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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중조경제관계] 조선족기업인에게 주어진 기회와 역할 (리춘일)
2020년 04월 27일 08시 49분  조회:1376  추천:0  작성자: 조기련


리춘일 중국아세아경제발전협회 부회장, 중국조선족사학회 리사,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명예회장,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박사, 연변대학 겸직교수, 북경신홍과기문화발전유한공사 동사장, 《인민일보》해외망 《조선채널》 총고문 력임. 
 
오늘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대조선국제제재속에서 중조 량국은 전략적관점에서 량국관계를 새롭게 재조정하고 중조관계를 확신성있게 복원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량국은 상호간에 필요한 합작모델을 발굴하여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살리고 서로 다른 부분은 리해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량국간의 실용적인 경제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더우기 “일대일로”를 국가핵심전략으로 내세우고 대외정책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경제건설에로 정책적 전화를 선포하고 경제강국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조선의 현실은 중국기업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그에 상응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 40여년간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안정적인 고속성장을 유지하는 기적을 창조했다. 조선족기업인들은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그 기적창조에 합류하여 분투해온 결과 굵직굵직한 기업들을 키워오는데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선과학기술전당
 
조선은 극심한 국제제재속에서 2018년 4월에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중국기업인들의 큰 관심사로 다시 부상하게 되였고 그들의 자본, 기술, 설비 등 우세를 가지고 조선의 경제건설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아직은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이라서 실질적인 투자행위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조만간에 풀리는 것을 전제로 상업고찰과 다양한 프로젝트 상담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즉 새로운 준비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중국기업인들에게 주어진 상업의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 조선족기업인들도 중조관계 변화에 의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적극 리용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이자 기회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세계적정치구도와 경제질서가 격변하는 때일수록 새로운 상업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조선이라는 특정지역에서 중국기업인들, 특히는 조선족기업인들이 틀어쥐여야 할 기회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어떤 역할이 기대되는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중조우의
 
중조경제관계의 변화와 그 전망
오늘 중국기업인들이 중조관계의 변화와 그 전망에 대하여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중국의 현존정책의 지지와 그에 힘을 얻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물론 조선은 지역크기(면적은 약 11만㎢)나 인구수(인구는 약 2,700여만명)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아 시장용량이 제한되여 제품판매시장으로서의 리용가치가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은 한국과 일본, 태평양연안나라들로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전략적 위치에 놓여있으며 질높고 값싼 인적 물적 자원으로 중국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배가해나갈 수 있는 조선 고유의 우세가 있다. 이 우세는 오늘 중국의 “일대일로” 실현, 로씨야의 “신동방정책” 실현, 한국의 “신북방, 신남방정책” 실현,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 실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각국의 협력적 경향의 강화로 하여 더욱더 부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기업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조관계에 관심을 돌리고 그 변화와 전망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여 기업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리한 무역 및 투자 기회를 제때에 틀어쥐고 적극적으로 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나라들사이의 경제적 련계와 협조는 해당 나라들사이의 정치외교관계에 의하여 많이 좌우지된다. 물론 경제적, 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은 해당 나라들사이의 정치외교적 관계에 의하여 규제된다. 정치외교적 관계가 공고하고 장기적일 때 그 나라들사이 경제적 련계는 안정적으로 확대 발전하게 된다.  
 
 
중조우의탑 벽화
 
중국과 조선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직후 선참으로 혈연적 우애와 정치적 리념의 공통성을 중시하는 전통 친선관계가 수립되였다. 두 나라사이의 이런 친선관계는 건국시기 사회주의제도의 수립과 강화,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한 공통적인 정치적 목적과 리해관계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강화되여 왔다. 그 뒤로 70여년이라는 오랜 력사기간 일시적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량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친선적인 협조관계를 공고히 해오고 있다. 
 
아래에 지난 70여년간 중조관계의 력사적 변화과정을 통해 량국간에 다져진 친선우호관계가 중조경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중조경제관계의 형성, 확립 
 
