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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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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범종소리 댓글:  조회:951  추천:0  2014-06-06
범종소리 박유동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사에 범종소리 울려 퍼지는데 산속 지심에서 울리는 듯 구름 밖 구천에서 들리는 듯 덩-응-ㅇ! 덩-응-ㅇ! 덩-응-ㅇ! 내 가슴을 울리는 범종소리 남들도 매양 저 소리 듣더냐 귀가 벌쭉한 황소야 잘 들으련만 비탈에 누워서 세금질만 하고 풀밭에 염소는 해종일 울어대네 누구는 소귀에 경 읽기라더니 나도 옛날엔 귓등으로만 들었는데 오늘은 산사 불상에 향불을 올려 서이랴 발걸음 걸음마다 은은한 저 범종소리 천국과 지옥을 깨닫게 하네.
49    [시] 억새산 댓글:  조회:1019  추천:1  2014-06-02
    억새산                                       박유동   친구 따라 억새산 구경 갔는데 나는 그만 산 밑에서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았네 억새산은 크나큰 솜뭉치였고 구멍 뚫린 하늘을 틀어막고 있었네   하늘로는 밥솥에 김이 솔솔 빠져나가고 어딘가 가을 찬 서리바람이 새여 드는데 다행이 큰 솜뭉치가 가로 막았더냐 아직은 산에 들에 단풍이 불타고 강남기러기 떠나갔다가도 되돌아오네   사람들이여 억새를 한부로 다치지 마라 솜뭉치가 뜯겨 훌훌 날아가 버리면 담뱃불이라도 당기여 화약처럼 타버리면 태산처럼 막았던 하늘구멍이 확 열리니 이 세상은 당장 설한풍이 들이닥칠 걸세.
48    가시나무 댓글:  조회:1068  추천:0  2014-05-31
 가시나무                                         박유동 이역만리 타관 땅에서 온통 가시투성이나무 보았네 대못보다 굵고 창날보다 뾰족한 가시 잎은 없고 총총 가시뿐이네 너의 마음 얼마나 악독하면 무슨 원한이 그렇게도 서렸으면 저렇게 복수의 창을 들고 벼르느냐. 잎도 피지 않으니 꽃인들 피랴 그 꽃 모양이나 한 번 알아보려고 당지 토박이 붙잡고 물어보니 어느 누구도 꽃을 못 봤다 하잖느냐 지독할 손 선인장은 그래도 꽃은 피는데.
47    무량사 벽계수 댓글:  조회:1012  추천:0  2014-05-31
무량사 벽계수                                     박유동 무량사에 울리는 목탁소리 극락전에서 염불 외는 소리 바람은 산사에 머물렀나 추녀에 풍경은 제자리서 뎅그렁뎅그렁 갈길 잃고 찾아온 사람들 험한 팔자 한번 고치려는 사람들 극락전을 돌아 흐르는 벽계수야 극락전에 한번 쉬어간들 어떠랴만 바다를 향하여 달려온 수천리길 무창포 희망의 바다가 지척이라고 태평바다에 뛰어들 벅찬 순간이라고 너는 매양 한눈 안 팔고 급물살만 타느냐. -충남보령 무량사에서
46    고갯길의 열차 댓글:  조회:650  추천:0  2014-05-29
고갯길의 열차                                              박유동   고향의 앞산 높은 고갯길  열차가 하루 수십 번 지나가는데  어쩌다 바라보노라면  상행선도 올라오고  하행선도 올라오고  소리도 없는 열차가 그림같이 돌아가네   옛날에는 하루 한번 지나다녔는데  상행선 올라오느라 쾍! 쾍! 칙! 칙!  하행선도 오르느라 쾍! 쾍! 칙! 칙!  힘들고 숨이 차서 더러는 멈춰 서서 쾍쾍! 칙칙!  아무렴 배고프던 보릿고개 그때 그 시절  열찬들 배곯았으니 무슨 힘이 있었으랴.
45    댓글:  조회:685  추천:0  2014-05-28
달 박유동 달달 밝은 달 둥둥 둥근달 너는 밤마다 나의 길동무였네 산길을 가면 산등을 타며 따라왔고 들길에선 먼 지평선 끝까지 따라왔었네 야행 열차거나 버스를 탈 때면 달은 차창에 매달려 나와 동행했었네 그런데 전철 타려 지하입구로 들어가면 나와 길동무하며 따라오던 달이 그만 멍청이 하늘 한복판에 멈춰 서네 더는 한 발짝도 따라오지 않았는데 달은 지하철 땅속을 지옥인줄 아나보네 아무렴 천국 간 사람이 지옥을 왜 가랴. .............창작노트................. 물론 땅속 지하철이 지옥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로 행복한 전당이요 찬란한 궁궐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시를 보면 달이 지구상의 지하철을 몰라서 따라가지 않는 것으로 표현해야할 것을 로 표현 했는데 모호한 의문을 준다고 할 것이다. 꽃피고 새가 우짖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이 세상을 두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도 하고 시인 천상병은 귀천해서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자랑하려 했다고 하지만 이세상은 삶의 고통과 단 백년도 못 사는 죽음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 가려하고 지하 땅속 지옥에는 가려하지 않는 것이다. 달도 월궁 상아아씨도 수천 년 전에 천국에 간 것이니 달이 지하철을 땅속 지옥으로 알고 있으니 천국의 달이 왜 지하 땅속까지 따라오겠는가.
