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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에버랜드! 오 우~그 스릴 댓글:  조회:1351  추천:0  2019-11-30
마법의 성  에버랜드 /최선숙 자아소개 :연길시 성보호텔 2층 4호에서 한국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선숙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199 (포곡읍) 京畿道龙仁市处仁区蒲谷邑爱宝乐园路199 전화 031ㅡ3205000 《에버랜드 ㅡ 나무 위키》ㅡ 검색 자연 농원 시대 1976ㅡ1996 에버랜드시대 1996ㅡ현재 서울에서 40공리  에버랜드는 이병철 삼성 그룹 창업주 이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일대 야산을 매입한것은 1971년 당시 구입토지는  450여만평 .대부분 관리없이 방치되던 곳 .자연농원은 그 가운데 20만평.46억원의 비용을 들여 조성   명칭을 바꾼것은 개장 20주년 때였다 . 글로벌 태마파크로 도약하기에 더 적정한 이름을 찾으면서 에버랜드로 이름 바꾸었다. 원 용인 자연 농원 30여년 발전을 거쳐 종합적이 유러장소 ㅡ 놀이터 ㅡ끝없는 매력과 환상  찡쌘과 자극   시적인 랑만 과 풍경이 공존하는 곳임다 .요즘은 한국에서 제일 각광받고 제일  많은 유람객들에게 알려져 있느 테마파크로 등극  ...등등 현재 에버랜드는 45만평으로 규모를 확장. 2013년 누적 관람객 2억명 돌파.  5개 테마로 구성 야생 동물원 .유럽 모험구 .머환 락원  미주 모험구 . 지구촌 거리 (주토피아 /동물왕국,로스트 벨리 ,사파리월드,로맨틱 일루미네이션 ㅡ 에버랜드 하이라이트) 명절 때 여러가지 행사 ■다른 한가지 특점 .문화와 풍격이 서방 테마파크와  다름. 자기만의 독특한 풍격과 경영 관리 모식 ,서비스와 고객만족, 고객 감동 ,마케팅 분석,경쟁사 분석을 중점으로 《별에서  온 그대 》《 천국의 계단 》회전목마.《내 딸 금사월 》장미원  촬영지 ■가는방법 :강남역 6번출구 (신분당선 )에서 내려서 양재방향으로 가는 버스 5002 타면 50분 만에 도착 (에니게이션 ,또항치 길 잘 모르면 엄청 고생 ) 시외 공용버스 이용 방법.용인 공용버스터미널에서 내려 85.5002.시외 8487.8862 번 버스를 이용해 에버랜드 주차장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무료셔틀 버스로 이동 ■자유이용권 23,900원 구매하면 입장료 포함 된거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놀이기구 동물원 다 포함  후조로 사면 좀 더 싸다는 얘기 들었어요. 여러가지 삼성카드 . BC 카드.하나카드 .kB 카드.   외환카드 50% 할인에 들어가는지 물어 지방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소풍을 가게 되면 높은  확률로 가게 되는 수학 여행 단골지 환상의 나라  마법의 도시 에버랜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브랜드 유람지, 아기들 천지 ,한창 연애하는 젊은이들 천지 ,커플 천지, 동물세계, 동화세계, 놀이 기구 세계,또한  에버랜드 직원들의 서비스에 감탄 세절적인 모든것에 감탄하게 돼요 . 전부 다 너무 창의적이고 선진적이고 체계가 쭉 다 잡혀입고 .서비스도 너무 좋아요 . 언제나 많은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에버랜드 그곳에 있느라면 나두 40대가 아니라 동심에로 돌아간듯한  기분 .마침 딸애가 18살이여서 얘가 호기심 가는거는 다 하기로 했어요 .딸애 18살 나두 18살 ,애가 고등생  나두 고등생  된것 같았어요 . ■제일 인상 깊은건  1.티 익스프레스 (제일 인기 높은 놀이기구) 등등 놀이기구 싹쓸이 ,2.동물세계 , 3.동화극 관람 , 도전 모험 짜릿함 만끽한 유람이 였던것 같습니다 사파리공원이나. 물개쇼 .동물원 주력 볼거리. 기타 . 메인.테마곡 ■환상이 나라 .모험의나라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 영원한 행복의 나라 좋거나 선진적이건 다 인입 물건 구입 일정도 빠듯하고 오뉴월에 감기까지 걸려서  어디 나다니기보다 , 호텔에서 편하게 쉬고 싶어서 딸애가 그렇게  잡아끄는데도"너 언니들 같이 가서 잘 놀구 와 "이렇게 싫다구 싫다구 거절하다못해 애가 너무 가자고 닥달해서 끌려갔댓어요 . 그런데 정작 가서는 애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것 같애요 .그래서 딸애가" 엄마 안 왔더면 어쩔뻔 했슴까 ? 오기를 잘했지 ."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비유하면 적절할가요 ? 춘절만회나 어떤 파격적인 무엇을  현장에서 시청한 느낌 이랄가 ?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1.딸애와 나는 먼저  가이드가 소개하는 일정에 맞춰서  먼저 놀이기구 타기로 했어요 . 도전해볼가 무서울 같은데 ...자극 궈인 제일 자극적이고 인기높은  놀이기구부터 타자 .놀이기구는 싹쓸이 하면서  전 부 타고 줄 서 기다리는 인내만 있으면 다 탈수 있어요 . 제일 인기 놀이기구 기본대기시간이 2시간입니다 . .자유 이용권 에 다 들어가 있어요 .제일 무섭고 자극적인게. 티 익스프레스.인 같애요. 티 익스프레스는 국내 최초 목재 롤러코스트로 만들어 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스릴있는 목재 롤러코스트로 선정 되기도 하였어요 .90도로 수직 하강하면서 ,그  놀라움 그  짜릿함 .지금까지 제가 타본 놀이기구 중 제일 무섭고 자극적이였던것 같아요. 자극적인거로 부터  过蘟거기엔  너무 놀라서 감기가 다 달아났는지 아프지도 않았어요 .아니면 싫다구 싫다구 거절하다가 못이겨 따라가 가지고 애마냥  제일 좋아하며 놀아서  감기가  달아난건지 매직 마운틴에서 즐기는 래프팅 모험 야호 ~ 스릴 만점 후룸 라이드의 반전 매력 와우 ~뒤로 떨어지는 후룸라이드(배) 썬더폴스 짜릿하고 시원하고 즐거웟담니다 놀이기구 플라잉 레스큐 . 온가족이 즐기는 하늘 여행 허리케인 .꿀 잼있는거 .진짜 신나는 놀이기구 엄청 많아요 강추 ●2.그리고 동물원 구경이 가장 호기심 있게  관심잇게 보는곳인것 같애요. 동물 친구들 보려고 해도 또 한시간 넘게 줄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길게는 한시간 짧게는 반시간  아마 줄서 기다리는 시간을 아마 다 합치면 몇시간은 되는같애요. 오래동안 줄서 기다려서 봐야 됐던 기억이  그 사간이 좀 제일 아쉬워요. 삼성에서는 이에 해결책이 없는지.지금 은행에서처럼 표제를 하면 좋겠구만 . 거기까지는 생각 못햇는지 아님 알면서 어떤 배포로 무시하는건지 ? 줄서서 기다리는게 어떤 홍보효과가 있다고 그러는지 ,아무튼 ... 볼거리를 제대로 즐길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사파리월드(탐험세계) ㅡ호랑이 사자.불곰 등 맹수들이 사는 사파리월드(탐험세계 ), 주위를 거니는 맹수의 왕 호랑이와 ,사과 고구마 등 먹이가 가득한 굴과  놀이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불곰들을 ,사파리버스에 탑승한채 가까이에서, 현장에서 생생하게  맹수들을 관찰하고 체험할수 있어요 .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아니라 버스에서 가까이에서 볼수 있는 게 넘 좋아요 .가이드가 맹수들에게 특히 불곰들에게 다 자기개성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짛어 줬어요.   재는 이름이 뭐고 어떤 개성이 있고 ,이렇게 이름를 말하면서 동물들의 일상과 그들의 개성을 ,동화속에 들어온것처럼 이 친구,  저 친구 ,얘는, 재는 ,재밋는 스토리를 엮어서, 대화를 하느식으로  설명해주니 ,그 구수한  입담에 ,정말 한결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것 같았어요 . ■가까이에서 막 먹이주고 "돌아 ""일어서" 이러면 사람말 다 알아듣고 앉앗다 서기도 하고 돌기도 하고 귀엽게 버스가 지나가니깐 막 따라오고 꺅 ~ 귀요미,  곰이 두벌로 서서 걸으니  사람같기도 하고 사자 자는 사자,우릴 바라보는 사자 ,정말 신기하고 귀엽구 그랬어요 강추 한시간 넘게 줄서 기다리던 짜증이 어느사이에 다 달아나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 에버랜드의 직원들 거의다 30전후반 돼보이는데, 톡톡 튀는 센스며 ,재치있는 유머며 ,서비스 정신이며, 자칫 지루할것 같은 유람에 생기와 감동을 불어넣어주는 같애요 .에버랜드 크잖아요. 거기 직원복 입은 분들과 누구하고나 길 물어봐도 공항에서처럼 깍듯하게 자상하게 알려주는게 제일 기본임다. ■특히 동물원의 "가이드들이 동물들을 진짜로 친구로 착각하는게 아닐까 ?" 고 생각할 정도로 동물들과 끈끈하고 절절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어요 .정말 가식이 없는 동물들에 대한 애정, 매일 유람객들에개 소개하면서 정 들었나 ?자기가 키운 애완견을 사랑하는 주인의 애완견 사랑 같았어요 .그런것들이 다른 곳들과는 비교되게 나에겐 너무 강하게 안겨왔습니다 . 직원 교육을 참 잘시켰다는 생각을 하게 돠더군요. ●3. 물개쇼,등등 여러가지 쇼,  동화극이나  뮤지컬, TV에서 보는 동화편처럼  직접 동물들이 출연해요 .어쩌면 뮤지컬 같으고 동화편을 현장애서 보는 느낌 ,너무 감동입니다 . 여기는 20분에서 반시간 정도로 시간  안배가 참 잘 돼 있어요 ,자유이용권으로 다  들어갈수 있어요. 여기 절목 끝나서 나가면 저쪽 공연이 금방 또 시작 .유람객들의 시간 잘  맞춰서 안배한듯 합니다. ●4.길옆에 바라보이는 곳마다 하트모양 장식물 연인들 오기 제격,또 유람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감하고 감동하고 사색하게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길지 않고 짤막짤막한  구절들  "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한국에는 그런게 참 잘 돼 있잖아요. 우리 중국에는  "화단을 아끼자 "이렇게 말들이 좀 딱딱하잖아요.  여기저기 아기들을 데리고 유람하기 좋게 편안한 시설들 정말 세절적인  모든것에  저절로 감탄이 쏟아지게 탄복하지 않을래야 탄복하지 않을수 없게  해놓았어요. ●연인들 세계, 아기들 세계, 마법의성 에 한번 놀러가보세요 . 4D가상현실체험 미디어게임과 함께 역사의 한가운데 들어가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역사와 문화유산도 어트랙션처럼 신나게 체험할수 있어요 .디지털 기계로 머리에 눈에대보니 와우 ~아름다운 독도가 눈앞에 풍경으로 입체적으로 펼쳐지네요 ."활의전설 "4D 영화도 관람 할수 있어요 ,바람 물도 나오고 의자가 흔들리면서 아주 잼있었담니다. 현대 시설의 옛날 장수들이 화살 쏘면 화면에서 내가 어느지정한 위치에서 그 동작하면 화면에서 같이나오고 쭈욱~ 다 보고 나오면서 정말 갈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었는데 돌아올때는 힘들고 지쳤지만 짜릿한 반전드라마를 본듯한 오래동안 그  탄복을 금치 못했던 뜻깊던  하루에서 헤여나오기 바쁜 그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에게 주는 즐거움 추천하고 싶 은 곳 , 마법의성  에버랜드 ,듣던대로 명불허전 입니다. 세절적인 모든것에 감탄할거예요.  꼭 잊지못할 여행이 될겁니다. ■우리는 가게때문에 거의 한달에 한번씩 한국에  다녀오는데  어쩌다 다니는  사람들은  유혹이 크겟지만 직업이 다달이 비행기 타고 다니는 사람 즐거울수가 없죠 .그래서 유람을 늘 회피합니다. 그래서 물건 구입 떠날때  연길 공항에서 리륙할때에는 늘 "이젠 물건구입 다하고 이게 착륙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 가?"고  생각해요. 나다니는게 그렇게 싫어요. 어느날 내가 이직업을 바꾸면 그거는 정말 비행기 타구 다니기 너무 싫어서입니다. 늘 연착 되지 ,눈만 좀 와도 폭설이 와서 착륙못한다고 지연되지 ,언제 한번은 대련공항에 도착햇는데 착륙하라는 신호가 안 와서 거의 한시간 정도 하늘에서 원래는 한시간 정도 비행이 두시간이 된적도 있어요 . 