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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싶다 댓글:  조회:1294  추천:0  2010-03-11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싶다 누가 부르는듯이 짬만 나면 컴퓨터 앞에 다가서는 나를 두고 안해도 아들놈들도 이상하다 는 눈길이다.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그네가 웬 컴이냐 하는듯 싶다. 그냥 컴으로 애들처럼 게임이나 하고 채팅이나 하는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들에게 뭐라고 구구히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컴퓨터 앞에 마주 앉으면 마음이 후더워지고 내 삶이 충실해지는듯 싶다. 이만침 나는 컴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한다. 아이디가 “희망소년”이라는 소년을 알게된것은 올해 4월경이였다. “뚱보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안녕?”하고 소년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소년이 인차 “진짜 뚱보예요? ㅋㅋㅋ”하고 글을 보내왔다. “그래요. 되기 뚱보죠 아마 잘 먹어서 그런가 봐요...” 하냥 하는식으로 약간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해보려고 던진 나의 미끼였다. “아닌같은데요. 뚱뚱한 사람은 마음이 뜨겁다고 말했어요?” 생각밖에도 소년이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러자 나도 좀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다시 컴퓨터앞에 다가앉으며 건반을 때렸다. “누가 말했는데요?” “저의 아버지요” “아버지도 뚱뚱해요?” “뚱뚱했더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겨셔요...” 이렇게 시작된 “희망소년”과의 대화는 터쳐놓은 물코처럼 흘러내려같다. 놓으면 날아버릴가 쥐면 부서질가 하며 소년을 아끼던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16살 나던 해에 차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이듬해에 다른 남자를 찾아 재가했다고 한다. 소년은 아버지의 피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살길을 찾아 재가해가는 어머니가 그렇게 미울수 없었다 한다. 좋지않은 감정을 가지고 시작한 이붓아버지와의 생활은 즐거울수가 없었다. 소년은 진종일 엄마 아빠를 골탕먹이는 일을 밥먹듯 했고 학습성적도 떨어져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수 없었다. 소년은 끝내 한차레의 무리싸움 끝에 붙잡혀 로동교양 1년을 받았고 지난 겨울에 만기되여 나와 지금은 할아버지며 삼촌네집을 전전한다고 했다. 어쩌면 가슴 무거운 드라마와도 같은 소년의 짧지만 기구한 인생! 너무나도 힘겹게 시작된 소년의 삶이 가슴아팠다. “아빠는 정말 좋은 분이였어요. 종래로 절 욕하지 않았고 무엇이나 리해하려고 했어요?” 그리움에 흠뻑 젖은 소년의 말이였다. “지금도 어머니가 미워요?” “미워요!” 재가를 해간 어머니와의 곬을 아직도 메우지 못하고 있는 소년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날은 소년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댄스며 힙합이며 하는 “청춘스타트”프로를 만들며 얻어들은 풍월을 들먹여 보였다. “아저씨, 절 너무 동정하지 마십시오. 세상풍상을 다겪은 저랍니다. 얼마든지 살아갈만합니다. 그저 이렇게 진짜루 가슴을 헤쳐놓고 말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고마울뿐입니다.” 소년이 되려 나를 위안했다.소년앞에서 너무나도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낯이 뜨거웠다 그렇다. 진정 내가 소년에게 해줄수있는것이 무엇일가? 적으나마 한가지가 있다면 소년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쌓였던 말을,소년이 그 누구에게도 터쳐놓고 싶지않았던 진심의 목소리를 조용히 들어 준것뿐이다. 진정 컴에서만이 이것이 가능한것이다. 밖에서 잔잔히 내리는 보슬비를 보노라니 또 다시 “희망소년”이 눈앞에 떠오른다. 아직은 한번도 얼굴을 마주 한적이 없는 소년, 어쩌면 영원히 만날수 없을지도 모르는 소년… 소년의 앞날에 무지개가 비끼기를 충심으로 기도 해본다. 소년소녀들의 영원한 뚱보아저씨로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싶다.
47    성이의 세계 댓글:  조회:1123  추천:0  2010-03-11
성이의 세계 여섯살배기 둘째아들 성이는 정말 못말리는 개구쟁이이다.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면 뭔가를 다하지 못한것 같은지 새록새록 엉뚱한 장난을 생각해내여 엄마를 애먹인다. 그날저녁에도 성이는 유치원에 다녀오자마자 가위를 찾아들고 이것저것 오리는 놀음을 했다. 빨간종이를 오려서는 엄마의 얼굴이라 하고 까만색종이를 오려서는 엄마의 눈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3원이나 주고 새로 산 수공종이가 몇장이나 허비되였다. “성이야, 너 그만하지못하겠니? 종이가 아깝지도 않아?”“엄마얼굴 만드는데 욕은 왜 하지? 매롱~ 우리엄마 깍쟁이!”성이는 제 엄마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안해는 성이를 향해 눈을 흘기며 버럭 소리질렀다. “그만하라면 그만 해! 웬 대꾸질이냐?”제 엄마가 정말 성난것을 본 성이는 입술을 한발이나 내밀고 실룩거리더니 수공종이를 모아서 봉투에 넣었다. 나는 이로써 오늘저녁 성이의 장난이 끝난줄로 알았다. 안해도 시름놓고 주방으로 나가 저녁밥을 짓기시작했다. 나도 한시름을 놓고 컴퓨터앞에 마주앉았다. 잠간 집안은 고요가 흐르는듯싶었다. 갑자기 성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아파라, 엄마, 나 죽는다~”안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듯 성이가 있는 거실로 달려나갔다. 성이의 손에 뻘건것이 묻어있는것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안해도 성이의 손을 와락 잡아쥐더니 호들갑을 떨었다.“피...피가 난다, 피가 나! 어디야?”“여기, 여기야.”성이가 빨간것이 묻은 손가락으로 신다리를 가리키며 울먹거렸다. 그제야 나와 안해는 진정하고 성이가 가리키는 신다리를 눈여겨보았다. 아래내복이 한군데 가위에 베여진 자리가 보였다.“왜 이랬어? 응, 왜 이랬냐구?”“여기에 땀이 나서 시원해지라구 창문을 냈어, 근데 힘이 너무 세서 내 다리두 베여졌다, 아파라. 잉~”생각해보니 또 아파났던지 성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안해는 베여진 성이의 아래내복을 벗기고 신다리에 약간 난 가위자리를 약솜으로 깨끗이 딱은후 약반창고를 붙여주었다.“이렇게 하면 안 아파져?”성이가 울음을 그치고 물었다.“그래, 이렇게 반창고를 붙이고 잠간 지나면 안 아파지거든. 반창고를 뜯지말아야 한다.”성이는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나와 안해는 마주보며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이렇게 한단락의 복새판이 정리되자 안해는 주방으로 나가고 나는 또 컴퓨터앞에 앉았다.집안은 또 고요가 흐르는듯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이의 목소리가 집안의 고요를 깨뜨리며 울렸다.“와~ 됐다. 내복이 안 아프게 됐다. 히히히히...” (내복이 안 아프게 됐다니?)나는 웬 일인가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성이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 성이는 아까 가위로 낸 내복구멍우에 약 반창고를 붙여놓고 앉아서 스스로도 장하다는듯 그렇게 소리치고 키득거리는것이였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가?)이따라 들어온 안해도 배를 끌어안고 웃기시작했다.“엄마 이램 됐지? 내복이도 안 아프겠지? 성이도 안 아프지롱~”“내복이 어떻게 아픈것을 안다구 이런짓을 했니?”“가위로 베니까 내 살이 아팠다. 그러니 내복도 아프겠지, 엄마는 나쁘다. 나만 반창고를 붙여주구, 내복이는 안 붙쳐주구...내복아, 서러워서 어쩌니? 그래, 내복아, 울지마! 내가 있잖니?”성이는 제법 내복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좀전에 애먹이던 개구쟁이 같지않게 정색한 성이의 모습을 보며 나와 안해는 또 눈길을 마주쳤다. 웃을수도 없었다.“그래, 성이야, 잘했다. 내복도 울지않을거다.”안해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성이의 품에 꼭 끌어안고 부드럽게 성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내복아, 울지마! 내가 있잖니? ” 엄마의 품에 머리를 꼭 묻고 두눈을 깜빡이는 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그의 천진한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렸고 그의 오색령롱한 채색의 세계를 그려보았다.
46    달콤한 미소 댓글:  조회:1254  추천:0  2010-03-11
달콤한 미소 나는 6시 40분이면 정류소에 나와 차를 기다리지만 렴치없는 고객들이 밀치고 닥치고 떠박지르며 차에 오르는바람에 언제나 한차례 또 한차례 뻐스를 놓지다가 겨우 7시에 떠나는 뻐스에 오르기가 일쑤이다.(참 질서가 말이 아니구나, 모두가 나만치만 자각적이라면은 이 정도가 아닐텐데...)제딴엔 문명스럽다고 자처해오는 나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것이 버릇이 되였다. 그렇듯 신고스레 차에 올라도 앉을자리는 영 나와 인연이 없는일, 하냥 짤막한 몸뚱이를 치살려서 손잡이를 잡아쥐고 차에 매달려간다.그때면 늘 내옆에 서있는 한 소년이 보인다. 나이는 17세 안팍, 호리호리한 키에 해맑은 얼굴, 그리고 부리부리한 쌍까풀눈, 귀여운 소년의 부드러운 체취가 물씬 풍긴다.소년은 언제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 두눈을 깜빡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있다. 뻐스안의 소음에는 전혀 감각이 없는듯한 모습은 어쩌면 도고해보이기까지 했다.나는 차츰 그 소년에 대해 주의를 가졌고 나아가서는 귀여워하기 시작했으며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듯이 하루라도 못보면 (웬 일일가?) 하는 일종의 근심까지 앞섰다.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원인이라면 나로서는 소년의 사색을 깨우고싶지 않아서였고 그 소년은 아예 왼곬으로 통하는 나의 심사를 알지못할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가 되랴! 나는 그에게 소리없는 속에서 믿음을 주었고 그처럼 귀여운 소년이 있는 것으로 하여 위안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어는 겸손하지 못하게도 저 같은 소년이라면 학교를 졸업한후에도 나처럼 머리한구석에 문명이라는 두 글자를 간직하고 있을것이라 제나름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날 그 사연은 소년보다 년장자라고 자처해오던 나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게 했다.그날도 여느날처럼 인파에 치달려 서시장역까지 오니 뜻밖에도 차안이 횡뎅그렁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이 내려섰다. 하여 나의 옆에도 소년의 옆에도 빈자리가 났다. 오래간만에 만난 기회였다. 나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내옆에 난 빈자리에 덜렁 들어앉았다. 차밖에서 올라오려고 밀치고 있는 고객들보다 선손을 쓴것이였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도톰한 입술울 꼭다물고 쌍가풀눈을 깜박이며 손잡이를 잡은채로 서있었다.(미처 생각이 돌지못해서일가?)나는 내일처럼 급하게 느껴지면서도 체면을 지키느라 “으흠”건가래를 떼는 것으로 소년에게 귀띔했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묵묵부동 도고한 자태였다.왜서일가?이상스러웠다.드디여 손님들이 오르기 시작했다.몸집이 실팍한 저 아주머니는 함께 밀치지말고 천천히 오르면 좋으련만... 점잖게 근시안경을 건 저 선생님은 앞에 몸집좋은 아주머니를 밀지날고 사양하면 좋으련만...)이렇게 속생각을 하고있을 때 할머니 한분이 어린애를 업고 내옆에 와섰다. 어쩌다 차려진 자리를 내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떻게 하랴! 나는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섰다. 할머니는 앉으면 어린애가 울어서 앉지않으련다고 했다.“고맙소, 고맙다니까...례절이 밝기루 조련치 않구만.”앉지않으면서도 아낌없는 찬사였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얼굴에 쑥스러운 웃음을 띄울 때 한 40대의 사나이가 어린애를 안고 내옆에 와 섰다.(나는“례절밝기로 조련찮은” 젊은이가 아닌가?) 나는 속으로 자신을 웃으며 또 일어나서 사나이에게 자리를 양도했다.“고맙소, 고마와요” 사나이도 그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얼굴이 붉어졌다. (멀지않은 거리를 아예 서서 갔더라면...)이렇게 생각하자 자리에 앉았다가 할머니께 자리를 양도한것도 또 앉았다가 사나이에게 자리를 내여준것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위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을 어쩔수없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옆에 있는 빈자리에 앉지않은 그 웅숭깊은 속궁리도 알것만 같았다. 말없는 속에서 진행된 소년과의 대화!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소년의 앞에서 년장자라고 자부해본 스스로가 하찮게만 느껴졌다. 나는 눈길을 소년에게 돌렸다. 나의 눈길은 소년의 부리부리한 눈길과 부딛쳤다. 그 시각 소년은 해맑은 얼굴에 담담히 피여난 달콤한 미소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웅숭깊은 소년의 진정이 차안에서 꽃으로 피는 듯 싶었다.나는 더없이 흥분되였다.선조들이 키워온 인정의 꽃을 고스란히 가꿔가는 이런 새 세대가 있는 한 우리 민족은 희망이 있는것이 아닌가?