44    부지깽이 댓글:  조회:712  추천:0  2014-05-27
부지깽이                                       박유동   나의 시험지가 빵떡을 맞거나  공일날 숙제도 않고 종일 놀거나  코피가 터져 싸우고 들어오거나  어머니는 매번 부지깽이를 들었었네  때로는 부엌아궁에서 불이 벌건 부지깽이를   내가 엎드려 빌어도 소용없었네  때로는 손바닥을 펴라 하였고  때로는 종아리를 걷어 올리라 했는데  나는 번번이 울음을 터뜨렸고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한없이 미웠었네   내가 늙어 자식을 키우고 보니  오늘의 내가 사회에서 명망을 얻고 있으니  그때 엄격했던 나의 어머니 부지깽이 교육  진정 나를 사랑했었다 본다네  요즘은 부지깽이를 모르지만 나는 잊을 수 없네.
43    시인의 아내 댓글:  조회:1161  추천:0  2014-05-26
시인의 아내 박유동 매미가 울어대는 한여름 밤 바람이 시원한 창문가에서 아내와 가지런히 누워 잠자려는데 갑자기 집안이 환이 밝아지고 처마 끝에 둥근달이 얼굴 내밀었네 일렁이는 밤나무에 둥근 감이 달렸다고 아내를 집적대며 눈떠보라 했더니 아내가 주워대는 말주변 희한도하네 자기는 낮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감나무에 태양 같은 붉은 감 따먹었다하네 언제는 날더러 시인 아니랄까봐 바람 잡아 먹고 구름 똥 싼다고 허풍쟁이처럼 뚱딴지소리 잘한다더니 오늘은 누가 시인 아내 아니랄까봐 하하 아내도 제법 뚱딴지소리 잘하네요.
42    남녀 나체석상 댓글:  조회:820  추천:0  2014-05-24
       남녀 나체석상                                                                                 박유동 충남 보령시 혜화시비공원에는 큰 남녀 나체석상이 인기를 끌었다. 풍만한 젖가슴에 인어같이 미끈한 여자상과 거시기가 쇠부랄만치나 축 늘어진 남자상이 닿을 듯 가지런히 서 있었다. 더러는 여자상을 껴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싱거운 남자도 있는데 돌아보니 이상하리만치 여자들은 하나 없고 남자들만 짜드리 모여 좋아 히히덕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이 공원에 올적마다 이 남녀나체상 앞에 발길을 멈추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저 발가벗은 여자를 곁에 두고도 남자의 성기가 아무런 발동이 없이 죽어 있나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도 만약 남자의 거시기가 팔뚝같이 뻗치고 있었다면 얼마나 보기 흉측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축 늘어져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가 싶었다. 내가 땡볕더위를 피하여 나무그늘 밑에 찾아 들어서니 한 여인이 시비(詩碑)를 읽고 있었다. 그는 나의 문우 가산시인님이 서울서 한 버스 타고 오면서 자기 애인이라며 우스개로 소개한 한창 젊은 여류시인이었다. 나는 그를 보고 방금 보고 나온 나체석상을 가르치며 시인님은 저기 애인님이 보고 있는데 같이 구경 않는 가고 물었더니 피식하고 웃으며 돌아서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여자들은 저런 괴물을 꼴도 보고 싫은지 구경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단체가 행사를 끝내고 버스에 올라 상경하면서 나는 나의 곁에 앉은 문우에게 조용이 물었었다. “방금 그 좋은 나체상을 애인은 안 부르고 혼자만 보셨습니까?” “끌고 구경 시키려 했는데 뿌리치고 막 달아나지 않겠나” “선생님 말을 들으니 언젠가 내가 살던 고향에서 여름방학 간 학생이 강물에 빠져 죽었었지요. 그 시체를 찾으려 해염 잘 치는 장정들이 널판자를 타고 염방 잠수를 하는데 널판자 한쪽에 두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타자 널판자는 무게의 균형을 읽고 그만 이쪽에 혼자 있던 사람의 알몸뚱이가 공중 쳐들리면서 남자의 시꺼먼 거시기가 환이 들어 났지요. 그 바람에 강역에 모였던 노소 여자들이 폭탄이나 맞은 것처럼 왁자하고 달아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천성으로 고운 여자들은 그런 흉측한 것을 보기 싫은가 봅니다.” “선생님은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만, 여자들은 더 하답니다. 자기네들끼리 있으면 아마 손으로 주물이고 얼마나 큰 가고 손뼘으로 재보기도 했을 겁니다. 오죽하면 동네 과부들이 달려들어 홀아비영감 바지 벗겨 놓고 주물었다지 않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머리를 끄덕이었다. 남학생을 성추행한 여선생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만들 때 남녀를 똑 같이 만들면서도 여자들이 생육을 하느라 피를 흘리고 고통이 심하니 성에 대한 욕구만은 남자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놔야만 균형이 되고 어느 누구도 회피하거나 나태하는 일 없이 남자들 앞에 당당히 맞불을 놓을 것이었다. 바로 이처럼 여성들이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강한 성적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류사회가 번성하고 발전하게 된 것 아니겠는가. 비록 여성들이 남자들만치 대담한 표현은 없지만 기실은 이성간 성생활에 대하여 남자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신비로울수록 비밀리에 부치고 좋을수록 부끄러움을 타고 감추는 것이 인간상정인지 모른다.