중조량국의 관계사를 돌아보면 상호원조시기가 가장 큰 기초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상호원조시기는 두 나라의 해방초기로 거슬러올라가게 된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면서 조선은 8월15일에 해방을 맞게 된다. 그런데 중국은 내전이 재개되면서 동북지역에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북해방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조선은 중국의 후방역할을 담당하게 되였고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부대가 중국해방전쟁에 동참하여 함께 피흘리고 싸운 력사는 그전 항일시기부터 이어온 전통이였고 그 용맹을 떨친 이야기들은 여러 자료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물적지원 역시 중국에 대한 크나큰 도움이 되였음을 확증하는 수치들이 나와있다. 총 10만자루, 탄약 수천톤, 필포 3000필, 신발 100만컬레, 많은 전량, 후방의료 등 물자가 지속적으로 지원되면서 동북해방전쟁에 사실상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선전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고 사회주의건설시기에 진입하였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안된 1950년 6월 25일에 조선전쟁이 터지게 되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밑에 조선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중국은 조선에 많은 물자를 지원하였다. 3년간의 전쟁기간 중국이 지원한 식량, 고기, 천, 현금 등을 합치면 3,710대의 전투기에 해당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나라는 1949년 10월 6일에 정식으로 대외관계를 수립하게 되며 같은 해 편지, 전보, 전화, 통신 등 협정을 체결하고 1950년 8월에 바터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후 조선은 복구건설에 들어갔고 중국정부는 1953년11월 3년간 조선에 지원한 일체 물자와 자금을 무상 기증한다고 결정하였다. 1954년~1957년사이에 중국은 자체건설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조선에 8만억원(중국 구화페, 새로운 화페가치로는 8억원 인민페에 해당)가치의 무상지원을 함으로써 조선의 물자보충, 철도보수, 인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게 되였다. 
 
1953년 11월 23일, 두 나라는 “중조 경제 및 문화 협정”을 체결하게 되면서 사회주의진영의 합작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이 협정은 평등호혜의 원칙하에 상호경제기술원조, 필요한 경제기술합작을 통하여 량국의 경제문화교류사업을 추진한다는데 합의하였다. 한편 경제, 무역, 교통, 문화, 교육 등 방면에서 교류의 정상화를 실시한다고 정하고 10년간 유효하며 자동연기된다는 것도 밝혔다. 실질적인 교류의 확대는 1959년부터 본격 시동되였으며 경제교류의 관계설정이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2) 중조경제관계의 발전과정
 
이때부터 두 나라사이의 경제관계는 발전단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상호교류시기, 조선외자유치시기, 중국의 본격적인 투자시기 등 단계를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확대되여 갔음을 알 수 있다.
 
상호교류시기는 1959년~1980년대초까지로 보는데 이 시기는 주로 물물교환의 방식으로 상호 필요한 물자를 주고 받는 형식이 위주가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조선은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와 전면적 사회주의건설시기를 거치면서 자립적 경제토대를 다지게 되였고 지속적인 경제의 성장을 이룩하게 되였다. 1959년에만 중조 두 나라의 교역량은 1억딸라를 넘기면서 대형건설항목과 금융합작 등 령역으로 확대되였다. 1961년7월에 두 나라는 “중조친선합작협조조약”을 체결하고 상호 친선관계와 경제협력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였다. 
 
그후 중국은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라는 세례를 겪게 되지만 그속에서도 두 나라는 “1971년~1976년 중조간 중요화물 상호공급협의”를 체결하고 1976년 1월에 중조친선석유관이 개통되였다. 매년 50만톤의 석유를 공급하도록 약속하였고 1976년~1979년까지는 매년 100만톤~150만톤의 원유를 저가로 공급하는 교류활성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조선개발구 분포도
 
1978년에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는 중국의 대외경제교류에 활력소가 되였고 조선과의 경제관계를 복원하는데도 새로운 기회를 조성하게 되였다.
 
이 시점에 조선은 대외투자유치정책을 펴게 되는데 1984년9월에 첫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합영법”을 제정하게 되고 쌍방의 합작기회에 훈풍을 불어주는 계기가 되였다.
 
이 시기부터 조선은 외자유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해외 자본과 기술을 영입하기 위한 시도에 들어갔다. 따라서 조선은 과학기술에 의한 자력갱생 을 강조하고 주체사상화를 실현하면서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를 추진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에 조선에 대한 외국의 주요 투자자는 중국이 아니고 일본의 조선총련사람들이였다. 1985년~1990년 사이에 재일조선총련이 조선에 투자한 회사는 총 46개에 달했으며 투자규모는 113억엔이나 됐다. 조선은 이때가 바로 외자의 단맛을 본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정부의 지원과 협력도 뒤지지 않았다. 1982년에 조선에 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지원하게 되고 1984년에는 조선에 4억딸라의 차관을 지원하게 되며 1988년에는 종이공장, 섬유공장, 평양송전망 등을 지원하게 된다. 
 
중조관계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정치정세의 변화와 정책립장의 차이 등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하여 정치협력관계는 미약해지고 경제적 련계가 우선시되는 실용주의관계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1992년은 국제사회가 대변혁을 맞는 시점이였다. 구쏘련이 붕괘되면서 동유럽사회주의진영이 함께 무너지게 되였고 미쏘 초대국사이의 리념갈등이 자연히 해소되였다. 1990년에 조선은 파격적으로 라선경제무역지대라는 특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대외개방을 시도한다. 1992년 중국은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들어서게 되였다.
 