나는 내가 나다니는게 싫어서 여직껏 애를 데리고 바깥유람 별로 안갔었는데 이젠 18살 되니 너무 가겟다고 닥달해서 떠났어요 . 돌아오면서 "방학에 어디어디 갔었다고 반에가 자랑하렴" 하고 물어보니 "엄마 이런건 자랑거리두 아님다. 지금 애들은 다 가봣음다 " 하네요 . 워낙 여행사 코스대로 다니게 하자 햇는데 여행사 직원이 애 나이가 얼만가요?"하기에  ,18살이라고 말하니, 그만한 애들은 저희들 끼리 놀러보내라 하네요. 그래서 "나는가게때문에 못가니 친구들같이 가라고."했어요. "엄마는 내가 빨리 자립하기를 바래서  이렇게  내보내자는데 다른 집 부모들은 시름놓구  내 놓는집 없어요."  자기두 그러구 싶은데 엄마처럼  생각하는 부모가 없대요 . 그리고 애들끼리 다니면 어떤 나쁜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네요.  그래서 바쁜 일정으로 어쩔수 없이 오랜만에 한  여행, 지금은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 자칫 지루했을것 같은 여행이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기분 좋은 추억으로  늘 그날을 생각하면 놀이기구 타면서 너무너무 놀랐던 기억 ,가이드의 재치넘치는 입담,세절적인 모든것에 감탄했던 기억 , 참좋은  곳에 유람하는건 참 좋은 힐링이 되는 같애요 . 애보구 앞으로 친구들 같이, 혹은 혼자라도,아무때나 놀러가구 싶은곳 다 다니라고 해요. 우리 애들은 그 어떤 성취욕보다는 ... 편안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수 있는 그런 인생을  즐기며 살게 하구 싶어요 여행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때 가족이나 친구랑 같이 하는게 좋을거 같애요.하지만 요즘 주위분들을 보면 스트레스 날리기 위해 여행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다 자기 개성이겠요.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즐길건 놓치지 말고 다 즐겨야 되겠다는 생각 전에는 돈 모으는 재미라면 지금은 즐겨야 겠다는 생각 , 방학마다 놀러갈 타산입니다.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7    풍년든 전야를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얼마나 흐뭇할가? 댓글:  조회:2151  추천:8  2019-11-16
  한밤에 놀라 깨여났다. 찜통 더위때문인지 어떤 꿈을 꾸었던지 그렇게 잠을 깨고보니 다시 잠이 안온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잠이 안오는 깊은 밤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다가 두서없이 적어본다 . 얼마전 고중입학시험을 치른 딸애가 있는 나는 그 시험을 거치면서 참 많은것을 경험했다. 시험이란것은은 정말 독이 있는것같다. 시험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새벽시장에 나가서 찰떡을 사다가 딸애가 붙고저하는 중점고중 대문에 척 붙혀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험기간 내내 꽃만 피면 그 꽃이 모두 다 열매를 맺는다는 가지를 사서 료리를 해서 먹이고 며칠 내내 시험장에 따라다니면서 학부모로서 할수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않았다 . 시험을 치고 나서는 성적이 발표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또 록취점수선이 나오기까지 너무도 바질바질 속태웠다. 다른집애들이 시험쳤다는 소식을 전해들을땐 시간이 빠르기만 하더니 막상 제집애가 시험치니 이렇게 느릴까? 사람은 이런 고비에 너무 속태워서 폴싹폴싹 늙는것 같다. 애도 몹시 속타는 모양이였다. 이런 애탄 과정에 이런 시점에서 나는 애를 타이르는걸 잊지 않았다. 어쩌면 딱 요런 시기에 이런 타이름이 더 효력이 있을지도 모를일이니깐 “대학시험칠때엔 제발 이런 속 태우지 말게 시험을 좀 더 잘 쳐달라.”고 절절하게 부탁했다. 애도 엄마가 속태우는게 안스러워서인지 아니면 깊이 깨달았는지 그래야하겠다고 선선히 대답한다. 그 대답이 시원하여 삼년뒤에 대학시험은 정말 속 태우지 않아도 될것처럼 믿음을 주는 애가 고맙기까지하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애가 평소에 기초가 좋기때문에 자기성적으로 꼭 붙을것이라고 예산은 했지만 그래도 록취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를 일이여서 장담은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꼭 붙을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록취선이 나온뒤에야 애는 해방되였다. 나도 같이 해방받았다. 가장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킨건지, 아니면 애 실력이 그래도 좋은 편이여서인지 록취선을 훨씬 넘긴 성적으로 그렇게 붙기 바쁘다는 중점고중에 붙었다. 진짜로 날듯이 기뻤고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하고 뿌듯했다. 정성으로 자식 키워본 이들은 다 알것이다. 여기가지 오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돌이켜보면 오늘 기쁨의 미소를 짛을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장의 피타는 노력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그동안 참 많이 애간장 태우고 마음 졸이고, 속상하고, 노하고, 기쁘고, 슬픈 과정을 모두 겪었었다. 애가 원하는 중점고중에 붙었다고 말하면 지인들 모두 "공부 잘 시켰네." 하면서 마음으로 축하해주는데 그때는 정말 뿌듯하다. 그런데 애가 좋은 학교에 붙어서 행복을 느끼는건 그 며칠뿐이다. 개학날, 입학생들의 학부형회의를 마치고나니 또 앞으로 관건적인 고중삼년을 어떻게 공부도 잘 시키고 인간성도 좋고, 다른 필요한 소질을 잘 구비하게 교육해야 할지, 학부모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고민이 더 많다. 앞으로 삼년, 애들의 인생에서 또 한번의 고비라면 고비라는 생각에 마음이 벌써 무거워진다. 그래서 한주일씩 숙사에 가있고 주말마다 오는 애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떤 애들과 어울리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를 늘 체크한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만나면 요것은 꼭 각인시켜야겠다는것들, 어떤 것은 확실하게 심어줘야겠다는건 꼭꼭 메모해 놓는다. 어디에서 들은 얘기들도 애한테 필요한 교육같으면 꼭 메모했다가 들려준다. 그러나 엄마가 너무 길게 말하면 아이는 아예 시끄러워 들으려하지도 않는다. 사춘기여서 그렇겠지, 때론 기대 이상으로 눈물나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론 때려주고싶을 정도로 정 떨어지게 쌀쌀 맞기도한 럭비공같은 사춘기애들, 가급적이면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하지만 머리에 깊은 여운이 남게 새겨듣게 얘기해줘야 할것이다 . 그래서 애를 키우면서 나 자신이 더 어른이 되는 같기도 하고 철학가가 되는같기도 하다. 애가 성장하는 과정이 또한 나의 성숙과정이기도 하다. 겸손해지고 배려할줄 알고 마음이 여유로와지고 용서를 배우는 과정,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또한 즐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딸애는 그래도 나를 흐뭇하게 해줄때가 더 많은것 같다. 딸과 나는 종종 이런식으로 대화를 한다. 엄마: 너 고중에 가게 되면 아이들이 모두 각 학교에서 뽑힌 우수한 애들이라 "산위에 산있고 하늘밖에 하늘 있다.(山外有山 天外有天)"는걸 터득하게 될거다. 딸: 학원에 다니면서 여러 학교에서 온 애들과 어울렸기에 나는 언녕부터 그걸 느꼈슴다. 엄마: 이번에는 시험을 잘 쳐서 장학금을 탔는데 어쩌다 한번 말구 쭈욱~ 잘 치기 바란다. 류성이 되지 말고 항성이 되거라.(不要当流星,当恒星吧.) 딸 :알았어유. “OK” 엄마: 전번에 니가 길에서 만난 갸가 예쁘던데 공부는 잘해? 딸: 그 애는 공주병두 있구 자기밖에 모름다. 공부는 잘함다. 하지만 모를 문제를 물어보면 알아두 모른다구 함다. 엄마: 자사자리하군 ... 딸: 학교에서 운동회 하는데 엄마가 좀 음료랑 풍막이랑 협찬해주쇼. 엄마: 그러지 뭐, 너희 반 애들 가장중에 엄마보다 경제력이 더 좋은 사람이 많을거다. 엄마는 돈이 많아서 협찬해주는게 아니야, 너한테 좋은 본보기 보여주기 싶어서지. 없어도 나눌줄 아는 사람,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거라. 앞으로도 니가 능력 있어야 없는 사람들을 보살펴 줄수 있단다. 꼭 많이 배워서 베풀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이 되거라. 딸: 엄마, 숙사에서 뻐스타구 오는 길에서 이런 글을 봤는데 참으로 음미해볼만해요. "당신이 인물이 될지 페물이 될지는 당신이 지금 뭘 하는가에 달렸다.(你是人物, 还是废物, 看你现在干什么.) " 엄마:와 ~~ 대박 멋있네 ! 엄마: 이젠 반에서 간부하지말고 공부만 열심히 잘하자. 좋은 대학에 가려면 이제부턴 공부에만 올인해야 돼 . 딸: 아니요 난 어릴때부터 리더십을 배우고 싶어요. 성취감을 느끼며 살고싶어요. 엄마인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짛는다. 내가 이 멋에 산다. 애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나에게는 천금가는 향수이다. 요즘엔 또 "혜영이는 뭘 자꾸 자랑함다. 할아버지는 산이 있다구 자랑, 언니는 일본회사에 출근하는데 노트 3 두 사주구, 카메라두 사주구, 핸드폰은 몇천원 짜리 쓰구, 엄마 아빠는 한국에 있는데 한주 소비돈은 몇백원씩 가지구. 그래서 난 소박한 한족애들과 놀기 좋슴다."라고 덧붙힌다 . 언제부터 아이콘 사달라고 투정질하는걸 이 구실 저구실 대면서 안 사주니 억지는 쓰지않고 엄마를 설복하려고 진지하게 얘기하니 내 마음이 좀 알싸~해났다 . 좋은 학교에 붙은 상으로 사줄만도 하건만 그런식이라면 앞으로 모든게 그런식으로 대가를 요구할가봐 그저 아무런 의미도 붙이지않고 그냥 슬쩍 사주는게 나을것 같아 적절한 시기에 알아서 사주려고 시치미 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합숙하는 애가 모든걸 다 그것도 다 좋은 브랜드가지고 유용하고 령활하게 그리고 저절로 잘 절제하면서 이용하는걸 본뒤 나절로 설득되여 두말없이 사주게 되였다. 안 사줘도 억지는 쓰지 않고 최대한 부모를 설득해보려는 딸애의 마음이 기특하기도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런 제품을 잘 다루는것도 공부라면 공부일것 같아서 또한 그냥 시대 떨어진 책벌레로만 되지말기 바래서 공부도 잘하고 다른 모든것 즉 종합사유능력, 세밀한 분석력, 정확한 판단력, 차분한 인내력, 좋은 기질, 좋은 성격, 좋은 생활습관, 자신감… 모두 다 잘 구비한 따분하지않고 해박하면서도 지혜롭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것이 또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수있는 천금보다 더 값가는 재부가 아닐까 ? 아이폰을 사주니 그렇게 좋아하던 딸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줄수 없는 형편도 아니건만 저렇게 좋아하는걸 뒤늦게야 사준 미안함에 나는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내가 애한테 참으로 지독하게 굴었구나, 애가 공부에 올인하길 바래서 독하게 마음 먹구 안사줬는데 이렇게 나를 마음이 아프게 하다니! 