45    소중한 만남 댓글:  조회:1226  추천:0  2010-03-11
소중한 만남 살다보면 정말 만나서 소중한 사람이 있다. 채홍간로인님과의 만남이 바로 나의 일생에서는 그저 스칠수 없이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 라고 봐야할것이다. 지난 7월 30일 오후 1시경, 심양주재 한국령사관에서 출근하기를 기다리며 령사관 옆의 커 피숍에 앉아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한 랭커피를 홀짝이며 제발 비자가 실수없이 나와줍 시사하고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홀연 잘 생긴 남자청년 둘이 하얀 염소수염을 기른 로인 한분을 모시고 들어왔다. 로인의 차림새는 좀 초라해보였는데 안에는 때가 올라 거므그레해진 흰색 렌닝그를 입고 그 우에는 진회색의 팔이 긴 셔츠를 입었는데 단추도 채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금방 해지기 시작한 국방색 운동화를 신었었다. 함께 들어온 젊은이들은 로인을 깎듯이 자리에 모시더니 음료를 사다가 권하느라고 분주했다. “목이 마르지 않수다. 이쯤이야 아무겄도 아니쥬!”로인은 손사래를 치며 젊은이들이 사온 음료병을 사양하다가 끝내는 받아서 제법 세련되게 쪼르륵-하고 빨대를 빠는것이였다. ‘무슨 로인일가?’ 직업적 민감성이랄가 저도몰래 그 로인에게로 호기심이 동했다. 나는 홀짝이다 만 랭커피잔을 손에 들고 내가 앉은 걸상을 그들 쪽으로 당겨갔다. “벌써 나온지 4년철이웨다. 4년철이지유...”로인은 련속 몇번이나 4년을 들먹였다. ‘혹시 자식들에게 괄시받고 집에서 나온 불행한 로인이 아닐가?’내가 이렇게 속구구를 하고 있을 때 함께 들어온 미소가 예쁜 청년이 물었다. “어르신, 무엇 때문에 이 길을 택하게 되였는가요?‘ “몸은 늙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할수있다는걸 후대들에게 보여줘야지요. 글구 자기 자신에게 도전도 해보구요.“로인이 이야기 하는사이 거피숍에 있던 다른 상의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어 네 한마디 내 한마디 이야기를 께껴갔다. 흑룡강성 할빈시 교구 농촌에서 한 때는 촌지서 사업까지 해본적이 있다는 채홍간로인은 올해 75세이다. 1998년, 일생을 의지해오던 로친이 세상을 뜨자 과묵해졌던 채로인은 그해 11월에 문뜩 삼륜차를 몰고 세계일주를 해보고싶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해 로인의 나이 71세, 채로인이 물러선후 역시 그촌에서 촌지서 사업을 하는 큰아들은 채로인을 극구 반대해 나섰다. 만년에 조용히 복을 누리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채로인의 곧은 결심은 꺾을수 없었다. 아직은 움직일수 있을 때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해놓고 싶었던것이다. “저는 대가정을 가지고 있지요. 아들 둘에 딸 하나. 거기다 손자 다섯에 손녀 하나, 아래에는 또 증손자까지 4대동당이웨다. 헌데 손자 손녀들이 문제지유. 고생이란 뭔지 모른다오.” 17세에 팔로군에 참가했던 채로인은 퇴대후 줄곳 할빈시교구에 살면서 일심정력으로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하는데 한생을 받치신 분이였다. 너무나도 연약하게 자라나는 후세대들을 가슴아프게 생각해오던 채로인은 나이 때문에 손에서 일을 놓게되자 자기의 실제 행동으로 후세대들에게 어떻게 고생을 이겨 나가는가를 보여주려했던것이다. 1998년 11월 27일, 채로인은 삼륜차를 몰고 할빈에서 장춘으로 떠났다. 추위가 터지기 시작한 동북의 11월 말, 71세의 나이로 삼륜차를 밟으며 떠난 장춘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들 상상할수 있을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채로인의 로정은 오늘까지 끊기지 않고 곳곳에서 기적을 쌓고 있다. 이 4년래 채로인은 일평생 아껴먹고 아껴쓰며 남겨놓은 3만여원의 저축을 몽땅 써버렸다. 그리고 경비를 절약하기위하여 삼륜차에 나무판대기와 이불을 싣고다니며 해가지면 그냥 삼륜차를 세우고 그 우에서 밤을 새우군한다. 그사이 채로인은 6차례나 삼륜차바퀴를 바꾸었고 2개의 안장을 갈았으며 3개의 디딤판을 새로 안장했다. 그리고 서장, 귀주, 해남, 대만, 향항 오문 등 30여개 성 시와 조선, 로씨아, 웰남, 인도 등 나라를 포함하여 7만 5천 ㎞의 길에다 발자욱을 남기셨다. 2000년 12월 서녕으로부터 커얼무까지의 로정은 령하 35도씨에 달하는 저온에서 달렸다 한다. “오늘 오후 4시면 미국령사관에서 미국행 비자가 나와요. 4시까지 기다렸다 비자를 받아 가지고 상해로 떠나야지요. 8-9일 정도면 닿을수 있을겁니다.“ 여생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채로인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미국령사관에서도 로인 의 사적이 실린 신문 몇장을 보고 흔쾌히 로인의 비자신청을 접수했던것이다. 로인은 심양에서 삼륜차를 몰고 상해에 도착한후 상해에서 미국까지는 항운회사에서 면비로 제공하는 려객선에 앉아 미국으로 향발할 예산이라고 했다. “아직도 8년을 예산하고 있습니다. 8년사이에 미국, 캐나다 등 아메리카 여러곳들을 돌면서 인간의 잠재력이 얼마나 크다는것을 세인들에게 보여줘야하지요. 8년후에도 죽지않고 살아있다면 그때가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구요.” 이야기를 하시는 채로인의 얼굴은 홍조로하여 불깃불깃 해보였고 가끔씩 가다 흔드는 거칠 은 손에서는 인생의 목덜미를 거머쥐고 떳떳이 여생을 살아가고있는 로인의 슬기와 용맹이 보여오는듯 싶었다. “세상을 두루 돌면서 느꼈지요.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물직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또 여러가지로 방조를 주었지요.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을 너무 어둡게보는게 흠이죠. 나가보면 다 알아요. 이 세상이 얼마나 살맛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채로인의 목소리에서는 진정 생활에 대한 애착이 철철 흘러 넘쳤고 주름살 많은 그이의 얼굴에서는 인생의 주인으로 떳떳이 살아가는 승리자의 당당함 이 력력히 새여나왔다. 나는 넋을 잃고 채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채로인의 말씀은 내가 인생을 사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박한 지침서이고 당당한 채로인의 모습은 내 인생의 드팀없는 지침돌로 되여 내곁을 굳건히 지켜줄것만 같았다. “오래오래 멋있게 달려주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은 로인님을 정말 수요하고 있습니다.”나는 로인의 손을 굳게잡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드렸다. “이 늙은것이 수요된다니 정말 감사하이. 그말이 고마와서라도 힘을 내야지.”로인은 소탈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로인의 호방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났다. 어쩌면 로인과의 만남은 불평 많은 내 인생을 다시 조명하라고 내려준 숙명적인 배치가 아닐가 하는 야릇한 생각까지도 든다. 그렇다. 살아가면서 이처럼 소중한 만남이 있은것을 나는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채로인처럼 멋진 선배님들의 손길아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하여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44    소중한 추억 댓글:  조회:1193  추천:0  2010-03-11
소중한 추억 오늘 블로그에 들러보니 얼마전에 올린 글에 리플이 달려있었다. “담배쥐골”이라는 아이디로 쓰여진 짧은 글이였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니 첫눈에 글임자가 누구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글의 주인공은 20년도 넘는 그 때, 함께 인생을 두고 고민하고 젊을 두고 정열에 뜰떠있던 문학친구 장학규씨였다. 그도 험난한 인생살이를 무지도 하며 이곳저곳 떠돌이인생을 살다가 몇년전에 아름다운 도시 항주에 오붓한 보금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인편에 들어서 알고있다. 학규씨는 우리가 흑룡강성 해림의 홍성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문학공부를 하고있을 때 함께 했던 문학도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홍성촌에서 가까운 마을에 살았는데 농사일을 하면서 공부하러 다녔다. 학교로 오는 길에 소를 들에 매놓았다가는 돌아갈 때 고삐를 풀어서 몰고 집으로 가군했다. 나보다 한살 이상인 그는 문학에 집착하리만침 강한 사랑을 .보이고있었다. 우리는 함께 문학도 이야기하고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문화건달”이라고 칭하며 인생에 대한 고독과 방황을 앓고있었다. 학교설립 1돐을 맞으며 우리는 기념집 “새벽길”을 편집했다. 학규씨와 나도 이 기념집 편집조에서 함께 뛰였다. 컴퓨터가 귀한 때라 작품은 강판글로 써서 프린트를 한것으로 생각된다. “목단강대학문학반”이라 알고 입학하고 보니 사실은 연변대학 교수들이 와서 연변대학자습반 시험지도를 하는 보도반 정도나 되는듯싶었다. 우리는 학교측과 단판도 하고 불평도 부리면서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연변에서 왔던 학원들이 하나 둘, 연변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해방군의 신분으로 공부하러 갔었기에 어쩔수없이 홍성에 남아 자습시험공부를 할수밖에 없었다. 2년반이라는 긴긴 고역을 끝내고 끝내 첫 패로 연변대학 자습반 졸업증서를 받아들게 되였다. 정말이지 이 세상의 복은 혼자서 안아버린듯한 기분이였다. 그때가 아마 1987년 늦가을이였을것이다. 그렇게 갈라져서 졸업 10돐 기념모임 땐가 학규씨를 한번 보고는 오늘까지 만나지못했다. 너무나 좋아서 시작한것이 문학이고 문학의 나래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기자로 뛸수있는 인생의 기회를 잡았다. 문학이란 갈수록 험산이라더니 요즘와서 정말 점점 힘에 부쳐오는 자신을 발견하게된다. 어느날 문뜩 가슴속 저 밑자락에 깔아두고있던 추억 한쪼각을 꺼내들고 가슴을 들먹이는것이 이렇게 좋은것을 보니 어쩜 인젠 나도 추억으로 살아가기에 족한 나이가 아닌가 생각하며 웃는다. 문뜩 살아간다는게 참 허무하구나! 하는생각이 들기도 하다. 구경 내가 어디까지 왔고, 또 내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친구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감상에 젖어 옛 추억을 들먹거렸더니 친구들이 나를 보고 생쇼를 한다며 이게 바로 40대에 맞이하는 두번째 사춘기의 표징이란다. 한 쪼각의 소중한 추억과 함께 40대라는 이 사춘기를 무사히 넘겨야겠다.
43    그 날의 그 순간 댓글:  조회:1134  추천:0  2010-03-11
그 날의 그 순간 도무지 참을것같지않던 격한 감정도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너무했잖아?)하는 후회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래서 (아니야, 응당한거지...)하고 자신을 달래보려고했지만 사나이의 얼굴에 맺혔던 이슬같은 땀방울과 물통을 들 때 이마에 불끈 솟던 굵은 피줄이 눈에 삼삼 감겨들어 가슴이 점점 찜찜해왔다. (그래, 오늘은 정말 재수에 옴붙은 날이야, 그 자식들만 아니여두...) 애써 잊으려던 그일이 또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며칠전부터 컴퓨터가 인터넷에 련결이 잘 안되고 가끔 련결선이 떨어지기도 해서 몇번 다닌적이 있는 컴퓨터봉사부에 찾아갔었다. 기술원은 급한 일이있어 다른데로 나가고 견습공이 자리에 있었다. 간단한 고장같아서 견습공에게 컴퓨터의 상태를 말하자 자기 재간으로 얼마든지 고칠수있다며 따라나서는것이였다. (아무면 뭘해? 컴퓨터만 고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견습공을 이끌고 집으로 와서 컴퓨터를 맡겨버렸다. 한참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부산을 떨던 견습공은 부품이 없어서 고칠수없다는것이다. 하여 어느상태냐면서 컴퓨터를 살펴보니 먼저 설치되였던 프로그램들이 모두 삭제되여버렸다. 삽시에 울화통이 터져 컴퓨터를 원 상태로라도 복구해놓으라고 들이대자 자기로서는 할 방법이 없다는것이다. 말하는 견습공의 얼굴은 사색이 되여버렸고 눈굽이 젖어드는것이 당금 울음이라도 터치기 직전이였다. (참, 세상에 일이 안될라니...) 생각같아서는 한대 쥐여박기라도 하고싶었지만 우거지상이 된 견습공을 보니 마음이 여리여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기술원에게 당하는 견습공을 보는듯싶고 이 일을 계기로 일자리라도 떼우면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타격일가? 하는 생각을 하니 차마 더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에라 선심을 쓰는셈치자!) 이렇게 자신을 달래며 올 때의 약속대로 봉사비 20원을 견습공의 손에 쥐여주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견습공은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혔다.견습공을 보낸후 한쯤 지나서 기술원에게 핸드폰으로 견습공이 못믿어워서 그냥 보냈으니 시간을 내서 한번와보라고 련계를 했다. 헌데 기술원의 대답이 명답이다. 자기의 견습공이 봉사비까지 받아가지고와서 제대로 되는것을 보았다는데 또 내가 어디를 잘못 조작했다는것이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그 말을 듣자 정말 억이막혀 뭐라고 할말을 찾을수없었다. (그래, 내가 바보야, 바보지.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내가 바보지...) 쓰거워지는 입을 다시며 눈을 지긋이 감고 분을 삭이고 있을 때 홀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받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있다가 전화벨이 너무도 근질기에 울려대서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점심에 물을 불렀습둥?” 무뚝뚝한 나그네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네!. 근데요.” “제가 잘못해서 비싼물을 보냈씀다. 그러니 표 한장을 더 주겠습니까?” 이건 또 홍두깨같이 무슨 소리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기의 불찰로 한통에 15원짜리 물을 송달했으니 내가 물표를 한장 더 주어야 값이 맞는다는것이였다.애써 사그리려던 분노가 또 터지고 말았다. “당신이 물을 잘못 송달했으면 제대로 된 물을 가지고 와서 바꿔어가는것이 도리 아네요?” “40근짜리 물을 메고 6층까지 올라가자니 너무 힘들어서 그래꾸마.” “이보세요. 댁이 6층까지 올라오는건 힘들구 내가 물표 한장을 버는건 그렇게 쉬운줄알아요? 나 한통에 15원짜리 물을 먹을 신세가 못되니 제대로 된 물을 가지고 와서 바꿔 가세요”> 말을 마친 나는 수화기를 활 놓아버리고 터지는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렸다.그렇게 하기를 십여분 후,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후닥닥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물통을 멘 40대의 사나이가 문밖에 서있었다. 색바랜 곤색잠바를 입은 사나이는 추위 때문인지 얼굴색이 검푸르고 입술이 갈라터져있었다. “내 불찰로 그만, 사실 이 물인데...” 사나이는 뒤말을 얼버무리였다. 초췌한 사나이의 얼굴을 마주하자 차마 뭐라고 입을 뗄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받아두었던 물통을 들어내다 사나이 앞에 놓아주었다. 사나이는 물통을 들어 힘들게 어깨에 올렸다. 상체에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런지 이마에 굵은 피줄이 불뚝불뚝 일어나 있었다. “후에두 자주 불러 줍소.” 말을 마친 사나이는 층계를 따라 뚜벅뚜벅 힘겹게 발을 옮겨놓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뭐라고 할말을 찾지못하고 층계를 내리는 사나이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내가 웬일이지, 나에게 그래 <잘못 가져오면 뭐랍니까?. 덕분에비싼물을 맛보게됐군요.> 하고 웃으며 물표 한장을 더 뿌려줄 흉금도 없는걸가? 전에 컴퓨터견습공에 대한 믿음이 깨여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처리했을가... ) 이런 생각이 들자 괜히 얼굴에 열이가며 누군가의 시험에 들어서 추태를 보인것같은 불안감에 가슴이 침침해났다. 그리고 컴퓨터봉사부의 견습공은 거짓말을 하는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또 물나르는 사나이는 40근짜리 물통을 메고 6층을 오르며 무슨 생각을 굴렸을가가 알고싶어졌다. 그렇다. 사람들은 왕왕 베푼만큼 받아오는데 습관이 돼왔고 또 그 베품에 실망을 느꼈을 때는 대방을 탓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그날의 그 순간에 그는 어째서 그렇게 처리할수밖에 없었을가를 다시 한번 짚어본다면 우리의 생활속에는 용서못할 죄가 없을것이고 또 뉘우치지못할 잘못이 없을것이다.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한발 물러서서 주변을 돌이키는 여유가 부족한것이고 또 당신이 어떤 시선으로 일을 보는가 하는것이다. 좀 더 넓게 생활을 포옹하는 방법을 배우자. 컴퓨터봉사부의 그 견습공이 이 밤을 편히 잘수있기를 빈다. 그리고 힘겹게 층계를 내리던 사나이의 뒤모습이 눈앞에 선히 보여오는듯싶다.
42    그날 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댓글:  조회:1289  추천:0  2010-03-11
그날 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령사관에서 비자를 맞은 려권을 받아쥐였을 때는 저녁 7시 10분경이였다. 연길로가는 기차가 저녁 6시반에 있었으니 그날로 떠나기는 나무아미 타불이요, 령사관에서의 너무나도 긴 기다림에 지쳐버린 나는 비자를 받은 기쁨도 심드렁하니 팽개친채 령사관 부근의 호텔로 찾아들어갔다. 카운터에 다가가자 접대원 아가씨가 곱게 웃으며 “주숙을 하시겠습니까? 표준방은 220원입니다.”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순간 등뒤에서 식은 땀이 쫙 돋는듯 싶었다. 자주 외출은하지만 누가 공자로 접대를 하지 않고는 제 호주머니를 털어서 하루밤에 220원짜리 방에들수있다고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나였었다. 급한 와중에도 꾀는 생겨서 한족호텔에온돌방이 없을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온돌방이 있습니까? 우리 조선족은 온돌방에 습관돼서...” 하고 얼버무려버렸다.카운터아가씨는 매우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미안합니다. 여긴 온돌방이 없는데요, 꼭 수요되신다면 서탑가로 가세요, 그곳엔 한국분들이 차린 호텔이 많아요.” 하고 깎듯이 이야기 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얼버무리며 쫓기듯 그 호텔에서 나와버렸다. (어디로 가지?) 잠간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내 수준에 부담이 없는 심양북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생각할수록 하루 밤에 220원이라는 돈을 부담없이 뿌릴수 없는 자신이 미워보였고 처량해보였다.아까 호텔에서 나올때 제 딴에는 꾀를 부려 당당한 모양이라도 보였지만 카운터 아가씨가내 심사를 알아내지 않았을가고 괜히 근심도 해보았다. 정말이지 기분이 엉망이 돼버렸다.심양북역에 도착한 나는 하루밤에 70원씩하는 단칸방을 맡아놓고 가방을 던진 다음 심양북역 2층에 있는 국영 편의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름때에 주글주글 해진 흰색 앞치마를 두른 뚱뚱한 한족아줌마가 누르스름하고 길쭉한 앞이를 들어내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셨어요?” 나도 아는체를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줌마는 저가락통에서 일회용저가락을 쑥뽑아 나에게 넘겨주며 “오늘도 물만두 반근에 맥주 한병인가요?” 하고 물어왔다. 지난번 비자신청 건으로 심양에 왔을 때에도 몇번 그 아줌마의 손에서 물만두 반근에 맥주한병을 받아먹은적이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아줌마가 도전적으로 먼저 그렇게 물어오자 어쩐지 배씸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맥주 안주를 한 접시 올려요.” 하고 큰 소리를 쳤다. 아줌마는 소고기졸임에 오이를 섞어서 만든 랭채 한접시를 가져다 주며 자기가 직접 만든것이여서 맛날것이라고 부산을 떨었다. 나는 묵묵히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꾀죄죄한 차림의 민공들이 한사발에 4원씩 하는 밀가루국수를 먹으며 그처럼 구속없이 낄낄거리는 소리를 귀동냥했다. 등을 내쪽에 돌리고 앉은 친구는 하북성 농촌에서 심양에 들어와 시공대에서 미장공으로일했다고 한다. 근데 북경의 어느 시공대에서 일하는 고향사람이 북경에 가면 돈을 더 벌수있다고 해서 이번에 친구와 함께 북경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25살에 나는 그는올해까지 7년을 시공대에서 전전하는데 겨울까지면 장가갈 때 쓸 돈을 거의 장만한다고으쓱해 했다.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맞으하고 앉은 친구도 돈을 벌어 새 집을 한채 짓겠다며 들떠있었다. 며칠째나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알길없는 그들의 머리칼은 먼지로 하여 뿌옇고 부시시했고 얼굴도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신심가득히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만은 누구못지않게 명랑하고 힘차있었다. 순간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피뜩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엷은 호주머니를 숨기며 날로 심해가는 경쟁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를 살펴가는 자신의 삶이 힘겹고 염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책에선가 보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런 말이 떠올랐다. 허영심을 버렸을 때 인간은 비로서 행복해진다.” 하지만 진짜로 허영심을 버린다는것이 얼마나 힘들다는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사람이란 원체 요사한 동물이여서 견물생심이라는것이 생긴다. 자가용을 몰고다니는 동료들을 보면 괜히 기분이 찜찜해지고 멋진 아빠트에서 사는 친구들을 봐도 괜히 심사가 삐뚤어지는것도 그것때문이리라.그래서 혼자 출장을 나올 때에는 얇디얇은 자신의 호주머니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남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싸구려 음식점이나 려관을 찾아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은 우월한듯한 모습을 보이는것으로 삐뚤어진 자신의허영심을 채우는것이다. 그러면서 또 (너는 원래 량반은 아니였어, 이만해도 괜찮은것이야...) 하고 아Q의 자아승리법으로 자신을 달래보기도 한다. 정말이지 우리 386세대들 치고 누가 고생을 겪어보지못했겠냐만은 농촌에서 병약한 부모님의 손길아래 5남매가 어울려 산 우리집 살림은 너무나도 가난했었다. 생산대에서 모내기를 끝내고 집체로 국수 먹으러 갈 때에도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주는 돈 1원을 타쓰려고 노상 일이 있다며 국수 잡수러 가지않던 엄마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도 있다. 원체 없이 시작한 살림에 설상가상으로 이러저러한 가정풍파를 겪느라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남긴것 하나없이 그달 벌어 그달을 사는 청빈한 샐러리맨 신세이다. 하지만 머리만은잔뜩 약아져버려서 남들 앞에서 한번 통쾌하게 “나 아무것도 없소.” 하고 말하기는 죽기보다도 싫다. 와- 잘먹었다. 래일 아침에는 북경에 도착할수 있겠지?” 그래, 그곳에서 정말 돈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민공들은 손으로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사라져가는 민공들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4원짜리 밀가루 국수 한사발에 만족을 할수 있는 그들,그러면서도 기죽지않고 자기가 바라는 목표를 향해 꿋꿋이 갈수있는 그들이 커보였다.비록 그 목표가 돈을 벌어 장가를 가는것이래도 좋고 새집을 한채 짓는것이래도 좋다. 하냥 사람들에게 아니꼬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기죽지않고 떳떳이 설수있는 허영심을 던져버린 그들의 소박한 삶이 진정 행복한것이 아닐가? 행복이란 기름진것이여서 잡으려고 하면 하냥 손에서 빠져버린다고한다. 때문에 행복은 잡으려고 하지말고 찾으려고 해야함이 타당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누가 나보다 더 행복한가를 살피기전에 내가 누구보다 무엇이 더 행복한가를 찾아봐야 할것이다... 그날 밤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병굽에 얼마남지 않은 맥주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열심히 마시고 한족아줌마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랭채를 한 저가락 집어 맛있게 씹었다. 실면 때문에 근심스럽던 그 밤을 달콤하게 잘수있을것만 같은 신심이 생겼다...
