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일은 볕이 나려나?
1
“저리가, 저리. 임신한 애를 먹여야지. 네놈이사 한개 맛이나보면 안되냐?”
그날도 할머니는 삶은 닭간을 포장한 비닐봉지를 뜯으며 무릎앞에서 뱅뱅 돌아치는 노란 털의 강아지를 훈계했다.
3일전에 처음 보며 호기심을 느꼈던 그 할머니와 강아지들이였다. 할머니는 그날도 사람들이 붐비는 간이역에서 십여메터 뒤에 떨어져있는 아빠트의 콩크리트층계에 앉아 강아지들과 씨름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옆에는 배가 뚱뚱한 얼룩털의 강아지가 엎드려있었는데 빨간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할머니를 쳐다보고있었다. 할머니의 손짓에 따라 오르내리는 눈길로 보아 얼룩이는 어딘가 여유있는 표정이였다. 할머니는 비닐봉지에서 닭간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은후 얼룩이앞에 내밀었다. 얼룩이는 날름 닭간을 물어 입에 넣었다.
“이놈봐라, 잘두 먹는걸. 벌써 몇개째냐? 쟤는 한개 밖에 못 얻어먹었는데. 너는 남편 잘 맞난줄 알아라.”
무릎아래에서 꼬리질하는 개 두마리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입가에 알릴듯 말듯 웃음을 피워물었다.
“얘, 얼룩이 남편이예요?”
내가 호기심이 동한듯 노랑이를 가리키며 한술 뜨자 할머니는 두눈을 쪼프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깊은 주름살이 조글조글 패여진 가무잡잡한 얼굴에 아침해살이 살포시 내려 앉은것이 금세 고랑마다에서 따스한 김이 서려오를것만 같았다.
“양, 3, 6, 9 장보러 가는 길이라우. 아침에 일찍 가야 괜찮은 자리를 차지 하지 그렇잖으믄… ”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가 16일이라고 밝혀져있었다.
“네, 오늘이 장날인가요?”
“돈이사 무슨 돈이 되겠소. 늙은게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러지.”
할머니는 얼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혼자말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의 이상한 거동에 잠간 어정쩡했던 나는 인차 머리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랑이와 얼룩이 외에도 큼직한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다. 나는 유심히 보닐봉지를 살펴보았다. 안에는 깨끗하게 다듬은 미나리가 들어있었다. 나는 할머니곁에 쪼크리고 앉으며 물었다.
“할머니 캐신거예요? 이 미나리.”
“양, 얘가 우리 집 모캐서 며칠 돌아다니기에 임자 없는 놈 같아서 먹다 남은 밥이랑 주었더니 인차 내게 맘을 붙이더라니까.”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노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한듯 노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 전에는 얘가 떠돌이였겠네요?”
할머니는 얼룩이를 가리키며 나의 물음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던게 어느날 나갔다가 이놈을 꽁무니에 달고 들어온거라우. 그래서 그냥 먹이를 주었더니 제법 두놈 다 이렇게 내게다가 맘을 붙인게 아니겠수. 이 늙어서 쪼그라든 할망구두 의지이 되는지 이렇게 졸졸졸 내 꽁무니만 따라다닌다우. 이렇게 내곁에서 팽팽 돌아치다가두 내가 차에 앉아떠나면 뻐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바램을 하다가 집에 돌아간다우. 어메— 말은 못해두 정이사 사람 초과하지비. 암 초과하구 말구그래.”
할머니는 두손으로 노랑이와 얼룩이의 목을 끌어안더니 천천히 당겨다가 얼굴을 부볐다. 노랑이가 해살이 묻어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이그, 얘 이런다오. 사람한테. 침이 묻는다, 끈쩍끈적하게. 저리 가 저리.”
입으로는 노랑이를 책망했지만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있었다.
그림 같았다. 아니 그림이 옳았다. 가슴속밑자락에 정연히 모셔져있는 파아란 물감이 똑똑 떨어지는 내 동년의 한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하는 그림이였다.