41    유성기판 댓글:  조회:696  추천:0  2014-05-23
유성기판 박유동 동네 할아버지들 다 모여서 고사지네고 큰 톱으로 잘라버린 구새 먹은 고목나무 망 짝만 한 고목나무 굵은 밑동이 우리 집 마당가에 둥그렇게 놓였는데 긴긴 한 세기 백년을 더 살았다고 연륜의 눈금이 빙빙 돌아갔는데 유성기판처럼 빙빙 돌아갔는데 어떻다 깨진 사발처럼 갈라 터졌느냐 무성한 나무의 긴 역사가 빼곡히 새겨졌거늘 유성기판처럼 빙빙 돌아갔으면 꽃피고 새가 날아 우짖고 바람에 나뭇가지 설레는 소리 들으련만 625전쟁 때 저 나무꼭대기에 올라가 태극기 꽂고 반격의 나팔 불던 학도병 그 속에서 철없던 나와 개똥이 소리도 들으련만 깨진 유성기판이라 귀를 데도 들리지 않네. ......................창작 노트............................ 나는 어제 에서 이메일로 보내 온 김경성님의 시 과 나무의 나이테 사진을 보고 쓴 시였다. 나무의 나이테가 수없이 빙빙 돌아 간 것을 보아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꼽은 더 많아 보이고 둥근 유성기판처럼 빙빙 돌리고 싶었는데 가소롭게도 유리사발 깨지듯 유상기판은 갈라 터졌으니 나무의 살아생전의 무성한 역사를 상상이나 하면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시였다. 김경성님의 시 을 보시려면 http://cahe.daum.net/sihull/9bun/354 /2014,5,22
40    연못가에서 댓글:  조회:621  추천:0  2014-05-22
 연못가에서 박유동 둥글 넙적한 연잎이 물위에 둥글둥글 덮였는데 연잎이 깊은 물속을 가린 걸가 연잎이 하늘의 해를 가린 걸가 풀숲에 숨어 해를 가리고 짝짓기 한다고요 물속에서도 해를 가리고 짝짓기를 한다내요 세상에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사랑 남몰래 혼자만 독차지하려는 사랑...... 방금 숲속에서 새가 날아갔다오 연잎 속에서 발갛게 연꽃이 떠올랐다오 짝짓기 사랑은 어디나 한 순간 인가봐 아무렴 사랑은 오래 빠지면 못 쓴다 하내요.