41    당신의 냄새 댓글:  조회:1214  추천:0  2010-03-11
당신의 냄새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노래처럼 듣는 안해의 “아이고타령”을 잔치판에 흐르는 소리만침이나 당연한것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일이 있어 늦어진다구.”하고 전화하면 안해도 “술 적게마셔요.”하고 막내아들 어루듯 한마디 하면 고작이였다. 이만침 나는 나의 가정생활이 물에 물탄듯 내내 미지근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어떤 격정도 그 어떤 원망도 없이 그저 이렇게 보내는것이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평범함 속에서 어느 날, 나는 작은 감동을 받은적이 있다. 석달에 걸친 로신문학원에서의 학습이 바야흐르 끝나가던 지난 8월초, 안해가 말미를 맡고 북경으로 들어오겠다고 기별이 왔다. 주숙이라도 면비로 할수 있는 기회라 북경구경 하고싶으면 들어오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가 안해가 큼직한 려행용가방을 끌고 북경역에 나타났다. 홈에 마중을 나간 나를 보고 안해가 “힘든데 여기까지 왜 들어왔습니까?”하고 역시 판에 박은듯 한마디 했다. 나도 그저 벙긋 웃는것으로 대답을 가름하며 빨리나가자고 재촉했다. 그날 밤, 침대에 올라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안해가 입을 열었다. “전번 날, 어머니가 글쎄 당신의 베개를 씻어버리지 않았겠습니까?” “돌아갈 때가 되니 사위 맞을 준비를 했나 봐.” 언제나 딸을 위해 뭔가를 해주지 못해 애쓰시는 장모님을 그려보며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어찌나 아쉽던지...” “아쉽다니? 뭐가?” 안해의 뜻밖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라며 다잡아 물었다. “누군 뭐 씻을 줄을 몰라서 안씻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베개에서 풍기는 당신의 냄새를 맡으면 그런대로 잠이 잘 오기에 당신이 올 때까지 그 냄새를 남겨두자구 안 씻고있었는데....” 안해는 역시 담담하게 말하고있었다. “아하, 살다보니 이런 말도 다 듣네!” 나는 너스레를 떨며 허허허 웃었다. 안해는 곱게 눈을 흘기며 나의 어깨를 꼬집고는 등을 돌려버렸다. 그 밤이 있은 후로 나는 가끔 나에게 작은 감동을 주던 안해의 그 말을 떠올리군 한다. 안해를 잠들게 했다는 “당신의 냄새”란 과연 어떤것일가? 말없는 속에서 “당신의 냄새”를 찾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안해도 우리 가정생활이 물에 물탄듯 내내 미지근하다 생각하고있을가? 그렇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번다한 일상만 탓하면서 나를 잠들게 하는 “당신의 냄새”를 찾기에 퍼그나 린색한것 같다. 좀 더 느긋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를 잠들게 하는 “당신의 냄새”를 찾아야겠다.
40    후회는 없다 댓글:  조회:1270  추천:1  2010-03-11
후회는 없다 그 며칠 나는 내내 불안과 죄스러움으로 마음을 조였다. 어쩐지 사나이로서의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보이고 나약해보였다. 나는 큰 결심을 내리고 련장을 찾았다. 련장은 사뭇 놀라는 표정이였다. 하기야 힘든 시공로동에 지쳐서 어떤 낌새를 봐서라도 제일선에서 튀려는 전사들이 많은 판국에 련대에서도 제일 “노란자위”로 생각하는 취사반에서 나오겠다는 나의 제의가 련장을 놀래웠던 모양이였다 “일선에서 뛰고싶습니다. 입대하여 취사병으로 있으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당돌한 나의 말에 련장은 연구할 여지도 없다는듯이 딱 잘라서 말했다. “다른 생각을 말구 그곳에서 잘 해봐!” 하지만 련장의 그 한마디에 물러서려고 말을 꺼낸 내가 아니였다. “일선에서 힘들어하는 전우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친구들을 시키시죠. 어쨌든 전 못하겠습니다.” 련장은 역시 건성으로 “그럼 취사원은 힘들지 않다는거야?” 라고 한마디한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널 내놓구 누가 또 배추김치를 5천근씩 담글수 있어?”하고 정색해서 말했다. 련장의 생각밖의 반격에 나는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순간 어쩔수 없이 치뤘던 그 배추김치사건이 또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것은 1983년 1월,석달간의 신병훈련이 막바지에 오른 어느날이였다. 금방 휴식종소리가 울려 눈우에 털썩 주저앉아 황소숨을 몰아쉬고있는데 반장이 나를 찾았다. 련장이 나를 부른다는것이였다. (련장이 나를 찾다니?) 저으기 두려워났다. 아직 별하나 달지 못한 신병에게 있어서 련장의 부름은 정말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나는 련장을 찾아가며 내내 내가 무슨 잘못을 한것이나 아닐가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그래도 딱히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되려 그즈음 댜렬훈련에서 성적이 좋아 패장님의 구두표양을 두어번 받은적이 있던 때였다. (에라, 될대로 되라지!) 나는 배짱 하나로 련장의 사무실문을 노크했다. 련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안도의 숨이 나왔다. 소나기는 올것같지 않았던것이다. “절 불렀습니까?” 나는 애써 가슴을 쑥 내밀어 보이며 짤막하게 말했다. “그래 훈련이 힘들지?”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더 힘든 일을 시켜야겠네.” 련장께서 역시 시무룩히 웃음을 먹음고 말씀했다. 나는 군ㄱ디가 가득들어 더 가슴을 앞으로 뻗히며 대답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해내겠습니다.” “너 배추김치를 잘 먹지?” “네?” 뜻밖의 물음에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이윽고 꿀꺽 군침을 삼켰다. 그렇잖아도 입대하여 내내 돼지고기비게를 통배추에 볶아먹어 밥맛을 잃던 때라 배추김치소리를 들으니 진정 습관은 못속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뜩 뇌리를 쳤다. “그럼 배추김치를 담궈봐!” 련장께서 명령조로 말씀했다. “제가요?” 나는 힘칫 놀라며 되물었다. “안돼?” “전 담글줄 모르는데요.” “집에서 엄마가 담그는걸 봤을게 아니야?! 담궈!” 상론할 여지도 없었다. “네, 해보겠습니다.” 나는 끝내 울상이 되여 련장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 일을 엌떻게 수습하면 좋을가?) 도무지 궁리가 떠오르지않았다.정말이지 지금처럼 통신이 편리했으면 전화로 형수님께 도움이라도 청하련만 그때는 정말 가슴이 바질바질 타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날 저녁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보니 마당에 통배추무지가 산을 이루고있었다. “최동일, 앞으로 나왔!” 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서리맞은 배추잎이 되여 앞으로 나갔다. “조선족의 배추김치는 맛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맛을 봐야죠. 내 말인즉 우리련대에서도 배추김치를 담그자 이겁니다. 조선족전우 최동일동무가 총책임을 맡겠으니 신병, 로병 구분 말고 모두들 최동일동무의 지휘에 따르시오.” 불은 이미 발등에 떨어진것이였다. (에라, 해보자, 잘못되면 볶아서 먹으라지.) 이런 배짱이 생기자 무서움도 조금 사그라드는것 같았다. 나는 전에 엄마의 솜씨를 눈동냥하던 때를 상기하며 한보한보 일을 진척시켜나갔다. 사람이 많으니 통배추 5천근을 다듬는것도 잠간새였다. 나는 잘 다듬은 통배추를 큰 오지독에 넣고 통소금을 듬뿍 뿌린후 통배추가 잠길수 있을 때까지 물을 붓고 우에 작은 물통에 물을 담아 짓눌러놓았다. 엄마의 말로하면 초절이를 한것이였다. 그날부터 짬짬이 시간을 타 전우들을 마늘까기에 동원했다. 까놓은 마늘만 해도 큰 대야로 두개나 되였다. 세번째날 오후 나는 취사원들과 함께 마늘을 찧고 거기에 고추가루며 맛내기며 다진 사과즙이며 사탕가루며를 넣어 양념을 만들었다. 취사반장이 “따료大料-회향)”는 넣지 않는가고 물어서 그것도 두어줌 뿌려넣었다. 그날밤, 우리 련대의 68명 사나이들은 식당에서 배추김치를 번지는 일에 신이 났다. 나는 꼭 열흘후부터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신비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몇몇 미식가들은 첫날부터 련장이나 취사반장의 눈을 피해 우에 덮어놓은 떡잎을 뜯어먹고는 매워서 실실 거리면서도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덕으로 나의 걸작-배추김치는 독을 열기도전에 맛있다는 소문이 련대는 물론 전영에 퍼져나갔다. 열흘이 차던 날 저녁, 우리 련대에서는 배추김치잔치가 있었고 소문을 들은 영장과 교도원도 동참하여 배추김치값을 올려주었다. 그 겨울, 배추김치는 전우들이 주말이나 되여야 맛을 보는 우리 련대의 명물로 되였다. 덕분에 나는 신병훈련이 끝나기바쁘게 팔자에도 없는 취사원으로 발탁되였다. 그럭저럭 반년이 지났다. 그새 우리 련대는 료녕성 안산시에 가서 액화가스도관시공임무를 집행하게 되였다. 그 힘든 시공중에서도 나는 취사원이라는 직업때문에 그때에는 흔치 않는 호강도 해보았고 식사때는 밥주걱을 쥔 우세도 떨어보았다. 하지만 내내 마음이 편한것만은 아니였다. 힘든 로동을 하고 돌아온 전우들의 지친 모습을 대하면서 어쩐지 죄의식이 들었고 남아로서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정말 한번만 봐주십시오. 꼭 일선에 내려가고싶습니다.” 강경한 나의 요구에 련장은 괜히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좀은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 후회 안할 자신이 있어?” “있습니다.” 나는 온힘을 다해 확실하게 대답했다 이틀후 나는 3패 2반에 내려갔고 전우들과 함께 액화가스도관시공을 하게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떤 일은 오기로만 해낼수 없다는것을 느끼게되였다. 1.65메터도 될가말가한 키에 120근도 안되는 몸으로 하루에 너비50센치메터, 깊이 1.70메터나 되게 땅을 20메터씩 파내려간다는것은 정말 너무나도 힘에 부치는 일이였다. 그때에야 나는 내가 누구이며 정년 이 세상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였다. (공부하자. 그리고 기술을 배우자. 내가 나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바로 공부하는것이고 내가 이 세상을 위해 할수있는 일 또한 공부하는 것이다.) 배추김치 담그기가 울며 겨자먹기로 배짱 하나에 시작한것이였다면 하지 못한 공부를 마저해야겠다는 결심은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젊음의 호소였다. 그 뒤로 나는 아무리 지쳤더라도 하루에 책 50페지 읽기와 한어단어 20개를 암송하기는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하여 시요, 수필이요, 소설이요, 닥치는대로 써보았다. 련대에서 아홉시에 전등을 끈후이면 복도에 나와 책을 보았다. 그렇게 스스로 정한 임무를 오나수하고 나면 11시가 될 때도 있었고 12시가 될 때도 있었다. 아침이면 또 기상시간 먼저 5시에 일어나 련대의 마당도 쓸ㄹ고 취사반을 방조해 남새다듬질도 해주었다. 그새 나의 수필이며 벽소설이며 하는것들이 잡지와 신문에 몇편 발표되였다. 1984년 3월 18일, 안산의 하늘은 여전히 맵짠 바람을 쏟아내고있었다. 그날도 우리련대는 5.1대로 부근에서 액화가스도관시공을 했다. 퇴근시간을 30분정도 앞두고 임무를 완성한 나는 밖에 있는 전우를 불렀다. 1.70메터의 깊이로 판 도관구뎅이에서 저절로는 나갈수 없어 전우들의 도움을 청해야 했던것이다. 전우의 손에 끌려 밖으로 나온 나는 거뜬한 심정으로 외투를 벗어놓았던 곳으로 갔다. 순간 나는 굳어지고 말았다. 오후 일을 시작하면서 벗어놓았던 군용양털외투가 없어졌던것이다. 사처로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소문은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전 련대에 퍼졌다. 엄중경고처분을 받으리라는 공론도 있었다. 군용외투를 분실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나도 기막히고 억울했다. (얼마나 열심히 해볼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다니…) 하지만 치솟아올랐던 격동이 사그라지자 또다시 오기가 생겼다. (경고처분? 줄테면 주라지! 외투값? 배상하면 될거아니야!) 그날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도 련지도부에서는 다른 동정이 없었다. 저녁을 먹는둥마는둥 하고 숙소로 돌아왔지만 도무지 진정을 할수가 없었다. 호주머니를 뒤 지니 생활비로 나온 돈을 모아둔것이 60여원 있었다. 외투값이 120원이라니 절반값밖에 안되였다. 나는 그 돈을 손에 들고 련장의 속소문을 노크했다. 련장과 지도원과 사무장이 뭔가를 토론하고있었다. “오늘 제가 큰 착오를 졌습니다. 외투관리를 잘못해서 잃어버렸습니다. 처분을 주십시오. 외투값은 배상하겠습니다. 잠시 돈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후에 생활비에서 떼내 물겠습니다. ” 단숨에 하고싶었던 말을 뱉어내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련도들의 눈길이 서로 오가는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잠간후 련장이 입을 열었다. “됐어. 돈은 가지구 가! 처리결과는 래일 아침에 공포하겠어.” 련장의 숙소에서 나오는데 흑룡강성 안달시에서 입대한 취사원 왕취룡이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어때? 처분을 준대?” “……” “새겨두지 마. 글구 먹어…” 왕취룡은 그때까지도 따스한 찐빵 두개를 가슴에서 꺼내주었다. “안먹어!” 나는 왕취룡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숙소뒤켠에까지 간 나는 끝내 흑흑 소리내여 울어버렸다. 힘들고 초라한 자신이 미워서 울고 왕취룡의 정에 감격해서 울고… 이튿날 아침 식사전에 “외투사건”에 대한 처리결과가 나왔다. 구두경고 1차였다. 그리고 나의 사업터를 옮긴다고 했다. 옆에서 누군가 “인젠 돼지사양원으로 가게됐군>.하고 시까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련장이 선포했다. “련지도부에서 연구한 결과 최동일동무를 련대통신원으로 제발시키기로 했습니다.” 대렬이 웅성웅성 해지기 시작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조건을 창조해주는것이 우리의 사업방침입니다. 최동일동무처럼 신문에 문장을 발표한 사람이 련대에 또 있습니까? 누구든지 기술을 배우고싶고 공부를 하고싶가면 련대에서는 조건을 지어주겠습니다. 의견이 있습니까?” 누구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목이 꺽 메여올랐다.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 그때 나는 노력하는 사람의 행복을 알았고 인정의 따스함을 알았다. 그후 련대를 떠나 퇀정치처에서 일할 때에도, 수요로 지방문화관에 파견되여 근무할 때에도 나는 최성산정위님, 박재원관장님과 같은 고마운분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었다. 그런 행복, 그런 인정에 받들려 힘든 부대생활속에서도 대학교 통신공부를 원만히 끝마쳤고 우ㅠ리 64군의 “자습인재기준병”의 영예까지 지니게되였다. 돌아보면 정말 부대에서의 7년은 너무도 힘들게 달려온 7년이였다. 그리고 또 너무도 삶에 충실했던 7년이였다. 엔젠가 동료들이 나에게 7년이라는 긴긴 부대생활이 후회되지 않는가고 물은적이 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정년 그 7년에 내가 잃은것은 무엇이고 얻은것은 또 무엇인가고. 그렇다. 나는 종래로 내 인생의 그 7년을 두고 후회해본적이 없다. 되려 내 인생에 군인으로서의 그 7년이 있는것을 영광으로, 자랑으로 생각한다.
