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Korea)=Break News GW】
몽골 대학 캠퍼스 여름 방학을 이용해 고국 방문에 나선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일본 나가사키(Nagasaki) 군함도(軍艦島) 현장 취재를 위한 닷새 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무사히 고국으로 귀환했다.
8월 9일 목요일 오전 전격적으로 이뤄진 본 기자의 일본 나가사키(Nagasaki) 입성은 그동안 손수 이어온 대한민국 영토 독도 방문(2013년 8월 19일)=>조선의 속주 일본 쓰시마(対馬) 시 방문(2013년 8월 25일)=>윤동주 시인이 최후를 맞았던, 일본 후쿠오카(Fukuoka=福岡) 구치소 방문(2014년 8월 7일)=>중국 룽징(Longjing=龍井=龙井) 시의 윤동주 시인의 생가 명동촌 방문(2015년 6월 18일)=>한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등정(2015년 6월 19일)=>일본 시모노세키 조선 통신사 상륙 기념비 방문(2015년 8월 20일) 등 일련의 한민족 직계 조상들의 자취를 기리는 거룩한 한민족 순례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본 기자는 군함도 방문 하루 전에 나가사키 시내를 대충 둘러 보았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자리인 나가사키 시내에 세워진 평화공원엔 일부러 가지 않았다. 본 기자가 거기까지 찾아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이라도 흘리란 말인가? 원폭 피해를 당한 시민들에게는 할 소리는 아니겠으나, 원자폭탄 얘기만 나오면 일본을 전쟁 피해국으로 몰아가는 일본 분위기에 구토가 나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일본은 전쟁 피해국이 아니라 전쟁 도발국이자 전범국이다. (Photo=Wiki).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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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노니, 일본이 전쟁 피해국인가? 전쟁 도발국이자 전범국이다!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선제 공격한 게 독일이냐? 아니면 이탈리아냐? 아니다. 바로 섬나라 일본이다. 히로시마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즉각 무조건 항복에 나서지 않았던 게 독일이었더냐? 이탈리아였더냐? 아니다. 섬나라 정부 아니었더냐? 히로시마 원폭 피해 이후, 항복 없이 어떻게 어떻게 협상으로 사태를 모면해 보려다가, 기어이 나가사키 시민들까지 피를 흘리게 만든 주체가 왜(倭)나라 정부였다.
▲일본은 전쟁 피해국이 아니라 전쟁 도발국이자 전범국이다. (Photo=Wiki).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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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정작 피해자들은, 당파 싸움에 국토를 유린 당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한반도 거주 조선인들(자랑은커녕 치욕이다)이었으리니, 상황이 이러하므로, 원폭 피해가 스스로 자초한 일본의 명백한 자업자득임에도, 일본이 마치 전쟁 피해국인냥 몰아가는 일본 분위기에 본 기자는 구토를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에 나선 본 기자는, 전쟁과는 상관없는 역사 유적들만을 둘러 봤다.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1864년 건립=일본 국보)인 오우라(大浦) 성당을 들렀고, 이어 신치(新地) 중국 거리=>메가네바시(眼鏡橋)=>고후쿠지(興福寺)=>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出島和蘭商館蹟) 등을 담담하게 둘러 보았다.
▲일본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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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 전경. 성모 마리아상이 이채롭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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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 내부에는 고요함과 거룩함이 흘렀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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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성모 마리아상을 배경으로 굳건히 섰다. "聖母(성모) 마리아여 臨終(임종) 모양 무거운 한일 관계 장애물들을 물리쳐 주소서. 그리고 아름다운 새벽을, 일본 군국주의 추종자들이 저마다 내가 罪人(죄인)이로라 무릎 꿇을-저마다 懺悔(참회)의 눈물 뺨을 적실-아름다운 새벽을 가져다 주소서!" .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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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제2차 나가사키 원폭 투하=>제1차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이어,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이뤄졌다. 애초에 미군이 2차 원폭 투하 대상으로 삼았던 도시는 나가사키가 아니라, 고쿠라(小倉)(=현재는 기타큐슈(北九州)시에 편입됨)였다. 하지만 미군 폭격기 조종사는 안개 때문에 고쿠라 전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고쿠라 상공만 1시간 넘게 빙빙 돌던 미군 폭격기는 연료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여, 차선책으로 미군 폭격기는 나가사키 폭격을 결정하고 나가사키로 기수를 돌렸는데, 나가사키에도 구름이 껴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30초 정도 나가사키 시가지 전체가 보였다고 한다. 결국, 30초 간 잠시 걷힌 구름으로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제2차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이뤄져 나가사키는 잿더미가 됐다.