한편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소박하면서도 반듯하게 멋지게 잘 자라준 딸애가 대견하고 흐뭇하다. 아무튼 부모된 립장에선 나름대로 애가 훌륭하고 우수하게 잘 자랄수 있게 최선을 다할수밖에… 다음은 애들 자신의 몫이겟지. 애를 키우면서 부모는 진짜 애들의 좋은 본보기여야 되겠다는걸 내 세포하나하나로 깨닸게 된다. 아이들의 거울인, 모델인, 본보기인, 우리 부모부터 만물의 근원인 뿌리부터 변하자. 쇼를 해도 좋고 다 좋으니 제발 우리 부모부터 행실 바르고 마음 바르고 이 사회, 이 시대에 아이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소질이 있고 품위가 있고 인간성이 좋은 부모로 거듭나자. 행복을 느끼는데는 각자 추구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다. 서로 잘 맞는 부부로 만났다던지, 사업이 번창 하다던지, 벅찬 명예나 권력을 가졌다던지, 부모복, 형제복, 친구복이 있다던지… 물론 다 중요하구 다 갖고 싶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잠 자고 나면 또 변하고 사람마음도 갈피 잡을수 없이 복잡다단하지만 그 중에서도 꼭 붙잡아야 할 핵심이 있다면 자식교육만은 절대로 소홀히 할수 없다는것이다. 애들 교육만큼만은 "무식"하지않은 "유식"한 부모가 되자. 나도 어쩔수 없이 “소 팔아 공부시킨다.”는 우리 조선민족의 피줄을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받았나 보다. 이 시각 풍년든 전야를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얼마나 흐뭇할까하고 상상해본다. 우리도 한번 대지의 그 풍요로움을 만끽해보자. 우리 다 같이 "자식농사" 잘하는 "실농군"이 되여 오곡이 무르익는 그 가을엔 감사한 마음으로 수확의 열매를 한껏 즐겨보자. ——————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6    이쁜 옷 한 벌 골라주오 댓글:  조회:1704  추천:0  2019-11-16
우리 옷가게에는 굳이 옷을 사지 않아도 쇼핑만 나오면 잠간씩 들려서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시다가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나이 칠십에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는 성정이 온화하고 매무새도 꽤 세련되여 보였다. 오늘은 내가 골라드린 옷이 당신 마음에 딱 든다면서 값을 좀 더 싸게 해달라고 넌짓이 말씀하셔서 나 또한 쾌히 응낙하고 기분좋게 드렸다. 할머니는 포장해드린 옷을 조심스레 챙기고나서 가게에 손님이 뜸한것 같으니 좀 더 앉아서 얘기하고 싶다고하셨다. 그래서 나도 아예 가게의 쏘파에 마주앉아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게 되였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너무 튀지도 않게 무난하면서도 이쁘장하게 화장을 잘 하셔서 그 년세의 세대분들과는 다르게 품위가 있어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한마디 건넸다. “무도장에라도 다니십니까? 젊어서는 예쁘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겠습니다.” "령감두 없는데 무도장엘 다녀야지." 할머니는 히죽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 나이 서른살에 병으로 첫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내고 마흔아홉살에 또 차사고로 두번째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내지 않았겠소. 그래서 이제 또 찾으면 무고하게 불쌍한 사람만 저 세상에 보낼것같아서 남은 생은 령감을 더 찾지 않기로 했소..." 예기치 않았던 얘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 우리 마을에서도 어떤 곱상한 아주머니가 40대에 남편이 먼저 병으로 돌아가니 동네사람들이 수군대던 기억이 난다. “녀자가 살이 세면 남편을 잡아먹는다. " 오~ 그래서 할머니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와 보였구나! 지금은 별일아닌것처럼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나는 "할머니가 참 모질게 마음고생 하셨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 해났다. 기분좋게 수다나 떤다는게 어쩌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이런 얘기가 나와서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송구해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옛날에 들은 어느 아는 분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제가 잘 아는 분한테서 들은 얘긴데요. 그 분은 처녀시절에 만난 남자가 병이 많아서 오래 살지 못할줄을 뻔히 알면서도 온 가족의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고 신랑은 또 워낙 환자라 예상대로 몇해 못살고 돌아갔대요. 세상 편견이야 여하하든 단 하루 살아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고싶었대요.분명 자기가 원래 있던 병때문에 저 세상에 갔는데 녀자가 살이 세서 남편을 잡아먹은게 아니잖아요. 아픈 사람인줄 뻔히 알면서도 결혼해주고 죽을 때까지 사랑해준 그녀의 순결한 사랑과 용기는 응당 세인들의 찬송을 받아야되지 않을가요. 이같이 상대가 오래 살지 못할줄 뻔히 알면서도 결혼까지 해줄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명이나 될가요?" “그렇지. 하루 살아도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야지..." 할머니는 내 말이 마음에 와 닿으셨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 순간 나는 그 동안 살면서 겪은 난처함과 억울함의 발로인듯 할머니 눈가에 초롱초롱 맺히는 이슬방울을 또렷이 보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돌아앉아 눈굽을 찍으시는것도 나는 보았다 이 할머니에게도 분명 범상치 않은 감동스런 사랑의 로맨스가 있는듯 했다. 할머니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혹시 내가 들려준 지인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는 아닐까? 나는 할머니가 궁금해 났다. "남들이 남이 말을 해보았자 사흘 초과 못한다고 하니깐요.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헛뜯지 못해 하는 그런 행실에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대신 예쁘게 차려입고 무도장에도 다니시고 멋쟁이할아버지도 친하시며 자기방식대로 즐겁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할머니는 언제 눈물 흘렸나 싶게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을 이으셨다. "그럼 그럼. 그래야지, 나도 이제부턴 그렇게 살겟소..." 이때 어디서 려행온것 같은 손님들이 왁자그르르 떠들며 가게안에 모여들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얘기를 연신 하시면서 앞으로 자주 찾아오시겠다며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분의 눈가에 초롱초롱 맺혔던 이슬이 아무래도 잊혀지지 않는다. 가게 들어올때까지만하여도 밝게 웃으시며 오신 할머니가 어찌하다나니 의도치 않게 그분의 마음속 아픈 상처를 건드려 괜히 미안해 죽겠다. 그 할머니가 다녀가신뒤에도 나는 오래동안 그 할머니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두어달이나 지났을가? 그 곱게 나이드신 할머니가 다시 찾아오셨다. 그런데 이번엔 뒤에 키가 구척이나 되는 멋쟁이할아버지 한분이 따라 오셨다. 나는 사뭇 놀랍고도 반가운 표정으로 또 의문스런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귀속말로 얘기하셨다. "저녁에 할아버지 자식분들과 인사하는 장소에 나가려하니 이쁜 옷 한벌을 골라주오." 나는 대뜸 상황파악을 하고 할머니에게 우리 가게에서 제일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으로 또 십년은 족히 젊어보이는 옷으로 한벌 골라드렸다. 그 동안 외롭게 살아온 보상을 더하고 또 더하여 오래오래 사랑받으시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내가 골라드린 옷을 보시던 할머니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쿨하게 한방에 "오케이"하셨다. 젊어서는 참 멌있었을것 같았고 아직도 풍채가 좋으신 멋쟁이할아버지는 가게에 들어오셨다가 돌아가실때까지 그냥 할머니만 바라보셨다. 할아버지의 정겨운 눈길은 할머니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그 아름다운 정경을 훔쳐보며 나도 이렇게 속으로 외워보았다. “아무렴 그렇지. 해바라기에게는 밝은 해가 있어야 제격이지.”
5    내 고향 화룡 고성리 댓글:  조회:1463  추천:0  2019-11-16
내 고향 화룡 고성리 (연변라지오방송국  려행스케치) [아] : 방송국 아나운서 [최] : 최선숙 [아]: 안녕하세요, 먼저 자아소개 부탁드릴게요. [최]: 저는 연길성보백화 2층 4호에서 20년째 한국숙녀복장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선숙입니다. [아]: 오늘 어디로 갈까? 코너에서 청취자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곳이 숭선이라고 들었습니다. [최]: 맞습니다. 요즘은 생활수준이 제고됨과동시에 모두 자가용차가 있어 문화생활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지인끼리, 모두려행을 떠나기를 즐기죠, 하지만 그곳 지리를 잘 몰라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서참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 고향의 모든걸 잘 소개해 드리고 싶었었는데 오늘이바로 그때인것 같습니다. 숭선하면 생소하게 생각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화룡에 거주한 분들이라면 아마 다 아실겁니다. 숭선은정말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입니다. 게다가 시골 사람들 인품까지 좋은 곳이죠. 바라보는 곳마다 다 수려한 한폭의 생생한 수채화를 방불케 합니다. 어려서는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 나는 이렇게 좋은 그림속, 동화속, 풍경화속에서 자랐구나. 딱 한국 노래 "강촌에 살고 싶네"에 가사처럼 좋은 곳에서 자랐음을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또한 고향이여서 그런지 바라 보이는 곳마다 동년의 추억이 묻혀있어 많이 설레이고 연길에 있으면서 한동안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가보았더니향항이나 어느 유럽에 간것 보다 더 좋았습니다. 고향이여서 그런지 내 몸안에 모든 세포들이 편안해하는게느껴졌어요. 숭선은 너무나도 깊은 심심산골이여서 그 속에 서있느라면 고요함을 깨뜨리는 새들의 지저귐소리, 매미나 베짱이들의 절주있는 노래소리, 나무와 풀들의 속삭임소리 들리는듯합니다. 