39    산내의 명물 댓글:  조회:1345  추천:0  2010-03-11
산내의 명물 한국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 다시 서대전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40분쯤 가면 산내라고 하는 자그마한 마을이 나진다. 아마 우리 연변의 작으마한 촌으로 짐작하면 될것이다. 하지만 공장단지가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지나간 덕분에 마을은 제법 도회지를 방불케한다.바로 이 산내마을에 대전에서도 명물이라는 “옻닭집”들이 널려있다. 한국 충청방송의 박성광이사님이 직접 차를 몰고 안내한 곳이 바로 산내마을의 중간쯤에 위치한 고속도로 옆의 “산내옻닭집”이였다. 길에서 박이사님이 전화까지 쳐서 주문하는 것으로 보아 건물도 굉장하고 장식도 기막힐것으로 짐작하며 손님들로 붐비는 정형을그려보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 3명이 내린곳은 옛날에 연변시골 어디에서나 볼수있었던 그런 초가집이였다. (설마 여기에 뭐가 있을라구?...)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문풍지를 바른작은 문이 열리며 베저고리를 하얗게 바래워 입은 아줌마 한분이 나왔다. “어서오세요. 귀한분들이 오신다니 이렇게 기다리구 있었수.” 아줌마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듬뿍 담고 우리를 초가집안으로 안내해주었다. 집안으로들어가봐도 역시 옛날에 내가 살던 삼간집이였다. 하지만 방안에는 지금 민속촌에서나 볼수 있는 농짝이며 바가지며 다듬이돌이며가 가지각색 보기좋게 제자리를 찾이하고 있었다.“중국에서 오신 손님이유. 아줌마 잘 모시세요.” 원래 성정좋은 박이사님이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유, 귀한 손님이 온대서 오늘 제일 살찌고 잘 생긴 닭으루 두 마리를 잡아서 안쳤죠.하지만 옻은 드셔보지 못했다니 약곰으로 했어요.” 아줌마도 변죽좋게 박이사님을 맞추어 주었다. 우리는 가방이며 웃옷을 벗어놓고 네모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40분거리를 차안에서 보내느라 목에서 겨불내가 나는 것 같았다. “아줌마 물 좀 주실래요?” “잠간만 기다려요.”아줌마가 안칸으로 들어가더니 차판에 작은 종지 3개를 받쳐들고나왔다. “귀한손님들, 목을 추기세요.” 아줌마가 종지에 건네는 것은 말간 동치미물이였다. “아줌마, 이거말구 시원한 랭수 한그릇 큰 사발에 주세요.” “건 안되지, 이 손님 봐라.” 아줌마가 딱 잘라뗐다. 나는 영문을 몰라 아줌마를 쳐다보고 박이사님을 훔쳐보았다. “귀하디 귀한 약닭 잡수러 오신 분들이 어찌 벌컥벌컥 랭수를 마셔유? 말두 안되지.내집에 들어오면 내 법대로 해야해요.” 아줌마는 제법 정색해서 말했다. 나는 허허허 웃으며 별다른 투정도 부리지 못하고 말 았다. 딱 그 자리에서 18년째 닭곰장사를 해온다는 주인은 사실 경주최씨 성을 가진 68세에나는 할머니였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금방 50세를 넘긴 풍채 좋은 아줌마로 밖에 안보였다. 하여 그냥 아줌마로 부르면 안되는가고 청들었다. “젊다면 좋지유, 좋은 사람들을 오래오래 만나면서 좀 더 사는게 좀 좋아요?아줌마는 참 말씀도 잘하셨다. 지금은 전문 닭을 길러주고 남새를 심어주는 사람이 있지만 처음 닭곰 집을 시작했을 때 까지만 해도 아줌마는 닭도 자체로 길렀고 무우며 깨잎이며 하는것들도 자체로 자래웠다한다. 그러면서 내집에 오는 손님은 내 손으로 내 집음식을 대접시켜 보낸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손수 장만했다고 한다. 그래서 닭잡는 아저씨 한분과 남새 다듬는 아줌마 한분을 내놓고는 다른 사람손을 써 본일이 없다 한다. 그만침 손님들에 대한 요구도 엄해서 아무리 기쁜날이라도 사람당 소주한병 이상은 못마시고닭고기 먹기전에 군음식을 들지 못하며 손님 셋이 오면 꼭 닭 두마리를 청해야 한다는규정도 에누리 없이 지켜야한다는것이였다. 앞의 두 개 규정은 그런대로 말이되는 것같았지만 사람셋이면 꼭 닭두마리를 청해야한다는 것은 어딘가 억지같아서 그 연고를 물었다. “우리 나라처럼 남자들이 수고하는 나라도 없을거예요. 새끼를 키울라 안해를 챙길라.어디 큰 맘 먹지않구서야 이런 곳을 쉬이 찾을수 있나요? 벼르디 별러 한번왔는데 남의눈을 살피고 호주머니 사정 헤아리느라구 맛이나 보려는 사람두 있어요. 남정네 혼자서 왜닭 반쪽을 못먹겠어요. 그래서 먹는바엔 이 사정 저 사정 다 보지말구 약이되게 맘껐 먹으라구 제가 정한 법이죠. 아니나다를가 남정 세사람이 와서 닭두마리 청해도 남기는 것없이 다 먹더라구요.” 아줌마는 흐뭇한 웃음을 날리며 자신의 “닭 두마리 리론”을 렬거해나갔다. 인삼이며 대추며 황계며 하는 약재들을 두루 넣어 만든 닭곰은 코를 찌르는 약냄새로 하여 진짜우리 연변사람들의 구미에는 맞지않았었다. 하지만 아줌마의 정성이 찰찰 넘치는 밥상앞에서 얼굴이 찡그러질가 마음을 조이며 열심히 닭다리를 뜯었다. 큼직큼직한 단무지잎에 닭고기와 야채를 말아서 손수 내 입에 넣어주며 “외지에서 많이 먹구 앓지말아야지” 하고걱정하는 아줌마는 정말 소시적 상추잎에 조밥을 싸서 입에 넣어주며 “우리 강아지 많이먹구 빨리커야지” 하던 우리 엄마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줌마는 이런분만이 아니였다. 너그럽고 후더운 아줌마의 안쪽에는 또 다른아줌마가 살고있었다. “나 이분 처럼 편한사람은 열밤중에라도 다 받아요. 내 음식 맛있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왜 막아요. 하지만 내집같은 오막살이에 와서도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돈 만냥을 줘도안받아요.” 아줌마는 또 걸걸한 목소리로 시원스레 손사래질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핸가 시청의 어느 청장님이 아줌마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더란다. 앞뒤에 하이야가 뛰뛰하며 들이닥쳐 법석이더니 두 번째 차에서 몸집이 약하고 얼굴이 칼날같은 어른이 내리더란다. 그러자 먼저 내린 사람들이 차문을 열어주고 옷을 들어주고 신을 받아치우고 하며 난리를 피우더니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 어른만 밥상 한면에 앉고 따라온 직원들은 다른 한면에 쪼크리고 앉아 그 어른이 다 먹을 때까지 시중을 들더란다. 아줌마는 내집에 찾아온 손님을 쫓으랴 싶어서 터지는 부아통을 누르다가 돌아갈 때가 되자 그 어른을 찾았단다. “다시는 내 집을 찾지마시우.” 그러자 그 어른은 푸접좋은 아줌마의 롱담으로 알고 “참 잘 먹었으니 후에 또 아주머니 보러 오겠수” 하고 인사를 받더란다. 그러자 아줌마는 함께 온 직원들을 가리키며 “우리집 문턱은 낮아서 어른신 같은 분들을 들일수 없으니 어른신님 어깨도 저분들처럼 쉬이 꺾일 때 다시 찾아오시우.” 했다는것이다. 옛말같기도 했지만 아줌마의 성정을 보면 믿지않을수도 없었다. “장사하는 바에야 높으신 분들을 많이 모셔서 돈을 많이 벌면 좋지 않아요?” 나는 닭고기로 니글니글 해진 속을 누르라며 떠다주는 약죽을 먹으며 아줌마에게 한마디 건넸다. “배속의 애들도 돈이라면 손을 내민다지 않수? 하지만 사람이 살아보니 돈이란 모두가아닙데다. 모자라지 않으면 되는게지. 제눈 펀히 뜨고 제 량심 속여가며 돈을 벌어야 되는 리유가 뭬유? 나는 아직두 알지 못해요?” 아줌마는 역시 정색해서 이야기했다. 약죽까지 다들자 아줌마는 역시 자신이 손수 개발했다는 “약닭숭늉”을 토기공기에 떠내왔다. 아줌마의 정성이 흐르는 “약닭숭늉”을 마시며 아줌마의 숭늉처럼 구수한 이야기를듣노라니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18년을 내내 닭곰 하나에목숨을 걸어왔다는 아줌마가가 바로 시린 사람은 따스하게 품어주고 더운 사람은 시원하게땀을 쑥 빼주는 그런 숭늉처럼 느껴졌다.돌아오는 길에 한국충청방송의 박성광이사님은 대전에서는 산내의 옻닭을 대전의 명물이라고 부른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풀을 먹여 다듬이질로 손수 바래워 입는다는 베적삼처럼 희고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경주최씨아줌마야 말로 진정 산내의 명물이 아닌가고 생각했다.
38    작은 <<지구촌>> 댓글:  조회:1293  추천:0  2010-03-11
작은 <<지구촌>> <<어서오세요.귀한 손님이 오시네...>>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려관문이 열리며 50대의 아줌마가 쪼르르 뛰여나왔다. 코날이 오똑하고 파르스름한 눈알이 움푹 패여들어간 아줌마는 인상과는 달리 재글재글 끓어번지는 삼복날의 하늘처럼 뜨거운 열기를 확- 뿜어주었다. 서울간 촌닭이라고 역전에서 짐나르는 아저씨들의 알선으로 간신히 그곳까지 도착한 나는 아줌마는 끓던말던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려관 간판부터 쳐다보았다. 허름한 판대기에 씌여진 <<서울장려관>>이라는 글발이 안겨왔다. <<어서오세요. 몇분이나 오셨어요? 어떤 방에 드실래요?>> 아줌마는 나에게 말할틈도 안주고 자기의 여건부터 챙겨나갔다. <<혼자서 자구요 짐 몇짝을 함께 두려는데요, 하루밤 얼마예요?>> <<4만원이면 돼요. 딱 4만원이요.>> 아줌마는 손가락 네 개를 쫙 펴보였다. 순간 나는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분명 역전에서 짐나르는 아저씨들은 하루 밤에 5만원씩 줘야한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제꺽 호주머니에서 만원짜리 4장을 쑥 뽑아 아줌마에게 쥐여주었다. <<고마와요, 아저씨.>> 아줌마는 역시 생그르르 웃어번지며 돈을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러는새 짐나르는 아저씨들이 려관앞에 도착했다. <<아저씨들 오늘, 땡 잡았네. 빨리빨리 짐을 옮겨요.>> 아줌마는 제법 주인답게 아저씨들을 부려서 나의 짐들을 모두 방에 옮겨다 놓게 했다. <<휴->> 시름이 놓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아저씨들께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잠간 지나서 주인아줌마가 열어놓은 방문에 머리를 찌쑥하더니 <<아저씨요, 만원을 더 내세요.>> 하고 말했다. <<무슨 돈인데요?>> 내가 놀라며 묻자 주인아줌마는 언제 맑았더냐 싶게 얼굴을 흐려보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말도 안되지. 이 많은 짐을 싣고왔는데 팁도 안줘요?>> <<짐삯은 1만 5천원이나 줬는데요.>> <<그건 여기 까지 실어온 값이구요. 이 많은 짐을 공짜로 보관시키게 여기를 알선해준 아저씨들께 팁이라도 줘얄게 아니예요?>> <<팁이야 아줌마가 줘야죠. 방값은 아줌마가 챙기는게 아냐요?>> 나도 지지않고 도리를 따졌다. <<세상에 이런법이 어디있어요. 저의 서울장 려관은요 일본사람, 영국사람, 필리핀사람, 안드는 사람이 없어요. 작은 <지구촌>이예요. 세상에 팁을 안주는법이 어디 있 어요?>> 아줌마는 복도가 째지라고 소리쳐 댔다. 나는 남의 땅에서 괜히 일치는 줄 알고 만원짜리를 한 장 뽑아서 던져주고야 말았다. 아줌마는 돈을 받아가지고 복도를 따라 종종 걸음을 놓았다. 그때까지도 속이 꺼림직 해난 나는 아줌마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아줌마는 자기가 아니면 아저씨들이 팁을 받지못했을 것이라는듯 생색을 내며 아저씨들에게 돈을 건네주는것이였다. 그중 키작은 아저씨가 나에게 래일 짐을 나를 때 시간을 맞춰오겠으니 래일아침에 만원만 얹어달라는것이였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인아줌마는 그런 일은 려관에서 알아서 하니 근심말라며 짐나르는 아저씨의 등을 밀어 보내는것이였다. 방에 돌아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보니 부아통이 터졌다. 처음에는 내가 혼자서 온 줄을 알고 방값이라도 챙길 타산으로 4만원을 불렀는데 아저씨들이 알선해서 온줄을 안 다음부터는 아저씨들의 비위를 맞춰주느라고 만원을 더 내라 억지를 부린것이였다. 그러고 보면 처음 짐나르는아저씨들은 또 미리 저희들의 팁을 생각하고 하루 밤에 5만원을 부른것이였고...어쨌든 눈감으면 코떼가는 서울놈들이라더니 정말 단단히 체험을 해본것이였다. (어쨌든 무사히 짐을 부리워놓았으니 됐지, 글구 일본사람도, 영국사람도, 필리핀사람도 온다니 이곳은 정말 작은 <지구촌>이나 다를바 없는데...한번 들어보는것두 영광스럽구 ...래일아침이면 저 아줌마가 짐을 역전까지 실어다 주겠지...)혼자 누워 제좋은 속구구를 하고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또 문쪽에 머리를 삐쑥이 들이미는것이였다. <<들어오세요.>> 내가 알은체를 하자 주인아줌마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움푹 들어간 파르스름한 눈알을 툭 불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세상에, 세상에 아까는 짐이 몇짝 안되는줄 알았더니... 애개개... 이게 어디예요. 말도 안되지, 이걸 만원에 ... 세상에... >> <<얼마를 받아야 돼요?>> 나도 시치미를 뚝 따고 물었다. <<3만원, 아니 4만원이야 받아야지...>> <<알겠습니다. 래일아침 보죠.>> 나는 더 싱갱이질을 하고싶지않아서 그냥 끊어버렸다. 아줌마는 내가 자기의 흥정에 수긍하는줄 알았던지 그후부터는 복도에서 봐도 <<중국아저씨요. 어데가세요?>> 하고 처음처럼 끓어번졌다. 이튿날 푸름해서 일어난 나는 형세나 알아볼겸 거리에 나가 세워놓은 택시쪽으로 다가갔다. 택시모는아저씨는 서울장려관에서 서울역까지는 4천 5백원이면 푼푼하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짐이 몇짝 더 있으니 만원에 안가겠는가고 묻자 아저씨는 무척 기뻐하며 실어다 주겠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라면으로 대충 요기를 한 나는 8시 30분이 되자 식전에 약속한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는 마침 약속장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서울장려관으로 올라왔다. 그때 마침 코가 뾰족한 백인부부가 려관방에서 짐을 내다가 려관에서 준비한 삼륜차에 싣고있었다. (말이 안통하니 당하는 모양이군.) 나는 최저로 3만원은 줘야할 서양부부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방에서 짐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짐을 들고 밖에 나왔을 때 아니나 다를가 주인아줌마와 백인부부의 설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돼요. 3만원, 안돼요.>> <<그것두 안주구 어떻게 해.>> <<3만원 안돼요. 안돼요.>> 백인녀자는 연신 안된다는 말만 곱씹었고 백인남자는 삼륜차에서 짐들을 주어내리우기시작했다. 그러자 백인녀자는 씽하니 골목을 따라 내려가더니 택시한대를 불러가지고 올라왔다. 원래 짐이 몇 개 안되는지라 잠간 새에 짐은 택시에 옮겨실어졌다. 백인부부는 매우 불쾌한 기색으로 택시에 올랐다. 벼락 오기전의 하늘처럼 얼굴이 퍼렇게 살아있던 주인아줌마는 택시기사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3만원을 받아요. 저런 놈들은 혼줄을 내줘야해요.>> 그리고는 떠나가는 택시에 대고 주먹질을 해보였다. 아마 그 백인 부부는 자기들이 어째서 혼줄이 나야하는지를 죽어도 모를 것이다. 그새 나도 짐을 다 싣고 택시에 올랐다. 떠나면서 창문으로 주인아줌마를 보니 그때까지도 아줌마는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본사람도, 영국사람도, 필리핀사람도, 웰남사람도 거쳐간다는 서울장려관, 아줌마의 말대로 서울장려관은 작은 <<지구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인아줌마는 과연 작은<<지구촌>>의 주인이 되는셈이 아닌가... 돈 몇푼에 량심을 팔고 인격을 팔고 웃음을 파는 아줌마가 불쌍해보였다. 그리고 너무나도 가슴 아픈 활극을 펼쳐나가는 작은 <<지구촌>>이 서울의 하늘아래에 있다는 것이 꿈인 듯 싶었다. 그날 서울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나가는 리무진뻐스안에서 나는 내내기분이 찜찜해지는 것을 어쩔수없었다...
