미란 비길 데 없었다.집에 들어서면 바지가락을 잡고 안으라 졸라대던 외손주 놈의 되알진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놈의 놀소리 여음도 그냥 귀청을 간질인다.   이젠 돐생일이 지났으니 또다시 생계 전쟁에 돌입해야 하는 내 딸이다.애시부터  내 길은 내절로 걷는다고 강퍅을 부리며 자기 나름대로 세운 목표에만 집착하던 모습이 기특하면서 늘 뒷걱정하며 지켜 보았다.그래도 올곧게 잘 자라 감사하기만 하다.인생이란 란마같이 얽히고설킨 형극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초발심을 버리지 말고 신실한 자태로 일상일사를 다잡으며 나간다면….내 딸은 꼭 이렇게 하리라 굳게 믿는다.   요즘, 조용할 때면 늘 딸애의 뒤바라지를 변변히 못한 후회가 맴돌군 하였다.내 일생에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못했다면 이것이 더 없는 유감이다.는 말마디를 들었을 때 수통(羞痛)에  이 가슴이 얼마나 갉혔는지 모른다.   오늘  이국 땅에 등을 밀어 보내는 이 가슴이 또 아팠다. (끝)  
10    일 루 여 망(一缕余望) 댓글:  조회:8208  추천:1  2011-12-23
                                                    김인섭2011-12-16 아침,사무실에 새 달력이 걸려왔다.신구물을 엇바꿔 짚어보니 연말연시가 바로 박두하고 토끼공 신묘년도 달포에 더하면 룡어른의 임신년으로 쳐들어가게 된다.   아! 석화광음(石火光陰) 속에서 또 한 살의 고개티에 오르는구나! 이 시각의 용심은 달력을 봄이 아니라 세월을 개키는 아릿한 마음의 안추름이다.이것은 나이테가 둘러짐을 애석해 하는 동연배들의 고질병일가! 소시적엔 아득히 길던 일 년이 말 그대로 았!하는 사이에 지나 버린다.   사람이 60을 바라보니 세월이란 무지하게 무정해도 그 흐름은 사무치게 가석하다. 나잇수는 자연법 범법으로 되고 사회의 가장자리에 밀려나는가 박두하여 앞뒷 눈치를 챙기느라 제정신이 아닌데다 애들까지 을 선포하고 이국 땅으로 가버리어  외로움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애처로운 모습이 차례지는 숙명이다. 소주 한 병 쯤엔 멀쩡하던 몸통도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울려오는데 내구년한(耐久年限)의 예고가 아닌지도 모르겠다.음식이 잘 안 씹히고 글이 잘 안 보이고 여자가 선거우면 인생도 말로라던 일본 친구의 말을 되새기니 나도 이게 아니냐?고 주새없는 장탄식이 흘러 나온다. 바야흐로의 취급을 당할 신세라 간데족족 망양지탄이다.   인생은 결국는 속마음도 비길 데 없다. 나 같은 범민은 돌려놓고 만민을 타고앉아 이게 내 세상이라!며 고래고함 지르는 통치자들, 너희들 날 봐라!고 억만 재부를 휘두르는 거부들도 결국 생계에 쫓기는 서민들과 오십보백보의 나이대접을 받는 상수(常數)일 것이다. 증년하며 치미는 서운한 감수는 불로를 갈망하는 오상(誤想)이 발원지인데 로약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위인을 본 기억이 없다.인생은 결국은 허무이면서 가지려고 헤매는 건 본성이 아닌가 싶다.   천명을 안다고 지천명이라 부르는데 들고보니 여태껏 뭘 하였나?는 감구지회만 얹혀지는 심통은 왜서일가? 돌아보니 내라는 사람은 기황의 년대에 태여나 기한에 짜들며 자랐고, 10년엔 섬뜩한 공포,절망과 미망속에서 헤매였고, 개혁개방의 긴 나날은 선와 속을 우와좌왕 걸어왔다.액운이란 액운은 혼자 들쓴 기분이다.   가난과 인간 정신을 두고 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나다.거듭되는 세파 속을 아버지가 주신 뼈만 붙잡고 나갔고 애로와 풍파에 부딪쳐도 성무를 다한다는 의지로 앞으로만 나아갔다.다만 여들없는 팔푼이라 지나새나 진로가 경색 만판이고 수확고란 순소득+잡소득하고 봐야 뭇사람들의 일소를 사고는 나머지가 없었다. 걱정하는 곁사람들이 늘 나무랜다. 질둔하고 제노릇을 못한다고…. 가슴이 찔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간혹 친구들과의 술자리라면 나는 잘 살지 못해도 깨끗하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한다.그래도 어느새 인생의 석양에 끌려가니 무성과 인생이란 생각에 자기 주체가 곤란하다.   세상이 록록한 줄 알고 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 두 번 없는 세월을 그렇게도 멋모르고 지내왔다.하여간 엄벙덤벙 기여오른 삶의 길에서 나름대로 인생 요령을 해석하며 산전수전을 거쳐왔는데 모년이 원인인지 조용할 때면 기대→실망→기대가 이어오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심중한 기쁨과 회한이 어기채기 연발한다.   세월이 아쉬워하는 소리다. 지나온 내 행길에서 수많은 친인, 친구들이 성원과 지원을 보냈었다.빈 주머니를 털어가며 도와주던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라는 사랑하는 아이들, 그들에게 추레한 모습을 남긴다면 이 육신은 신진대사→생로병사뿐만인 생물체 종말이라고가 되잖을가고 가슴에 그늘이 진다. 오로지 견마지로의 정성만이 인생의 를 값아가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하다.   나는 무심히이란 어느 교수의 문집에서 글줄을 더듬었다. 적중한 말이다. 내게는 아직 자유의지와 인의지정이 있다. 철의 흐름도 모르고 뛰던 날에 그래도 세상살이의 순수경헝을 다소나마 포개둿고, 사상과 현실을하는 기술도 적이나마 터득했고, 운동과 정지의 변증법도 얼마쯤은 더듬어 보았겠다. 이것을 바탕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로인생(草露人生)의 격파에서 통타의 고전을 겪었으니 이젠 탐욕과 아집의 구각을 벗고 겸양과 포용과 공존의 아량으로 먹으면 영양이 되고 심으면 씨앗이 될 무언가를 가꾸려는 희망이 피어난다.참숯불 같은 서녘의 지평선에 농향형만숙종(濃香型晩熟種) 화원을 가꾸면 어떨가? 여기서 나는 향기도 진한 화향(花香)일텐데… .   
