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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담이 필요한 날
심명주
육담肉谈은 언어 계보에서 지위가 천하다.
순 우리말로 풀면 ‘고기 이야기’라는 뜻이며 저속하고 품격이 낮은 말이거나 이야기로 흔히 음담패설로 통한다. 육두문자의 육담과 악담恶谈을 아울러 육악담이라는 말도 있다.
내가 아는 육담은 별로 많지가 않다. 기껏 발휘해봐야 몇마디 뿐이다.
그것은 내가 몇십년간 나름 흔들리며 지내온 생활 속에서 용케도 맑고 티없는 본질을 잃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냥 그동안 살아오면서 육담은 나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이 구별되는 옷 같은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그것을 거리낌없이 훌쩍 내 몸에 걸치기를 꺼렸다.
그런 나의 마음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육담이 어울리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후자가 나 자신이라고 고집했을 뿐이다. 왜서 그런 마인드로 자신을 포장해왔을가. 그것도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냥 내 기억에서 최초로 부끄러운 충격을 받았던 상스러운 말투의 원조를 떠올리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 하나는 있다. 바로 아스름한 기억의 녀자이다. 약간은 모자란듯 거친 말투의 녀자였다.
내가 열두어살 되던 해 여름, 날씨가 무더운 어스름한 저녁녘이였다. 그맘 때 시절 남정들은 음식점 곁에서 삼삼오오 로천 술상을 벌리기를 즐겼다.
웃통을 벗어젖힌 남자들이 줄느런히 앉아 권커니 작커니 하는 어느 음식가게 앞을 내가 지나던 때였다. 스무살도 안되는 녀자애 하나가 술손님들이 앉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발빠르게 음식을 나르는 것을 보았다. 서빙하는 녀자애였다. 머리가 짧은 숏컷이였고 얼굴은 희고 말쑥하나 녀자녀자함이 아니고 약간은 중성스러운 인상에 모습 전체에서 어딘가 거친 기운이 풍기였다.
다리보다 몸통이 더 앞으로 쏠리며 잽싸게 서빙하던 그 녀자애가 갑자기 발에 무엇이 탁 걸채여 앞으로 고꾸라질듯 비칠비칠 지름걸음을 했다. 그러다가 용하게 몸을 재빨리 가누며 입으로 어쩔 사이 없이 “개XX 초채炒菜~”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남정들의 억양을 본따서 내는 웅글고 저음진 소리에는 앳됨도 묻어있었으나 거기서 풍기는 상스러움은 남자 못지가 않았다. 걸채인 발이 참기 어렵게 아팠던 모양이다. 왁작 떠들던 술군들의 시선이 녀자애한데 집중되였고 나도 일순 가던 걸음을 뚝 멈추었다. 녀자 입으로 숙련되게 거친 말을 하는 모습에 영화 속 폭력장면처럼 충격이였던가.
녀자애는 상관없다는듯 통증이 가시지 않은 자기 발만 한손으로 꼭 쥐고 상을 찡그렸다가 이내 일어나서 절뚝거리며 나아갔다.
“야 금숙아, 녀자가, 어? 그런 말 해서 쓰겠나?”
듣기 거북하다는듯 어느 술상의 남자가 넌지시 뜨뜨미지근한 말을 던졌다. 이름 부르는 걸 보아 단골손님인 모양이였다. 남자들은 대개 상스러운 말이나 거친 말에 너그럽다. 금숙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금숙’이라 불리우던, 약간은 반푼스러워보이던 녀자애가 거리낌없이 뱉어내던 그 찰진 욕설이 그 날 나에게는 놀랍고 신선했다.
그 날에 본 ‘금숙’이는 그 뒤 내가 자라오면서 누구한테 자주 털어놓지 않은 허물 같은 것이였다. 훅 하고 생면부지의 내 기억에 꽂혀 살 속에 단단히 파고 들어온 ‘금숙’이는 내가 가끔 육두문자를 떠올리면 같이 따라 생각나던 녀자였다. 몇십년을 죽 그랬다. 잊을래야 잊어지지 않는 기억 속의 ‘금숙’이. 내 몸에 들어와 오래동안 나의 살을 자양으로 같이 커온 가시 같은 존재였던가?