37    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댓글:  조회:1230  추천:0  2010-03-11
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이 놈의 하늘은 밑창이 빠졌나?...” 나그네는 중얼거리며 또 소주병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꿀꺾꿀꺾 마셨다. 잠간새에 소주병이 굽이났다. 나그네는 아쉬운 듯 굽이 난 소주병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병사리를 서울역 입구의 콩크리트바닥에 동댕이쳐 박산냈다. 그리고는 무슨 큰일이라도 치룰 듯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푸-”하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벌써 며칠째 물맛을 보지못했는지 얼굴은 땀으로 비물로 검으죽죽 얼룩이져 있었고 옷은 기름 때와 먼지로 주글주글 했다. 부옇고 퉁퉁부은 얼굴에서 근심어린 쌍겹풀눈이 가끔씩 껌벅이고 있었다. 때는 8월 11일 저녁 서울시간으로 6시 20분 경. 잔잔하게 내리는 서울의 밤비를 맞으며 서울의 야경을 걷고싶어 우산을 들고 나섰던 나는 너무나도 이색스러운 풍경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전에도 한국행이 두어번 있었지만 꽉 짜인 스케줄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로 분주하다나니 자신만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서울의 밤길을 혼자 걸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밑창빠진 이 놈의 하늘은 무슨 비가 이 모양이야. 심술궂은 서울 아낙네 같네...” 말씨가 분명 나와 같은 연변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아들을수있었다. 문뜩 어느책에선가 보았던 서울 지하철역의 연변사람들이 떠올랐다. 책을 읽을 때는 설마 하며 믿지않았었지만 진짜로 서울역에서 마주한 나그네를 보고서는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점잖게 받쳐들었던 우산을 겹쳐쥐고 나그네쪽으로 글금슬금 다가갔 다. “중국에서 왔습니까?” 나는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나그네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나그네는 흠칫하고 몸을 떨더니 경계심이 어린 눈길로 나를 건너다 보며 때자국이 얼룩진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바르고 어색한 서울말로 잘라버렸다. “아닌데요.” “미안합니다. 방금 연변말씨를 쓰는것같아서요. 저 연변에서 왔습니다.” 어쩐지 길가던 나그네의 푸념을 옅들었다는 것이 얼굴이 붉어지며 진짜로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러자 나그네가 내쪽으로 한발 다가서며 “이재 연변에서 왔다고 했소?”하고 물어왔다. “네. 연변에서 왔습니다.” 나는 활짝웃으며 맑은 목소리로 확실하게 대답을 주었다. “막일을 하러 온 분 같지는 않은데.” 나그네는 나의 아래우 맵시를 살펴보며 말했다.네, 대전에서 있었던 아시아 청소년 가요, 댄스축제에 참가하러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 내렸습니다.” 나는 나절로도 이상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허허허...내 눈은 못속이지.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는 저도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그네를 다시 한번 응시하며나그네 쪽으로 한발 다가섰다.“반갑소. 댁처럼 눈에 당당한 빛을 띄고 있는 연변사람이 많아야 우리도 서울에서 허리펴고 살텐데...” 나그네는 말끝을 흐리웠다. 하지만 나그네의 눈길은 금방 생기를 띠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하나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픈 상처에 소금을 치는것같아서 차마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었다. “나온지 얼마나 됐습니까?” 나는 나그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물었다. “3년철이라우. 중국 돈으로 7만원을 주구 나왔소.” 나그네는 서울역 입구의 콩트리드바닥에 털썩 들어앉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나그네의 옆에 쪼크리고 앉았다. 나그네는 첨에 건축공지에서 잡일을 맡아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되여 한차례의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후 힘든 일은 할수없어 어느 작은 불고기집에 취직을 하여 손님을 불러들이는 일을 맡았다한다. 손님이라도 많으면 그런대로 마음이라도 편했지만 손님이 안드는 날이면 주인 아낙네의 푸념이 끊길새 없었다. 원래 직성이 곧은 나그네로서는 불고집 주인아낙네의 눈총을 받아내기가 힘들어 한달을 채우기 바쁘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로부터 나그네의 유격전은 끊기지않았고 그새 나그네는 신체도 마음도 다 멍이들고 병들어 날마다 술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지경까지 왔다는 것이다. “벌써 일자리를 잃은지가 한달이 넘소.”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게 무섭지요. 그래서 이렇게 떠돌이를 한다우. 우리에겐 서울 구석구석이 모두 집이라우.” “그럼 밖에서 로숙한다는 말씀입니까?” 나같은 사람이 많소, 여기에.”“신체도 이렇게 망가졌는데 왜 돌아가지 않습니까?” 돌아간들 어쩌겠소? 올 때진 7만원 빚도 5푼짜리 장리돈을 맡아왔는데.” 아직 빚은 채 물지못했습니까?” “아직두 한 4만원 남았소.” “집에서는 이런정황을 모릅니까?” “모르는 편이낳지. 벌써 2년째 집에 돈 한푼 보내지 못하구 있소. 집에서는 아마 나를 바람이 나서 서울아낙네들과 뒹군다구 할게요.” 나그네는 잠간 말을 끊고 푸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으로 더부룩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래도 이런 정황이면 집에 돌아가는 편이 낳지 않습니까?” 분명 나그네에게 아무 도움도 없을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무엇인가를 말하지않고는 견딜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정말 막막하오. 돌아가면 올 때 진 빚이 새끼를 치고 기다리겠지. 아들놈도 인젠 장가갈 때가 됐지... 황차 돌아가려고 해도 비행기표는 무슨 돈으로 끊는단 말이오. 나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다오.” 나그네는 어쩜 자기의 처지가 자기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는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려는듯 묻지도 않는 말을 또 한번 했다. “그럼 오늘 밤도 여기서 나시렵니까?” “그래야지. 서울의 땅덩어리가 모두 나의 집이거든, 허허허...” 나그네는 또 처음의 그 상태로 돌아간듯 허탈진 웃음을 뽑아댔다. “몸 조심하십시오.”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긴채 끝내는 나그네의 이름이며 연변에 있는 나그네의 고향이며를 묻지도 못한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비는 여전히 잔잔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산을 펼쳐들 마음도 없었다. 내리는 비줄기에 한몸을 맏기고 어디론가 자꾸 걷고싶었다. 원래 처음 밟는 서울의 밤이라 방향도 알리 만무했다. 우거진 서울의 가로수 아래에서도 높은 빌딩의 처마밑에서도 때자국이 간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잔잔히 내리는 서울의 비를 맞으며 소주병을 손에 들고 있는 나그네들을 가끔씩 볼수있었다. 금방 옆을 스쳐도 연변사투리를 들을 것 같아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이 놈의 하늘은 밑구멍이 빠졌나!” 그때까지도 나그네의 맥지난 푸념이 귀전을 스쳤다. 울고싶었다. 나는 멀거니 비내리는 서울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 한점없는 하늘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무서워 보였다. 순간 온 몸이 오싹해났다. 아니였는데... 연변에서 느껴오던 밤하늘은 이것이 아니였는데... 그럴 것이다. 나그네의 상상속의 하늘도 이것이 아닐것이다. 비록 농사일로 볕에 그을었지만 그래도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안해의 팔을 끼고 큰집에 마실을 다녀오며 보던 사랑의 하늘일것이고 재잘대는 아들놈의 손목을 잡고 고향의 뒤동산에서 별을 세던 시같은 하늘일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그네는 과연 그런 하늘을 찾을수 있을가? 어쩜 그런 하늘을 찾자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치일 것이다. 하다면 이 밤에 나그네가 그리는 것은 무엇일가? 집? 안해? 아들?... 더는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무서움마저 주는 서울의 하늘에 대고 한마디만 소리소리 웨치고싶었다. 서울의 하늘아, 비라도 내리지 말아다오!
36    어머님전 상서 댓글:  조회:3104  추천:2  2010-03-11
어머님전 상서 어머님, 막동이 동이옵니다. 어머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신지가 벌써 28년에 접어들었네요. 어머님께서는 세상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 저를 두고 떠나기가 그렇게 가슴이 아프시다면서 죽어서도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하다고 락루를 하셨더랬죠? 어머님께서 계시지 않으신 이 세월을 제가 과연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저는 가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니다. 어머님은 비록 16년이라는 짧디짧은 세월밖에 저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셨지만 오늘까지도 저의 인생 구석구석에는 어머님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어머님의 그림자가 옆에 있었기에 힘들고 외로울 때도 저는 다시 힘을 얻고 외로움을 털고 일어나 용케도 오늘까지 달려올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늘 막동이의 까아만 쌍까풀눈이 말할줄을 안다면서 꺼슬꺼슬한 두 손으로 저의 볼을 받쳐들고 한참씩저의 눈을 들여다보시군 했었죠. 철모르는 그 시절이였지만 차마 어머님의 그 눈길을 속일수가 없어서 저는 거짖말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랐고 어머니의 그 믿음에 오점이라도 묻힐가 근심되여 딴에는 착한 일, 고운 일만 골라 하느라 무던히도 애쓰던 기억이 옵니다. 40대중반을 바라보고있노라도 말할줄을 알던 그 까아만 쌍까풀눈도 돋보기를 걸어야 글을 바로 볼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말할줄을 아는 이 눈으로 저는 좋은것, 이쁜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구나!” 하고 나름대로 행복에 겨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말할줄을 아는 이 눈으로 미운것 아픈것도 더러 보았습니다. 그런것을 보고 집에 들어온 밤이면 저는 나름대로 괴로와서 가슴시리고 마음이 얼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하냥 저의 가슴속에 살아계셨기에 저는 언제나 쉽게 그 언마음을 녹일수가 있었고 또다시 홀가분하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대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적어놓은 저의 습작노트를 펼쳐보노라면 저에 대한 어머님의 바다같은 사랑을 읽을수 있고 자식에 대한 어머님만의 뜨거운 사랑방식을 배울수 있으며 또 어머님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 세상을 살아온 저의 작은 발자욱들도 찾아볼수가 있습니다. 어머님, 오늘도 저는 어머님의 기억속에 열여섯살의 막동이로 남아있는것입니가? 저는 어머님을 떠올리면 또다시 말할줄아는 눈을 가진 귀염둥이로, 가슴을 치며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던 열여섯살의 어린양으로 변해버린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올해 우리나이로 팔십에 나시겠죠? 요즘은 웬지 어머님의 얼굴이 자주 눈앞에 떠오르네요. 불혹의 중턱에 몸을 맡기고보니 아마도 어머님께 하고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나 봅니다. 세상을 살아오며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이 스스로 무르익나봐요. 열여섯살 나던 해 초봄의 어느 날, 어머님은 병석에서 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죠. 부모복이 없는 제가 커서 장가라도 잘 가 안해사랑이라도 엄청 받았으면 좋겠다고요. 그때 저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줄을 잘 몰랐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또 힘들게 가정풍파를 겪으면서 저는 어머님의 그 말속에 담긴 참뜻을 하나하나 깨우치게 되였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기도해준 덕분에 저는 다시 오붓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있습니다. 얼마전에 안해가 저에게 어머님의 사진 한장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고하더라구요. 지지리도 못살았던 그 세월에 어머님은 워낙 사진 몇장 남기지도 못하셨죠. 여러번 이사를 하면서 저는 그만 그렇게 귀중한 사진들을 분실해버리는 불효를 저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머님의 얼굴은 저의 가슴에 밖에 없네요. 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머님은 오늘도 태양같은 존재로 남아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영원한 저의 태양이십니다.
35    세상 사는 소리 댓글:  조회:2004  추천:0  2010-03-10
    일이란 결심을 하기에 간다더니 과연 그런가보다. "조글로블로그"에 입적을 해놓고도 그새 피일차일 미루면서 제대로 블로그를 꾸미지 못하고있다가 오늘 큰 마음을 먹고 살손을 댔다. 전에 "다음블로그"가 접속될 때 그 곳에 나의 대부분의 글을 올렸더랬는데 약속도 없이 "다음블로그"가 차단되자 한동안 그렇다할 대표적인 블로그가 없이 이곳저곳에다 흔적을 남겨놓았었다. 리산가족처럼 사처에 흩어져있는 글들을 보면서 어딘가 기분이 찝찝하기도 했는데 오늘 이렇게 모양을 갖춰놓고보니 다소 시름이 놓이는듯한 기분이다. 블로그란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자기의 희노애락을 기록하였다가 가끔 돌아보면서 "아, 내가 용케도 이곳 까지 왔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독일수 있다면 만족이겠다.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비밀일기로 되여야할 "세상 사는 소리"를 당신앞에 내놓는다. 40대 중반도 인젠 기울어진 나이! 과연 나의 "글놀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수없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사유가 다하는 그날까지 이 "글놀이"를 견지할것이며 또 꾸준히 놀아갈것이다 2010년 3월 10일. "조글로블로그"에서 본격적으로 삽질을 시작한 날! 이 하루도 언젠가는 나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것이다. 세상살이란 참 재미나는것이다. 하하하...
34    단편소설*블랙홀 댓글:  조회:2455  추천:0  2010-03-10
“까…만…것…” 진이는 금방 식자를 하는 악동처럼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글자를 오려나갔다. 하지만 밑판이 딴딴한 섬유판이여서그런지 도무지 글자가 뜻대로 오려지지 않았다. 진이는 제대로 오려지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글자를 찾아 다시 한획한획 힘을 주어 오렸다. 너무 도정신을 하여 글자를 살펴서인지 차츰 눈동자가 뻣뻣해났다. 진이는 글자에서 눈길을 떼고 머리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았다. 얼기설기 잔금이 간 천정 중간에 달려있는 일광등이 자극적인 빛을 뿜어대고있었다. 그 빛속에서 일광등옆에 어지러이 박혀있는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기분 나쁘게 눈을 괴롭히고있었다. 진이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퉤하고 바닥에 헛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찍었다. 그러다가 걸상에서 벌떡 뛰여일어나 손에 들었던 열쇠뭉치를 호주머니에 넣은후 오른손 손가락을 폈다 꼬부렸다 반복하면서 섬유판으로 된 긴 걸상웃면을 살폈다. “김태룡 이 곳을 다녀가다.” “리룡 기다려 복수할테다” “최호 개 같은 새끼” 진이는 자기가 오려놓은 글자들옆에 란잡하게 씌여져있는 다른이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저도 몰래 “픽!” 하고 실소가 터져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어 또다시 딴딴한 섬유판우에 뭔가를 오리고싶다는 욕망비슷한것이 머리속을 치고들어오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진이는 다시 딴딴한 섬유판으로 된 걸상우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아 호주머니에서 열쇠뭉치를 꺼내들었다. 일여덟개의 열쇠가 한데 꿰여진 열쇠뭉치는 꽤나 묵직했다. 진이는 그 속에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집 출입문열쇠를 찾아들었다. 끝이 뾰족해서 글자가 잘 오려질것 같아서였다. 진이는 열쇠를 쥔 오른손에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또박또박 글자를 오리기 시작했다.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진이는 잠간 멈추고 자기가 이미 오려놓은 글자들을 작품이나 감상하듯 조용히 읽어보았다.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진이는 이 몇 글자 안되는것을 단숨에 세번이나 읽어버렸다. 자기로서도 어째서 이런 글을 여기다 락서했는지 알수 없었다. (왜서일가? 다른이들이 락서한것을 보고? 아니면… 그런데 까만것은 뭐지?) 진이는 오른손 식지에 열쇠고리를 걸어들고 빙빙 돌리면서 잠간 두눈을 감았다. (까만것은 뭐지? 일광등빛이 눈을 자극하여 죽겠구만 자꾸 까만것이 떠오름은 무엇때문일가?) 진이는 삼검불처럼 어지러워지는 사색을 정리하려다가 웬지 가슴속이 갑갑해나서 “후—” 하고 긴 한숨을 톺아올렸다. 그 자리에 그채로 잦아들고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진이는 걸상에 눌러앉아 짚단 쓰러지듯 몸을 뒤로 날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얼얼해났다. 하지만 진이는 그대로 벽에 등을 맡겨버렸다.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지는듯 했다. 하얀 공간에서 까만것이 머리 떨어진 파리처럼 앵앵 애처롭게 돌아치고있었다. 진이는 그 까만것이 지지리도 역겹게 생각되였다. 까만것은 머리속을 어디라 없이 헤덤벼쳤다. 까만것을 따라 우왕좌왕 하던 진이는 갑자기 오싹 몰려오는 한기를 느꼈다. 온몸이 오스스 떨려오더니 저절로 어깨가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진이는 움씰 어깨를 떨었다. 이어 까만것은 스물스믈 엉뎅이쪽으로 날아내렸다. 따라서 엉뎅이에서 도 찬기운이 서려올랐다. 진이는 차거워지는 엉뎅이를 두어번 움씰움씰 하다가 걸상에서 벌떡 뛰쳐일어났다. 모를 일이였다. 집안은 확확 겨불내가 나도록 무더운데 몸에서는 왜 영문없이 한기가 느껴지는것일가? 까만것이 엉뎅이로부터 쓩— 날아오르더니 곧추 대뇌쪽으로 달리는듯 했다. 순간 진이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진이는 자리에 굳어진듯 서있다가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긴다해야 여섯평도 되나마나한 공간이여서 어디라없이 마음놓고 걸을수도 없는 곳이였다. 진이는 머리속을 헤덤벼치던 까만것처럼 벽구석을 따라 목적없이 맴돌다가 출입문가에 떡 하고 멈춰섰다. 쇠창살웃부분이 딱 진이의 눈높이와 일치를 이루고있었다. 진이는 두손으로 쇠창살을 부여잡았다. 손바닥으로부터 찌르는듯 한기가 느껴졌다. 진이는 그 한기와 내기라도 해보려는듯 더욱 으스러지게 쇠창살을 끌어잡았다. 차츰 한기가 아니라 아픔 같은것이 느껴졌다. 진이는 손에서 힘을 빼면서 쓰러지듯 쇠창살에 이마를 박았다. 퉁 하고 소리를 내며 이마에서 짜릿한 아픔이 느껴져왔다. 진이는 잠간 이마를 쇠창살에 던지고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쇠창살너머로 쇠창살만한 하늘이 보여왔다. 쇠창살밖의 까만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를 않았고 그 하늘아래의 도시도 까만 세상 그대로였다. 진이는 또 한번 으스스 몸을 떨었다. 연길의 하늘아래에도 이렇게 까만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못하고있던 진이였다. 진이는 쇠창살밖의 까만 하늘과 집안의 자극적인 일광등빛이 지지리도 불협화음을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일광등 전원을 찾아 눈길을 돌렸다. 네 벽면을 다 살펴도 전원 같은것은 없었다. 밖에서 전원을 공제하게끔 설치된것 같았다. (나절로 일광등을 끌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자 진이는 웬지 울고싶어졌다. 진이는 손바닥을 쫙 펴서 얼굴을 감싸쥐고있다가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상에가 앉았다. 지독하게 신경을 건드리던 까만것이 또다시 진이의 머리속에 날아들었다. 진이는 그 까만것을 피해 머리를 저으며 두눈을 꼭 감고 벽구석쪽으로 앉은걸음을 해갔다. 