9    <탈조선족>족 댓글:  조회:8426  추천:1  2011-12-19
족   -族            2010-10-29   조선족과 혈맥상통이라도 조선어가 생무지라면 조선족의 문화 인구에서 삭제 처리를 감행하여도 지탄을 받을 소행은 아닐 것으로 생각을 들먹이며 회사의 5명 조선족 직원 중 한 남아의 신세를 해아려 본다.   그는 행실이 점잖고 움직임이 걸싸고 이해심이 좋아 직원들은 최고점 100점 위로 평점하고도 더 가산한다.그의 결점을 집어내려 해도 여직원 포위군들은 물샐틈없는 방어벽을 쌓고 완강한 저항으로 지켜주는 대졸 27세이다.허나 흠절이 자기 언어,문화에 문맹자인 것이다.회사의 대부분 거래처가 한국 업체 혹은 관련 업체인 관계로 업무 매개에 조선어가 절실히 필요하므로 주요 부서에는 조선족이 배치되지만 그만은 제외된다. 그래도 그는 노력파의 끈기를 자랑하는 남아의 천골로서 배가의 노력으로 근무하고 일사불란하게 조선어 공부에도 정진하는 낙천적인 모습이 기특하여 연민의 정에 가슴을 저미기도 한다.   걔의 조선어에 감감한 원인은 썩 간단하다.중국인이면서 한어면 되지 웬 조선말냐! 며 아버지 고집으로 학교가 있으면서도 소학교부터 한족 학교에 보냈다는 옛말인데  약삭빠르게도 84년도에 그 의  발상으로  아이의 일생 향배에  대못을 꽉 박아 놓아다는 역사 기록이다.   이 남아의 하소연을 들어보았다. 가짜가 없는 말이다.   조선족의 문화적 이탈의 주원인은 어디 있을가? 물론 시세에 따른 인구의 대이동,산업구조의 질변,민족 공동체의 위기,인구의 격감 등등도 지적되지만 지리적 불가피성을 제외한다면 급소는 부언낭설(浮言浪說)에 쉬이 휘청대고 열냉반응에 과민한 습관이 뿌리가 아닌가 본다. 가시적인 이득과 임시적 방편책에만 급급한 소탐대실의 근시안적 사고가 이를 꼬드끼는 주적이 아닐가.   한민족을 유태족과 대비하여 운운하는 사람들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유비이다.유태족은 자기의 특유한 선민의식으로 자기의 문화 강산을 철석같이 다지며 나간다.제2차세계대전 시기 총인구 1800만 인구중 나치스에게 600여만이 학살당하고 터전을 잃고 세계의 찬구석을 전전걸식하면서도 민족 문화의 보루를 지켜내며 거듭되는 발전을 이룩하여 오늘은 세계 금융시장을 떡 주무르듯 해대며  힘장수로 버티고 서 있는다.다름 아닌 민족의 문화적 신념이 그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조선족이 이런 강타를 받으면 무슨 모습일가?   이런 현상에 대비한 핵심 대책안을 그려본다.   우선은, 민족의식구조의 재건이다.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숙명에 따라야  하지만  이것이 조선족만에 지어진 유리한 고지이다.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조선반도의 역사적인 발전 추세,생생 발전하는 한민족 경제,중국 대지의 급성장 등 전부가 조선족이 을 가진 청정수역이다.여기의 상등 무기는 조선족의 골수에 묻힌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화이다.우리가 진정 지혜를 결집하여 이 천혜 자원의 개발에 돌관 작업을 벌인다면 우리는 중국의 민족 수림 속에서 우수한 구성원으로 되는 데는 틀림이 있을가!급변하는 시대에 걸맞는 과학적 민족 가치관의 확립이 급선무이다.   다음은, 조선족 공무원들이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고차원에서 민족문화의 홍보와 그 질적 향상을 위하여 분발해야 한다.무한경쟁의 국제무대에서 이들이 중한 두 민족의 문물에 밝은 장점을 슬기롭게 발휘하여 민족사업을 망라한 사업에서 전체 대중의 귀감이 되고 난공불락의 민족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한다.력설의 되풀이만 조선족 공무원들의 타민족과의 공존공영, 민족과 나라의 공동발전을 조화시키는 묘기백출(妙技百出)의 탁월한 지혜가 여지없이 필요한 오늘이다.조선족 공무원들이 사회의 모범이 되고 민족사업의 선봉이 되라!   그담은.교육부대(敎育部隊)이다.교육은 말 그대로 자손만대가 아닌 억대의 막중대사이다.발전중의 대국인 중국에서 민족교육의 발전을 국가의 부축에 의지해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희망은 과만한 욕심일 것이다.력사적 변혁의 엄연한 현실에서  민족교육도 변화의 고비를 재치있게 넘어야  한다.기본은 범민족적 노력으로 최정예 교육 그룹을 조성하는 것이다.가뭄든 교육의 터전에 관개 용수를 거침없이 내뿜는 칠칠한 원예사들에 의해서만 후계 질서가 정연한 민족사회의 재축이 가능하다.교육의   건설에 핵에너지를 퍼부어도 과당하다는 아쉬움은 부질없을 것이다.교육  동아리의 기운차고 찬란한 모습이 조선족의 청사진임이 영락없다. … 족들, 이들은 결코 나무랄 대상이 아닌 시대적 산물이다.류추로 조선족 사회의 재조합과 재번영 역시 역사 발전의 필연이다.이 합법칙성이 조롱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조선족의 오아시스가 중화의 땅우에 드솟는  날  족들이 언제가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추진력으로 민족의 화원에 회귀하리라는 단꿈도 섬광같이 번뜩한다. 
8    독선 절단의 참마검(斩马剑) 댓글:  조회:6169  추천:3  2011-12-14
지난 11월21일부 에서, 오기활 선생의 일문을 보고 제기된 문제들이 현실에서 많이 부각되는 심각한 화제들임을 재확인하였다.독선적인 사고는 독단주의,관료주의로 나타나는데 이 독버섯 같은 사업기풍이 당과 인민의 사업에 끼친 위해는 너무도 크다.특히 고도의 과학성과 계통성을 요구하는 오늘에 민중의 사업을 우격다짐식으로 끌고 가는 이런 행위는 어느때보다 큰 피해를 가져오므로 이 악풍의 근멸은 전례없는 절박성이 호소되고 있다.   오늘 등소평이 1980년8월18일에 발표한 이란  명저를 되읽으며 그 명견만리 사상의 정확성과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등소평은 력사를 회고하면서 고 엄숙히 지적하였다.   등소평은 또 관료주의를 방지하는 제도 건설의 방향에 대하여고 피력하였다. 여기서 등소평은 인민민주가 안정단결이 된 생동활발한 정치 국면을 형성하는 전제임을 력설하였음을 알게 된다.   민주는 독선의 천적이며 그 예방과 치료의 특효약이다.사회 사업이 정상 궤도에서 운행하려면 우선 실행이 가능하고 법적 보증이 있는 민주적인 결책,집행 제도를 건립하고  법적으로 의무화하여야 한다,그리고 이것을 지도자의 자격,직무의 존폐와 직결시키고 위반하면 에누리없이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동시에 권좌에서 떨어지는 사회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인민의 건의,감독,비평,검거,파면 등 법권을 구체화하고 전문 기관은 추호의 구애없이 그 집행을 감독,검사,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사회의 공감을 받는 이런 제도의 건립은 독선 제거의 근본성을 띤 사업이다.   권력의 행사가 투명해야 한다. 대중이 권력 행사의 전반 과정을 완전히 저애없이 알도록 해야 하며 대중의 액세스권(access권-알권리)을 명법화로 보호하고 누가 방애한다면 즉시 위법행위로서의 추궁을 받아야 한다. 이는 또한 부패를 근본으로부터 방지하는 최상의 예방책이다. 햇빛은 최대의 방부제라는 점은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선이다.   2004년 2월 17일에 반포된 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책임자를 당내 감독의 중점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는 바 당외도 역시 마찬가지다.그는 부문의 핵심으로서 그 일거수일투족은 전반 국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 결정적인 역할을 일으킨다.오로지 법제화된 민주제도만이 주요 책임자로 하여금 착오를 적게 범하게 하는 최선책이다.력사의 교훈을 명기하고 지도행위를 법률의 틀에서 규범화시키고 권리,의무,위법,착오에 대해 확실한 계선을 그어야 한다.    여론 매체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시켜 정확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사회에 전달되도록 해야한다.그는 지도자들의 인식을 제고시키고 결책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판단 착오와 시행 착오를 방지하고 권력의 오용,람용을 효과적으로 제지시키는 동시에 대중의 정확한 판단을 유도하게 된다.매체의 합법적인 보도자유 역시 사회의 진보와 공정을 실현하는 필수의 리기이다.   오기활 선생이 제기한 현실 문제와 우리가 지나 온 역사적 교훈을 새겨 보면 등소평의 이 저작은 독단주의,관료주의와 권력부패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사회주의 민주법치 제도를 건설함에 있어서 불후의 지침이 될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2011-12-08                                                                   