1992년에 있은 중한수교로 량국은 당분간의 저조기를 맞기도 했지만 무역거래량만은 크게 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면서 점차 구쏘련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였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서거후 조선은 미국을 위수로 하는 서방세력의 압박속에 련속 3년간의 자연재해까지 입게 되면서 부득이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게 되였다. 그런속에서도 두 나라사이의 무역거래량은 꾸준히 유지되는 모양세를 보여주었다. 
 
조선치마저고리
 
2000년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북남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했고 중국과 조선 사이도 교역의 상승세를 타게 되였는데 2004년까지 5년간의 교역량은 큰 성장세를 보였다. 2000년에 4.88억딸라, 2001년과 2002년엔 각각 7.4억딸라, 2003년에는 10.24억딸라, 2004년에는 13.85억딸라였으며 2003년~2004년사이에 조선에 투자한 중국자본은 5천만딸라에 달했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부터 2000년 중반까지의 대조선투자는 대부분 동북3성에 있는 조선족기업인들의 몫이 컸다는데 주목할만 하다. 무역, 투자, 변경합작 등 여러 분야에서 합작이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조선족기업인들로는 흑룡강성의 최수진 사장, 연변의 전규상 사장, 대련의 김광일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언어적으로 통하며 시장의 미개척지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조선족기업인들은 상대적인 우세를 갖고 있었으며 그로 하여 일찍부터 중조 경제교류의 선두에 섰던 경력을 쌓게 되였다. 특히 단동과 연변을 중심으로 조선족기업인들이 변경무역에서 가교역할을 하게 되였고 자체 힘에 부치는 여러 형태의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90년~2001년사이 조선족기업 위주의 투자기업은13개였으며 총 투자규모는 2,727만딸라였다.
 
중조관계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랭각기와 회복기를 거쳐 활성화의 전환기에 들어섰으며 따라서 중국에 대한 조선의 무역의존도가 날로 늘어났다. 그 원인은 중국상품의 가격경쟁력, 지리적요인, 변경무역의 세제감면, 국제관계악화에 따른 선택 등이 아닐가 생각된다. 무역형태도 과거의 바터무역에서 일반무역, 보세무역, 변경무역, 가공무역 등 다양한 무역형태가 병존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였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국은 조선에 석유, 식량, 화학제품, 약품 등을 수출하게 되고 조선으로부터 강재, 목재, 광물, 수산물 등을 수입하게 되는데 비록 약간의 파동을 거쳤지만 량국의 수출입이 끊기지는 않았다. 결국 중국은 점차 조선의 가장 큰 교역대상국이 되는데 손색이 없었다.
 
 
개성고려인삼
 
2005년부터 조선은 중국에 투자유치의 손을 내밀었고 중국은 본격적인 대조선투자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동북3성의 조선족기업인만이 아니라 남방의 한족기업인들도 일부 동참하게 되면서 상호 경제거래의 관계가 한층 더 활성화되는 시기에 진입하게 되였다.    
 
2005년 2월, 조선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북경에서 조선투자설명회를 개최하게 되였고 그때 120개의 기업이 참가하여 투자의향을 밝혔으며 실제로 일부는 투자행위에 착수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중조투자분야에서의 우혜와 보호에 관한 협의”를 체결하게 되는데 뒤이어 중국기업의 진출이 이어졌고 실제로 괄목할만한 실체를 탄생시켰다. 조선평진합영회사, 혜중광업합영회사, 평양국제투자합영회사 등 굵직한 중국기업들과의 합영회사가 설립되였고 당시 중국의 오의 부총리가 직접 모 기업의 오픈식에 참가해 카텐을 끊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끓어올랐다.
 