▲미군의 원폭 투하 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애초 투하 대상 도시로 확정됐던 고쿠라(小倉)(=현재는 기타큐슈(北九州)시에 편입됨) 를 빨간 원으로 표시해 보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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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신치(新地) 중국 거리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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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일본 나가사키 중국 거리 입구를 배경으로 굳건히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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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강산루(江山樓)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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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나가사키 짬뽕(=>초마면)이 맛있다고는 하는데, 우리 한국인들 입맛엔 허름한 동네 중국집에서 배달해 먹는 얼큰한 짬뽕(=>초마면) 맛이 최고의 천하일미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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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돌다리(1634년에 세워짐) 나가사키 메가네바시(眼鏡橋)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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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이 일본 나가사키 메가네바시(眼鏡橋) 위에 굳건히 섰다. 문득 '미라보 다리'라는 프랑스 시가 생각났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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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고후쿠지(興福寺)는 나가사키의 당사(唐寺)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1620년에 창건되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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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다이오호덴(大雄寶殿)이라 불리는 본당은 일본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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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고후쿠지(興福寺)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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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일본 나가사키 고후쿠지(興福寺)를 배경으로 굳건히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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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일본에는 사찰(=절), 신궁, 신사들이 많다. 절은 그렇다 치고, 이 '신궁(神宮)', '신사(神社)'라는 낱말에, 본 기자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거부감을 느낀다. '귀신 참배' 바람이 갈수록 맹렬해지는 일본 군국주의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신궁(神宮)', '신사(神社)'는 무슨! 잡귀 참배소라면 모를까! 일왕이나 일본 잡귀들이 무슨 프로테스탄트들이 신봉하는 삼위일체(Trinity)나 대자대비한 석가모니 쯤 되는가?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
바야흐로, 일본은 '칼로 흥하는 자, 칼로 망하고, 잡귀 숭배하는 자, 귀신 들려 결딴난다!' 라는 격언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나가사키 시민 회관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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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시내 탐방.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出島和蘭商館蹟) 전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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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시내를 대충 둘러 보고, 저녁 무렵,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33m의 나가사키 이나사야마(稲佐山) 전망대에 올랐다.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설악산 권금성에 오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세계 3대 야경(나가사키는 2012년 세계3대 야경 도시로 선정됨) 중 하나를 볼 기회를 본 기자가 잡긴 했으나,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이뤄진 미군의 제2차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전처럼 나가사키 상공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운명일까? 하긴, 나가사키 원폭 투하처럼 이게 본 기자의 운명이라면 받아 들일 수밖에!
▲해발 333m의 나가사키 이나사야마(稲佐山) 전망대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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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해발 333m의 나가사키 이나사야마(稲佐山) 전망대 포토 존에 굳건히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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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33m의 나가사키 이나사야마(稲佐山) 전망대에 낀 자욱한 안개는 본 기자가 내려갈 때까지 가실 줄 몰랐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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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가사키 시내 탐방(08. 10)과 군함도 방문(08. 11)을 마친 본 기자는 나가사키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다음날 일본 JR 열차로 나가사키를 떠나 8월 11일 금요일 오후 후쿠오카로 이동했다.
후쿠오카 하카타(博多=はかた) 역 근처의 Hotel Route Inn에 여장을 푼 뒤, 땅거미가 짙어올 무렵, 일본 생선회 전문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 기자가 거주 중인 몽골 현지에 바다가 없으니 생선회가 늘 그리웠던 터에, 이왕지사 일본을 뜨기 전에 싱싱한 생선회 맛을 실컷 즐길 심산이었다.
▲일본 후쿠오카 밤 풍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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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Fukuoka=福岡)=>동북서쪽으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북으로는 시모노세키 해협(下關海峽), 서쪽으로는 쓰시마 해협(對馬海峽), 남쪽으로는 아리아케 해(有明海)와 접해 있다. 바다로 흘러나가는 강들이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서쪽 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다. 남부에서 농업이 이루어지지만, 북부에 집중되어 있는 탄광과 석탄 산업이 주요 산업이다. 1963년 모지(門司)-고쿠라(小倉)-도바타(戶畑)-야하타(八幡)-와카마쓰(若松) 등 5개 도시가 합병되어 규슈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종합 산업 도시인 기타큐슈(北九州)가 되었다. 시모노세키 해협 밑을 관통하고 있는 2개의 터널과 와카토 대교(若戶大橋)가 후쿠오카 시와 혼슈 지방을 연결하고 있다. 현청 소재지인 후쿠오카 시는 예전의 하카타 시(博多市)를 합병했으며 하카타 만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다. 1281년 이 하카타 만에서 이른바 가미카제(神風='신의 바람'이라는 뜻)가 불어오는 바람에 고려-몽골 연합군의 함대가 치욕의 패배를 당했다. 예전에는 항구였지만 현재는 지방의 상업-공업-행정-문화의 중심지로서, 가자미 잡이가 활발한 항구와 규슈 대학(1911)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한 옷을 입힌 도자기 인형인 하카타 인형이 이곳에서 주로 생산된다.