7    도시의 고차압증(高車壓症) 댓글:  조회:4548  추천:0  2011-11-30
도시의 고차압증(高車壓症)                                                                              2011-11-19  대련에서 일을 보려면 대부분 운전하거나 뻐스, 택시를 리용하게 되는데 요즘은 날로 더 심해 지는 교통경색에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급한 일로 나가야 될 때면 조급한데도 교통체증으로 어쩔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고혈압증 비슷한 증세가 일어난다. 평일이면 에누리없이 3번 닥치는 교통 침체인데 차속(車速)은 문자그대로 무릎걸음이고 혹시 도로에서 사고라도 생기면 꼼짝 못하고 의 맛을 톡톡히 봐야 한다. 교통두절로 비행기 시간을 잃는다는 딱한 사정, 시보판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샐러리맨들. 생계 걱정에 앞이 새까만 사람들이 되풀어대는 푸념도 야멸차다. 그냥 이러면 어떻게 사느냐구…! 굼벵이를 비웃던 사람이 되려 우스울 지경이다. 골목골목 인행도는 차들이 차지하고 사람이 되려 행차로를 걷는 진풍경이다. 어디라 없는 불법주차, 경찰들은 뜬금없이 들이닥쳐 벌금고지서를 끊으면 차주인들은 도대체 그럼 어디다 어떻게 세워야는가며 분노를 분출한다. 그래도 법조문을 들이대면 쪽도 못쓰고 벌과금을 바친다. 상용되는 택시 타기도 헐찮은 일이다. 한참 기다려 행선지를 알려주면 못간다는 리유를 주워대며 내뻬는 계산 빠른 약보들도 늘어난다. 알고 보니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란다. 언제부턴가 정차 대기면 요금이 가산되는데 시간, 비용이 동반상승하여 늘 바가지를 쓴 맹랑한 기분이다. 택시의 면모가 도시교통의 투영인 것 같다. 정부가 진력하는 모습도 대견하다. 경찰의 증원이 력연하고 매스컴이 교통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며 애면글면하는 모습도 돋보인다. 도로확장, 지하철, 도로교, 터널, 도시 전철 등 신축 공사들의 규모도 해마다 수위를 높혀간다. 허나 그 효과는 무지한 증차에 상쇄되고 심해지는 가속도만 그대로이다. 길이 막혀 일어나는 사회관리의 부담과 부존자원,배출된 가스의 대기환경에 대한 역작용과 흘러버린 시간적、물리적 랑비는 계산치는 계산할 필요도 없다. 교통체증이란 현대병은 인민의 안락이란 최고의 리익을 위하여 꼭 치워야 할 걸림돌이다. 아니라면 앉은뱅이 로 돼버린다. 아름다운 대련이 교통으로 미모에 먹물이 뛰고 있다. 교통혼잡, 주차장 부족, 불법주차, 교통사고, 대기오염, 에너지 혼란 등이 으로 인한 에다 에 걸린 것이다. 하여 병명을 본따 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둔다. 인프라 증축에 기를 올리는 장면이 눈에 띄게 많아 지지만 이로서 교통체증을 푼다면 너무도 단순하다. 지금은 계획생차(计划生车),계획양차(计划养车)를 병행한 과학적 인도와 이성적 제한이 발본적인 대책인지 싶다. 이리하여 대중 교통을 주체로, 택시차 리용을 권려(勸勵)로, 자전거타기를 제창으로 하는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흑백시비가 많은 공무차와 자가차는 그의 구매、사용과 에너지、환경、사회 수요간에서 조화되는 림계점을 부단히 찾아 재치있게 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진정 서민의 생활에 편리한 교통 도구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길도 교통 혼잡이 날로 심하지만 도로 모습의 개선도 체감한다. 그래도 우리는 타지역을 타산지석으로 차량 관리를 질적인 삶을 향한 미래지향적 법제의 궤도에 올려야 한다. 틀리면 고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버리고 정책의 출범전에 반드시 력사에 책임지는 입장에서 민주적,철학적,론리적인 분석을 거치고 공정하고 투명한 과학적 론증을 해야 한다. 남의 비만에 매료되지 말고 허우대 것치장은 삼가하고 후대와 민생과 발전을 위해 시책을 펴야한다. 길위의 차들이 거침없이 흐르고 대중 뻐스가 정시간 발착하고 자전거 위의 시민들이 맑은 공기 속을 유유히 달릴 때, 이것이 강산풍월 속의 모범자치주 참모습이라면 기쁘겠다.  
6    한민족의 렬근성? 댓글:  조회:4370  추천:4  2011-11-13
한민족의 렬근성?  김인섭 2011-11-06 세간에 나가면 한민족들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흠절을 지칭하여 어느어느 것은 민족 렬근성의 발로라고 망평하는 의론조를 자주 듣는다. 민족의 특성에 대하여 타고난 형질인 듯이 선입견으로 긍정판단을 허투루 내뱉는 새 까먹은 소리다.경모(輕侮)적이고 자조적이고 민족성에 대한 축소해석 속내가 담겨있는데다 론리마저 어설퍼 숙시숙비(孰是孰非)에 단안(斷案)을 내려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몇 번 생각했다.   렬근성이란 타고난 근성이 나쁘다거나 혹은 악습의 뿌리가 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물론 위의 경우 엄격한 의미를 떠나 몇몇 사례를 일반화하여 격하게 발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례하면 냄비근성이라는 빨리빨리,집안싸움으로 표현되는 내분(內紛),즉효성만 노리는 근시안적 작태 등등을 구설수에 싣고부리는 장면들이다.허나 어떤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 력사와 사회적 요인을 당연히 우선시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부터 보면 그 설법이 사람 사이의 가름막을 만들며 지어는 음모의 여부까지 의심시키는 악음악으로 들린다.   사람의 사회적 존재 즉 그 시대의 생산방식이 사람의 의식을 결정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존속하는 그 시대의 생활유습(生活遺習)을 쳐들고 그것이 민족의 유전자인양 꺽죽거리며 인습화된 탈선적 언행의 근원이 객관요인과 무관한 주관성에만 있는 듯이 본말을 전도하는 중생들이 확실히 적지 아니하다. 간단히 말하면 편협한 사고로서 인간 공동체의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성향을 이 민족에만 존재하는 듯 폄하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민족성의 여하는 고도의 복합적인 사회적 결론이어야  할 명제인데도 데등대등 방담(放談)하니 속으론 늘 반박이 저절로나갔다.   나라와 민족의 명암이 헷갈리고 구명도생에 분주하던 시대,기근과 생명의 위협이 수시로 덥치던 풍찬로숙의 나날에 정처없는 우리 선조들에겐 땔거리를 쉽게 주어 음식을 빨리 익히고 식히는 냄비가 절대 긴요한 취사도구였다.그는 암울하던 나날에 생존투쟁의 위대한 무기였고 한많은 한민족 생활상의 축소판이고 민족의 꿋꿋한 자생력의 물증이기도 하다.     기나긴 나날, 우리 민족은 국제정치의 분쟁에 말려들어 땅이 찢기고,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강제이주를 당하고,하여간 나락속을 쩔쩔매며 범민족적 단합을 시도할 틈도 새도 없었다.목을 옥죄는 근근득생(僅僅得生)의 세월에 애처로운 선인들은 행방없이 뒤쫓기는 세파속에서 성찰과 속도 조절은 말말고 죽재도 죽을 겨를마저 없었다.그야말로 고난의 험산을 넘어 아득한 감탕길 만리를 걸어왔다. 시급한 초미의 기아에 시달려 멀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파란만장의 거친 파도속에서 조상들의 빨리빨리 해내려는 사명감, 위험을 탈출하는 순발력,후대를 위한 불타는 념원이 오늘 한민족 사회를 이뤄놓은 밑거름인지 싶다.이것이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우근성(優根性)이었다.이 어기찬 정신에 매달려 오늘날 우리 삶의 터전이 이뤄지고 보신처가 세워진 것이다.   허지만 어떠한 성약(聖藥)도 약독이 따르 듯 그 특수한 노력으로 거둔 성과에 따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졸부(猝富)근성,속도지상주의,결과지상주의,불화와 각축의 빈출(頻出),근시안적 사업성이 그 단적인 표현이다. 과거 시대에 반상적이던 현상이 지금에는 한민족의 이미지 추락과 더불어 민족 대발전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은 전지구가 세계화로 나가는 신시대이다.  여시구진(與時俱進)의 가치전환을 정갈하게 실현해야 할 급선무가 우리에게 성화를 댄다. 소위 렬근성이라 부르는 물건짝들이 그 때엔 피할 수 없었다면 일취월장하는 오늘은 급열보다 오랜 숙성을, 반목과 질시보다 범민족 대화합을,오늘만이 아닌 장구한 발전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빨리빨리해야 할, 기성세대들이 완수해야 할 무한 책임이다.여기서 는 옛말이 독약이 된다.빠를수록 좋다.   에피소드라면,정의와 진리의 규명에 당연히 필요한 론쟁도 내분으로 몰아부치는 입살이 센 소리도 수두룩히 들린다는 말이다. 민족의 의로운 기질도 쩍하면 병집이라 몰아치며 정당한 요구를 막으려 훌뚝질하는 무리들도 있다. 자유토의는 한민족의 발전에서 필수(必須)이고 필수(必需)라고 언성을 높여 언명하기 싶다.       한민족은 평화와 발전, 단합과 상쟁의 파도 위에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과업은 태산같고 나갈 길 역시 가파른 구곡양장이다.그래도 민족을 경멸하는 이 정의를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층샛돌이 되고 민족화합을 실현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면하는 바램이 이 길손의 속말이다.                                                                                   
