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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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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 품는 화분(수필)
2019년 07월 16일 09시 12분  조회:385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품는 화분

리미

 

무게도 안 가는 먼지들이 그렇게 묵직하게 앉아있는 줄 미처 몰랐다. 옅은 색에서부터 어느 순간 점점 진하게 변하더니 집안의 공기마저도 탁하게 만들어버렸다. 그제서야 난 그것들에 주의를 가졌다. 무질서하게 뻗은 나무잎들을 담은 화분들이였다. 

언제 사놓았는지 알 수 없는 화분들이 집안의 바닥을 에돌고 있었다. 이쁨은 둘째 치고,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명목하에 사놓은 뾰족한 다육이도 보이고 풍수에 좋다는 각가지 화분들은 집안의 또 다른 오아시스마냥 벽에 기대있었다.

누구나 처음 사온 화분에 대한 첫 만남을 기억할 것이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그다지 흥분되지도 않는 아주 잔잔한 만남을 말이다. 필경 살아움직이는 애완견이 아니기에 우리의 만남은 강렬한 떨림이나 화려함은 간략되였다. 그럼에도 좋은 흙 속에서 가끔씩 내리받는 해빛쪼임, 그리고 내가 주는 수분을 머금으면서 그들의 무성한 성장을 바랐다. 일종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작은 바람들이 그 잎 하나하나에 품어져있다고 생각했다. 잎이 번창하게 피여오르면 나의 옹송거렸던 소망도 같이 커질 것 같은 심리적 작용이 일었다. 시간이 날 때면 생명의 물을 그들에게 쏟아줄 것을 나 자신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여전히 나는 아침 6시 반의 알람에 몸을 일어세우고 허겁지겁 미완성이 된 화장으로 아침을 채우고 출근시간을 보낸다. 출근시간의 따분한 일분 일초는 이상하게도 퇴근 후면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침대에 누워야 할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가끔씩 찾아오는 회식자리나, 술자리 지인들과 며칠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달력은 그 다음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다 여유가 생기니 집안에 초록색 눈을 하고 있는 그들이 보였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들이지만 과연 그들에게 또한 감정이 있음을 축 처진 이파리에서 느꼈다. 식사시간이 지난 후 놓인 밥상 우의 반찬과 국처럼 촉촉한 물기 대신 빼빼 말라버린 그들이 시무룩하게 나를 맞이했다. 며칠 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굶주렸던 나의 허기짐을 상상해보았다. 미안함에 벌컥벌컥 그들에게도 충족하리 만큼의 물을 부어주었다. 그동안 나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에 한꺼번에 몇주일 동안의 감정을 보상해주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가 준 보상의 물기를 흡수하고 다시금 푸른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무관심과 일방적인 베품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건 불과 몇분이 지나기도 전에 난 축축해진 바닥을 보고 알아버렸다. 물을 흡수하기에는 너무도 말라있었던 화초들의 ‘탈수’현상 때문이였다. 오랜 시간 동안 품어야 할 충분한 수분과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몰아주기식 베품은 매몰차게 외면을 받았다. 그래도 우선은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들이 처량해진 다음에야 난 그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전히 수분기 하나 없는 화분들이였지만 그 때라도 잘 보살핀다면 다시금 싱싱한 푸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의 한달을 짬짬이 여전히 말라버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쏟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수분과 영양소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때 주었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씌여져있었다. 잘 보살펴주리라 했던 무언의 약속은 여유라는 조건이 생겨야만 보살피는 것으로 되였고 그 핑게 같지 않은 변명의 결과물은 말라버린 화분이였다.

더 초췌해진 나무잎 우로 줄기줄기 뻗은 선들은 나의 고즈넉한 감정선을 동요하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화분을 다룬다는 건 어쩌면 인생을 다루는 것과 같은 것 같다. 탐탁치 않은 진한 토색의 토양과 그 안에 뿌리를 박은 초록색 가지들을 어떻게 거창한 인생살이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소소한 행복감, 수평선을 향하는 만족감, 닿을듯 말듯한 인연 여부가 우리의 인생이라는 늪에서의 감정선이 아니겠는가. 굳이 거창한 포장으로 인생을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긴 려정을 그려냈을 뿐, 또한 매개 점들이 내뿜는 관심과 수요를 제때에 포옹해줘야만이 그나마 좀더 윤택한 삶이 되리라는 걸.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우리가 마주한 감정이든, 인연이든 참 오묘하게 우리를 비껴갈 때가 많다. 안심하고 있던 찰나에 두터웠던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갈 때가 있다. 타인과 나 사이의 감정 뿐만 아닌, 나와 내 자신의 감정 또한 그 흐름을 빗겨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들 그런 말을 자주 내뱉곤 한다. 