39    추억의 편지 댓글:  조회:959  추천:0  2014-05-21
        추억의 편지 박유동 그녀가 살고 있는 신월동 가는 길 신호등사거리 지나서도 네 번째 골목 나는 늘 그녀의 집 앞길로 둘러다녔다오 어쩌다 길거리에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오 그때 그 시절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더구나 그와 나 부끄럼도 많았다오 한번은 편지 한 장 써들고 갔었는데 못나게도 편지를 감추고 끝내 못 주었다오 그런데 웬일인지 몇 달을 못 만났는데 그 집 앞에 찾아가 수소문해보니 그녀는 벌써 부모 따라 이민을 갔다 하네요 그때부터 다시는 먼 길을 에돌지 않았다오 내가 장가가고 첫아이 낳고 살 무렵 그녀가 영판 외국모델처럼 찾아왔었는데 눈물이 홍건이 비친 그의 얼굴을 봤더니 그때 편지 한 장 못 준 내가 못내 후회되데요. /2014.5.18
38    나의 성명 발표 (저작권 협회에 보내며) 댓글:  조회:1206  추천:0  2014-05-21
         나의 성명 발표 (저작권 협회에 보내며)                                                                                                                         박유동 저는 매 창작 작품을 즐겨찾기에 국내외 40여 곳 카페를 메모해 놓고 글을 순서대로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시대라 잡지나 책 보다 더 신속하고 독자들이 더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출판되는 문학잡지가 대외로 팔리지 않으니 고작 그 잡지에 실린 작가들의 동인지나 다름없이 나누어 보는, 그것도 제 글을 돈 주고 사보니 보는 사람 고작 몇 십 명밖에 안될 겁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리면 광범한 독자들이 나의 글 한편을 하루에도 수백 명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으며 더구나 이나 나 나 야후코리아나 그리고 기타에서도 한 개 작가의 글을 체계적으로 정돈 저장까지 해 주어 나로서는 아주 편리하며 감사를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직접 주관하는 카페지기들이 계시여 많은 노력과 수고가 많으리라 믿고 그들께도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카페에는 자원 가입이 위주로 되며 일단 카페의 약관을 동의해서 가입했다면 카페 성원인 것으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합니다. 자기가 카페지기라 해서 회원의 작품이 약관 취지에 부당하면 취소도하고 퇴출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카페성원을 존중한다면 응당 취소 퇴출 그 사유를 공개하고 밝혀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카페는 카페 푸로를 변경 취소 될 때는 어디로 옮기고 혹은 지난 작품은 어디에다 저장되었다 설명을 해 줍니다. 그러나 어떤 카페는 여태 올린 작품을 말도 없이 한날한시에 삭제해 버리거나 어제 올린 것을 사전 통보 없이 삭제해 버립니다. 작가들이 누구나 자기 작품을 제 자식처럼 금족같이 사랑하는데 이렇게 삭제한다면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마치 도둑을 많나 잃어버린 기분입니다. 나는 지난 40년 전 나의 작품을 어느 폅집부에 보냈었는데 합평회에서 수정없이 원문대로 발표하라는 나의 글을 자기 서랍에 감추고 있은 나쁜 편집원도 있었고 내가 80년대 한국 KBS 사회교육 제2라디오 방송공사에 글을 많이 발표했었고 내 육성으로도 2차래 방송했었는데 몇 번은 내가 제2방송국에 보낸 시를 KBS제1방송국에서 먼저 내 이름이 아니라 그것도 남의 이름으로 발표 한 적이 있는데 그 녹화 테이프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나는 달리 생각지 않습니다. 남의 글을 존중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남의 글을 도둑질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제 제자의 글을 훔친 사람도 있다시피 표절범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이 제일 경계하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원노시인들이 제 글을 도둑 만날까봐 글을 시중에 감히 못 내놓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카페는 정치성을 배제하며 순수한 문학작품을 올리라하는데 문인이라면 시대의 기수이고 깃발인 것이다. 우리는 남북대결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유대한민국을 찬양하고 태극기, 무궁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노래하여야한다. 