5    초 춘 서 회 (初春敍懷) 댓글:  조회:4501  추천:1  2011-10-14
초 춘 서 회 (初春敍懷)                                                                                                                 김인섭2011-02-19 지겹던 동빙한설의 여한이 폼을 잡고 떨뜨리는데 어느새 대동강이 풀리고 봄바람이 살랑거린다는 우수 절기를 맞았다.   오래만에 숲속을 거닐어보니 동한의 잔해는 아직도 서성대며 햇살을 내쏘며 무찔러 오는 봄의 습격에도 무겁하게 버티고 있음을 실감했다. 나무 밑의 적설은 엄한이 방불한 한기를 내뿜으며 스치는 마파람을 가차없이 내쳐버린다.청각과 촉각을 동시에 살려봐야 환절의 파열음은 깜깜무소식이다.전세월이라면 나무숲 사이로 새어내리는 일색(日色)에 산설이 녹아내리는 낌새도 확연하였으련만 가뜩 우줄거리는 동장군의 후예는 주천(周天)을 따라 어김없이 찾아온 봄철을 기탄없이 릉멸하며 만물을 숫제 잠재우려는 거친 강세를 자랑한다.   겨울은 열을 올리던 지난날들을 잠재우고 지나온 절기마다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대(四大)※의 새 발진과 새 생명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암시하는 호시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겨울을 풍년을 기원하는 시제(時祭)의 한 계절로, 송구영신의 뜻깊은 계절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대를 이어 내려왔다. 그는 무정하고 잔인한 듯하지만 계계※의 세서천역(歲序遷易)※에서 봄과 언제나 손잡고 돌고도는 친절한 이웃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동삼은 왜 봄에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을까? 흥분으로 맞아야 할 봄의 문턱에 동심(冬心)이 똬리를 틀고 미동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기상 이변이다.   지난 겨울 사람들의 흉벽은 자연의 지독한 충격에 어룩더룩 얼룩져 있었을 것이다. 남북 반구에서 엇갈아 번져지는 폭설,폭한,폭우,폭서에다 수재,한재,산사태가 엎친 데 덮치는데 터졌다 하면 급살탕 같은 비보였다.수선스러운 재해 보도의 거개는 사상 극치를 갱신했다는 천재지변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은 삶의 터전을 잃는 태재태재(殆哉殆哉)※한 나락의 변두리에 이르렀다는 명증이다   지구촌의 어디서나 지난 삼동은 세기적 엄동이라 꺽죽거리는데다 어떤 괴짜 무리들은 인류의 종말이라고 비양대며 입을 삐죽거린다. 천칙(天則)을 꿰뚫었다하는 가라성급 거물들도 가지가지 주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기후의 변화로 인간이 생존 극점에 이른다는 다급한 비명만은 한결같다.냉철이 묵상해야 할 적신호임을 명지하게 된다.   인간계를 보라면 감은 눈을 뜨기도 송구스럽다.저쪽 동네들에선 오싹하는  테러와 학살이 자행되고 무력 분쟁과 침공으로 피비린 도살이 그치지 않는다.이쪽에서는 탐욕에 찌든 인간들이 서로 더 가지고 남의 위에 군림하여 젠체하기 위하여 전쟁이 방불한 살인적 경쟁을 벌려가는데 거기서 파생하는 추태,요태는 입 하나를 가지고는 말도 못한다.집값의 폭등으로 이게 웬일이냐 구설이 무성하고, 병고로 몸부림 치는 친인을 보며 돈이 없어 가슴피를 흘리는 양민이 욱실거리고, 생필품,식품에다 뭐뭐가 값이 뛰어 만백성이 못살겠다 고함치는데 함량미달의 공직자들이 권세를 빌어 남의 금품을 천만대도 아닌 억대로 꿀꺽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린다.   살펴보니 이런 데퉁바리의 작태가 결과적으로 지구를 겁탈하고 온실가스를 내뱉는 경합으로 엎어지어 이 대행성을 인간 불가생존의 열도가니로 만드는 비참한 결과로 이어진다.이 떨떠름한 현실이 바로 현재 진행형이다.   허영,허세,허욕을 채우기 위한 인간들이 부정과 비리도 서슴없이 감행하여 천혜의 땅과 공기를 마구 찟고 더럽히고 휘정거려 놓고있다. 겉보기에 말짱한 갑남을녀들은 기탄없이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엄청난 페기、페수、페물을 종작없이 토설해내고도 오존층을 뿌시거뿔어※ 놓는다. 바로 그들이 잘살기란 이유를 주워대며을 부르는를 대기에 살포한 원인으로 인간은 자업자득의 자멸을 불러온다고 세간이 왁자지껄하는 게 오늘이다.양극의 빙하가 용화에 가속이 붙어 바야흐로 칠성판에 오르는데도 자연 섭리의 본궤도로 핸들을 꺽는 사회 동향은 별로 안 보인다. 점령과 점유를 목표로 아득바득하는 다인수들은 유아독존의 근성을 팽개치고 차분한 금시작비(今是昨非)의 자아성찰이 있어야만 연명이나 된다는 현인들의 입찬소리에 귀를 활 열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심드렁한 겨울의 꼬리를 밟고 있어도 춘심(春心)은 나더러 바깥 세상을 여겨보게 한다.   내 사는 집 뒤는 정정한 나무들이 우거진 물매 낮은 산인데 그 허리엔 커다란 놀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양달진 비탈의 밋밋한 자리는 뒷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삼면을 나무숲이 푹 싸놓은, 바다를 향해 탁 트인 명당이다. 거기다 지역은 북온대의 대륙성,계절풍성,해양성이 더불어진 곳이라 눈비만 없으면 첫새벽부터 늦저녁까지 노니는 주민들로 가득차 활기 넘치는 명소기도 하다.   오늘도 숲속의 찬기운은 맵짜지만 뭇까치들이 대기속을 설치면서 허둥대는 모습이 유별나게 돋보인다.짝지은 쌍쌍들이 나무가지를 물어나르며 둥지의 신축,개축,보수공사에 전념하는 모습이 실로 앙증스럽다.이 텃새들이 새 생명의 산식(産殖)을 준비하고 있음을 단박 알아차렸다.앙상한 가지에 걸려진 그 까치집은 우리 눈에야 엉성한 수지(樹枝) 뭉치겠지만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후대를 낳아 기를 성전일 것이 분명하다. 자유롭게 날아예는 이 애물들이 적막한 수림속을 약동하는 유원지로 되게 하는 푸근한 봄기운을 영글리어 가고있다.   머지 않아 이 산금들이할 때면 대지의 소생을 알리는 파란 풀싹이 앞다퉈 올라오고 나무들도 선록색을 올리며 새순을 틔울 것이다. 천신지기(天神地祇)※가 창천을 쫘악 펼치면 태양신도 예와 같이 따사한 양광을 내리쏟아 우수가 깃든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기를 띄워주고 내일의 꿈을 그리도록 변죽 칠 것이다.도처의 인간 집단들은 봄날의 조건반사로 또 한 차례의 작위, 부작위의 맹세를 내리며 라침판 조절에 북새질을 할 것이다.   다만 수런거리는 이 봄을 보며 자기 탯자리에 불지르는 인간의 자학행위가 되풀이 안되는가는 기우같은 수심만을 떨칠 수 없다. 인류는 공존공영의 이념으로 비좁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글로벌리즘[globalism]의 댐을 쌓고 지구촌을 지켜야만 하는 위급존망지추에 서있다.무한경쟁,적자생존의 괴리만을 떠벌이는 구태의연한 양상이라면 새봄은 인간이 자멸의 화염지옥에 들어서는 초읽기로 될게 아닐가?   올해의 봄이 진정 자연과 사회의 조화가 이뤄지는, 지구를 살리는 봄이라면 좋겠다.   주석: 1. 태재태재[殆哉殆哉]:명사- 아주 몹시 위태로움. 2. 뿌시거뿔다: 완전히 파괴하다. 3. 천신지기[天神地祇]: 명사-하늘의 신과 땅의 신 4. 세서천역[歲序遷易] : 세월의 차례가 옮겨져 바뀜. 5. 계계[繼繼]: 차례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모양. 6.금시작비[今是昨非]: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을 이제야 비 로소 깨닫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 7.사대[四大]:≪불교≫ 세상 만물을 이루는 땅·물·불·바람의 네 요소.     