새소리, 벌레소리, 개구리울음소리가하나의 아름다운 자연 합주곡이 되여서 들려오는데 그야말로 국가급 대자연 생태 향진임을 금방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습니다. [아]: 그래요, 대자연과 함께하는 그 기분저도 참 그립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주시죠. [최]: "손에 가시가 들어 다치면 아프다. 고향너는 내 가시든 살점" 유명한 김철 작가가 쓴 의 한구절인데요, 백번 공감이 갑니다. 40대에 접어드니 고향에 대한 집착이 엄청 커지는것 같습니다. 정에목말라 있는 현대인들 쫓고 쫓기는 힘든 일상에서 탈출하여 힐링하기 딱 좋은 곳인데요, 깊은 산, 깊은 골, 싱그러운 흙 냄새, 맑은두만강, 닥시싹, 뽕구대,삽지, 애고사리, 애곰치… 자연의 선물이 이리 좋은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자주 가볼수 없어서 참 많이 아쉽습니다. 일상이 지치고 힘들때면 마음으로라도 늘 여행다녀옵니다.   숭선은 가족들, 친구들, 동창들, 회사직원들, 끼리끼리 어울려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하는 들놀이, 강놀이 가기가 딱 좋은 힐링장소입니다. 먼곳 려행이나 해외여행도 좋지만 짧은 주말같은 경우는 가까운 곳에 가서 생태가 그대로 보존되여 있는 대자연을 만끽해 보시면서 산의정기를 듬뿍 받아 보심은 어떨가요? 꼭 하시는 사업들이 더 번창하실거라 믿습니다. [아]: 그럼 숭선은 화룡 어느 부근에 위치해 있나요? 그곳까지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나요? [최]: 숭선은 화룡 4개 변강 향진가운데 하나로서화룡남쪽 변경지대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숭선까지 가려면 3가지방법이 있는데요. 그중 한가지 방법은 굽이굽이 12고개라는전설이 있는 유명한 소골령 넘어서 가는 방법이 있고, 두번째는 차창에서 남평쪽으로 새아스팔트길이 만들어져서그쪽으로 선경대 구경도 하면서 무산철광도 구경하고 호곡에 있는 리욱시인의 시비도 둘러보면서 가셔도 되구요. 세번째방법은 새길, 즉 소골령에 오르기전 차창에서 옥석림장 통해 가는 길도 있습니다. 지금 중도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으면 뻐스도 그렇게 간다더라구요. 숭선은 우수한 자연조건으로 록색입쌀, 콩, 남새, 과일, 사과배가 그렇게 잘 자란답니다. 2012년 성급 생태향진으로, 2013년 국가급 생태보호구로 성정되였습니다. 12개성급 직속 기관, 네개 행정촌 ㅡ숭선, 대동구, 상천, 죽림이고2013년 중외고객 8521명, 2014년 7851인 유람객이 다녀갔습니다. [아]: 숭선에는 또 어떤 볼거리가 있을가요? [최]: 숭선에 가 보았다면 숭선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우뜩 서있는 군함산과 마을과 좀 떨어진곳에 있는 홍기하폭포를 꼭 보셔야 되고 홍기하표류도 꼭 하셔야 되고 산천어, 세천어 국은 꼭 드시고와야 당지인으로서 숭선에 갔다 왓다는걸 인정할수 있지요. 바삐바삐 당일로 갓다 오시지 말고 느슨하게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그 곳에서 묵으면서 생태 자연과 하나가 되여 오감륙정으로 자연을 만끽해 보시는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상세하게 말씀드리면, 1, 숭선의 상징ㅡ군함산입니다. 깍아지른듯한 절벽 그 모양새가 군함처럼 웅위롭고 장관이고순 자연 명물이기에 군함산이라 명칭했습니다. 그 산 앞에서 꼭 인증샷 남기셔야 됩니다. 군함산 남쪽 길로 산 정상에 오르면 숭선마을과 조선 삼장마을이 한눈에 안겨오구요. 정상에 오르거나 내릴때 산 중턱에서 서쪽에 있는 상천 벌판을 바라보는라면 특히 가을에는 황금 벌판이 펼쳐지는데누구나 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너무 멌있어서 당신에게 감성이 없더라도 시 한구절쯤은 쉽개 떠오를겁니다.   두만강 중조변경 첫다리는 숭선에 있구요. 다음은 남평다리, 승선에서 또 조선의 강물과 두 갈래 강물 합수목에 삼장이라는 조선 마을이 있습니다. 숭선과 조선 삼장마을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있습니다. 2, 홍기하폭포는 천렵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 할수 있어요. 낚시하기도 좋고 산 좋고 물맑고 경치 좋은것이 신선이 따로 없을 만큼 대자연속의 하나의 힐링장소입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소요하는 짜릿한 홍기하표류도 꼭 즐기셔야 하는 코스입니다. 깍아지른듯한절벽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홍기하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 량쪽에 풍경을 감상하느라면 별 세상에 온것 같은 느낌입니다. 홍기하 표류의 전체길이는 8.5공리입니다. 2시간정도 소요되고 산골짜기로 홍기하물따라 표류하는데 그 두 시간 정도 배에 앉아서 깍아지른듯한 기암괴석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꽃과 풀, 나무, 고목 등을 감상하느라면 정말로 꿈속을 노니는듯 신비스럽고또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수 있습니다. 숭선유람에서의 첫손 꼽히는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지요. 상천마을에 서쪽산 언덕을 넘으면 멀지 않은 곳에 자연이 선물한 거인동굴이라고 불리우는 곳도 있는데요, 동굴안 전체 벽면이 까맣고 반질반질한데 거인의 손으로 주물러 놓은듯한 손자국, 어느 조각예술가가의식적으로 만들어 놓은듯한 인체의 어느 부분을 담은듯한 형태의 벽면들, 그냥 반질반질하면 신기하지 않겟지만어떤 거인이 앉았다 난듯한 자리며, 거인의 손자국같은 자국이며 참 미스터리한 흔적들 천지입니다. 어떻게 이런 동굴이? 분명 인간이 손댄건 아닌 자연산물인데 해석불가능하게 참 신비롭습니다. 현지인들만 아는 동굴이죠. 그리고숭선에 가면 이전에 금을 캐느라 팠던 동굴들이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3, 숭선에 가셨다면 얼큰한 세천어 국과 산천어국은 꼭 드시고 와야 그래도 숭선에 가보았다고 자랑할수 있다고 우에서 말했죠. 그리고 근당 150원~180원좌우하는 이면수는 먹어보면 연길에와 다른 물고기 국은 먹을수 없을 만큼 죽여주게 맜있답니다. 국을 끓여주는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전문 이런 산천어탕이나 이면수탕 먹으러 숭선에 가기도 해요.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두 모릅니다. 그리고 20ㅡ30원씩 하는 돌쫄개로 어죽을 해먹으면 또 쫑기쫑기한게 별맛입니다 화룡에는 로리커호, 선경대 등등 명승지가 많지요. 숭선에도좋은 곳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숭선 동쪽에 위치한 간부료양소는 당지 중소학교 학생들이 산보 가는 지정지입니다. 그리고 군함산 동쪽에는 가마뚜껑을 방불케 하는 가마뚜껑산, 그 뒤에는민간이야기에 나오는 옥녀늪과 금녀늪이 길 하나 사이두고 사이좋게 있구요. 그리고 옥석, 시만, 그 쪽은 더 인적이 드문 원시림이고, 옥석 첨치는 그 곳 기후에서만 자랄수 있는 명물입니다. 다음 인삼장, 광평농장,장군님낚시터는 자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진짜로 둘러 볼만한곳들입니다. 이 밖에도 당지 노인들이 알고 있는 좋은 곳은 더 많고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마을 동창들이 모이면 앞으로 숭선에 경로원 지어놓고 거기가서 다같이 어릴때처럼 행복한 로년을 보내자고들해요 . 성급 생태 향진인 숭선에서 자란 오곡은 모두 유기농입니다. 특히 숭선의 입쌀은 록색입쌀로써 5근씩 정교하게 포장하여 보통쌀의 몇 배로 비싼 가격에 팔리고 또 선물용으로도 드러났습니다. 숭선 입쌀은 자잘한데 밥해놓으면 윤기나고 한번 잡숴보신 분들은 다시 찾게 돼 있어요. 너무도 좋으니깐요. 논밭이 거의 산 우에 있는데 두만강물을 끌어올려수전농사 짓습니다. 시골의 맑은 공기와 맑은 두만강물로 농사 지어서 그런지 숭선 입쌀은 참으로 맛있고영양가 높고 녹색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숭선같이 깊은 산골 공기 좋은 곳에서 자란 남새며 입쌀의가치는 비할수도 없는 유기농입니다. 숭선은 하도 깊은 산골이여서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므로생태가 그대로 잘  보존되여 있습니다. 마을에서좀 걸어 산 하나만 넘어도 더 눈이 휘둥그래지는 놀라운 원시림이나 깊은 산속 정취를 그대로 느낄수 있어요. [아]: 숭선에서 조금 올라가면 원봉 홍기하가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곳이죠? [최]:홍기하표류의 시발지가 원봉 홍기하인데 그곳의 물은 또 더 맑아서 유명 한 서호처럼모래알을 다 셀 정도이고 물안의 유유히 헤염치는 고기들이 다 보일 정도입니다. 들에는 나리꽃, 함박꽃과 각종 이름 모를 꽃들이 이쁘게 피여 싱그러운 풀 향기가 코를 찌르는것 같습니다. 일본에 어느 학자 분이 얘기하는 말이 시골에서 풀과 나무며 벌레와 새들 등 자연현상들을 지켜보면서 큰 애들은머리가 엄청 비상하대요. 그래서 늘 애들을 시골에 데려가서 산의 풍경들 자연의 섭리를 체험하게 하고싶어요. 우리는 정말 그런 풍경에서 자랐어요. 새벽안개 짙은여름 아침,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다가 아침에 눈 뜰때면 처절썩~ 두만강파도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오고 새벽안개 헤치면서 물동이 이고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아침밥을 짓고 소학교때는 외워내야 될 부분은 책을 가지고 이른새벽에 강가에 가서 커다란 돌우에 앉아서 외우면서 풍요로운 자연을 만끽하면서 자랐지요. 그래서 여기서경영만 몰두하다가 작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제 글에는 늘 고향의 한 단락 한 단락 시골풍경들이 늘 핵심이고 주제이고 하이라이트입니다. [아]: 어렸을때 이곳의 어떤 기억이 가장 인상에 남던가요? [최]: 제 기억에 70ㅡ80 년대 개구쟁이일때 우리 마을 두만강지역에는 록음이 우거진 여름이면 늘 화가들이 자리를 잡고 온종일 그림 그리는광경을 볼수 있었습니다 . 제가 소학교 다닐 때에는 뱀장어, 산천어, 가자미 등을 마을 남자분들이 반디를 들고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고기잡이에 더 능수인 분들은 그물을 쳐서 잡는 방법도 있어요. 또 어떤 마을 어르신들은 물가운데 크고작은돌들로 돌담처럼 쌓아서 물골을 만들고 버들나무가지같으것으로 키, 즉 방언으로 소보치처럼 결어서 고기를잡는데 이를 채발이라고 합니다. 아무때나 고기가 밭자리에 걸려드는데 특히 비가 내린 새벽에 가면 고기가엄청 많이 걸려들어요.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이렇게 산에 포수들이 파놓은 함정처럼 두만강같은 강에는 밭자리로고기 잡기가 좋아요. 개구쟁이오빠따라 아침 일찍 밭자리에 고기 건지러 다닌적도 있어요. 잡힌 고기를 빨리 가져 오지 않으면 또 다른 역빠른 사람들이 거두어 갈때도 있어요. 고기가 많이 잡힌 날에는 당지 식당에 좋은 가격에 팔기도 하고 어떤 환갑이나 생일이 있는 집들에서는 개인적으로고기를 잡아달라고 부탁해서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중소학교때 우리는 방학만 되면 오전 10시좌우부터 (안그러면 물이 너무 차가우니깐요)두만강에 가서 개발헤염치며 놀다가 물에서 놀기 싫으면 또 산에 올라가 놀고 산에가서는 또 북조선 삼장 건너 마을이다보니북조선노래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은"을목 터지게 웨치다가 더우면 또 두만강에가 헤염치면서 놀았습니다. 제일 더운 삼복에는 아마 온 하루 강에서놀았던것 같아요. 