대통령을 노래했다하여 정부를 찬양했다하여 이런 글은 여기 카페에 올리지 말라고 삭제하는 카페도 있다. 이런 카페는 단연 죄편향 카페일 것이다. 그들이 순수한 문학은 뭔가? 아직도 뒤울안 담 밑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내고 가난을 짜는 현실을 떠난 그런 글이 순수하다고 보는가. 특이 오늘날 남북이 분단되고 과거 냉전시대보다 더 험악한 사회에 살면서 제 3의 길이 정말 있을까. 순수한 문학이란 결국 우리 현실을 부인하고 반대를 일삼는 어용학자들의 기만인 것이다. 오늘 나는 내가 5월 17일 08,47분에 발표하고 댓글도 누가 2개나 단 나의; 시 < 취중 즉흥시>를 다른 카페와 같이 한편을 단독으로 발표했는데 모 카페에서는 무단으로 삭제했고 또 재차 올렸더니 또 삭제하였다. 도대체 내 잘못이 아딘지? 그들 말마따나 두 개 한꺼번에 올렸다는데 기록이 있겠지만 두 개 동시에 올린 적 없고 이 시가 빠졌기에 빠진 자기 작품을 보충하느라 시 을 올리고 이어 재차 올린 것이었다. 따로따로 올리라는 말도 없이 남의 작품을 카페에서 흔적없이 지워도 됩니까? 이것이 저작권 침해가 아닌지 오늘 저권권 협회 제출하여 물어 보게 된 것이다. 나의 시 에 대하여 많은 반향이 좋았고 어떤 카페에서는 화면에 크게 광고를 내 걸기도 했는데 반면에 나의 시를 부당하게 삭제했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 없을 것이다. 아마 고은이나 이외수 같은 시인이면 못 그랬을 것이다. 내가 비록 무명시인이지만 나는 나의 글이 그들 보다 더 났다고 자호한다. 나는 시의 영감이 없이 시가 안 되는 북데기 같은 시는 하나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믿지 않으면 찾아보기 바란다. 몇 년 전 통계만 해도 나의 시를 노래를 넣고 그림을 그려 퍼 옮겨간 카페가700-800이나 되니 아마 한국에서 몇 사람이나 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그래서 오늘 분통을 참지 못하고 남의 글을 한부로 삭제해도 되는지 이 글을 쓰며 저작권협회까지 문의 하게 됩니다. 박유동 / 2014,5,20 나의 시를 두 차래나 삭제한 모 카페에서 원문 그대로 댓글 까지 다시 복원해 주었기 때문에 나의 이 글을 내 불오그에나 올려 기억으로 남기려 했으나 다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왜냐면 나의 시에 대하여 댓글 가운데 언젠가 본 듯한 글이라는 애매모호한 소리에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17일에 쓴 나의 시를 18일에 댓글을 달면서 언젠가 본 듯하다면 나의 시가 이미 세상에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은 한부로 하면 안 된다. 언제 어디서 이런 시가 있었다는 증거를 대야한다. 나의 시를 두고 몇 년 전에도 똑 같이 언젠가 본 듯한 글이라고 해서 나는 격분하여 장편 반박문을 쓴 적 있지만 이번이 이것이 두 번째이다. 나의 최신작이 언제 어디에 있을 리 없는 것이고 다만 어떤 사람이 자기가 모방해서 이런 시를 자기가 먼저 썼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볼 뿐이다. / 2014,5,20 [시의 원문] 취중 즉흥시 박유동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나는 뱃머리 갑판에 앉아서 술잔을 높이 쳐들고 있다네 파도는 출렁이고 뱃머리도 울렁이는데 나는 고이 술잔을 받들고 있다네 보아라 저 파도가 구비치는 바다위에 태양은 볼 수 없어도 나의 술잔에 큰 태양이 담겼잖느냐 오늘 이 백발시인은 흠뻑 취토록 마시련다 술 한 잔에 시 한수 술 한 잔에 시 한수 이태백이여 어서 와서 맞잔을 잡아다오. /2014,5,16
37    탐욕 댓글:  조회:669  추천:0  2014-05-19
 탐욕   박유동   가시나무에 꽃이 울긋불긋 가시나무에 열매가 조롱조롱 언젠가 꽃을 꺾으려다가 언젠가 열매를 따려다가 그만 가시에 아리도록 콕 질리었네 손끝에 핏방울이 맺혔었네   가시 없는 꽃도 흔하고 가시 없는 열매도 많고 많은데 왜 나는 탐욕을 버리지 못하느냐 한번 찔렸으면 그만이지 왜 바보천치같이 덤볐더냐 오늘 또 눈물 나도록 콕 찔렸다네.
36    취중 즉흥시 댓글:  조회:699  추천:0  2014-05-17
취중 즉흥시 박유동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나는 뱃머리 갑판에 앉아서 술잔을 높이 쳐들고 있다네 파도는 출렁이고 뱃머리도 울렁이는데 나는 고이 술잔을 받들고 있다네   보아라 저 파도가 구비치는 바다위에 태양은 볼 수 없어도 나의 술잔에 큰 태양이 담겼잖느냐 오늘 이 백발시인은 흠뻑 취토록 마시련다 술 한 잔에 시 한수 술 한 잔에 시 한수 이태백이여 어서 와서 맞잔을 잡아다오.
35    훈시訓示 댓글:  조회:643  추천:0  2014-05-16
훈시訓示 박유동 동굴 속에 들어가니 동굴 천정에 나뭇가지에 박쥐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렸네 박쥐는 앞 못 보는 당달봉사라더니 하늘땅 상하 아래위도 구분 못하느냐 세상 중심을 모르고 거꾸로 메달렸네 그런대 박쥐들 차렷하고 찍찍 웃어대네 바보같이 우주태양중심도 까먹었냐며 날더러 거꾸로 섰다고 똑바로 서라하네.