▲일본 후쿠오카 밤 풍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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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사케(=>일본주), 사시미(=>회), 스시(=>초밥)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독도 문제, 성노예 문제, 역사 왜곡 문제로 꼬일 대로 꼬인 현 상황의 한일 관계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출구(出口)가 없어 보였다.
일본인들이 다테마에(建前=겉마음)와 혼네(本音=속마음)의 고유한 생활 양식을 갖고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말과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명나라를 칠 터이니 조선의 길을 빌려 달라!"와 "일본과 조선은 한 몸(=같은 편)이다"라는 의미이겠지만, 훗날, 그 의미는, "조선인들이여, 뒈지기 싫으면 순순히 우리 일본말 들어라!"로 해석됐다. 향후 일본이 어떤 기상천외한 사자성어로 한민족의 가슴을 아프게 할는지 참으로 걱정되는 것이었다.
사죄 문제를 보자. 일본은 "이미 사죄했는데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를 해야 하냐?"며 툴툴거린다. 그런데, 이 사죄라는 것이 사죄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리면 끝나는 건가? 사죄라는 게 사죄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요컨대,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사죄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사죄가 사죄다운 경우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죄가 진심어린 사죄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뿐이다. 섬나라의 현재 행태를 보라! 한민족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죄를 섬나라 정부가 했다고 보시는가?
▲일본 후쿠오카 밤 풍경.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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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본 기자를 서빙한 일본 여종업원이 본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일본 여종업원의 이름은 데구치 유키(出口結貴) 양으로서 참으로 싹싹하였다. 본 기자는 배시시 웃었다. 하고많은 일본 성(姓) 중에서 이 일본 여자의 성(姓)이 우리말로 "출구(出口)"라니!
▲일본 후쿠오카 밤 풍경. 본 기자 서빙에 나선 일본 여종업원의 이름은 데구치 유키(出口結貴) 양으로서 참으로 싹싹하였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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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읽으면 "출구결귀(出口結貴)"로서, "출구를 통해 귀한 결실을 맺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터이다. 본 기자는 향후 한일 관계가 27살 먹은 이 일본 여자의 성(姓)처럼 "출구(出口)"가 있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종업원 데구치 유키(出口結貴) 양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우리말로 읽으면 출구결귀(出口結貴)로서, "출구를 통해 귀한 결실을 맺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터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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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일본은 과거 헤이안(平安)시대의 일본 최초의 수필 작품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본문에 쓰인 “なにもなにも、小さきものは、皆うつくし(무엇이든 무엇이든 작은 것은 모두 다 사랑스럽다)”라는 문장을 향후 지표로 삼아야 할 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어령 교수가 주장했듯이, 일본(=倭나라)은 작고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손바닥 계산기 같은 축소지향의 물건들과 잘 어울리는 나라이다. 그렇지! 작게, 작게, 더 작게!
일본이 아무리 이 축소지향이라는 본질에서 확대지향으로 전환하고자 발버둥친들 그것이 가능할까? 단연코, 일본이 도출해내는 결과는 처절하게 비극적일 것이라 본 기자는 단언한다. 세계사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확대지향을 꿈꾸었던 임진왜란과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倭나라)은 반쯤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바 있다.
후쿠오카의 여름밤이 시나브로 깊어가면서, 본 기자의 고국 귀환 시각이 시시각각 다가서고 있었다. 그렇게, 본 기자는 다음날 오후 일본 후쿠오카와 기약없는 작별을 했다.
▲후쿠오카를 떠나기 전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후쿠오카 하카타 역 앞에 세워진 춤추는 일본 여자 동상 앞에 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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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의 일본 후쿠오카(Fukuoka=福岡) 방문은 지난 2014년 이후 3년 만으로서, 본 기자는 지난 2014년 8월 7일 목요일, 취재 차, 일본 후쿠오카(Fukuoka=福岡) 사와라(早良) 구(區) 소재 후쿠오카(Fukuoka) 구치소(福岡拘置所<=후쿠오카 형무소)를 찾아, 한민족 직계 조상인 고(故) 윤동주 시인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린 바 있다.
☞아래 사진을 누르시면, 3년 전 본 기자가 보도한,
윤동주 시인이 최후를 맞았던 후쿠오카 형무소 방문 기사(2014. 08. 07)로 연결됩니다.
아래 사진을 누르세요(Click Photo below)
한편, 일본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귀국한 본 기자는, 9월 초의 몽골 현지 대학 캠퍼스 개강에 맞춰 서울에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복귀한다.
▲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Mongolia, led by Minister Ts. Munkh-Orgil). © Alex E. K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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