“왜 그러니?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이 덤벙거리니?” 하고 책망하면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어머니의 손길은 나의 자신심을 키워주는 보슬비였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져 바지무릎이라도 판내우면 다른 애들은 집에 가서 엄마에게 된 욕을 먹을 일이 근심스러워 눈물을 줄줄 흘렸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근심을 해본적이 없었다. 엄마의 욕이 두려워 운것이 아니라 또 엄마를 힘들게 만들었구나 하는 미안함에서 눈물이 흐를뿐이였다.
“이그이그, 기어이 목젖이 방아를 찧냐? 요것은 남겼다가 저녁에 얼룩이를 주자 그랬는디. 엿다, 먹어라.”
할머니는 호주머니에서 닭간을 포장한 작은 비닐봉지 몇개를 깨내더니 쪽쪽 아구리를 찢어 손바닥에 쏟아놓고 노랑이앞에 내밀었다. 얼룩이가 슬금슬금 다가들었다.
“그만 해라. 너는 그만하라이까. 얘두 천신 좀 하게스리. 흐메— 저기 뻐스가 오능기라. ”
할머니는 꼬부장한 허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후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 서서 왼손으로 등을 톡톡 두드렸다.
2
“또 나오셨네요, 할머니. 오늘도 장마당에…”
내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전에 할머니가 손사래를 했다.
“말을 안 듣는다우. 되우 말을 안 듣는게지. 얘가 문제라니까.”
할머니가 노랑이의 머리에 꿀밤을 한대 먹여주었다. 노랑이는 그게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저으며 할머니의 주먹을 핥으려고 다가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인차 내밀었던 주먹을 펴서 노랑이의 머리를 살살 만져주었다. 그것이 시샘이 났던지 곁에 엎드려있던 얼룩이가 부시시 기여 일어나 할머니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할머니의 손에 입을 가져갔다. 노랑이는 할머니의 손을 얼룩이와 나누기 싫다는듯 엉뎅이로 얼룩이의 옆구리를 밀어쳤다.
“아서라, 이 철없는것아. 임신한 애 허리를 그렇게 쳐놓으면 어쩌냐? 쯧쯧쯧… 네가 문제라니까.”
할머니는 앉은 자세로 허리를 굽히며 두손을 내밀어 노랑이를 안아다 바른쪽에 옮겨놓고는 손가락을 오무려가지고 노랑이의 등을 살살 긁어주었다. 말 안듣는 손군을 어루는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듯싶었다. 나는 쪼크리고 앉아 노랑이의 머리를 다독이며 한마디 했다.
“할머니. 얘들을 돌보느라 심심할 새 없겠어요.”
“얘가 문제라오. 애들보다두 장난이 더 심하다오. 어제는 글쎄… 그래 어떠냐? 이놈아, 오늘 닭간을 못 먹으니. 돈이 어디 있어 닭간을 사주겠냐? 그것두 하나에 50전씩이나 하는데.”
할머니는 노랑이의 어깨를 톡 쳐주고는 얼굴을 내쪽에 돌리며 시무룩히 웃음 한자락을 펼쳐나갔다.