34    눈물의 호소 댓글:  조회:733  추천:0  2014-05-14
       눈물의 호소   지금 글을 다시 올리게 된 원인 박유동 언젠가 중국 연변 조글로에 글을 올리면서 내가 한국 대통령께 상서문을 두 차래 올린 것을 금후 시간을 봐서 공개하련다고 말 한적 있었다. 옛날 고전을 보면 많은 선비들이 시골에 묻혀 살면서 나라 대사가 걱정되어 임금에게 상서문을 올린 것을 보게 되고 심지어 어느 가정집 족보를 보아도 가문에 문장가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적어 놓은 것을 보았지만 나 역시 평생 남의 집 대문 문지기도 못해 본 사람이 대통령에게 상서문을 올렸다면 남이 알아봐야하고 오늘날 인터넷 세상에 적어도 내 불로그에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십여년 지금까지 원고뭉치가 누렇게 뜨도록 손 볼새 없는 것은 두 문장이 도합 15페이지로 15000자는 되는데 이 컴맹이 손가락 눌러가며 새로 타자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어서 여태 방치했었는데 요즘처럼 매번 선거철이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중국동포지간에 불미스런 대립이 생기므로 나의 중국동포 눈물의 호소를 상기 시켜보려고 원문을 사진 파일로라도 올려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면 그 두 상서문을 요약한다면 이러했다. 하나는 2003년1월14일에 에서는 당장 고용허가제로 추방되어야할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진출해서 최소 5년간 취업을 허용해야하는 구체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2004년2월11일에 로 밀입국을 포함해서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를 없애고 자유왕래하여 한국의 여객선과 항공에서 한국 사람만 타고 다닌 현상을 근절한다면 한국에 취업한 중국동포들로부터 연간 4000억 이상의 돈을 소비하니 그 관광 수입이 대단할 거라며 일별, 월별, 년별 계산을 밝혀 적었었다. 당시 나의 글을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법무부, 노동부, 한나라당(당시 거대 야당), 조선일보, 한국일보, 동북아 신문, 서경석 목사, 안산교회의 목사, 모두 17곳에 배포되였다. 당시 나도 3년 만기가 되어 곧 불법이 될 자식을 둔 사람이라 모두 나의 실명이 아닌 아호를 썼었다. 물론 당시 서경석 목사님의 에 중국노인네 몇 사람이 대통령에게 출국 준비가 안 되였으니 1년만 더 연장해 달라는 를 쓴 사실은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이유도 없고 또 1년 연장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래서 5년을 연장해야할 이유를 내 고향 마을에서 한국인 사장을 살해하고 무고한 청년이 무기징역 사건과 날로 고장되는 중국동포의 반한감정을 들어가며 상세히 밝힌 것은 아마 누구도 없는 줄 안다. 이러한 나의 두 상서가 효과가 있었는지 누가 알겠냐 하겠지만 어찌했던 두 상서 내용대로 반년이 안 되어 모두 실시되었다. 5년 연장이 실시되었고 하루아침에 밀입국을 포합해서 불법체류자 없애고 자유왕래도 처음에는 밀입국자는 제외되었지만 그것도 얼마 더 안가 모두 불법체류에서 구조되었었다. 한국은 민주국가로 풀뿌리 정책으로 단체나 개인의 원안과 민원의 글을 밑에서 올리게 되면 반드시 며칠 내로 답변이 있게 되어 있는 줄 그 후에 알았다.모두 주소도 없고 전화연락처도 없는 나의 문장에 답변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노동부에 갔을 때 민원 사서함이 없기에 경비원이 날더러 사전 방문예약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며 서류를 경비실에 두고 연락처를 남기라기에 전화번호를 한번 적었더니 그 후 전화로 답변이 왔었는데 현 단계에서 자기들로는 실행 못한다고 하였고 조선일보사는 내가 찾아 갔어야 담당자는 문장이 너무 길다며 한 개 한 개 사실을 나눠 적어 보라 해서 당시 나는 컴퓨터도 못하고 다시 간단하게 정리할 필요도 없고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풀뿌리정치란 말이 나왔으니 한번은 내가 글을 써 가지고 서울 조선족 교회 국가 원로이신 서경석 목사를 찾아갔었다. 조선족이란 중국에서 여러 민족과 구분하기위하여 조선족이라 하는데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 조선족하는 것은 중국동포를 폄하하고 비양하는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다며 기실 한국 사람도 국제적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족 아닌가, 조선족이란 말은 한국 사람이 불러서는 안 되며 중국동포라 불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듣고만 있었던 나의 말을 그 후 한 달여 만에 서경석 국가 원로는 국가 원탁회의에 참석하여 이 문제를 어떻게 제의 했는지는 모르나 그때부터 이미 있는 조선족교회 명칭은 그냥 두고 일체 TV나 신문 언론은 조선족이라 부르지 말며 중국동포로 사용하도록 원탁회의 사진과 내용이 TV에 신문에 나왔었다. 이렇게 신속한 한국의 민주주의 풀뿌리정치를 실감하게 되었으니 나의 대통령께 올린 두 문장도 정부 어느 부서에서 반영되고 연구 참고가 됐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 사실을 지금 밝히는 가고요. 지금 한국은 한창 선거 때가 되었다. 