동쪽벽면과 남쪽벽면이 이어지는 구석에 몸을 끼우고 앉은 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잦아들기라도 하려는듯 한껏 몸을 옹송그리며 두눈을 꽉 감아버렸다. 갑자기 “삐이익—” 하는 쇠붙이 긁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들어가!” 하는 날이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본능적으로 번쩍 눈을 뜨며 걸상에서 튕겨 일어났다. 철문이 반쯤 열려져있었는데 문밖에는 접대 진이를 접수해서 안에 던져넣던 몸집이 갱핏한 젊은 경찰이 서있었다. 이어 뚱뚱한 체구에 상고머리를 한 진이또래의 남자애가 머리를 푹 숙이고 이리저리 몸을 탈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경찰은 철문을 “쾅!” 하고 소리나게 닫으면서 신경질적으로 안에 대고 소리쳤다. “말썽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어 “드르륵—” 하고 쇠가름대를 당겨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간새였다. 집안에서는 다시 숨박히는 정적이 흘렀다. 방금 들어온 남자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서서 황황한 눈길로 구석구석을 살피고있었다. 눈에서는 살기 같은것이 번뜩이고 퉁퉁한 두볼이 푸들거리고있었다. “씨팔!” 남자애는 갑자기 오른팔을 힘껏 뿌리치며 이사이로 한마디 내뱉었다. 허망 뿌리워져버린 오른팔은 공제를 잃은 자전거페달마냥 어깨를 의지해서 흔들흔들 춤을 췄다. (과연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수 있을가?) 진이는 자기를 향해 엉금엉금 기여오는 공포같은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야, 담배 있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터졌다. 진이는 걸상에서 용수철마냥 튕겨일어나며 남자애를 향해 떠듬거렸다. “어…없어.” “씨팔, 죽어두 생각못했잖아. 담배 주어넣을 새도 없이 당했다니까.” 생각밖으로 남자애의 목소리는 방금 “야, 담배 있어?” 하고 소리치던 때보다 많이 누구러들고있었다. 진이는 두려움이 찰랑이는 눈으로 남자애를 바라보면서 애매하게 머리만 끄덕거렸다. 남자애는 두손을 호주머니에 찌른채 진이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머리를 픽 돌려 찍 하고 이사이로 침을 날리며 진이의 옆에 털썩 들어앉았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피해 한뽐 옆으로 피해 앉으며 부러 머리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았다. 얼기설기 잔금이 간 천정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기분 나쁘게 진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까만 점 하나, 까만 점 둘, 까만 점 셋…” 진이는 영문없이 머리를 쳐들고 파리똥 같은 까만것을 세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게 생각되였다. 하지만 진이로서는 그 시각 그 놀음을 내놓고 더 이상 할것이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 놀음만이 뚱뚱한 남자애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무마시켜줄것 같아서였다. “까만 점 넷, 까만 점 다섯, 까만 점 여섯…” “야, 너 뭔 일루 들어왔니?” “저…” 진이는 남자애가 갑자기 던져오는 물음에 깜짝 놀라 셈세기를 멈추고 벌떡 일어서서 남자애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남자애의 굳어진 입가에 가는 웃음이 지나가고있었다. “너 여기 첨이지?” 남자애가 물어왔다. “그래.” 진이는 남자애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괜찮아. 첫 한번이 두려운거야. 자주 드나드느라면 괜찮아질걸. 씨팔, 일찍 잠이나 자두자. 래일 구류소에 가면 너두 팔자가 달라질걸.” “구류소?” 진이가 다잡아 물었다. “그렇지, 구류소!, 너 사람을 찾았니?” “무슨 사람을?” “하하, 완전 초딩이네. 사람을 찾아 돈을 쓰구 나가지 않으면야 구류소는 떼놓은 당상이지. 너, 랠 면보(面包) 사다줄 사람이나 있니?” “뭐? 면보?” “이런, 너 랠 하루 그대로 굶어야겠구나. 여긴 이런곳이야. 일찍 잠이나 자두자.” 남자애는 “짝—” 하고 하품을 하더니 걸상에 쪼크리고 누웠다. “구류소?” 평소 너무나도 어렵사리 들어버리던 세글자가 세개의 큰 갈구리로 되여 진이의 가슴을 허볐다. “구류소!” 영화나 텔레비죤드라마에서 자주 보아 익숙한듯 하면서도 자기의 몸뚱아리가 그 안에 들어갈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해오던 진이였다. (정말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것일가?) 진이는 몰려오는 긴장때문에 손가락이 짜릿짜릿 설맥을 하는것 같았다. 진이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을 자근자근 주무르면서 연신 입술을 깜빨았다. “씨팔.” 남자애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잡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꿈을 꾸는지 뭐라고 입을 씨물거리며 돌아눕더니 드르릉드릉 코를 골기 시작했다. 곤한듯 하— 벌린 입귀로 멀건 느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어쩜 이 애는 여기 와서까지 이렇게 코를 골고 느침까지 흘리며 편히 잘수가 있을가?) 진이는 자기의 옆에 쪼크리고 누워있는 이 남자애가 외계인이나 되는듯 신비하게 느껴졌다.진이는 앉은걸음으로 남자애를 향해 다가갔다.남자애는 그줄도 모르고 여전히 드르릉드르릉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고있었다. 진이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찬찬히 남자애를 내려다 보았다.입술에 엷은 보풀이 일어나서 여간만 안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모로 누운 왼쪽 눈귀에 맑은 물이 고여있었다.  (설마 눈물일가?) 진이는 그 맑은 물이 가슴에 맞혀서 그저 스쳐지날수 없었다. 진이는 허리를 좀더 굽혀 남자애의 왼쪽 눈귀에 눈길을 가져갔다. 눈귀에 맺힌 맑은 물은 남자애가 코를 고는 소리에 울려 무시로 떨어지려는듯 흔들리고있었다.진이는 무의식간에 손을 내밀어 남자애의 눈귀에 맺힌 맑은 물을 씻어주었다. 순간 남자애가 진이의 손길을 느꼈는지 몸을 흠칫하면서 오른손을 왼쪽 눈귀로 가져가더니 그 맵시로 몸을 번져눕다가 좁은 걸상에서 대책없이 퉁하고 떨어져내렸다.진이는 깜짝 놀라면서 걸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씨팔, 꿈이였잖아.” 남자애가 부시시 기여 일어나며 궁시렁 거렸다. 진이는 숨을 죽이고 그러는 남자애를 살펴보았다. 남자애는 손등으로 두눈을 쓱쓱 부비면서 걸상에 가 앉더니 “짜악—” 하고 달콤하게 하품을 하고는 쩝쩝 마른입을 다셨다. “씨팔, 에잇— 담배.” 남자애는 신경질적으로 걸상에서 일어서더니 황황해서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북쪽 구석 변기가 놓여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남자애는 변기 뒤켠에서 필터에 좀 남은 담배꽁초를 발견하고 보물이라도 발견한듯 소리쳤다. “아, 담배!” 남자애는 담배꽁초를 주어 코밑에 가져다대고 킁킁 소리내며 길게 담배냄새를 맡더니 호주머니를 들추기 시작했다. 웃옷호주머니로부터 바지호주머니 그리고 안에 입은 내의호주머니까지 들추던 남자애가 또 신경질적으로 소리질렀다. “씨팔, 라이타.” “어…없어.” 진이가 반사적으로 걸상에서 벌떡 일어서며 떠듬거렸다.남자애는 허둥대던 손길을 멈추고 진이쪽에 눈길을 박았다. “야, 너 아직 안 잦니?” “안 잦어” “왜? ” “잠이 안와서…” “하하, 완전 도련님이네. 이런데서는 못자겠다 이거니?”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벌씬 웃었다. 그러는 남자애를 향해 진이도 억지로 웃어보였다. 남자애는 담배꽁초를 코밑에 가져다 킁킁 거리더니 입으로 후후 하고 몇번 불고는 정성스럽게 호주머니에 넣으며 두덜거렸다. “씨팔, 라이타 챙길 새도 없이 당했잖아. 씨팔, 오늘은 재수에 옴이 붙었다니까. 근데 너 어째 잡혀왔다구?” 남자애가 두손을 탁탁 마주쳐 털면서 진이쪽으로 눈길을 박았다. “저…저…” 진이가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꺽꺽 거리자 남자애가 또 남의 애기를 하듯 말꼬리를 풀어나갔다. “씨팔, 땐스(电视)라는게 뭐 볼게 있어야 보지. 재미없어서 잠이나 자자구 준비를 하고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거야. 난 그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구나 생각하면서 아무 근심도 없이 문을 따줬지. 씨팔, 들어온 놈들이 누군지 알어? 짭새들이야.” “뭐? 짭새?” “허허허, 경찰말이야, 아무나 잡으러 다니는 짭새, 경찰 알지?.” “그들이 왜?” “씨팔, 며칠전에 꺼멀(哥们)들하구 집에서 얼음을 했거든. 근데 어느 놈이 불어버린거야, 나 어느 놈이 불었다는걸 대충 알것 같거든. 천천히 결산하는거지 뭐.” “얼음이라면 마약이 아니니?” “그치, 근데 마약까지라고는 할게 없구. 그냥 흥분제로 노는거니까. 하지만 랠 아침 여기서 못나가면 내 인생도 쫑 치는거야. 강제제두숴(戒毒所)에 가서 애좀 태워야 할거니까. 석달이야. 말이 제두숴(戒毒所)지 로죠숴(老教所)와 같은거야. 씨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수 있는데?” 진이가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애가 별일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아까 들어올 때 아버지에게 똰씬(短信)을 보냈거든. 하, 그 나그네가 그때까지 어느 안마방에 가 있는지 전화는 안받는다 이거야. 아침이나 되면 똰신을 들춰보겠지. 좋기는 한번 전화를 더 해보는건데. 저 짭새들이 핸드폰을 압수 한거야. 아, 너 핸드폰 있지?” 남자애가 진이쪽으로 다가섰다. “없어, 내것두 들어올 때 압수당했거든.” “저런, 너두 큰걸 범했구나. 참, 너 어째서 여길 들어왔다고 했지?” 남자애가 다시 진이에게 물어왔다. “저… 사실은 어떤 나쁜 년을 때려주었거든.” 남자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뭐? 어떤 나쁜 년을 때려주었다구? 허허허… 너 실련당했구나. 그치?” “아니, 실련은 무슨.” “그럼 어떤 나쁜 년인데? 말해봐. 어떤 년인데. 어떻게 조처해야할가를 내가 알려줄게. 말해봐.” 남자애가 진이의 앞에 다가서며 신나는듯 졸라댔다. (과연 어떻게 나쁘다고 표현하면 좋을가?) 진이는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생각하고싶지 않은 지난 토요일오전의 기분 나쁜 그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참, 그날은 지독하게 재수없는 날이였어.” 진이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날 진이가 다니는 학원의 강사님이 특수사정이 있다면서 오전 강의를 일찍 끝낸다고 했다. 학원친구들은 어쩌다가 차려진 시간을 그저 보낼수 없다면서 모아산으로 산책을 가자고 합의를 했다. 날씨마저 화창한지라 진이도 모아산으로 가는데 동의를 했다. 그들은 기분나서 정상에 오르는 시합을 하기로 했다. 맨 꼴지로 오른 사람이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싸—” 친구들은 모두 꼴지는 자기와 상관이 없는듯 기뻐서 야단이였다. 진이도 시원한 산바람을 한껏 페부로 삼키면서 모아산으로 오기를 참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련인끼리 히히… 호호… 와하하하… 웃으며 소리치며 산으로 오르는 광경은 공부에 찌들렸던 마음을 한껏 달래주기에 충분한것 같았다. 진이는 기분 좋게 모아산 정상에 도착하여 료망대에 올랐다. 진이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눈길을 돌려 푸른 물결이 출러이는 평강벌이며 고층건물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서는 연길시며를 둘러보았다. 눈길이 료망대남쪽끝을 지나 비암산이 있는쪽으로 가는 순간 진이는 눈익은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모아산으로 올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진이였다. 진이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눈을 부비면서 다시 그 낯 익은 얼굴을 찍어 보았다. 손에 샘물병을 들고 어떤 녀인을 향해 빙그레 웃는 남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녀인은 팔이 짜른 까만적삼을 입고있었다. 지나치다싶게 긴 목을 감싸고 흘러내린 까만적삼은 녀인이 입은 흰 바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진이의 눈을 심하게 자극하고있었다. (까만것? 흰것?) 순간 진이의 머리속에는 정체 모를 흑백의 그림들이 언뜰언뜰 스쳐지나갔다. 진이는 애써 정신을 집중하여 아버지옆에 서있는 그 녀인을 쏘아보았다. 황황 타는 진이의 눈길이 녀인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녀인은 힘겨운듯 두눈을 내리깔며 머리를 숙이는것이였다. 진이는 녀인을 향해 퉤 하고 건가래를 뱉어버리고는 격분으로 하여 두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진이는 아버지가 이 시간에 웬 녀인과 함께 모아산에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진이는 아버지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아버지는 그 녀인이 벌써 진이의 눈길에 주눅이 들어있는줄도 모르고 여전히 벙글벙글 웃으면서 그 녀인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진이는 그러는 아버지에게 날이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 여기서 뭘 하고있는거예요?” 갑작스러운 진이의 출연에 아버지는 깜짝 놀라 멍해 있더니 얼굴을 붉히며 떠듬거렸다. “너… 어… 어떻게 이곳을” “아버지야 말로 어떻게 이곳에 왔어요? 지금 뭘 하고있는거예요?” “그래, 바람이나 쏘이려구…” “네, 아버지도 정녕 바람이 필요했어요?” “지…진이야.” “됐어요.” 진이는 하산길을 따라 허둥지둥 달려내려갔다. 등뒤에서 “진이야—진이야—” 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이를 쫓아오지 않고있었다. 진이는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침에 있었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진이의 눈앞을 스쳐지났다. 아버지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셨다. 전기밥가마에 쌀을 씻어 안친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와를 하고 나오셨다. 그때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난 진이는 방금 수건으로 닦아내서 함치르르한 머리칼을 거울앞에서 손으로 쓰다듬는 아버지를 이상한듯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침에 웬 샤와예요?” “허허허, 아침에 샤와를 하는것도 이상한 일인가? 그새 아버지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살았나보다. 인젠 아버지도 몸을 가꿔야지.” “네.” 진이는 전에없이 들떠있는 아버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우에 앉았다. 웃음이 번지르르 번진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도몰래 호기심이 발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실 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수 없는분이셨다. 시내 큰 공장에 출근하는 아버지는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월급쟁이였다. 공장 경기가 좋아서 달마다 어머니에게 로임봉투를 가져다 바치는 날이면 아버지는 허리를 쭉 펴고 어깨를 살구면서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살려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진이가 열살나던 해부터 공장은 내리막을 쳐오더니 나중에는 일군을 절반이나 줄였다. 차간에서 기술자로 일하시던 아버지도 그번에 밀려서 후근일군으로 옮겨 앉게 되였다. 그 바람에 로임이 줄반이나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집은 광풍을 만났듯 조용할 새가 없었다.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어머니가 이렇게 불을 달면 도화선은 확확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서는 폭발하군 했다. “나더러 어쩌라는거요? 어쩌라냐구? 낸들 이렇게 살구싶어서 이렇게 사는줄 아오?” “남자라는 사람이, 세대주라는 사람이 무슨 방법이라도 돼야지, 공장에서 한달에 7백원을 준다고 그대로 앉아 7백원을 받으며 식구들을 굶겨죽여요?” “굶겨죽이다니? 남편이 벌어들이는 7백원이 적으면 7천원씩 벌어주는 나그네를 찾아 살게지. 누가 다리라도 잡는가?” “그게 새끼까지 싸놓은 나그네가 할 소린가요? 안깐의 기를 톡톡 채워주는 재간이면 어디 가서 은행이라도 털겠어요. 아이구, 내 팔자야.” “에잇, 새까만 세상, 다 망해버려라.” 아버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 뿌려던졌다. 이때면 진이는 당금 터질것 같은 집구석에 쪼크리고 앉아서 무시로 날아다니는 베개며 비자루를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은 하루 또 하루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고리대를 얻어서 외국로무수속을 한다고 헤덤비더니 진이가 열세살 나던 해에 끝내 성공을 하여 외국으로 나가셨다. 말이 거칠고 성격이 팩하여 아버지를 힘들게 하던 어머니였지만 남편을 커하고 자식을 끔찍해 하고 가족을 중히 여기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한분이셨다. 어머니는 외국으로 가서 석달이 지나면서부터 집에 생활비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비록 한달에7백원을 받는 후군일군에 지나지 않았지만 누구처럼 나쁜 생활습관에 물젖은분이 아니셔서 어머니가 보내오는 생활비는 될수록 저축을 하면서 달마다 받는 월급으로 알뜰하게 생활을 조직해나갔다. 아버지의 참다운 행실은 한 시내에 사는 외가집식구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끔 전화가 와서는 외할머니가 전화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면서 아버지대한 고마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외국으로 가서 3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보내온 돈으로 진이네 학교옆에 아빠트 한채를 사서 장식까지하고 이사를 했다. 집들이를 할 무렵 어머니는 외국에서 날아와 진이와 아버지와 함께 그 기쁨을 만끽하셨다. 아빠트에서 한결 나아진 살림을 하면서 진이는 어렵게 찾아온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생활이 좋아지니 아버지도 몸을 가꿀 생각을 하셨나봐.” 그날 아침 진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면서 멋진 옷을 쪽 빼입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눈바램해주었다. 그렇게 나간 아버지가 웬 낯모를 녀인과 함께 모아산으로 데이트를 온것이였다. 분명 찌는듯한 태양아래 나무그늘이 늘어진 오솔길을 걷고있었건만 진이는 불빛 한점 없는 까만 어둠속을 헤집는 기분이였다. 까만 나락속으로 들어가다가 어딘가에 쿵 떨어져내릴것만 같은 공포도 무시로 머리속을 엄습해오고있었다. 진이는 더는 걸음을 지탱하지 못하고 길섶을 찾아 앉았다. 그날저녁 진이는 밖에서 방황을 하다가 늦게야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벌써 진이가 좋아하는 갈비찜이며 갈치구이를 해놓고 진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진이는 주방에서 달려나오는 아버지를 아는체도 하지않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가버렸다. “진이야, 나와서 밥을 먹어라. 밥 먹으면서 아버지의 말을 좀 들어보렴.” 아버지가 진이의 침실문을 살랑살랑 두드리며 애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마저 가면으로 똘돌 뭉쳐진것 같아서 이불을 머리우까지 올리쓰고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더 문을 두드리다가 지치셨는지 잠잠해졌다. 진이는 머리끝까지 올리썼던 이불을 내리우고 꼭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부잇한 달빛이 창문으로 비쳐들었다. 진이는 두눈을 슴뻑이며 흘러가는 둥근달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저 달을 보고있겠지? 어머니가 오늘 아버지의 행실을 보셨다면 얼마나 괴로와 하셨을가?) 생각이 자리를 틀수록 진이의 가슴은 칼로 에이는듯 아파났다. 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손바닥으로 연신 넙쩍다리를 어루쓸며 입술을 감빨았다. (이렇게 맥을 놓고 앉아만 있을수 없어. 아버지하고 뭔가 결판을 내야 해. 아버지가 큰 일을 치려하고있는거야. 아버지를 이대로 놔둘수 없어.) 진이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찾아서 객실로 나갔다. “아버지!” 진이는 객실에서 벌어지고있는 정경에 깜빡 놀라 선자리에 굳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올방자를 틀고앉아 강술을 입에 쏟아넣고있었다. 술은 벌써 얼마나 마셨는지 밑굽에 좀 남아있을뿐이였다. 아버지는 진이의 불음소리에 흠칫 놀라면서 머리를 돌렸다. 술독이 오른 아버지의 얼굴은 벌겋게 충혈되여 있었고 푹 꺼져들어간 두눈은 무시로 슴뻑거리고있었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진이는 가슴이 뭉클해나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왜 이래요? 아버지!” “진이야, 내 아들아.” 아버지가 갑자기 꺼이꺼이 울음을 터치셨다. 아버지는 바싹 야윈 주먹으로 구들을 탁탁 내리치면서 넉두리를 했다. “진이야, 아버지를 리해해다구, 아버지가 누구땜에 버티는데. 진이야, 아버지는 절대 네 엄마에게 미안한 짓은 한적이 없단다. 이게 어떻게 지탱해가는 집인데. 진이야. 아버지를 리해해다오.” 