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도시존엄잡담
채영춘
일전에 룡정동산홍색문화원에 다녀왔다.
그제날 영국조계지가 들어앉으며 ‘영국더기’로 불리웠던 동산이다. 1919년의 ‘3.13’반일시위, 1930년의 ‘5.30’폭동 등 중대한 력사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였고 항일저항시인 윤동주의 혼이 서려있는 동산마루에 터를 잡은 홍색문화원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도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였다.
한 도시의 특성이 생태, 력사, 전통, 문화에 힘입은 자연스러운 신장(伸张)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은 이 구성요소들을 연변반일투쟁 ‘종가’체통에 걸맞게 결집시킨 멋진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룡정은 중국조선족 반일투쟁 력사의 산증인이다.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혁명투쟁사는 20세기 초엽부터 1920년대에 이르는 사이 룡정땅에서 있었던 조선족반일투쟁을 그 서막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력사문맥은 지금까지 유적지, 옛터와 같은 원초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그대로 룡정의 곳곳에 흩어져있으면서 력사의 ‘산증인’에만 그치고 ‘종가’의 무거운 존재감에는 못 미치는 아쉬움을 보여온다고 느꼈다. 룡정은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고 력사는 말하고 있었다. 그 력사의 부름에 부응하여 룡정이 드디여 멋진 답안을 내놓았다.
동산홍색문화원은 룡정사람들의 탁월한 혁명유전자 전승리념의 소신으로서 룡정존엄의 값진 심벌로 된다고 생각한다.
공원화된 문화원의 6만 7000평방메터의 멋진 공간에서는 불멸의 룡정 력사가 꿈틀거린다. 룡정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대형의 혁명렬사기념비는 동산문화원을 거느린 거장마냥 문화원 중심에 우뚝 솟아있다. 총길이가 200여메터에 달하는 양각벽화(浮雕)에는 서전서숙, 대성중학교, 명동학교, 3.13반일집회, 민성보, 15만원 탈취거사,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 등 룡정에서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더불어 김약연, 관준언, 한락연, 정률성, 주덕해 등 기라성 같은 인물형상들이 생동하게 상감(镶嵌)되여있다. 이 모든 구조물들은 소나무와 백양나무로 우거진 동산의 적재적소에서 룡정시가지를 한눈에 조감하면서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산홍색문화원의 핵심가치는 무수한 인민영웅들의 영령에 대한 숭엄한 마음의 전달에 있으며 이는 또한 룡정의 존엄을 정중하게 떠받쳐주고 있다.
어떤 나라나 지역이든 가장 추앙받는 대상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몸바쳐 싸운 인민영웅들이다. 우리 나라 수도의 천안문광장 중심에는 아편전쟁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100여년간 반제반봉건투쟁에서 순직한 여러 민족 혁명선렬들에 대한 추모와 경앙의 뜻을 담은 인민영웅기념비가 국가존엄 1호 물로 우뚝 솟아있다. 로씨야의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가장 추앙받는 곳은 2차대전 순국영령들을 기리는 무명렬사묘이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순직한 영령들을 하늘처럼 모시는 자체가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징표이다.
력사를 모르면 자기를 낮추어보게 된다. 망각되고 왜소화되고 외면당했던 민족의 력사가 제대로 정립되여 세상사람들 앞에 떳떳이 모습을 드러내야 민족이 바로서고 나라 근대사도 보다 완벽성을 기할 수 있다. 조선족의 자랑스런 반일투쟁력사를 떠올림에 불편해하거나 눈치 보기에 전전긍긍해서는 안되는 리유이다.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이 담아낸 것은 조선족이 기타 민족과 함께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치른 지난 력사에 대한 불망초심의 정중한 마음이고 부각시킨 것은 룡정의 정신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의 존엄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산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모아산이 안겨온다. 모아산건너에는 연변의 수부도시 연길이 있다.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듭하는 중국 유일 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의 호칭은 많아도 한마디로 귀납하면 조선족의 심장부가 아닐가 생각한다. 조선족 인문풍토의 대표자, 조선족문화의 구심점, 조선족과 여러 민족 다문화 대화합의 정치풍경구, 연길 도시문맥을 형성하는 핵심이다.
도시문맥은 국민의 기질과 정신을 함유하고 있다. 도시문맥이 끊어지면 국민의 기질과 정신이 사라지고 도시의 존엄이 증발돼버린다. 도시의 존엄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된다. 심오한 사상적 깊이와 확실한 정신문화 품위에 의한 도시기획이 되여있지 않을 때 결국 도시의 존엄이 거세된 경박한 아마추어공간으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솔직히 오늘날 세인들 앞에 펼쳐진 자치주 수부도시의 총체적 모습은 갖춰야 할 체통에 비해볼 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심장부에 자치주를 상징하는 핵심구조물이 없다는 점은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넋이 없는 도시의 존엄은 상상 할 수 없다. 연길 심장부에는 상가빌딩이나 약방, 음식점이 아니라 중국조선족체통에 맞는 상징구조물이 정착해야 한다. 조선족과 기타 민족이 피와 땀으로 이 땅을 개척하고 일제에 항쟁하여 이 땅을 지켜왔으며 당의 령도 아래 모범자치주를 건설한 150년의 찬란한 력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구축돼야 한다.
주정무청사 앞에서 결혼기념촬영을 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보아왔다. 그때마다 청사 남쪽의 드넓은 아리랑광장에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저 광장에 아리랑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연변의 존엄을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멋진 구조물을 건설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70돐이 다가온다. 연변, 나아가서 중국조선족의 개척의 력사, 항쟁의 력사, 건설의 력사가 형상화된 매력적인 상징구조물이 자치주 수부도시에 우뚝 솟기를 기대해본다. 룡정동산홍색문화원을 돌아보고 느끼는 생각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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