겨울에는 마을에 남녀로소가 스케트도 타고 그때그때는 참 좋았죠. [아]: 지금도 이곳으로 놀러가는 분들은 많나요? [최]: 화룡에 각 단위는 물론이고 연길, 주내각 현시 정부 각 단위 지정된 봄 들놀이 가기 좋은 곳이라고 할수 있지요 특히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에숭선에 천렵오시는 분들 어찌 많은지 덕분에 우리 엄마네독보조분들은 륜번으로 올라가서 산천어국, 소천어국등등 여러 가지 국을 끓여주고 받은 수고비를 받아 북경려행도 다니고 또 여기저기 좋은 곳에 려행을 많이 다녔어요. 홍기하폭포아래 정자에서 엄마들이 고추장에 내기를 푹 넣고 끓인 얼큰한 소천어국, 이면수국, 산천어국, 버들치, 돌쫑개국, 어죽을 맛보고 온다면 숭선에 다녀왔다고 할수 있죠. 지금이야 모두좋은걸 부럼없이 드셔가지고 별로 딱히 먹고싶은 탐을 내지 않지만 숭선강역에서 이렇게 천렵해보시면 한다하는 미식가들도 엄지손가락을 내밀게 맛있구요먼 후날에도 자꾸 다시 가고싶은 충동이 들게 할것입니다. 참 재미있는건 시내분들이 가서 분위기좋게 반디질도하지만 대부분 분들은 고기 잡을줄 잘 몰라요. 그래서 현지 식당에 부탁해서 고기를 사다가 끓여 드실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꼭 미리 부탁해서야 살수 있으니 가기전에 꼭 전화라도 하셔서 부탁하세요. 곳구경도 좋지만 강역에가 얼큰한 고기국도 꼭 드시고 와야 유감이 없습니다. 수요가공급을 초과하니 숭선에 소천어나 돌쫑개, 버들개, 모래밑이, 산천어, 이면수는 화룡이나 연길시내에서보다 휠씬 더 비싼 가격에팔려요. 산천어는 한근에 150원정도 하는데 지금은 대동구에서양식하기도 해요. 거기에서 나오는 샘물로 양식하는데다 공기 좋은 곳에서 키우기에 자연산과 같습니다. [아]: 숭선은 그야말로 대자연인데 어떤 다양한 식물이나 곤충들이 있나요? [최]: 숭선에 산과들 강에 보물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제 남동생과같이 정리해 보았는데 가지수가 너무 많아서 엄청 놀랐습니다. 어릴때 듣던 숭선에만 있는 나물들도참 많더라구요. 산나물류들로는 첨치, 참치, 우정금, 기름고비, 쇠투리, 다섯싹, 민들레, 반짜개, 달리, 개나리, 들잎, 도라지, 고사리, 내기, 참내기, 더덜기, 약재로는 인삼, 삽지, 개삼, 만삼, 구름. 버섯류는 송이버섯, 검정귀버섯, 노랑버섯, 솔나무 버섯, 이깔나무버섯, 나무류는 홍송, 싸리나무, 이깔나무, 봇나무, 소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느릅나무, 백양나무, 사시나무 과일이나 열매류는 들쭉, 찔그배, 오미자, 딸기, 깸, 살구,  돌배, 앵두, 포도, 사과배, 달맞이꽃, 까마귀열매. 새종류는 뻐꾹새, 종달새, 딱따구리, 꿩, 까치, 콩새, 두만강 물고기류는 산천어, 뱀장어, 가자미, 버들치, 돌쫑개, 깡쫑개, 세지, 물론 우리가 다는 모르지요. 그냥 조금 정리해보았는데 이 정도이면 전문가들이 정확한 수자야더 말할것도 없겠지요 봄에는 뽕구대, 민들레, 여러가지이름 모를 나물들로 우리 음식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면 7-8월에는 깸 월그배, 찔그배, 등 열매로 풍요로운 대자연의 혜택을 그대로 입으며 자라서인지시골분들은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넉넉해요. 아]: 네, 참 뭐가 많네요. 이제 저도 한번 기회가 된다면 숭선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보고 싶네요. [최]: 산과 강을 벗 삶아 자란 나의 동년시절, 청년시절, 대책도 없이 구질구질 가난하기도 했었지만 그때 그 시절이 왜 이토록 그리운건지, 두메산골 내 고향이 차분하고 인내할줄 알고 감사할줄 알고 자신감 넘치는 긍정적인 오늘의 나를 만든것 같아요. 그래서 늘 내 삶의 뿌리인 고향에 감지덕지 하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된다면 꼭 대자연의 왕국, 보물나라 숭선에 놀러가셔서 자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오신다면 앞으로 쭈욱~ 좋은 일들만 가득할것입니다  [아]: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최]: 네~ 감사합니다. ------———— 프로필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4    미워.고양이 이모티콘 댓글:  조회:1214  추천:0  2019-11-16
“아침부터 이런 이모티콘을 보내나.” 출장중인 남편이 안해가 저녁마다 무슨 여기 송년모임 있소, 저기 파티에 참가하오, 하면서 매일같이 바깥돌이 한다고 참고 참다못해 속이 탄다고 눈물을 똑~똑~ 떨구는 고양이 이모티콘을, 그것도 명절아침에 보내왔다. 그래서 기분이 잡칠때로 잡친 연희도 아침에 왈 ~ 같이 폭발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요즘 장사가 여의치 않아서 스트레스투성인데 소위 장사집남편이 그것도 명절날 아침부터 이렇게 하루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다니 참을래야 참을수 없는 일이였다. 속이 깊은 연희는 평시에는 남편이 자기 일이 여의치 않을때 속상해서 보내는 스트레스를 푸는 문자나 이모티콘은 그런대로 잘 받아주지만 오늘 아침같은 경우는 진짜로 참을수 없었다 . 년하남편을 만나 사는 연희는 웬간한 일은 굳이 옴니암니 따지지 않고 모든 일에서 자기가 그냥 양보하며 산다. 그만큼 집안에 모든 대소사는 당연히 연희가 더 많이 걱정하고 연희손을 거쳐야만 원만한 해결을 볼수 있다. 게다가 남편을 끔찍이 사랑하는 연희이기에 평소에 다투는 일이 거의 없는 그들인데 오늘은 생뚱같은 이모티콘 때문에 대판 싸움이 붙었던것이다. “당신은 참 너무 자사 자리해. 장사하는 사람 아침 컨디션이 중요하다고 평소에 얼마나 말했는데 그새 그걸 잊었나. 가만히 지켜보면 당신늠 언제나 자기밖에 몰라. 배려심이라구는 손톱만큼도 찾아볼수 없다구…” 늘 져주기만 하다가 연희도 성이 나니 어망결에 그동안 속에 쌓였던 원망이 터뜨리고 말았다. “당신이 적게 나 다니나? 그러기에 내가 그렇게 배우라는 집안일도 못 배우지.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취미공부나 하면서 밤마다 밖에서 보내시구려, 녀자가 어떻게 매일같이 밖에서 그것도 밤에 그렇게 헤매도냐. 나가는데도 정도가 있어야지. 내 정사같은걸 생각이나 한번 해 봤어?” 남편도 뒤질세라 참아왔던 원망을 터뜨린다. “요즘엔 장사가 잘 안돼서 가게를 밑지면서 내 놓느라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건만 남편이란 사람이 위로는 할줄몰라도 어떻게 이렇게 안해의 기분을 망쳐놓다니. 나는 그래 낮에는 소처럼 일하고 밤에는 고슴도치처럼 집구석만 지켜야 돼냐구? 신경질이 나도 나다니지 말구 비관만 하구 당신이 보낸 고양이 이모티콘처럼 집구석에서 울기만 하면 될가? 남편이 돼 가지고 매너가 참 좋아요. 됐어요, 말하지 맙시다. 짜증나, 어유 못 참겠어.” 아침부터 한바탕 다툼질이로 하루가 다 지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모티콘 때문에 붙은 부부싸움에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내 말이 어디 그 뜻인가. 나다니는 일이 도를 넘으면 나쁘다는 말이지. 취미공부를 하면서 나가면 그만큼 다른 장소는 거절할건 거절할줄도 알아야지. 어찌 누가 부른다고 하나도 안 빼놓구 쫑도르르 다 다니나? 차라리 밖에 나가서 살렴. 가정을 해 뭐해? 당신은 지금 정신이 너무 들떠있어, 정상이 아니거든. 자기의 취미생활과 친구를 사귀는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때와 시간과 가족을 헤아려 균형을 잡으며 하는게 좋을상 싶은데요. 안 그래요? 우리 사장님이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구만.” “그래요. 나도 집에 일찍 들어오면 좋은줄 알아요. 하지만 저렇게 취미공부라도 하면서 친한 분들이 가게에 와서 옷 한벌이라도 사주면서 때로는 식사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장사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둥글둥글 어울리지 않고 그렇게 꼿꼿하면 주변에 사람이 몰리겠어?” 이렇게 그동안 하고 싶던 소리 다 하고나니 속이 다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너무도 시원해서 이제부터는 안 좋은 일들을 가슴에 멍이들게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다 터뜨려버려야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소심해서 늘 참고 살던 연희이지만 이번 일만은 절대 쉽게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용서하더라도 혼뜨검은 좀 든든히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질지 못한 사람이 모질게 나서자니 자기는 또 얼마나 힘드냐. 그렇게 한바탕 다투고 이튿날 가게에 나갔는데 컨디션 탓인지 온 하루 옷 한벌도 못 팔았다. 좋은 연희는 그걸 다 거절 못하고 정말 거의 매일같이 밖으로 나다녔다. 출장중이여도 매일 연희한테 전화하는 습관이 있는 남편은 그게 좋을리가 없고 연희 자신도 사실 련속 며칠 연회상에 앉고 맥주를 마셨더니 머리가 흐리멍텅해지고 아무것에도 집중할수 없고 환각의 세계에 빠져 사는것 같았다. 진짜로 마약하는 사람들이나 알콜중독자들의 생활을 체험하는것 같았다. 자기절로도 자기 생활이 막 리해 안 되는데 출장중에 멀리서 그걸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남편은 속이 뒤번져질건 뻔한 일이다. 그러고보니 자기가 참 너무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슬그머니 들었다. 반성을 하고보니 연희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부끄럽고 창피하고 미안했다. 애를 봐도 또 얼마나 불쌍한가? 퇴근해서 집에와 지지고 볶고 저녁 챙겨먹고 설거지까지 하면 아홉시를 훨씬 넘는데 매일같이 해야 할 집안일들을 련속 며칠이나 미뤄났으니 집안이 또 어떤 아수라장이 되였을까? 친구 만나 밤 늦게까지 수다떨고 이튿날 가게에 나가면 또 어떤가? 련 며칠씩 술 마셨으니 피곤해서 잠만 오지 따져보면 바깥돌이해서 좋은게 별로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삐져버리지, 애는 애대로 뿌루퉁해 하지, 자기는 자기대로 힘들지, 게다가 장사는 또 엉망이지… 연희는 가슴 아리게 반성을 했다. 안해, 엄마로서, 소위 가게사장으로서, 정말 너무했구나 싶었다. 이제부터라도 생활방식을 고쳐야겠어. 바깥돌이며 취미생활은 적당하게 하고 자기 가족에게 더 많은 애정을 몰부어야 되겠다고. 자기 잘못을 알게되니 금방 사과부터 하고싶었다. 끝내는 연희쪽에서 먼저 진심을 담아 사과문자를 날렸다. “자기야, 정말정말 미안해, 앞으로 밖에 나다니는 일 많이 자제하게. 다시는 당신을 피곤하게 굴지않으게.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사랑해~” 문자와 함께 하트 날려보낸다. 인차 남편한테서도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마 안해의 사과메시지를 기다린듯 했다. “여보, 나도 명절날에 너무했어, 내가 그만 욱~ 하는 성질에 참지 못하고 아침부터 장사하는 사람의 기분을 망쳤으니 미안해. 앞으로 자기한테 더 잘 하는것으로 립공속죄할께.” 문자와 함께 “하트 뿅뿅” 이모티콘 보내왔다. 헐~ 닭살이야. 평소에 늘 안해의 랑만을 잘도 받아주는 년하남편이다. 아껴도 다 아끼기 아까운 내 남편인데 다시는 피곤하게 들볶지 말아야지. 연희도 련이어 “뽀뽀 백개”, “하트 백개” 이모티콘을 날려보낸다. 언제 다퉛나 싶게 혼자서 히~히~ 웃으면서… 남편과 화해의 메시지를 주고받고나니 신기하게도 방금까지도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듯 후련했다. 신이 인간을 참 묘하게 만든것 같다. 안 좋은 일들을 금방금방 잊을수 있게 또 금방 용서할수 있게 해줘서. 신의 능력에 감탄한다! 오늘도 좋은 날이길!