같은 해 10월, 중국정부는 대조선경제관계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게 되는데 그 요점은 “정부주도, 기업참여, 시장원리”의 3대원칙이다. 무역, 투자, 변경합작 등 령역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룩하는 반면 두 나라 사이에는 상호간 불균형의 현상들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무역에서는 대조선수출이 점차 늘고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투자의 경우 투자상환은 보상무역방식을 리용하는게 주되는 방식이였기에 단기간에 투자를 회수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등 현상이 초래했지만 그나마 조선의 석탄이 대량 수출되면서 균형에 크게 한몫 했다. 변경합작은 두 나라의 국경선 1,330km구간에 총 16개의 교두가 세워지면서 두만강과 압록강의 배운송, 수력발전소건설, 철도와 도로운송, 로무합작 등 면에서 구체적인 합작이 이뤄지는 것으로 합작의 실질적인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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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2008년 1월까지 중국의 대조선투자항목은 84개로 늘어났으며 총 투자액은 2억6천만딸라에 달했다. 2009년~2010년에도 두 나라의 무역, 투자, 변경합작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왔으며 2011년에는 두 나라 경제교역량이 56억7천만딸라로 껑충 뛰어오르게 되였다. 2006년에 조선이 첫 핵실험을 하면서 2007년에 주춤하게 된 점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두 나라의 경제관계는 크게 지장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새 천년에 들어서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두 나라 정상들의 상호방문이 빈번해진데서 비롯된 것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7차에 걸쳐 중국방문을 하게 되였고 같은 시기 중국의 지도자들인 습근평, 리극강, 강택민, 호금도, 온가보, 장덕강, 리장춘 등 동지들이 조선방문을 하면서 두 나라의 친선우호관계는 더없이 좋은 시기를 맞게 되였다.
 
전반적으로 볼 때 새 천년의 첫 10년간 조선의 대중국무역의존도는 급격하게 상승되였음을 알 수 있는데 2000년에 25% 정도에서 2011년에는 거의 90%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조선의 경제가 호전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으며 동시에 중국의 해외진출전략에 힘입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인민대학습당
 
3) 중조경제관계의 새로운 국면
 
2012년부터 중조 두 나라는 새 지도자들이 집권하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비록 두 나라 사이에는 초기에 정치 외교적으로 큰 접촉은 별로 없었지만 경제합작에서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무역수지상황이 균형적이지는 않았지만 량국의 상호 보완성이 거래의 기초로 깔려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무역거래량이 증가하던 것이 2018년에 들어서서 대폭 감소했다는 수치도 감지된다. 이것은 국제제재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불가역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조선의 핵무력건설은 두 나라의 정상적인 경제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크게 보면 두번의 고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2013년 2월에 있은 조선의 제3차 핵실험과 2017년의 제6차 핵실험이다. 2013년에는 중국이 처음으로 강경한 반대 립장을 표명하였고 중국인관광객의 려행도 자제하는 등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2017년에는 중국이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으로 인해 중조관계는 사상 최악의 랭각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같은 해 9월 28일 중국은 상무부와 공상총국이 공동명의로 대조선경제협력의 전면중단 공고문을 발표하기까지 이르렀다. 
 
그 과정에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는데 중국은 2015년에 “일대일로” 건설을 정식으로 선언하고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면서 그 령역을 확장하는데 큰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일대일로”에 대한 실질적인 협력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내부의 경제관리개선에 우선 집중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조선대외무역잡지
 
2017년 11월에 조선은 6차 핵실험을 계기로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고 2018년에는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전략적 전환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에 련이어 중국방문을 하게 되며 10개월 남짓한 기간내에 총 4차례에 걸쳐 습근평 주석과 회동하게 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친선관계는 회복세를 타게 되였다. 중국은 조선의 경제건설에로의 전환에 찬사를 보냈으며 2019년 6월에 습근평 주석의 조선방문이 이루어지면서 량국간의 친선우호관계는 또다시 강화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
 
이처럼 두 나라 사이에는 핵을 둘러싼 두차례의 불협화음이 있기는 하였지만 량국의 경제협력의 중요성과 합작의 전망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오늘의 중조관계는 량국의 정책적방향과 목적, 그 실현조건, 그리고 국제정치정세와 세계경제형편 등 여러 요인들의 영향으로 보다 공고하고도 장기적인 전략적 협조관계로 확대 발전할 것이다.
 
중국과 조선은 항일전쟁시기부터 피를 나눈 혈연적 전우라는 특유의 관점에서 오랜 기간 량국관계를 발전시켜왔으며 오늘은 량국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할 새로운 국면에 직면해있다. 한편 중조관계는 순수한 경제적 리해관계나 일시적인 정치적 리해관계에 기초한 량국의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인 정치 경제적 리해관계에 기초한 전략동맹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시적인 오해나 모순이 있을지라도 지리적 위치와 력사적 특성, 집권당의 관계, 국제정치정세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서로가 분리되기 힘든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관계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량국의 경제관계 활성화의 튼튼한 기초로 되고 있다.
 
 
평양 야경
 
조선경제 현황과 변화
 
최근년간 조선의 경제는 국제제재가 날로 가심화되는 속에서도 련속 3%이상(2016년은 3.9%, 2017년은 3.7%, 조선사회과학원 발표)의 성장을 기록하며 생산적극성을 최대한 불러일으키고 경제의 성장요소를 발굴하면서 단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조선은 국내에서 어떤 경제정책들을 실시해왔기에 극심한 제재속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총체적으로 볼 때 조선은 내부적으로 정책측면에서 큰 전환을 가져왔다. 선군정치의 연장선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으로 조정되였고 5년간의 전격적인 추진끝에 핵무력완성의 선언과 함께 이제부터는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당의 새로운 전략로선을 명확히 제시하기까지 이르렀다. 
 