“어제는 글쎄 벤또(도시락)를 사가지고 얘하구 같이 저기 강변으루 미나리 캐러 갔다우. 얘는 임신이라 배가 무거워 따라 나서지 못하구…”
할머니는 잠간 말을 멈추고 얼룩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한번 입가에 가는 실웃음 한오리를 걸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강역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미나리두 캐지 쉽잖다우. 암 쉽지 않지. 나는 도시락을 나무그늘밑에 놓구 미나리를 캐기 시작했다우. 그런데 저눔 노랑이가 내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찌나 애를 먹이던지… 그래서 혼뜨검 좀 내주느라구 신을 벗어쥐구 저눔 엉뎅이를 냅다 답새겼드랬지. 호호호… 저눔이 글쎄 삐쳐가지구 쥉쥉 어디룬가 도망가지 않겠수. 가겠으면 가라지 뭐. 제까짖게 강역에 나와 어디루 간다구, 한참 지나서 배가 고프길래 하늘을 쳐다보니께 해가 중천에 뜬기라. 점심때가 됐구나싶어서 밥이나 먹으려구 나무그늘밑에 와보니 글쎄 아이구 어무니… 저눔이 내 도시락을 넘어뜨리구 어떻게 뚜껑을 열었던지 내 밥을 다 먹어버린기라. 내 너무 기막히구 웃음보 터지구 해서… 먹을게 없을라니 배는 얼매나 고프던지… 약이 올라 저눔을 답새기려구 하니 저눔은 글쎄 꼬랑지를 하늘거리며 나를 향해 혀를 홀랑홀랑 하는기라, 호호호… 내랑 어제 배를 쫄쫄 곯으며 지레 집으로 돌아왔지, 봄에는 나물 캐 팔아야 용돈 생기는디, 이놈아, 너 그 벤또뚜껑 어떻게 열었냐? 호호호호…”
할머니는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제치며 통쾌하게 웃으셨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으운 일을 되새기는듯 한점 구김도 없는 맑은 웃음이였다. 잘 갈아번진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가득 패인 할머니의 얼굴에는 그 시각 노르스름한 아침해살이 내려앉아 어리광을 부리고있었다.
그림 같았다. 아니, 그림이 옳았다. 번잡한 사회생활에 부대끼다 문뜩 꺼내 펼쳐보아도 싱그러운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 고향의 풋풋한 풍경화를 방불케 하는 그림이였다.
“글쎄 우리 집 암퇘지 말입꾸마, 최교장네 ‘장군이’ 하구 흘레붙지 않겠슴둥? 그 집 돼지 얼마나 좋슴둥. 호호호호…”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으셨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그렇게 웃는것을 보았던지라 나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당기며 물었다.
“엄마, 흘레붙는다는게 뭐야?”
“우리 집 암퇘지 이제 새끼를 낳게 된다는 말이다. 단번에 한 열서너마리 낳았으면 우리 동이게 새옷이랑 팍팍 사주겠는데.”
나는 어머니의 말에 흥이나서 토끼뜀을 하며 소리쳤다.
“우리 집 암퇘지 흘레붙었다. 최교장네 ‘장군이’하구 흘레 붙었다.”
나는 시무룩히 웃음을 빼여물며 혀리를 펴고 일어나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슈퍼마커트로 가서 쏘세지를 몇개 사들고 나왔다.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강아지들을 향해 뭐라고 중얼거리고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할머니곁에 다가가 쪼크리고 앉으며 말했다.
“할머니, 오늘은 얘들에게 쏘세지를 먹여요.”
나는 말하면서 쏘세지껍질을 발라 먼저 얼룩이앞에 내밀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여올랐다.
“이렇게 고마울변이라구야, 이 놈아들아, 어서 인사해야지. 니들 오늘 귀인을 만났그랴, 흐메— 저기 뻐스가 오능기라. ”
할머니는 꼬부장한 허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후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 서서 왼손을 눈두덩에 올려놓고 달려오는 뻐스를 바라보셨다.
3
“콩콩… 콩콩콩…”
노랑이가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면서 초조하게 짖어댔다. 얼룩이도 불안한 눈길로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낑낑 앓음소리를 냈다. 할머니는 노랑이와 얼룩이를 향해 손사래를 하며 소리쳤다.
“됐다그마, 그만하라이까. 너네 밖에 어시 없는줄 아냐?”
할머니의 말을 엿들으며 나는 금시 쿡 하고 터지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너네 밖에 어시 없냐 하시는구나. 그래, 할머니는 진작 당신을 쟤들의 엄마루 아빠루 생각하시는가봐.
나는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다가가 할머니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또 장에 가요? 할머니.”