3    정향숲을 찾기 까지 댓글:  조회:4786  추천:0  2019-11-15
차갑게 페부를 훑는 듯한 선들바람이 나의 머리결을 흩날린다. 가을의 느낌은 마냥 처량하다. 자전거를 타고 일자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여러날째다. 거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하루종일 정신없이 발품을 팔다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거리의 가게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하나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유독 환한 불빛을 뽐내고 있는 한 가게로부터 “복무원 모집”이라고 씌여진 글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자전거를 비스듬히 세워놓고 한참을 못박힌듯 서있다가 쭈뼛거리면서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초췌한 얼굴에 퀭한 눈,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녀자가 야울야울 웃음을 포개면서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뭐 드시겠어요?” “저기요. 이 식당에서 복무원 받아요?” “식당일은 해봤소?” “네에.” “조선족이 돼서 좋은데 어려서 써빙 밖에 못하겠구만. 한달 월급은 80원이고 숙식은 제공해주오. 매출 올려주면 보너스도 있소. 어떻소? 할 의향이 있소?” “네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나는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신세가 아니였다. 얼마전까지 출근했던 복장공장에서는 몇달동안 급여를 미지급하다가 막무가내로 문을 닫아버려서 그만 락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였기 때문이다. 동생과 합숙하고 있던 세집 집세도 몇달째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당장 추위가 들이닥칠 텐데  석탄 살 돈도 없고 이대로라면 설이 되여도 작년처럼 집에 갈 뻐스표 살 돈 20원이 없어서 동생과 둘이 찬 방에서 무우말랭이에 감자국을 끌여놓고 설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동창들은 교원이요, 사업단위이요 하면서 폼 나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몇년을 이렇게 이 식당 저 식당, 이 복장공장 저 복장공장을 전전긍긍하면서 아는 사람들 특히 동창들을 만날가봐 골목길로만 출퇴근하면서 하루살이와 같은 이십대 초반을 보냈다. 갑과 을의 관계, 돈깨나 있다고 인간 대접이란 뭔지도 모르는 주인에게 언제까지 자기 기분은 싹 다 죽이고 깍듯이 굽석거려야 되는지? 그나마 남의 집 가게에서 수모를 당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법인대표가 나 자신인 나의 가게를 오픈하려는 당찬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기술이라고 짐작되는것들을 어깨너머로 열심히 배웠다. 옛일들을 떠올리면 초라하던 기억 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기억을 상실한 사람처럼 현실은 생생한데 거짓말처럼 옛일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동창들이 모여앉아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아, 맞어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도 그만큼에서 그치면서 더 이상의 추억을 더듬기 싫다. 더 들추면 그냥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울며 산 동년, 설음 밖에 없는 나의 20대 추억 중에는 그렇게 잊고 싶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는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있다. 심청이 아버지 젖 동냥하듯 이집 저집에 가서 학비를 꾸어대며, 학기마다 같은 고충을 반복하며 나는 억지로 고중을 마쳤다. 어렵사리 공부를 했으면 어느 책에서처럼 공부나 잘할 것이지 못나게도 대학시험에서 락방되였다. 방학이 되여 집에 돌아갔을 때에는 풍경화 같았던 고향도 백수로 되여 돌아가니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늘이시여! 사면이 산으로 꽉 둘러쌓인 이 산골에서 내가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별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밤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울부짖었다. 1976년 되던 그 해, 아버지는 15살인 큰 오빠와 11살인 작은 오빠 그리고 7살인 나와 4살짜리 코흘리개인 동생을 엄마에게 유산처럼 남겨놓고 무정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버지는 떠나면서 애들을 엄마 혼자 다 못 키운다면서 세 아들은 다 남에게 주고 딸인 나만 데리고 재가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그때 엄마는 39살로서  예쁘고 생기가 넘치셨다. 처녀시절 엄마는 인물 체격이 좋은 덕분에  항미원조에 나가셨다가 고위간부가 되여 금의환향한 아버지한테 시집가게 되였다. 문화대혁명때 아버지는 자진하여 장백산 아래 광평농장에 하방하셨다가 거기서 박해를 받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누구보다도 멋지고 인자하셨던 아버지는 생전에 외지로 회의하러 갈 때거나 당교에 학습하러 갈때면 늘 딸인 나만 찌프차에 앉혀 데리고 다니군 했다. 나의 어릴때 추억중에 그 추억만 지금까지 제일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버지가 세상 뜨고 3년 후, 고위급 간부가 엄마에게 재혼을 요청해 왔다. 이 사람 외에도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인물 좋은 엄마를 넘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 마을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귀동냥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중매군들이 아무리 감언리설로 설복을 해도 번번히 제 새끼를 어떻게 남 주냐면서 매몰차게 재가를 거절하였다. 네 자식을 끌어안고 빌어먹을 지언정 굶어죽어도 엄마 품에서 굶겨 죽인다고 엄마는 고집하셨다. 하지만 엄마 혼자 우릴 다 껴안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했을가? 이붓아버지 밥을 먹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행복했을가? 가난이 숨통을 조여오는데,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못하고 공부시킬 돈도 없으면서…가난에서 파생되는 초라함,그게 얼마나 사람을 기죽게 하는지 엄마는 몰랐을가? 주렁주렁 돼지같은 자식 넷이 직업을 얻어야 할 나이에 직업도 없이 좁은 집안에서 부대끼며 지낼 때 나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엄마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국장 이붓아버지한테 재가했더라면 엄마는 어떨지 몰라도 자식들 일자리는 근심걱정이 없을텐데. 고중을 졸업하고 림시직으로 복장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못다한 공부 소원을 풀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달마다 나오는 월급 전부를 동생에게 지원해주며 자원해서 소녀가장이 되였다. 나는 동생이 고중을 졸업하자 시집을 갔다. 동생 뒤바라지에 적금 없이 돈을 탈탈 털어쓰다 보니 거의 빈몸으로 시집을 갔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또 얼마나 대놓고 나를 무시했던지… 내가 시집가던 날, 자기 뒤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누나에게 록음기 하나 못 사주는게 속에 내려가지 않아서 동생이 그토록 섧게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썩 후에 친정에 놀러가니 시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동생이 시골학교 학생이 적어서 페교되면서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동생이 집에서 자꾸 이 노래만 부른다고.     나의 누나는 좋았지     언제나 방긋이 웃어주던 그 얼굴이… 그때 나는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바깥세상을 본 내가 일어서야 되겠구나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생겼다. 순간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연길에 자그마한 음식점을 차리면 우리 셋의 일자리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말했더니 오빠들이 흔쾌히 동의하면서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서 내 장사자금을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김삿갓 음식점”이 오픈했다. 료리사와 복무원 각각 한명씩 채용하고, 엄마는 주방 일, 동생은 구입을 맡았다. 다행히 장사가 잘 되였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바람을 만난 연처럼. 믿을 언덕이라고는 없이 음식점 하나에 매달린 우리 세 식구는 최선을 다했다. “촌빠이” 라고 이마에 써붙인 것처럼 투박하고 순수해서인지, 넉넉한 시골 인심 덕분인지 한번 식당을 찾았던 손님들은 거의 단골로 되였다. “으흠, 요즘 같은 세월에 맛으로 승부하는 가게도 있네.” 그때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한결 같은 평가였다. 조건이 우월한 이웃 식당들에는 손님이 없어 직원들이 홀에서 빈둥대는데 우리는 준비한 재료들이 다 팔려서 이웃 식당에 빌리러 다녔다. 그때는 내가 아마도 장사체질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나를 대학생은 만들지 못해도 훌륭한 장사군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릴때 고생도 눈물나게 감사하고… 별게 다 감사했다. 하지만 영업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의 집합체이다. 그것을 잘 관리하려면 넉넉한 자금이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이였다. 거기에 죽어나는건 가족이였다. 마냥 좋을 것만 같던 엄마도 오래동안 돈을 만져보지 못하자 사사건건 나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엄마.” 그날도 두사람이 겨우 서서 일할 수 있는 비좁은 주방에서 올망졸망 새로 구입해온 야채며 고기들을 씻을 건 씻고 랭장고에 넣을 건 넣으며 분주히 돌아치다가 문득 밥가마를 열어보니 밥가마가 텅텅 비여있었다. 놀라서 허둥대며 홀에 대고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당장 손님이 쓸어들어올 시간인데 어디에 가 있는 거야? 복무원이 주방에 뛰여오더니 출입문 쪽을 슬쩍 눈치질하며 거기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마음이 급한 나는 앞치마에 두손을 쓱쓱 문지르며 출입구 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식당으로 들어오는 정문 옆에 엄마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맨 봉당에 스님처럼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다. 나는 급히 엄마 팔을 붙잡고 일으키며 퉁명스레 내쏘았다. “엄마 안쪽에 들어가 앉으쇼. 손님들이 올 시간인데 문앞에 앉아있으면 남들이 뭐라겠슴까?” 엄마가 고개를 들고 뚫어지게 나를 쏘아보았다. “너도 내가 업신 보이냐?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다 챙겨주면서 왜 나와 니 동생 월급은 안 주니?” 나는 흠칫 놀라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며 물었다. “자금이 돌지 않아서 힘들어하는게 엄마 눈에는 안 보임까? ” “점심, 저녁 손님이 가득 차는데 돌릴 돈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집세, 세금관리비, 직원들 월급, 그날 쓸 음식재료들을 구입하고 나면 돈이 다 나가는거 모름까? 술과 음료를 다 외상으로 들여왔잼까?” “언제면 돈이 남아서 우리도 남들처럼 돈이나 만져 보겠니? 난 어째 아무리 해두 그새 장새일 것 같다. 일해봤자 밑굽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인데 난 집에 갈란다.“ 나는 엄마가 가겠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즉시 톤을 낮추면서 말했다. “엄마, 좀만 참으쇼. 지금은 림시 바빠서 못 주지만 그 돈 안 떼먹구 아무 때건 꼭 다 주겠슴다.” 엄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가게 안에 들어가 종업원과 마주앉아 야채를 다듬는 남동생을 불러냈다. “철아 우린 그만 집에 가자. 누나 혼자 장사해서 콱 잘 먹구 잘 살라구 해라.” “엄마 정말 이럴래김까?…” 급해난 내가 엄마 등뒤에 대고 앙칼지게 소리쳤다. 나도 경영경험도 없고 풍족한 자금도 없이 자기 가게라고 꾸려놓고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폭발 직전이였던 것이다. “자기 힘으로 악착같이 벌어서 잘 살려고 아글타글하는데  엄마가 해준게 뭐 있슴까? 엄마도  녀자이면서 남존녀비 사상만 머리에 가득차 가지고 오빠나 동생은 공부도 시키고 직업도 근심하면서 하나 뿐인 이 딸은 언제 빈말로라도 공부걱정 직업걱정 해본적 있었슴까? 나도 엄마한테 쌓인게 너무 많슴다.”  끝내 내 광기가 폭발하였다. 이웃 가게들에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뛰쳐나와 보고 길 지나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아들이든 딸이든 다 내 살점인데 누구를 더 고와하구 누구를 더 미워했겠니?”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당문어구에 두었던 큰 보따리를 들고 몸을 기우뚱 거리며 걸어갔다. “엄마 이렇게 가면 난 이제 친정두 없고 부모 형제도 없음다. 이후부터 날 볼 생각 마쇼.” 엄마를 막아서며 내가 기어이 모지락스럽게 퉁바리 놓았다. “내 자식교육이 실패구나.” 엄마 얼굴이 서서히 무섭고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얼굴에 한가닥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때부터 졸래졸래 내 뒤를 따라다니며 그렇게 나를 잘 따르던 동생도 방 한쪽 구석을 지키던 자기 짐을 넙적 들고 씨엉씨엉 엄마 뒤를 따라갔다. 제 편인 줄로만 알고 있던 소중한 가족으로부터 오는 랭대에 나는 된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해나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고 말았다. 료리사와 복무원이 뛰쳐나와 나를 부축해 직원 휴식실에  눕히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며 한잠 자라고 하고는 나갔다. 한바탕 행악을 쓰며 쌓였던 불만을 토하고 나니 속이 후련한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났다. 자리에 누운채 팔꿈치로 쓱쓱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원망했다. 저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어우 시원섭섭해. 나는 애써 내가 잘했다고 위로했다. 그런데 아니지… 가슴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올 것 같은 이 홍수 같은 설음은? 