4    술상에서 족(族)을 잃는 조선족 댓글:  조회:4878  추천:2  2011-09-26
술상에서 족(族)을 잃는 조선족                                                       김인섭     2011-06-14 애시적 내 동네는 한족 마을과 이웃하였었는데 두 민족 생활습성 차이에서 도두보이는 것이 술습관이었다.아무튼 음주의 차수,명목,수량이 한족들보다 많은 것은 물론술뒤의 행태도 환하게 게저분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민족의 특성으로까지 여론화되는 판국이다.이 경관도 현재 변화를 보이나 결과적으로 구습을 벗어나기는 고사하고 더 저속한 역방향으로 나가는 양상이고 술놀이에 민족이 망한다는 가슴소리도 높아가는 현실이다.   술은 원초로부터 노동후의 긴장을 풀어주고 노이로제를 완화하고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외 대인관계를 돈독히 하는 촉매로서 사회성 생활의 호물(好物)로 상승작용을 하여 왔다. 적량의 술은 신체에 유리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휴머니즘을 돋우는 뉴대로 되어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조성(助成)하며 물질,문화적 재부를 창조하는 동력에도 가세하게 된다. 허나 도를 넘으면 인체에 손상주고 대뇌피질의 흥분 억제의 밸런스를 박살내어 심각한 건강문제와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 오늘 조선족의 술은 이런 부식제로 일변하여 민족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한결같은 구설이 분분하다.   조선족은 술을 모르면 인맥이 소원해 진다며 차수가 많고 과음하고 강권하는 것도 당연시하며 돈독한 인연을 위해선 얼큰해도 무방하다는 사고가 깊숙히 박혀있다. 아무튼 취중의 웬만한 잘잘못도 술을 탓하며 푼더분한 관용을 보인다.  허나 오늘은 부재차한(不在此限)의 지경에 이르렀다. 먹고 마시고 농땡이를 친다는 이메지는 항간의 구문인데 가장 심각한 화두는술에 잠식되어 리지를 잃고 시간을 잃는 와중에서 자기의 사회적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조선족 집거지인 연변에서 그의 음주 행태와 기막힌 부산물을 본다.   일자리가 책상 머리라는 사람들은 출근해 일을 좀 보다10시가 넘으면 술자리를 만들고는 다시 딴판을 벌리는 건 거의 묵시적인 생활이 되었는데 적은 수도 아닌 상당수이다.사무는 본다 쳐도 그 마인드로 하면 얼마하랴는 지레짐작이 간다.사무실 부재의 원인을 물으면 그럴사한 이유를 주워대는데 곁에서 열심이 일하는 사람들이 되려 무안할 정도이다.   술좌석 명목도 파다하다.명절,경조사는 제외하고 고향 사람, 한집안 사람, 동창생, 동갑, 전우모임에다 네 생일 내생일 등등이 연방 술좌석으로 이어지는데 하루가 멀다이다. 하도 많으니 인젠 다수가 질색이면서 무작정으로 끌려다니는 양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로 양반 의식이 팽배한 문화 습속이 원인인가?! 드러내기 좋아하고 체면치례에 자상한 의식 구조와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는 성격,왜냄비식 근성의 외적 표현이 술놀이인 듯 싶다.   연변에서 접대를 그뜩 받고도 질탕한 음주행이였다고 볼멘소리를 치며 연변 사람들은 가짜도 조짜도 아닌 진짜 술김치라고 욕보이며 너스레를 떨던 한 외국인의 넋두리가 귀에서 쟁쟁하다.귀가 따가왔지만 멀퉁하게 보면서 주억주억하기만 했다.대접하는 사람들도 정성을 들이며 지쳤을 것이지만 돈을 팔고 시간을 깨고 몸을 까고 욕을 사는 것이다. 별법(別法)이 없을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인이 모인 전당(殿堂)도 가찹은 양상인데 한 학자는 내가 연변에 있었더라면 그 많은 공부를 했을 리가 만무하다고 부수지소[膚受之愬]를 되풀이한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학자들이 다수 있을 테지만…   술과 관련된 부조돈도 엄청나다. 월급이2,000∼3,000원인데 매번 적어도100∼200원이고 좀 가까우면500∼1,000원인데 이틀 바쁘게 이어지는 술행사에 돈을 디밀어야 한다.북경의 한 학자는 80년대부터 30여년간 낸 부조가 단51원이라는데 체면을 지키는 데는 지장이 없었단다.만약 연길이었다면 한 달에 두 번쯤 참가해도800여번인데 적어도 소주400근은 마셨고, 부조12여만 원은 냈고, 1600여 시간은 허비했을 것인데 흐린 정신에 랑비된 시간은 더구나 아스라하게 많았을 거란다.조선족들이 무엇을 하였을가는 회의가 늘 맴돈다. 해야하고 피치 못할 상황도 많겠지만 연변의 풍토는 한계선을 훌쩍 넘은지 한참 된다.   이런 악재가 지속된다면 조선족이 곤난하다는 말밖에 없다. 객지에서 들어보면 사람들이 연변으로 가기 싫어하는데는 여러가지 여건 부족도 탓이겠으나 술놀이를 위시한 사회 분위기에 생을 망친다는 공동어가 있다.연변의 술바람은 돈이 독이 되고 금석이 석돌이 되는 큰 소지이기 때문이다.연변의 악브랜드라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 흉상이 바로 우리들 사회에서 만연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약소민족이 근대의 가난과 억압이란 기나긴 생사경에서 헤갈며 서로간 괴로운 마음을 달래느라 술접촉이 많은 것이 다음(多飮)의 주원인일 것으로 판단한다.그것이 또 구연세월(苟延歲月)중 생활화, 풍속화, 문화화로 고착되었으리라 어루더듬는다. 오늘은 올곧은 가치관을 확립하기 앞서 부유한 환경과 맞닥드리니 갈팡질팡하며 먹어댄다는 곧이듣기는 바깥소문이 수풀처럼 무성하다.   그러나 력사는 자기 흐름대로 쉬지 않는다. 급속한 사회변화가 조선족을 어느 민족보다 빠르게 진화시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마땅하다. 이 시류에 동승하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된다는 철리를 풀어보래도 어렵지 않다.    해외로, 도시로의 대거 진출로 민족공동체의 공동화와 해체, 학교의 폐쇄, 정체성의 요동, 교육체계의 붕괴, 문화영토의 상실, 출산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 등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조선족 사회는 존재와 해체라는 딜레마에 푹 빠지었다.그런데도 음주로 인한 돈까기,시간낭비.건강부식,사업지체,가정불온 등 기형괴상이  산적하기만 한다.여기의 급소는 생활의 정도(正道),지혜,의지,신념,기치관이 걸레쪽 같이 내팽개쳐지고 멋지던 문화적 인간형이 굴왕신같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라태와 허망에 뒤따르는 과소비,과사치,과유흥 등등이야말로 조선족을 장식하는 허화한 거품양으로 번뜩거리는 경색이다.   이 다급한 죽살이 기로에서 술문화 개변은 민족의 존망에 직결되는 상당한 무게를 가진다는 확론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고쳐야만 하는 민습(民習)인 것이다.상처를 도려내는 극통을 감내하면서 병소(病巢)를 긁던지 자르던지 퇴치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어이해야 할고!   우선, 조선족 공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거룩한 권력을 넘겨받고 인민의 혈세를 받아쓰는 공복들이 자기의 권리,의무,영예와 량심으로 틀어진 술문화를 개조하는 진두에 서야 지당하다. 하물며 간부들이 술먹기에 앞장서고 공짜술을 먹어대며 관혼상제를 차리면 떼돈을 번다고 술렁거리는 세태인데 이것은 결코 간과하여야 할 공뜬 랑설(浪說)이 아니므로 당신들이 솔선하여 적게 마시고, 적게 차리고, 적게 참가해야 한다.한 사회 현상의 개조는 옳바른 정책적,가치적 지향이 있어야 할 뿐만아니라 모델이 될 본보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해야 하고 잘 해야 할 분들이 옥대(玉帶)를 띤 민복(民僕)들이다.이런 호소(呼訴)를 말실수라 꼬집는다면 쉬운 반박이 절대 가능하다.   다음, 지성인들이 문명한 음주 문화의 정립을 위한 보루를 다져가야 한다.이건 한순간의 돌관작업이 아니고 긴 나날을 수요하는 체계적인 역사(役事)이다.지성 사회가 민족문화의 오아시스로 되고 인텔리겐치아들이 매스컴에서의 견인차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이다.    그담, 교육이다.금지옥엽들의 영혼을 키우는 학교에서 도덕 교육의 일환으로 건전한 술문화의 주입에 진력해야 한다. 교사들이 조선족 특색의 새 문화화원의 가꾸기에 정진한다면 이야말로 민족 발전의 백년대계라고 역설하고 싶어진다.   본일, 이 땅의 술상에서 내 민족의 얼굴에다 얼까지 사라진다고 근심천만하여 골방에서 긍긍거리며 끙끙거린다.만약, 어디서 웬눔이 엉큼한 험담을 퍼붓느냐!며 멱살을 잡혀  드잡이를 당한다면고 강변을 부리며 봉변을 모면하려 한다.   
