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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의 성장
김문일
요새는 코로나19 때문에 지구촌이 하나 같이 부산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어떤 리유이든간에 자연이 우리에게 경종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년말련휴기간인데도 어디 나다니기가 거북스럽다. 나도 오랜 만에 한가한 시간들을 만나게 됐다. 그래서 집안의 서재에 들어박혀서 《西藏生死书》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절강대학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몇년 전 한국어판으로 번역된 <티벳 사자의 서>다. 한국의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책인데 우리 글이 뜻문자가 아니라 소리형 문자여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중국글에 더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여러가지로 알아보기가 힘들었었다. 마침 이번 년말에 고향에 돌아오면서 공항 서점에서 중국어판본을 보게 되여 선뜻 사왔다. 한국어 판본과 중국어판본을 서로 대조하면서 보게 되니 자못 더 흥미롭다.
책을 읽다가 피곤해서 잠간 쉴려고 외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과 위챗으로 통화를 했다. 여러가지로 오래동안 아들과 상담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는 느낌이다.
마치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듯이 나도 그렇게 함께 배우면서 아이들과 같이 성장을 한다. 실은 나의 마음도 아직 아이들처럼 천진하고 랑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강함이 없어서 우리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지 못했다. 또 나는 싸울 줄 잘 몰라서 우리 아이들을 악착스럽게 키울 수 없었다. 나의 두 아들은 그렇게 부족한 아빠한테서 착함을 배웠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 뺏기면 두개를 빼앗아오라고 시킬 때 나는 손해보는 것이 리득보는 것임을 아이들에게 리해시키려 애썼다. 다른 사람들이 자녀가 한대 맞으면 두대 때리고 오라고 시킬 때 나는 양보의 미덕을 가르쳤다. 그게 바보처럼 보여서 안해의 핀잔도 가끔씩 들었지만 나는 내 게 없는 것을, 그리고 내가 볼 때 아닌 것을 가르칠 수 없었다.
한비자는 <顾小利则大利之残也> 라는 말을 했다. 즉 눈앞의 리익에 매달리다 보면 큰 리익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당연한 말이고 당연한 일이나 실생활에서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 부부싸움에 쌍방 부모가 서로 자기 자식편에 서서 싸우질 않나, 자그마한 부부간의 모순에 서로 자존심 상한다고 섣불히 리혼을 하지 않나, 요즘은 정말 나로서는 리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옛날 춘추시대에 진(晋)이라는 강국이 괵(虢)이라는 나라를 멸망시켰을 때의 일이다. 괵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우(虞)나라의 령내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래서 준마와 옥을 주고 길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나라의 중신들은 "괵나라가 멸망하면 다음은 우의 차례입니다."라고 말하며 반대했지만 우나라의 왕은 선물에 눈이 어두워 진의 요구를 수락했다.
그 결과 , 괵나라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도 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해 버렸다고 한다. 우왕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는 쉬우나 그런 립장에 자신이 처해지면 같은 실수를 범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그 당시는 바보처럼 보였지만 양보를 하는 우리 아이들 주변에는 친구가 많아졌다. 더 많은 친구들이, 또 더 순수한 우정들이 하나, 둘 모였다. 나는 그래서 감사했다. 건강하고 착하게 커줘서 감사했고 바르고 씩씩하게 커주어서 감사했다.
우선 아버지이기 전에 나는 자녀였다. 집안의 막내아들로서 부모님과 두 누님의 사랑을 가득 받으면서 자란 나는 고생이 뭔 지 모르고 컸다. 그렇게 청춘을 흘러 보내면서도 나는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인생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보다 더 값진 것이 있는지 질문하지도 않았다. 인생의 가치나, 소중함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의심할 바 없는 바른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리 휩쓸려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뜩 나는 한발자욱 성장한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였다. 코로나로 인해서 외지에서 설 쇠러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아들놈이 처음으로 고향생각, 부모생각이 났나부다. 태여나서 처음 부모를 떠나서 혼자 쇠는 설이다. 자리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 아들놈을 보는 순간 갑자기 내 가슴이 아파왔다. 뭔가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내 심장을 쿡 찔렀다. 아~그때에야 나는 내가 비로서 아버지로서 한 발자욱 성장을 했음을 깨달았다. 자식을 곱다고 키우고만 있었지 어떤 것이 아버지인 줄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차 한잔과 잔잔한 일상에 감동하고 배우면서 나는 삶을 배워가고 있다.
문뜩 <인생의 목적은 사는 일이 아니라 죽는 일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난세기 유명한 프랑스의 극작가 크로텔이,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마리아에게 고함》에서의 한 구절이다. 이 대사 앞에는 이런 말이 더 있다. <참으로 , 한 생명과 비교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 세상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한 생명에 그것을 바치지 않는다면 무엇을 악착같이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그는 반문했다. 물론 크로텔이 죽음을 찬미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죽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은 죽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어떤 형태를 끝맺음으로서 삶의 모습을 완성시킨다.
그러니 이제와서는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야 말로 나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가 되였다. 몇년 전 써두었던 <질문>라는 시가 떠올라 여기에 적어본다.
나는 질문 없이 살았어요
주어진 대로
생각나는 대로
그러다보니 세월은 가고
어느새 내 얼굴에 주름이 지네요
질문을 했다면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면
왜서 이렇게 사는지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걸 질문했다면
나는 기필고 이렇게 후회하진 않았을거예요
질문은 내 삶을 빛나게 하고
질문은 해답보다 중요한 것이죠
질문하는 자에게는 해답이 올 터이니
질문만 하면 되는것을 나는 몰랐어요
아직도 늦지는 않을거예요
이제도 기회는 있는 것이죠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으며
내게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을가요?
그렇게 질문하다 보면 어느새
내게도 더 낳은 길이 보이겠죠.
지금보다 더 바른 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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