“어머나, 하는 게 없이 하루가 지났네, 일주일이 지났네…”

마치 주어진 시간의 매개 틈새에 무언가를 꽉꽉 채워야 산 것 같다는 강박감을 주는 요즘 사회다. 아무튼, 손에 남은 거라곤 줄어든 시간 밖에 없어진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사는 현대인임은 틀림이 없다. 바쁘다는 의식 속에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무엇인지, 행복해지고는 있는지, 그 때 채 아물지 못했던 감정은 괜찮아졌는지…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저기 한구석에 방치해둔 적이 많은 것 같다. 달리다 어느 순간 한발작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 뒤돌아보니 저만치 남겨놓고 온 그들이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작 필요한 행복감, 챙겨야 할 사람들, 토닥거림이 필요한 감정들이 목말라있을 때 허겁지겁 다시 부여해주려 하곤 한다. 바쁘다는 핑게 속, 너무 무관심했던 탓에 정작 행복해지는 방법을 잊은듯한 우리다. 뿌리부터 말라버린 저 구석진 화분들처럼 뒤늦은 후회를 안고 돌아갔을 땐 아무 것도 없을 뿐이다. 무턱대고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훅 던져주면 그만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품는 건 일정한 열정의 온도를 머금은 채 가슴 밑 어느 한 구석에서 치솟아오르는 그 무언가와 함께 행해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어긋났었던 관계, 자꾸 덧나는 상처덩어리 등등을 보면 우리는 늘 일방적이였고 품기보다는 대처식이였다. 받은 상처를 더 들추어보기가 무서워서 그냥 일방적으로 덮었고 같은 상황이 돌아왔을 땐 몇십배 더 아프게 되였던 것 같다. 맴맴 도는 시간에 마음마저도 맴맴 돌며 그 모든 걸 얼렁뚱땅 지나가고 말았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의 한구절이 나의 마음을 치고 갔다. ‘관통식의 감정’을 느끼라는 것이다. 즉 대수 지나치지 말고 그들이 당신 심장의 과녁을 뚫고 지나갈 만큼 아픔이나 기쁨 어떠한 것을 철저하게, 처절하게 느껴야만이 우리는 그 밑바닥까지 보아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나 그러했다. 우리는 왕왕 느껴야 할 부분, 생각을 되뇌여야 할 부분을 묵과하고 나중에 다시 일방적인 보상을 해주리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삶이라는 게 우리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는 단락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그 상대방이 되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에게 소울메이트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가히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다음 행보도 행복의 마무리를 할 것만 같았다. 여태껏 글에서는 뒤늦은 후회를 품은 화분이였다면 나의 최근은 품었어도 결국 말라버린 그 어떠한 슬픔의 연장선이였다. 그 관계에서 일방통행적이였던 나의 노력이 상대방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일가, 모호해진 감정선은 결국 일정한 온도와 관심을 건넸음에도 불구, 오히려 나에게 상처만 더 안겨주었다. 무언가 채 마르지 않은 세멘트 공정 속, 꾸역꾸역 우에 덧발라서 표면상으로는 이미 다 굳어버린 세멘트덩어리지만 사실 속은 채 마르지 않은 슬픔의 끈적함 같은 비스름한 표현이 그 때 내 마음이였던 것 같다. 그 때 다시금 깨달았다. 인생의 구석구석 감정선은 내가 보살펴야 될 시기를 놓쳐서 끝나버리는 것도 있고 화분을 보살필 때 일방적인 물주기식 같은 일방적인 관심도 답이 없을 수 있다는 걸.

무작정스러운 관심, 혹은 여유가 생길 때만이 쏟는 일방적인 베품 그것만으로는 인생의 매개 굴곡진 점들은 쉽사리 우리와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알심들여 그 관심과 사랑을 애틋하게 품어줄 뿐더러 서로 다같이 노력해야만 그 어떠한 결과물도 우리한테 안기려 할 것이다. 치유도 좋고 어긋남도 좋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인지 시간을 품어서 나만의 온도로 품어보자, 그들을.

출처:<장백산>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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