사막에 혼자 버려진듯한 이 느낌은?…그게 무슨 감정인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가족이라도 그 사람들의 사랑을 잃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  얼마나 지났는지? 밖에서 왁작지껄 떠들어대는 소리와 함께 손님들이 시작이라도 부른 듯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밥가마에 밥도 없었지. 될 대로 되라고 누워있다가 밥이 없던 생각이 불시에 떠올랐다. 이대로 누워 있을 수는 없다. 꾼 돈도 못 갚았는데. 나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손님들 심부름에 주방일에 홀과 주방을 정신없이 뛰여 다니며 그날 점심고봉기를 넘겼다. 오후 재료를 구입하러 나갔다 늦게 돌아오니 홀에서 료리사와 복무원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이렇게 바쁘면 다른 가게로 옮길 예산이라고 했다. 나는 직원들을 찾아 마음을 안정시켰다. 빠른 시일 내에 엄마가 돌아오게 하던지 아님 직원을 더 쓰던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장구지책이 아니였다. 무슨 돈으로 또 직원을 쓴단 말인가? 나는 슬프게 웃었다. 갑갑한 마음에 식당을 나가 점심에 엄마가 앉았던 것처럼 맨 땅에 올방자 틀고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아글타글하지? 엄마도 나와 같은 이런 느낌이였을가? 너덜너덜 혼백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허무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불소나기처럼 볕을 쏟아붓던 태양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어둠의 장막으로 사라진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힘든 삶의 이야기가 있을가? 상처입은 내 마음을 누가 토닥여주지? 어느새 나를 괴롭히는 트라우마들이 슬로우모션으로 내 시야에 하나 둘 안겨온다. 엄마가 집으로 간 뒤부터 가슴이 답답해나며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이 폴폴 나갔다. 창업해서 제일 힘든 일년을 엄마와 우직한 동생이 나를 믿고 따라주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나면서 내 고요한 마음에 거센 파문을 일으켰다. 장사 잘 된 날은 입이 귀에 걸려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하게 웃으며 표정관리를 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돈 한묶음 쥐고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이 몰리다가도 어떤 날은  어느 신선을 노엽혔는지 들어오는 손님은 없고 파리만 기세차게 날아다닐 때가 있었다. 돈 고생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생각지도 않던 문제가 생겨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때마다 엄마와 동생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어서 나는 용케도 하나하나 이겨나갔다. 가게를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자기 몫의 돈이라고는 쥐여보지도 못하면서도 영업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오늘도 장사 잘될거야.” 라고 밝게 웃으며 좋은 마음으로 주문을 걸어주던 엄마, 방안 그 어디에서나 웃어주던 엄마, 해바라기처럼 나만 바라보던 엄마,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그리워 나는 어느새 입을  피쭉거리며 울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더 잘 살겠다고 내 인생에 비타민이 돼주고 디딤돌이 돼주고 반석처럼 지켜주던 내 엄마한테 그렇게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서 제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는다는 말까지 매몰차게 했는지? 그땐 내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앉아있었나봐. 아홉번 잘하다 한번 돈 좀 달랬다고 내가 어떻게 제 친엄마를 그렇게 모지락스럽게 괄시 할수 있단 말인가? 할 말 안 할말 다 했으니 내가 봐도 나는 참 못돼먹었지. 내가 미쳤나봐. 그렇게 엄마 기를 채워주는 딸이 하늘 아래 몇이나 될가? 그리고 그리고…. 후회가 폭풍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화도 흔하지 않던 시대라 나는 내 진심을 담아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그동안 고향집에서 잘 보내십니까? 엄마와 동생이 없는 식당은 한마디로 범벅입니다. 요즘 혼자 바삐 돌아치면서 구석구석 알아서 틈새없이 모든 일을 잘해주던 엄마의 손길이 무척 그립습니다. 그동안 헌 바자 바람 막는 줄을 모른다고 나 혼자 잘해서 잘 되는 줄 알고 설쳐됐습니다. 내가 일어서야 내 형제 돈도 갚아줄 수 있고 내 가족도 사는 것이라 독하게 마음 먹고 엄마나 동생돈을 먼저 댕겨쓰고 돈이 생기면 곱으로 갚아주리라 마음 먹었는데 엄마가 간 뒤 곰곰히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리기적이였습니다. 엄마 도움이 절실하지만 아무리 허물없는 내 엄마라도 오라는 말은 미안해서 못하겠어요. 편지와 함께 돈을 엄마에게 보내드립니다. 식당은 나 혼자 것이 아니라 엄마, 동생, 나 우리 셋의 식당입니다. 그동안 모아뒀던 전부를 세몫으로 나누어서 엄마와 동생몫을 부쳐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빠들이 꿔준 돈도 같이 보냈어요. 우리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이도 화목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돈을 위해서 우리 가족이 다투고 산산조각이 난다면 이 돈을 해서 뭐하겠어요. 돈은 없어도 되지만 가족은 없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가게를 빠른 시일 내에 임대하겠습니다. 임대비는 가게를 오픈해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수고한 엄마와 동생에게도 꼭 같은 몫으로 세 등분해서 보내겠습니다. 꼭 내 힘으로 당당하게 선 모습을 엄마와 우리 가족, 그리고 고향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일곱살에 아버지를 잃은 최씨네 셋째 딸이 지금은 연길에서 그렇게 잘 살고 있더라고. 믿으세요. 꼭 멋진 딸로 엄마에게 효도 한번 잘 할게요... 필경은 가족이다. 엄마와 동생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꿈 같았다. 시골의 맑은 공기와 푸른 초목의 싱긋한 향기를 그대로 가지고 느긋하게 웃으며 갈 때보다 더 큰 보따리를 들고 식당에 나타났다. 동생도 소품배우 조본산처럼 크고 작은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나타났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와!” 하고 환성을 질렀다. 직원들도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보따리를 헤치니 전부 농촌의 풋옥수수며 가지며 풋고추, 떡호박과 같은 유기농야채들이였다. 그리고 두만강의 특산인 세치네도 있었다. “나는 네가 궁리없이 돈을 다 퍼주구 있는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경제권을 빼앗아서 돈관리를 해주자구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바쁠 때를 예산하고 온천하게 돈 다 모으고 있었더구나. 돈 독이 올라 부모형제를 모르는가 했더니 이번에 일 처리 하는걸 보니 사람냄새두 나구… 이번에 니가 보낸 돈과 집에 좀 있던 돈을 다 가져왔다. 네가 투자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투자해라. 다른 업종으로 바꿀 생각을 하지 말고 우리 힘을 모아 세 식구가 같이 할 수 있는 이 가게를 계속 해보자.” 헤픈 내 눈물이 또 비오듯 쏟아졌다. 시련을 딛고 마음이 합쳐지니 가게가 나날히 흥성했다. 인맥은 없어도 단골들의 입소문을 통해 또 새로운 단골이 생기고 또 그 단골들이 새 단골을 묻혀오고 하면서 손님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돈은 늘 딸리였다. 기대이상으로 일들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간절하게 꿈 꾸었는데 이루지 못한 일들도 있는 가운데 나는 야금야금 녀장부로 성장해갔다. 그렇게 몇년동안 경영하다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해주고 번 돈을 셋이서 세 몫으로 나눠 가졌다. 동생은 그 돈에 대부금을 내서 집 한채 사고 나는 그 돈을 종자돈으로 옷가게를 차렸다.   저자 최선숙 옷가게를 운영할 때에도 엄마는 어려서 못해준 사랑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듯 묵묵히 다해주었다. 딸애가 태여나자 십년동안 우리 집에 와서 보모 아닌 보모노릇 해주면서 딸애를 봐주었다. 나는 남자들처럼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빨아주는 옷을 입고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엄마와 토론하면서 나의 경영의 길을 걸어갔다. 건강한 몸을 주어서 고맙고 트인 사유를 주어서 고맙고 고마움을 알게 해줘서 고마운 엄마 덕분에 나는 전성기에 전성기를 거듭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시골에 있는 오빠들도 한국에 나가 돈을 벌수 있게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었고 앞선 생각으로 형제들 모두 좋은 항목에 투자하여 돈을 벌수 있게 집안의 해결사 역할도 담당하였다. 언제 고향에 살던 동생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누나 언제 이렇게  富婆가 됐소?” 덕지덕지 기운 바지를 입고 코를 풀쩍이며 아버지 없이 자란 우리에게도 옛말하며 살 날 들이 왔다.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때론 잔잔하게 들려오는 비소리를 인생 전주곡처럼 들으며 오늘도 나는 82세의 백발이 된 엄마를 조수석에 앉히고 고향으로 향한다. 반평생을 시골에서 산 엄마,나이가 들어서 감성도 예전 같지 않지만 대자연속에만 묻히면 애들처럼 신나 하신다. 나는 즐거워하는 엄마의 그 모습에 홀려 늘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엄마와 함께 산향길을 즐긴다. 조용히 창밖을 주시하다가 어디를 보나 추억인 익숙한 고향길에 접어들기만 하면  엄마의 생방송이 시작된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열번도 더 들었을 엄마의 레퍼토리를 들어준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창밖을 보면서 혼자소리로 자꾸 누군가를 욕한다. “무저리 같은게 일찍 갈 택이 뭐야? 좋은 날도 못 보고. 무저리 같은게…” “엄마 누구를 욕함까?” “누기를 욕하긴 누기를 욕하개? 무저리 같은 네 애비지.” “갑자기 왜 저 세상 간 아버지를 욕함까?” “이 좋은 세상에 누릴 것도 못 누리고 넘 일찍 간게 원망스러워서 그런다.” 당신 자식 차에 앉으니 남편 생각이 나나 보다. 39세 꽃나이에 생과부로 홀로 나서 조롱조롱 자식 넷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가? 창문을 여니 바람에 나무잎이 한들거리는 것이 보여서 마음이 상쾌해졌다. 어디에선가 그윽한 정향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어디 가까이에 정향숲이 있나보지. 어쩌면 이리도 그윽할가?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없이 한결같이 주기만 하는 엄마의 원초적이 사랑처럼… 나는 비 온 뒤의 청신한 정향숲을 찾아 차머리를 돌린다.   2019년 8월 29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2    축복받은 가족 댓글:  조회:3297  추천:0  2019-11-14
           요즘은 위쳇덕에 모멘트에서 가담가담 남들이 사는 모습들을 심심치 않게 들여다볼수있다.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삶의현장들, 그 가운데 내가 제일 부러운 그림은 그래도 명절때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 재미있게 식사하는 모습이다. 세월이 흘러도 가까운 친척끼리 풍성한 음식상에 모여앉아 명절을 즐기는 인정세태는 변하지 않은듯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친구들이 모여서 아버지는 유명한 누구요, 어머니는 또 누구요, 오빠와 삼촌에 사돈에 팔촌까지 가족의 화려한 신분을 드러내며 세력이 있는 집안이라 자랑하는데 귀가 솔깃해졌다. 그리고 우리 가문, 내 가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였다. 그래서 공부하는 조카들을 앉혀놓고 소위 “정치”를 할때가 많았다. 우리 세대는 이 정도밖에 안되지만 너희들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배운자의 여유, 능력자의 여유, 있는자의 여유를 즐기면서 살라고 말이다. 가족끼리 형제끼리 쇠고리식으로 서로 돕고, 서로 뭉치면서, 밀어주고, 당겨주고, 잡아주면서 되는 집안이 되라고... 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모님들은 왜서 그때 우리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지 않았을까? 언녕 이런 감각을 키워주었더라면 나도 혹시 이를 악물고 악착스레 분투해서 지금쯤은 내 조카들의 얼굴을 세워줄수 있는 어마어마한 빽이 되여있지 않았을가 ?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주변의 이웃, 동료, 친구들이 지금이나마 나에게 이러한 깨달음을 가질수 있게 진실한 감동을 준 잊을수 없는 몇가지 교과서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하고 싶은 얘기는, 전에 우리 마을에 형편없이 구차한 한 가정이 있었는데 어머니 혼자 여섯자매를 키웠었다. 어찌보면 세상은 그래도 공평한것 같다. 이렇게 탈망살이가족에 글쎄 자식 여섯명이 련이어 줄줄히 대학에 붙는 영광도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깊고깊은 두메산골에서 공부한 애들 여섯명이 다 대학에 붙다니. 그 세월에 누구나 인정할수밖에 혀를 찰수밖에 없는 마을의 경사이고, 온 동네의 일등 화제였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그 집을 부러워했고 애들이 애먹일때면 자연히 "그집 애들을 봐라, 못살아도 얼마나 공부는 잘하는가?"는 식으로 교육했다. 늘 그집 여섯형제들이 온 마을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 덕에 그집 어머니도 여기저기 요청받아 어떻게 자식교육을 잘해서 여섯명이 다 대학에 붙은 경험담을 지금 우리가 유명한 교수님 요청해서 강의듣듯이 했다. 그때 난 어려서 한번도 들은적이 없지만 이야기를 들은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차며 찬사를 아끼시지 않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상만 해도 마음에 와닿는 진실하고 좋은 사례들이였을것 같다. 우리 어머니도 한번 가 들으시더니 어려운 살림에 우리에게 책 사주는 돈은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 어머니는 시골엄마지만 참으로 똑똑하고 사리밝고 해박한 여인이였다. 그리고 그 형제중 맞이가 리더역할을 잘했다고 들었다. 되는 집안이 되기까지 부모님 교육도, 집안의 맏이 역할도, 참 중요한것같다.       다음 얘기는, 내가 금방 시집왔을때 일이다. 우리 옆집에는 딸 두명이 있었는데 모두 병원에 출근했다. 그러다가 먼저 큰딸이 병원을 나와서 여행사에서 가이드를 하였다.