진이는 괴로움에 떠는 아버지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와락 아버지를 안아서 아버지의 침실에 들여다 눕혔다. 아버지는 기어이 진이와 속심의 말을 한다면서 다시 기여일어나셨다. “됐어요. 오늘은 그만해요.” 진이는 아버지를 향해 무겁게 한마디 하고는 문을 닫고 객실로 나와 앉았다. (아버지를 리해하라구? 과연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리해할수 있는데.) 사색은 삼거불처럼 엉켜지기만 했다. 진이는 쏘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머리를 쳐들었다. 디룽디룽 구슬을 단 갓으로 멋을 낸 무리등옆에 언제 묻었는지 파리똥 같은 까만 점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저것들이 언제부터 묻어있었을가?) 하얗게 바래져가는 머리속에서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유표하게 자리를 잡아가고있었다. “그래서 너의 아버지와 데이트를 하던 그년을 때려주었다는거니?” 남자애가 시물시물 웃으며 물었다. “그랬지. 아버지가 괴로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녀와의 거래가 절대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였음을 알았거든. 꼭 그 여우 같은 년이 아버지를 꼬시고있다고 단정을 한거야.” “그래서?” “그래서 기회를 타 아버지의 핸드폰을 몰래 훔쳐보았지. 난 어제야 끝내 그년이 사는 집을 알아냈거든. 오늘 기회를 살피다가 그년이 어디론가 다녀오는 길을 뒤쫓았어. 그러다가 으슥한 골목에서 손을 썼는데 그만 재수 없을라니 옆을 지나던 순라경찰들에게 잡힌거야.” “세상에!” 남자애가 자기 일이라도 되는듯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치며 아쉬워했다. “그래 인젠 어쩔려니?” 남자애가 진이의 옆에 다가 앉으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진이는 맥 없이 “휴—” 하고 거친 숨을 톺아올리고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근데 너 왜 그 녀자를 그렇게 미워하니?” 갑자기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그 바람에 진이는 또다시 외계인을 바라보듯 남자애를 건너다보며 어이가 없다는듯 실소를 지었다. “너라면 그래 그년이 곱겠니?” “곱지는 않겠지만 그다지 미울것도 없을것 같은데” “너의 아버지를 꼬셔서 나쁘게 만드는데도 밉지 않을것 같다구?” “참!” 남자애는 제쪽에서 되려 어이없다는듯 진이를 바라보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젓다가 입을 열었다. “너의 아버지, 뭐 어린애라도 되니? 그 나이에 뭐 꼬시고 꼬시우고가 있니? 녀자가 곁에 없는 나그네가 녀자를 밝히고 남자가 곁에 없는 녀자가 남자를 밝히는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뭐? 인지상정?” 진이는 남자애의 말을 되네이며 눈길을 돌려 남자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인지상정’과 같은 고급스러운 말을 쓰는 남자애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던것이다. 남자애는 그러는 진이의 심중을 읽었다는듯 픽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내말이 우스워? 허허허… 여기 와서 이러구 있지만 나도 한때는 학교에서 손꼽히는 “꼬마작가”였다구. 난 너의 아버지도 리해 할만하구 그 녀자도 리해할만 하거든. 서로 좋아서 못 살겠다는데 네가 뭐 사이에 끼여들것 까지 있니?” “그럼 외국에서 뼈빠지게 버는 우리 어머니는 어쩌라구?” “너의 어머니가 외국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너 알고있니? 물론 뼈빠지게 돈을 벌고있겠지. 허허허… 나의 경험을 얘기 해줄가?” “뭐? 경험?” “그래, 경험. 이면에서 난 너의 선배라구 할수 있지.” “선배라구?” “그래, 선배. 우리 어머니도 외국에 간지 5년철이야. 그새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아니라 폭풍이 난거구.” 남자애는 진이를 바라보며 시물시물 웃어주었다. 진이는 남자애의 그 웃음이 괜히 역겹게 느껴지면서도 또 “선배”요 “경험”이요 하는데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진이는 남자애를 향하여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는 말이니?” “참 이거 말이 통하네. 그렇지. 나도 첨엔 너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거든. 하지만 아버지가 나의 말을 듣고 허파에 들어찬 바람을 뽑아버릴수 있었겠니? 몇번 아버지를 혼내워준다고 가출까지 했던적이 있었지. 하지만 내 따위가 어디가서 혼자 살수 있었겠니? 가지고 나간 돈을 며칠간에 다 불어먹은후이면 다시 그 집구석에 들어오는수 밖에 없었지? 아버지는 할수없이 집에 들어온 나를 하찮은 버러지 대하듯하면서 아버지처럼 안 살려려거든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하라는거야.” “너의 아버진 어떤 사람인데?” “평범한 로동자였지. 급이 있는 간부들처럼 돈이라도 잘 벌면 왜 안깐을 외국에 돈벌러 내보내겠는가 하는거야, 아버지 말도 틀린것은 없지. 자기 안깐을 외국에 내돌리고싶은 나그네가 어데 있겠니?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니까 너나없이 안깐들을 외국으로 내돌리는거겠지?” 남자애는 험한 세상을 다 살아본 나그네처럼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에게 새록새록 호기심이 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넌 가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가족?”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짤막하게 한마디 되묻고는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진지해지는 남자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진이는 괜한 물음을 물었나 하고 후회를 했다. 갑자기 남자애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두 볼을 푸들푸들 떨었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소측험을 마치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에 돌아와보니 녀자의 신이 바닥에 보이는거야. 난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을가 하고 제 좋은 생각을 했지. 나는 ‘누가 왔어요?’ 하고 소리치며 뛰여가 다짜고짜 아버지의 침실문을 밀어열었어. 맙시사. 아버지가 급히 침대를 내려서고 홀랑 벗은 한 녀인이 이불을 당겨다 가슴을 막는거야.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막 미칠것만 같았어. 나는 주방에 달려들어가 식칼을 뽑아다가 미친듯이 그년한테 달려들었지. 아버지가 나에게 덮쳐왔어. 하지만 눈에 달이 오르니 아무것도 두려운것이 없었어. 나는 아버지를 옆으로 동댕이치고는 끝내 식칼로 그년의 엉뎅이를 찔러버렸어. 이웃에서 발견하고 110에 신고를 한거야. 나는 그 길로 파출소에 끌려갔지.” 남자애는 말을 마치고 쩝쩝 입을 다셨다. 진이는 어쩜 남의 이야기를 하는듯 덤덤해있는 남자애에게 조르듯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찌됐니?” “흥, 나는 결국 행정구류 보름만에 풀려나왔거든. 내가 나오는던 날 아버지가 구류소문앞까지 마중을 왔었어. 풀이 죽어 나오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뭐라했는지 알아?” “뭐랬게?” “허허허… ‘얌마 너 이번에 엄마가 보낸 돈을 5천원이나 말아먹었다’ 이러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 돈 아니면 내가 어떻게 되는건데요?’ 하고 물었지. 아버지가 사람을 통해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로동교양을 할뻔했다는거야. 하하… 돈, 참 좋은 물건이지. 그래 , 엄마가 외국에서 돈을 잘버는거 아니야? 그때로부터 난 무서운게 없어졌어. 그랬지. 돈만 있으면 무서운게 없는거야.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인거지.” 남자애가 어깨를 으쓱하며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진이는 도도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남자애의 얼굴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남자애는 자기의 이야기에 괜히 흥분되는듯 연신 손사래를 해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돈이 있으니 친구들도 구름처럼 모여드는거야. 처음 구류소에 갔을 때 아버지가 돈을 많이 넣어주었기에 나는 안에서 하나도 힘들게 살지 않았거든. 형님들이 구석구석 나를 돌보아준거야. 들어가서 사흘만에 나는 변기옆의 쌰푸(下铺)에서 형님들옆에 눕게 됐지. 돈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구류소에서 나와 며칠 안되자 안에서 친한 형님들이 나를 찾아온거야. 쳇, 나의 전성시대가 열린거지. 아래개방지에서 난 일거에 솟아올랐거든. 아래개방지에서 따팡(大胖)이라면 알만한 애들은 다 알아. 얼음두 형님들 덕분에 그 맛을 알게된거야. 챠— 얼음을 하고난후의 그 붕— 뜨는 기분, 뭐라구 표현해야 하나? 하하하… 나 인젠 여기 단골손님이 됐어. 이 파출소에 모르는 경찰이 없거든.” 남자애는 또다시 그 황홀경에 빠진듯 손벽을 짝짝 쳐댔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지켜보다가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엄마들이 그 돈을 벌자면 엄청 힘들텐데.” “흥, 힘이 들겠지” 남자애는 픽 랭소를 하며 진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 어머니 보구 빨리 돌아오라고 해봐. 돌아오는가. 힘들어도 외국생활이 더 좋은가보지 뭐. 가족? 난 안 믿어. 지금은 가족이 없는 세월이야. 우렁이속 같은 새까만 세상이거든.” “왜 그렇게만 생각하니? 아버지어머니들은 그래도 가슴에 자식들을 품고 살텐데.” “자식? 말 한마디 잘하고있네.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5년이 되도록 외국에서 떠돌게? 말이야 좋지. 자식 대학공부시키자고 외국에서 손이 발이되게 번다구? 그러는 사람이 내가 이 지경으로 돼도 왜 안돌아오는거지? 생각할게 뭐 있어? 돈, 돈이면 되는거야. 그래서 난 인젠 아버지의 녀자들을 미워 안해. 좋잖아. 외국에서 어머니가 소비돈을 보내주구 국내서는 그년들을 찾아가 아지미아지미 하고 살갑게 둬번 불러주면 또 돈이 생기는데. 아버지도 두눈을 찔끔 감구 못보는체 하는거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거지 뭐. 이게 세상인거야. 새까매서 속은 들여다 볼수 없지만.” 남자애는 말을 마치고 입을 쩝쩝 다시며 두 손바닥을 탁탁 털어대더니 또 한번 하하하 웃었다. “어떤 놈이 쓴거야,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하하하… 그놈도 나만치나 답답한 놈이네. 하긴 제딴에 그놈의 속을 보아낼수 없을 테지.” 남자애는 진이가 걸상우에 오려놓은 글자를 가리키며 껄껄 웃어댔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보면서 웬지 몹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첫눈이 내린 전야처럼 하얀색으로 뒤덮인 벌판은 끝이 보이지 않을만치 허허 넓었다. 진이는 하아얀 벌판을 걸으면서도 자기가 까만 턴넬속을 허이허이 헤쳐간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등에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있는듯해서 몹시 숨 가쁘고 힘들었다. 진이는 걷고 걷다가 잦아드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선자리에 주저 앉았다. 갑자기 발이 닿인 땅이 쿵 하고 꺼지면서 자기가 정처없이 아래로 내리 꼰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가 머리를 숙여보니 아래는 깊이가 보이지 않는 까만 동굴이였다. 진이는 뭔가를 잡으려는 욕망으로 손을 허우적 거렸다. 진이의 옆으로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도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도 스쳐가고 스쳐오고 했지만 누구 하나 진이를 잡아주지 못하고있었다. 진이는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가슴이 터지는듯싶었다. 이때 어디선가 “진이야—진이야—” 하고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그 부름소리를 찾아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임자를 잡으려고 두손을 허우적 거리다가 어딘가에 머리를 부딛치며 두눈을 번쩍 떴다. “자식, 팔자가 좋네. 잠꼬대까지 다 하구.” 누군가 자기의 머리를 툭 내리치고있었다. 진이는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철문이 반쯤 열려져있었고 몸집이 갱핏한 젊은 경찰이 어느새 들어와 진이의 곁에 서있었다. 눈에 잠기가 가득찬 젊은 경찰이 석쉼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진, 나가.” “…” 진이는 속에서 널장같은것이 쿵 하고 떨어져내렸다. (진짜 구류소로 가는것이 아닐가?) 진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다는 말의 참뜻을 그 시각에야 진정 깨치는듯싶었다. 진이는 머리를 돌려 황급히 남자애를 찾았다. 남자애도 경찰의 소리에 놀라 잠을 깼는지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등으로 눈을 부벼대고있었다. 진이는 구원이라도 청하는듯 남자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애의 퀭하니 뜬 눈길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진이는 입술을 감빨며 남자애가 앉아있는 걸상우에 눈길을 던졌다.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접대 이를 옥물고 오려놓은 글자가 아렴풋이 진이의 눈에 안겨들었다. 진이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쇠창살밖으로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해? 빨리 안나가구?” 그때 젊은 경찰이 꽥 하고 소리쳤다. 진이는 절망한듯 머리를 푹 숙이고 뚜벅뚜벅 철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컴컴한 복도를 따라 서너메더쯤 걸어가자 젊은 경찰이 직발실과 갈라 놓은 철문을 열었다. “삐이익—” 쇠붙이가 엇갈리는 소리가 청승스럽게 고요를 깨고있었다. 그 소리에 진이는 또 한번 으스스 몸을 떨면서 젊은 경찰을 따라 철문을 넘어 직발실에 들어섰다. “진이야.”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진이를 불렀다. 진이는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의 임자를 찾았다. 아버지가 컴퓨터를 올려놓은 책상옆에서 진이를 부르고있었다. 아버지의 옆에는 그 밉살스러운 녀인이 서서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진이는 아버지를 부르려다 말고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가 진이쪽으로 허둥지둥 다가왔다. “진야, 너 어쩜… 이게 무슨 꼴이냐?” 아버지가 진이의 손을 잡았다. 진이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손을 힘껏 뿌리쳐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진이의 팔을 부여잡으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미안하다. 지…진이야.” “왜 왔어요?” 진이는 차거운 목소리로 한마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부들부들 몸을 떨고있었다. 진이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 아예 창문쪽으로 머리를 돌려버렸다. 아버지는 진이의 팔을 흔들면서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야, 다 아버지를 탓해라. 다 아버지의 불찰이니까. 하지만 너 저 아지미에게 그러는건 아니였는데. 어서 저 아지미께 사과를 해라. 아지미두 널 용서해 줄거다. 아지미의 용서를 받구 우리 빨리 집으로 가자.” 아지미에게 용서를 빌라는 말에 진이는 머리를 돌려 그때까지도 책상옆에 요지부동으로 서있는 녀인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듯 하던 녀인의 눈길이 진이의 차디찬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녀인이 흠칫 하더니 인차 진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너 진이가 맞구나. 어제밤 너에게 당한후 나는 집에 가서 많은 생각을 굴려보았단다.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내구 오늘까지 나는 딸 하나를 키우면서 맹세코 남에게 미안한것 없이 살아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보고 ‘이 나쁜 년 죽여버리겠다.’고 이갈리게 나를 증오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거지. 그러다가 접대 모아산에서 나에게 쏘던 너의 눈길이 떠오르더구나. 그래서 혹시나 하여 너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던거다. 너의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기에 함께 여기를 찾아온거구…” 진이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녀인의 말을 들어주었다. 어쩜 변명 같기도 한 말이였지만 진이로서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를 똑똑히 들어보고싶었고 그 변명속에서 아버지의 청백을 가려내고싶었다. 녀인은 또박또박 아래 말을 이어나갔다. “나와 너의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사이가 아니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송아지친구거든. 서로 외롭게 사는 처지라 오래전부터 속탄 말도 해오구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기도 했단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남 부끄러운 사이는 아니란다. 내 딸의 인격을 걸고 맹세하지만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란다.” 여기까지 말한 녀인은 갑자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지친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듯 선자리에 쪼크리고 앉으며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서진, 여기에 서명을 하구 아버지를 따라 집에 가서 잘 반성을 해봐.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길을 막고 사람을 때리는건 위법이야. 알겠어?” 젊은 경찰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치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는 그러는 경찰 쪽으로 다가가 경찰이 가리키는 곳에 “서진”이라고 서명을 했다. 아버지가 쪼크리고 앉아 어깨를 들먹이는 녀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녀인은 겨우 몸을 움직이며 손등으로 눈굽을 찍었다. “진…진이야, 집에 가자.” 아버지가 진이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진이는 터벅터벅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갔다. 영원히 밝지 않을듯 까맣던 하늘귀가 서서히 들리며 불깃불깃한 잔광을 내뿜고있었다. 멀리서 새 아침이 열리는것 같았다. 까만것, 진이는 속으로 까만것은 모름지기 살아지게 되여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33    “시와 시민의 만남 중한시화전”이 연길시 인민공원에서 댓글:  조회:2348  추천:0  2010-03-10
    “시와 시민의 만남 중한시화전”이 연길시 인민공원에서 개최됐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와 한국시민문학협회 등 중한 양국 5개 부문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시와 시민의 만남 중한시화전”이 오장숙 전 전국인대 상무위원,채영춘 중공 연변주위 선전부 부부장,허룡석 연변작가협회 주석,성균경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장 등 국내외 시인,소설가 등 문학인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5월30일에 연길시 인민공원에서 있었다. 이번 중한시화전에는 중국조선족 동시편 21수,성인시편 35수 그리고 한국시편 20수가 전시되었다. 김득만 시인의 사회하에 열린 이번 시화전에서 한석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회장은 “문화민족이라고 자칭하는 우리 민족은 어느 때부터인가 시를 멀리하고 있어 지난세기 50년대 학교들에서, 문화축제에서 낭낭하게 울려퍼지던 시낭송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고나서 “바야흐로 일어나고 있는 독서열조속에 시를 읊고 시를 낭송하는 열기도 불꽃처럼 피여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에서 이번 중한시화전을 펼치게 되었다”고 했다. 성균경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장은 축사에서 “오늘 한중 양국의 어린이를 위하여 이곳 연길시 인민공원에서 합동시화전을 개최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국문화를 말살한 일제강점기와는 달리 자국 내 소수민족의 언어와 글을 허용하고 오늘 합동시화전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넉넉함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번 시화전은 연길 인민공원에서 한주일간 연 뒤에 도문시 두만강변에서 다시 막을 올리게 된다.  