2012년 6월 28일부터 조선은 대내적으로 우리식 경제관리체계를 도입하고 국가와 생산부문사이의 분배방식을 새롭게 조절함으로 해서 생산적극성을 동원하는데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대외적으로는 라선경제특구와 황금평-위화도경제특구에 중국측과 공동개발, 공동관리 위원회를 구성하고 중국측에 주임을 맡기는 정도로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공동관리위원회 출범후 사무청사를 건립하는데 그친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조선의 제3차 핵실험으로 인해 실질적인 투자가 크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은 2013년 3월 31일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행로선을 채택하고 본격적인 핵무력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였다. 이와 동시에 조선은 나름대로 경제분야에서도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였으며 중요한 경제정책을 련이어 발표하였다. 대내적으로는 시범단계에서 검증을 거친 우리식 경제관리체계를 보편화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2014년 5월 30일 김정은 위원장은 당정군 일군들과의 담화를 통해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와 농촌포전담당제를 본격 가동하면서 경제의 순환에 박차를 가하였다. 대외적으로는 2013년부터 총 24개의 경제개발구를 련속 발표하면서 원래의 중조국경과 북남접경에 있었던5개의 경제특구(조선에서는 경제지대하고 한다.) 외에 각 도에 2~3개의 경제개발구를 조성하기로 하였다. 올해 초까지 총 29개의 경제특구와 개발구가 조성되여있다. 대외경제합작을 점에서 면으로 확대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역시 중요한 한해였다. 5월 6일 조선로동당 제7차당대회가 36년만에 다시 열리면서 미래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 제시하고 자강력에 기초한 경제강국건설목표가 구체화되여 갔다. 계획경제의 큰 틀안에서 목표와 과제가 구체화되였고 공장기업소에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하면서 생산가동률을 높이는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평양문수수상락원
 
조선은 2018년 4월 조선로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로선의 사명완수를 선언하고 당의 중심사업이 경제건설에로 전환되였다고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온 나라가 경제건설에 투신하는 정책을 공식화하였다. 이것은 조선력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일이 아닐수 없으며 전당, 전군, 전민이 하나같이 경제강국건설에 떨쳐나서라는 신호로 락인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에 있은 시정연설에서 경제건설은 조선로동당의 중심임무라고 재차 확인하면서 경제건설에서의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되였다. 중국기업인들은 이런 시점에 이르러 조선이 곧 기회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고 단동의 집값이 한동안 폭등하는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조선에 대한 관심도가 한층 가열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였다. 
 
사실 조선은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방면에서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투자환경의 개선은 정치, 경제, 문화, 법률 등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본다면 내부적으로는 안정적이고 일관성을 보여오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지하자원, 수산자원, 관광자원, 인적자원 등 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인적자원은 저렴하면서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문화의 류사성과 친선의 전통 등 여러 측면에서 생소하지 않다는 점이다. 법률적 측면에서 보면 각종 외국투자관련 법규들이 완비하며 투자자의 리익을 보호한다는 조항들도 명확히 규정되여 있다. 
 
 
국제아동절
 
특히 조선의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의 법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투자장려, 세금우대, 특혜정책, 수속간소화, 편리보장 등 여러 면에서 투자자에 유리한 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세금종류에 있어서는 중국과 류사한 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세금혜택의 비률이 중국보다는 적게 책정되여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업소득세, 개인소득세, 영업세, 거래세, 재산세, 자원세, 지방세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여 있어 참조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조선 국내에는 세금제도가 1974년에 페지된 후로 아직까지 도입되지 않고 있다. 즉 현재 실행되고 있는 조선의 세금제도는 외자기업과 외국인에 국한된 것이다.
 
관건은 외국투자가들의 관심을 얼마나 끄느냐에 달려있다. 중국기업인들은 조선의 시장보다는 자원에 더 관심을 갖는 편이며 실업투자에는 아직 관심이 적은 편이다. 주된 원인은 국제제재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감과 구체적인 실행법규의 불완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까지 전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저의 한 원인이 되고 있으며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과 구매력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외에 외환 관리와 결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리고 교통, 전력, 통신 등의 불편함과 안내제도에 따른 현장방문과 면담의 어려움 등 현지에서의 체험 역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은 일관되게 자강력을 강조하면서 자체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기에 대외경제의 위치는 보충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질적으로 다른 정책이라고 보아야 하며 시장경제를 보편화한 중국과 아직 계획경제를 위주로 하는 조선의 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대외경제의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들과의 다양한 경제교류를 활성화하지 못하고서는 전반적인 물질기술적토대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리고 현단계에는 채취공업의 생산물이 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있어 외국자본의 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난제로 되고 있다. 
 