3    집괭이 순치(馴致)가 주는 고지(告知) 댓글:  조회:4282  추천:4  2011-09-20
 기업들이 사원에게 교육을 진행하면서란 등소평의 명구를 인용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었다. 허나 여기에 내포된 유물사관적 원리를 왜곡하고 부조리를 막론하고 돈벌이만이라는 속물주의적 인식을 주입하는 경우도 많이 비친다. 이러한 저차원의 부정경쟁 의식으로 회사원들의 준법정신을 흐리우고  도덕관념을 희석시키며 심지어 범법의 줄타기도 묵시하거나 사주하는 경우도 빈발하는 현실이다.결과로는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타인의 불신을 야기시켜 참담한 역효과를 거두거나 지어는  회사가 거덜나는 결과로 마무리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보아왔다.    탈시대적인 유치한 발상이고 시류에 대한 불감증이라 진단해도 과분하지 않을 같다. 자기의 충욕(充慾)에만 급급하고 사회와 타인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견리망의(見利忘義)의 비행도 감행하도록 넌지시 변죽을 쳐주는 방임행위라는 것이다.직설한다면 생물적 욕망의 여과없는 발로이고,부정 축재로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야기하고, 조급증으로 미래를 말아먹는 자신방매 우행이외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생활에서 인간의 감각기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고양이 본능 중의 하나가 쥐잡인데 기타 본성과 외적인 필요조건을 무시하고 쥐잡이만 바란다면 그건 오로지 허황한 과욕일 뿐이다. 여러가지 욕구가 동시적으로 꿈틀거리는게 동물의 공통성이다. 현실속의 고양이를 고찰해 본다면 결코 임의대로 안 되는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고양이를 선택할 때 색갈,체격 등 천부적인 요소가 우선시 되나 쥐잡이가 당연히 주목적이다(애완이 아니라면). 허나 명기해야 할 요주의 점은 그들이 비록 쥐잡이 유전자를 지니지만 그 기능의 호불호는 특정된 예외를 제외하고는 주요하게 생활 환경의 조성, 습관성의 순치(馴致)와 일상적 감호(監護)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것이다.   고양이에게 있어서 쥐잡이는 그의 생계에서 비차막가(非此莫可)의 원천일 때 그 충동이 일어난다.먹이를 너무 잘 주거나 많이 주면 입맛이 바뀌어 쥐잡이는 한낱 소일에 불과하고 지어 쥐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고양이에게는 집 병아리를 잡고 다락의 생선도 훔쳐먹는 본성도 가지고 있다.만약 대비책이 설피면 쥐를 잡으려다 쌀독을 깨는 소탐대실 격이 되고 만다.     모든 고양이는 집안의 먹을 것이 발견되면 언제나 날름거리며 훔칠 기회를 노리면서 쥐잡이를 외면한다.  는 속담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탁월한 쥐잡이 고양이도 지킴이가 허술하다면 도둑으로 변질할 개연성이 거의100%이다. 약삭빠른 만큼 도둑질도 멋스럽게 해 재낀다.   타고난 좋은 고양이란 따로 없으며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좋은 고양이이다.제멋대로 방치하거나 선택,길들이기,사육 관리 등 어디에서도 차질이 생기면 다 나쁜 고양이로 된다.건전한 환경과 필요한 관리가 늘 뒤따라야만 진정 쥐잡이 능수가 될 수 있다.   고양이에 사람을 견주어 론한다면 류비가 안 될 교량이지만 엄연한 객관사실이라면 인간도 천성적으로 생물적인 욕구를 가진 동물이라는 이 점이다. 매 인간은 모두가 공동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성원이다. 만약 이들이 사회적 속성의 이성적인 작용과 제약에서 해탈된다면 본능이 능동적 관념의 지배하에서 우세를 차지하게 되는데 자칫하면 사회를 해치고 타인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가 나타나게 되고 심지어 무염지욕(無厭之慾)을 부리거나 동물적 야성을 훨씬 능가하는 잔학성을 부리게 된다.   기업이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함은 당연하지만 이를 위하여라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분한 욕망을 눌러버리고 상부상조하고 공공적 리익을 엄수하는 인성화된 윈-윈의 정신으로 노동의 대가를 취득함을 권려해야 마땅하다. 바로 인성속에 숨어 있는 정의,선량,자비지심을 최대한으로 발양하도록 인도하고 격려해야만 회사가 진정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사회에서 입지가 굳어진다.   한개 조직이라면 반드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로 메카니즘을 잘 장치하여 매사람의 행동을 규범화하고 생활을 윤리화 해야지 수단의 가부는 분별이 없이 재부의 점유만을 선양하는 것은 자체의 조직을 부식하는 잠재 위기가 되고 만다. 돈벌이만!이라는 론리대로 류추한다면 결국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식의, 공리와 질서를 무시하는 가치관의 주입인데 이는 조만간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심중한 재난의 불씨라고도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한결같이 사리사욕과 사회규범이란 모순 속에서 공과 사,준수와 위배,욕구과 억제의 양면적 성격을 지니게 되므로 자율의 이전에 강제적인 법율이 선행하고 비행을 저지르면 징계를 받고 심중한 대가를 치른다는 현실적 위협과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이 앞서야 한다.이래야 옳바른 길을 선택하고 상애상조와 겸양의 자태로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의 유자격자로 될 수가 있다. 이점은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시종 금과옥조로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이념적 스타트라인으로 삼고 사원들을 교육하고 감독하고 편달해야 한다. 감성적인 물욕만을 채우기에 황급한 조직체에서 인재가 육성된다면 한낱 오상일 따름이지 되려 호인도 악인으로 전화하게 된다.   집괭이 순치에서 끌어낸 분석으로 기업내 인력관리의 한 개 단면을 유추한 비론이 회사와 조직의 관리에서 어떤 플러스되는 계시로도 되지 않을가 싶다. 2011-07-29                                                                          
2    행 복 론(幸 福 論) 댓글:  조회:4089  추천:12  2010-12-23
            행 복 론(幸 福 論)                                                       2010-12-22 신문지를 번져보고 방송을 틀어보면  경제,GDP,돈으로 뒤덮히는 세태이다. GDP다,돈벌었다,배부르다, 편안하다, 따뜻하다 등등  소리는 귀가 따갑게 들려도 행복하다 행복졌다는 소리는 빗들으려 해도 듣지 못한다.돈 보따리가 크면 행복일가?인간의 진정한 목표가 과잉소비이고 포식난의(飽食暖衣)뿐이 아닐 같다.행복의 요체(要諦)는 무엇인가?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곰곰이 해아려 보고 싶다.   행복이란 심리적인 욕망이 만족되었을 때의 희열의 상태를 말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이 사람은 행복하고 저 사람은 불행할 수 있는 듯이 매인에게 걸맞는 행복의 기준을 명쾌한 개념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   행복이란 그의 생활환경,가치관에 따라 복잡하게 표현되지만 그 본질을 보면 상대성을 가지는 바 경제적 지수와 행복의 지수는 정비례 관계가 없는 것이 특징적이다.   개인의 차원에선 소득이 증가에 따라 총 행복감이 커지나 사회의 차원에서 소득이 증가가 동일한 비율로 행복을 체증(遞增)하지 않고 심지어 체감(遞減)하는 오늘이다.