함께 크는 동안 나는 그것이 가시이고 처음 그를 보던 그 날 나를 몹시 아프게 찔렀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그냥 잊었다. 아니, 가시라고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을 빌미로 잘 커온 그 가시는 더듬이 같은 속성을 나에게 배워주었고 때로는 내가 정말 ‘금숙’이로 되여 나에게 상스럽고 거친 말을 시키려고 들었다. 조금씩 그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내 원초의 부끄러운 ‘금숙’이를 더 기억 속에 인식했고 또한 ‘금숙’이라는 이미지의 녀자가 나에게는 거칠고 부끄러운 가르침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숙’이는 나를 육담이라면 거부부터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후 세상살이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일상이 육담인 사람이 정상이 아니듯 육담이라 하면 거부부터 하는 나 또한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런 발견은 나더러 생활에 조금 더 재미를 가미하려면 적당한 육담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해주었다. 나는 내가 선호하는 육담을 책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나름 나의 육담표준을 정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육담에 대한 나의 기준을 바꿔준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TV들에 자주 나오는 ‘욕쟁이할머니’이다.
보통 맛집 같은 것을 경영하는 이런 ‘욕쟁이할머니’들은 매일 스트레스와의 전쟁 중인 직장인들이 가게를 찾으면 따뜻하고 맛나는 음식을 대접하는 한편 포장이 없는 원색 언어로 거친 육담을 펴내며 귀와 뇌도 시원하게 해준다. 옛부터 그런 ‘욕쟁이할머니’들은 우리 주위에 푸술했지만 하필이면 요즘 들어 사회 속의 한 캐릭터로 각광을 받는다. 그런 현상에 대해 나는 시대적인 사색을 하기보다는 ‘욕쟁이할머니’는 그냥 내 눈에 세월을 인내하고 이미 성인으로 성장해온 ‘금숙’이 아니였을가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던 지난 어느 날, 나는 아홉살배기 아들과 나의 친구랑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내 옆에 리혼으로 우울했던 나의 친구가 나란히 앉았고 마침 우리 차는 어느 사거리에 다달았다.
길옆에 사면팔방 줄느런한 음식점 간판을 보며 소학교에서 금방 배운 우리글을 익히느라 간판쪽을 읽던 아들이 ‘연병만두국집’이라는 간판글을 보았고 그것을 잘못 읽어 그만 ‘염병만두국집’으로 읽었다.
‘염병’이라는 말을 듣던 친구가 어둡던 얼굴을 확 밝히며 “옘병~”하고 과장하며 흉내냈다. 나도 되받아 “에라잇 옘병~”하고 외웠고 우리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큰소리로 웃었다. 가는 길 내내 속 후련히 “에라잇”, “옘병”을 련발하며 웃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도 감염된듯 함께 웃어댔다. 단어의 뉴앙스를 터득한 것이다.
그 날 꼭꼭 가두어졌던 내 친구의 속을 해장국처럼 확 풀어주던 ‘옘병’이라는 욕설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준 구세주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묘미 때문에 사람들은 가끔 육담을 하나부다. 적절한 육담은 경우에 따라서 어떤 지략이고 유머이며 센스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사는 동안 나도 가끔은 시원한 육두문자가 그리웠던 것 같다. 육두음들이 나의 후두를 적시고 목청을 매체로 세상에 터지는 것이 어려웠을 뿐 실제로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뱉는 거친 말은 그 고통을 경감시켜준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아름다운 글과 언어는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아우라 같은 날개를 달아준다. 하지만 비포장도로 같이 터덜터덜한 생활의 나날들을 경과하다 보면 시종 우아함을 보존하기란 어디 쉬운 일인가. 세상은 때론 너무 슬프고 속상하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악담과 육담을 일상사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육악담은 맛만 들이면 돌이키기 어려운 중독을 부르는 쓰레기음식이며 저질인간의 악동짓이다. 매료되면 빠져나오기 어렵고 그 상스러운 외문猥文에 경도되면 사람은 성품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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