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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행복은
2019년 11월 14일 18시 55분  조회:1230  추천:1  작성자: 선수기
                                             

                                                                                  .    
퇴근 뒤에는 늘 충전하러 다닌답시고 한 주 내내 밖에서 헤매기가 일쑤이다.
낮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길가에 휘늘어진 그 멋진 가로수 한번 제대로 쳐다볼 사이도 없이 몇 년을 살았다. 위챗에서도 새로 추가한 어느 누구와 따뜻한 대화 한번 길게 나눠보지 못하고 그렇게 나는 몇 년을 살았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
막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휴가라도 무작정 떠나고 싶다.
그렇게 위챗 모멘트에도 '출장 중'이라고 도장을 콱 찍고는 잠적 생활을 하고 싶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늘 외우는 은퇴, 요즘 나도 어딘가 누구도 찾지 못하는 그런 곳에 꽁꽁 숨어버리고 싶다.
누구도 친하기 싫고,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싫고, 불편한 자리는 더더욱 가기 싫고, 소심해졌다고 할까?
누구의 무심한 한마디에 괜히 상처 입고 너무 예민 해진 걸까?
그 누구나 공인하는 산만하고 늦은 절주의 태평스러운 성격좋은 여자가 언제부터, 왜서 이렇게 변해가고 있을까?

다행히 오늘은 누구에게도 불려가지 않고 조용히 집에 돌아왔으니 너무 좋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미팅, 겨우 선의의 거짓말로 둘러 붙이고 누가 볼세라 가만가만 제집 문에 들어섰다.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룰루랄라, 원래는 퇴근한 뒤에 곧게 집에 오면 이렇게 좋은걸. 늘 바쁘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내게도 원래 이렇게 많은 내게 속하는 휴식시간이 있었었네.

대체 왜서?
뭐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도적고양이처럼 숨어서 퇴근해야 되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나니 나는 이런 신세가 되였을까? 허위적이고 지인 만나기에 부대끼고.
이게 어디 향수인가?

매일같이 불려 다니는 게 지겹다 지겨워. 이 모든 허황된 짓거리 안 하면 못사는 걸까?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살짝 위챗부터 눈팅한 다음 최대한 편한 캐주얼로 갈아입는다.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밥가마에 밥을 안치고 장보러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낮에는 바람이 기승을 부리더니 저녁에는 언제 그랬나 싶게 수그러들어 밤길 걷기가 딱 좋은 날씨다.
오랜만에 찾은 퇴근 뒤의 자유를 만끽해보려고 재래시장이며 슈퍼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한가하게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싱겁쟁이처럼 길가에 장사꾼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유 있게 흥정하는 사이 바구니에는 싱싱한 남새며 고기류로 가득 찬다.

돌아오는 길에 일용잡화점에 들려서 뭐 또 살 게 없는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늘쩡 늘쩡 팔자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간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저녁시간이다.

소도 아침에 일밭으로 나갈 때는 늘쩡늘쩡 늦장을 부리다가도 하루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는 걸음이 그토록 빠르다고 엄마가 늘 말해주셨다.
그냥 무심히 들었던 그 말이 요즘은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나도 늘 허허 웃으며 퇴근 시간 때마다 직원들과 이 얘기를 한다. "오늘 많이 팔진 못했지만 퇴근 시간이 되니 정말 좋다"고.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선다.

애는 친구집에 놀러 간 지 며칠째 된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제집에 형제 서너 명, 어떤 집들은 형제 일곱 여덟 명 되는 집들도 있었지. 한 집안에 한 형제라도 성격은 저마다 제 각각이었지. 그렇게 많은 형제들과 부대끼며 자라다 보니 우리 세대들은 그나마, 서로 어울릴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지만 지금의 애들은 어디 그런가?

혼자 자라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그래서 나는 애가 놀러 가겠다고 하면" 무조건 가서 잘 놀다 와" 라고 한다. 태신없는 아이로 키우느라 천방백계로 노력한다

다행히 자기 앞에 공부는 하니깐 망정이지. 종래로 공부 잘하란 말은 해본 것 같지 않다. 늘 "너 친구들과 잘 어울리니? 한 반에 애들과는 잘 어울리니? 밥 같은 것도 누가 사준다고 그냥 얻어먹지만 말고 너도 가끔씩 다른 사람들도 사줘야 돼. 친구들 앞에서 너무 뽐내지는 않겠지? 그러면 다 미워해, 그러느라면 금방 왕따 당해."

그렇게 때로는 애 엄마이면서도 또 애 친구로 때론 엄격한 선생님으로 각양각색의 역할 담당하며 애 교육만은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끔씩 대화가 불가능할 때에는 위챗으로 편지도 보내주고.

이렇게 가족들이 다 놀러 나간 사이 홀가분한 나 혼자만의 저녁 시간이다.

혼자지만 밥도 짓고 요리도 맛있게 볶아서 예쁜 접시에 담아놓고 은은한 음악도 띄워놓고 목이 가늘고 긴 근사한 와인잔에 여우작작 와인도 한 모금씩 음미하며 이 저녁의 고독을 즐겨보려 한다.

드라마도 보며 가끔씩 위챗그룹에서 지인들과 담소도 하고 옷장 정리, 서랍 정리를 하면서 간만에 편안한 일상을 보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여자로 살고 싶다.

여자로 산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짓인 줄을 내가 왜 인제야 알았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가무노동일지 모르겠지만 샐러리맨으로 20여 년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시간들이 그토록 부러운 사치이다. 어쩌다 찾아온 한가한 저녁 더없이 행복한 일상, 물론 가족성원들이 다 같이 하는 저녁이면 금상첨화이겠지.

앞으로도 나는 종종 이런 저녁 시간을 쟁취하련다.

친구들과의 우정도 좋겠지만 더 많은 시간은 가족 분위기를 느끼면서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보내련다.

여름에는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녀오고 근사한 서양 음식점에 가서 분위기 잡고 와인도 기울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들.

20여 년 성취욕으로 잃어버린 소중한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을 지금부터라도 되찾아 곱절로 갚아주리라.

이렇게 나는 여자로 살고 싶다.

편집︱흥경선비

——————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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