32    제3집 댓글:  조회:2342  추천:0  2010-03-10
    중국소년아동출판사에서 일전에 펴낸 제3집 에 실린 최동일의 작품사진들이다. 에는 1960년부터 1979년사이에 출생한 106명 우수한 청년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였다. 계렬은 소설, 동화, 우화, 산문, 시 등 쟝르로 구분되여 있는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중국 제5대 아동문학작가군의 집단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 책은 목전 국내에서 활약하는 아동문학 중견작가들의 창작수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고 평가했다. 제3집 "특소설"은 17명 작가의 우수아동소설 17편이 수록되였다. 작가들의 창작풍격이 각이하고 일부 작품들은 선명한 민족풍격을 보여주고있다. 부성애를 다룬 작품과 심리적이고 서정적인풍격을 띤 작품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아름다운 감수를 느낄수있을것이다.  
31    수필*민이야 강변 가자 댓글:  조회:1719  추천:3  2010-03-10
민이야 강변 가자 민이야, 아빠는 오늘 강변을 거닐다가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를 보았단다. 긴긴 겨울 단잠에서 조용히 깨여나 캐드득 신나게 기지개도 펴면서 들판은 하늘하늘 아지랑이를 키웠나보구나. 그래, 분명 봄이 온거야!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수도 있지만 분명 아빠의 눈에는 반짝반짝 피여오르는 작은 별들이 보여오더구나. 마치도 엄마의 젖무덤을 마음껏 파헤치고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듯 보조개를 파며 엄마를 바라볼 때, 우리 민이의 마알간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던 그 별같은 빛 말이다. 별이 흐르는 민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빠는 그날 새로운 꿈에 젖어들었더랬지. 그래 아빠에게도 아빠만의 소박한 꿈들이 많고많단다. 꿈이 있다는 것, 얼마나 사람을 흥분시키는 일이니? 아지랑이 피여나는 봄은 원래 꿈 꾸기 좋은 계절인지도 몰라. 민이야, 강변 가자! 아빠랑, 민이랑 강변에 가서 아지랑이 피여나는 강변을 거닐며 우리만의 소박한 꿈을 마음껏 꾸어보자꾸나. 민이야, 오늘 아빠는 강변을 지나다가 길섶에 피여난 뭇꽃들을 보았단다. 그래, 지난 봄, 별이 흐르던 민이의 눈빛을 그려내게 했던 그 아지랑이가 피여나던 강변말이다. 아빠를 반겨주던 나리꽃도 고왔고 아빠의 바리자락을 잡아주던 초롱꽃도 고왔지.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가지 풀꽃들도 아빠를 향해 손짓하더구나. 오가는 길손들에게 조용히 향기를 주고 웃음을 주고 마음을 주는 이름없는 풀꽃들을 스쳐가노라니 아빠의 마음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 민이야! 여름은 바로 이런 계절이란다. 봄날에 심은 꿈들을 튼실하게 키워주는 그런 계절말이다. 그 꿈이 민들레의 꿈이래도 좋고 초롱꽃의 꼼이래도 좋은거지. 꿈이 커서만 맛이냐? 어떻게 자기만의 꿈을 보다 당차게 가꿨는가가 중요한거지. 그래, 우리 민이의 꿈은 얼마나 컸을가? 아빠는 또 민이를 떠올리게 되고 민이의 꿈을 그려보게 되더구나. 민이야, 강변 가자! 우리 함께 손잡고 꿈이 익는 여름날의 강변길을 거닐으며 서로의 커가는 꿈을 살펴보자꾸나. 민이야, 오늘 아빠는 강변을 지나다가 싱그러운 곡식향기를 맡게 되었단다.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며 기지개를 켜던 들판에서 벼꽃이 화사하게 피여나나싶더니 어느새 황금물결을 설레이며 오가는 길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구나. 민이야, 이게 바로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이제 벼들이 부지런한 농부아저씨의 손끝에서 쌀이 되고 재간 많은 이웃집 아줌마의 손에서 떡이 되어 배나무집 큰손자의 첫돌생일상에도 오르고 청기와집 맏아들이 장가가는 잔치상에도 오르게 되겠지. 지난 여름 폭풍이 내리던 날, 논밭에서 그 폭풍을 다 맞아가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병충해의 피해가 그렇게 심해도 떳떳하게 살아온 것이 바로 오늘의 이 결실을 위해서가 아니겠니? 비록 맺어놓은 열매는 남보다 좀 못할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비바람에 끄덕없이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할수 있는것이란다. 민이야, 강변 가자! 가을이 온 강변길을 조용히 거닐으며 나는 인생의 가을에 가서 어떤 열매를 맺겠는가를 떠올려보자. 아차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이 자연의 흐름과 함께 진정 나만의 열매를 익혀가야지… 민이야, 오늘 강변을 거닐며 보았더니 산과 들에 하아얀 눈이불이 덮혀있더구나. 봄내 여름내 가으내 철철이 맞춰가며 이야기도 많이 엮어대더니 자연은 어느새 산과 들에 두툼한 눈이불을 덮어주었더구나. 그 봄날의 황홀하던 아지랑이도 그 여름의 울긋불긋 피여나던 풀꽃들도 그 가을의 싱그러운 곡식향기도 모두가 지난 일이라고 일깨우는 듯, 그 어데나 똑같은 눈이불을 덮어 잠재워주는 겨울은 누구에게나 엄격한 계절인가싶다. 눈덮인 들판을 보아라. 얼마나 좋니? 한순간의 실수로 농사 망쳐버린 사람도 부지런한 노력으로 어거리 풍년을 안아온 사람들과 똑같이 편한 휴식을 보내고 다음해에는 더욱 분발하라 고무해주시는 겨울의 그 흉금에 실로 탄복이 가는구나. 그래, 민이야! 실패는 두려운게 아니란다.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올게 아니니? 자연은 이렇게 넓은 흉금으로 우리에게 잘못을 고칠 기회를 주고 새로운 꿈을 심을 기회도 주는거란다. 잘못을 시정할줄 아느냐 모르냐가 중요한거지. 민이야, 강변 가자. 눈이 온 강변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조용히 지나온 어제를 다듬어보고 새로운 꿈을 심어보자꾸나. 그래, 우리에겐 우리 모두를 축복해주는 자연이 있지 않니? 민이야, 강변 가자…
30    아동소설*강아지가 되고싶어 댓글:  조회:1623  추천:0  2010-03-10
“호호호… 피줄은 정말 못속이는가봐요. 저 애가 당신한테 무슨 정이 있다구 맨날 아빠 보고싶다 조르는거얘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며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허… 내가 누구때문에 외국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다 당신하구 우리 민호를 위해서가 아니요? 암튼 당신도 애 많이 썻소. 혼자서 집 돌보구 저애를 돌보느라구.” “저야 뭐, 집 떠난 당신이 고생이였죠.” 민호는 또또에게 잘게 자른 쏘세지쪼각을 뿌려주다가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 시각 엄마는 사랑이 퐁퐁 솟아오르는 눈길로 아빠를 바라보며 코막힌 목소리로 애교넘치게 말하고있었습니다. 민호는 그러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굴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삼촌을 보게 되면 엄마 말대로 두눈을 꼭 감아버리는거야. 그래야 삼촌하고 놀고싶어도 놀지 않게 되는거야. 두눈을 꼭 감으면 삼촌을 볼수가 없으니까 놀지 못하는거지. 헌데 엄마는 어째서 삼촌을 보고도 모르는체 하라는것일가?) 민호는 생각할수록 엄마의 말과 행동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럴수록 아빠트 3동에 살고있는 잘 생긴 삼촌이 더 보고싶어지는것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삼촌이라면 좋겠네.) 민호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굴리며 살뜰하게 엄마의 손을 만지고있는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민호에게 있어서 아빠에 대한 인상은 오뉴월 개울가의 하늘대는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할뿐이였습니다. 아빠는 민호가 3살 때 외국으로 갔다가 4살 때 한번 와서 석달 간 휴식한후 다시 외국으로 가셨던것입니다. 민호 나이 올해 여섯살이니 그 석달간의 기억도 진작 머리속에서 살아진지 오래답니다. 엄마네 회사에 손님이 와서 엄마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민호는 하얀 강아지 또또와 함께 놀아야 했습니다. 또또는 어린 민호를 얕보아서인지 민호가 쏘세지며 과자며를 챙겨주어도 도무지 잘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호는 또또와 늘 싱갱이질을 했지만 그래도 또또마저 없으면 심심해서 어쩔가 하고 생각하며 늘 고맙게 생각하고있었습니다. 민호가 이렇게 외로움에 지쳐있을 때 어느날 문뜩 민호앞에 나타나서 지금까지 쭉 재미나게 놀아주던 삼촌이 아빠가 외국에서 돌아오자 발길을 딱 끊은것입니다. 민호는 두눈을 살며시 감고 처음 삼촌을 만나던 그 날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빠트앞의 백양나무에 노오란 잎 하나가 남아서 외로이 찬바람에 떨던 늦가을의 어느날이였습니다. 엄마는 유치원에 가서 민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민호에게 저녁밥을 차려준후 회사에 손님이 왔다며 다시 나간다고 했습니다. “엄마, 나 무서운데, 혼자서는…” “무섭긴 다 큰 애가. 저녁밥을 먹구 텔레비죤을 보다가 먼저 자거라.” 엄마가 거울앞에서 화장을 고치며 말했습니다. 민호는 그러는 엄마를 곱지않게 바라보며 종알거렸습니다. “봐라. 아빠를 빨리 돌아오라 하라는데. 아빠 있으면 이럴 때 안 무섭잖아.” “얘를 봐라. 엄마가 돌아오지 못하게 해서 안오는거니? 돈 벌려구 안오는거지.” “아빠가 없으니 무섭잖아? 내 말이 틀려?” 민호가 제법 어른스럽게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엄마를 째려보았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럼 아빠를 하나 사오면 되겠네.” “뭐? 아빠를 사와? 그래도 돼?” 엄마의 말에 민호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습니다 “호호호… 사올수도 있지. 아차, 늦었다니까. ” 그날 밤, 엄마는 과연 한 남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남자의 손에는 커다란 과일바구니가 들려져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남자를 가리키며 삼촌이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삼촌이라구? 저런 삼촌은 없었는데…) 민호는 이런 생각을 굴리며 “삼촌”이라는 그 남자를 유심히 뜯어보았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볼에 꺼슬꺼슬한 수염이 터를 잡은 남자는 민호가 보기에도 잘생긴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본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더니 민호를 훌쩍 들어 넓은 품에 안아주며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민호라고 했지? 참 잘생겼구나.” 아침에 깨여나보니 엄마는 그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고 앉아서 아침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그날이후로 그 남자는 늘 민호네 집에 왔습니다. 남자는 민호와 참 잘 놀아주었습니다. 민호는 그 남자가 태워주는 비행기놀이를 제일 즐겨했습니다. 민호가 또또를 들고 그 남자의 발바닥에 배를 붙이면 그 남자는 “한국으로 간다-”, “북경으로 간다-” 하고 소리치며 두다리를 쑥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면 민호는 배가죽이 간질간질해나서 까르르 웃어대군했습니다. 민호의 손에 들려 함께 비행기를 타는 또또도 신나는지 “콩-콩-” 하고 성수나게 짖어댔습니다. 민호는 차츰 그 남자가 좋아져서 진짜 삼촌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삼촌은 민호에게 자기도 이 아빠트의 3동에 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삼촌과의 즐거운 놀이속에서 늦가을이 가고 겨울이 흐르고 봄이 지났습니다. 고약하게 무덥던 며칠전의 그날 저녁 엄마와 민호는 쪼갠 수박 몇쪼각을 비닐봉지에 담아들고 정원으로 나와 정자를 찾아앉았습니다. 엄마는 입으로 수박씨를 툭 뱉어버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민호에게 아빠가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잘 생긴 삼촌때문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차츰 잊쳐져가는지라 민호는 아빠가 돌아온다는 사실이 기쁜지 어떤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민호야, 아빠가 돌아온후 혹시 아빠가 있을 때 그 삼촌을 보게 되면 절대 그 삼촌에게 인사를 해선 안된다. 그리구 그 삼촌이 우리 집에 놀러왔었다는 말을 아빠에게 해서도 안되구.” “왜 안돼? 엄마. 나는 삼촌이 아빠보다 더 좋은데.” “그래도 안돼.” “그러다 삼촌이 보고싶으면 어떻게 해?” “호호호… 우리 민호 정말 삼촌을 좋아하나봐? 그래 삼촌이 보고싶으면 두눈을 꼭 감아. 그러면 삼촌을 못볼게 아냐? 그리구 아빠는 석달만 집에 있다가 또 돈벌러 가거든. 그러니 아빠가 간 다음 다시 삼촌을 보면 되는거지 뭐.” “석달이라는게 얼마나 길어? 암튼 그새 난 삼촌이 보고싶을텐데. 우리 삼촌을 그냥 놀러오라 해서 아빠랑 함께 놀면 안돼? “글쎄 안된다니까.” “왜 안돼? 난 좋을것 같은데.” “한집에서 아빠랑 삼촌이랑 함께 살수 없거든.” “그래? 한집에서 아빠랑 삼촌이랑 함께 살수 없는거야?” “그렇지? 아빠 있는데서 삼촌을 보고 아는체를 하면 너 다시 삼촌을 볼수 없어” “어른들은 참. 그럼 난 아빠가 오지 말았으면 좋겠네.” “저런, 아빠가 들으면 큰 일 날 말을… 암튼 민호야, 우리 약속한거다. 우리 민호 용하지? 잘 할수 있지?” 엄마는 전에없이 살뜰하게 민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민호는 공항홀에서 처음 자기를 보고 “잘 있어냐?” 하면서 어깨를 툭 치는 아빠가 어쩜 길 가던 아저씨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아빠는 삼촌처럼 그렇게 키도 크지 않았고 어깨도 넓지 못했습니다. (참 이상하지. 엄마는 왜 삼촌을 보고도 못본체,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라는것일가? 또또랑 같이 삼촌의 발비행기를 타는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어른들은 참 이상하거든. 왜 안된다는걸가? ) 민호는 또또에게 쏘세자를 잘라먹이며 또 그 생각을 이어나갔습니다.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당신 이번에 아예 눌러 앉으면 안돼요? 여기서 뭐 돈나오는벌이를 벌려봅시다.” “어린애처럼. 이제 한 5년 더 고생하기요. 한 백만원을 저축해놓으면 무서운게 없을게 아니요?” “참, 당신이 고생하는게 마음 쓰여 그러죠.” 엄마는 주먹으로 눈굽을 찔끔찔끔 찍으며 아빠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는것이였습니다. 순간 민호는 삼촌을 처음 만난 이튿날아침에 엄마가 삼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아침뉴스를 보던 장면이 떠올라 또 삼촌이 보고싶어졌습니다. (삼촌은 뭘하고있을가? 삼촌은 내가 보고싶을가? 또또야, 너두 삼촌이 보고싶지?) 민호가 이런 생각을 굴리며 또또에게 눈길을 돌릴 때 갑자기 또또가 콩콩 짖어대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또또야.” 또또는 민호의 부름소리도 듣는둥마는둥 앞으로 깡충깡충 뛰여갔습니다. “어딜가? 또또, 돌아와” 민호는 또또를 부르며 달려가다가 선자리에 굳어졌습니다. 삼촌이 정자쪽으로 걸어오고있었던것입니다. 민호는 정자에 있는 아빠와 엄마를 힐끔 건너다보고는 두눈을 꼭 감았습니다. 두눈을 뜨고 삼촌을 오래본다면 “삼촌- ” 하고 부르면서 달려갈것 같아서였습니다. “또또야. 이리 와라.”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민호는 두눈을 번쩍 뜨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또또는 벌써 삼촌에게 안겨 꼬리를 저으며 좋아서 죽겠다는듯 삼촌의 손바닥을 핥고있었습니다. (네가 아빠 있는데서 삼촌을 보고 아는체를 하면 다시 삼촌을 볼수 없어.)라고 하던 엄마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났습니다. 민호는 급한 마음에 두눈을 크게 뜨고 아빠랑 엄마랑 앉아있는 정자를 건너다보았습니다. 마침 아빠의 눈길이 또또를 안은 삼촌의 몸에가 박히고있었습니다. (참, 어쩌지, 또또는 삼촌을 보고 좋아해도 괜찮은걸가?) 민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빠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도무지 성낼 모습이 아니였습니다. (뭐야! 또또가 삼촌을 좋아해도 아빠는 성내지 않는거야? 정말 그런거야?) 민호는 못내 또또가 시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처럼 자기도 삼촌의 품에 안겨 삼촌의 꺼슬꺼슬한 수염을 만져보고싶었습니다. (강아지가 되고싶어…) 순간 민호는 자기의 머리속에 “강아지가 되고싶다”는 괴상한 생각이 똬리를 트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29    2010년 조글로 새해맞이 축제 댓글:  조회:2376  추천:0  2010-03-10
    2010년 조글로 새해맞이 축제가 2월 11일에 대주호텔에서 있었다. 문화계, 언론계, 기업계의 인사들이 모여 환락의 한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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