 
음악교육
 
 
외국어교육 현장
 
이외에 일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투자가 조선의 광물에 80%이상 기울어져 있었기에 일반 산업에 골고루 투자되는 균형을 잡지 못한 현실이다. 즉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고 눈앞의 리익을 우선시하는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투자대상을 선정하는 어려움도 난제가 되고 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남의 나라에 가서 투자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믿고 맡기는 식의 접근이 결국 쌍방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대외경제합작의 법규들은 《외국인투자법》, 《합영법》, 《합작법》이 모두 갖춰져있지만 조선내에서 정책적으로 권장하는 합작방식에 있어서는 합작형태의 방식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 합영의 방식은 공동투자, 공동관리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고 합작의 방식은 공동투자, 조선측 경영을 말한다. 외자기업에만 세금을 부가하기에 경영원가를 줄이는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기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합작의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는데 있어서는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투자만 하고 경영에는 참여를 못하게 되기에 신뢰의 바탕이 결여될 수 밖에 없으며 대규모투자가  이뤄지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조선은 지금 대외경제관련 법규들을 국제화에 적응되는 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수정보충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동강유람선
 
근래에 와서 가장 눈에 뜨이고 성장폭이 큰 것은 관광분야이다. 관광은 아직까지 국제제재에 속하지 않으며 중국인들의 조선관광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에 약 20만명이 방문했다고 하고 2019년에는 30만명으로 늘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조선에는 려행사가 무려 26개나 될 정도로 그 수가 부쩍 늘어났고 관광상품도 종류나 품질면에서 크게 개선되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가운데서 중요한 현상은 중국기업인들의 상업고찰행위이다. 최근 2~3년간 해마다 고찰명의로 조선을 방문하는 중국기업인수는 2,000명~3,000명가량 되며 이들의 방문은 늦으면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는 긴박감속에 분주히 드나드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히 돈냄새를 맡은 것이 아닐 수 없다.
 
평양은 도시면모가 크게 달라졌고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 새로운 거리들이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시내에는 3,000여대의 택시들이 불철주야 운행하고 있다. 장마당이 활성화되여가는 가운데 류통망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고 있다. 광복거리상업중심, 보통강상업중심, 대성백화점, 제1백화점 등 새로운 형태의 류통형식이 자리잡았으며 대형 슈퍼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근래에 조선이 식료품분야에서의 국산화를 실현하게 되면서 수백가지의 조선산 가공식품들이 매대를 꽉 채우고 있다.
 
 
국제과학기술전시회
 
2019년 마지막 해를 마감하면서 12월 28일~31일 사이에 조선에서는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현존의 정세하에서의 정면돌파전을 선포했다. 경제전선에서 국가의 모든 힘과 정책을 동원하여 경제의 성장을 이룩해야 하는 돌파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분간 조선은 자력부강, 자력부흥의 기치를 들고 자강력을 키우면서 자력강국건설에 매진할 것이다.
 
조선이 말하는 “자강력”, “자력갱생”은 외부의 영향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 경제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대외경제관계를 자체의 힘을 통해 강화해나가는데 이바지하도록 리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조미간의 대화국면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조선은 제재해소나 평화는 구걸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기에 어려운 난관을 뚫고 나가려면 오직 정면돌파의 방법만이 자체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를 또다시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대외경제의 합작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단계에서 국제제재의 해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있기에 당분간 팽팽한 줄당기기가 지속될 것이다. 
 