소득증대가 일정한 기준점에 이르면 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추구는 본질적으로 물질과 정신면으로 구분되는데 정신면에서의행복이 물질면의 행복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서민들의 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집은 좁아도 살지만 맘이 좁으면 못 산다는 옛이야기가 행복에 대한 철학의 단적인 표현이다.   경제와 별개인 조건들이 행복감의 증대를 좌우하는 경우가 가시화되는 현대사회이다.  즉 교육환경, 고용환경, 사회안전망, 노후보장, 의료보장, 주거확보 등등 민생에 관련되는 조건들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은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는 위업이다   자원을 최대한 절약하는 행복이어야 한다.아니라면 오늘의 행복은 전세대가 후세대의 행복을 약탈한 것이다.   자연을 아끼는 이성적인 행복이어야 한다.오늘의 살기에 혈안이 되어 후대에게 오가잡탕이 낭자한 터전을 떠넘긴다면 천추의 죄악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빈부격차의 확대가 아닌 축소 일로로 가는 행복이어야 한다.사회 재부의 대부분을 소수인이 차지하고 다수인이 박탈감속에서 허덕거리면 GDP의 높이와 관계없이 소수인의 행복은 빈자의 가슴에 한이 되고 빈부상쟁의 적대감을 조성하는 불행의 불씨가 된다.   정부 활동의 목표는 거대 물량의 생산이 아니고 물질,정신,문화,민주가 서로 조화되고 주권자인 전민이 공정하고 평등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감이 으뜸인 나라로는 덴마크가 수위로 꼽히는데 그 원인으로 첫째는 최적화된 사회구조 즉 사업,가정,사회 생활에서 개개인의 평등이고 도농간 균형이고 빈부차이와 계층간의 차별의 최소화하기 위한 일관적인 전사회적 노력; 둘째는 사회성원 상호간의 신임 즉 개인과 개인간, 조직과 조직간,민간과 정부간의 친밀한 뉴대 관계었다.행복지수가 높은 사회의 특징이라면  전사회적으로 투터운 믿음이 깔려있는 분위기였고 법적 제도의 절대적 권위성, 사회적 공정, 전민적 공평성이 그의 근저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그것이였다.     행복이란 한 개 점이 아니고 무한한 연장선이다.어떤 설정한 행복의 목표에 도달하였다면 동시적으로 그 행복의 의미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몽(綺夢)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인간 심리이다. 우리가 개혁과 개방을 진행하여 온포(溫飽)를 해결하고 경제와 사회의 조화적인 과학적 발전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이 객관성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조화적인 사회 건설의 핵심적 내용은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전민의 희열과 안거락업을 실현하는 사회의 건립으로 봐도 무가내일 같다.                                                                                    
1    경인년의 소망 댓글:  조회:3088  추천:7  2010-08-19
경인년의 소망 2009-12-27   또 한 해가 끝자락을 풀어간다.   사무실에 걸려온 카렌다를 짚어보니 새해는 경인년(庚寅年) 호랑이 해이다.간지(干支)에 까막눈이라 자료를 뒤지며 세여보니 이제 석삼 해가 지나면 갑오년으로  바로 회갑을 맞이하게 된다.예순갑자를 한 바퀴 돌았다는 자각에 여간만 당혹스러워 지는 것이 아니다. 어안마저 벙벙하다.소시적 어른들이 내 나이 60!하고 이르실 때 아!한참도 되는 노인님이시네.하고 끔적거리던 그때가 얼른한다.세월에 코를 꿰여 옴짝달싹 못하고 나이더미에 끌려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성무들이 의무인양 밀려오는데 이 몰풍칠한 육신은 가슴에 벅차기만 하다.미욱한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일익 짧아지고 있다는 절박감으로 가슴에 반암이 놓인 따분한 기분이다.   지난날의 사연들도 어수선스레 밀려온다.나에겐 행복했던 세월이 순간이였다면 기근,고통,방황,공포와 시련이 더더욱 길고도 기구했다.음침한 곡지에서 둥개일 때  버티는 외 별 탈출구도 없었고  릴레이식 고뇌가 물밀어도 감내외 묘책이 없었으며 운명의 조간인양 격파가 밀려와도 난파의 각오로 헤여나가는 외 별 방편이 없었다.   누가 말했나?앞길 짧고 뒤길 길면 뒤를 자주 본다더라.경허난*인가,자꾸 뒤를 해뜩거린다. 지난날의 망각을 잡아두려 몇번이고 속다짐을 둔다지만 말 그대로 는 걸가 풀리는 걸가?자꾸 튕겨 오른다.오늘도 또다시 이 끈을 동여매며 새해의 소망을 풀어 본다.   나의 어머니는 새해면 옹근 연세 90이다.지난해만도 무릅관절이 불편하고 걸음이 어설프고 귀가 좀 이색한가 싶더니 올해에 들어서 완연히 나아지는 길조이다.다리의 움직임이 원활하고 전화의 음성도 얼핏 확연히  분별한다.몇 번이고 곱씹어야 풀이되던 말귀 이해도 초년 젊음의 모습이다.20세기 초반의  열후한 조선 함경북도에서 태여나 강국의 유린과 기황의 위협을 대피하여 외조부모들에게 손목잡혀 중국땅을 밟으시고 낡은사회,토지개혁,합작화,인민공사, 문화혁명 등등 시기마다의 말로 전해진 인간의 고통은 맛 그대로 보신 어머니다.내가 어섯눈을 뜬 60년대 초 그 불가형언의 기근속에서 어머니의 주식은 삶으면 익는다는 배추뿌리, 양배추뿌리, 나무껍질, 무우잎새, 배추겉잎과 이름 모를 야생풀 아니면 풀떼기 죽이였다.나는 어머니가 순 쌀밥을 드시는 걸 본 기억이 없고 누워 쉬시는 장면을 본 기억도 없다.집 노인이 아직도?라며 지인들은 눈을 둥글린다.현시대 웰빙이고 건강식이고 장수식이고 매체들은 날 가는 줄 모르고 부르짖는다만 아마 고난이 점철하던 나날에 어머니께서 드시던 모든 것이 제일 보신식일 것이다.간해 상반년 형님이 모신다며 모셔갔다가 다시 부득이한 사유로 여동생의 집으로 옮겨 가셨다.50여년을 함께 계시던 어머니가 가시는 날 나는 일을 빙자하고 자리를 피하였다.떠나시는 모습을 차마 당면할 수 없었다.   백고천난의 지리한 나날, 흔들바람에도 요동치던 헌 오도막에서 아들 둘 딸 넷 한구들에 재워놓고 어머니가 삼키신 눈물 그 얼마랴!새해에 어머님이 더욱 건강하시기 기원한다.   세월이 턱없이 빠르다.애들도 신변을 떠나 일본도로 떠났다.한집에서 살아 볼 날조차 얼마 안 될 것만 같다.새로운 고독이 이어지는게 아닌가?애석한 기분이 맘속에서 감돈다.유장한 나날 나는 10여년의 적막한 타향살이에 나섰었다. 지리하던 그 나날, 주말이 되어 간혹 거리서 천진한 아해들이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기뻐 날뛸 때 흠모의 눈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엇다. 연휴가 되어 귀성하고 귀사 길에 오를 때면 아들 놈이 늘 눈물을 지어 보인군 한다. 입때껏 뭘하고 애들에게 설음을 안겨 준단 말인가?남들에게 약하게 뵈고 구슬픈 소리 내기 싫어 가슴 구석에 희노애락을 완벽하게 갈무림하며 살아왔다.오로지 어머님이 물려주신 뼈를 붇잡고 이어지는 노력과 저항과 드팀없는 산전수전을 하였을 따름이다.   나에겐 아들 딸 두 애를 키우는 행운도 있었지만 시시로 뒷밀이를 못해 준 심통이 있다.간자에 애들도 다 자라 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자식들이 잘 자라줘 더 없이 감사하다.이 허구한 나날 시시로 애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던 모든 사람들과 뜨거운 관심을 보이시던 수교 선생님들께 늘 감사의 마음을 품고있다.새해에 아이들이 더 잘 큰다면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자연법칙의 용식작용(鎔蝕作用)인가. 이젠 어느어느 친구의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이 차차 많아 지기만 한다.조용히 있을 때면 홀로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무한한 기대를 보내주던 친구들,엷은 포켓을 털어가며 도와주던 친구들, 타향살이의 긴 나날에 살림의 이모저모에 관심을 비쳐주던 친구들, 귀가하면 술상 차려 축복을 보내주던 모든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이역 타향에서 친구들의 열띤 정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들을 위해 뭘 해야 하는가? 늘 자문하군 하였다.   옛글에 라 말하였다.