할머니는 흠칫 놀라 내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나의 눈길을 피하며 인차 머리를 숙이셨다. 그 동작이 어색해보였다.
혹시 내가 너무 크게 소리쳤나?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치고싶어 노랑이의 어깨를 톡 치며 입을 열었다.
“얌마, 할머니의 얼굴에 뭐가 묻었니?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며 짖는거야?”
노랑이는 나의 손을 피해 앉으며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할머니를 향해 짖어댔다.
“아서라그만, 온 아침 짖어대네.”
할머니는 노랑이를 나무라며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렸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디에 짓쫏으셨던지 이마 왼쪽이 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우에 피자국이 말라있었다.
“조심하시죠, 할머니.”
내가 허리를 굽히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짖지 말라는데두 말을 안듣더니… 늙으면 다 그렇다우? 다리가 후들거려서… 인제는 미나리두 쇄 간다니까. 좀 있으면 산에 가서 고사리두 꺾구 드릅두 따구 기름고비두 좋지…”
할머니는 묻지도 않는 말을 두서없이 하면서 노랑이와 얼룩이를 향해 괜히 손사래를 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가방에 넣었던 쏘세지를 꺼내 껍질을 벗기면서 할머니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오늘은 쉬시지 왜 또 나오셨어요? 장보기두 놀음삼아 하셔야지…”
“듬직하니 잘생겼수그레. 그쪽부모들은 든든하겠수.”
“네?”
할머니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라면서 할머니의 얼굴에 눈길을 박았다. 그 눈길이 부담스러웠던지 할머니는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잠간 잠자코 있다가 후—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말을 이었다.
“어찌자구 세월이 이렇게 돼간다우? 내 이런 말은 말아야 하는데…”
“……”
나는 웬지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오는 이름 모를 아픔 같은것을 감지하면서 할머니의 입을 주시했다.
가뭄에 열병을 앓는 고향마을 감자밭처럼 푸석푸석한 할머니의 두볼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할머니는 잠간 입술을 호물거리다가 드디여 소리를 뱉어냈다.
“며느리 말이우, 몇년전에 한국인지 하는데루 간게 어찌믄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다우, 이 늙은게 손주 데리구 아들하구 사는데… 그눔이 등신이지. 엠네를 한국눔께 뺏겼다구 한숨만 쉬면서 맨날 술독에 빠져 산다우. 제 새끼두 돌볼 궁리 없이… 거기다가 마작인지 하는 내기를 밤낮으루 하는데 맨날 빚을 져서 쫓기워 다니구… 오늘 아침에두 그눔이 나보구 돈을 내놓으라구 나는 죽어두 못 준다구 싱갱이질 하다가 그눔이 나를 툭 밀어놓은게 내 무슨 맥이 있소. 훌러덩 넘어지다가 벽에 이마를 쫏은게… 에구— 주책이야, 내 무슨 소리를 하누… 내사 끔뻑 죽으믄 그만이지만 내 손주놈이 불쌍해서 어이 눈을 감을가…"
할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를 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콩콩콩… 콩콩…”
노랑이가 또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짖어댔다.
“그래두 얘들이 의지가 된다우, 내가 아침에 훌러덩 넘어가는것을 보더니 그때부터 내 이마를 쳐다보며 자꾸 이렇게 짖는다우…”
나는 할머니의 말에 뭐라고 동이라도 달아드리고싶었지만 일시 할머니의 아픈 마음을 감싸드릴 폭신한 붕대 같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어째 날씨 이렇게 찌부둥하다오? 래일은 볕이 나려나?”
할머니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는 호—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날겁니다, 할머니. 래일은 꼭 쨍 하고 볕이 날겁니다.”
“너희들, 오늘두 호강했다는게다. 순대두 먹구. 흐메— 저기 뻐스가 오능기라. ”
할머니는 꼬부장한 허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후 파아란 미나리가 잠자고있는 큼직한 비닐봉지를 주어들고 승객들이 붐비는 길역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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