매번 선거 때가 되면 같은 중국동포들 사이도 옥신각신 대립각이 형성되니 나의 지난날 를 한번 상기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선거 때가 되면 많은 중국동포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고 그 소속 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5년 연장도, 자유왕래도 모두 노무현 때 실시되었기 때문이란다. 나는 이 중국동포의 문제는 많은 재야 단체와 사람들이 성원 지지했고 특히 서경석 목사를 비롯하여 단식 투쟁을 하고 당시 한나라당의 안상수라는 사람이 단식으로 쓰러진 서경석 목사를 현장에 가서 위로하며 꼭 해결해 준다고 약속했고, 당시 국회다수당인 거대야당 한나라당의 결정적 지지가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한중 국교가 설립되고 중국동포의 제한적 고국방문은 노태우 대통령이 시작으로 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 중에도 노무현 시기가 중국동포에게는 가장 암울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시기가 고용허가제로 많은 중국동모들이 밀입국으로 죽고, 브로커에 사기당하고, 내국인을 수선 취직시키고 중국동포는 소외되고, 만일 사사로 채용한 한국 업주는 벌금과 처벌하고, 불법체류자 한 사람만 있으면 그 가족과 친척까지 초청 제한하고, 수시로 검문 검색당하여 추방되었고, 때로는 집에까지 찾아왔으니 밤낮으로 벌벌 떨며 살았고, 빚더미에 시달려 가정은 파탄되고, 자살한 사람도 속출했었다. 이런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여야 국회에서 토론 연구하는 것으로 남북분단국에서 해외 동포들이 대거 밀려오는데 작은 나라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서 실험적으로 적응 확대 발전시키는 것임을 중국동포들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이해도 있어야겠다고 본다. 그런 사실은 모르고 선거 때가 되면 많은 중국 동포들이 무조건 노무현 지지하고 또 지금의 야당들은 지지를 얻으려 중국동포사회를 자주 찾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중국동포들이 원양 어선에 나가서 한국 선박주에게 고통에 시달리다 선상반란으로 한국인 선장과 선원을 몽땅 살해한 페스카마호 살인사건을 법정에서 변호한 사람이 많이들 지금의 야당이고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이가 변호해서 중국동포 살인범을 사형 하지 않았다고 호감을 갖고 있는 그것인데 살인범은 응당 처벌을 받아 마땅하며 단지 한국은 비록 사형제는 지금도 있지만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살인범을 사형 안하는 것으로 근절 되었으니 문재인이 변호 아니라도 사형 안할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되어 있은 것으로 본다. 선거에서 어느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개인 유권자의 자유며 권리를 누가 뭐라고 하겠나만 기존의 잘못 된 인식으로 오늘날 현 정부가 죄가 없는 한 검문검색도 없고 자유왕래하며 편하게 돈 벌이 하고 있는 것이 마치 노무현 혼자 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 소속 당을 지지하라 남에까지 성깔을 부리며 싸우려는 사람이 더러 보이는데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서로 대립만 조성하니 크게 잘못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때 그 원문 중 하나를 수정 없이 아래에 올려 본다. / 원문 를 사진 파일로 같이 올리려 했으나  전송이 잘 안 되여 수선 이 글을 쓰게 된 원인만이라도 전송합니다. 그리고 원문의 기본 내용은 이미 요약되어 있고 누군가 필요하면 저의 한국 불르그에서 원문을 찾아보는 것도 될 것 같아서입니다. / 2014,5,14
33    설매화 雪梅花 댓글:  조회:799  추천:1  2014-05-14
설매화 雪梅花 박유동 늙고 병든 팔순영감이 어딜 가랴 삼동겨울 집에 구들장 지고 누웠으니 한낮에 잠간 양지쪽에 버둥대고 나가면 뜰에 매화가 유일한 벗이었는데 꽃피는 봄까지라도 죽지 않고 살고 싶었네 매화나무가지 부여잡고 어루만지니 눈을 감았는지 입을 오므렸는지 꽃망울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매화를 불러 봄노래도 시도 읊었고 언 꽃망울에 따뜻한 입술로 녹여도 주었네 뒤늦은 폭설로 천지가 다시 하얗게 덮이고 한파에 며칠을 집밖을 못나갔더니 그새 이월매화가 눈을 떠이고 활짝 피었네 너를 붙잡고 애타게 꽃피는 봄을 기다렸더니 아 설매화야 너는 이 늙은이의 소원을 알더냐.
32    내가 귀천하면 댓글:  조회:737  추천:0  2014-05-10
내가 귀천하면 박유동   진도 팽목항 바닷가에서 비통한 가슴으로 바라보니 아득히 먼 바다는 하늘과 맞닿았는데 애타게 찾는 꽃봉오리들은 보이지 않고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만 철썩이네 무시로 갈매기만 슬피 울어대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태어나서 너희들은 조국의 희망이고 행복이었건만 꽃 한 번 활짝 피워보지 못하고 꽃봉오리 채 몽땅 바다 속에 빠졌느냐 여기 너의 부모들이 통곡하며 기다리는데 너희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거냐   이제 늙은 이 몸이 얼마나 더 뻗치랴 나의 골회도 저 바다에 뿌릴 날 멀지 않으니 아무렴 내가 먼저 너의 한대 찾아갈 수밖에 그때 만나 여기 소식만은 꼭 전해 주마 너의 부모형제 온 국민이 너희를 잊지 않는다고 원한의 세월호 악마들을 모조리 작살냈다고.