친구들과의 정의가 더욱 깊어지고 환락공생의 나날이 더욱 길기를 갈망한다.새해에 의좋은 친구들에게 새 희망을 주시고  평안 평강을 보내시기 성왕님께 기원하는 마음이다.   요즘들어 간혹 텔레비를 보다보면 극난 가정의 애들이 돈 없어 입학을 거부당해 부모들이 통탄하고 애들이 동반 눈물을 짓는 장면을 보게 된다.기막힌 사연들은 뭇사람을 깊은 사색으로 몰고간다. 심지어 6살 먹은 어린 소녀가 돈 없는 이유로 학교문에 못 들어가 뙤약볕 밑에서 창문 너머의 흑판글을 뻬껴쓰는 악연실색할 모습도 인터넷에 비친다.   고행자의 동병상련인가!오지랖 넓은 박애로 넘어간다.서발 작대를 휘둘러도 부딪칠 것 없는 60년대 초반의 우리 집에서 2년을 사이두고 누나와 형님이 대학에 진학하였다.누나는 수험행 교통비 마련으로 집안의 파치물 전부에다 부엌문까지 떼어 팔아 4원을 받아 수험을 받고 합격되었다.형님은 보리고개의 혹독한 식량난 속의 영양실조로 머리도 들지 못해  어머니가 불고체면으로  인근들의 귀한 쌀 두 사발 빌려다 먹여 수험을 보냈다.합격이였다.명문대로….어머니는 그때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같더라 심경을 토로한다.그 어렵기도 하던 나날에도 부모님들과 형님과 누나는 찬란한 미래의 동경을 품고 상상극치의 섭식전쟁과 칠전팔기의 분투를 벌려왔다.노력의 활무대가 틔여 있었고 영광의 희망이 보이였고 항간의 잔잔한 후원이 뒷바침 된 것이다.   새로운 한 해에  돈 없는 이유로 학교 입문이 거절되는 비극적 장면들이 다시 자취를 감췄으면 한다.애옥한 애들의 눈물도 보잖으면 좋겠다.궁색해도 공부할 수 있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굳건히 가춰지면 좋겠다.이리하여 더 많은 찰가난집 애들이 사회의 영재로 커서 이 세강에 찬란한 웃음을 던져주고 헐벗은 부모들이 자식 농사 잘 됐다고 활개치는 자랑찬 모습을 보고 싶다.   요즘 버스,택시,텔레비,방송,신문 그리고 가담항의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집 값으로 뒤숭숭하고  인터넷 리플란엔 늘 개발상에 대한 욕설 투성이로 도배되고 있다.유족한 자는 집 사재기에 나서고 약삭빠른 사람들은 집 둘러치기로 거액을 벌어 내고...아무튼 집 장난이면 뭉칫돈을 챙긴다고 시끌벅적이다.호제품으로 치부하고 참다운 서비스로 흥한다는 소문은 감감하다.집 가지고 움찍하지 다른건 일절일체가 무익허사란다.부동산가격의 급인상을 누른다는 중앙의 선포가 금방인데 여전히 급상승선을 끄으며 인상일수록 구매자 무리가 덮쳐든다.내 같은 민초는 그 장거를 지켜만 볼 뿐이다.회사의 한 직원은  대부금으로 집 한채 마련하고 20년을 느루먹고 살아야 집값 반제가 가능하단다. 철상철하의 집 노예(房奴)다.한평생의 각고노력으로 집을 마련해야 한단다.이 애의 행복은 어디 있을가?왜 이 판국에 집을 사는지….   가지각색의 수단이 빌미로 되어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으면 사회 자산의 대부가  불황중에 소수 사람의 수중에 모아지는 결과가 불 보듯 한데 이 엄청난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가 사회에 무슨 후과로 남아 있을 것인가! 한 학자의 일설에는 일부 지방 정부의 국내생산총가치-GDP(Gross Domestic Product)의추구 일로에 그 근원이 있다고 한다. 민생,공정,공평,다수인 안거락업의 조화사회 건설은 다음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같다.희망컨대 새로운 한해 지도자들께서 과학발전의 탄탄대로에 거연히 서서 의 빛나는 이념으로 그 알고도 모를 GDP창출 일념으로부터 즐겁게 탈피하고 예항하는 항선의 키를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의 창출에 돌리기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묵은 해,우리 신주대지의 활기 띤 마당에도 적지않은 그늘이 던져지고 있었다.탄갱 생산사고이다.몇십 명 내지는 몇백 명의 선량한 생명이 캄캄한 지심에서 비참한 운명(殞命)의 운명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부지런히도 들리는 비보의 거개는 경영자가 금전의 힘으로 양민을 사촉하여 지하 갱굴에 몰아넣고 돈뭉치에만 칠성구멍을 박고 생명을 지켜야 할 성직은 뒤전으로 한 이것이 근원 악이라고 한다.거기다 생명 보호의 기둥이 되어야 할 공직자들이 인민이 내여준 권력을 부정축재의 호기로 삼고 쥐머리를 굴리며 인명보호장벽의 부식을 외면한 것 역시 근본 악이라는 것이다. 수백의 생명을 천길 땅 구멍에 집어넣고 그만큼도 무감각한 이 친구들이 해도 너무하는 같다.이 장본인들을 인민 법율의 맑은 도가니에 차렷 자세로 집어 넣고 친인을 잃은 슬픔으로 가슴이 부서진 선량한 사람들의 처량한 저주를 듣도록 했으면 좋겠다.새해라면 이런 처참한 비극이 근멸하기 바란다.   지구촌에 대한 소망도 꿈틀거린다.요즘의 조물주는 지구 위에 열도가니를 쏟아부어 인류는 전례없는 생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이것이 바로 현시대 인류의 최대 과제인 것만 틀림없다.이산화탄소, 메탄,아산화질소 등등 기억하기 어려운 온실효과의 기체를 인류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다는 이유로 날이 갈수록 무한대로 대기에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지구 표면의 온도가 급상승하고 극지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대기류동이 늦어지면서 이제 조금만 도를 넘으면  인류에게 예측키 어려운 재앙이 초래된다고 지성인들이 울부짓고 있다. 진작 인간 생존의 심각한 화두로 대두 되고 있다.   남극 빙천이 사라지고 북극곰 수량이 급감하고 히말라야 해빙이 초속(秒速)이 붙고  어디선 천 년 홍수, 어디선 만 년 폭풍, 어디선 간발로 수많은 아사자, 어디선 산사태 침몰, 어디선 나라공히 해수 엄몰 위험이…등등 등꼸이 섬찍하는 소리들 뒤를 끊을가 세차기만 하다.이제 누구의 머리에도 덥쳐질 상상가능의 비극이 연출된다는 것이다.인류 생존위협의 개연성의 급팽창으로  많은 국가의 수뇌들이 앞장에 서서 전민에  호소하고 이 땅덩어리를 지키려 몸부림치고 있다.코펜하겐에서 지구 기후보호를 취지로 글로벌 회의를 열고 뭔가 해결안을 찾으려 아득빠득 힘을 기울이는 같다.허나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책임을 이행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껏 시원한 타결의 임계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새에도 지구의 발열은 나름대로 가속이 붙고 있다. 대량의 이민,이름 모를 자연재해.바다 수면의 상승,유행병의 위협 등은 날이 갈수록 인류의 숨통에 청룡도를 들이 밀고 있다.많은 학자들의 한없는 고환이 기우일가?   말시비가 무비한 어려워도 합점을 봐야 할 것이다.그 타결점이 꼭 있으리라 믿고 있다.60억 인구의 생존이 매달린 위업이니 말이다.그러나 나의 우심은 결코 이 거창한 사업을 위한 고상한 생각에서 아니다. 우리가 가버리면 지구가 나의 후대에 어떤 체면을 보여 줄가?이 보잘 것 없는 기의(起意)로 잠긴 경경고침(耿耿孤枕)에서 나오는 소리다..새 한해에 천존께서 하사하신 인류의 유일한 삶의 터전-지구를 지키는데 인간의 힘이 합쳐지기를 비는 바이다.   올해에 들어 인류의 참사가 졸지에 많아 진 것 같다.대형 테로에 의한 인명피해, 보복극의 순환으로 수많은 여린 생명들도 뒷따라 세상의 감지감미도 모르는 채 이승을 떠나 버리는 것이다.그것도 어른들에 의하여….이 참극이 내가 인간!하고 고함치는 사람들에 의해 가차없이 자행되고 있다.평화만 바라는 사람들, 힘없는 부녀자와 어른이 지켜야만 할 아가들, 이들은 왜 세상을 하직해야 하는가! 선량한 과구중인을 향해 사정없이 폭탄 가해를 퍼붇는 그들의 심장은 인간의 살일가,혈맥에서 흐르는 류동체는 인간의 핏물일가?숨져가는 피투성이 핏떵이를 가슴에 붙안고 거친 절규를 하는 어머니들의 비명을 들으며 그 인간들의 시청 지각은 무엇일가?새해라면 이런 참극이 일무소식이 안될가!   새 한해의 소망중 다만 가슴에 집힌 순행으로 일부를 적어 놓는다.실현 여부는 불문이고 희망만 풋풋하다.세상 만물을 넓은 가슴으로 안고 싶고 매 순간을 즐거운 한 때로 만들기 싶다.늘 젤하고 싶던 일로만으로 여생을 태워가고 싶다.   어느 명인의 말이 으스레히 떠오른다.는…   (끝) *경허난:의 제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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