조선국산식료품매대
 
조선이 선택한 “정면돌파”는 현 정세하에서 경제적인 난관과 대외관계 난관을 극복하고 경제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정책적 결단이다. 그 내용을 보면 경제적으로는 기업활성화, 생산성장을 목적으로 하여 경제 관리체계나 질서 등 여러 측면에서 기업활동을 억제하고 효률을 저하시키는 모든 요인들을 해소하여 경제개선을 다그쳐 내적동력을 최대로 살리는 것이다. 지난 시기 조선은 북미협상이나 북남교류 등 외교노력으로 국제제재를 해소하고 유리한 대외적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려고 애써왔다. 이제부터는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을 기본으로 하여 중국과 로씨야 량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주동적인 외교전략을 통하여 대외적으로나 국내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나가려는 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해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될 때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국내에서 뿐만아니라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물론 올해는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의문으로 대신을 했지만 그전의 신년사들을 보면 당해의 분투목표를 제시하고 경제분야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군 하였다. 당이 경제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내각이 경제의 사령탑이 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정상화의 궤도에 올려세우려는 의도는 읽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족기업인들의 기회와 역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조선의 현실과 “일대일로”건설을 대외경제관계확대를 위한 핵심적인 국가정책으로 틀어쥐고 있는 중국의 현실이 중조경제관계를 한층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합작의 가능성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상업의 기회는 정책적 측면, 현실적 측면, 시간적 측면, 상호보완적 측면의 구비된 조건에 따라 성숙 여부가 결정된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가져다주는 기회는 장기적일 것이다. 중국의 립장에서 본다면 중국, 로씨야, 몽골, 조선, 한국, 일본까지 망라한 동북아물류망형성은 동북3성의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성장요소로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말해서 중국북방의 “처녀지”로서의 조선의 매력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며 장기적 안목에서 본다면 동북3성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는 활역소로 부상할 것이다. 이미 훈춘-라선쪽에 도로가 깔려있고 단동-신의주 신교가 완공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신의주-평양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한국의 철도가 조선을 통해 중국으로 련결된다면 조선반도와 중국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형성될 것이다. 중국이 한국, 일본과의 전략적 통로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조선은 더없이 중요한 지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립장에서는 이런 정책을 잘 활용한다면 제재의 국면을 타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먼 장래에 북남관계가 복원되고 북남경제협력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조선의 경제성장은 급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천지윤활유공장 일각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이제 중조 두 나라사이의 친선우호관계가 가일층 다져지고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한발짝 다가선다면 조선의 내부발전에 상응한 새로운 합작의 기회가 도래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은 조선의 공장기업소들이 생산의 자률성을 가지고 일정한 기초를 닦아놓았으며 이미 대외합작의 욕구가 커졌다는 점이다. 바꿔서 말하면 이제는 외국의 자본, 기술에 대한 수요가 피동적인 국면에서 주동적인 수요로 전환했기에 조선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여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기업인들에게 주어진 대조선 경제무역합작의 잠재력은 투자합작, 기술합작, 관광합작 및 변경무역 등 령역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합작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질 것이지만 특히 전력공업부문, 교통운수부문, 관광봉사부문, 농업부문, 기술봉사부문, 과학연구부문 등 부문들에서 집중적으로 합작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본다. 
 
 
상점 일각
 
그가운데서 합작의 기회가 우선 기대되는 분야는 관광산업과 문화교류에서 별 영향없이 활발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관광은 제재대상이 아니며 조선은 이미 생태관광, 해양관광, 의료관광을 통해서 관광을 확대하려는 계획이 구체화되여있기 때문이다.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선은 기존의 관광자원외에 원산-갈마관광지대, 삼지연관광지대, 양덕온천 등 여러 관광시설들을 추가로 건설완료하였다. 
 
이와 동시에 변경무역과 합작, 임가공같은 것은 지금도 진행형이기에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이며 향후 농업과 양식업분야 특히 숙천농업개발구와 강령록색시범구 등에서 실질적인 합작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풍부하다. 
 
또한 조선에는 우수한 IT인력이 많이 비축되여 있으며 평양근처인 평성에 은정첨단기술개발구가 조성되여 있어 중국의 중관촌같은 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에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주고 있다. 
 
좀 더 나아가 민간차원의 금융투자를 통해 조선의 기초시설에 대한 투자도 이루어질 것이며 경제개발구, 변경합작구, 호시무역구 등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합작으로 확대될 것이다. 
 
 
평양시내 야경
 
시간적 측면에서 본다면 맞춤한 타이밍이 도래했다고 보아진다. 숨막히는 어려운 고비를 여러번 겪었던 조선은 내적으로 강인해져가고 있으며 특히 새로운 시기에 들어서서 조선의 확연히 달라진 내부의 변화로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경제의 기본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노력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한만큼 분배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원칙을 보다 강하게 강조하면서 들인 공만큼 효력이 나타나는 결과를 공감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의 공장기업소들이 자주경영권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와 혁신을 다그쳐 실천해가고 있다. 자본, 기술, 새로운 설비가 없이는 높은 차원의 성과를 이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가 경쟁속에 뛰여들었다. 공장기업소들은 나름대로 외부와의 합작의 길을 뚫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상업적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고 신뢰를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에 경제활동에서 보다 성실한 합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해볼 수 있다. 
 
과거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 전문가들이 조선경제에 대해 전망한바 있지만 이번만큼 조건이 주어진 적이 없다고 볼 때 가히 큰 그림을 그려볼만한 시점에 다달았다고 생각한다.
 