31    미래 댓글:  조회:652  추천:0  2014-05-09
     미래 박유동 팔순나이에 늙어 죽게 된 나에게 앞에 태산절벽이 꽉 막힌 것처럼 미래고 희망이고 눈곱만치도 없잖느냐 살아 헤쳐 온 지난날을 돌아다보니 학자가 되고 부자가 되고 판사가 되고 나에게도 분명 희망과 미래가 있었으나 이제 손바닥같이 들여다보이는 나의 역사 알고 보니 나에게는 허망한 꿈이었었네 나의 미래 나의 희망은 어디도 없었네 날보고 그깟 시인 됐잖느냐마라 하기야 나는 필생의 노력을 들였지만 길거리 각설이 쟁이 보다 못한 시인 바람 잡아먹고 구름 똥 싸는 시인 아내 말마따나 세상에 허풍쟁이었네 시 몇 편에 돈만주면 당장 시인이 되는 걸 그걸 희망이라고 살아온 내 인생이 한스럽네. ...............창작노트.................... 인터넷 카페99+에서 누군가 나의 시 에 댓글이 올라왔다. 언제 내가 저런 시를 썼더냐 싶고 무슨 내용인가 생소한 생각에 검색해보니 일 년 전에 쓴 시었다. 물론 인터넷에 띄웠지만 인터넷에는 지난 페이지를 찾아보기 힘들고 나의 불로그를 누군가가 꽤 깊이 파고 들어와 본 모양이다. 나 역시 재다시 잃어보니 이치에 맞는 시라 새삼 괜찮다 느껴지고 오늘 새로 가입한 카페마다 올리게 되었다. 이치에 맞는 말이라니 무슨 의미인가고요. 초등학교라고 다녔다면 시 한두 편 안 써 본 사람 없을 거고 심지여 나의 손녀도 5살 유치원 때 동시를 제법 짤막한 어휘에 반복법을 써가며 잘 쓰더란 말이다. 아마 한국 사람치고 시 못 쓰는 사람 없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러니 시 대여섯 편 내고 돈만 주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니 식은 죽 먹기인 것 아닌가. 물론 개별적으로 천재적이고 성공하고 우수한 시인도 있겠지만 시 한편을 창작하기 위하여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를 말리는 산고를 격지 않고 필생의 노력 없이 이렇게 쉽게 공짜로 시인이 된 사람이 앞으로 정말 옳은 시인이 되겠나 싶다. 3백여 개의 문학잡지마다 매달 시인을 등단시키니 한국은 아마 몇 만 명 시인천국이 되니 뭐든지 많고 흔하면 비지떡이라더니 오늘날 싸구려 시인을 누가 알아 주랴. 고상한 명예는 고사하고 전철에 앉아 시집하나 버젓이 꺼내 놓고 읽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내가 왜 시를 썼더냐, 지난날 허망한 꿈마저 이제 와서 실망스럽고 한탄만 나온다. 하기야 박근혜 대선후보 대통령공약에 현 한국문단의 병패를 낫낫이 반영하고 현 3백여 개 문학잡지를 백 개로 병합하여 매 문학지마다 국가보조금은 안 쓰더라도 해마다 10대 재벌의 문학예술계에 기부금 8천억 가운데 천억여 원을 떼어 문학잡지 한 개마다 1억을 주고 대신 1만 권의 잡지책을 10대 재벌의 직원에게 주면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도 있어야하니 그들도 좋고 매 잡지사마다 1억원으로 만권의 출판비,작가들의 원고료주고도 매달 4천만원은 남으니 일 년이면 5억의 수입이니 문인들의 국내외 무슨 활동을 못하겠는가. 이 방법 밖에 한국문단의 병패를 만구 할 수 없다고 대통령 공약으로 채택해 달라 상서를 써 바친 이 박유동이가 아마 조선 천지에는 없는 가 싶다. 대통령 공약 토론대회에서 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한 간부는 자기가 몇 십 년 원로시인으로 있으면서 원고료 단돈 만원을 못 받았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한 문학 세미나에서 어느 원로 문인은 자기의 열강에서 현장건설 막노동판에 노가다라도 직업이 없어 일을 못해 집에 놀아도 백만 원 좌우의 보조금을 타는데 우리 문인들은 제가 노동한 원고료도 못 받고 오히려 제 글을 돈 주고 사서 봐야하니 우리도 가두의 데모꾼처럼 이마에 결사투쟁의 붉은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가두시위를 하자고 호소하니 만중이 옹호 하였는데 오늘 나의 글을 보고 어디에서 굴러 온 늙고 무능한 주제에 웬 불만인가 하겠지만 나의 실망이 어찌 내 개인적 한탄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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