이삼년 지난뒤 같은 여행사 동료와 결혼하고 상해에 가서 여행사를 맡아하더니 몇년뒤엔 그 큰 도시에 살림집도 사고 영업집도 사게 되였다. 여행사도 점점 번창하더니 고정직업의사인 여동생네 부부도 데려다 사업을 점점 통 크게 벌려나갔다. 그러다가 사촌형제들도 데려가고 또 퇴직하신 부모님에 사돈에 팔촌까지 다 데려다 여행사산하의 호텔, 약방, 특산품판매점... 등등에 써주면서 온 가족의 취업문제도 해결하고 자기사업도 탄탄하게 키워나갔다.       내가 집에서 애 키우는 불과 몇년 안되는 사이에 이웃집은 큰딸 덕분에 빛의 속도로 번창해졌다. 그때 절실히 느낀점이라면 한 가족에 “영웅”이 한명만 나와도 온 가족이 떵떵거리며 살수 있구나는 깨달음, 이웃집의 번창한 발전 과정이 나에게는 평생 잊을수 없는 생생한 교과서로 되였다. 이젠 이십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내가 받은 감동메세지는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를 본듯이 생생하다.       한 가족의 해결사, 한 가족의 자랑, 한 가문의 영광, 되는 집안. 그래서 나는 이 얘기를 주위사람들에게 참 많이 했고 그 만큼 내 인생에 큰 계발을 받았다.       그 다음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의 이야기인데 어느날, 그분이 이렇게 자랑했다. 여덟형제에 부부가 모두 공무원이며 한가족도 이혼한 가족이 없고 부부중 어느 한명이 먼저 돌아간 집도 없고 집집마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냈으며 80고령의 부모님도 아주 건강하다는것이다. 그 직원한테서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와~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큰 축복을 받을수 있나? 이건 진짜 자랑할만한 가족이다. 하나도 거짓말이 없는 진짜로, 그 직원도 퇴직하고 우리 가게에와서 출근했는데 큰 언니, 작은 언니가 늘 우리 가게에 놀러와서 익숙한 사이가 되였었다. 그들이 오고가는 얘기를 들어보면 모두 경제적으로 풍족한편은 아니지만 형제사이 우애가 깊고 화목한 집안임은 틀림이 없었다. 요즘 세월에 이렇게 산다는게 그것도 여덟형제가 모두... 오우 ~ 진짜로~ 내 나이 사십을 넘기니 이런 집안이 부럽기 그지없다.   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여기서 잠깐 내 얘기도 곁들여 볼가. 옷가게를 운영한지 20여년 되는 나는 사장이라고 땡땡이치는 법이 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시계바늘처럼 제 시간에 출근해서 제시간에 퇴근하는 노력파이다. 오래 하다보니 이젠 그 만큼 여유로와져서 좀 쉬여도 괜찮긴 하지만, 이제는 몸에 밴 체질이 된 습관때문에 전에는 돈버는 멋이였다면 지금은 돈보다 고객과 서로 소통하면서 자기 가치도 창출하는데 초점을 두고 즐기면서 한다. 이러한 내가 요즘은 무슨 친구복이 터져가지고 벼라별친구, 혹은 친한 선배, 친한 후배가 많기고 하다. 큰일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인맥을 이용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정도로 많은 친구들, 지인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퇴근시간이 출근시간 이상으로 바쁜 사회활동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다.        또 요즘 위쳇은 이런 저런 그룹이 많이들 성행되는듯하다. 그룹 이름들도 가지각색 “미녀들 수다”, “동네쉼터”, “시크릿 가든”, “사랑과 우정사이”, “그대는 꽃”... 등등 개성시대와 더불어 얼기설기 거미줄 처럼 엉키고 성킨 인맥의 시대. 하지만 우리 가게에서 나와 같이 몇년간 일한 언니는 자기가족끼리만 그룹을 만들어가지고 제집식구끼리만 논다고 한다. 즉 그룹성원으로는 15년 가까이 외국에 있는 남편과 다 커서 외지에서 취직한 아들과 며느리... 낮에는 혼자다보니 심심하다며 쉬지도 않고 매일 가게에 출근하고 저녁엔 가족끼리 대화하고...       상대적으로 사회활동이 잦은 나는 처음에 그 언닌데서 "나는 친구모임엔 별로 가지 않소 저녁에 퇴근한뒤엔 우린 집식구들끼리 그룹채팅하면서 노오 ..."라는 얘길 들었을때 요즘같은 세월에 그게 너무 희구해서 눈물까지 찔끔찔끔 짜면서 허리 부러지게 웃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서글퍼지면서 그 언니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참으로 즐거운듯 하다. 쫓고 쫓기는 힘든 일상속에서 탈출하여 힐링한답시고 퇴근후엔 친구만나서 수다떨고, 집에 와서는 위쳇으로 수다 떨고, 어쩌면 남들보기엔 인생을 참 여유있게 멋있게 사는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활동이나, 인맥은 얼마나 휘황하고 거창한지 모르겠지만, 자기 가정에 들어가서는 너무나도 메마른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였다. 잦은 사회활동때문에 가정에 와서는 대화할 시간도, 가족 분위기를 느낄 시간도, 서로 소통할 사이도 없게 되여 적지 않은 가정들이 조금씩조금씩 황막한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데, 그것도 모르고 여북하면 "있을때 잘해"라는 노래까지 성행할까?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보면 공동언어도 없고, 재미도 없고, 설레임도 없이, 권태를 느낀다고들 한다. 조금만 언짢아도 제꺽하면 헤여지는 요즘같은 세월에 10여년 갈라져 있어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여전히 금슬 좋은 언니네 부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고 세련되기까지 한 언니, 언니라고 어찌 나가 놀고 싶지 않았을까?... 외로워서라도 자기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을것이다. 아무 부담도 없는 언니를 나가 사화활동을 즐긴다고 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 또한 하나도 없을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남편만을 위해 자식만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기 인생을 헌신한 언니가가족이 자기 인생과 생활의 전부인 이 언니가 너무나 돗보인다. 그 누구보다도 이 언니와 같은 안해들 엄마들의 헌신이 없다면 어찌 되는집안 대대손손 번창한 집안이 있을까? 인간은 성공을 추구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실상 최대의 성공은 행복한 가정을 구축하는것이다. 이 언니처럼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형님이 우리가문에도 많았으면 좋겠다. 남의식구가 잘 들어오는 복도 그 집안, 그 가문의 덕이라고 들었다.         “사람은 덕이 없으면 서지못하고 나라는 덕이 없으면 흥하지 못한다(人无德不立, 国无德不兴)”고 한다. 되는 집안이 되기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많은 덕을 쌓아야겠다. 막연한 기대보다는 되는 집안이 될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노력을 해야겠다. 되는 집안, 안되는 집안,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는 집안,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감을 다시 내 후대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겠는데 어른이 된 우리 애들이 어디가서 기를 펴고 가문을 진정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안이 되기 위해 가족의 매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 다 우리 가문의 영광이 되게 해달라고 해결사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대대손손 번창하게 해달라고 나는 늘 기도할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밀어주고 잡아주고 큰 언덕이 되여주리라. ------———— 프로필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1    샐러리맨의 행복은 댓글:  조회:1154  추천:1  2019-11-14
                                                                                                                                .     퇴근 뒤에는 늘 충전하러 다닌답시고 한 주 내내 밖에서 헤매기가 일쑤이다. 낮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길가에 휘늘어진 그 멋진 가로수 한번 제대로 쳐다볼 사이도 없이 몇 년을 살았다. 위챗에서도 새로 추가한 어느 누구와 따뜻한 대화 한번 길게 나눠보지 못하고 그렇게 나는 몇 년을 살았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 막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휴가라도 무작정 떠나고 싶다. 그렇게 위챗 모멘트에도 '출장 중'이라고 도장을 콱 찍고는 잠적 생활을 하고 싶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늘 외우는 은퇴, 요즘 나도 어딘가 누구도 찾지 못하는 그런 곳에 꽁꽁 숨어버리고 싶다. 누구도 친하기 싫고,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싫고, 불편한 자리는 더더욱 가기 싫고, 소심해졌다고 할까? 누구의 무심한 한마디에 괜히 상처 입고 너무 예민 해진 걸까? 그 누구나 공인하는 산만하고 늦은 절주의 태평스러운 성격좋은 여자가 언제부터, 왜서 이렇게 변해가고 있을까? 다행히 오늘은 누구에게도 불려가지 않고 조용히 집에 돌아왔으니 너무 좋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미팅, 겨우 선의의 거짓말로 둘러 붙이고 누가 볼세라 가만가만 제집 문에 들어섰다.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룰루랄라, 원래는 퇴근한 뒤에 곧게 집에 오면 이렇게 좋은걸. 늘 바쁘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내게도 원래 이렇게 많은 내게 속하는 휴식시간이 있었었네. 대체 왜서? 뭐 잘못한 일도 없으면서 도적고양이처럼 숨어서 퇴근해야 되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나니 나는 이런 신세가 되였을까? 허위적이고 지인 만나기에 부대끼고. 이게 어디 향수인가? 매일같이 불려 다니는 게 지겹다 지겨워. 이 모든 허황된 짓거리 안 하면 못사는 걸까?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살짝 위챗부터 눈팅한 다음 최대한 편한 캐주얼로 갈아입는다.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밥가마에 밥을 안치고 장보러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낮에는 바람이 기승을 부리더니 저녁에는 언제 그랬나 싶게 수그러들어 밤길 걷기가 딱 좋은 날씨다. 오랜만에 찾은 퇴근 뒤의 자유를 만끽해보려고 재래시장이며 슈퍼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한가하게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싱겁쟁이처럼 길가에 장사꾼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유 있게 흥정하는 사이 바구니에는 싱싱한 남새며 고기류로 가득 찬다. 돌아오는 길에 일용잡화점에 들려서 뭐 또 살 게 없는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늘쩡 늘쩡 팔자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간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저녁시간이다. 소도 아침에 일밭으로 나갈 때는 늘쩡늘쩡 늦장을 부리다가도 하루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는 걸음이 그토록 빠르다고 엄마가 늘 말해주셨다. 그냥 무심히 들었던 그 말이 요즘은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나도 늘 허허 웃으며 퇴근 시간 때마다 직원들과 이 얘기를 한다. "오늘 많이 팔진 못했지만 퇴근 시간이 되니 정말 좋다"고.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선다. 애는 친구집에 놀러 간 지 며칠째 된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제집에 형제 서너 명, 어떤 집들은 형제 일곱 여덟 명 되는 집들도 있었지. 한 집안에 한 형제라도 성격은 저마다 제 각각이었지. 그렇게 많은 형제들과 부대끼며 자라다 보니 우리 세대들은 그나마, 서로 어울릴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지만 지금의 애들은 어디 그런가? 혼자 자라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그래서 나는 애가 놀러 가겠다고 하면" 무조건 가서 잘 놀다 와" 라고 한다. 태신없는 아이로 키우느라 천방백계로 노력한다 다행히 자기 앞에 공부는 하니깐 망정이지. 종래로 공부 잘하란 말은 해본 것 같지 않다. 늘 "너 친구들과 잘 어울리니? 한 반에 애들과는 잘 어울리니? 밥 같은 것도 누가 사준다고 그냥 얻어먹지만 말고 너도 가끔씩 다른 사람들도 사줘야 돼. 친구들 앞에서 너무 뽐내지는 않겠지? 그러면 다 미워해, 그러느라면 금방 왕따 당해." 그렇게 때로는 애 엄마이면서도 또 애 친구로 때론 엄격한 선생님으로 각양각색의 역할 담당하며 애 교육만은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끔씩 대화가 불가능할 때에는 위챗으로 편지도 보내주고. 이렇게 가족들이 다 놀러 나간 사이 홀가분한 나 혼자만의 저녁 시간이다. 혼자지만 밥도 짓고 요리도 맛있게 볶아서 예쁜 접시에 담아놓고 은은한 음악도 띄워놓고 목이 가늘고 긴 근사한 와인잔에 여우작작 와인도 한 모금씩 음미하며 이 저녁의 고독을 즐겨보려 한다. 드라마도 보며 가끔씩 위챗그룹에서 지인들과 담소도 하고 옷장 정리, 서랍 정리를 하면서 간만에 편안한 일상을 보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여자로 살고 싶다. 여자로 산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짓인 줄을 내가 왜 인제야 알았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지긋지긋한 가무노동일지 모르겠지만 샐러리맨으로 20여 년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시간들이 그토록 부러운 사치이다. 어쩌다 찾아온 한가한 저녁 더없이 행복한 일상, 물론 가족성원들이 다 같이 하는 저녁이면 금상첨화이겠지. 앞으로도 나는 종종 이런 저녁 시간을 쟁취하련다. 친구들과의 우정도 좋겠지만 더 많은 시간은 가족 분위기를 느끼면서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보내련다. 여름에는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녀오고 근사한 서양 음식점에 가서 분위기 잡고 와인도 기울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들. 20여 년 성취욕으로 잃어버린 소중한 가족과의 따뜻한 소통을 지금부터라도 되찾아 곱절로 갚아주리라. 이렇게 나는 여자로 살고 싶다. 편집︱흥경선비 —————— 최선숙 (崔善淑)   필명:은주(殷朱) 中国 길림성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연변과학기술대학AMP 제1회 로신문학원 연변창작강습반수료 "내 삶의 보따리" "자식농사" "배신 "등 수필 소설 시 20여편발표. "열혈모녀 축구팬 "   해란강닷콤 우수상.  “정향숲을  찾기까지”  제5기 중국조선족 효사랑글짓기 공모 우수상 문학블로그:  邮箱:18844309877@163.com 핸드폰: 1884430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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