 
려명거리
 
 
려명거리 야경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관찰한다면 합작파트너와의 상호보완성이 많아질 수록 합작의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조선에는 아직 대외경제거래를 실천해본 경험자들이 적지만 부딪치고 싶어하고 과감히 다가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미 굳어져있기에 서로 기회를 어떻게 조성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기업인들이 개혁개방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변화하고 있는 조선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가진다면 곧 기회를 포착하게 될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무역이 정상화되고 경제협력에서 호혜성을 강조하면서 투자의 안전성에 대한 조치가 따른다면 합작의 기회는 분명히 늘어날 것이다. 
 
량국간에는 항상 경제적 보완성에 기초하여 거래가 이뤄졌기에 기회가 선천적으로 주어져있다고 본다. 조선으로 말하면 자원의 활용, 기술의 전수, 설비의 갱신이 필수적인만큼 중국조선족기업인들은 적은 자금으로 선점의 기회를 잡는데서 단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축적된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조선에 일정한 자금을 투입한다면 의외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경제정보의 불투명성이 있을 때 오히려 리윤의 폭이 더 크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이다. 물론 불투명할 때 리스크도 그만큼 크게 동반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타당한 시장조사를 거친다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선의 법률규정과 정책에 대해 깊은 료해가 필요하며 동시에 조선의 수요에 대해 파악하는데도 정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하루이틀사이에 이뤄지지 않는다. 꾸준히 드나들면서 미리 알아두는 시간을 갖는다면 분명히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가지를 더 부언한다면 중국의 기업인들은 조선의 정치적 특수성을 잘 리해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여야 사업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합작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데 합작방식에는 합영합작, 공동개발, BOT, BLT등에 기초한 투자방식, 가공무역방식, 임대 및 보상무역방식, 공동연구 및 기술합작방식들이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아직 제재완화에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두 나라 지도자들의 우호관계와 중조 두 나라 친선관계의 정상화단계가 승화되는 것도  기대해볼만 하다. 다만 아직은 조건이 성숙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때가 기회라고 본다. 성공의 3가지 요소인 천시, 지리, 인화가 두루 갖춰지는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특성상 조선족기업인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조선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는 예감을 타민족기업인들보다는 더 잘 감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 그런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아울러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환경이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어려운 난관도 타개하고 새로운 출로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조선이 훌륭한 선택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전통산업의 경영난이 여러모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에서 인건비가 저렴한 곳이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리윤의 폭이 과거에 비해 아주 적어진 것도 회사를 지탱하기 어려운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 위해 제조업에 종사하는 적지 않은 중국경제인들이 동남아를 찾아가는 비률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기업인들에게 조선이 새로운 선택지로 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유는 조선은 언어가 통하고 거리가 가까우며 질좋은 로동자들의 인건비가 저렴한 등 여러 방면에서 우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선을 10여년째 오가면서 조선의 경제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그 변화의 과정들을 목격해왔다. 북남관계가 아직까지 잘 풀릴 조짐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오히려 조선족기업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족기업인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특혜가 있으며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갖고 있기에 가장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견지에서 조선족기업인에게 주어진 황금시기가 3~5년이라고 본다. 근거는 중국의 개혁개방의 력사에서 찾을 수 있을텐데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의 첫 물꼬는 화교들이 앞장서서 틔운 것이며 1992년까지 대만, 향항 등 화교기업인들의 활약이 거의 주류를 이루었다는데서 힌트를 얻을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기업인들이 모처럼 주어진 유리한 기회를 틀어쥔다면 대조선 무역 및 투자를 통해 경영상 존재하는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고 본격적인 경제변화를 시작한 조선에서 나름대로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경제의 변화과정에 조선족의 역할은 이미 주어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체의 투자활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국기업인들의 조선진출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될 것 임은 두말할나위 없는 사실이다. 상호리익의 견지에서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합작모델을 창출해낸다면 조선족기업인들은 한국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했던 역할 이상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신용을 바탕으로 상호 공동발전의 원칙을 지킨다면 중조경제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에도 기여하는바가 클 것이다.▣(출처:《중국민족》조선문판  글 사진/리춘일  편집/리호남 서정옥  조판/ 한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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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임원진 국경절 경축모임 진행 2019-10-14 0 1248
7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설립 8주년 경축대회 연경서 2019-06-26 0 1506
6 한계를 도전, 바드민톤으로 하나된 경기 2018-06-22 0 1899
5 북경조선족 기업가 대표, 청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2017-06-15 0 1466
4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제3대 임원진 출범,'같이의 가치'재확인 2017-06-15 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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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北京朝鲜族企业家协会与韩国江原道政府正式签署合作协议 2015-09-29 0 2014
1 북경조선족기업가련의회 고고성 2013-07-31 0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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