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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탐방이였다.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산 만추의 풍경, 압록강의 귀맛 좋은 여울소리가 만들어낸 자연경관이 일품이였다면 장백현성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필자에게 준 인문적 인상은 그야말로 심취신미(心醉神迷)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뒤늦게 다녀온 장백 초행길은 필자에게 가슴 뿌듯함과 더불어 새로운 그 무언가를 깨닫게 한 의미 있는 걸음이였다.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의 짧은 탐방길이였지만 강한 리듬의 민족 삶이 내재된 생생한 현장을 한눈에 직시할 수 있었고 화끈한 민족의 얼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연변처럼 도시 곳곳에서 조선족들이 북 치고 장고 치고 춤추는 시끌법석한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늑하고 고즈넉한 거리와 이웃 나라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압록강연안의 유원지에는 조선족 삶의 따뜻한 기류가 조용히 팽배하고 있었다.
장백현 경내에 들어서기 바쁘게 조선족의 정취가 도처에서 꿈틀거린다. 조선글로 된 현수막과 포스터, 조선족을 형상화한 각종 조각예술품들, 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기와집들, 깔끔한 도로와 휴식터마다에서 반기는 조선족 상징 조형물들, 거리 곳곳에 비치된 민족건축미를 살린 멋진 공중화장실들…
중한수교 후 연변땅을 처음 밟아본 한국인들의 가슴을 짜릿하게 한 넘버원이 우리 글 간판과 프랑카드였다고 하던 한국 지성인들의 감개무량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장백현에 들어서는 순간 필자 또한 연변땅을 처음 밟았을 때 한국인들의 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황한 설명과 안내가 없이 눈에 띄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촉경생정(触景生情)의 순간이였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현의 당당한 존재감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당발해문화, 장백산문화, 압록강문화, 관동문화, 조선족문화 전승집결지인 장백현에서 전 현 인구의 16.7%에 불과한 조선족 동포들은 주체민족답게 한족과 기타 민족과 공동체 삶을 영위하면서 장백현을 ‘전국문화선진현’, ‘전국문명현’으로 부각시켰고 여섯차나 ‘전국민족단결진보 모범집체’ 영예를 안아왔다. 참으로 머리가 숙어지는 장백현의 장거가 아닐 수 없다.
섭섭한 구석도 있었다. 몇몇 당지 조선족과의 만남이 썩 시원찮은 느낌으로 넌지시 맞쳐온 것이다. 조선족음식가게에서 늦은 식사를 하며 느낀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의 시무룩함과 어색함이 반죽된 애매모호한 표정, 골목에 모여앉은 조선족할머니들의 무뚝뚝한 눈길, 서먹서먹한 접촉에서 필자는 가깝고도 먼 생면부지의 외딴 곳에 온 느낌이 넌지시 갈마들었다.
그 순간 몇년 전 어느 언론지에서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타성의 어느 조선족산재시에 17개 조선족마을을 포섭한 문화예술관이 있는데 관장 한분만 달랑 조선족이란다. 그 관장이 하루는 연변 어느 단체를 찾아와 안타까움을 하소연하며 조선족 인재를 지원해줍시사 하고 간청을 드렸는데 면박을 당하고 쓸쓸히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연변이 조선족집거지구라는 단 한가지 믿음에서 찾아왔는데 그 믿음을 접어야 했던 조선족관장이 너무 안스러웠다. 그분이 얼마나 연변에 실망이 컸겠는지는 불보듯 뻔하다. 그때 필자는 <연변이 조선족문화의 메카라면…>라는 칼럼을 본지에 발표하여 연변의 성찰을 촉구했던 적이 있다.
사실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란 타이틀에 의해 연변성채 안에 완벽하게 포진된 조선족의 교육, 문학, 예술, 신문, 출판, 방송, 텔레비죤, 축구 등 문화군단 시스템은 중국조선족문화의 메카와 리더로서의 사명에 걸맞는 차원에서 구축돼온 것이다. 물론 행정구역은 달라도 중국조선족의 구심점이 돼야 할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장백자치현을 비롯한 산재지역 조선족을 어느 정도로 포용했는가를 자성해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가? 장백현의 음식점가게 주인 내외와 골목 할머니들의 대화와 표정에는 분명 연변사람을 외계인을 대하는 듯한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연변과 장백현의 뜨아한 관계의 축소판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그런 와중에 마음을 개운하게 한 일이 있었다. 워낙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맡기로 했던 장백현방송국의 친구가 불시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에서 마련한 조선말아나운서강습반에 참가하면서 우리 탐방에는 약간 차질이 있었지만 연변방송국에서 산재지역 조선말방송인까지 챙기는 책임적 자세는 그런 대로 마음을 후련하게 하였다.
유감스런 일도 있었다. 장백현으로 떠나기 전 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에서 ‘장백에서 백금까지 우리 시가 간다’라는 테마의 창작 탐방행사를 조직했다는 기사를 제목만 읽고 무척 흥분했었다. ‘장백’을 ‘장백현’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사실은 이도백하에서 백금까지인 순수한 연변 경내의 활동이였다. 만약 이 행사가 말 그대로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백금’까지를 탐방구간으로 잡고 60여명 연변의 시인, 작가, 가수와 배우들의 활약상이 보여졌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가? 적어도 장백현에서 대환영붐이 일었을 것이고 그 문화적 여파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조선족 대이동은 연변 뿐만 아니라 장백현을 포함한 조선족 산재지역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변지역만 념두에 두고 추진해왔던 연변의 수많은 민간문화예술단체들의 문화행사 반경을 적어도 장백현으로 연장시키면 어떨가 생각해본다. 연변의 민간단체들이 더 열린 자세로 주변의 조선족 산재지역 민간단체들과 손잡고 함께 하는 문화의 장을 정례화하는 것은 오늘날 민족 대이동의 시대적 발전에 부합되는 명지한 선택이 아닐가? 집거지역과 산재지역 조선족의 정신문화적 융합만이 중국조선족이 중화민족 공동체에서 응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2년 전 연변TV음력설야회가 두만강, 송화강, 압록강 삼대강의 발원지 장백산천지를 모티브로 조선족의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의 생존저력을 확인시키는 데 포인트를 맞춘 세 지역 조선족가수가 열창한 3인창 NTV <삼대강발원지>! 그 뒤에 이어진 평안도, 경상도, 함북도 태생의 세 지역 조선족들이 ‘한자리’에서 펼친 예능윷놀이 생방송라이브는 집거지구와 산재지구 조선족들을 결집시키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멋진 시도라고 생각한다.
장백현, 가깝고도 먼곳!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곳으로 격상시키는 그 비결은 조선족문화의 힘에 의한 소통과 결집에서 찾아야 한다. 그동안의 ‘거리감’을 좁히고 가깝고도 먼곳이 물리적으로도 가깝고 정신문화적으로도 가까운 곳으로 부상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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